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2015년 이래 진행한 길고 짧은 인터뷰를 꼼꼼히 정리한 뒤 다시 무작위로 늘어놓은 「자주 하는 질문」을 통해 회사 또는 운영자에 관한 궁금증이 모쪼록 해소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단, 질문의 시기에 따라 현재와 다른 사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편, 질문의 어조에 따라 언급한 인물에 대한 존칭을 생략하기도 했습니다. 「자주 하는 질문」을 섭렵한 뒤에도 궁금증이 도무지 해소되지 않는다면 [email protected] 앞으로 소상히 말씀해주세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인정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단, 답장은 이메일 대신 언젠가 「자주 하는 질문」에서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민구홍이 가진 가장 장식적인 옷은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타이포그래피의 수많은 강조법 가운데 특히 ‘가운데 맞추기’를 좋아한다. 고전적이긴 하지만, 그저 양쪽 여백을 동일하게 설정하는 것만으로 손쉽게 콘텐츠를 강조하고 장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따금 극적인 효과를 주기도 하고. 그 뒤에는 콘텐츠 자체에만 집중하면 된다. 좋아하는 만큼 즐겨 사용하기도 한다. 이 방법 앞에서 글자 크기를 키우거나 글자체를 바꾸는 데는 상대적으로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게다가 글자를 얼마나 키울지, 어떤 글자체로 바꿀지, 합당한 또는 합당해 보이는 이유를 찾다 보면 억지스러워질 때도 있다. 이런 취향은 당연히 내 의생활에도 반영된다. 로고나 메시지 하나 없는 검은색 티셔츠일지라도 몸에 걸치는 순간 내게는 지나치게 멋을 부리는 셈이다.
디자인이 꼭 필요한가?
이야기를 할 때 가장 먼저 무엇을 이야기할지 결정한 뒤 어떻게 이야기할지 고려해야 하듯 디자인 또한 결국 필요한 일이다. 다만, 디자인 이전에 무엇을 디자인할지, 즉 무엇을 이야기할지 결정해야 한다.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디자인의 범위가 결정된다. 예컨대 디자인의 범위가 무척 협소한 세계를 떠올려볼 법하다. 일반 검색 엔진으로는 검색이 불가능한 다크 웹(Dark Web)상에서는 위조지폐, 무기, 마약, 음란물 거래를 비롯해 청부살인, 공문서 위조 등 수많은 범죄 행위가 일어나곤 한다. 이곳에 자리한 웹사이트들은 ‘어떻게’보다는 ‘무엇’에 집중한 이야기들이다. 웹사이트 방문객에게는 ‘어떻게’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까닭이다. ‘어떻게’에 공을 들인, 즉 디자인이 근사한 웹사이트는 오히려 방문객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받기 쉬울 테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체를 오가며 작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오늘날 ‘출판’(publishing)은 종이 위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 온라인상에서 콘텐츠를 공개하고 소개하는 일 또한 ‘출판’이라 부르는 만큼 이제는 종이 책을 ‘오프라인 출판물’로, 웹사이트를 ‘온라인 출판물’로 불러도 별로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종이 책과 웹사이트를 한데 출판물로 묶는다면, 즉 콘텐츠가 놓인 자리만 바뀌었을 뿐이라 믿는다면, 두 매체를 둘러싼 고민은 교정되거나 몇몇은 자연스럽게 해결될지 모른다.
스스로 작가를 겸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내 역할은 매체에 따라 제한되고 조금씩 달라진다. 대개 종이 책에서는 기획자와 편집자 사이를, 웹사이트에서는 기획자, 편집자, 디자이너, 프로그래머 사이를 오간다. 이 과정은 단순하게는 문장의 오류를 점검하거나 문장을 매끄럽게 다듬는 일에서 이따금 1차 생산자의 존재가 옹색해지는 창작이 되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잊지 않으려 하는 바는 작업 대부분이 콘텐츠 없이는 시작할 수조차 없는 2차 생산이라는 점이다. 출판이 말하기라면, 내 역할 가운데 하나는 말이 제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는 일이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1차 생산자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파악하는 일 아닐까?
‘타이포잔치’라는 행사가 있어요. 2001년부터 시작한 국제 타이포그래피 전시로 내년이면 어느덧 20년이 되는데요, 혹시 알고 계신가요? 아신다면 간단한 소감이나 인상을 말씀해주시겠어요?
소감이나 인상을 말하는 게 어색할 만큼 잘 알죠. 2년마다 타이포그래피를 주제로 전 세계의 디자이너들이 작가로 참여하는 대규모 전시는 동아시아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드무니까요. 그 대신 우화 한 편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언젠가 미국인 그래픽 디자이너 친구에게 이 행사에 참여하게 됐다고 털어놨을 때 이렇게 묻더군요. “오, 그렇구나… 축하해! 그런데 어떤 오탈자(typo)를 보여줄 계획이니? (Wow… Congratulations! But what type of typo do you want to show?)” 아주 순진한 얼굴로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회사를 소개할 때 워크룸에 “기생한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즉,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운영자의 근무지에 기생하는 회사인데, 운영 방식으로 기생을 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기생은 자연스럽게 결정된 회사의 생존 전략이다. 콘솔 게임 제작사 너티독(Naughty Dog)의 「라스트 오브 어스(The Last of Us)」 시리즈에는 온갖 ‘감염자(The Infected)’가 등장한다. 그들은 동충하초처럼 인간의 몸을 잠식해 숙주를 조종한다. 인간이 없다면 동력을 얻지 못한다. 민구홍 매뉴팩처링 또한 마찬가지다. 부족한 용기와 자본을 숙주를 통해 해결한다. 숙주에 노동력과 얼마간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대신 운영자가 받는 월급으로 운영비를 충당하고, 컴퓨터, 테이블, 커피 머신 등 숙주의 동산과 부동산을 이용하는 식이다. 그 덕에 영원히 알고 싶지 않은 세금과 관련한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이따금 숙주를 떠나 독립을 하거나 사업자 등록증을 발급받으라는 요구를 받기도 하지만, 그러는 순간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폐업을 신고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워크룸을 떠나 구글이나 테슬라에 기생하는 일이 있더라도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독립하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한편, 이런 상황임에도 최근에는 네덜란드에서 찾아온 인턴이 일하고 있다.
이런 도시 전설이 있다. 요컨대 “어느 날 한 부동산 중개인이 건물 한 채를 담당하게 됐다. 건물의 도면을 받아 구조를 살피던 중개인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도면상으로는 공간이 있어야 할 건물 중앙에는 그저 벽뿐이었다. 결국 중개인은 건물주의 허가를 받아 벽을 허물었다. 공간에는 다다미가 정갈하게 깔려 있었다. 그 위에는 중국식 식탁이 있었고, 그 위에 놓인 쌀밥 한 공기에서는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중개인은 사방을 조사했지만 공간에는 자신이 들어온 허물어진 벽 외에 어떤 출입구도 없었다.” 항간에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건물과 관련이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사실인가?
사실과 다르다.
지금까지 웹사이트는 구글이나 네이버, 웹진 『비유』 같은 것만 생각했는데… 그럼 웹사이트는 어떻게 만드나요? 누구나 만들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웹사이트는 개발자나 웹 디자이너만이 만들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럴 수도, 그럴 필요도 없고요. 즉, 웹사이트는 모두를 위한 매체입니다. 웹사이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코드(Code)로 컴퓨터와 대화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컴퓨터 언어가 필요하죠. HTML(HyperText Markup Language)을 비롯해 CSS(Cascading Style Sheets), 자바스크립트(JavaScript)는 단순한 컴퓨터 언어가 아니라 시인의 펜이자 작곡가의 악보입니다. 자연어의 문법이 주어, 동사, 목적어로 세계를 구축하듯 웹상에서 HTML은 태그로, CSS는 선택자와 속성으로, 자바스크립트는 함수와 변수로 세계를 구축합니다. 나아가 세 언어는 저마다 고유한 특성을 지닙니다. HTML은 구조를 맡습니다. 건축가가 건물의 뼈대를 세우듯 HTML은 웹 페이지의 기본 구조를 만듭니다. CSS는 스타일을 맡습니다. 화가가 캔버스에 색을 입히듯 CSS는 웹 페이지에 시각적 아름다움을 더합니다. 자바스크립트는 기능을 맡습니다. 작곡가가 음표로 멜로디를 만들듯 자바스크립트는 웹 페이지에 생동감을 불어넣습니다. 시의 운율, 비유, 이미지가 어우러져 하나의 시를 완성하듯 세 언어는 서로 긴밀히 연결돼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이 과정은 그 자체로 순수한 창작 행위죠.
2018년에는 민간인의 첫 번째 달 여행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다가오는 우주 시대를 위한 대비책이 있다면?

