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하는 질문
- 일러두고픈 말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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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2015년 이래 진행한 길고 짧은 인터뷰를 꼼꼼히 정리한 뒤 다시 무작위로 늘어놓은 「자주 하는 질문」을 통해 회사 또는 운영자에 관한 궁금증이 모쪼록 해소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단, 질문의 시기에 따라 현재와 다른 사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편, 질문의 어조에 따라 언급한 인물에 대한 존칭을 생략하기도 했습니다. 「자주 하는 질문」을 섭렵한 뒤에도 궁금증이 도무지 해소되지 않는다면 support@minguhongmfg.com 앞으로 소상히 말씀해주세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인정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단, 답장은 이메일 대신 언젠가 「자주 하는 질문」에서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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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작업 과정을 설명해달라.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해결해야 하거나 해결하고픈 문제가 무엇인지 규정하는 일에서 시작한다. 2017년 밥 길(Bob Gill)의 『이제껏 배운 그래픽 디자인 규칙은 다 잊어라. 이 책에 실린 것까지.』를 번역하고 편집하면서 본받은 방법론이다. 일단 규칙을 잊을 때까지 실천해볼 생각이다. 어쨌든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야망은 분명하고 한결같다. 생화학 무기, 도청 장비, 샤워 커튼을 제외한 좋은 제품(good goods)을 제작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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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에디터, 디자이너, 프로그래머이자 워크룸에 기생하는 1인 회사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대표로 소개합니다. 하지만 저는 민구홍 님의 작업이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에디팅’과 ‘출판’을 실천으로 활용하는 예술가의 작업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를 작가로서 생각하지는 않나요? 그리고 ‘출판’을 어떻게 정의하시나요? 케네스 골드스미스가 ‘인터넷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로 이 시대에 말입니다.
그래픽 디자인 듀오 슬기와 민은 그들의 웹사이트에서 제 직함을 둘러싼 문제 아닌 문제에 관해 명쾌하게 정리한 바 있습니다. “민구홍은 저술가이자 편집자이자 번역가이자 디자이너이자 소프트웨어 개발자인데, 직함 순서는 그때그때 달라진다.” 감사하게도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관해서도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비디오 게임과 컴퓨터 소프트웨어에서 단편 소설과 음악 재생 목록까지 다양한 실용적, 공상적 제품을 내놓는다. 이처럼 다양한 제품에 일관된 주제는 자기 반영이다. 즉, 대부분 제품은 결국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주제로 한다.” 존경하는 선생님이기도 한 그들의 명성에 기대 지금처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인용하곤 합니다.
여러 직함으로 불리곤 하지만, 저는 무엇보다 ‘편집자’에서 풍기는 무미건조함이 마음에 듭니다. 이는 ‘편집’이라는 행위가 아우르는 범위가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비롯합니다. 아주 넓기도 하고, 아주 좁기도 하죠. 이따금 ‘작가’로 불리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편집을 통해 작품을 창작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담이지만, 영국의 신스팝 듀오 펫 숍 보이스(Pet Shop Boys)의 보컬 닐 테넌트(Neil Tennant) 또한 데뷔 전에는 편집자로 일한 경력이 있다죠? 편집이 규칙과 제약을 다루는 일이라는 점에서 저는 이 경력이 펫 숍 보이스의 음악에도 적잖이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편집자’라 불리고픈 건 제 바람일 뿐입니다. 저를 무엇으로 규정하는지는 그저 상대방에게 맡기고 싶습니다. 제가 생각지 못한 직함이 튀어나오고, 그에 따라 상대방을 대하는 제 태도도 달라지는 게 재미있고요. 그렇게 저는 상대방에 따라 편집자뿐 아니라 작가, 선생님, 나아가 남편이나 애인이 되기도 하겠죠. 미국의 연쇄 살인범 찰스 맨슨(Charles Manson)은 한 인터뷰에서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죠. “아무도 아니야. 그 누구도 아니야. 부랑자, 거지, 떠돌이 일꾼, 화물차, 와인 통… 당신이 내게 너무 가까이 다가오면 날카로운 면도칼이 될 수도 있지.” 물론 제 태도는 찰스 맨슨과는 무관합니다.
