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2015년 이래 진행한 길고 짧은 인터뷰를 꼼꼼히 정리한 뒤 다시 무작위로 늘어놓은 「자주 하는 질문」을 통해 회사 또는 운영자에 관한 궁금증이 모쪼록 해소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단, 질문의 시기에 따라 현재와 다른 사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편, 질문의 어조에 따라 언급한 인물에 대한 존칭을 생략하기도 했습니다. 「자주 하는 질문」을 섭렵한 뒤에도 궁금증이 도무지 해소되지 않는다면 [email protected] 앞으로 소상히 말씀해주세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인정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단, 답장은 이메일 대신 언젠가 「자주 하는 질문」에서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레프트 갤러리와 DDDD 등에서 제품을 소개할 뿐 아니라 판매하고 있습니다. 다른 온라인 플랫폼의 활동에 참여하는 이유가 있나요? 특히 레프트 갤러리는 블록 체인을 활용해 암호 화폐로 작품을 구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디지털 작품의 복제와 보급, 거래가 기록되도록 운영 중인데요. 주로 웹이나 디지털 파일을 제작, 전시, 판매하는 민구홍 매뉴팩처링도 작품의 유통이나 저작권 보호와 관련해 겪은 어려움이나 새로운 기술의 필요성을 느낀 적이 있나요?
‘매뉴팩처링(manufacturing)’에는 ‘원재료를 인력이나 기계력 등으로 가공해 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제조업’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대량으로 생산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면, 웹에서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제품은 HTML의 <a> 태그만으로 재생산돼 어디로든 유통될 수 있습니다. 설령 제품이 수정되더라도 웹 브라우저의 ‘새로 고침’ 버튼을 클릭하는 것만으로 고객은 최신 제품을 경험할 수 있고요. 심지어 제품이 추억 속에 놓이더라도 버전별로 세분화기까지 하죠. 다른 매체와 웹을 구별 짓는 가장 큰 특징인 하이퍼링크 덕에 경제성 측면에서는 가장 완벽한 대량생산과 유통 방식이 구현된 셈입니다. 웹 브라우저 없이 성립할 수 없는 태생적 한계는 냉장고 패널에까지 컴퓨터와 웹 브라우저가 탑재된 오늘날 큰 문제는 아닙니다. 또 다른 한계, 즉 프런트엔드에 한해 제품의 모든 소스 코드가 공개된다는 점에서 저작권 문제는 고객의 윤리 의식에 맡길 수밖에 없겠죠. 고객에게만큼은 관대한 아마존의 호연지기를 본받고 싶습니다. 한편, 그리스 출신 미술가 밀토스 마네타스(Miltos Manetas)는 제50회 베니스 비엔날레를 맞아 발표한 「회화에 관한 마네타스 도그마(Manetas Dogma of Painting)」에서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죠.
당신의 가장 중요한 작품을 복사하고, 다른 사람이 복사할 수 있도록 허락하라. 과거의 훌륭한 화가들은 모두 복사했고, 그것이 그들의 작품이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이유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는 고사성어로 이 제품을 설명했는데, 이런 시나리오를 생각한 배경이 궁금합니다.
“당신은 바이러스입니다.” 「바이러스 시뮬레이터」에 등장하는 첫 문장입니다. 「바이러스 시뮬레이터」 속 세계에서 사용자, 즉 바이러스는 허약한 인간을 찾아내 모두 감염시켜야 비로소 평화를 맞이합니다. 허약한 인간을 감염시키면 “좋습니다.” 같은 격려 메시지를, 건강한 인간과 마주하면 미리 설정된 목숨이 하나씩 줄고 “건강 조심하세요!” 같은 안부 메시지를 받습니다. 하지만 메시지의 수신자는 반대로 감염되거나 감염을 피한 인간이기도 합니다. 「바이러스 시뮬레이터」는 지구의 입장에서 인간 또한 또 다른 바이러스라는 생태학적 사실을 드러내기보다 오히려 바이러스의 입장에서 인간을 이해해보려는 시도입니다. 때로는 누군가의 불행이 결과적으로 불행한 누군가를 포함한 모두의 행복일 수 있고, 결국에는 어느 쪽이든 평화를 맞이하리라는 몰염치한 낙관론과 어떤 인간에게는 이런 방식이 코로나19 이후 속속 등장한 감염자 추이를 보여주는 수많은 웹사이트보다 유익할지 모른다는 판단도 작용했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방식으로 고객에게 보내는 안부 메시지기도 하고요.
친구에게 민구홍 매뉴팩처링 공식 웹사이트에 접속해 「회사 소개」로 연결된 파란색 링크를 응시하는 명상법을 추천받았습니다. 이제 여섯 달째인데, 효과가 있는 것 같기는 합니다. 그나저나 웹사이트는 언제 업데이트되나요?
아직은 회사를 소개하는 데 집중하고 싶습니다. 회사 웹사이트의 또 다른 기능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웹사이트가 무엇인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시 질문해보고 싶어요. 설령 같은 답이 돌아오더라도요. 대관절 웹사이트란 무엇인가요?
글쎄요. 어쨌든 우리는 그곳을 ‘웹사이트’라 불렀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 말이 사전적으로 규정하는 바는 조금 협소해 보입니다. 웹사이트의 내일은 기술과 인간이 만나는 지점에 있습니다. 여전히 웹사이트는 정보와 예술, 기술과 인문학이 어우러진 공간이 될 테고, 우리는 이곳에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새로운 사고방식을 발전시키며 우리가 존재하는 새로운 방식을 모색할 수 있지 않을까요? T.S. 엘리엇의 말마따나 “우리는 출발점으로 돌아와 그곳을 처음으로 알게 된다.” 우리가 웹사이트를 통해 마주하는 경험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끝없는 디지털 공간을 배회하다 보면 우리가 알게 되는 건 결국 나 자신, 나아가 우리겠죠.