루나 엠버시(Lunar Embassy)를 통해 달에 1에이커(약 1,224평)짜리 부동산을 마련해두긴 했습니다. 일론 머스크 관련 기사도 틈틈이 챙겨보죠. 최근(2021년 4월)에는 이런 말을 했더군요.
솔직히 초기엔 많은 사람들이 죽을지도 모른다. 이는 영광스러운 모험이자 놀라운 경험이 될 것이다. 불편하고 입맛에 안 맞게 들릴 수도 있지만, 당신도 죽을 수 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정확히 무엇을 하는 회사인지 세 줄 내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회사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사람에게는 어떻게 소개하는지도 궁금합니다.
공식 웹사이트를 비롯해 여러 방식으로 회사를 소개하기 때문일까요? 사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소개할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이미 어느 정도 짐작하신 상태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곤 합니다. 회사를 소개하는 방식은 소개하는 대상마다 달라지는 것 같아요. 며칠 전 한국 코카-콜라와 미팅할 때는 코카-콜라를 사랑하는 회사로 소개했어요.
2019년부터 매주 금요일마다 ‘현대인을 위한 교양 강좌’를 표방하는 ‹새로운 질서›를 진행한다. 개설될 때마다 신청이 마감되는 이 강좌의 정체는 무엇인가.
‹새로운 질서›는 2016년 크리스마스 이튿날 워크룸에서 열린 비공개 웹 세미나에서 시작됐다. 시적 연산 학교를 마치고 뉴욕에서 막 돌아온 참이었는데, ‘현대인을 위한 교양’으로서 웹 기술을 익혀두면 워크룸 구성원들이 일하는 데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서였다. 그 뒤 여러 특강과 워크숍,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강의 등을 통해 조금씩 커리큘럼이 다듬어져 지금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200여 명의 ‘‹새로운 질서› 친구들’과 추억을 쌓았고, 이들 가운데는 국립현대미술관의 «프로젝트 해시태그»(Project Hashtag, 2020–) 사업에 선정돼 느닷없이 미술계로 편입되기도 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 ‹새로운 질서›, 웹사이트. 웹사이트 제목인 ‘새로운 질서’는 1초마다 낱자별로 새로운 질서를 부여받는다. 사진 제공: 작가
‹새로운 질서›에서는 기술로서 디자인을 다루기도 하지만, 웹 디자인 강좌가 아니다. 오히려 ‘실용적이고 개념적인 글쓰기’ 강좌에 가깝다. ‹새로운 질서› 친구들은 자신의 관심사(자신이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등)를 토대로 자신만의 콘텐츠를 생산하고, HTML, CSS, 자바스크립트 같은 컴퓨터 언어를 익혀 콘텐츠에 단계별로 새로운 질서를 부여해본다. 기술을 다루므로 실패에 익숙해지고, 자신의 한계를 파악해 욕망을 발산할 우회 전략을 고민해보기도 한다. 글쓰기의 결과물은 결국 웹사이트지만, 사실 더욱 가치 있는 건 그 과정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 미디어만으로 누구나 쉽게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시대다. 그럼에도 왜 굳이 개인 웹사이트를 만들어봐야 할까? ‘새로운 질서’를 종교화하려는 속셈 아닌가?
“그래픽 디자이너라면 모름지기 제대로 된 책 한 권을 만들어봐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고민과 선택이 모든 종류의 생산에서 반복되는 까닭일 테다.
HTML 에너지(HTML Energy)를 운영하는 엘리엇 코스트(Elliott Cost)가 JR 카펜터가 주창한 ‘핸드메이드 웹(Handmade Web)’을 변주해 ‘핸드메이드 웹사이트’라는 용어를 제안한 적이 있다. 완전히 백지 상태에서 시작한, HTML과 CSS만으로 이뤄진, 자바스크립트가 최소한으로 사용된, 정적 웹사이트를 가리킨다. 제약이 분명한 만큼 콘텐츠와 콘텐츠를 둘러싼 국면을 편집하는 데 집중할 수 있고, 그 덕에 ‘실용적이고 개념적인 글쓰기’가 가능해진다. 여기에는 백엔드가 없으므로 관리하는 데 불편함이 따른다. 하지만 이렇게 웹사이트를 만들어보는 건 좋은 출발점이 된다. 내 경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지루한 작업을 해보는 게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자연스럽게 작업을 자동화하려는 욕망이 일고, 그 욕망을 따라가보는 것이다.

