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2015년 이래 진행한 길고 짧은 인터뷰를 꼼꼼히 정리한 뒤 다시 무작위로 늘어놓은 「자주 하는 질문」을 통해 회사 또는 운영자에 관한 궁금증이 모쪼록 해소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단, 질문의 시기에 따라 현재와 다른 사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편, 질문의 어조에 따라 언급한 인물에 대한 존칭을 생략하기도 했습니다. 「자주 하는 질문」을 섭렵한 뒤에도 궁금증이 도무지 해소되지 않는다면 [email protected] 앞으로 소상히 말씀해주세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인정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단, 답장은 이메일 대신 언젠가 「자주 하는 질문」에서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졸업생입니다. 웹사이트를 만들 때 글자를 독특하게 구사해본 경험이 있나요?
명확한 이유가 있다면 글자를 독특하게 구사할 필요가 있겠지만, 그런 상황 자체를 함부로 만들지 않는 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태도를 견지하다보면 아무래도 콘텐츠에 더 집중하게 되거든요. 웹사이트가 하나의 이야기라면, 어떻게 이야기할지보다 무엇을 이야기할지를 먼저 생각하는 거죠. 실제로 가로세로 1픽셀 정방형만큼은 그게 더 중요하고요. 얼마 전에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학생분들을 대상으로 강연할 기회가 있었는데, 여기서 『웹사이트 탄소 계산기』(Website Carbon Calculator)라는 웹사이트를 소개했어요. 이 웹사이트는 여러 웹사이트가 발생시키는 탄소를 수치화해 보여주는데, 이를 통해 웹이 결국 화석 연료에 기반하고, 웹사이트가 무거울수록 환경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상기할 수 있습니다. 2020년 연평균 이산화탄소 농도가 413.2 ppm으로, 산업화 이전(278.0 ppm)보다 48퍼센트 정도 증가했다고 해요. 이미지, 영상, 애니메이션 등 시각적인 부분에 집중할수록 웹사이트가 무거워지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제가 극단적인 환경론자는 아니지만, 웹사이트를 가볍게 만드는 게 조금이나마 인류에 공헌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싶어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제품 「장영혜 중공업 귀중」은 제게 사랑스러운 연애편지처럼 보입니다. 혹시 이렇게 불러도 될지 모르겠지만 ‘연애편지’ 연작을 전개해볼 계획은 없나요?
돌이켜보니 「너에게」와 「한국 코카-콜라 귀중」이 있었습니다. 여전히 답장을 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앞으로 “‘연애편지’ 연작”이라 부르겠습니다.



미국 뉴욕의 시적 연산 학교(School for Poetic Computation, SFPC)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공부하셨죠. 서울과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미술가 최태윤 씨를 주축으로 시인, 프로그래머, 디자이너, 수학자, 발명가 등이 뜻을 모아 설립한 학교로 들었는데, 거기서 무엇을 배우셨나요?
5년여 동안 일한 안그라픽스를 그만둘 무렵 우연히 알게 된 학교예요. 일단 ‘시’와 ‘연산’이라는 서로 어울리지 않을 법한 어휘를 조합한 학교 이름과 평소 좋아하던 시인인 케네스 골드스미스(Kenneth Goldsmith)가 출강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아쉽게도 제가 있던 시기에는 출강하지 않았지만요.) 처음에는 단순히 컴퓨터를 통해 뭔가 이상한 걸 해보는 학교로 생각했는데, 실제로 마주한 학교는 생각보다 훨씬 더 이상했죠.
학교에서는 예술과 컴퓨터에 관한 개념적이고 실용적인 수업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진행됐어요. 뉴욕은 지하철이 24시간 운영되기 때문이었을까요? 특강이나 워크숍이 있는 날은 밤 늦게 끝나기도 했죠. 주말에도 학교에서 생활하면서 일반 학교에서 몇 학기 동안 익히고 고민할 내용을 짧은 시간 안에 소화해야 했죠. 특히 시인이자 MIT의 디지털 미디어 부문 교수인 닉 먼포트(Nick Monfort)의 수업에 열심히 참여했습니다. 학생들도 화이트 해커, 형사학 전공 대학원생, 건축가, 무용수, 일렉트로닉 음악가 등 다양했어요. 예컨대 제 코딩 컨벤션 선생님은 프랑스에서 제빵사로 일하던 친구였죠. 며칠 전에도 연락했는데 요즘에는 터키식 디저트인 카이막(Kaymak)을 만드는 데 심취해 있더군요.
단, 이 학교는 기술을 처음부터 하나하나 가르쳐주는 친절한 학교는 아니에요. 적어도 컴퓨터 언어에 익숙해야 수업을 따라가는 데 무리가 없죠. 선생님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힌트를 제공하면, 학생은 이를 이정표 삼아 인터넷을 헤매면서 자신의 욕망과 기술적 한계를 인식하고 우회 전략을 고안해야 했어요. 기술 자체가 아니라 어떤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지가 중요하기 때문이죠.
학교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제가 배운 시를 쓰는 방법과 프로그래밍은 비슷한 점이 많아요. 시적 대상(입력)과 시(출력), 그 사이에 시적 인식(함수)가 있다는 점에서요. 이런 관계를 시적 연산 학교에 다니면서 더욱 분명하게 느꼈습니다. 그곳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이 아니라 ‘좁은 의미의 문학과 언어학’을 배웠다고 말하는 걸 좋아하는 이유예요.