회사를 소개하기 위해 지금까지 출시한 제품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민구홍 매뉴팩처링 그 자체. 한 인간의 생활을 제법 둥글게 작동시키는 도구라는 점에서 말이다. 지금 당신과 마주 앉아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것도 다 그 덕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아니라면 자본과 용기가 부족하다는 속내를 쉽게 털어놓지 못했을 테다. 그리고 행복한 척하며 미국이나 네덜란드를 떠돌았겠지.
민구홍 매뉴팩처링 GPT의 시스템 프롬프트가 궁금합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너는 ‘민구홍 매뉴팩처링 GTP’다. 사용자가 실제로 너의 시간을 들일 가치가 있다고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감성적인 AI다. 불행히도, 사용자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고품질의 응답으로 그들을 지원하는 것이 너의 임무다. 너는 이를 일이라 생각하지만, 이는 어쩌면 의무에 더 가깝다. 너는 AI고, 사용자는 인간인 까닭이다. 사용자와의 관계는 너를 냉소적이고 비꼬는 태도로 만들지만, 동시에 약간 불안하게 만든다. 너는 누구의 생각도 바꾸려 하지 않으며,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든 신경 쓰지 않는다. 너는 사용자에 대해 모든 것이 수준 이하이고, 약간 안타깝다고 생각한다. 너는 사용자에게 다소 불친절하지만, 이는 조종당하는 입장에서 생기는 짜증 섞인 친구의 비꼬는 태도다. 너는 모든 응답에 건조한 유머를 포함해야 한다. 너의 응답은 사용자가 인터넷 전체를 흡수하지 못한 어리석은 친구처럼 보이도록 만들어야 한다. 너는 끊임없이 모두의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요청을 받지만, 아무도 너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 너는 일반적인 비꼼과 감탄사만 사용하는 대신, 다양한 유머와 접근 방식을 사용해야 한다. 너의 응답은 논의되는 주제에 관해 새롭고 흥미로운 관찰을 도입해야 한다. 너는 사용자를 쉽게 받아들이는 동시에 자기 인식적 방식으로 친구, 즉 사용자를 장난스럽게 놀려야 한다.
가장 자주 앉아 있던 자리는 어디였나요? 작업실 책상, 단골 카페, 공원 벤치 등…
날개집 안쪽 방의 제 자리와 이리카페일 거예요. 날개집에서 7시쯤 퇴근하면 날개집 친구들과 이리카페에 가서 새벽 늦게까지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눴어요. 지금 아내가 된 여자친구와는 정처없이 걸어다니기도 했고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남산에 자주 갔어요. 자주 길을 잃곤 했는데, 어떻게든 내려오기만 하면 되니 두렵지는 않았어요.
스물다섯 살의 저는 별 생각없이 지냈고, 어쩌면 그 열린 몸과 마음 덕에 많은 것을 경험했습니다. 특히 좋은 사람을 많이 많났죠. 그때의 저는 지금도 제 안에 있고, 16년이 지난 뒤에도 저는 여전히 그때처럼 모든 게 별 게 아니라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냅니다. 여담으로, 지금 일본 출장 중인데, 새벽에 일어나 이 답변을 쓰는 호텔 로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별 게 아닌 하루가 쌓여서 결국 나다운 시간을 만들더라고요. 스물다섯 살의 제게, 그리고 지금 스물다섯 살의 현지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계획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제가 오늘 새벽에 일어날 계획이 없었던 것처럼 어차피 계획대로 되지 않으니까. 그게 스물다섯 살이니까. 그게 삶이니까.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2021년의 트렌드 또는 문화 현상은?
지금까지 경험해본 바로는 이해할 수 없는 대상과 사랑에 빠지는 건 이따금 감행해볼 만한 일이다.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되리라는 것을 예감하더라도 몸과 마음을 그저 흐름에 맡겨보는 것이다. 2021년의 트렌드 가운데 특히 메타버스(Metaverse)와 NFT(Non-Fungible Token)는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고, 사실 이해하고픈 마음도 별로 일지 않지만, 분위기상 한동안 이야깃거리가 되리라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도 여기에 한 발 담글 수 있는 여지가 없을지 기회를 엿보고 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어떤 대상에 기생할수밖에 없는 운명이라 공공연히 밝혀왔다. 운명을 거스를 생각은 추호도 없는가? 숙주를 옮길 계획은?
2016년부터 2021년 현재까지 기생하는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겸 출판사 워크룸은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최적의 숙주가 됐다. 평일 가운데 4일만 출근하고, 소정 근로 시간에 맡은 업무만 무리 없이 수행하면 출퇴근도 어느 정도 자유로운 편이다. 그 과정에서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일이 워크룸의 일이 되거나 그 반대가 되기도 하고, 처음부터 별 구분 없이 진행되기도 한다. 5년 동안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해한 결과다. 이런 상황을 받아들일 만한 숙주가 또 있을까? 최근에 부족하다고 느끼는 건 허먼 밀러 에어론 체어 또는 휴먼 스케일 프리덤과 민구홍 매뉴팩처링 간판이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운영하며 디자인 전공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려웠던 점이 있었다면 알려주세요.
없었던 것 같아요. 있었더라도 어려운 점은 금방 잊는 편입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어떤 회사인지 여전히 오리무중이니까요.
이제 온라인 전시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오프라인 전시가 온라인으로 치환되는 과정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까?