‘출판’이 어떤 대상을 강조해 널리 소개하는 일이라면, 『더플로어플랜』(The Floorplan)처럼 오늘날 출판은 반드시 종이 위에서만 이뤄지지 않습니다.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 웹) 덕에 출판의 파급력은 더욱 강력해지고, 아우르는 범위 또한 드넓어졌죠. 두루마리에 자리했던 콘텐츠는 코덱스(Codex)를 거쳐 다시 두루마리(scroll)에 도달한 셈이고요. ‘진화한 책’으로서 웹사이트만큼 출판의 목적과 거의 완전히 겹치는 매체는 찾기 어렵습니다. 이런 마당에 스스로를 소개, 즉 출판하는 데 주력하는 회사에서 웹사이트처럼 실용적인 매체를 사랑하지 않을 까닭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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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이 글 또한 웹사이트를 통해 읽고 있군요. 웹사이트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겠죠.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는 『현대의 삶을 그리는 화가』(The Painter of Modern Life and Other Essays)에서 산업화와 도시화가 변화시킨 19세기 파리의 모습을 포착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웹사이트가 그 역할을 맡는다고 생각합니다. 웹사이트는 기술과 문화뿐 아니라 철학과 미학이 집약된 공간입니다. 때로는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의 시뮬라크르처럼 현실을 대체하고, 때로는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말한 ‘아우라’를 지닌 예술 작품이 되면서요. 실리콘 밸리의 스타트업에서 도쿄의 아방가르드 예술가, 나이로비의 사회 활동가에 이르기까지 웹사이트는 마주한 국면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형태와 기능으로 발전해왔습니다. 이제 잠시 그곳을 다시 돌아볼 때입니다. 그곳에는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세계가 있으니까요.
그 시작으로 제가 운영하는 민구홍 매뉴팩처링(Min Guhong Manufacturing)의 웹사이트 기반 제품을 살펴볼까요?. 제목은 「너에게」로, ‘연애편지’ 연작 가운데 하나입니다. 여기서 ‘너’는 과연 누구이고, ‘이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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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배경에 점멸하는 노란색 글자를 한 시간 정도 명상하듯 읽다 보니 ‘너’와 ‘이것’ 모두 ‘웹사이트’를 가리키는 것 같은데요?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네요. 한때 도서관을 뒤지거나 전문가를 찾아다녀야 비로소 얻을 수 있던 정보가 이제는 검색창에 몇 글자를 입력하는 것만으로 충분할 만큼 쏟아집니다. 하지만 잠시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저도 늘 경험하듯 깊은 사고는 사라지고, 클릭과 ‘좋아요’만 남죠. 어제보다 더 많은 것을 알지만 어쩌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채로요. 나아가 우리의 개인 정보는 끊임없이 수집되고 분석되며, 때로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 판매되기까지 하죠. 미래학자 니콜라스 카(Nicholas Carr)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The Shallows)에서 우려한 대로 우리의 뇌는 점점 단편적인 정보를 처리하는 데 익숙해집니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알림음에 조건반사적으로 반응하면서요. 소셜 미디어를 끊임없이 스크롤하는 사이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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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 랩에 방문하고 싶습니다.
당장 AG 랩에는 완성된 공간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일단 저와 제 오랜 비즈니스 파트너 로럴 슐스트(Laurel Schwulst), 랩톱 한 대만으로 뉴욕에서 약 2주 동안 파이어플라이 생추어리(Firefly Sanctuary), 프린스턴 대학교, 링크트 바이 에어(Linked by Air)를 오가며 비공식적인 업무를 시작하고, 이후 서울에서도 물리적인 하이퍼링크를 마련할 때까지 책상과 의자를 임대하는 방식으로 가볍게 움직일 예정입니다. 혹시 AG 랩(덩달아 민구홍 매뉴팩처링까지)이 의탁할 만한 자리가 있다면 편히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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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을 좋아하는가?
