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2015년 이래 진행한 길고 짧은 인터뷰를 꼼꼼히 정리한 뒤 다시 무작위로 늘어놓은 「자주 하는 질문」을 통해 회사 또는 운영자에 관한 궁금증이 모쪼록 해소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단, 질문의 시기에 따라 현재와 다른 사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편, 질문의 어조에 따라 언급한 인물에 대한 존칭을 생략하기도 했습니다. 「자주 하는 질문」을 섭렵한 뒤에도 궁금증이 도무지 해소되지 않는다면 [email protected] 앞으로 소상히 말씀해주세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인정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단, 답장은 이메일 대신 언젠가 「자주 하는 질문」에서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입니다. 코딩을 처음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해주고 싶은 말은?
우화 삼아 제가 처음 웹사이트를 만든 계기를 이야기하곤 합니다. 열한 살 무렵이던 1995년 처음 웹사이트를 만들었습니다. 당시 제가 사랑하던 친구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였죠. 콘텐츠나 디자인 이전에 단순하지만 명징한 목표가 있었죠. 목표가 단순하고 명징하다면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즉, 자신의 야심과 취향에 따라 어떻게든 하게 되는 거죠. 사실 모든 게 그렇지 않나요?
앞서 말했듯 목표를 세우는 게 중요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우리가 말을 하게 되거나 글을 쓰게 되는 과정을 떠올려보면, 처음에는 그냥 이것저것 따라 해보는 게 필수적입니다. 엄마나 아빠의 말을 따라 하는 것처럼요. 글쓰기에서 이야기하는 다독, 다작, 다상량에서 다독에 해당하는 과정이죠. 그 과정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럽게 규칙을 체화하고, 규칙이 아닌 느낌에 따라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요.
나아가 어도비 소프트웨어처럼 세련된 아이콘이 즐비한 툴바가 없는 텍스트 에디터상에서 코딩이 이뤄지는 만큼 다른 접근 방법이 필요합니다. 예컨대 HTML을 익히고 텍스트 에디터상에서 다루다 보면 자연스럽게 콘텐츠를 콘텐츠의 맥락과 함께 구조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목은 제목으로, 문단은 문단으로, 이미지는 이미지로. 그렇게 HTML만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웹사이트가 아름다워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 또 다른 미감, 기준, 필터가 생겨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코딩 이전에 폴더와 파일 등 컴퓨터를 다루는 게 능숙해야겠죠.
민구홍 매뉴팩처링 명함을 한 장 받고 싶다.
2018년 아카이브 봄에서 열린 『레인보 셔벗』을 준비하면서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오랜 동업자인 그래픽 디자이너 강문식과 회사의 명함을 마련했다. 명함은 대개 비석에 사용되는 흑요석으로 만들어졌는데, 무게는 103킬로그램에 달했다. 전시장이 엘리베이터가 없는 지상 3층이었던 탓에 장정 네 명이 밧줄에 매달아 한 층 한층 옮겨야 했다. 전시 기간에는 명함 옆에 작은 안내문이 비치됐다. “마음껏 가져가세요!”

명함은 전시가 끝난 뒤에도 옮기지 못하고 무려 2년 동안 거의 그 자리에 있었고, 전시장이 문을 닫으면서 2020년 성탄절 이튿날 전산 시스템의 도움으로 비로소, 온전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옮길 수 있었다.