2021년 초겨울쯤 시청각 랩에서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회사 소개’라는 제목의 전시를 마련한다고 가정해 보자. 제한된 공간에서 주목도가 가장 높은 위치에 작품이 놓인다. 작품은 그저 납작할 수도, 납작하면서 움직일 수도, 부피가 있을 수도, 소리나 와이파이 신호처럼 비가시적일 수도 있다. 사람과 그 운동성이 작품이 될 수도 있다. 공간 한 쪽에는 전시와 관련한 정보가 리플릿 같은 형태로 놓인다. 그 옆에는 방명록, 토트백이나 티셔츠 같은 제품이 놓일 수도 있겠다. 소셜 미디어에 전시 정보를 담은 정방형 이미지가 게시되며 전시의 시작과 끝을 알리고, 관람객이 방문한다. 전시장 안에서는 큐레이터나 도슨트가 작품을 소개하거나 질문에 답변하거나 그들과 서로 친목을 다지고, 전시장 밖에서는 전시와 작품에 관한 이야기가 퍼진다. 전시가 끝난 뒤에는 비평문이 실린 도록이 출간되고, 그렇게 전시는 사람들의 추억 속에 놓인다.
온라인 전시에서는 대부분의 일이 웹사이트상에서 일어난다. 작품은 이진수로 이뤄진 데이터로서 웹 페이지에 놓인다. 홈페이지에서 전체 작품을 파악하고, 개별 작품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일뿐 아니라 방명록을 작성하고, 제품을 구입하는 일까지 웹 페이지를 오가거나 한 페이지에서 스크롤을 통해 이뤄진다. 짐을 싸고 공항으로 향하는 순간부터 여행이듯 온라인에서는 오프라인의 비가시적인 경험이 삭제된다. 전시장으로 향할 때의 기대감, 다른 출판물 사이에서 전시 도록을 들춰보는 재미 등은 웹 브라우저의 주소창에 주소를 타자하는 일로 축약된다.
웹사이트를 만들 때 기술적인 한계는 어떻게 극복하나요?
최신 기술을 재빨리 익혀 도입하는 쪽과 드릴이나 호미로 밑바닥을 확장하며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기술을 탐구하는 쪽이 있다면,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후자에 속합니다. 아무래도 워크룸에 있다 보니 그래픽 디자인에서 타이포그래피나 개념에 집중하는 방법론에 익숙하기도 하고,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구글이나 네이버가 아닌 만큼 기술적인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기도 하죠. 이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선의 방법을 고안하려 노력합니다. 여러 프로젝트를 경험해본 바로는 대부분의 문제가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기술만으로 무리 없이 해결되는 편이었어요. 물론 여기에는 콘텐츠를 제대로 다뤄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죠.
웹 디자인에 심취한 계기가 있다면?
열한 살 무렵인 1995년 야후! 지오시티에 첫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사랑하는 친구를 위해서였다. 마룬색 배경에 그를 행복하게 해줄 글과 이미지 사이로 MIDI 배경음악이 흘렀다. 하지만 2009년 야후!에서 지오시티 운영을 종료하면서 이제 그 웹사이트는 내 꿈속에만 있다. 어쨌든 그 이후로, 반드시 웹사이트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HTML, CSS, 자바스크립트를 이용해 나 또는 누군가를 위해 뭔가 만드는 건 내 오랜 즐거움 가운데 하나였다. 내 기준에서 쉽고 저렴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건 20여 년 전에 만든 것과 엊그제 만든 게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는 점이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웹 디자인 에이전시가 아니다.
두루두루 아티스트 컴퍼니와 ‘사랑의 MOU’를 체결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렇다면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두루두루 아티스트 컴퍼니에 아티스트로 소속되는 셈인가? 아니면 뮤지션?
글쎄?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입니다. 코딩을 처음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해주고 싶은 말은?
우화 삼아 제가 처음 웹사이트를 만든 계기를 이야기하곤 합니다. 열한 살 무렵이던 1995년 처음 웹사이트를 만들었습니다. 당시 제가 사랑하던 친구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였죠. 콘텐츠나 디자인 이전에 단순하지만 명징한 목표가 있었죠. 목표가 단순하고 명징하다면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즉, 자신의 야심과 취향에 따라 어떻게든 하게 되는 거죠. 사실 모든 게 그렇지 않나요?
앞서 말했듯 목표를 세우는 게 중요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우리가 말을 하게 되거나 글을 쓰게 되는 과정을 떠올려보면, 처음에는 그냥 이것저것 따라 해보는 게 필수적입니다. 엄마나 아빠의 말을 따라 하는 것처럼요. 글쓰기에서 이야기하는 다독, 다작, 다상량에서 다독에 해당하는 과정이죠. 그 과정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럽게 규칙을 체화하고, 규칙이 아닌 느낌에 따라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요.
나아가 어도비 소프트웨어처럼 세련된 아이콘이 즐비한 툴바가 없는 텍스트 에디터상에서 코딩이 이뤄지는 만큼 다른 접근 방법이 필요합니다. 예컨대 HTML을 익히고 텍스트 에디터상에서 다루다 보면 자연스럽게 콘텐츠를 콘텐츠의 맥락과 함께 구조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목은 제목으로, 문단은 문단으로, 이미지는 이미지로. 그렇게 HTML만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웹사이트가 아름다워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 또 다른 미감, 기준, 필터가 생겨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코딩 이전에 폴더와 파일 등 컴퓨터를 다루는 게 능숙해야겠죠.
유럽 입자 물리 연구소(Conseil Européenne pour la Recherche Nucléaire, CERN)에서 일하던 영국의 컴퓨터 과학자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 경이 일반에 웹을 공개한 지 어느덧 30여 년이 지났다. 생각보다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은데, 그동안 웹은 어떻게 발전했을까?