똑똑한 사람. 아무래도 내가 그렇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일 테다. 똑똑한 사람은 유머 감각이 있고, 유머 감각은 사람을 매력적으로 만든다. 즉, 가끔 생각나게 한다. 그리고 자신이 쓴 문장이 좋은 문장인지, 나쁜 문장인지 판단할 수 있는 사람. 물론 이는 똑똑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게다가 그런 사람은 대부분 자신을 사랑하고, 경험상 민구홍 매뉴팩처링에도 호의적이다. 그리고 예의바른 사람. 그런 사람만 회사의 고객으로 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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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구홍 매뉴팩처링의 공식 웹사이트는 정말 근사합니다. 그런데 제 컴퓨터에서는 접속이 느릴 때가 있어요. 간헐적으로요. 왜 그럴까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드림호스트를 사용하는데, 싸구려 플랜인지라 한국에서는 조금 느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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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자주 앉아 있던 자리는 어디였나요? 작업실 책상, 단골 카페, 공원 벤치 등…
날개집 안쪽 방의 제 자리와 이리카페일 거예요. 날개집에서 7시쯤 퇴근하면 날개집 친구들과 이리카페에 가서 새벽 늦게까지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눴어요. 지금 아내가 된 여자친구와는 정처없이 걸어다니기도 했고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남산에 자주 갔어요. 자주 길을 잃곤 했는데, 어떻게든 내려오기만 하면 되니 두렵지는 않았어요.
스물다섯 살의 저는 별 생각없이 지냈고, 어쩌면 그 열린 몸과 마음 덕에 많은 것을 경험했습니다. 특히 좋은 사람을 많이 많났죠. 그때의 저는 지금도 제 안에 있고, 16년이 지난 뒤에도 저는 여전히 그때처럼 모든 게 별 게 아니라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냅니다. 여담으로, 지금 일본 출장 중인데, 새벽에 일어나 이 답변을 쓰는 호텔 로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별 게 아닌 하루가 쌓여서 결국 나다운 시간을 만들더라고요. 스물다섯 살의 제게, 그리고 지금 스물다섯 살의 현지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계획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제가 오늘 새벽에 일어날 계획이 없었던 것처럼 어차피 계획대로 되지 않으니까. 그게 스물다섯 살이니까. 그게 삶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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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가장 즐거웠던 순간을 되돌아 본다면?
민구홍 매뉴팩처링과 민구홍 개인으로 나뉠 수 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가장 즐거운 순간은 2018년 구글에 이어 배달의민족과 어깨를 나란히 했을 때다. 2021년 한글날을 맞아 배달의민족, 티슈오피스와 ‘을지로체’의 세 번째 버전인 ‘을지로오래오래체’를 소개하는 몇 가지 웹사이트를 만들었는데, 첫 화면에서 을지로체로 쓰인 ‘민구홍 매뉴팩처링 × 배달의민족’이라는 문구를 마주한 순간, 잠시뿐이었지만,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 온 세상을 굽어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처럼 누군가의 명성에 기대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소개할 때만큼 짜릿한 순간도 드물다. 한편, 민구홍 개인에게 가장 즐거운 순간은 생각건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킬 수 있으므로 밝히기 곤란할 것 같다. 아쉽지만 나와 당사자 둘만의 추억 속에 놓는 편이 좋겠다. 독자 여러분께 양해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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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펜실베이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Pennsylvania)에서 열린 한 콘퍼런스 자리에서 미국의 시인이자 아방가르드 작품을 아카이빙해 소개하는 「우부웹」(UbuWeb)의 운영자 케네스 골드스미스(Kenneth Goldsmith)는 말했다. “무엇이 인터넷상에 없다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If it doesn’t exist on the Internet, it doesn’t exist.)”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인터넷이 현실과 조금 더 가까워지거나 다른 차원에서 현실을 대체할 예정이다. 이 점이 회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넓게는 인터넷을, 좁게는 웹을 사랑한다. 웹은 상대적으로 적은 노동력으로 제품을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이자 접근하기 쉬우면서 유용뿐 아니라 무엇보다 많은 사람이 잠들기 전에 마주할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 이후에는 기술 지원에 관한 문의를 많이 받는 편인데, 대가가 합리적이고 여유만 있다면 기꺼이 응하는 편이다.