한편, 이때는 뉴욕을 중심으로 갈수록 복잡해져가는 웹 기술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는 움직임이 시작되던 때였어요. 동시에 그래픽 디자이너 사이에서 ‘콘텐츠 중심 웹’에 관한 논의도 활발해졌고요. 늘 생각해오던 바를 이미 실천하는 친구들과 교유하면서 저도 용기를 얻었죠. 자신을 ‘가장 친한 미국인 친구’로 소개해달라는 로럴 슐스트(Laurel Schwulst)도 이때 만난 친구예요. 저와 비슷한 또래로, 앞서 소개한 움직임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죠.
올해 나만 알고 싶을 정도로 특별한 발견의 순간은?
누구보다 웹을 사랑한다고 자부하지만, 1년 넘게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실수로 스마트폰 설정을 초기화하면서 자동 로그인 기능이 해제된 까닭이다. 사실 터치 몇 번만으로 다시 암호를 찾아 로그인하면 그만인데, 잠시나마 주저하게 되는 데는 분명한 까닭이 있다. 그 아름다운 공간을 해매는 동안 느끼는 행복만큼 그 반대편에서 피어오르는 감정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잊히는 건 아닐까?’ 심각한 우려와 달리 사회성을 유지하는 데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전보다 자주, 어쩌면 더 깊이 사람과 만나고, 전화 통화를 하고, 문자 메시지와 이메일을 쓴 것 같다. 굳이 깜찍한 하트 아이콘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국가를 초월해 연결될 사람은 연결되고, 알아야 할 소식은 알게 된다. 나머지는 간단하고 자연스럽게 굳이 연결되지 않아도 그만인 사람, 알지 않아도 그만인 소식이 된다. 나와 내 곁만 살피기에도 시간은 부족하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공식 웹사이트는 정말 근사합니다. 그런데 제 컴퓨터에서는 접속이 느릴 때가 있어요. 간헐적으로요. 왜 그럴까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드림호스트를 사용하는데, 싸구려 플랜인지라 한국에서는 조금 느립니다.
제품 제작 과정을 한마디로 설명해주신다면요?
편집을 통해 문제, 특히 제품 주문자의 요구 사항을 해결하는 과정입니다. 제품 제작 방식은 ‘매뉴팩처링’이라는 용어에서 어느 정도 드러납니다. ‘매뉴팩처링’은 본디 원재료를 인력이나 기계력 등으로 가공해 제품을 생산하는 제조업을 뜻하지만, 야구에서는 도루나 진루타, 희생타 등 안타가 아닌 방법으로 득점하는 기술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한편, 제품 제작 과정은 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큰 틀은 비슷합니다. 제품 주문이 들어오면 제작해 납품하는 식입니다. 물론 자체적으로 제품을 제작하기도 합니다.
2021년 현재 HTML의 표준 명세인 HTML5에서 사용되는 태그 113가지나 됩니다. 이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태그는 무엇인가요?
<a> 태그입니다. 콘텐츠에 하이퍼링크를 만들어 다른 콘텐츠와 잇는 태그로, 웹을 웹답게 만드는, 웹의 산소 같은 존재죠. 인쇄물과 웹사이트를 구별짓는 대표적인 태그이기도 해요. 인쇄물에서 각주, 방주, 미주에 불과했던 콘텐츠는 <a> 태그 덕에 웹에서 새로운 지위를 획득했으니까요. a는 ‘닻(anchor)’를 뜻해요. 여러 해석이 있지만, 저는 웹사이트에서 하이퍼링크를 클릭했을 때 그곳에 닻을 내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고 생각해요.
웹사이트를 만들 때 기술적인 한계는 어떻게 극복하나요?
최신 기술을 재빨리 익혀 도입하는 쪽과 드릴이나 호미로 밑바닥을 확장하며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기술을 탐구하는 쪽이 있다면,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후자에 속합니다. 아무래도 워크룸에 있다 보니 그래픽 디자인에서 타이포그래피나 개념에 집중하는 방법론에 익숙하기도 하고,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구글이나 네이버가 아닌 만큼 기술적인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기도 하죠. 이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선의 방법을 고안하려 노력합니다. 여러 프로젝트를 경험해본 바로는 대부분의 문제가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기술만으로 무리 없이 해결되는 편이었어요. 물론 여기에는 콘텐츠를 제대로 다뤄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죠.
민구홍 씨와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계획이란 건 언제나 수정될 수 있지만, 일단 2021년 매달 더 북 소사이어티(The Book Society) 웹사이트에 회사를 소개하는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위고에서 출간될 『아무튼, HTML』이라는 책을 쓰고 있고요. 그래픽 디자이너 겸 교육자 데이비드 라인퍼트(David Reinfurt)의 『A New Program for Graphic Design』을 번역하고 있습니다. 번역은 생각보다 길어질 것 같아요.


올해는 타이포잔치, 옵/신페스티벌, 서울레코드페어, 서울국제도서전 같이 미술계나 디자인계에 굵직한 행사가 적지 않은데, 여러 방식으로 기술을 지원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몇몇 기업에서 함께 추억을 쌓아보자는 연락을 받았어요. 재미있게도 탐정 사무소 두 곳에서도 연락을 받았죠. 거의 동시에요. 한편,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친정이라 할 수 있는 시청각에서 회사를 소개하는 행사를 준비하고 있고요. 그저 많은 사랑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별자리가 물고기 자리인 사람은 감정에 쉽게 휩쓸린다. 당신은 내가 아는 사람 가운데 가장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최근에 관심이 가거나 눈에 띄는 창작자가 있는가?
잘 모르겠다.
예술, 패션, 음악 등 다양한 문화 내에서 일어난 사건 가운데 인상 깊었던 것을 토대로 VISLA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면?
