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구홍 매뉴팩처링

회의실로

2018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회의는 예정되지 않는다. 누구도 회의하자고 먼저 말하지 않고, 누구도 그것이 회의였다고 나중에 말하지 않는다. 회의는 늘 회의 중간에 시작되고, 회의가 끝나기 전에 다른 것으로 전환된다. 이를테면 점심 식사라든가, 인턴의 사적인 고민 상담이라든가, 사무실 냉장고 안에 남은 오렌지의 수량을 확인하는 일 같은 것으로. 그래서 이 회사에서는 회의록이 남지 않는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회의실은 정해진 공간이 없다. 모니터 앞일 수도 있고, 산책 중 벤치일 수도 있다. 가끔은 이메일 작성 중 열린 탭 속, 아니면 구글 드라이브의 ‘이름 없는 문서’ 안에서도 회의는 열렸다. 최근에는 회사 공식 웹사이트의 <details> 태그 안에서 회의가 발생한 적도 있다. 제목은 “지금은 회의 중입니다”였고, 클릭해야만 본문이 드러났다. 본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걸 회의라 부를 수 있을까?”

회의에는 참석자도 불명확하다. 명목상은 운영자 혼자지만, 회의에는 종종 외부 인물의 말투가 섞인다. 그 말투는 대개 이전에 수신한 이메일에서 흘러온 것이거나, 읽은 책에서 끌어온 문장, 또는 회사의 숙주가 무심코 던진 농담에서 비롯했다. 회의는 그러니까 독백이라기보다는 메아리에 가깝다. 누가 먼저 말했는지도, 누가 마지막에 웃었는지도 모른 채 흘러간다.

회의의 주요 안건은 늘 비슷하다. 「회사 소개」를 다시 써야 하는가, 아직 답장을 받지 못한 편지를 다시 보낼 것인가, 인턴에게 점심을 사줄 것인가, 회사 이름이 너무 길진 않은가, 이제는 정말 폐업 신고를 해야 하는 건 아닌가. 간혹 아주 구체적인 안건이 올라올 때도 있다. 예컨대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타이포그래피 규범에서 엔대시와 엠대시(em-dash) 좌우는 어떤 간격으로 띄워야 하는가?’ 같은 것. 이 안건은 논의만 40분이 걸렸고, 회의 도중 운영자는 회의용 구글 닥을 닫고 마트에 가서 사과를 샀다. 회의록에는 ‘사과’라고만 남아 있다. 그게 감정의 사과인지, 과일의 사과인지는 회의 후 2년이 지난 지금도 불분명하다. 회의는 보통 다음 문장으로 마무리된다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았지만, 다들 좋은 시간을 보냈기를 바랍니다.”

물론 회의 참석자는 한 명뿐이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한 사람이 회의를 열고, 진행하고, 좌절하고, 정리하고, 다시 그 회의가 열렸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도 있다. 회의는 그만큼 유동적이고, 그만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묘하게도, 바로 그 회의 이후에 회사는 새로운 제품을 내놓고, 웹사이트는 구조를 바꾸고, 가끔은 자신도 모르게 자기소개를 다시 쓴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한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회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뭔가를 결정하고야 마는 회의라고.

회의는 끝났을지 모른다. 아니, 아직 시작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