최근에는 뉴욕의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인 워크숍스(Wkshps)와 제11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티저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행사명은 『하루하루 탈출한다』(One Escape at a Time)였는데, 2020년 9월에 열릴 예정이었다가 메인 웹사이트 작업 도중 내년 가을로 미뤄지고 말았다. 이제껏 현실과 깔끔하게 유리된 듯 보였던 미디어 아트도 현실과 완전히 분리될 수는 없는 듯하다. 예정된 여러 행사가 취소되거나 지연되는 소식을 마주하면, 이제껏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여겨온, 사람이 모이는 일의 경제적인 위력을 실감한다.

아예 온라인에 기반을 둔 레프트 갤러리(Left Gallery)나 DDDD처럼 조금 더 작지만 시류에 영리하게 영합하는 전시 모델도 있다. 특히 네덜란드의 미술가 하름 판 덴 도르펠(Harm van den Dorpel)이 2015년에 설립한 레프트 갤러리는 작품을 열람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작품의 소스 코드를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등으로 구입할 수 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임시로 소속돼 있기도 하다.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미술가 돈선필의 개인전 『초상권』(Portrait Fist)을 위해 만든 영상 「자기소개」(自己紹介)에서는 25여 분 동안 ‘얼굴’이 자신을 소개한다. 돈선필은 자타가 공인하는 피규어(フィギュア) 오타쿠다. 그가 쓴 대본대로 목소리를 녹음하고, 그가 웹에서 긁어모은 얼굴에 관한 ‘짤방’들에 심취하다 보니 결과물은 자연스럽게 TV 도쿄(テレビ東京)에서 방영하는 교양 프로그램 같은 형식을 띠게 됐다. 이에 관해 조금 더 알고 싶다면 『한국예술종합학교신문』에 실린 김얼터의 「나를 나로 만드는 것」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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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이전에 콘텐츠에 대한 태도가 재미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웹사이트가 있나요?
얼마 전 프루트풀 스쿨과 계원예술대학교에서 열린 특강에서도 같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답변은 한결같아요.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 경이 만든 일반에 공개된 최초의 웹사이트예요. 웹을 소개하는 웹사이트 속 콘텐츠는 공들여 번역하고 싶을 만큼 우아하고 실용적이에요. 게다가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무리 없이 작동하죠. 흰색 배경, 검은색 글자, 밑줄이 그어진 파란색 링크 같은 기본 스타일이 적용돼 있는데. 이 웹사이트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추구하는 바를 여실히 드러냅니다.

최초의 웹사이트만큼은 아니지만 일본의 배우 아베 히로시(阿部寛)의 공식 웹사이트도 좋아해요. 『릿터』 24호에도 이와 관련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1996년 무렵 팬이 만든 웹사이트를 배우가 공식 웹사이트로 삼으면서 지금까지 당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죠. 얼핏 웹 기술에 갓 입문한 사람이 만든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도 최신 정보가 업데이트돼요. 배우의 과거 사진, 에세이 등 쉽게 접하기 어려운 정보도 싣고 있고요. 한 웹사이트가 25년여 동안 같은 스타일을 유지하는 데는 여전히 구형 해치백을 몬다는 배우의 취향도 어느 정도 작용했겠죠?