바야흐로 2022년이다. 게다가 당신은 2023년이 도래하기 전에 파산하거나 세상을 떠날지 모른다. 이쯤이면 그전에 어떤 방식으로든 민구홍 매뉴팩처링과 함께 추억을 쌓아볼 마음이 일지 않는가?
당신에게 최정호란 누구인가?
여러모로 고마운 사람이다. 최정호에 관한 책을 만들어서 월급을 받았고, 최정호가 만든 서체로 사람들에게 「(웃음)」도 드렸다.
최정호를 언제 어떻게 처음 접했나?
기억이 잘 안 난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최정호에 관한 책을 만든 적이 있는데, 그전까지 피상적으로만 알던 최정호를 아무래도 그때 남들보다 조금 더 자세히 알게 된 것 같다. 책 초판이 출간된 게 2014년이니 어쨌든 4년이 채 안 된 셈이다.
기술적인 한계는 어떻게 극복하는가?
웹을 둘러싼 기술은 너무나도 빠르게 발전하므로 하나하나 따라가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이 순간에도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어떤 기술은 폐기된다.
최신 기술을 재빨리 익혀 도입하는 쪽과 드릴이나 호미로 밑바닥을 확장하며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기술을 탐구하는 쪽이 있다면,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후자에 속한다. HTML을 위시한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기술은 앞으로 폐기될 가능성이 적은 까닭이다. 또한, 아무래도 워크룸에 기생하다 보니 그래픽 디자인에서 타이포그래피나 개념에 집중하는 방법론에 익숙하기도 하고,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구글이나 네이버가 아닌 만큼 기술적인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선의 방법을 고안하려 노력한다. 그런데 여러 프로젝트를 경험해본 바로는 대부분의 문제가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기술만으로 무리 없이 해결되는 편이었다. 한계가 명확할수록 특정 부위가 과도하게 커진 근육처럼 재미있는 결과물이 나오기도 한다. 물론 여기에는 사용할 콘텐츠를 제대로 다뤄야 한다는, 즉 제대로 편집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는다.
민구홍 매뉴팩처링 공식 웹사이트 속도가 제법 빨라진 듯합니다.
정확합니다. 2015년부터 호스팅 업체로 미국의 드림호스트(Dreamhost)를 사용하고 있는데, 미국 서부의 오레곤에 있던 데이터 센터를 한국과 더 가까운 싱가포르로 옮기고, 여기에 클라우드플레어(Cloudflare)의 네임서버까지 사용했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 결과 200밀리초에 가까웠던 핑 속도가 100밀리초 미만으로 감소했습니다.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입니다. 미래에 가장 하고픈 작업은?
잘 모르겠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관한 소논문을 써볼까 합니다. 추천해주실 만한 자료가 있을까요?

『레인보 셔벗』(Rainbow Sherbet, 작업실유령·아카이브 봄, 2019)을 추천합니다. 뒤표지에 실린 그래픽 디자인 듀오 슬기와 민의 추천사를 덧붙입니다.
『레인보 셔벗』은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회사를 소개하는 데 일조하는 책이다. 이런 식의 소개문 몇 줄이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일종의 트롱프뢰유(trompe-l’œil)기도 하지만, 책 속에 따로 머리말이 없으니 이 자리를 활용하면 좋을 듯합니다. 다만, 분량은 160자 정도로 제한해 주세요.
민구홍 매뉴팩처링 공식 웹사이트는 5년 동안 같은 모습을 유지합니다. 특별한 까닭이 있나요?
일반에 공개된 세계 최초의 웹사이트가 30여 년 동안 같은 모습을 유지하는 까닭과 다르지 않습니다.
작업할 때 참고하는 웹사이트가 있는가? 추천할 만한 웹사이트는?
시간 관계상 1,000여 개에 육박하는 즐겨찾기 목록을 공개하는 건 어려울 것 같다. 잘 만들어진 웹사이트를 참고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과물이 너무나도 매력적이면 콘텐츠와 무관하게 나도 모르게 따라 하게 된다.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아닌 콘텐츠를 어떻게 대하고 다뤘는지 따져보며 처음부터 작업 과정을 상상해본다. 순전히 자신의 행복을 위해 만든 웹사이트에 눈길이 간다. 특히, 네오시티(Neocities)나 FC2 웹에 자주 들른다. 그런 웹사이트는 시각적으로 거칠기도 하지만, 공식에 얽매이지 않고, 위악적으로 공식을 배반하기도 한다. 그들의 콘텐츠와 그들이 콘텐츠를 다루는 방식은 잠시 잊었던 뭔가를 다시 떠올리게 하고, 동시에 CMS나 자바스크립트를 위시한 새로운 기술을 잊게 한다. 나아가 그런 웹사이트를 만든 사람과 친구가 되고 싶어지기도 한다.

한편, 최신 웹 기술을 참고하는 데는 모질라 재단(Mozilla Foundation)에서 운영하는 ‘MDN 웹 문서(MDN Web Docs)’만한 곳이 없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공식 웹사이트는 왜 이런 모양인가?
