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구홍 매뉴팩처링

폰트 조사기

2025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폰트는 그저 글자의 모음이 아닙니다. PDF 파일처럼 수많은 데이터가 정교하게 결합된 구조체이며, 글리프(문자 도형) 하나하나를 구성하는 정밀한 정보의 집합체입니다. 폰트에는 수백, 수천 개의 글리프, 수십 가지의 오픈타입 기능, 그리고 수많은 메타데이터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보지 못할 뿐 글자 속에는 기술과 언어, 디자인, 역사까지 다층적으로 얽혀 있죠. 「폰트 조사기」(Font Inspector)는 이 복잡한 구조체를 웹상에서 해부하고 들여다볼 수 있는 실험 도구입니다.

[「폰트 조사기」는 AG 타이포그라피연구소 웹사이트 리뉴얼과 AG 폰트 클라우드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본격적으로 임하기 전, 웹 브라우저 환경에서 폰트 데이터를 어디까지 제어하고 시각화할 수 있는지 탐색해본 결과물입니다. 동시에 HTML, CSS, 자바스크립트 등 기본적인 웹 기술만으로 폰트 파일의 구조를 파악하고, 시각적으로 표현해보려는 시도이기도 했습니다. 요컨대 ‘폰트를 웹에서 해부해볼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작고 진지한 답변입니다.

「폰트 조사기」에서는 컴퓨터에 저장된 폰트 파일을 업로드해 폰트 이름, 제작자, 버전, 라이선스 정보 등 메타데이터를 비롯해 폰트에 탑재된 글리프를 모두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폰트가 지원하는 문자 범위를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죠. 한편, 리가처, 대체 문자, 위치 조정 등 폰트가 지원하는 오픈타입(OpenType) 기능과 변수 기능을 샘플 텍스트에서 테스트해볼 수 있고요. 이 모든 작업은 브라우저에서 실시간으로 이뤄집니다. 폰트라는 복합 데이터를 직접 조작하고 실험할 수 있는 드문 기회죠. 아쉽게도 「다국어 타이포그래피 도우미」와 마찬가지로 랩톱 또는 데스크톱 환경에서만 실행됩니다. 모바일 환경에서는 폰트 파일 접근이 제한적인 까닭이죠. 그뿐입니다.


「폰트 조사기」는 웹 기술을 통해 폰트를 보다 투명하게 이해하고, 직접 다뤄볼 수 있는 가능성을 실험한 결과물이자 AG 랩이 지향하는 개발 철학(“작고, 단순하고, 느닷없고, 끊임없이!”)을 담은 작은 걸음이기도 합니다. 타이포그래피를 다루는 많은 도구는 무겁고, 복잡하고, 닫혀 있습니다. 하지만 「폰트 조사기」는 작고, 조용히 열려 있으며, 누구나 접근 가능한 형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폰트는 그 자체로 하나의 운영체제이기도 합니다. 언어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모듈이며, 글자 하나가 아니라 ‘언어 체계 전체’를 다룰 수 있어야 완성됩니다. 「폰트 조사기」를 통해 저는 타이포그래피를 조금 더 열려 있고, 조금 더 손에 잡히는 대상으로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감지했습니다. 앞으로 “작고, 단순하고, 느닷없고, 끊임없이!” 소개될 다른 도구들과 함께 「폰트 조사기」는 그 작은 진화의 예고편인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