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길의 『선물』 독자를 위한 선물. 민구홍은 『선물』 덕에 또 다른 선물을 받았다.
옮긴이의 글
이 책 『선물』(The Present)은 『연주회』(The Concert), 『개들도 우리와 똑같아요』(Dogs Are Just Like Us), 『세상은 무슨 색일까요?』(What Colour is Your World?)에 이어 브와포레에서 소개하는 밥 길(Bob Gill)의 또 다른 그림책입니다. 이 책의 원서 또한 이탈리아의 출판사 겸 미술관인 코라이니 에디지오니(Corraini Edizioni)에서 출간했죠.
이 책이 처음 출간된 2010년은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전 세계를 휩쓸고, 디지털 시대가 본격화하던 시기입니다. 새로운 전자 기기가 출시될 때마다 매장 앞에는 긴 줄이 이어지고, 소셜 미디어에서 ‘언박싱’(unboxing) 영상이 인기를 끌던 그때, 이 책은 물질이 아닌 상상력과 나눔의 가치를 전합니다.
밥 길의 작품 세계에서 상상력은 글과 그림을 아우르는 중요한 주제입니다. 자유분방한 선과 색으로 이뤄진 그의 일러스트레이션과 간결하고 위트 넘치는 문장은 우리를 늘 익숙한 동시에 생각지 못한 세계로 이끕니다. 이런 특징은 이 책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생일을 2주 앞둔 주인공 아서가 아빠의 옷장에서 발견한 상자를 바라보며 펼치는 상상의 나래는 우리를 어린 시절로 소환합니다.
이 책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상자를 마주한 아서의 상상이 그저 자신의 욕망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케이크를 상상할 때는 생일 파티의 즐거움을, 돛단배를 상상할 때는 연못에서의 모험을, 배구공을 상상할 때는 친구들과의 어울림을 함께 떠올리죠. 이처럼 밥 길은 물질 자체보다 중요한 관계와 경험을 섬세하게 담아냅니다. 게다가 특히 의미 있는 것은 상상에서 나눔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결말입니다. 아서는 결국 자신의 생일 선물을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기부합니다. 책 첫머리에 자리한 “내가 먹는 사과보다 남에게 건네는 사과가 더 값지다.”라는 격언이 책을 덮은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울립니다.
이 글을 쓸 무렵 성탄절을 이틀 앞두고 태어난 저희 아기는 하루 남짓한 시간 동안 저희에게 가장 소중한 선물이었습니다. 저희의 사랑은 아기에게 줄 수 있었던 유일한 선물이었고요. 이 책의 메시지는 그래서 더욱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선물을 주고받습니다. 특별한 날을 기념하는 선물, 고맙거나 미안한 마음을 전하는 선물, 그리고 이따금은 아무 이유 없는 선물까지… 그 순간마다 우리가 주고받는 건 결국 물질이 아닌 선물을 마주할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 아닐까요?
삶과 죽음에 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준 저희 아기처럼 이 책이 우리에게 선물이 무엇인지, 그리고 나눔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기를, 나아가 이 책 자체가 또 하나의 선물로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야기이자 마음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2024년 12월
민구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