온라인 전시에는 초심자를 위한 카르고(Cargo) 같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겠지만, 템플릿은 콘텐츠와 유리된 상태다. 템플릿에 콘텐츠를 억지로 맞출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결과물 또한 엇비슷해진다.

자신의 관심사를 토대로 콘텐츠를 생산하고, 개인 웹사이트를 만들어보는 일은 결국 자신을 사랑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자신을 도저하게 사랑하다 보면, 남도 도저하게 사랑할 수 있다. 콘텐츠를 다루는 능력을 기르고, 기술을 이해하고 주체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건 덤이다.
강의실에서는 수영 강사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 학생들을 물속으로 떠밀어 아무리 영법을 가르쳐도 결국 근육을 움직이는 건 자기 자신이다. 어떤 근육을 어떻게 얼마나 움직여야 할까? 결국 자신의 욕망에 달렸다. 욕망에 집중하고, 욕망을 따라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새로운 기술을 익히게 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해밀톤 호텔 수영장에서 물장구만 쳐도 흡족할 테다.
인쇄물과 비교하면 한글 웹 폰트 또한 장벽 아닐까?
한글 웹 폰트는 영문보다 글리프가 많으므로 그만큼 용량이 크다. 따라서 웹 브라우저가 파일을 내려받아 렌더링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비용에 관해서도 이야기해 볼 만하다. 2020년 한 글자체를 웹 폰트로 사용해 보려고 제작사에 비용을 문의해 보니 1,000만 원에 가까웠다. 폰트 파일이 무단으로 유출될 수 있음을 감안한 금액일 텐데, 그럼에도 인쇄물용 라이선스보다 많게는 30배 이상 되는 금액은 사실 납득이 되지 않는다. 폰트 디자이너의 생계와도 관련한 문제겠지만, 구글 폰트(Google Fonts)에 서비스되는 한글 폰트가 더욱 많아지면 좋겠다. 최근에 폰트 디자이너 류양희는 ‘고운바탕’과 ‘고운한글’을, 함민주는 ‘함렡’(Hahmlet)을 구글 폰트에 공개한 바 있다. 노토 산스(Noto Sans)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스포카(Spoqa)의 ‘스포카 한 산스’(Spoqa Han Sans)와 길형진의 ‘프리텐다드’(Pretendard)는 특히 완성도가 높다. 상징성 면에서 AG 타이포그라피연구소의 안상수체나 최정호체는 오픈 소스로 공개하면 좋겠는데, 지나친 욕심일까?