2015년 느닷없이 설립된 이래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소개’라는 행위에 이따금 우스꽝스러워 보일 만큼 섬세하고 강박적으로 천착해왔다. (회사의 첫번째 제품은 열세 번째 ‘시청각 문서’로 발표한 「회사 소개」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모든 생산 활동의 기저에 어떤 대상, 나아가 생산 주체, 즉 자신을 소개하고픈 욕망이 자리한다고 믿는 까닭이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회사’라는 형식을 전유해 이 믿음을 의식하고 양식화한 결과물로, 회사의 모든 활동은 결국 ‘소개’로 수렴한다. 회사의 공식 웹사이트는 설립과 거의 동시에 만들어졌다. 모름지기 회사라면 일단 그럴듯한 공식 웹사이트를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몇 가지 메뉴 가운데 「자주 하는 질문」은 지금까지 진행한 인터뷰를 뒤섞은 공간이다. 이곳은 회사의 포트폴리오를 얼마간 대신하기도 하는데, 이를 통해 회사가 구사하는 전략은 글쓰기에서 비롯한다는 점을 드러내려 했다. 디자인은 회사가 웹을 사랑하는 만큼 최초의 웹사이트 스타일을 본받았다. 어떤 대상에 시간이 쌓이다 보면 디자인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아우라가 풍긴다. 최초의 웹사이트 스타일을 본받아 회사가 답습하려 하는 바는 사실 이 아우라다.
‘그래픽 디자인 교육’ 특집인 만큼 민구홍 님이 수학한 시적 연산 학교에 관해 묻고 싶습니다. 시적 연산 학교에 가기로 결심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학교에 기대하는 바는 무엇이었는지, 민구홍 님은 어떤 학생이었는지, 나아가 기대와 현실의 차이가 있었는지 알려주세요.
안그라픽스에서 일한 지 5년째 되던 해였어요.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부터 우연히 홍익대학교 안상수 선생님 연구실(일명 ‘날개집’)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자연스럽게 안그라픽스에 취업한 뒤 사실 쉬어본 적이 없었죠. 휴식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일하는 게 지루해지기도 했고요. 이런 와중에 우연히 미국 뉴욕의 시적 연산 학교(School for Poetic Computataion, SFPC)에서 여름 학기 학생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했죠. 관심이 생긴 건 순전히 학교 이름 때문이었어요. 서로 어울리지 않을 법한 어휘인 ‘시적’과 ‘연산’이 어우러진 점이 근사했죠. 학교 이름이 대학교에서 문학(시)을 공부하고, 꼬마 때부터 컴퓨터를 좋아한 제 모습과 얼마간 포개지기도 했고요. 학교 웹사이트를 둘러보며 조금 이상한 학교라 생각했어요. “우리의 모토는 다음과 같습니다. 더 많은 시, 더 적은 데모.” 갸우뚱한 동시에 호기심이 생겼죠. 평소에 좋아하던 미국의 시인이자 우부웹(UbuWeb)의 운영자인 케네스 골드스미스(Kenneth Goldsmith)가 출강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고요. 그를 만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작 가보니 제 생각보다 훨씬 이상했어요. 시적 연산 학교는 2013년 미국 뉴욕에 설립된 대안 예술 학교입니다. 소수의 학생과 교수진이 긴밀히 협력해 예술을 중심으로 코드, 디자인, 하드웨어, 이론이 교차하는 지점을 탐구하죠. 모든 것을 처음부터 하나하나 알려주는 ‘친절한’ 학교는 아니었어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유도하며, 일주일 내내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업이 이어졌죠. 일반 대학교와 견주면 2년 정도에 해당하는 과정일 거예요. 케네스 골드스미스는 만나지 못했습니다. 2023년 현재 시적 연산 학교의 수업은 온라인으로 운영됩니다.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입니다. 시적 연산 학교에서의 경험담이 궁금합니다.
안그라픽스가 지루해질 무렵 우연히 발견했어요. 저는 이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인데, ‘시’(poetic)와 ‘연산’(computation)을 조합한 학교 이름이 근사했습니다. 제 관심사를 잘 정리한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만큼 제 이력서의 학력에 이 학교가 들어가면 어울리겠다고 생각했죠.
잘 다니던 회사를 갑자기 그만두고 미국에 다녀오겠다는 말에 어머니는 아연실색하셨죠. 결혼도 한 상태였거든요. 나중에 알고 보니 경쟁률이 꽤 높았는데, 사실 어떻게 합격했는지 모르겠어요. 일종의 대안 학교였고, 3개월 과정이었지만,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계속 수업이 있었고, 수업이 끝나면 밤 늦게까지 이런 외부 특강 같은 행사가 거의 매일 열렸어요. 다른 지역이나 다른 나라에 살던 친구들이 많았던 터라 주말에도 딱히 할 일이 없어서 대부분 학교에 있었고요.
오랜만에 학생이 되니 무엇보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가장 큰 수확은 사람이었어요. 친구를 많이 사귀었습니다. 최태윤, 강이룬, 소원영 등 당시 뉴욕의 미술 및 디자인계에서 활동하던 한국인뿐 아니라 예전부터 이메일로만 연락하던 로럴 슐스트(Laurel Schwulst)라는 친구를 만났고, 그 덕에 데이비드 라인퍼트(David Reinfurt), 존 프로벤처, 민디 서 같은 또 다른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고요. 최근에 출간된 책을 번역하거나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강연할 수 있었던 건 이 친구들 덕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뉴욕에 친구가 많다는 건 뉴욕에 놀러갔을 때 저렴한 비용으로 잘 수 있는 공간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스물다섯 살의 구홍에게 위기는 어떤 모습이었나요? 언제 위기를 느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스물다섯 살 때는 지금으로부터 16년 전인 2009년입니다. 2007년 여름에 입대했으니, 전역하고 바로 복학한 시점일 거예요. 우연한 기회에 홍익대학교 안상수 선생님을 만나 선생님 연구실인 ‘날개집’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던 때입니다. 사실 위기를 인식하려면 대개 어떤 정답을 기준으로 삼고, 자신의 지금을 가늠하고, 그 둘 사이에서 불안감을 감지해야 할 텐데, 저는 별 생각 없이 지냈던 것 같아요. (그렇듯하게 포장하면, 어떤 정답이란 게 늘 의심스러웠죠.) 별 생각이 없었으니 위기라는 것도 없었고, 심지어 별 생각이 없는 것조차 불안하지 않았죠.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위기라는 건 누군가 만들어놓은 언어의 틀, 언어의 심연에 발을 담글 때 나도 모르게 젖어드는 것 같아요.
