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구홍 매뉴팩처링

민구홍 매뉴팩처링 운영 지침

2025

어떤 회사는 로고로 자신을 설명한다. 어떤 회사는 비전과 미션을 써넣고, 사훈을 걸고, 구성원을 나열하고, 주주총회를 연다. 그러나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그 무엇으로도 스스로를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하나의 질문을 반복한다. “이 회사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질문에 확정적인 대답을 내리지 않는 방식으로만 존재한다. 『민구홍 매뉴팩처링 운영 지침』은 그 질문의 결과이자 출발점이다. 지침이라 불리지만, 이 책은 회사의 운영 방식을 설명하지 않는다. 운영이라는 행위 자체가 ‘운’과 ‘영’ 사이의 간극처럼 유예된다고 믿는 회사를 서술하는 장치에 가깝다.

책은 느닷없이 등장했다. 2025년,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설립 10주년을 맞았을 때, 운영자는 별다른 기념을 계획하지 않았다. 매년 그러했듯, 무엇을 기념한다는 감정에는 둔감하고, 수치에는 무심했다. 그러던 중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디자인과 대학원생들에게서 한 통의 이메일이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전시를 열고 싶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느닷없는 제안에 둔할 만큼 민감하기에, 기꺼이 응답했다. 누군가 대신 기념해준다면, 그것은 더 이상 기념이 아닌 일상의 연장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전시와 함께, 아무런 계획 없이, 그러나 전시의 일부로서, 이 책 『민구홍 매뉴팩처링 운영 지침』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총 스물일곱 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회사 개요」, 「기생과 공생」, 「제품과 작품」, 「디자인」, 「제약」, 「사외 이사」, 「계획을 위한 계획」 등. 항목의 이름은 사무적이지만, 그 서술은 문학에 가깝다. 시와 수필, 기술서와 자기소개서 사이 어딘가에서 흔들리는 이 항목들은 지침을 지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자체로 하나의 제품이며, 회사를 구성하는 문장이다. 이 회사는 규범을 따르기보다 농담을 고집하고, 매뉴얼을 완성하기보다 수정의 과정을 기록한다. “지침이 필요 없다면, 그 자체로 지침이 될 수 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그렇게 말한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웹에서 자랐다. 문턱 낮은 플랫폼에서 태어나고, 하이퍼링크를 타고 확산되며, 브라우저 속에서 실현된다. 그렇기에 이 지침서도 두 언어, 두 웹 브라우저, 두 세계 사이에 쓰였다. 한국어와 영어는 서로를 번역하지만, 그보다 더 자주 서로를 비껴간다. 같은 문장을 두 번 다르게 말하는 과정에서 회사의 정체는 고정되지 않고 확장된다. 번역은 설명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소개이고, 이중 언어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택한 다성적인 자기 기술이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는 사무실도 로고도 없다. 이 회사는 존재의 증거로 물리적 공간이 아닌, 말의 반복을 택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입니다.”라는 문장을 말할 때마다 회사는 다시 태어나고, “지금은 회사가 아닙니다.”라고 말할 때마다 회사는 무너진다. 로고 대신 반복되는 이름이 있고, 매뉴얼 대신 열리는 웹 브라우저가 있으며, 사훈 대신 인쇄된 ‘(웃음)’이 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 운영 지침』은 그 반복된 이름들과 형식들을 정리한 하나의 아카이브이자, 동시에 여전히 진행 중인 시나리오다.

책은 구체적인 실천보다는 구체적인 실패를 다룬다. 수프림과 협업해 문장 기반의 패션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상상, 민음사에서 『회사 소개』라는 제목의 시집을 출간하겠다는 포부, 한 알의 체리로만 출입 가능한 호텔을 열겠다는 계획 등. 이 모든 항목들은 추진되지 않았고, 추진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말한다. “계획은 실현되기보다 말해지는 과정 속에서 윤리가 되고, 회사의 언어가 된다.” 실현되지 않기에 더 정직한 계획. 이것이 이 책의 또 다른 동기다.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전시는 회사를 소개하는 전시가 아니라, ‘회사 소개’라는 말을 소개하는 전시였다. 전시 안에는 편지, 계약서, 시, 웹사이트 스크린샷, 웹 기반 제품들, 그리고 이 책이 함께 놓였다. 각기 다른 형식의 제품들은 서로를 가리키며 말한다. “이것이 민구홍 매뉴팩처링입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 운영 지침』은 그 가운데에서 관객에게 가장 조용히 말 거는 책이다. 말하는 순간만 존재하는 회사. 그 말하기의 총체로 구성된 하나의 지침.

