1. 「보기: 인덱스카드 인덱스」에 관해

고대 로마의 정치가이자 학자, 작가인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 기원전 106년 ~ 기원전 43년)는 기원전 45년경 『최고선악론(De finibus bonorum et malorum)』을 써냈다. 키케로는 여러 학파의 논객과 최고의 선(善), 다시 말해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인지에 관해 벌인 논쟁을 기록한 이 대화록이 1,000년이 훨씬 지난 뒤 출판이나 그래픽 디자인 분야에서 활용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테다. 라틴어의 표본으로 일컬어지는 키케로의 문장들은 해체되고 다시 편집돼 지면이나 화면에서 오직 레이아웃이나 타이포그래피를 가늠하기 위해 자리를 채운다. 첫 문장의 두 구절을 인용한 ‘로렘 입숨(Lorem ipsum)’이라는 이름이 붙은 채로 말이다. 이뿐 아니라 ‘공간만 차지하는 아무 의미 없는 것’을 가리키는 새로운 가치까지 획득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Min Guhong Manufacturing)에서는 자바스크립트(JavaScript)를 이용해 ‘『인덱스카드 인덱스』를 위한 한글 로렘 입숨 생성기’를 제작했다. 생성기는 사용자가 실행할 때마다 이 책 『인덱스카드 인덱스』에 실린, 작성자 외에는 구체적 내용을 알 수 없는 인덱스카드의 제목 8,325개를 데이터베이스 삼아 무작위로 한글 로렘 입숨을 생성한다. 이 작품 「보기」는 생성기가 생성한 한글 로렘 입숨 가운데 하나를 인용한 것이다. 일차적으로 이 책 조판 작업에 활용될 이 작품이 지면에 인쇄되면 설마 주인공이 짝사랑하는 이 앞에서 횡설수설하는 연애소설로 읽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