오가사와라 프로젝트를 제안한 뒤 7~8개월 정도 지났다. 최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이하 ‘코로나’)으로 웹 기반 프로젝트가 많아졌는데, 웹을 주요 매체로 작업하는 사람이 보기에 이 상황은 어떤가?
작년 늦여름,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느닷없이 찾아온 수상한 인물들에게 포위당하고, 급기야 납치당했다. 자신을 해적단이라 소개한 그들은 태평양의 오가사와라 제도로 떠나야 한다고 말한 뒤 해적단과 함께하라고 회사에 명령했다. 간헐적으로 화상 회의 링크가 이메일로 전송되고, 회의가 끝날 무렵에는 비밀 결사 단체처럼 특정 구호나 제스처를 따라 하라고 강요하기도 했다. 고양이 앞 생쥐처럼, 너구리 앞 고양이처럼, 한동안 회사는 그들과 함께했다. 이처럼 느닷없이 찾아온 코로나는 우리를 포위하고 납치해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국면으로 옮겨놨다. 모든 분야에서 예정된 행사는 연기되거나 취소됐고, 사람들은 사람이 모이는 일의 경제적인 효과를 느닷없이 실감했다. 오프라인이 누려온 혜택은 이제 온라인의 차지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제법 성장했다. 상호를 밝힐 수 없는 두 회사에서 인수를 제안받기도 했다. 물론 일부는 코로나가 불러일으킨 비극에서 비롯한 반사이익이다.
내 기준에서 코로나가 우리에게 안긴 장점이 있다면 이제껏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여겨온 것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는 점일 것이다. 웹 또한 그 가운데 하나다. 많지는 않지만, 웹을 그저 또 다른 인쇄물로 여기지 않는 태도가 반갑다. 초창기 웹은 과학자들끼리 논문을 조금 더 편리하게 공유하기 위해 발명됐다. 즉, 인쇄물에서 비롯했다. 하지만 오늘날 웹의 논리는 인쇄물과는 전혀 다르다. 예컨대 특정 행사를 위한 웹사이트가 기존의 포스터나 리플릿, 도록 역할만 수행한다면, 즉 마지막 단계에서 모든 것을 갈무리할 뿐이라면 웹의 수많은 가능성을 포기하는 꼴이다. 웹을 웹답게 이용하는 여러 방법 가운데 하나는 전체 프로젝트 맨 앞에서 프로젝트를 촉발해 프로젝트 전반을 끌고 나가는 플랫폼으로 삼는 것이다. 웹사이트 안에서 모든 활동이 일어나고, 축적되고,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버그가 튀어나오고, 방문자는 이런 상황을 실시간으로 관람하거나 상황에 참여하고, 종국에는 그 자체로 자연스럽게 결과물이 드러나고, 그렇게 하나의 추억이 생성되고… 이는 인쇄물의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 ‘영원한 베타 버전(perpetual beta)’이라는 웹의 태생적 속성에서 비롯한다. 이를 위해서는 초기 단계부터 변수마저 예측해 상수로 삼는 꼼꼼한 설계가 필수적이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생산자이기 이전에 소비자로서 웹을 다시 생각해보는 시도가 더욱 많아지면 좋겠다. 물론 민구홍 매뉴팩처링 또한 제 몫을 다할 것이다. 이는 언젠가 도달할 미래를 미리 체험하는 일일지 모른다. 이번 기회에 (아무도 이런 기회를 바라지는 않았지만) 웹이 이제껏 경험해온 웹과 전혀 다를 수 있음을 더욱 많은 사람들이 체험한다면, 코로나가 종식된 뒤에도 웹은 일시적, 그리고 불가피한 유행을 넘어 자신만의 영토에 꽂힌 깃발을 흐뭇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단, 특정 세대들에게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의 시끌벅적함을 체감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나 또한 느닷없이 일상에 틈입한 화상 회의가 여전히 어색하다.) 언제나 고요하고 깔끔해 보이기만 하는 웹상에서 이를 가늠할 수 있는 장치는 방문자 숫자나 트래픽 초과 메시지뿐이다. “코로나 발생 이전의 세상은 이제 다시 오지 않는다.”라는 권준욱 질병관리청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의 발언은 정말이지 준엄했다. 이 발언이 기우이기를 기원해보자.
가장 중요한 아이템을 빠뜨렸다. 속옷과 양말은 어떤 브랜드의 제품인가?
대개 유니클로다. 특정 국가의 브랜드를 고집한다기보다 그저 집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매장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아이템인 만큼 조금이라도 해지면 손쉽게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단, 무슨 일이 있어도 페이크 삭스나 발목 양말은 신지 않는다.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졸업생입니다. 종이 책과 웹사이트에서 섞어짜기를 구사하는 데 어떤 차이가 있나요?
개념은 같아요. 차이는 방법에 있습니다. CSS에서 글자체를 제어하는 ‘font-family’ 속성에서는 폴백(fallback) 기능을 지원합니다. 쉽게 말해 몇 가지 글자체를 지정해두고, 첫 번째로 지정한 글자체의 폰트가 지원하지 않는 글리프가 있다면 다음 글자체의 폰트가 담당하는 기능이죠. 이 기능을 이용하면 섬세하지는 않지만 기본적인 섞어 짜기가 가능해요. 이보다 조금 복잡하기는 해도 자바스크립트의 힘을 빌리면 인디자인에서처럼 정규 표현식을 통해 자동으로 한글, 로만 알파벳, 한자, 가나 등 언어별 문자마다 스타일을 지정할 수 있고요. 시적 연산 학교 동문이기도 한 MIT의 소원영 씨와 뉴 스쿨(The New School)의 강이룬 선배가 만든 멀티링구얼 JS가 이를 위한 대표적인 자바스크립트 플러그인인데, 『타이포잔치 2021: 거북이와 두루미』, 『2022 부산비엔날레』 등에서 유용하게 사용했습니다. 마지막 업데이트 시점에서 무려 6년이나 지났지만, 사용하는 데 전혀 무리가 없었고요. 이 자리를 빌려 두 분께 존경을 표합니다. 나아가 아예 폰트를 커스터마이징해 앞서 말씀드린 얄궂은 설정이 필요 없는 완전한 다문자용 폰트를 만들 수도 있고요. 구글과 어도비가 합작한 노토 산스(Noto Sans)가 대표적인 보기죠.
‘푹신’(Fuchsine)을 처음 본 건 2018년 인사미술공간에서 열린 『픽션-툴』(Fiction-tool) 전시장에서였다. 로비에 설치된 전시용 아카이브 웹사이트 속에서 푹신은 전시에 관한 논평이나 해설, 또는 야릇한 말을 중얼거리며 하루하루 몸집을 키워갔다. 그 뒤에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견학하는 어드벤처 게임에서, 미술가 박현정의 전시에서, 난지미술창작레지던시와 관련한 웹사이트 등에 등장해 중얼거림을 이어갔다. 마젠타색 몸에 눈인지 코인지 입인지 알 수 없는 생략 부호(…), 평양 냉면을 좋아하고, 발렌시아가의 대표적 어글리 슈즈인 트리플 S를 신는 게 꿈이라는 이 생명체의 정체는 무엇인가?

‘분홍이’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불리는 푹신은 아득히 먼 옛날 미술 평론가 겸 기획자 이한범 씨가 기획한 아카이브 전시 『픽션-툴』 웹사이트에서 태어났다. 웹사이트 자체가 또 하나의 전시였으므로 웹사이트상의 전시를 해설할 도슨트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시 관련자가 아닌 제3자, 즉 관람객의 입장에서 말이다. 그렇게 웹사이트 화면을 돌아다니며 클릭할 때마다 메시지를 출력하는 기능이 탑재됐다. 그리고 전시 전체 기간을 백분율로 계산해 하루에 웹사이트 화면 높이의 일정 비율씩 커지도록 했다. 전시 종료일에 화면을 가득 채우는 모습을 의도한 것이기도 하다. 이한범은 전시 리플릿에 푹신에 관해 이렇게 썼다.
이제 여러분은 1층으로 다시 돌아와 한 벽면에 놓인 모니터를 통해 전시장에서 본 작업들의 정리된 정보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아마 남몰래 목록을 더해가고 있을 테니 시간 날 때마다 슬쩍 슬쩍 구경해도 재미가 쏠쏠하겠죠? 잠깐만요, 그런데 화면에 떠다니는 귀여운 녀석이 보이시나요? 커서로 쫓아가 (모바일 디바이스라면 손가락으로!) 건드리고 클릭하면 여러분께 말을 건넬지 모릅니다! 이 친구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만든 신제품입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웹이라고 하는 공간에 기반해 그 시스템의 기술을 이용한 기생형 프로그램을 만듭니다. 말하자면 직접 어떤 공간을 새로이 만들지 않고, 기존에 있는 공간에 달라붙어 그것을 비틀거나 변형시키는 방식으로 기능하는 거죠.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심각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우리를 유쾌하게 해주는 장난스러운 개구장이에 더 가깝죠. 화면의 저 분홍색 친구는 절대 여러분을 해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전시 기간 하루가 달리 몸집이 불어난다고 하니 조금 걱정이 되긴 하네요.