이 책은 회사의 시작이자 끝이다. 동시에 회사를 멈추지 않게 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말로만 운영되는 회사, 실현되지 않을 계획으로만 연명하는 회사, 조용한 농담을 사훈처럼 끌어안는 회사.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오늘도 그 지침을 업데이트하며 스스로를 다시 소개한다. 언젠가 폐업할 날이 온다면, 마지막 업데이트는 이렇게 쓰일 것이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폐업을 선언한 직후, 지침을 하나 더 추가합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 운영 지침』. 이 책은 회사의 매뉴얼이 아니라, 회사를 꿈꾸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 꿈은 아직 완료되지 않았다.


느닷없는 회사, 느닷없는 전시, 느닷없는 지침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민구홍이 오직 자신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편집한 결과물, 또는 그를 위한 편집 지침인지 모른다. —임경용(미디어버스 대표)

계획하지 않은 기념, 덩달아 써버린 지침

2025년,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어느덧 회사 설립 10주년을 맞았다. 하지만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숫자에 민감할 만큼 둔하다. 몇 년째인지, 몇 번째인지, 몇 번째 제품인지조차 중요하지 않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늘 그렇듯 ‘굳이…’ 또는 ‘굳이?’의 태도로 모든 기념을 무시해왔다. 따라서 축하도, 파티도, 심지어 보도 자료조차 계획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support@minguhongmfg.com 앞으로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디자인과 대학원생들의 이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 민구홍 매뉴팩처링과 회사의 제품을 주제로 전시를 열고 싶습니다.” 느닷없는 제안이었다. 그리고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느닷없는 제안에 둔할 만큼 민감하다. 운영자 민구홍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애초에 기념하지 않기로 마음 먹은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10주년을 누군가 대신 기념해준다면 (또는 기념해준다고 믿으면) 전혀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디자인과에서 열리는 전시는 느닷없이 민구홍 매뉴팩처링 설립 10주년 기념 전시가 됐고, 이 전시와 함께 덩달아, 그리고 느닷없이 『민구홍 매뉴팩처링 운영 지침』이 출간됐다.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았지만, 무엇이든 계획처럼 보이게 된 순간이었다.

지침이지만 따르지 않아도 되는 (또는 따를 필요가 없는)

『민구홍 매뉴팩처링 운영 지침』은 지침서를 가장한 문학 작품이다. (또는 그렇게 보인다.) 규칙도 없고, 따라야 할 절차도 없다. 시와 소설, 픽션과 논픽션 사이에서 이 책은 묻는다. “정말 지침이 필요한가?” 그리고 스스로 대답한다. “지침이 필요 없다면, 그 자체로 하나의 지침이 될 수 있다.“ 이 책은 회사를 운영하는 방법을 전시하지 않는다. 대신 ‘회사를 어떻게 소개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반복한다. 말하는 순간 회사가 되고, 말하지 않으면 회사가 아닌 상태로 돌아가는 것. 이 책의 지침은 고정된 규범이 아닌 스스로를 말하고, 다시 말하고, 이따금 잊어버리는 과정을 기록한 결과물이다. 따라서 『민구홍 매뉴팩처링 운영 지침』은 완결되지 않기 위해 쓰인 지침이다. 어제의 문장이 오늘 수정되고, 오늘의 농담이 내일은 철학이 된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경험해보지 못한 누군가에게 이 책은 실용적인 회사 운영 매뉴얼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 계속해서 실패하고 유예되는 ‘회사 소개’다.

두 언어로 말하는 하나의 회사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2015년 설립부터 웹상에서 자라났다. 국경도, 시간도, 형식도 없이 그저 자유로운 공간에서 자신을 소개해왔다. 이 지침 또한 자연스럽게 한국어와 영어라는 두 언어로 쓰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번역의 정확성보다 두 언어가 서로를 비추고, 어긋나고, 다르게 울리는 틈이다. 한국어가 지닌 여백과 리듬, 영어가 만들어내는 어조와 간결함이 교차하며, 민구홍 매뉴팩처링이라는 회사를 두 가지 리듬으로 말하게 한다. 이중 언어 구성은 형식적 선택이 아닌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지난 10년 동안 실천해온 회사를 소개하는 방식이다. 언제나 하나를 두 가지 이상으로 말하고, 스스로를 반복하며 다르게 드러내는 것. 따라서 『민구홍 매뉴팩처링 운영 지침』은 그 실험의 또 다른 프로토타입이다.

