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구홍 매뉴팩처링

회사 소개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현대인을 위한 교양 강좌’를 표방하는 「새로운 질서」의 수강료를 반액 이상 지원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오전 10시와 오후 7시 전후에는 도착한 이메일에 답장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내빈 접대용 크레이프 밀가루 반죽에 아스피린(Aspirin)을 두 정 이상 첨가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주술용 모발과 약지 손톱을 매수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다비크』(Dabiq)를 신혼여행용 오디오북으로 변환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운영자가 사망하기 전에 ‘로럴 슐스트 매뉴팩처링(Laurel Schwuslt Manufacturing)’으로 사명을 변경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출입구가 없는 3.3제곱미터 공간에 갓 지은 공깃밥을 차리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아트존을 「민구홍 매뉴팩처링 와이파이 신호」로 채우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안그라픽스 랩(Ahn Graphics Lab, AG Lab) 화장실 이용자를 대상으로 세면기 물소리를 이용해 「루트비히 판 베토벤 교향곡 5번 다단조, 작품 번호 67」(The Symphony No. 5 in C minor of Ludwig van Beethoven, Op. 67)을 연주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족벌 경영을 조롱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호모포브 대상 생물학적 동등성 실험을 진행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안그라픽스 저술 및 편집 지침」을 준수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밑줄 문자(_)와 한글 붓글씨를 표구해 지하실을 장식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상임 고문과 한국어 담당 교열자, 산업 스파이를 고용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사행성 도박, 성매매, 무기 및 마약 거래 관련 웹사이트를 컨설팅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해결사를 자처하려는 유혹에 몰입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쿠데타 계획용 텔넷(Telnet) 기반 게시판을 운영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심장 근육 정지 수련 프로그램을 기획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방면 자유로 육교에 현수막을—이를테면 “중국인은 왜 파주로(為什麼中國人在坡州)”를 실크스크린 인쇄한—부착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운영자의 관심사를 원재료 삼아 생화학 무기와 도청 장비, 무엇보다 샤워 커튼을 제작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차기 HTML(HyperText Markup Language) 버전에 <cherry> 태그를 제안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청구서와 영수증을 세단해 깜짝 생일 파티에 살포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공식 웹사이트 홈페이지에 코나미 커맨드(Konami Command)를 은폐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강원도민의 세금으로 회사를 소개하는 행사를 개최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키릴 문자로 사명을 표기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야유회에 카니발 콥스(Cannibal Corpse)를 초빙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사후 온라인 기록 삭제와 배너 광고 클릭을 대행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어도비 플래시(Adobe Flash)와 인터넷 익스플로러(Internet Explorer)가 묻힌 방향으로 1분 이상 묵념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교육과 실습을 목적으로 인턴에게 중요도가 낮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업무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인테리어 디자인 사무소, 부동산 공인 중개 사무소를 표방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워크룸 전용 자동 도서 출고 시스템을 고안하는 데 장인정신을 발휘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문서철 정리용 비둘기를 사육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회사를 소개하는 행사 오프닝 리셉션에 래퍼와 DJ를 섭외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부동산 가격 폭락 대비용 지하 벙커를 설계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월간 『디자인』에 회사 설립 10주년을 기념하는 기생 지면을 기획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보도 자료에 야스미나 레자(Yasmina Reza)와 공자(孔子)를 언급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사훈으로 삼은 ‘(웃음)’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숫자 37에 영속성을 부여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거리에 버려진 농구공의 궤적을 추적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아쿠아포닉스(Aquaponics) 공법으로 식인 식물을 재배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명함 뒷면에 「출애굽기」를 인용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인공지능이 생성한 남성 목소리로 「회사 소개」를 재생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울프램 알파(Wolfram Alpha)로 사고 경위서의 문학성을 측정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관련한 괴담을 유포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독립 출판물 전문 서점, 예컨대 더 북 소사이어티(The Book Society)에 회계 자료 위지 지침을 유통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화장실에 선형대수학 참고서를 비치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비품실에 콘돔과 사후 피임약 자동판매기를 설치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닷어니언(.onion) 도메인을 보유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초등학생 대상 회사 홍보 영상에 모자이크를 삽입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특정 종교 단체용 인트라넷을 구축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펩시코 주식회사(PepsiCo, Inc.), 나아가 요시모토 흥업 홀딩스 주식회사(吉本興業株式会社)와 협업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이메일 아이디에 좌우명과 생년월일을 암시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이북오도청 도지사 사무실에 잠입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나스닥(NASDAQ)에 우회로 상장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저작권 표기에 저작권 기호(©)와 ‘copyright’를 병기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비트코인(Bitcoin)으로 후원금을 모금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깜찍한 하트 아이콘에 불확실한 미래를 의탁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민 산스를 회사 전용 글자체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주석과 주석에 관한 주석, 주석에 관한 주석에 관한 주석으로 구룡채성(九龍寨城) 탐사 보고서를 작성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등록 도메인 소녀(Parked Domain Girl)와 루시 모런(Lucy Moran)의 신상 정보를 조회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이메일의 ‘참조’와 ‘숨은 참조’ 기능을 활용해 정치를 일삼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사보에 마이크로소프트 엑셀(Microsoft Excel)의 정렬 기능으로 작성한 서정시를 연재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업무용 토시에 메스암페타민(Methamphetamine)을 보관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A.P.C. 토트백을 분해해 홍보용 수건으로 활용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회사를 소개할 수 있다면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회사 또는 회사의 제품을 전시하는 일 또한 꺼리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엔카(演歌) 형식을 차용해 목록을 편집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사업자 등록증을 폐업 신고서로 갈음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안인용 씨와 현시원 씨에게 세뱃돈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해변 백사장에 길고 딱딱한 물건으로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음각하지 않습니다.