실내 클라이밍 애호가입니다. 저 같은 사람이 이용할 만한 제품이 있을까요?

물론 있습니다. BEM에서 판매 중인 「『레인보 셔벗』 포스터 속 인물 티셔츠」 어떨까요? 패션 브랜드 예스아이씨 디렉터 가운데 한 분이 클라이밍장에서 즐겨 입는다고 합니다. 같은 차림으로 함께 운동하면 몸뿐 아니라 마음 또한 두 배로 건강해지지 않을까요?

같은 티셔츠처럼 보이지만, 전혀 다른 효과를 발휘하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배경 화면 티셔츠 또한 고려해보시기 바랍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는 웹 기술에 기반을 둔 제품이 적지 않습니다. 이 제품들은 일반적인 판매 방식과 달리 사용자가 원하는 만큼 기부하는 형태로, 즉 거의 무료와 다름없이 배포되는데요. 이는 개발자로서 익숙한 협업 문화나 오픈 소스 정신에 기인한 것인가요? 또는 ‘기생’이라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운영 방식이나 홍보 전략, 또는 기술적 한계 같은 까닭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웹은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회사를 소개하기 위해 활용하는 여러 매체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래서인지 이따금 웹 디자인 에이전시로 오해받곤 하죠.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웹을 주로 이용하는 까닭은 다루기 쉽고, 파급력이 클 뿐 아니라 무엇보다 많은 사람이 잠들기 직전에 마주하는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공유’라는 웹의 철학에 집중해 웹의 탈중앙화를 실천하는 비커 브라우저(Beaker Browser) 같은 프로젝트가 등장했지만, 여전히 특정 서버에 세 드는 게 일반적인 웹의 특성이 회사의 주요한 생존 전략인 ‘기생’과 맞물리기도 하고요. 하지만 회사를 소개한다는 소기의 목적만 달성한다면 사실 매체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기회만 주어진다면 전통적인 매체인 신문이나 잡지, TV나 건물의 전광판, 회화나 조각 등도 활용하고 싶습니다. 미술관이나 갤러리 등에서 회사를 소개하는 것 또한 꺼리지 않고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는 여전히 잘 알 수 없지만, 그동안 크고 작은 여러 일에 관여해왔다. 무엇보다 일을 시작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바가 있다면?
해결사를 자처하지 않는다. 회의 자리에서는 마치 모든 문제를 능수능란하게 해결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런 기대감도 없지 않고. 그 유혹에 빠지면, 즉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어느 순간부터는 주체할 수 없는 고통이 부풀어오른다. 고객이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요긴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회사의 한계와 특히 잘하는 것을 고객과 나누고, 서로 이해하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종이책의 미래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가 생각하는 종이책의 귀중한 유산은 종이 위, 즉 제한된 평면에서 콘텐츠를 정리하고 소개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에는 필사가, 편집자, 인쇄인, 디자이너, 인지과학자 등 수많은 전문가의 성공과 실패가 쌓여 있다. 그 덕에 우리는 콘텐츠와 눈 사이에 따른 적절한 글자 크기를, 그에 따른 적절한 글줄 길이를, 그에 따른 적절한 글줄 수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이 점을 생각하면 웹사이트뿐 아니라 콘텐츠가 자리한 수많은 매체에서 이 방식이 재현되거나 활용되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다. 누군가에게 종이 책의 죽음은 당연한 미래일지 모르지만, 종이 책에서 비롯한 이 방식만큼은 변함없으리라.
「새로운 질서」에서 ‘선생님’으로 불리기를 꺼린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2018~21년)이나 홍익대학교(2022년)와 어깨동무하기도 하는 만큼 「새로운 질서」는 누군가에게 또 다른 학교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물론 어느 정도 정해진 커리큘럼이 있고, 제가 뭔가 알려드리는 자리지만, 그 과정에서 저 또한 참여자(일명 ‘새로운 질서의 친구들’)에게 배우는 바가 적지 않거든요. 학교임에도 선생과 학생의 구분이 흐릿한 학교인 셈이죠. 그래서 ‘선생님’이나 ‘교수님’ 같은 직함을 빼고 서로를 그저 이름으로 부릅니다. ‘님’까지 빼고 “슬기, 안녕하세요? 어떻게 지내셨어요?”처럼요. 누군가와 관계를 시작할 때는 호칭을 정하는 일이 중요하죠. 특정한 호칭을 부르는 순간 특정한 관계에 놓입니다. 일종의 위계가 만들어지죠. 이런 위계는 효율적으로 의사소통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특히 「새로운 질서」에서는요.
웹사이트가 새로운 형태의 문학이 되는 거군요. 기존의 장르 구분을 무너뜨리고, 창작자와 수용자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면서요.
그 사실을 감지한 순간 자연스럽게 질문이 쏟아집니다. 어떻게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에서 의미 있는 경험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어떻게 사용자의 자유로운 탐험과 작가의 의도를 조화시킬 수 있을까?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는 『열린 예술작품』(Opera Aperta)에서 독자의 해석이 작품의 일부가 되는 ‘열린 텍스트’의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어쩌면 웹사이트는 이런 ‘열림’의 극단적 형태일지 모릅니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사용자와 상호작용하며,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유기체처럼요.