허약한 인간을 모두 감염시킨 뒤 세계를 구원하면(save the world) 평화로운 세계를 인쇄용지에 맞게 출력해 저장할 수 있도록 설정한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목숨 건(?) 훈련을 마치고 받는 수료증 같기도 했고, 단순하지만 결과를 물질로 기념할 수 있는 소소한 재미도 있었고요. 제품의 마지막을 이렇게 설정한 까닭이 궁금합니다.
바이러스나 인간, 어느 쪽이든 세계를 구원하는 일이 세계를 출력해 저장하는 일처럼 쉽고 간단하면 좋겠습니다.
회사의 생산물을 ‘작품’이나 ‘작업’ 대신 ‘제품’으로 부르는 까닭은 무엇인가?
칸트 이후 언어가 대상을 투명하게 반영한다는 환상은 깨졌다. 중요한 건 주체가 대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규정하는지, 나아가 편집하는지다. ‘작품’이나 ‘작업’이라는 어휘는 생산물이 소비되는 오늘날의 국면을 반영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 국면을 흐리는 환상을 덧입히기까지 한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회사’인 만큼 생산물을 아우르는 단어로는 ‘제품’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반대로 ‘제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픈 마음에 ‘회사’를 표방했는지도 모르겠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첫째는, 운영자의 근무지에 기생하는, 다시 말해 근무지의 동산과 부동산을 무단 이용하는 운영 방식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는, 실제로도 그렇지만, 형식적으로도 운영자가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취미로 삼을 수 있는 플랫폼을 마련해줍니다. 둘째는 리코타 치즈를 중심으로 한 음식 사업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리코타 치즈는 제작하기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고, 맛있는 데다가 아주 하야니까요. 물론 계획이란 게 언제나 그렇듯 수정되거나 무기한 연기될 여지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주로 사용하는 컴퓨터 언어가 궁금합니다.
HTML, CSS, 자바스크립트, PHP, 파이선입니다. 여기에 한국어와 영어도 포함하고 싶습니다. 프롬프트처럼 이제 자연어로도 컴퓨터와 소통할 수 있는 시대니까요.
현재 DDDD에서 「바이러스 시뮬레이터」(2020)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기존 제품이 회사를 소개하는 데 중점을 뒀다면, 이번 제품은 코로나19라는 신종 감염병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민구홍 매뉴팩처링에도 변화가 있었나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회사 소개는 여러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때로는 자연스럽게, 때로는 노골적으로, 때로는 느닷없이, 때로는 누군가의 명성에 기대. 이 제품은 회사를 소개하는 일 또한 수행합니다. 제품 속 세계에서 꽃, 나무, 돌멩이, 인간, 체리 사이에 민구홍 매뉴팩처링(Min Guhong Mfg.)이 놓였을 뿐이지만요. 코로나19 이후에는 특히 오프라인 전시가 취소된 미술관 등에서 제품이나 기술 지원에 관한 문의가 늘었습니다. 1인 회사인 탓에 응대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민구홍 매뉴팩처링 이메일 응대 지침」에 따라 성심성의껏 임하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아른험에서 원격으로 근무하던 한국인 유학생 인턴이 귀국해 회사의 숙주인 워크룸에서 한 달 동안 지내기도 했죠. 지금은 제주도로 출장을 간 상태입니다.
온라인에서 열람하는 작품과 오프라인 작품의 차이는 얼마나 극복돼야 할까?
차라리 처음부터 작품이 온라인과 오프라인, 두 가지(branch)로 존재할 수 있는 여지를 염두에 두면 어떨까? 또는 작품의 원본은 온라인에 두고, 작품이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번역되는 과정이 오프라인 작업의 요소가 되는 건?
이제야 웹사이트가 ‘진보한 인쇄물’이라는 점이 이해가 간다. 인쇄물을 만드는 데는 단행본을 기준으로 적어도 2개월 정도가 걸리는데, 웹사이트는 보통 어느 정도가 걸리나?
정적 웹사이트 겸 포스터식 웹사이트는 콘텐츠가 제대로 마련되고 콘셉트가 정해진 상태라면 사실 하루만이라도 완성할 수 있다. 물론 이는 테스트를 제외한 시간이다. 어떤 웹사이트는 사용하는 데 무리가 없을 만큼 공개한 뒤 점진적으로 업데이트하기도 한다. 서울시립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와 함께한 ‹NR 베이커리›(NR Bakery, 2021)가 비슷한 경우인데, 인쇄물 작업에 익숙하다면 낯선 방식일지 모른다. 콘텐츠를 기획하고, 편집하고, 검토하는 시간을 제외하더라도 1개월은 걸린다. 모두 고려하면 한 웹사이트를 만드는 데 2–3개월 정도 걸리는 게 일반적이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향한 사랑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손으로 쥐거나 눈으로 볼 수 없는 사랑을 어떻게 실체화할지 오랫동안 고민해왔습니다. 고객의 관심과 사랑을 원동력으로 삼는 회사인 만큼 이는 당연한 당면 과제였죠. 막연한 느낌은 대개 막연한 채로 남고, 어떤 느낌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사랑만큼은 분명히 다르다고 확신합니다.

조금 부족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사랑을 표현할 수 있다면!