민구홍이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설립한 까닭은?

나는 핸드메이드 웹을 소환한다. 오늘날의 웹을 향한 또 다른 저항으로서 ‘느림’과 ‘작음’을 제안하기 위해. 오늘날 웹은 다국적 기업, 독점 애플리케이션, 읽기 전용 기기, 검색 엔진 알고리즘, 콘텐츠 관리 시스템(Content Management System, CMS), 위지위그(WYSIWYG) 에디터, 디지털 퍼블리셔 등과 함께 상업화를 향한다. 이때 컴퓨터 언어를 다루는 일, 즉 코딩이 자기 주도적인 글쓰기인 점을 인식하고, 이를 통해 온라인 작품 또는 출판물로서 자신만의 웹사이트를 만들고, 관리하고, 유지하는 일이 느닷없이 급진적인 행위가 되고 있다. 오늘날 웹은 독점적이고, 약탈적이고, 음란한 공간이 되고 있다. 그럴수록 나는 웹을 더욱 시적이고, 비타협적으로 사용하는 데 전념하려 한다.

1세대 넷 아티스트 J.R. 카펜터(J.R. Carpenter)가 ‘핸드메이드 웹’(Handmade Web)을 주창한 2015년, 민구홍은 생각에 잠겼다. 슬기와 민과 워크룸 이후 ‘소규모’라는 접두어를 앞세운 스튜디오들이 등장하던 시절이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민구홍의 마음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의 소설처럼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졌다.

모든 소설에서 인간은 갈림길에서 하나를 선택하고 나머지는 버린다. 하지만 헤아리기조차 어려운 취팽의 책에서 그는 모든 길을 동시에 선택한다.

유년 시절부터 사랑해 마지않는 글쓰기와 웹의 힘에 기대 그들처럼 보란듯이 독립하고 싶었지만, 동시에 선뜻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자본과 용기가 부족한 탓이었다. 게다가 어깨너머로 살펴본, 독립하는 순간 맞닥뜨리게 될 세금 관련 업무 또한 피하고 싶었다. 이는 부러움이나 질투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2015년은 국제연합(United Nations, UN)에서 지정한 ‘세계 빛의 해’이기도 한 만큼 그에게는 자신을 빛으로 인도할 세 번째 길이 필요했다.