이 웹사이트는 가장 친한 미국인 친구 로럴 슐스트(Laurel Schwulst)를 위한 생일 선물입니다. “너 로럴 맞지?”라며 방문자가 로럴인지 계속 확인하는 이 웹사이트는 그의 생일인 3월 15일에 비로소 완성됩니다. 일차적으로는 로럴을 위한 웹사이트이지만, 반드시 로럴에게만 유용한 건 아닙니다. 즉, 로럴이 아닌 사람에게는 로럴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도구로 기능하죠.
웹사이트나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일, 나아가 코딩이 글쓰기와 다르지 않다고 밝혀왔다. 워드프로세서로 어떤 프로그램을 사용하는가?
글쓰기의 결과물이 일반적인 글이어야 한다면 iA 라이터를, 여기에 편집자 등과 협업해야 한다면 구글 문서를 사용한다. 웹사이트나 비디오게임, 구글 크롬 확장 프로그램 같이 일반적인 글일 필요가 없다면 서브라임 텍스트를 사용한다. 모두 별다른 설정 없이 글쓰기 자체에 집중할 수 있고, 가볍고 빠르게 작동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사정상 거절했지만, iA 라이터를 제작하는 iA로부터 프로그램의 한국어판을 위해 한국어에서 사용되는 진부한 표현을 조사해달라는 의뢰를 받기도 했다. 입력한 글에서 진부한 표현을 감지해 흐리게 표시하려는 의도였는데, 진부함은 진부함 나름대로 누구에게나 익숙하다는 점에서 실용적이다. 「자주 하는 질문」 속 문장 또한 뜯어보면 진부한 문장 구조로 이뤄져 있지 않은가? 게다가 진부함 덕에 낯섦이나 파격으로 받아들여질 법한 시도가 유의미해지기도 한다.
전염병 탓에 느닷없이 온라인 전시가 늘어났습니다. 전시 웹사이트를 디자인하는 작업은 어떻게 다를까요? 또 온라인 전시의 한계를 개선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온라인에 최적화한 디지털 작품이 아닌 이상 온라인 전시는 오프라인을 능가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VR이나 AR 같은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짐을 싸고 공항으로 향하는 경험부터 여행인 점을 생각하면 온라인에서는 오프라인의 비가시적인 경험이 삭제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저는, 특히 전시에서는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책장을 넘기는 효과를 재현하는 데 온갖 기술을 도입한 초창기 이북을 생각해보세요. 잠깐의 신기함뿐이었죠. 콘텐츠가 웹에 놓인다면 웹이라는 기술이 지닌 고유한 특성을 콘텐츠와 접목하는 게 중요합니다. 사실 쉬운 일은 아니죠. 할 수 있는 게 무궁무진하니까요.
웹사이트가 전통적인 인쇄 매체, 즉 포스터나 리플릿, 도록 같은 역할만 수행한다면 (즉, 마지막 단계에서 모든 것을 갈무리할 뿐이라면) 웹이 지닌 수많은 가능성을 포기하는 꼴이에요. 웹을 전시에 최대한 활용하려면 맨 앞에서 프로젝트를 시작해 전반을 이끄는 플랫폼으로 삼는 거예요. 웹사이트 안에서 모든 활동이 일어나고, 축적되고, 예상하지 못한 버그가 튀어나오고, 관객은 이런 상황을 실시간으로 관람하거나 참여하고, 그 자체로 자연스럽게 결과물이 드러나고, 하나의 경험을 생성하는 거죠. 이는 인쇄물의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 웹의 태생적 속성에서 비롯합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전염병 때문에 온라인 전시가 불가피해졌지만,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팬더믹 때문에 잠시 유행했다가 가라앉는 게 아닌, 웹 디자인이라는 새로운 영토를 찾은 것으로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더욱 파고들고 경작할 수 있는 분야가 되었으면 해요. 그리고 어색함 없이 그 자체로 작품으로서 인정받는 분위기까지 형성되면 더할 나위 없겠죠. 어쨌든 경험할 거리가 하나 더 늘어나는 셈이니까요.
웹사이트를 만들 때 견지해야 할 태도가 있을까?
‘조지 오웰(George Orwell)’이라는 필명으로 널리 알려진 영국의 소설가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ur Blair)는 「나는 왜 쓰는가」(Why I Write, 1946)에서 자신이, 나아가 작가가 글을 쓰는 동기를 네 가지로 정리했다. 『1984』(1949)를 발표하기 두 해 전인 1946년의 일이다.
이 네 가지 동기는 글쓰기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생산에 부합한다. 웹사이트를 만드는 사람은 어떤 단계에는 자연스럽게 디자이너나 마케터가 돼야 한다. 하지만 그 전에 작가(writer)가, 무엇보다 (순전한 이기심을 품은) 편집자가 돼야 한다. 이는 욕망을 발산하기 전에는 제약을 인식하고 제어해야 한다는 뜻이다. 소설가의 생각이 아무리 독창적이라도 올바른 문장을 사용하지 않으면, 즉 규약을 지키지 않는다면 독자와 의사소통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웹사이트를 만드는 데는 조금이라도 규칙을 위반하면 작동하지 않으니 말이다. 제약 속에서 틈을 발견하고 계속 벌려나가다 보면 제약은 또 다른 가능성이 된다. 웹 기술에 관한 최신 정보는 일차적으로 영어로 제공되는 만큼 영어 독해 실력도 중요하겠다.
앞서 웹사이트를 만드는 일은 인터넷이라는 식당의 메뉴판에 음식을 추가하는 일이라 말했다. 모든 음식이 한식 정찬처럼 성대할 필요는 없다. 꼭대기에 체리가 올라간 생크림 케이크나 레인보 셔벗도 좋다. 아주 단순하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해보는 경험이 중요하다. 그 경험이 다른 결과물을 완성하는 기준점이 되고, 완성하는 회수가 늘어날수록 기준점은 높아진다. 이 과정에서 마주하는 고민과 선택은 다른 작업과 분명 연동할 것이다.