모양은 UX 분야에서 전통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생략 버튼’(ellipsis button)에서 따왔다. 대개 클릭하면 두드러질 필요 없는 부가적인 기능이나 정보를 드러내는데, 그 속성이 도슨트의 역할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곡률은 이후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 개발할 것까지 고려해 여러 모바일 운영 체제 아이콘 곡률의 평균값(전체 크기의 약 22퍼센트)을 지정했다.

이후 잠시 현실로 도피했다가…

지금은 다시 웹상에서 중얼거림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난지미술창작레지던시의 큐레이터 정시우 씨와 코디네이터 정지원 씨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2020년 아트선재센터에 이어 2021년 대안공간 루프에서 「장영혜 중공업 귀중」 제2판을 선보였다. 제1판과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제1판을 선보인 뒤 1년 사이 달라진 상황에 따라 몇몇 내용이 추가되거나 삭제됐고, 더욱 큰 화면에 오직 장영혜 중공업만 사용할 수 있는 소파와 헤드폰이 마련됐다. 그럼에도 장영혜 중공업을 향한 존경과 사랑, 그리고 부탁 한 가지는 그대로다. 답변을 받을 때까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선보이는 연작이 될 예정이다.
유럽 입자 물리 연구소(Conseil Européenne pour la Recherche Nucléaire, CERN)에서 일하던 영국의 컴퓨터 과학자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 경이 일반에 웹을 공개한 지 어느덧 30여 년이 지났다. 생각보다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은데, 그동안 웹은 어떻게 발전했을까?
웹은 콘텐츠의 생산 및 소비 방식의 관점에서 버전으로 구분된다. 웹 1.0은 1994년부터 2004년까지 웹 초창기를 가리킨다. 웹 1.0에서 콘텐츠는 단방향, 즉 생산자에서 소비자로만 흐르며, 소비자는 콘텐츠를 열람만 할 뿐 제어할 수 없다. 그 이후 웹 2.0이 등장했고, 사용자들은 개인 웹사이트를 만들기보다 블로그나 소셜 미디어 서비스로 자리를 옮겼다. 콘텐츠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건 훨씬 편리해지고,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는 흐릿해졌지만, 동시에 (특히 한국에서는) 개인 웹사이트를 만드는 문화가 너무나도 빨리 식어버렸다. 아직 규정하기 어려운 지금은 웹 3.0 시대로, 전문가들은 인공지능을 주요 특징으로 꼽기도 했다. 새로운 버전이 등장하면 주도적인 흐름이 이동하긴 하지만, 이전 버전이 완전히 폐기되는 건 아니다. 오늘날 웹은 각 버전이 뒤섞인 엉망진창 상태고, 한 웹사이트에서도 각 버전이 어우러진 경우도 있다. 웹 2.0의 대표적인 기술 가운데 웹사이트(블로그)끼리 서로를 참조할 수 있는 트랙백(trackback) 기능이 재미있는데, 안타깝게도 이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한국 사람이 글자를 좋아하거든요.” 한 만년필 애호가의 말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하긴 한글날이면 여기저기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나눔 전용 글자체는 다른 나라에서 보기 드문 흐름이긴 합니다. 혹시 여러분의 나라는 어떤가요? ‘우리가 (또는 내가) 글자를 즐기는구나.’라고 생각하신 적이 있다면 가볍게 소개해주시겠어요?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겸 출판사에서 편집자로도 일하는 만큼 글자에 예민하고, 저보다 훨씬 더 예민한 동료들과 평일 대부분을 보냅니다. 며칠 전에는 “잘못된 띄어쓰기와 적절하지 않은 글자 사이 값 가운데 무엇이 콘텐츠에 더 치명적인가?”라는 주제로 가벼운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어요. 거칠게 말해 띄어쓰기는 콘텐츠의 구조와 체계, 글자 사이 값은 콘텐츠의 시각적 아름다움에 관한 문제죠. 결론은 입장이나 업무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스노비즘일 수도 있겠지만, 글자를 다룰수록 이렇듯 글자뿐 아니라 글자를 둘러싼 세세한 부분에서 즐길 거리가 눈에 띕니다. 국적보다는 순전히 개인의 취향 때문일 텐데, 이는 제가 미국인이나 일본인이었어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하지만 오로지 글자만 즐기는 것도 별로 건강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균형을 맞추기 위해 주말에는 운동을 하거나 TV를 많이 봅니다. 낮잠을 자기도 하고요. 그렇지 않으면 글자에 대한 흥미가 금방 줄어들 것 같아서요.
친구에게 민구홍 매뉴팩처링 공식 웹사이트에 접속해 「회사 소개」로 연결된 파란색 링크를 응시하는 명상법을 추천받았습니다. 이제 여섯 달째인데, 효과가 있는 것 같기는 합니다. 그나저나 웹사이트는 언제 업데이트되나요?
아직은 회사를 소개하는 데 집중하고 싶습니다. 회사 웹사이트의 또 다른 기능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앙하는 숫자가 있나요?
제법 많습니다. 0.125, 2, 3, 6, 12, 14, 16, 24, 38, 42, 999입니다. 어떤 것은 글쓰기, 어떤 것은 또 다른 글쓰기, 즉 코딩, 어떤 것은 마이크로 타이포그래피, 어떤 것은 매크로 타이포그래피와 관련이 있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공식 웹사이트는 왜 이런 모양인가?
2015년 느닷없이 설립된 이래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소개’라는 행위에 이따금 우스꽝스러워 보일 만큼 섬세하고 강박적으로 천착해왔다. (회사의 첫번째 제품은 열세 번째 ‘시청각 문서’로 발표한 「회사 소개」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모든 생산 활동의 기저에 어떤 대상, 나아가 생산 주체, 즉 자신을 소개하고픈 욕망이 자리한다고 믿는 까닭이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회사’라는 형식을 전유해 이 믿음을 의식하고 양식화한 결과물로, 회사의 모든 활동은 결국 ‘소개’로 수렴한다. 회사의 공식 웹사이트는 설립과 거의 동시에 만들어졌다. 모름지기 회사라면 일단 그럴듯한 공식 웹사이트를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몇 가지 메뉴 가운데 「자주 하는 질문」은 지금까지 진행한 인터뷰를 뒤섞은 공간이다. 이곳은 회사의 포트폴리오를 얼마간 대신하기도 하는데, 이를 통해 회사가 구사하는 전략은 글쓰기에서 비롯한다는 점을 드러내려 했다. 디자인은 회사가 웹을 사랑하는 만큼 최초의 웹사이트 스타일을 본받았다. 어떤 대상에 시간이 쌓이다 보면 디자인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아우라가 풍긴다. 최초의 웹사이트 스타일을 본받아 회사가 답습하려 하는 바는 사실 이 아우라다.
당신에게 최정호란 누구인가?
여러모로 고마운 사람이다. 최정호에 관한 책을 만들어서 월급을 받았고, 최정호가 만든 서체로 사람들에게 「(웃음)」도 드렸다.
COS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의 콘셉트는 무엇인가요?
정지, 금지, 위험, 경고 등을 의미하는, 하지만 포춘 쿠키 속 메시지처럼 방문객에게 우연한 기쁨을 줄지 모를 빨강 문자들입니다.
웹사이트를 만들 때 기술적인 한계는 어떻게 극복하나요?
최신 기술을 재빨리 익혀 도입하는 쪽과 드릴이나 호미로 밑바닥을 확장하며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기술을 탐구하는 쪽이 있다면,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후자에 속합니다. 아무래도 워크룸에 있다 보니 그래픽 디자인에서 타이포그래피나 개념에 집중하는 방법론에 익숙하기도 하고,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구글이나 네이버가 아닌 만큼 기술적인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기도 하죠. 이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선의 방법을 고안하려 노력합니다. 여러 프로젝트를 경험해본 바로는 대부분의 문제가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기술만으로 무리 없이 해결되는 편이었어요. 물론 여기에는 콘텐츠를 제대로 다뤄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죠.
운영자 민구홍 씨는 실존 인물인가요? ‘민구홍’은 본명인가요? 어떻게 생겼나요?
실존 인물이고, 본명(엄마의 작품)이며, 다음과 같이 생겼고…