받는 쪽은 어쨌든 감사할 따름일 겁니다.
좋아하는 과일 다섯 가지를 밝힌다면?
100그램당 칼로리와 함께 큰 것부터 작은 것 순으로.
웹사이트를 만드는 데 필요한 비용은 어느 정도가 적절할까? 비용 앞에서는 누구나 숨을 죽이게 되는 만큼 어쩌면 가장 중요한 질문일지 모른다.
일정, 웹사이트의 규모나 필요한 기능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적게는 몇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이 들기도 한다. 작업자마다 요율도 다를 것이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단행본 한 권을 제작하는 데 필요한 전체 비용을 기준으로 삼는 편이다. 기획, 편집, 디자인 같이 매체와 무관한 일뿐 아니라 제작, 유통, 관리 등도 웹사이트를 만드는 일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비용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도메인 구입 비용, 서버를 임대하는 비용, 트래픽이 초과됐을 때 트래픽을 초기화하는 비용 등이다. 모든 프로젝트의 예산이 넉넉한 건 아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고객의 마음을 헤아려 어떤 방식으로든 일이 진행되도록 예산에 적합한 방식을 제안하기도 한다. 대신 ‘회사 소개’라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주업무에 입각해 어떤 방식으로든 회사를 소개해달라고 주문하는 식이다.
‘편집’은 출판계에서 교정이나 교열같이 다소 협소한 의미로 사용되곤 하지만, 이미 여러 분야에서 창작 이상의 의미로 확장되고 있다. 웹사이트에서 콘텐츠를 다룰 때는 어떤 에디터십이 필요할까?
이 또한 근본적으로는 인쇄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단, 글자나 이미지가 콘텐츠를 드러내는 것 외에, 예컨대 버튼으로서 특정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즉, 콘텐츠가 사용자와 어떻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지까지 고려하고 계획해야 한다는 뜻이다.
디자인이나 코딩 같은 기술을 독학으로 익혔다. 또는 일반적인 교육 과정을 통해 습득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 결과, 이제껏 접한 경향들과는 거리가 있는데, 자신에게 필요한 기술을 어떻게 습득하는지, 그 전략이 궁금하다.
일곱 살 무렵 처음 컴퓨터를 접했고, 열한 살 무렵 처음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코딩 이전에 컴퓨터를 다루는 건 내게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대학교에서는 문학과 언어학을 공부했고, 그래픽 디자이너 안상수 선생의 연구실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그 뒤에는 안그라픽스를 거쳐 워크룸에서 편집자로 일한다. 디자인은 실무에서 익혔다. 운 좋게 주위에 늘 훌륭한 선생을 비롯해 실용적인 기술과 유연한 태도를 겸비한 동료들이 있었고, 그들이 디자인에서 맞닥뜨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지켜보는 게 중요한 학습 과정이었다.
2017년 최성민 선생의 추천으로 그래픽 디자이너 밥 길(Bob Gill)의 『Forget all the rules about graphic design. Including the ones in this book.』을 한국어로 번역하고 편집한 과정도 도움이 됐다. 책은 그 자체로 훌륭한 디자인 교과서였다. 한편, 책뿐 아니라 30여 년 동안 인터넷에 축적된 정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자신을 열성적인 학생으로 치환할 수 있다면 학위와 무관하게 인터넷은 꽤 괜찮은 학교다. 잘못된 정보가 있기는 하지만, 이를 감별해내는 일 또한 학습의 일부다. 기술을 습득하는 데 필요한 동력은 문학과 언어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또 편집자로서 글을 읽고 쓰는 일을 충분히 훈련한 덕에 나오는 것 같다. 기술에 관한 정보는 대개 글이니까.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안그라픽스를 거쳐 2016년부터는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겸 워크룸에 기생하고 있습니다. 워크룸에 기생하는 데 어려움은 없나요? 자율성은 얼마나 보장되나요?
‘기생’은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주요한 생존 전략입니다. 회사를 설립한 2015년 무렵에는 생산자들이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독립 스튜디오를 꾸리는 게 유행 아닌 유행이었어요. 저도 그 유행에 편승하고 싶었지만, 자본과 용기가 부족한 탓에 결국 제가 일하던 안그라픽스에 기생하기로 했죠. 그 덕에 숙주에게 노동력과 얼마간의 즐거움을 제공하면, 숙주의 동산과 부동산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워크룸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워크룸은 영리를 추구하는 회사지만, 이름처럼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는 생산자들이 모인 ‘작업실’이기도 해요. 소정 근로 시간(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에 맡은 업무만 무리 없이 수행하면 워크룸에서는 전시, 강연, 기고 등 외부 활동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편이에요. 특히 편집자 김뉘연 씨는 워크룸의 전 디자이너 전용완 씨와 미술가로 활동하며 출판사 ‘외밀’을 운영하고, 디자이너 유현선 씨는 ‘파일드(Filed)’의 일원이기도 해요. 구성원들이 회사에 멍에를 지지 않고, 후회나 미련 없이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아슬아슬한 환경이 역설적으로 워크룸의 에너지가 됩니다. 게다가 출판, 기획, 편집, 디자인, 웹사이트 구축, 소프트웨어 제작, 교육 등을 한데 수행하는 스튜디오가 드문 만큼 적지 않은 자극이 되고요. 2020년에는 이름을 밝힐 수 없는 회사 두 곳에서 파격적인 조건으로 민구홍 매뉴팩처링 인수를 제의받았는데, 고민 끝에 결국 워크룸에 남은 건 이런 환경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었어요. 지갑은 지금보다 훨씬 두둑해졌겠지만, 행복의 총량을 따져보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도 하고요. 혹시 민구홍 매뉴팩처링 인수에 관심 있는 분은 참고해주세요.
웹사이트나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일, 나아가 코딩이 글쓰기와 다르지 않다고 밝혀왔다. 워드프로세서로 어떤 프로그램을 사용하는가?
글쓰기의 결과물이 일반적인 글이어야 한다면 iA 라이터를, 여기에 편집자 등과 협업해야 한다면 구글 문서를 사용한다. 웹사이트나 비디오게임, 구글 크롬 확장 프로그램 같이 일반적인 글일 필요가 없다면 서브라임 텍스트를 사용한다. 모두 별다른 설정 없이 글쓰기 자체에 집중할 수 있고, 가볍고 빠르게 작동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사정상 거절했지만, iA 라이터를 제작하는 iA로부터 프로그램의 한국어판을 위해 한국어에서 사용되는 진부한 표현을 조사해달라는 의뢰를 받기도 했다. 입력한 글에서 진부한 표현을 감지해 흐리게 표시하려는 의도였는데, 진부함은 진부함 나름대로 누구에게나 익숙하다는 점에서 실용적이다. 「자주 하는 질문」 속 문장 또한 뜯어보면 진부한 문장 구조로 이뤄져 있지 않은가? 게다가 진부함 덕에 낯섦이나 파격으로 받아들여질 법한 시도가 유의미해지기도 한다.
앞으로 온라인 출판물과 오프라인 출판물이 어떻게 발전할지, 그리고 그 디자인은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우리에게 친숙한 종이 책의 형식은 1,000여 년 전 코덱스(Codex)의 발명과 함께 완성됐다. 콘텐츠가 두루마리를 벗어나 코덱스 안에 놓이면서 독자는 더욱 쉽고 빠르게 정보를 열람할 수 있게 됐다. 오늘날에는 재료와 제작 방식이 다양해졌을 뿐 재단된 낱장의 종이가 묶인 형식에는 변함이 없다. 한국에서 종이 책을 둘러싼 환경은 2000년대 초 독립 출판 유행과 함께 생산자가 늘어나며 내용과 형식에서 극단적인 실험이 이뤄지는 단계를 거쳤다. 동시에 소비자의 취향은 더욱 개인화하고 고급화했다. 한 분야에서 모든 영역이 상향 평준화하면 재미있는 현상이 일어나곤 한다. 현재에 막연한 거부감을 느끼거나 다시 과거로 눈을 돌리는 것이다. 이 현상이 끝나면 해당하는 분야에 새로운 생산자와 소비자가 유입되며 새로운 질서가 등장한다. 그럼에도 종이 책에서는 새로운 시도를 감행하더라도 코덱스의 자장을 벗어날 수 없다. 내 경우에 종이 책 디자인의 앞날에 관해서는 일부 생산자만 관심 있고, 소비자 대부분은 전혀 관심 없을 개인적이고 미시적인 영역, 예컨대 세로축에서 따옴표의 적절한 위치 같은 사항에 관해서만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웹사이트에서 콘텐츠는 코덱스를 벗어나 다시 두루마리(scroll) 안에 놓인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웹사이트를 출판물로 한정한다면 종이 책과 비슷한 과정을 겪게 되지 않을까.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2021년의 트렌드 또는 문화 현상은?
지금까지 경험해본 바로는 이해할 수 없는 대상과 사랑에 빠지는 건 이따금 감행해볼 만한 일이다.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되리라는 것을 예감하더라도 몸과 마음을 그저 흐름에 맡겨보는 것이다. 2021년의 트렌드 가운데 특히 메타버스(Metaverse)와 NFT(Non-Fungible Token)는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고, 사실 이해하고픈 마음도 별로 일지 않지만, 분위기상 한동안 이야깃거리가 되리라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도 여기에 한 발 담글 수 있는 여지가 없을지 기회를 엿보고 있다.
미국 뉴욕의 시적 연산 학교(School for Poetic Computation, SFPC)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당신은 ‘좁은 의미의 문학과 언어학’으로 부르기를 좋아하지만…)을 공부했다. 왜 그 학교를 선택했나? 주로 무엇을 배웠나?
5년여 동안 일한 안그라픽스를 그만둘 무렵, 내가 편집하고 디자인한 『타이포그래피에 관한 에세이』의 보도 자료를 웹에 게시하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뉴욕 중심가에 있다는 점과 교육 과정이 길지 않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 서로 어울릴 법하지 않은 어휘인 ‘시적(poetic)’과 ‘연산(computation)’을 조합한 학교명이 멋있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자유분방한 학교의 분위기와 달리 이름만큼은 세심하게 결정한 듯했고, 경쟁률도 모르는 상황에서 휴가 삼아 다녀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의 시인 케네스 골드스미스(Kenneth Goldsmith)가 출강했다는 점도 기대가 됐다.
운 좋게 합격한 학교는 내 상상보다 (긍정적인 의미로) 훨씬 더 이상했다. 학생들의 면면은 화이트 해커, 형사학 전공 대학원생, 건축가, 무용수, 일렉트로닉 음악가 등 다양했다. 참고로 내 코딩 컨벤션 선생은 프랑스에서 제빵사로 일하던 헬렌이었다. 학교에서는 예술 이론과 컴퓨터 이론을 둘러싼 개념적이고 실용적인 수업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진행되고, 강연이나 워크숍이 있는 날은 더 늦게 끝나기도 했다. (뉴욕은 지하철이 24시간 운영된다.) 주말도 대부분 학교에서 생활하며 일반 대학교에서 몇 학기 동안 익히고 고민할 것을 짧은 시간 안에 소화해야 했다. 특히 미국의 시인이자 MIT 디지털 미디어 교수인 닉 먼포트(Nick Monfort)의 수업에 열심히 참여했다.