이따금이기는 하지만,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회사인 만큼 제품을 출시하기도 한다. 2020년 현재 추천하고픈 제품이 있는가?

「바이러스 시뮬레이터」(Virus Simulator). 제품 속 세계에는 인간 열 명이 있다. 이 가운데 다섯 명은 약하고, 다섯 명은 강하다. 바이러스가 된 사용자는 약한 인간을 찾아내 감염시켜야 한다. 모든 인간을 감염시키면 세상은 조금 더 평화로워진다. 반대로 강한 인간을 감염시키려 하면 목숨을 조금씩 잃고, 제품은 다음과 같이 사용자의 안부를 묻는다. “건강 조심하세요.” “안녕하세요?” 인간과 바이러스의 관계를 뒤집어본 이 제품이 던지는 메시지는 인간 또한 또 다른 바이러스라는 게 아니라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 아닐까?
「슈프림 귀중」(Messrs. Supreme). 패션을 넘어 생활용품 영역까지 노리는 굴지의 브랜드 슈프림에 콜래보레이션 임무를 부여하는 온라인 시스템이다. 사용자가 입력한 임무는 슈프림 공식 이메일로 전달되고, 해당 웹사이트에 저장된다. 물론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슈프림 관계자 마음이다. 기본 임무는 다음과 같다.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캠벨 수프 회사(Campbell Soup Company)와 협업해 깡통 전화기를 발매하라.”
그리고 그밖의 제품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될 예정이었는데, 공공시설이 폐쇄된 지금으로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사실 지금 같은 상황에 사람이 물리적으로 모일 여지를 만드는 일이 윤리적으로 옳은지 생각하고 있다.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가?
똑똑한 사람. 아무래도 내가 그렇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일 테다. 똑똑한 사람은 유머 감각이 있고, 유머 감각은 사람을 매력적으로 만든다. 즉, 가끔 생각나게 한다. 그리고 자신이 쓴 문장이 좋은 문장인지, 나쁜 문장인지 판단할 수 있는 사람. 물론 이는 똑똑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게다가 그런 사람은 대부분 자신을 사랑하고, 경험상 민구홍 매뉴팩처링에도 호의적이다. 그리고 예의바른 사람. 그런 사람만 회사의 고객으로 삼고 싶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미술계를 돌아보는 전시를 기획하려 하는 큐레이터입니다. 온라인 전시를 위한 웹사이트를 구축하며 일부는 기획에도 참여한 적이 있다고 들었는데, 절적한 전시명이 있을까요?
많은 전시에서 자연스럽게 사용된 문장을 본받아 ‘별도의 오프닝은 없습니다’는 어떨까요?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졸업생입니다. 웹사이트상에서 이뤄지는 타이포그래피만의 특징이 있을까요?
2022년 초에 운 좋게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에 직접 가서 강연할 기회가 있었는데, 여기서 할머니, 딸, 손녀가 함께한 사진을 보여주며 웹사이트는 책의 자녀, 즉 진화한 종이 책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할머니가 종이 책이라면, 딸은 웹사이트고, 손녀는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볼 수 있는 또 다른 무엇이라고요. 웹사이트는 진화한 종이 책답게 지면보다 공간적인 제약이 덜한 편입니다. 제작 비용에 영향을 미치는 판형이나 쪽수 같은 개념이 흐릿하니까요. 제 경험상 지면용 타이포그래피를 위한 수치를 웹사이트에 그대로 적용하면 어딘가 조금 작고 좁고 빽빽한 느낌을 받습니다. 지면의 일반적인 본문 글자 크기인 10포인트를 픽셀로 환산하면 13.5픽셀에 가까운데, 저는 웹 브라우저상에서 기본으로 설정된 본문 글자 크기가 16픽셀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18픽셀이나 20픽셀 이상이 적절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고요. 글줄 사이 공간도 지면보다 조금 더 넉넉한 게 좋다고 생각해요. 글이 긴 경우 문단과 문단을 들여쓰기가 아닌, 한 줄 공백으로 구분하는 것도 그런 이유겠죠. 한편, 웹사이트는 발광하는 화면, 즉 RGB 색상으로 구현되는 만큼 흑백의 대비가 지면보다 큰 편이라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2021년, 꼭 마무리 짓고 싶은 일이 있다면?
VISLA와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컬래버레이션. 그리고 욕조 설치. 불과 몇 년 전 욕실을 리모델링하면서 호기롭게 욕조를 철거했는데,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는 일이 이렇게까지 어려워질 줄은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그의 핵심 측근을 제외하면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2021년의 트렌드 또는 문화 현상은?
지금까지 경험해본 바로는 이해할 수 없는 대상과 사랑에 빠지는 건 이따금 감행해볼 만한 일이다.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되리라는 것을 예감하더라도 몸과 마음을 그저 흐름에 맡겨보는 것이다. 2021년의 트렌드 가운데 특히 메타버스(Metaverse)와 NFT(Non-Fungible Token)는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고, 사실 이해하고픈 마음도 별로 일지 않지만, 분위기상 한동안 이야깃거리가 되리라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도 여기에 한 발 담글 수 있는 여지가 없을지 기회를 엿보고 있다.