당시 민구홍이 근무하던 안그라픽스에는 “한국 그래픽 디자인의 역사를 새롭게 만들어가기 위한 크리에이티브 집단”답게 소정 근로 시간 가운데 일부를 개인 업무에 할애할 수 있는 제도가 있었다. “소년이여, 야망을 품어라!” 홋카이도 대학을 설립한 윌리엄 스미스 클라크(William Smith Clark)의 조언까지 떠올린 그는 이 제도를 이용해 ‘소규모’가 아닌 ‘대규모’를 지향하는 회사를 설립하기로 마음먹었다. 단, 독립하지 않고 자신의 근무지에 기생하며 숙주에 노동력과 얼마간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대신 근무지의 동산(책상, 컴퓨터, 와이파이, 커피 머신 등)과 부동산(업무 공간)을 마음껏 이용하는. 그는 이 방식이라면 자본과 용기가 부족하더라도 문제가 없으리라, 나아가 회사를 취미 삼아, 즉 이윤 창출에 대한 고민 없이 순전히 자신의 행복을 위해 운영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 결정은 자연스럽게 또 다른 결정, 즉 회사명을 결정하는 일로 이어졌다. 일찍이 작품은 제목만으로도 완성될 수 있다고 믿어온 그에게 회사명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 석 자만 홀로 내세우고 싶지는 않았다. 평소 부끄러움이 많은 만큼 회사명과 자신 사이에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했다. 그렇다고 특정 단어나 단어와 단어를 조합한 결과물에 의미를 부여한 회사명은 나중에 겸연쩍어질 가능성이 컸다. 오랜 고민 끝에 그는 자신의 이름 뒤에 ‘매뉴팩처링’이라는 다섯 글자를 붙이기로 마음먹었다. 그 순간 모든 고민이 해결된 듯 기분이 산뜻해졌다. 이 결정에는 평소 그가 ‘장영혜 중공업‘과 ‘안은미 컴퍼니’의 작품을 흠모하고, 신촌 기찻길에 자리한 ‘김진환 제과점’의 갓 구운 식빵을 즐겨 먹은 것도 한몫했을 터였다.

그에게 익숙한 ‘손을 통해 사용하기에 적합한 형태로 물질을 변환하다.’라는 뜻의 영어 동사 ‘manufacture’에서 유래한 ‘매뉴팩처링’(manufacturing)은 일반적으로 ‘원재료를 인력이나 기계력 등으로 가공해 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산업’을 뜻한다. 한편, 야구에서는 도루나 진루타, 희생타 등을 이용해 안타가 아닌 방법으로 어떻게든 득점하는 기술을 가리키기도 한다. 민구홍은 글쓰기와 웹을 이용한 결과물, 결국 자신의 손으로 만든 제품이 사용자의 웹 브라우저를 통해 스스로 대량 생산되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렇게 ‘민구홍 매뉴팩처링’이라는, 민구홍 자신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동시에 실용주의와 기회주의가 어우러진 회사명이 만들어졌다.

그 뒤 회사명의 한글 표기 원칙(‘민구홍 매뉴팩처링’은 띄어쓰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붙여쓰기하는 것을 허용한다.)를 시작으로, 로마자 표기 원칙(‘Min Guhong Manufacturing’ can be abbreviated as ‘Min Guhong Mfg.’), 나아가 가나 표기 원칙, 아브자디야 아라비야 표기 원칙 등을 하나씩 마련하던 즈음 민구홍은 전시 공간 시청각의 공동 운영자이자 이제는 하이브로 자리를 옮긴 안인용에게 ‘시청각 문서’의 열세 번째 지면을 제공하고 싶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시청각 문서’는 미술 및 디자인계 안팎의 생산자가 글을 기고하는 기획이었고, 열두 번째 문서는 SF 소설가 듀나(DJUNA)의 작품이었다.

회사를 설립하고, 회사명과 문자별 표기 원칙까지 마련했으니 이제는 회사를 소개할 차례였다. 민구홍은 구글 스프레드시트를 이용해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하지 않는 일을 서른일곱 가지로 정리했고, 같은 해 10월 16일, 작품의 목적을 고스란히 반영한 「회사 소개」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A.P.C. 토트백을 분해해 홍보용 수건으로 활용하지 않습니다. (…)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거리에 버려진 농구공의 궤적을 추적하지 않습니다. (…)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독립 출판물 전문 서점에 회계 자료 위조 지침을 유통하지 않습니다. (…)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화장실에 선형대수학 참고서를 비치하지 않습니다.