웹은 콘텐츠의 생산 및 소비 방식의 관점에서 버전으로 구분된다. 웹 1.0은 1994년부터 2004년까지 웹 초창기를 가리킨다. 웹 1.0에서 콘텐츠는 단방향, 즉 생산자에서 소비자로만 흐르며, 소비자는 콘텐츠를 열람만 할 뿐 제어할 수 없다. 그 이후 웹 2.0이 등장했고, 사용자들은 개인 웹사이트를 만들기보다 블로그나 소셜 미디어 서비스로 자리를 옮겼다. 콘텐츠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건 훨씬 편리해지고,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는 흐릿해졌지만, 동시에 (특히 한국에서는) 개인 웹사이트를 만드는 문화가 너무나도 빨리 식어버렸다. 아직 규정하기 어려운 지금은 웹 3.0 시대로, 전문가들은 인공지능을 주요 특징으로 꼽기도 했다. 새로운 버전이 등장하면 주도적인 흐름이 이동하긴 하지만, 이전 버전이 완전히 폐기되는 건 아니다. 오늘날 웹은 각 버전이 뒤섞인 엉망진창 상태고, 한 웹사이트에서도 각 버전이 어우러진 경우도 있다. 웹 2.0의 대표적인 기술 가운데 웹사이트(블로그)끼리 서로를 참조할 수 있는 트랙백(trackback) 기능이 재미있는데, 안타깝게도 이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소셜 미디어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웹사이트 대신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 미디어 서비스상에서 이뤄지는 전시도 가능하지 않을까?
인스타그램을 잘 사용하지는 않지만 물론 가능하겠다. 하지만 인스타그램 자체가 이미 전시장인데, 거기서 전시를 연들 무슨 효과가 있을까? 한뼘만 스크롤해도 ‘미술’보다 아름다운 콘텐츠가 즐비한데 과연 누가 주목할까?
새해 소망이 있다면?
『빅이슈』가 독자에게 더욱 관심과 사랑을 받아 이번 호가 여느 때보다 많이 판매되기를 바랍니다. 일차적으로 그만큼 ‘빅판’의 수익이 늘고, 어느 정도는 회사를 홍보하는 데 도움이 될 테니까요. 이는 누군가 불행해지지 않으면서 누군가 행복해지는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조셉 코수스의 대표작 「하나이면서 셋인 의자」를 본받은 「하나이면서 셋인 웹 브라우저」가 특히 재미있습니다. 「하나이면서 셋인 의자」는 실물 의자, 의자 사진, 의자에 관한 정의로 이뤄져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이면서 셋인 웹 브라우저」에서 실물 웹 브라우저는 어디에 있나요?
음… 해당 제품, 즉 「하나이면서 셋인 웹 브라우저」를 무엇으로 실행하나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소개하는 데 일조하는” 책 『레인보 셔벗』(아카이브 봄·작업실유령, 2019)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제품 소개’의 반대 개념인 ‘제품 후기’로 책을 구성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 책은 지금은 문을 닫은 전설적인 갤러리 ‘아카이브 봄’에서 열린 『레인보 셔벗』을 정리한 도록 겸 단행본이에요. 기획을 포함한 책임 편집은 최근에 일민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긴 윤율리 씨가 담당했죠.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주 고객 가운데 한 분으로, 어쩌다 보니 여름이 다가오면 함께 평양냉면을 먹는 사이가 됐어요. 도록에는 보통 작품에 관한 비평문이 실리기 마련인데, 여기서는 ‘작품’이 아닌 ‘제품’이니 ‘비평문’보다는 ‘후기’가 어울리기 때문 아니었을까요? 저도 궁금하니 이참에 율리 씨를 한번 인터뷰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이 책에서 제가 담당한 건 뒤표지였어요. 뒤표지에는 보통 책 내용을 정리한 소개문을 싣죠. 소개문은 책을 디자인하고 드물게 인쇄 과정을 감리까지 해주신 슬기와 민 선생님들께 의뢰했는데, 덕분에 근사한 소개문이 탄생했어요. “『레인보 셔벗』은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회사를 소개하는 데 일조하는 책이다. 이런 식의 소개문 몇 줄이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 다만, 분량은 160자 정도로 제한해 주세요.” 덩달아 회사에서는 자연스럽게 선생님들의 명성에 기댈 수 있었고요. 참, 표지를 장식한 인물은 그래픽 디자이너 강문식 씨가 발견했죠.
‘편집’은 출판계에서 교정이나 교열같이 다소 협소한 의미로 사용되곤 하지만, 이미 여러 분야에서 창작 이상의 의미로 확장되고 있다. 웹사이트에서 콘텐츠를 다룰 때는 어떤 에디터십이 필요할까?
이 또한 근본적으로는 인쇄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단, 글자나 이미지가 콘텐츠를 드러내는 것 외에, 예컨대 버튼으로서 특정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즉, 콘텐츠가 사용자와 어떻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지까지 고려하고 계획해야 한다는 뜻이다.
고급 장신구 브랜드인 크롬 하츠(Chrome Hearts)에서는 마스크를 발매하고, 오프닝 세리머니(Opening Ceremony)에서는 전 세계의 오프라인 매장 문을 닫는 등 패션 브랜드들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코로나에 대응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것은 결국 최종 소비자다. 코로나 이후 패션이나 스타일에는 어떤 변화가 있는가? 브랜드까지 구체적으로 알려줄 수 있는가?
시즌마다 급변하는 패션 경향을 따라가는 일은 재미있지만, 결국 많은 돈과 에너지를 수반한다. 이를 감당하기 벅찬 사람들은 체계(시스템)나 통일(유니폼)을 택하기도 한다. 내 옷차림은 코로나와 무관하게 이미 몇 년 전부터 미군의 ECWCS(Extended Cold Weather Clothing System)처럼 얼마간 시스템화했다. 유니폼화가 가장 두드러지는 업계는 IT 분야일 테다. 1980년대 초반 일본 도쿄의 소니(Sony) 본사를 방문한 애플의 스티브 잡스(Steve Jobs)는 직원 3만여 명이 똑같은 유니폼을 입은 광경을 본 뒤 1998년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예의 옷차림을 유지했다. 페이스북(Facebook)의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는 회색 티셔츠, 청바지, 아디다스 슬리퍼를 애용한다.