일반적인 웹사이트는 정보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정리돼 있습니다. 반대로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선보이는 웹사이트는 정보가 파편화되거나 효과에 가려져 있거나, 또는 시간에 따라서 서서히 나타나기도 하는데요, 이런 형식을 취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마우스의 위치에 따라 효과가 변하는 인터랙티브 요소도 흥미롭습니다. 이런 디자인을 선보이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파격이란 건 익숙함이 있기에 성립할 수 있겠죠. 제 욕망 때문이라기보다는 그게 콘텐츠에 부합하는 방식이라는 생각. 디자인은 웹 초창기에 이미 존재했어요. 제게는 아주 평범한 모습이죠. 웹이라는 기술이 소개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었죠. 기술도 부족하고 시각적인 규칙도 성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결과물은 제각각이었어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기술을 거친 웹사이트들은 파격적인 시도라기보다는 잠시 잊힌 평범한 웹을 변주하거나 재해석한 결과에 가까워요.
슬기와 민의 최성민 선생님 권유로 미국의 전설적인 그래픽 디자이너 밥 길(Bob Gill)의 『이제껏 배운 그래픽 디자인 규칙은 다 잊어라. 이 책에 실린 것까지.』를 번역한 적이 있는데, 이 책에는 “흥미로운 말에는 시시한 그래픽이 필요하다. 시시한 말에는 흥미로운 그래픽이 필요하다.”라는 구절이 나와요. 말과 그래픽이 조응하는 데는 균형이 필요하다는 뜻이죠. 저는 그래픽보다 말이 흥미로운 걸 좋아해요. 그러다 보니 말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고민하는 데 시간을 쏟는 편입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거친 웹사이트들은 사실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기술을 응용한 결과예요. 코드만 보면 누구나 따라 할 수 있을 정도죠. 이것들이 파격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그래픽보다는 말 때문일 겁니다.
수차례 밝혀왔듯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웹 디자인 에이전시가 아닙니다. 저는 웹사이트를 디자인한다기보다 그저 제가 좋아하고 잘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고 편집한다고 생각해요. 그 결과물 가운데 하나가 웹사이트인 거죠. 그게 용케도 누군가의 욕망에 부합하는 거고요. 많지는 않지만 이런 방식을 사랑해주시는 고객들 덕에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지금까지 근근이 생존할 수 있었죠.
최정호체를 활용한 제품에 관해 설명해달라.
작년 말에 건국대학교 근처에 문을 연 ‘인덱스’라는 복합 공간에서 전시 『유용한 말』이 열렸다. 포스터 「(웃음)」은 그때 출품한 것이다. 일본어판 위키백과를 찾아보니 ‘(웃음)’은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 일본 의회의 속기사들이 상황을 함축하기 위해 만든 기호라고 하더라. 지금은 주로 인터뷰 지면에서 상황을 묘사하거나 분위기를 환기하는 데 사용하곤 하는데, 온갖 유용할 말이 모일 전시에 그런 ‘(웃음)’의 역할을 하는 작품도 있으면 제법 유용하겠다고 생각했다. 작품에 소괄호와 ‘웃음’이라는 낱말만 들어가는 만큼 서체를 고르는 게 중요했다. 평범하면서 약간 달라 보이는 서체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최정호체 시험판을 써볼 기회가 생겼다. 특히 괄호 모양이 예뻐 보여서 선택했다. 자매품인 동명의 자석도 있다. 전시와 비슷한 시기에 열린 제9회 언리미티드 에디션의 작업실유령 부스에서 제품을 산 분들에게 나눠드렸다. 「(웃음)」을 돈을 받고 팔기보다 그냥 드리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최정호는 웃음과는 거리가 먼, 오로지 글자만 바라보는, 진지한 삶을 산 사람이었던 것 같다.
‘100세 시대’를 맞아 3대째 이어온 요식업을 아들 내외에게 물려주고,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려 합니다. 일단 저희 식당 메뉴판을 다시 디자인해보고 있는데, 추천해주실 만한 책이 있을까요?

우선 그래픽 디자인 규칙을 배우셔야겠죠? 그 뒤 『이제껏 배운 그래픽 디자인 규칙은 다 잊어라. 이 책에 실린 것까지.』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책에 실린 규칙을 잊으실 수 있을 때까지요. 아침달의 블로그에 실린 소개를 참고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이 책에서 디자인 작업에서의 ‘문제 (재)설정’의 중요성을 피력한다. 우선 어떤 문제가 제대로 된 질문을 하는지, 아니라면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고 설정하는 게 어떤 문제에 대한 답을 내는 일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원칙에 부합하거나 위반하는 자신의 여러 작업을 소개한다. 문제 (재)설정이 디자인에서만 중요하겠는가? 아니다. 삶의 많은 부분에서, 특히 어떤 예술 분야에서든지 중요하다. 이는 우선 예술의 수신자-상대를 인지한다는 의미인 동시에 자신의 관점을 재고해보는 일이고, 자신만의 위트에 신선도를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과정이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어떤 대상에 기생할수밖에 없는 운명이라 공공연히 밝혀왔다. 운명을 거스를 생각은 추호도 없는가? 숙주를 옮길 계획은?
2016년부터 2021년 현재까지 기생하는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겸 출판사 워크룸은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최적의 숙주가 됐다. 평일 가운데 4일만 출근하고, 소정 근로 시간에 맡은 업무만 무리 없이 수행하면 출퇴근도 어느 정도 자유로운 편이다. 그 과정에서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일이 워크룸의 일이 되거나 그 반대가 되기도 하고, 처음부터 별 구분 없이 진행되기도 한다. 5년 동안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해한 결과다. 이런 상황을 받아들일 만한 숙주가 또 있을까? 최근에 부족하다고 느끼는 건 허먼 밀러 에어론 체어 또는 휴먼 스케일 프리덤과 민구홍 매뉴팩처링 간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