앞서 소개한 두 웹사이트는 그동안 쌓인 시간 덕에 설명하기 어려운 아우라가 느껴집니다. 콘텐츠가 디자인을 장악하는 증거죠. 장영혜 중공업이나 양혜규 선생님의 웹사이트 또한 비슷한 맥락에 있습니다. 콘텐츠가 아름답다면 스타일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모든 경우에 적용할 수는 없겠지만, 많은 경우 그렇게 적용할 수 있게끔 국면을 편집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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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를 중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민구홍 매뉴팩처링 공식 웹사이트의 일관된 형식으로 미루어 내가 느끼기에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형식주의자에 가깝다.
물론 형식도 중요하다. 하지만 콘텐츠가 한 뼘 정도는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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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청담동의 COS 매장 3층에 마련된 프로젝트 스페이스에서 발표한 「보기」(더 북 소사이어티·김영나 기획)는 빨강 버튼을 누를 때마다 무작위로 조합된 경고나 행운의 메시지를 대형 스크린에 출력하는 제품이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것 가운데 가장 섬뜩한 메시지가 있다면?



귀하는 / 유니클로에서 / 느닷없이 / 친척 어른에게 / 귀하의 직업을 / 설명하게 될 것입니다. / 축하드립니다.

하지만 가장 섬뜩했던 건 메시지보다 음악가 김윤기의 오프닝 공연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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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견지하는 모토가 있다면?
보안관님, 피트 마텔 씬데요, 음, 전화 돌려드릴게요. 빨간색 의자 옆 테이블에 놓인 전화기로요. 벽에 붙은 빨간색 의자요. 테이블 위엔 램프가 있고요. 그 왜, 전에 우리가 저쪽 구석에서 옮긴 램프 있잖아요. 전화기는 갈색 말고, 검은색이요!
1990년대를 풍미한 미국 드라마 「트윈 픽스」(Twin Peaks)의 등장인물 루시 모런(Lucy Moran)의 역사적인 첫 대사다. 이는 「새로운 질서」의 모토이기도 하다. 보안관 사무실에서 비서로 일하는 루시가 보안관에게 전화를 돌려주는 모습에서 드러나는 것은 어떤 대상(여기서는 전화기)에 대한 편집증적인 집중이다. 내게 그 대상은 이따금 아무리 우스꽝스러워 보일지라도 무엇보다 나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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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전시를 위한 기술은 얼마나 더 발전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온갖 기술로 책 장 넘기는 효과를 재현하려 한 초창기 전자책을 떠올려보자. 잠깐의 신기함뿐이었다. AR(Augmented Reality), VR(Virtual Reality) 같은 기술이 등장했지만, 웹 기술을 선도하는 구글마저도 온라인 전시 웹사이트인 ‘구글 아트 & 컬처’(Google Art & Culture)에서 제안한 건 작품을 극단적으로 확대하는 기술이었다.

구글 아트 & 컬처. 작품을 극단적으로 확대해 붓질 흔적까지 살펴볼 수 있지만…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거친 웹사이트는 소스 코드만 들춰보면 누구나 따라 할 수 있을 만큼 기술적으로 아주 단순하다. 기술은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중요한 까닭이다. 선입견이겠지만, 기술이나 시각적 효과를 지나치게 뽐내는 웹사이트는 콘텐츠에 대한 의심부터 품게 된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콘텐츠가 부실할 때 마지막으로 택하는 전략이었으니까. 무턱대고 하이 패션으로 치장하는 느낌이다. 게다가 몇 가지 효과 때문에 로딩 시간이 느리기까지 하면 최악이다. 개인적으로는 심심해 보이지만 들여다볼수록 어딘가 익살스럽거나 괴팍한 구석이 있는 웹사이트를 좋아한다. 물론 일을 할 때 개인적인 취향을 고집하지는 않지만, 취향은 결과물에 자연스럽게 드러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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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결과물이 그저 읽히는 것뿐 아니라 실행까지 된다는 점이 매력적입니다. 컴퓨터 언어가 자연어와는 다른 차원에서 현실을 변화시키는 도구로 작동하는 거군요.