페이스앱에 따르면, 언젠가는 다음과 같이 생길 예정입니다.

디자인 이전에 콘텐츠에 대한 태도가 재미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웹사이트가 있나요?
얼마 전 프루트풀 스쿨과 계원예술대학교에서 열린 특강에서도 같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답변은 한결같아요.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 경이 만든 일반에 공개된 최초의 웹사이트예요. 웹을 소개하는 웹사이트 속 콘텐츠는 공들여 번역하고 싶을 만큼 우아하고 실용적이에요. 게다가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무리 없이 작동하죠. 흰색 배경, 검은색 글자, 밑줄이 그어진 파란색 링크 같은 기본 스타일이 적용돼 있는데. 이 웹사이트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추구하는 바를 여실히 드러냅니다.

최초의 웹사이트만큼은 아니지만 일본의 배우 아베 히로시(阿部寛)의 공식 웹사이트도 좋아해요. 『릿터』 24호에도 이와 관련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1996년 무렵 팬이 만든 웹사이트를 배우가 공식 웹사이트로 삼으면서 지금까지 당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죠. 얼핏 웹 기술에 갓 입문한 사람이 만든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도 최신 정보가 업데이트돼요. 배우의 과거 사진, 에세이 등 쉽게 접하기 어려운 정보도 싣고 있고요. 한 웹사이트가 25년여 동안 같은 스타일을 유지하는 데는 여전히 구형 해치백을 몬다는 배우의 취향도 어느 정도 작용했겠죠?
앞서 소개한 두 웹사이트는 그동안 쌓인 시간 덕에 설명하기 어려운 아우라가 느껴집니다. 콘텐츠가 디자인을 장악하는 증거죠. 장영혜 중공업이나 양혜규 선생님의 웹사이트 또한 비슷한 맥락에 있습니다. 콘텐츠가 아름답다면 스타일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모든 경우에 적용할 수는 없겠지만, 많은 경우 그렇게 적용할 수 있게끔 국면을 편집할 수 있죠.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회사 소개」에서 ‘하지 않습니다.’의 형식에 빗대어 본인의 의생활을 표현한 다섯 문장을 소개한다면?
두 문장이면 족하다. 민구홍은 옷 한 벌에 100만 원 이상 투자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민구홍은 발목 양말이나 페이크 삭스를 신지 않습니다.
구글(Google)을 통해 매듭 묶는 방법, 이케바나(いけばな), 디자인 등 갖가지 실용적인 기술을 익혔다는 점도 재미있었어요.
웹은 제게 또 다른 학교입니다. 요즘에는 누구에게나 그렇지 않을까요? 물론 잘못된 정보가 적지 않지만, 거기서 옥석을 가려내는 것도 학습의 일부예요. 물론 조금 더 수월하게 디자인을 익힌 데는 안상수 선생님 연구실, 안그라픽스, 워크룸을 거치면서 솜씨 좋은 생산자들과 교유한 덕도 있죠. 『이제껏 배운 그래픽 디자인 규칙은 다 잊어라. 이 책에 실린 것까지.』를 번역하는 과정도 공부가 됐어요. 실제로 이 책은 여러 학교에서 그래픽 디자인 교재로 사용되고, 네덜란드의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익스페리멘털 젯셋(Experimental Jetset)은 이 책을 거의 성경처럼 여기죠. 차례만 읽어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책 제목처럼 언젠가는 잊어버려야겠지만요.
민구홍 매뉴팩처링 공식 웹사이트는 5년 동안 같은 모습을 유지합니다. 특별한 까닭이 있나요?
일반에 공개된 세계 최초의 웹사이트가 30여 년 동안 같은 모습을 유지하는 까닭과 다르지 않습니다.
민구홍 님이 속한 웹의 세계에서는 그래픽 디자인 전공이 아니어도 충분히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또는 본인의 경우가 특수한 걸까요?
저는 디자인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운 좋게 주위에 솜씨 좋은 선생님, 선배, 동료가 있었고, 그들 바로 옆에서 그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지켜보며 디자인을, 정확히는 ‘디자인’이라는 기술을 익힐 수 있었어요. 특히 그들이 디자인하며 결정을 내릴 때 그 이유를 따져보는 게 도움이 됐죠. 제가 디자인을 익힌 또 다른 학교인 구글(Google)의 도움도 많이 받았고요. 요즘에는 챗GTP(ChatGTP)의 도움까지 받죠. 디자이너로서 저는 일반적이거나 모범적인 사례는 아니에요. 일종의 우화(寓話)로 보는 게 맞겠죠.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목표 없이 우연히 또는 느닷없이 디자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만큼 당연히 따라야 할 모범이나 따르고픈 모범 같은 것도 없었고요. 무엇보다 모범을 따른다고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는 보장도 없죠. 모범이 있다면, 그를 참고해 자신에 맞게 편집하는 게 중요하겠죠. 지금 제 모습은 그저 제가 발 디딘 자리에서 최고의 선(善), 즉 하루 24시간 가운데 여덟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는 상태를 더듬어본 결과 또는 과정입니다.