한 가지 주지할 점은 이 학교가 기술을 처음부터 하나하나 가르쳐주는 친절한 학교는 아니라는 점이다. 조금 과장하면 선생은 맞닥뜨린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힌트를 제공하는 ‘검색어 제안기’로 기능하고, 학생은 선생이 제안한 검색어를 이정표 삼아 인터넷을 헤매면서 자신의 욕망과 기술적 한계를 인식하고 우회 전략을 고안해야 했다. 이런 교수법이 유의미한 건 중요한 게 기술 자체가 아니라 어떤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지기 때문이다.

마지막 수업은 자신만의 학교를 만드는 것이었는데, 학생이 반대로 선생의 입장에서 교육 자체에 관해 고민해보는 시간이었다. 내가 제안한 학교는 리코타를 중심으로 요리, 글쓰기, 코딩, 디자인, 마케팅을 익히는 ‘리코타 인스티튜트(Ricotta Institute)’였다. 내가 매주 금요일에 진행하는 「새로운 질서」는 언젠가 문을 열 리코타 인스티튜트의 프로토타입인 셈이다. (‘현대인을 위한 교양 강좌’를 표방하는 이 강좌에서 주로 다루는 바는 아트선재센터에서 발표한 「새로운 질서」에서 체험할 수 있다.)

단, 학교에는 이렇다 할 졸업장이 없었다. 태평양 건너 타국에까지 가서 공부를 마쳤는데, 이를 증명할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인가. 결국 졸업 작품으로 졸업장 생성기를 제작해 스스로, 그리고 친구들에게 학교 대신 졸업장을 수여했다. 학교 직인을 찍는 자리에는 「무작위 서명 생성기(Random Signature Generator)」가 무작위로 생성한 자신의 서명이 들어갔다.

