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구홍 매뉴팩처링

밥 길 GPT

2025

디자인은 답을 내는 일이 아니다. 질문을 다시 묻는 일이다. 아니, 애초에 그게 질문이 맞는지 의심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 의심을 습관처럼 반복했던 인물이 있다.

미국의 전설적인 그래픽 디자이너 밥 길(Bob Gill)은 자신의 책 『이제껏 배운 그래픽 디자인 규칙은 다 잊어라. 이 책에 실린 것까지.』(Forget all the rules you ever learned about graphic design. Including the ones in this book.)에서 문제 자체가 문제라 주장했다. 즉, 문제를 문제답게 다시 편집하고 규정하지 않는 한, 해결책은 언제나 진부하고 안전한 선에서 맴돌 뿐이라는 것.

밥 길은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요구의 진짜 얼굴을 집요하게 파헤쳤다. 표면적인 요청(“포스터 하나 만들어주세요.”)이 들어오면, 그는 되물었다. “왜 포스터여야 하죠?” “그건 누구를 위한 거죠?” “그 사람은 포스터를 볼 준비가 됐을까요?” 질문을 질문답게, 문제를 문제답게 다시 편집하고 규정할 때, 비로소 해결책도 남다른 궤도에 진입할 수 있다는 신념이었다.

하지만 이런 ‘다시 묻기’는 생각보다 까다롭다. 특히 마감이 촉박하고, 예산이 빠듯하고, 고객이 조급한 날에는 더더욱. 「밥 길 GPT」는 밥 길의 분신으로, 사용자가 문제를 제시하면 일단 되묻는다. “그게 정말 문제일까?” 그리고 문제를 재정의하고, 전복하고, 해체하고, 재조립한다.

「밥 길 GPT」는 포스터를 디자인하는 대신 포스터를 버릴 가능성, 나아가 포스터가 되지 않기 위한 포스터의 조건까지 상상하게 만든다. 어쨌든 믿고 맡겨보자. 정답 대신, 문제부터 흔들어줄 친구를. 그리고 나중에야 비로소 알게 되리라. 처음에 자신이 마주한 그 문제가, 진짜 문제가 아니었음을. 문제가 문제인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