사무실도 로고도 없이 반복되는 이름과 문장으로

민구홍 매뉴팩처링에는 눈에 보이는 상징이 없다. 로고는 없고, 전용 글자체도 없으며, 사훈은 ‘(웃음)’이다. 대신 반복되는 이름, 그리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문장이 있다. 이 회사의 제품은 웹사이트이기도 하고, 단행본이기도 하며, 때로는 계획되지 않은 계획이나 시작되지 않은 업무이기도 하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무엇을 만들었는지가 아닌 어떻게 말했는지, 그리고 그 말이 어떻게 남았는지가 중요하다. 『민구홍 매뉴팩처링 운영 지침』은 「민구홍이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설립한 까닭은?」을 시작으로 「회사 개요」, 「기생과 공생」, 「무작위를 위한 작위」, 「계획을 위한 계획」, 「지침에 관한 지침」 등 스물일곱 가지 항목으로 이뤄져 있다. 각 항목은 엄격한 규율이 아닌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태도와 어조를 드러낸다. 회사가 스스로를 말하는 방식, 실패를 기록하는 방식, 그리고 농담처럼 스쳐 지나가는 방식.

실현되지 않기에 더 정직한 계획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계획은 반드시 실현될 필요가 없다. 아니, 오히려 실현되지 않는 계획이야말로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가장 잘 설명하는 장치다. 『민구홍 매뉴팩처링 운영 지침』의 마지막 항목 가운데 하나인 「계획을 위한 계획」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등장한다. 수프림(Supreme)과 함께 문장 기반 패션 브랜드를 론칭할 계획, 민음사에서 『회사 소개』라는 제목의 시집을 출간할 계획, 대한항공 전용기를 마련하고, 체리 한 알로만 출입 가능한 호텔을 운영할 계획, 심지어 로럴 슐스트나 인턴 백창인에게 회사를 인계할 계획까지. 모든 계획은 일정도 없고, 예산도 없으며, 추진 전략도 없다. 그저 상상되고, 말해지고, 반복되는 것만으로 존재한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게 계획은 ‘언젠가 할 일’이 아니라, 언젠가 하지 않을 수도 있는 가능성이다. 계획은 이행되기보다 말해지는 과정 속에서 윤리가 되고, 회사의 언어가 된다. 『민구홍 매뉴팩처링 운영 지침』 또한 어쩌면 실현되지 않을 수 있었던 계획이었다. 하지만 느닷없이, 그리고 덩달아 세상에 등장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오늘도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실현할 생각은 잠시 미뤄둔 채.

전시와 지침, 서로를 소개하는 구조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디자인과에서 열리는 전시는 그저 회사나 회사의 제품을 소개하는 전시가 아니다. 오히려 ‘회사 소개’라는 개념을 소개하는 전시라 말하는 편이 옳다. 전시에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디자인과 귀중」, 「민음사 귀중」 같은 느닷없는 연애편지를 포함한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제품과 이 책 『민구홍 매뉴팩처링 운영 지침』이 함께 놓인다. 전시와 책, 회사와 지침, 공간과 언어가 서로를 비추고 소개하는 구조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지난 10년 동안 집요하게 반복해온 실험의 축소판이다. 기념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지만 기꺼이 기념하고, 계획하지 않은 일을 계획처럼 수행하는 것.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가장 민구홍 매뉴팩처링다운 방식으로 10주년을 맞이하는 순간이다.

말하는 순간 존재하는 회사

『민구홍 매뉴팩처링 운영 지침』은 책을 넘어 하나의 회사가 스스로를 어떻게 유지하고, 흔들리고, 다시 서술하는지 보여주는 서사적 장치다. 천천히 책을 읽다 보면 독자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대관절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사무실도, 로고도, 숫자도 아닐 수 있다. 어쩌면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말하는 순간에만 존재하는 회사일지 모른다. 그리고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오늘도 조용히 미소 짓는다. ‘(웃음)’과 흡사한 분위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