LSD에 한껏 취한 시인이 쓴 시를 읽는 기분입니다. 뭐가 뭔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더 집요하게 알고 싶어요. 설령 제가 끝없이 침몰하더라도요.
저도 일찍이 경험한 바입니다. 이 웹사이트에 접속하면 검은색 베경에 무질서해 보이는 라임색 기호가 화면을 메웁니다. 하지만 이 혼돈 속에는 새로운 질서가 숨어 있죠. 웹 브라우저의 개발자 도구를 이용해 웹 페이지의 소스 코드를 들여다보면, 아스키(ASCII) 코드로 그려진 핵폭발 이미지가 드러납니다. 디지털 세계의 표면과 내면, 가시성과 비가시성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죠. 무질서 속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는 일은 관객의 몫이 되고요. 이처럼 넷 아트의 실험과 도전은 웹사이트가 단순한 정보 전달 매체를 넘어 예술적 표현의 장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고, 이는 오늘날 예술의 맥락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뒤샹이 일상의 물건을 예술로 치환했듯 넷 아티스트들은 웹사이트라는 일상의 매체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거죠. 이는 예술의 정의와 경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무엇이 예술이고, 무엇이 예술이 아닌가? 나아가 예술 작품과 그것을 담는 매체의 경계는?
올해로 설립 15주년을 맞은 워크룸에서는 단행본 편집자로,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웹 제작자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인쇄물과 웹사이트라는 두 매체를 오가면서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하셨나요?
디자인 학교에서 강의하다 보면 학생들은 인쇄물과 웹사이트를 비교하려 합니다. 기존 커리큘럼의 영향도 있겠지만, 생산자로서 책이나 포스터 같은 전통적인 인쇄 매체에 익숙하기 때문이죠. 또는 지독히 인쇄물을 사랑하거나요. 웹은 과학자들끼리 효율적으로 논문을 공유할 목적으로 발명됐어요. 역사적으로 웹사이트는 인쇄물에서 출발한 셈이죠. 콘텐츠를 담는 그릇으로서 웹사이트는 태생적으로 인쇄물의 장점을 포섭하고, 게다가 지금도 발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둘을 같은 출발선상에 놓고 비교하기보다는 인쇄물을 웹의 조상, 웹을 조금 더 진보한 인쇄물로 여기는 편이 이롭습니다. 물론 웹은 책처럼 손에 쥐었을 때 느껴지는 흡족함을 주지 못하고, 책과 달리 영원한 베타 버전이라는 차이가 있지만요.
다른 질문이 있습니다.
[email protected] 앞으로 관련 내용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신속한 답변은 장담할 수 없지만, 『민구홍 매뉴팩처링 이메일 응대 지침』에 따라 성심성의껏 임하겠습니다. 물론 위급한 상황이라면 회사가 기생하는 워크룸으로 직접 오셔도 괜찮습니다. 단, 회사와 숙주 모두 간판을 내걸지 않은 탓에 거리에서 멋쩍게 얼마간 서성일 각오를 하셔야 합니다.
웹사이트에서 콘텐츠를 다루는 방식에서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전략은?
영업 비밀이 드러날 수 있으므로 자세히 밝히기는 곤란하지만, 좋아하는 몇 가지 방식을 소개할 수는 있겠다. 하나는 ‘화면 가운데에 맞춘, 화면 너비에 크기가 비례하는 글자’다. 타이포그래피의 여러 강조법 가운데 특히 ‘가운데 맞추기’를 좋아하는데, 가장 단순하면서 효과적인 강조법이라는 생각에서다. 특히 화면 가운데 놓이면 어떤 권위를 생기기도 한다. 좋아하는 만큼 즐겨 사용하기도 한다. 이렇게 범용적인 스타일을 구축한 뒤에는 콘텐츠 자체에 관해서만 고민할 수 있다.

또 하나는 ‘무작위’다. 웹사이트에 접속할 때마다 새로운 또는 생경한 느낌을 주려는 의도다. 가나다순, 알파벳순, 게시 날짜 역순 등 기본적인 콘텐츠 정렬 순서 탓에 눈에 잘 띄지 않는 콘텐츠를 위한 장치이기도 하고, 수많은 디자인적 선택에 따른 책임을 함수(function), 즉 컴퓨터에 전가하려는 태도이기도 하다.



‘최소 입력, 최대 출력’을 지향한다. 즉, 콘텐츠를 굳이 여러 페이지로 나누기보다 한 페이지 안에서 기본적인 열람 방식인 상하 스크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사용자의 클릭이나 터치 또한 노동력이 필요하므로 이를 최소화하려는 의도다.


콘텐츠를 한 화면에 배치하기보다 레이어별로 세분화하고, 여기에 모션이나 시퀀스를 부여하는 등 시간이라는 요소를 도입하기도 한다.