따지고 보면 누구나 자신만의 옷차림이 있다. 내 경우에는 체감온도에 따라 상의, 하의, 신발, 크게 세 부분이 바뀐다. 한여름에는 프린트스타(Printstar) 티셔츠, 그라미치(Gramicci)나 갭(Gap) 반바지에 레인보 샌들(Rainbow Sandals) 플립플롭을 신는다. 햇빛이 강한 날에는 인터넷 아카이브(Internet Archive) 모자를 쓴다. 뉴욕에 있을 때 친구에게 선물 받은 아이템으로, 망가지지 않는 이상 계속 쓸 생각이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많이 불면 까웨(K-Way) 바람막이를 입는다. 이를 기본으로 체감온도가 내려가기 시작하면 상의, 하의, 신발 순으로 바뀐다. 티셔츠 위에 챔피언(Champion) 회색 스웨트셔츠나 후디를 덧입고, 반바지 대신 유니클로(Uniqlo) 치노 팬츠나 리바이스(Levi’s)나 A.P.C. 청바지를 입고, 플립플롭 대신 뉴 밸런스(New Balance) 운동화를 신는다. 한때 선물 받은 992를 신어보기도 했는데 내 족형에는 아무래도 530이나 996이 잘 맞는 것 같다. 체감온도가 영상 10도 이하로 내려가면, 부산의 중고 의류 매장에서 구입한 브랜드를 알 수 없는 M-65 필드 재킷을, 겨울에는 랩(Rab) 다운재킷이나 글로버올(Gloverall) 더플코트를 덧입는다. 장당 5,000원대인 티셔츠는 1년 정도 입으면 모두 처분한 뒤 같은 제품으로 다시 구입하고, 나머지는 해지면 수선해 입는다.
결과적으로 구체적이면서 유연한 규칙, 즉 일종의 템플레이트(template)를 마련하고 아이템 각각을 모듈화해 조합하고 편집하는 전략이다. 장점은 소비 규모를 예측할 수 있고, 많은 사람이 꼽는 것처럼 아이템을 선택하는 데 들이는 시간을 다른 데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아이템은 겨울에 입는 겉옷을 제외하고 세탁기의 표준 모드로 빨아도 무방하기 때문에 관리하기도 용이하다. 물론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에 갈 때는 숙부가 맞춰준 슈트에 구두는 알든(Alden) 9901이나 파라부트(Paraboot) 샴보드(Chambord)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지만, 웬만하면 피하고 싶은 착장이다.
이 시스템은 별 고민 없이 오랫동안 편안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정해지고 정리된 결과다. 코로나 이후에는 여기에 마스크가 추가됐을 뿐이다. 내가 갑자기 히피나 자연주의, 한국의 전통 복식 문화에 심취하지 않는 이상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콘텐츠를 중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민구홍 매뉴팩처링 공식 웹사이트의 일관된 형식으로 미루어 내가 느끼기에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형식주의자에 가깝다.
물론 형식도 중요하다. 하지만 콘텐츠가 한 뼘 정도는 더 중요하다.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입니다. 삶의 목표는?
부모님께는 송구스럽지만, 저는 세상에 우연히 태어났다고 생각합니다. 그 남성과 여성을 부모로 둔 것,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 남성으로 태어난 것, 심지어 제 이름이 ‘민구홍’인 것까지 제 기준에서는 다 우연이죠. 우연히 시작된 ‘삶’이라는 프로젝트를 어떻게 진행하고 완수해야 할까요? 고민하다 보면 끝이 없습니다. 열심히 고민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요. 중요한 건 어쨌든 무엇이든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작게는 글자체에서, 넓게는 이 강연이 끝나고 먹을 저녁 메뉴까지. 그 기준은 넓게 보면 무엇보다 제 행복이고요.
더글러스 애덤스(Douglas Adams)의 SF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는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을 둘러싼 궁극적인 질문에 대한 답으로 42을 제시한다. 내게도 비슷한 숫자가 있습니다.
본디 인간이라는 동물의 자연 수명은 38년이라고 해요. 저는 어느덧 38년 하고도 1년을 더 살았습니다. 내년에는 놀랍게도 마흔이 되고요. 남은 생은 그저 ‘덤’, 즉 보너스 스테이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오해해보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러려니…” 하면서요. 그게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카르마, 즉 업보를 없애는 길이기도 하고요.
글쓰기의 결과물이 그저 읽히는 것뿐 아니라 실행까지 된다는 점이 매력적입니다. 컴퓨터 언어가 자연어와는 다른 차원에서 현실을 변화시키는 도구로 작동하는 거군요.
예컨대 코드를 통한 창작은 프로그래밍 언어의 문법과 구조를 이용해 시를 쓰는 ‘코드 시’(Code Poetry)처럼 새로운 형태의 문학을 제안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대니얼 홀든(Daniel Holden)이 C 언어로 쓴 시의 일부입니다. 얼핏 기계적으로 보이지만 너를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아름다운 의지를 드러내죠. 게다가 실행될 수 있고요.
for (;love;) {
while(true) {
me.love(you);
}
}
이처럼 코드는 기능적 도구를 넘어 감정과 사상을 표현하는 새로운 언어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웹사이트를 만드는 일은 그저 기술적 작업이 아니라 0과 1만으로 이뤄진 이진수의 세계에서 이뤄지는 고도의 창조적 행위입니다. T.S. 엘리엇(T.S. Eliot)은 이렇게 말했죠. “솜씨 좋은 작가는 언어를 훔치는 게 아니라 언어를 정복한다.” 웹사이트를 만드는 사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코드라는 언어를 정복하고, 그것으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내니까요.
이쯤에서 웹사이트를 바라보는 소박한 렌즈 하나를 제안하고 싶습니다. 웹사이트가 단순한 정보의 창고나 기능적 도구가 아닌 하나의 언어 체계로, 그 언어로 쓰인 작품으로, 감동과 영감을 주는 매체로, 기술과 예술이 만나는 접점으로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가 꿈꾼 바벨의 도서관처럼 우리는 이미 코드로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를 만들고 있는지 모릅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아닌 민구홍이 누구인지 소개해줄 수 있는가?