이는, 지금도 어느 정도 그렇지만, 회사를 설립한 뒤에도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던 까닭이었다. 여기에는 회사라면 모름지기 하는 일보다 하지 않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별 근거 없는 신념도 어느 정도 작용했다. 그렇게 「회사 소개」와 함께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컨베이어 벨트는 민구홍이 사랑해 마지않는 글쓰기와 웹의 힘을 동력 삼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뒤 공식 웹사이트이메일 주소를 만들고, 루나 엠버시(Lunar Embassy)를 통해 달에 1에이커(약 1,224평)에 달하는 부동산까지 구입한 민구홍 매뉴팩처링에는 아름다운 추억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2016년 민구홍이 미국 뉴욕의 시적 연산 학교(School for Poetic Computation, SFPC)에서 수학하고 귀국한 뒤 숙주인 안그라픽스와 워크룸 덕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아트선재센터, 일민미술관, 아르코미술관, 구글, 배달의민족, thisisneverthat, 두루두루 아티스트 컴퍼니,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 타이포잔치, 서울레코드페어, 박민희, 정서영, 돈선필, 김뉘연과 전용완, 이한범 등 국내외 여러 기관, 기업, 단체, 개인 등과 함께 크고 작은 웹사이트를 만들고, 구글 폰트의 공식적인 친구가 되고, 몇 차례 단독전을 열거나 크고 작은 단체전에 참여하고, 아카이브 봄과 작업실유령의 도움으로 회사를 소개하는 『레인보 셔벗』을 출간하고, ‘동신사’, ‘전산 시스템’ 등 친구들을 위한 회사명을 만들고, 2016년부터 민구홍이 시작한 「새로운 질서」를 지원하고, 송예환, 김민지, 김재연, 백창인 등 서울, 네덜란드, 일본 등에서 찾아온 인턴이 거쳐가고… 이 과정에서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국면에 따라 이리저리 구부러졌다. 「회사 소개」에서 회사에서 하는 일을 규정하지 않은 까닭이었다. 단, 한 가지 꼿꼿한 바가 있다면 모든 일이 결국 「회사 소개」로, 즉 무엇을 해야 할지 여전히 알 수 없는 채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소개하는 일로 수렴한다는 점이었다.

그 사이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숙주는 안그라픽스(2011–6)에서 워크룸(2016–22)으로, 그리고 다시 안그라픽스(2022–), 정확히는 안그라픽스 랩으로 바뀌었다. (한 번은 이름을 밝힐 수 없는 회사로부터 기꺼이 숙주가 되고 싶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받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업무가 확장해 숙주로 이어지는 등 회사와 숙주의 관계는 기생을 넘어 서로 양분을 주고받는 공생이 됐다. 이를 통해 민구홍은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특히 미술 및 디자인계에서 비즈니스의 또 다른 모델이 될 수 있음을 경험했다. 민구홍의 역할 또한 근무지에서는 기획자, 편집자, 디자이너, 프로그래머에서 디렉터로, 근무지 밖에서는 작가, 번역가, 홍익대학교 겸임 교수,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 부회장, VJ 등으로 바뀌었다. 이 또한 어느 정도는 민구홍 매뉴팩처링 덕일 테다. 즉, 그에게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어떻게 일하고, 나아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한 가지 답이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오랜 친구인 미디어버스의 대표 임경용은 언젠가 민구홍과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민구홍이 오직 자신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편집한 결과물, 또는 그를 위한 편집 지침인지 모른다.

2025년 현재 민구홍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안그라픽스 랩에서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통합 웹사이트, 대한항공 디지털 모닝캄 디렉팅을 비롯해 크고 작은 일에 관여하고, 금요일은 「새로운 질서」를 통해 자신만큼 웹을 사랑하는 친구들과 만난다. 미디어버스에서 곧 출간될 『새로운 질서』 확장판, 폰트 디자이너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사이러스 하이스미스(Cyrus Highsmith)와 함께 한글 그림책 작업에도 열심이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여전히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2025년이면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어느덧 설립 10주년을 맞이한다. 그리고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꾸준히 업데이트되는 「회사 소개」에는 다음과 같은 항목이 추가될 예정이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월간 『디자인』에 회사 설립 10주년을 기념하는 기생 지면을 기획하지 않습니다.