웹 브라우저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콘텐츠는 반드시 웹 브라우저의 주 화면에만 놓이지 않는다. 예컨대 제목 표시줄이나 패비콘(Favicon), 웹 조사기를 활성화한 뒤에 볼 수 있는 소스 코드나 콘솔(console) 화면 또한 웹사이트의 일부분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도메인, 즉 웹사이트 주소 또한 웹사이트에서 파생된 콘텐츠다. 김뉘연과 전용완의 웹사이트 주소(http://kimnuiyeon.jeonyongwan.kr)가 좋은 보기다. 도메인은 크게 주 도메인(main domain)과 보조 도메인(subdomain)으로 나뉘는데, 보조 도메인(김뉘연)은 주 도메인(전용완) 없이 성립할 수 없고, 보조 도메인(김뉘연) 없이 주 도메인(전용완)만으로는 웹사이트에 접속할 수 없다. 듀오로 활동하는 생산자의 웹사이트에 개념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적합한 도메인 형태 아닐까 싶다. 게다가 그 덕에 조금 길긴 하지만, [email protected](김뉘연)과 [email protected](전용완) 같이 아주 근사한 이메일 주소가 탄생했다.

한편,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함께 일하는 사람에 관해서도 알게 되고, 나아가 일을 통해 그에게 깜짝 선물 같은 걸 건네고픈 생각이 들기도 한다. 웹사이트 어딘가에 이스터에그처럼 서로만 알 수 있는 특정 요소를 굳이 숨겨놓는 까닭이다. 헛웃음이나 코웃음일지라도 그가 그것을 발견하고 웃음 짓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다. 일종의 사랑이다.
그래픽 디자인 듀오 슬기와 민의 소개처럼 저술가, 번역가, 프로그래머, 디자이너 등 여러 직함이 붙지만 ‘편집자’라는 직함을 고수한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하는 일들이 ‘편집’과 어떤 관련이 있나요?
출판 분야에서 ‘편집(editing)’은 교정과 교열 같은 협소한 의미로 사용되곤 하지만, 저는 편집을 창작을 포함한 행위로 간주합니다. 제가 ‘편집’이라는 행위를 처음 의식한 건 1990년대 초 컴퓨터를 처음 접하고 게임에 한창 몰입하던 시절이었어요. 흔히 ‘게임 에디터’로 통칭하던 소프트웨어를 이용하면 게임의 데이터베이스를 조작해 캐릭터의 능력치뿐 아니라 게임 자체를 수정할 수 있었죠. 즉, 제가 처음 접한 편집은 ‘어떤 공고한 틀을 그 안팎에서 지배해 국면을 제어하는 일’이었어요. 이 생각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웹사이트를 만들 때뿐 아니라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작품을 전시할 때도 편집자의 마음으로 임합니다. ‘편집자’라는 말이 주는 무미건조함도 마음에 들고요. 다만 제가 다루는 편집의 영역이 넓어지다 보니 정작 제가 담당한 책 출간이 늦어지고 있어요. 얼마 전에 출간된 『실전 격투』도 가까스로 작업했죠. 저를 이해해주시고, 아무 말 없이 기다려주시는 필자, 번역가 분들께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안부를 전하고 싶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제품을 보면 제법 체계적으로 보이는데, 이에 관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제품의 형식은 물론이고, 내용의 아름다움, 형식과 내용을 연결하는 맥락과 국면을 편집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는 글뿐 아니라 책, 웹사이트, 게임, 웹 브라우저 확장 프로그램, 리코타 치즈 같은 제품에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민구홍이 가진 가장 장식적인 옷은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타이포그래피의 수많은 강조법 가운데 특히 ‘가운데 맞추기’를 좋아한다. 고전적이긴 하지만, 그저 양쪽 여백을 동일하게 설정하는 것만으로 손쉽게 콘텐츠를 강조하고 장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따금 극적인 효과를 주기도 하고. 그 뒤에는 콘텐츠 자체에만 집중하면 된다. 좋아하는 만큼 즐겨 사용하기도 한다. 이 방법 앞에서 글자 크기를 키우거나 글자체를 바꾸는 데는 상대적으로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게다가 글자를 얼마나 키울지, 어떤 글자체로 바꿀지, 합당한 또는 합당해 보이는 이유를 찾다 보면 억지스러워질 때도 있다. 이런 취향은 당연히 내 의생활에도 반영된다. 로고나 메시지 하나 없는 검은색 티셔츠일지라도 몸에 걸치는 순간 내게는 지나치게 멋을 부리는 셈이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공식 웹사이트는 정말 근사합니다. 그런데 제 컴퓨터에서는 접속이 느릴 때가 있어요. 간헐적으로요. 왜 그럴까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드림호스트를 사용하는데, 싸구려 플랜인지라 한국에서는 조금 느립니다.
이 글은 꼭 이 웹사이트의 곁가지 같기도 하네요. 한데 웹사이트를 살펴보니 ‘새로운 질서’라는 말이 자주 눈에 띕니다. 얼핏 학교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신흥종교 같기도 한데요?
둘 다 맞거나 둘 다 틀립니다. 「새로운 질서」를 시작한 건 2016년, 미국 시적 연산 학교(School for Poetic Computation)에서 수학한 뒤 한국에 돌아온 뒤였죠. “어떤 대상을 좋아하고, 급기야 사랑하게 되면 그 아름다운 마음을 주위와 나누고 싶게 마련이다.” 「새로운 질서」에서는 웹을 이루는 기본적인 컴퓨터 언어를 익혀 자신의 관심사를 재료 삼아 자신만의 웹사이트를 만들어봅니다. 매주 금요일 열리는 「새로운 질서」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하자센터, 홍익대학교 등과 어깨동무하며 핸드메이드 웹의 정신으로 자신만의 웹사이트를 만드는 즐거움을 나눕니다. 어느덧 「새로운 질서」와 함께한 친구들이 어느덧 400여 명을 넘은 것도 모두 웹사이트 덕이죠. 웹사이트가 현실과 조금 더 가까워지거나 어떤 차원에서는 이미 현실을 대체한 오늘날, 「새로운 질서」가 새로운 문해력을 익히는 동시에 자신을 향한 사랑을 확장하는 시공간이 되기를 기대할 뿐입니다.