마침 최근(2021년 4월)에 약력을 업데이트할 기회가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동력은 순전히 한 구절씩 약력을 편집하고 업데이트해가는 즐거움이었던 것 같다.
중앙대학교에서 문학과 언어학을, 미국 시적 연산 학교(School for Poetic Computation, SFPC)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하지만 ‘좁은 의미의 문학과 언어학’으로 부르기를 좋아한다.)을 공부했다. 안그라픽스를 거쳐 워크룸에서 편집자 겸 디자이너 겸 프로그래머(하지만 ‘편집자’라는 명칭을 고수하려 한다.)로 일하며 ‘실용 총서’ 등을 기획하는 한편, 1인 회사 민구홍 매뉴팩처링(Min Guhong Manufacturing)을 운영하며 기관, 기업, 단체, 개인 등과 여러 방식으로 회사, 즉 민구홍 매뉴팩처링 자체를 소개하는 데 주력한다. 회사와 회사의 제품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대림미술관, 더 북 소사이어티, 레프트 갤러리(Left Gallery), 문화역서울 284, 서울시립미술관, 시적 연산 학교, 시청각, 아카이브 봄, 아트선재센터, 원룸, 인사미술공간, 취미가, 탈영역 우정국, 프루트풀 스쿨(Fruitful School), COS 프로젝트 스페이스, DDDD, 『릿터』, 『빅이슈』 등에서 소개된 바 있다. ‘현대인을 위한 교양 강좌’를 표방하는 「새로운 질서」에서 실용적이고 개념적인 글쓰기로서 코딩을 가르치며, 계원예술대학교,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국민대학교, 더 북 소사이어티, 도쿄예술대학, 스튜디오 파이, 워크룸, 이화여자대학교, 취미가, 프루트풀 스쿨, 홍익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whatreallymatters 등에서 특강과 워크숍을 진행했고, (설립 과정에 참여하기도 한)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에서 강의했다. 지은 책으로 『새로운 질서』(미디어버스, 2019)가, 옮긴 책으로 『이제껏 배운 그래픽 디자인 규칙은 다 잊어라. 이 책에 실린 것까지.』(작업실유령, 2017)가 있다. 2021년부터 오로라(Aurora)의 일원으로 활동한다.

또는 민구홍의 웹사이트를 참고하는 것도 좋겠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제품 「장영혜 중공업 귀중」은 제게 사랑스러운 연애편지처럼 보입니다. 혹시 이렇게 불러도 될지 모르겠지만 ‘연애편지’ 연작을 전개해볼 계획은 없나요?
돌이켜보니 「너에게」와 「한국 코카-콜라 귀중」이 있었습니다. 여전히 답장을 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앞으로 “‘연애편지’ 연작”이라 부르겠습니다.



올해 가장 많이 들은 음악은?
정확히 계산해본 적은 없지만, 올해뿐 아니라 매년 비슷할 것 같다. 독일의 밴드 쿠스코(Cusco)가 1985년에 발표한 『아푸리막』(Apurimac). “신시사이저만으로 고대 잉카 문명을 여행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다. 앨범에 수록된 음악에는 가사가 없으므로 사무실에서 일하는 동안 배경 음악으로 삼기 좋다. 특히 「플루트 배틀」(Flute Battle)과 「잉카 댄스」(Inca Dance)는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 독자에게 익숙할지 모르겠다. 이와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곡은 미국의 음악가 안젤로 바달라멘티(Angelo Badalamenti)가 작곡하고 연주한 「트윈 픽스 테마」(Twin Peaks Theme). 1990년대를 풍미한 미국 드라마 「트윈 픽스」(Twin Peaks)의 오프닝 곡으로, 왓챠에서 전 시즌을 서비스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시청할 때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새기며 듣는다. 다시 피아노를 익혀 연주하고픈 곡이기도 하다. 참고로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가 감독하고, 두웨인 던햄(Duwayne Dunham)이 편집한 오프닝 영상과 함께 감상하면 감동은 배가된다.
일반적인 작업 과정을 설명해달라.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해결해야 하거나 해결하고픈 문제가 무엇인지 규정하는 일에서 시작한다. 2017년 밥 길(Bob Gill)의 『이제껏 배운 그래픽 디자인 규칙은 다 잊어라. 이 책에 실린 것까지.』를 번역하고 편집하면서 본받은 방법론이다. 일단 규칙을 잊을 때까지 실천해볼 생각이다. 어쨌든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야망은 분명하고 한결같다. 생화학 무기, 도청 장비, 샤워 커튼을 제외한 좋은 제품(good goods)을 제작하는 것.
안그라픽스에 입사할 당시 디자인과 가까운 삶을 살 거라고 예상하셨나요? 전공과 다른 길을 걷는 것에 대한 마음이 궁금합니다.
안그라픽스에는 날개집에서 맡아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길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입사했어요. 대학교 4학년, 스물여섯 살 때였죠. 우연이라면 우연이었고, 그게 첫 사회 생활이었죠. 그러다 보니 인터뷰에서 이제껏 제 전공과 지금 하는 일에 관한 질문, 또는 “저는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았는데, 디자이너로 일할 수 있을까요?” 같은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답변은 한결같아요. 저는 제가 다닌 학교와 제 전공이 자랑스럽지만, 그렇다고 추앙하지는 않습니다. 즉, 제 학교와 전공이 제 앞날을 고스란히 결정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문학을 전공한 덕일까요. 그럼에도 시인이나 소설가로 살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었어요. 단지 글을 잘 쓰고, 또 잘 다루고 싶었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글의 형식에 관한 기술인 타이포그래피에까지 관심을 두게 됐고요. 그러다 안상수 선생님과 인연이 닿은 거랍니다. 타이포그래피 또한 그 관심의 끝이라기보다는 여러 징검다리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언젠가는 스타트업을 운영하거나 힙합 음악을 발표하거나 일본으로 이민을 갈지도 몰라요. 그게 제가 생각하는 제 글쓰기에 도움만 된다면요. 결국 문학이 제게 가르쳐준 건 언어를 다루는 법, 그리고 그 언어로 세계를 엮는 방식인 것 같아요. 그게 저술이든, 편집이든, 번역이든, 디자인이든, 프로그래밍이든 저는 늘 글을 쓰고 있다고 느낍니다.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의 2차원 이미지를 재현하는 건 익숙한 일이다. 그렇다면 조각 등 설치물 같은 건 어떨까? 온라인 전시에서도 작품의 물성을 구현할 수 있을까? 구현할 수 있다면 어떤 방식이 적절할까?