나를 입양하고 싶다던 루이스 아저씨(위 사진 왼쪽 남성)와 매릴린 아줌마(뒤쪽 여성),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또 다른 대모인 로럴 슐스트(Laurel Schwulst)를 만난 것도 큰 행운이다.
영감은 어디서 얻나요?
제품 주문자의 요구 사항과 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각종 마케팅 전략입니다.
본인이 기꺼이 광고판을 자처하고 싶은 브랜드, 비밀이 아니라면 알려달라.
예상했을지 모르겠지만 민구홍 매뉴팩처링이다. 티셔츠를 제작하는 데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갖추지 못한 또 다른 전문성과 섬세함이 필요하다. 혹시 함께할 동업자를 추천해줄 수 있다면 감사하겠다. 티셔츠를 제작하지 않더라도 생각지 못한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다.
안녕하세요. 그래픽 디자이너 김재연입니다. 안그라픽스 랩 방문 당시 잠시 제안한 바를 편지에 담아 보내드립니다. 제목은 「민구홍 매뉴팩처링 귀중」입니다. 참고로,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제품 가운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영혜 중공업 귀중」의 소스 코드를 훔쳐왔습니다. 그럼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감동적인 편지 잘 읽었습니다. (가로세로 100vw, 100vh 크기로) 좋습니다. 당장 월요일부터 출근하시면 좋겠습니다. 월요일이 공휴일이라면 화요일부터요. 그나저나 소스 코드를 훔치는 데 일가견이 있으시네요!
강이룬 선생님이 운영하시는 KAIST 시각도구연구실에 학부생 인턴으로 합격했습니다. 3월이면 대전으로 이사해야 하는데 추천해주실 만한 제품이 있을까요?
먼저 축하드립니다. 「박스 박스 테이프」 어떨까요? 박스를 포장하는 데 사용하시면 좋습니다. 기존 박스 테이프와 다른 점이 있다면 테이프 표면에 ‘BOX’라고 인쇄돼 있습니다.

「비치 비치 타월」 또한 추천합니다. 한국의 대표적 분지인 대전에서도 바닷가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두루두루 아티스트 컴퍼니와 ‘사랑의 MOU’를 체결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렇다면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두루두루 아티스트 컴퍼니에 아티스트로 소속되는 셈인가? 아니면 뮤지션?
글쎄?
2020년 현재 HTML의 표준 명세인 HTML5에서 사용되는 태그 113가지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태그는 무엇인가요?
<a> 태그입니다. 하이퍼링크를 만들어 콘텐츠와 콘텐츠를 잇는 태그죠. a는 ‘닻(anchor)’을 뜻하고요. 즉, 우리가 어떤 웹사이트에서 하이퍼링크를 클릭했을 때 우리는 그곳에 닻을 내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셈입니다. 인쇄물과 웹사이트를 구별짓는 대표적인 태그이기도 합니다. 인쇄물에서 각주, 방주, 미주에 불과했던 콘텐츠는 <a> 태그 덕에 웹에서 새로운 지위를 획득했습니다. 웹을 웹답게 만드는, 웹의 산소 같은 존재가 된 거죠.
이 글은 꼭 이 웹사이트의 곁가지 같기도 하네요. 한데 웹사이트를 살펴보니 ‘새로운 질서’라는 말이 자주 눈에 띕니다. 얼핏 학교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신흥종교 같기도 한데요?
둘 다 맞거나 둘 다 틀립니다. 「새로운 질서」를 시작한 건 2016년, 미국 시적 연산 학교(School for Poetic Computation)에서 수학한 뒤 한국에 돌아온 뒤였죠. “어떤 대상을 좋아하고, 급기야 사랑하게 되면 그 아름다운 마음을 주위와 나누고 싶게 마련이다.” 「새로운 질서」에서는 웹을 이루는 기본적인 컴퓨터 언어를 익혀 자신의 관심사를 재료 삼아 자신만의 웹사이트를 만들어봅니다. 매주 금요일 열리는 「새로운 질서」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하자센터, 홍익대학교 등과 어깨동무하며 핸드메이드 웹의 정신으로 자신만의 웹사이트를 만드는 즐거움을 나눕니다. 어느덧 「새로운 질서」와 함께한 친구들이 어느덧 400여 명을 넘은 것도 모두 웹사이트 덕이죠. 웹사이트가 현실과 조금 더 가까워지거나 어떤 차원에서는 이미 현실을 대체한 오늘날, 「새로운 질서」가 새로운 문해력을 익히는 동시에 자신을 향한 사랑을 확장하는 시공간이 되기를 기대할 뿐입니다.

지금까지 아트선재센터의 ‹홈워크›(HOMEWORK, 2020), 국립현대미술관의 ‹프로젝트 해시태그›(2020–), ‹서울시립미술관 모두의 연구실 세마 코랄›(SeMA Coral, 2021), ‹타이포잔치 2021›(2021), ‹옵/신 페스티벌›(Ob/Scene Festival) 등 여러 크고 작은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누군가는 과장을 보태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웹사이트 제작 공장’이라 표현하기도 했는데, 웹사이트를 글쓰기의 결과물이라 말한 게 특히 인상적이다.
약 2년 사이 일반에 공개하지 않는 것까지 헤아리면 100여 개는 될 것 같다. 처음 ‘민구홍 매뉴팩처링’이라는 회사명을 결정했을 때, 즉 내 이름 뒤에 ‘매뉴팩처링(manufacturing)’을 붙이는 게 좋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막연히 회사가 글쓰기와 편집을 통해 이런저런 ‘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하지만 비즈니스가 이런 식으로 확장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나는 이제껏 글의 내용뿐 아니라 글쓰기의 형식과 방법에 관해 고민해왔는데, 생각해 보면 이런 게 내게 적합한 글쓰기 방식 아닐까 싶다. 나는 웹사이트를 디자인한다기보다 그저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고 편집한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물 가운데 하나가 웹사이트고, 그게 용케도 오늘날 누군가의 욕망에 적절하게 부합하는 거고. 여러 차례 밝혀왔듯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웹 디자인 에이전시나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가 아니다.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입니다. 학생 때 만든 작품은? 가장 기억나는 작품은?
학생 때 사용하던 컴퓨터가 망가진 탓에 구체적으로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문학을 공부하던 시절 소설 과제로는 시 같은 소설을 썼고, 시 과제로는 소설 같은 시를 썼습니다. 평론 과제로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작품에 관한 평론을 썼고요. 평론가 선생님께서 평론을 쓴 작품을 가져오라셔서 거짓말이 완전히 들통났죠. 소설가 교수님 말씀이 늘 생각납니다. “무엇보다 거짓말에 능해야 한다.” “사실과 허구를 병존시켜야 한다.”
졸업 작품으로는 시 열 편을 썼는데, 시를 한 편 쓰고, 계속 그 시를 편집해 나머지 아홉 편을 완성한 기억이 납니다. 시적 연산 학교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학교에서는 항상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했던 것 같아요. 과제를 부여받으면 항상 제가 기분 좋게 움직일 수 있는 틈을 찾아내보려 했고, 그리고 그 틈을 계속 벌려보고요. 단, 학교에서 요구한 기본적인 제약은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요.
구글(Google)을 통해 매듭 묶는 방법, 이케바나(いけばな), 디자인 등 갖가지 실용적인 기술을 익혔다는 점도 재미있었어요.
웹은 제게 또 다른 학교입니다. 요즘에는 누구에게나 그렇지 않을까요? 물론 잘못된 정보가 적지 않지만, 거기서 옥석을 가려내는 것도 학습의 일부예요. 물론 조금 더 수월하게 디자인을 익힌 데는 안상수 선생님 연구실, 안그라픽스, 워크룸을 거치면서 솜씨 좋은 생산자들과 교유한 덕도 있죠. 『이제껏 배운 그래픽 디자인 규칙은 다 잊어라. 이 책에 실린 것까지.』를 번역하는 과정도 공부가 됐어요. 실제로 이 책은 여러 학교에서 그래픽 디자인 교재로 사용되고, 네덜란드의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익스페리멘털 젯셋(Experimental Jetset)은 이 책을 거의 성경처럼 여기죠. 차례만 읽어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책 제목처럼 언젠가는 잊어버려야겠지만요.
「회사 소개」를 비롯한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제품과 당신이 숙주의 피고용인으로서 수행하는 ‘편집’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오늘날 ‘편집’은 제품처럼 도처에 있다. 아이폰의 기본 메일 애플리케이션만 실행해봐도 편집의 위상을 단번에 알 수 있다.