COS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와 관련된 책을 몇 권 꼽아주세요.
회사를 소개할 때, 제품을 기획하거나 제작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원칙은?
상황에 따라 수정되거나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세칙이나 부칙을 만들게 되거나) 실행된 뒤 곧바로 폐기되지 않는 유일한 원칙은 ‘국립국어원에서 정한 한글맞춤법과 외래어표기법을 준수하는 것’입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 공식 웹사이트의 ‘회사 소개’ 페이지에서는 한번 읽고서는 정확히 뜻을 헤아리기 어려운 없는 문장이 반복됩니다.
시작은 열세 번째 ‘시청각 문서’로 발표한 「회사 소개」였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A.P.C. 토트백을 분해해 홍보용 수건으로 활용하지 않습니다.” 를 시작으로 회사에서 하지 않는 일 서른일곱 가지를 소개했죠. 지금도 그렇지만, 회사를 설립한 당시 무슨 일을 하는 게 좋을지 몰랐거든요. 따라서 하지 않는 일을 소개하는 게 당연했죠. 나아가 모름지기 회사라면 하는 일보다 하지 않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찍이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가 묘사한 ‘멋진 신세계’군요. 이참에 인터넷을 해지하는 게 좋겠어요. 소셜 미디어도 죄다 탈퇴하고요.
너무 극단적인데요? 오늘날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가 되는 건 아무래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럼에도 웹사이트의 가치는 무화하지 않습니다.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뉴스, 24시간 운영되는 쇼핑몰, 언제 어디서나 접속할 수 있는 은행 등 오늘날 저뿐 아니라 누구나 마주하는 이기(利器)는 모두 웹사이트 덕이니까요.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저 웹사이트를 조금 더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시선 아닐까요? 요컨대 웹사이트는 새로운 표현의 장이자 새로운 언어가 될 수 있습니다. 율리시스가 세이렌의 노래를 감상하며 배를 조종했듯 디지털의 온갖 유혹에 현명하게 대처할 수만 있다면 말이죠. 이쯤에서 잠시 생각해볼까요? 오늘 하루 얼마나 많은 웹사이트를 방문했을까요? 그 경험은 무엇을 남겼을까요? 시인이 언어로 시를 쓰듯 웹사이트로 무엇을 표현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에서 웹사이트의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또 다른 제품 「‘좋아요’가 좋아요」입니다. 많은 사람이 깜찍한 하트 아이콘을 위시한 ‘좋아요’의 자발적 노예가 된 오늘날, ‘좋아요’를 신봉하는 이 웹사이트에서 방문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좋아요’뿐입니다. 그 앞에서 다른 기능은 불필요하죠.