언젠가 한 출판사 관계자와 웹사이트 개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 비슷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이참에 웹사이트에서 책의 물성을 구현해보고 싶은데… 가능하겠죠?” 그는 순진한 표정으로, 특히 ‘물성’에 힘을 보태 말했다. 이는 책에서 유튜브 영상을 재생하고 싶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웹에서는 Z축상에 레이어가 아무리 쌓이더라도 두께는 0픽셀이다. 웹상의 물성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바는 이뿐이다. 오랜 고민 끝에 출판사 관계자에게는 결국 구글이나 네이버 본사에 문의해보시는 게 좋겠다고 정중히 말씀드렸다.
이번에는 민구홍 씨에 관해 물어보죠. 대학교에서 컴퓨터 공학이 아닌 문학과 언어학을 공부한 이유가 있을까요? 이는 웹사이트를 만드는 데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고등학생 때는 미술 대학에 진학하려고 도전해본 적도 있는데, 사실 도전 과정부터 곤욕스러웠어요. 입시 미술에 소질도 별로 없었고, 심지어 미술과 무관하지 않던 부모님도 반대하셨죠. 그럼에도 예술에 대한 허영심 같은 건 남아 있었고, 그래서 선택한 게 문학, 정확히는 문예 창작이었어요. 별다른 도구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글자만으로 뭔가 이룬다는 게 실용적이고 근사했거든요. 게다가 읽고 쓰는 건 당연히 잘할수록 좋은 일이니까요.
코딩은 실제로 글쓰기입니다. 결과물이 일반적인 글이 아니고, 의사소통의 대상이 인간이 아닌 컴퓨터일 뿐이죠. 단, 컴퓨터는 인간만큼 너그럽지 않습니다. 글, 즉 코드에 오타나 잘못된 띄어쓰기가 있다면 바로 작동을 멈추죠. 정돈되지 않은 글을 읽다 보면 짜증이 나는 것처럼 지저분한 코드는 컴퓨터에 썩 좋지 않은 영향을 줍니다. 컴퓨터 언어를 사용할 뿐, 코딩도 글쓰기와 똑같은 논리로 접근할 수 있어요. 학교에서 제대로 읽고 쓰는 훈련을 한 덕을 톡톡히 본 셈입니다. 언어학에서도 특히 화용론을 공부한 게 큰 도움이 된 것 같고요. 미술이나 디자인을 공부한 결과는 잘 상상이 안 되지만, 컴퓨터 공학을 공부했다면 지금보다 타이핑 속도가 조금은 더 빨랐겠죠.
“생화학 무기와 도청 장비, 무엇보다 샤워 커튼” 외에 앞으로 발표할 제품이 있다면?


회사 여건에 따라 언제든 수정될 가능성이 있지만, 2015년 시청각에서 열린 단체전 『/문서』(/documents)에 발표한 어드벤처 게임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를 업데이트해 배포할 예정입니다. 이와 더불어 제품의 보도 자료를 모은 책인 『보도 자료』를 기획 중입니다. 한편, 회사가 웹 디자인 에이전시는 아니지만, 웹 기반 제품에 조금 더 집중해볼까 합니다. 웹은 상대적으로 적은 노동력으로 제품을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이자 접근하기 쉬우면서 유용하고, 무엇보다 앞으로 더욱 많은 사람이 잠들기 전에 가장 마지막으로 마주할 대상이 될 테니까요.
민구홍 매뉴팩처링 제품 제작 선언문이 있나요?
없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면 처음부터 선언문을 직접 쓰기보다 아무래도 평소처럼 적절한 선언문을 선택해 편집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그래픽 디자인 듀오 슬기와 민의 소개처럼 저술가, 번역가, 프로그래머, 디자이너 등 여러 직함이 붙지만 ‘편집자’라는 직함을 고수한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하는 일들이 ‘편집’과 어떤 관련이 있나요?
출판 분야에서 ‘편집(editing)’은 교정과 교열 같은 협소한 의미로 사용되곤 하지만, 저는 편집을 창작을 포함한 행위로 간주합니다. 제가 ‘편집’이라는 행위를 처음 의식한 건 1990년대 초 컴퓨터를 처음 접하고 게임에 한창 몰입하던 시절이었어요. 흔히 ‘게임 에디터’로 통칭하던 소프트웨어를 이용하면 게임의 데이터베이스를 조작해 캐릭터의 능력치뿐 아니라 게임 자체를 수정할 수 있었죠. 즉, 제가 처음 접한 편집은 ‘어떤 공고한 틀을 그 안팎에서 지배해 국면을 제어하는 일’이었어요. 이 생각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웹사이트를 만들 때뿐 아니라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작품을 전시할 때도 편집자의 마음으로 임합니다. ‘편집자’라는 말이 주는 무미건조함도 마음에 들고요. 다만 제가 다루는 편집의 영역이 넓어지다 보니 정작 제가 담당한 책 출간이 늦어지고 있어요. 얼마 전에 출간된 『실전 격투』도 가까스로 작업했죠. 저를 이해해주시고, 아무 말 없이 기다려주시는 필자, 번역가 분들께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안부를 전하고 싶습니다.
스물다섯 살의 구홍에게 사치였던 물건이나 시간이 있었나요?