한편,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사훈은 다름 아닌 ‘(웃음)’으로, 그에 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신제품 「(웃음)」은 제목 그대로 ‘(웃음)’을 담은 다목적 포스터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의회의 속기사들이 처음 고안했다는 ‘(웃음)’[(笑)]은 오늘날 대담이나 인터뷰 등의 기록에서 발언자나 주위의 반응을 간단히 묘사하는 데, 또는 지나치게 진지한 말을 눅이는 데, 또는 말의 의미를 역전시키는 데 쓰이곤 한다. 이뿐일까. 더러 특정 문화에 심취한 이는 이를 통해 자신의 자폐성을 넌지시 드러내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웃음)’의 양상은 앞뒤 맥락에 따라 폭소나 미소, 조소나 냉소 등으로 달라진다. 말은 어떻게 유용성을 획득하는가. 어떤 말이 유용하다면, 이는 포스터라는 매체에서도 마찬가지인가. 질문이 품은 염원을 담아 「(웃음)」은 갖가지 ‘유용한 말’이 모이는 전시에서 ‘(웃음)’의 역할을 자임한다. 우아하게 디자인된 최정호체의 소괄호 속 ‘웃음’이 어떤 이에게는 시답잖은 헛웃음에 불과하더라도 아무러면 어떤가. “웃으면 복이 온다.”라는 옛말이 과학적으로까지 증명된 마당에. (웃음)


운영자 (겸 설립자)

참고로, 운영자 (겸 설립자) 민구홍은 2013년 이래 자신의 약력을 한 단어, 한 구절, 한 문장씩 갱신해왔다. 다음은 가장 최근 갱신된 약력이다.

1985년 3월 5일 출생. 다섯 살 무렵인 1989년 정식으로 몬테소리 교육을 받았다. 일곱 살 무렵인 1991년 매킨토시 LC로 처음 컴퓨터를 접하고, 열한 살 무렵인 1995년 사랑하는 친구를 위해 첫 번째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중앙대학교에서 문학과 언어학을, 미국 시적 연산 학교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하지만 ‘시적 연산’ 또는 ‘좁은 의미의 문학과 언어학’으로 부르기를 좋아한다.)을 공부했다. 안상수 선생 연구실 ‘날개집’을 거쳐 2010년부터 안그라픽스와 워크룸에서 13여 년 동안 편집자, 디자이너, 프로그래머 등으로 일하며 ‘16시’, ‘실용 총서’ 등을 기획하고, 크고 작은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2015년부터 1인 회사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운영하며 미술 및 디자인계 안팎에서 홀로 또는 기관, 기업, 단체, 개인 등과 여러 방식으로 회사를 소개하는 데 주력한다. 2016년부터 ‘현대인을 위한 교양 강좌’를 표방하는 「새로운 질서」에서 ‘실용적인 동시에 개념적인 글쓰기’의 관점으로 코딩을 이야기하며 웹으로 자신을 이야기하는 법을 가르친다. 지은 책으로 이 책을 비롯해 『한 시간 총서: 새로운 질서』(미디어버스, 2019)가, 옮긴 책으로 『인터넷에서 시간 낭비하기』(abb press, 2025), 『선물』(브와포레, 2025), 『새로운 그래픽 디자인 교육 과정』(작업실유령, 2024), 『연주회』(브와포레, 2024), 『개들도 우리와 똑같아요』(브와포레, 2024), 『세상은 무슨 색일까요?』(브와포레, 2023), 『이제껏 배운 그래픽 디자인 규칙은 다 잊어라. 이 책에 실린 것까지.』(작업실유령, 2017)가, 옮긴 글로 「핸드메이드 웹」(J.R. 카펜터, 2023)이 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관한 책으로는 『레인보 셔벗』(아카이브 봄·작업실유령, 2019)이 있다. 앞선 실천을 바탕으로 2022년 2월 22일부터 안그라픽스 랩(약칭 및 통칭 ‘AG 랩’)에서 디렉터로 일하며 ‘하이퍼링크’를 만든다. 한편, 2024년 느닷없이 두루두루 아티스트 컴퍼니의 친구, PIE의 공동 운영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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