웹사이트를 만들 때 견지해야 할 태도가 있을까?
‘조지 오웰(George Orwell)’이라는 필명으로 널리 알려진 영국의 소설가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ur Blair)는 「나는 왜 쓰는가」(Why I Write, 1946)에서 자신이, 나아가 작가가 글을 쓰는 동기를 네 가지로 정리했다. 『1984』(1949)를 발표하기 두 해 전인 1946년의 일이다.
이 네 가지 동기는 글쓰기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생산에 부합한다. 웹사이트를 만드는 사람은 어떤 단계에는 자연스럽게 디자이너나 마케터가 돼야 한다. 하지만 그 전에 작가(writer)가, 무엇보다 (순전한 이기심을 품은) 편집자가 돼야 한다. 이는 욕망을 발산하기 전에는 제약을 인식하고 제어해야 한다는 뜻이다. 소설가의 생각이 아무리 독창적이라도 올바른 문장을 사용하지 않으면, 즉 규약을 지키지 않는다면 독자와 의사소통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웹사이트를 만드는 데는 조금이라도 규칙을 위반하면 작동하지 않으니 말이다. 제약 속에서 틈을 발견하고 계속 벌려나가다 보면 제약은 또 다른 가능성이 된다. 웹 기술에 관한 최신 정보는 일차적으로 영어로 제공되는 만큼 영어 독해 실력도 중요하겠다.
앞서 웹사이트를 만드는 일은 인터넷이라는 식당의 메뉴판에 음식을 추가하는 일이라 말했다. 모든 음식이 한식 정찬처럼 성대할 필요는 없다. 꼭대기에 체리가 올라간 생크림 케이크나 레인보 셔벗도 좋다. 아주 단순하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해보는 경험이 중요하다. 그 경험이 다른 결과물을 완성하는 기준점이 되고, 완성하는 회수가 늘어날수록 기준점은 높아진다. 이 과정에서 마주하는 고민과 선택은 다른 작업과 분명 연동할 것이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공식 웹사이트는 일반적인 디자인 스튜디오 웹사이트의 공식을 따르지 않는 듯하다.
2015년부터 싸구려 웹 호스팅을 사용 중이다. 제품별 이미지를 드러내기에는 속도가 느리므로 제약을 따를 뿐이다. 게다가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디자인 스튜디오가 아니다.
쇠젓가락은 끝이 뭉뚝하고 무거워 사용하는 데 의외로 고난이도의 기술을 요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혹시 젓가락질을 잘하면 글자도 잘 쓸까요?
젓가락으로 콩자반을 하나씩 집어 먹다 보면 누구보다 젓가락질을 잘한다고 자부하게 됩니다. 반대로 계약서나 전시 방명록에 이름을 쓸 때는 제가 쓴 글자가 마음에 든 적이 별로 없어요. 원하지 않는 곳으로 획이 나아가 어딘가 어색한 지점에서 멈추곤 합니다. 필기구가 하필 붓이라면 결과물은 더 엉망이죠.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젓가락질을 하는 데 사용하는 근육과 글자를 쓰는 데 사용하는 근육은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키보드나 마우스, 터치스크린이 더 익숙해서 그럴지도 모르고요. 젓가락질을 조금 더 연습해야 할까요?
당신은, 역할은 다르지만, 인쇄 매체와 디지털 매체를 함께 다룬다. 좋아하는 책을 아우를 만한 특징이 있나? 있다면, 좋아하는 웹사이트와는 어떻게 다를까?
얼핏 평온하고 순진해 보이지만 들여다볼수록 어딘가 불온해 보인다. (또는 그 반대.) 처음 세운 논리와 원칙을 끝까지 유지하며 동시에 부순다. 가볍다.
소비자로서 내용은 내게 유익하기만 하면 그만이다. 이는 아무래도 상대적이고 유동적이다. 예컨대 간식으로 먹을 파이를 만드는 데 칼 세이건(Carl Sagan)의 『코스모스』(Cosmos)는 내가 구운 ‘우주적’ 파이의 맛까지 보장해주지 않으니까.
형식에 관해서는 할 말이 좀 더 있다. 마이크로 타이포그래피는 완벽할수록 좋지만, 매크로 타이포그래피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앞표지에 예쁜 꽃 사진 한 장만 넣어도 충분할 때가 있다. 중요한 건 그게 수선화인지, 양귀비인지다.
한편, 나는 디자인 학교에서 넓게는 웹, 좁게는 인터랙티브 디자인을 가르치기도 한다. 학생들에게 웹사이트는 판형이 정해지지 않은, 부피와 무게가 없는 책이고, 책은 하이퍼링크와 스크롤바가 없는, 부피와 무게가 있는 웹사이트라고 말하곤 한다. 당신도 알다시피, 웹이 과학자들의 논문 공유를 통한 공동 연구를 위해 시작된 것처럼 웹사이트의 형식은 책에 많은 부분을 빚지고 있다. 언젠가 둘은 형식에서는 갈림길에서 헤어졌지만 목적지는 하나다. (둘이 가는 길은 테서랙트 안에 있는 것 같다.) 물론 이사할 때는 책이 훨씬 불리하다. 반대로 웹사이트는 ‘인쇄한(publish)’ 뒤에도 언제든 수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절제력과 결단력이 없으면 팔목터널증후군이 생길 가능성이 커지니 주의해야 한다.
다른 언어를 다른 언어로 변환하는 일, 즉 번역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단행본을 번역한 적도 있는데, 자주 하는 편인가?
나 자신을 번역가로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어쨌든 내가 경험해본 바로 번역 과정은 코딩과 비슷했다. 출발어(입력)와 도착어(출력), 그 사이에 번역(함수)이 있다는 점에서.
이는 재미있게도 내가 배운, 시를 쓰는 과정과도 비슷했다. 시적 대상(입력)과 시(출력), 그 사이에 시적 인식(함수)가 있다는 점에서. 이런 생각은 시적 연산 학교(School for Poetic Computation, SFPC)에서의 경험을 떠올릴 때 더욱 분명해졌다. 내가 거기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이 아니라 주로 문학과 언어학을 배웠다고 말하는 걸 좋아하는 이유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안그라픽스를 거쳐 2016년부터는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겸 워크룸에 기생하고 있습니다. 워크룸에 기생하는 데 어려움은 없나요? 자율성은 얼마나 보장되나요?
‘기생’은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주요한 생존 전략입니다. 회사를 설립한 2015년 무렵에는 생산자들이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독립 스튜디오를 꾸리는 게 유행 아닌 유행이었어요. 저도 그 유행에 편승하고 싶었지만, 자본과 용기가 부족한 탓에 결국 제가 일하던 안그라픽스에 기생하기로 했죠. 그 덕에 숙주에게 노동력과 얼마간의 즐거움을 제공하면, 숙주의 동산과 부동산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워크룸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워크룸은 영리를 추구하는 회사지만, 이름처럼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는 생산자들이 모인 ‘작업실’이기도 해요. 소정 근로 시간(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에 맡은 업무만 무리 없이 수행하면 워크룸에서는 전시, 강연, 기고 등 외부 활동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편이에요. 특히 편집자 김뉘연 씨는 워크룸의 전 디자이너 전용완 씨와 미술가로 활동하며 출판사 ‘외밀’을 운영하고, 디자이너 유현선 씨는 ‘파일드(Filed)’의 일원이기도 해요. 구성원들이 회사에 멍에를 지지 않고, 후회나 미련 없이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아슬아슬한 환경이 역설적으로 워크룸의 에너지가 됩니다. 게다가 출판, 기획, 편집, 디자인, 웹사이트 구축, 소프트웨어 제작, 교육 등을 한데 수행하는 스튜디오가 드문 만큼 적지 않은 자극이 되고요. 2020년에는 이름을 밝힐 수 없는 회사 두 곳에서 파격적인 조건으로 민구홍 매뉴팩처링 인수를 제의받았는데, 고민 끝에 결국 워크룸에 남은 건 이런 환경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었어요. 지갑은 지금보다 훨씬 두둑해졌겠지만, 행복의 총량을 따져보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도 하고요. 혹시 민구홍 매뉴팩처링 인수에 관심 있는 분은 참고해주세요.
웹 디자인에 심취한 계기가 있다면?
열한 살 무렵인 1995년 야후! 지오시티에 첫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사랑하는 친구를 위해서였다. 마룬색 배경에 그를 행복하게 해줄 글과 이미지 사이로 MIDI 배경음악이 흘렀다. 하지만 2009년 야후!에서 지오시티 운영을 종료하면서 이제 그 웹사이트는 내 꿈속에만 있다. 어쨌든 그 이후로, 반드시 웹사이트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HTML, CSS, 자바스크립트를 이용해 나 또는 누군가를 위해 뭔가 만드는 건 내 오랜 즐거움 가운데 하나였다. 내 기준에서 쉽고 저렴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건 20여 년 전에 만든 것과 엊그제 만든 게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는 점이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웹 디자인 에이전시가 아니다.
오늘날 편집 디자이너를 희망한다는 것은 멍청한 것인가?
이 질문에는 어떤 대상을 향한 질문자의 마음과 질문자가 느끼는 어떤 대상을 둘러싼 주위의 인식이 어우러진 듯하다. 자신이 지닌 희망 자체에 관해서는 희망에 다가가 성공 또는 실패를 겪은 뒤 판단할 수밖에 없다. 일단 자신이 다가가야 한다. 이에 관해서는 누구도 멍청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조금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다른 사람의 희망에 관해서는 마음을 다해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