나는 대학에서 문학과 언어학을 공부했다. 소설 작법 시간에 선생님은 자신이 소설을 쓰는 이유에 관해 “그저 거짓말을 잘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러려면 사실과 허구를 병존시켜야 한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선생님 말씀을 곧이곧대로 따르는 학생이었던 것 같다.

요즘 나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각 제품에 관한 정보를 한 줄로 정리하고픈 야심을 품었다. (이 제품에는 일단 ‘보도 자료 표준 형식’이라는 제목을 붙이기로 했다.) 『시카고 스타일 매뉴얼』(Chicago Style Manual)의 참고 문헌 인용법을 공부하는 중이다. 실용적이고 내용과 형식이 조화를 이룬 순수한 형태라는 점에서 참 아름답다. 언제 확정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보도 자료의 형식은 예컨대 이렇다.
제품명, “인용문/인용구”, 종류(복수인 경우 중점[·]으로 구분), 동업자(복수인 경우 중점[·]으로 구분), 제작/발표 연도.
이렇게 관습(또는 미풍양속)을 이용하는 건 내게 조형적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데 별 재능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관습은 이미 한 번 완성됐다는 점에서 아름다우면서 무엇보다 이용하기 편하다.) 웹을 통해 교육의 민주화가 이룩됐다지만 어쩔 수 없는 게 있다. 특히 내게 없는 능력을 지닌, 디자이너나 미술가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게 즐거운 이유기도 하다.

예컨대 열쇠고리에 열쇠를 끼우면 본래 역할을 하지만, 약지를 끼우면 퍽 괴상해 보이는 반지가 된다. 그 위에 산세리프 서체로 조판한 ‘“Min Guhong Manufacturing” can be abbreviated as “Min Guhong Mfg.”’라는 문장이 인쇄된다면 어떨까? 여기에 ‘민구홍 매뉴팩처링 표기 지침(영어판)’이라는 제목이 붙는다면? 그리고 이걸 회사를 소개하는 ‘제품’으로 홍보하는 회사가 있다면?

타이포그래피 관습이나 문법 또한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관심사 중 하나다. 당신도 알다시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는 실제로 내가 숙주에서 편집자로서 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타임스 뉴 로먼(Times New Roman) 속 모든 글자를 지운 「타임스 블랭크(Times Blank)」도 그런 맥락에 있다. 타임스 블랭크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전용 서체다. 존 케이지(John Cage)의 「4분 33초」를 들으며 사용하면 좋은… 나아가 「4분 33초」를 텍스트로 재현할 수도 있겠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운영하며 디자인 전공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려웠던 점이 있었다면 알려주세요.
없었던 것 같아요. 있었더라도 어려운 점은 금방 잊는 편입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어떤 회사인지 여전히 오리무중이니까요.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졸업생입니다. 웹사이트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기준이 있을까요?
웹사이트에서 이야기하는 대상과 방식에 따라 완성도의 기준은 천차만별일 거예요. 앞서 말씀드렸듯 일단 웹 브라우저상에서 제대로 동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사실 이를 위해 고려해야 할 부분만 따져도 무궁무진합니다. 뜬금없을지 모르지만 저는 어떤 글쓰기에 관해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문학을 공부하던 시절에 배운 좋은 글쓰기의 원칙 가운데 중언부언하지 않는다는 게 있어요. 같은 대상에 관한 두 가지 진술이 있다면 간단한 쪽을 택하는 게 좋다는 오컴의 면도날(Occam’s Razor)도 비슷한 원칙이고요. 이 원칙은 코드를 포함한 웹사이트에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중복되는 요소나 기능을 하나로 합치는 것처럼요. 이를 위해서는 글쓰기처럼 수차례 퇴고 과정이 필요하죠. 지난할 수 있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고요. 한 문장만으로 이뤄진 웹사이트라 해도 퇴고 과정을 얼마나 거쳤는지에 따라 결과물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