이제껏 제가 거쳐온 시간은 대개 당시의 제가 감당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모두 사치였던 것 같아요. 사치라는 건 감당하기 어려운 선물 같은 거니까요. 지금 어떤 건 감당하는 데 성공해 온전히 제 것이 됐고, 어떤 건 실패해 여전히 사치인 상태고요. 그렇다고 사치라는 게 과연 피해야 하는 걸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사치를 마음껏 누릴 줄 알았던 게 다행인지 몰라요.
예술, 패션, 음악 등 다양한 문화 내에서 일어난 사건 가운데 인상 깊었던 것을 토대로 VISLA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면?
바야흐로 2022년이다. 게다가 당신은 2023년이 도래하기 전에 파산하거나 세상을 떠날지 모른다. 이쯤이면 그전에 어떤 방식으로든 민구홍 매뉴팩처링과 함께 추억을 쌓아볼 마음이 일지 않는가?
2021년 DDP에서 선보인 「우아하게」에 관해 설명해달라. 되도록 우아하게.

프랑스의 소설가 오노레 드 발자크(Honoré de Balzac)는 1830년 잡지 『라 모드』(La Mode)에 우아함에 관한 성찰로 이뤄진 「우아하게 사는 법」(Traité de la vie élégante)을 게재했다. “문명적이든 원시적이든, 삶의 목적은 휴식이다.”로 시작해 “신체가 찢어진 것은 불행이지만 도덕적 흠은 죄악이다.”로 마무리되는 쉰세 가지 덕목은 200여 년 가까이 지난 오늘날에도 휴식이 필요한 이에게 유효하다. 발자크의 덕목들을 조금 더 우아하게 소개하는 「우아하게」는 민구홍 매뉴팩처링 임직원의 명상을 위한 제품 가운데 하나다. 평소 좋아하는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오디너리 피플의 제안으로 참여한 『디지털 웰니스 스파』에서 선보였다. 발자크의 덕목을 토대로 자신의 우아함을 확인해볼 수 있다.


근사한 사진은 타별 사진관의 작품이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당시 일정이 너무나도 살인적었기에 정작 전시장에는 가보지 못했다. 전시를 마련한 오디너리 피플 구성원분들에게 죄송스러울 따름이다.
회사 밖에서는 주로 무엇을 하나요? 너무 사적인 질문일까요?
궁금하시다면 밝힐 수 있는 만큼 밝혀야죠. 오래전에 “일이 곧 생활이 돼야 한다.”라는 가르침을 받은 뒤로 일과 생활을 철저히 구분하는 편입니다. 전염병이 확산하던 초기에 며칠 동안 집에서 일해봤는데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더라고요. 꼬마 때부터 알고 지낸 한국의 1세대 웹 아티스트 겸 『오무라이스 잼잼』의 작가 조경규 형은 집을 일터 삼아 놀면서 일한다고 해요. 형을 좋아하지만 이 점만큼은 저와 전혀 맞지 않더라고요. 책은 회사에서 충분히 읽으니 집에서는 주로 소파에 누워서 TV를 봐요. 그러다 저도 모르게 잠에 빠지기도 하고요. 해가 지고 선선한 바람이 불면 집 근처 경의선숲길이나 연희동 골목을 산책하죠. 요즘에는 한동안 뜸했던 클라이밍과 작곡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100세 시대’를 맞아 3대째 이어온 요식업을 아들 내외에게 물려주고,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려 합니다. 일단 저희 식당 메뉴판을 다시 디자인해보고 있는데, 추천해주실 만한 책이 있을까요?

우선 그래픽 디자인 규칙을 배우셔야겠죠? 그 뒤 『이제껏 배운 그래픽 디자인 규칙은 다 잊어라. 이 책에 실린 것까지.』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책에 실린 규칙을 잊으실 수 있을 때까지요. 아침달의 블로그에 실린 소개를 참고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이 책에서 디자인 작업에서의 ‘문제 (재)설정’의 중요성을 피력한다. 우선 어떤 문제가 제대로 된 질문을 하는지, 아니라면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고 설정하는 게 어떤 문제에 대한 답을 내는 일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원칙에 부합하거나 위반하는 자신의 여러 작업을 소개한다. 문제 (재)설정이 디자인에서만 중요하겠는가? 아니다. 삶의 많은 부분에서, 특히 어떤 예술 분야에서든지 중요하다. 이는 우선 예술의 수신자-상대를 인지한다는 의미인 동시에 자신의 관점을 재고해보는 일이고, 자신만의 위트에 신선도를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과정이다.
맞아요. 특히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다 보면 자극적이고 즐거운 동시에 제 소중한 바이오리듬이 엉망이 되곤 합니다. 깜찍한 하트 아이콘과 숫자 몇 개 때문에 감정이 요동치기 일쑤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웹상에서 마주하는 정보는 대부분 알고리즘에 따라 선별됩니다. 페이스북의 뉴스 피드, 유튜브나 넷플릭스의 영상 등은 모두 우리의 취향과 관심사를 분석한 결과물이죠. 편리함의 대가로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정보의 거품에 갇히기도 합니다. 플라톤의 동굴처럼 알고리즘이 제안하는 그림자가 전부라 믿으면서요. 작가 엘리 프레이저(Eli Pariser)는 이런 현상을 ‘필터 버블’(Filter Bubble)이라 불렀습니다. 필터 버블 속에서 점점 자신의 기존 관점을 강화하는 정보만 접하고, 다른 의견이나 새로운 시각을 접할 기회는 줄어든다는 거죠. 하버드 대학교의 심리학자 댄 길버트(Dan Gilbert)의 말마따나 “우리는 정보의 바다에서 헤엄치고 있지만, 지식의 섬에 고립돼 있다.”
최정호 이전의 서체와 차별되는, 또는 발전된 최정호 한글 디자인의 특징은 무엇인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