예컨대 코드를 통한 창작은 프로그래밍 언어의 문법과 구조를 이용해 시를 쓰는 ‘코드 시’(Code Poetry)처럼 새로운 형태의 문학을 제안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대니얼 홀든(Daniel Holden)이 C 언어로 쓴 시의 일부입니다. 얼핏 기계적으로 보이지만 너를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아름다운 의지를 드러내죠. 게다가 실행될 수 있고요.
for (;love;) { while(true) { me.love(you); } }이처럼 코드는 기능적 도구를 넘어 감정과 사상을 표현하는 새로운 언어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웹사이트를 만드는 일은 그저 기술적 작업이 아니라 0과 1만으로 이뤄진 이진수의 세계에서 이뤄지는 고도의 창조적 행위입니다. T.S. 엘리엇(T.S. Eliot)은 이렇게 말했죠. “솜씨 좋은 작가는 언어를 훔치는 게 아니라 언어를 정복한다.” 웹사이트를 만드는 사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코드라는 언어를 정복하고, 그것으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내니까요.
이쯤에서 웹사이트를 바라보는 소박한 렌즈 하나를 제안하고 싶습니다. 웹사이트가 단순한 정보의 창고나 기능적 도구가 아닌 하나의 언어 체계로, 그 언어로 쓰인 작품으로, 감동과 영감을 주는 매체로, 기술과 예술이 만나는 접점으로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가 꿈꾼 바벨의 도서관처럼 우리는 이미 코드로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를 만들고 있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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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전시를 통해 관람객의 역할뿐 아니라 관람 방식 또한 달라지고 있다. 온라인 전시에서 관람객은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까?
웹사이트상에서 온라인 전시를 관람하는 일은 의식적으로는 차이가 있겠지만,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털 사이트나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 미디어 서비스를 열람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웹사이트가 전시라는 맥락에 놓이지만 관람객 입장에서는 템플릿만 바뀐 셈이다. 다소 귀찮은 일일 수 있지만, 관람객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클릭, 터치 스크롤 등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웹사이트에 마련된 전시장을 탐험해 볼 필요가 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 ‹무엇이든, 아무것도›, 웹사이트, 2018. 이 웹사이트는 마우스 커서의 이동, 클릭, 터치, 키보드 타자, 웹 브라우저 크기 조절, 대기 등 웹 브라우저상에서 일어나는 사용자의 거의 모든 행위를 파악해 금지한다. 사진 제공: 작가 전시를 관람하다 느닷없이 텅 빈 화면을 마주한다면 문제가 생겼다고 여기기보다 웹 브라우저에 내장된 ‘웹 조사기(Web Inspector)’를 활용해볼 필요도 있겠다. 뜻밖에 제작자가 숨겨놓은 메시지를 발견하게 될지 모르니까.

‘웹 조사기’로 살펴본 시청각 랩 웹사이트. 웹 브라우저에 기본적으로 내장된 웹 조사기를 활성화하면 웹사이트의 구조뿐 아니라 제작 방식을 살펴볼 수 있는 건 물론이고, 제작자가 코드에 숨겨놓은 메시지를 발견하게 될지 모른다. -
웹사이트를 만들 때 반드시 지키는 민구홍 매뉴팩처링만의 원칙 같은 게 있는가?
좋은 질문이다. 국립국어원에서 정한 한글 맞춤법과 외래어 표기법을 되도록 준수하려 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여러 프로젝트를 경험해 본 바로는 기본에 집중하다 보면 결과물은 자연스럽게 도출되기도 한다. 그리고 웹 브라우저의 기본 글자 크기가 16픽셀인 점에 의문을 품지 않는다. 나머지는 작업마다 달라지는 세칙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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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구홍 매뉴팩처링에 점점 빠져들고 있어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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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기술을 거친 크고 작은 웹사이트를 가지런히 정렬해 열람하고 싶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