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하는 질문

일러두고픈 말이 있다면?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2015년 이래 진행한 길고 짧은 인터뷰를 꼼꼼히 정리한 뒤 다시 무작위로 늘어놓은 「자주 하는 질문」을 통해 회사 또는 운영자에 관한 궁금증이 모쪼록 해소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단, 질문의 시기에 따라 현재와 다른 사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편, 질문의 어조에 따라 언급한 인물에 대한 존칭을 생략하기도 했습니다. 「자주 하는 질문」을 섭렵한 뒤에도 궁금증이 도무지 해소되지 않는다면 [email protected] 앞으로 소상히 말씀해주세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인정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단, 답장은 이메일 대신 언젠가 「자주 하는 질문」에서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2015년부터 “안그라픽스를 거쳐 워크룸에 기생하는 1인 회사”인 민구홍 매뉴팩처링(Min Guhong Manufacturing)을 운영한다. 2019년부터는 “회사, 즉 민구홍 매뉴팩처링 자체를 소개하는 데 주력한다.” 회사에도 변화가 있는가? 얼마 전에는 인턴이 입사했다고 들었다.

네덜란드 아른험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는 한국인 학생으로, 회사에는 두 번째 인턴이다. (첫 번째 인턴은 영광스럽게도 현재 누구보다 활발히 활동하는 송예환 씨였다.) 학교에서는 졸업 학기를 인턴십으로 갈음한고 한다. 인턴십이 실무 현장을 경험해보는 기간일 뿐 아니라 수업의 연장인 만큼 인턴에게는 다음과 같은 임무를 제시했다.

인터넷, 논문, 일간지, 단행본, 잡지, 주위의 소문 등을 통해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관해 조사한 사실을 바탕으로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어떤 회사인지 규정하고, 그에 걸맞는 로고를 제안한다. 이 과정에서 로고는 납작한 그래픽만으로 제한하지 않는다. 즉, 로고는 규정한 바에 따라 덜 납작한 그래픽, 시, 소설, 만화, 음악, 영상 등이 될 수 있다. 단, 로고는 어떤 대상을 상징하거나 은유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목적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디자이너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한편으로는 얼마간 수행적인 이 작업은 네덜란드 밖에서만큼은 가장 까다로운 클라이언트인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제안을 납득할 때까지 계속된다. 작업의 진행 상황을 정리한 결과물은 인쇄물, 웹사이트 등으로 출판한다. 이는 「인턴 일지」 작성을 포함해 민구홍 매뉴팩처링 인턴으로서 수행할 업무의 고갱이다.

인턴은 자신이 조사한 사실을 바탕으로 로고 없는 회사에 여러 매체를 통해 로고를 제안하면서 여러 매체를 다뤄보고 동시에 (신출내기 그래픽 디자이너에게는 어쩌면 숙명인) 거절당하는 일에 익숙해진다. 한동안 원격으로 일하던 인턴은 코로나 때문에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갑자기 귀국하게 됐고, 회사뿐 아니라 동시에 회사가 기생하는 워크룸에서 한 달 동안 일했다. 월급은 워크룸에서 받았다. 어찌 보면 이중 기생인 셈인데, 그 덕에 인턴은 앞으로 이력서에 두 회사, 즉 민구홍 매뉴팩처링과 워크룸에서 일했다는 경력을 기입할 수 있게 됐다. 지금은 업무 차 제주도로 출장을 간 상태다. 좋은 일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회사나 인턴 모두 코로나 덕에 생각지 못한 경험을 하게 됐다.

한편, 몇 달 전에는 이름을 밝힐 수 없는 회사 두 곳에서 제법 파격적인 조건으로 인수 제안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당분간은 워크룸에 기생하기로 했다. 회사의 궁극적인 목표가 운영자, 즉 나의 행복이기 때문이다. 두 제안 모두 수락했을 때 불행해지지는 않겠지만, 지금보다 극적으로 더 행복해진다는 보장이 없었다. 방탄소년단의 제이홉도 「Answer: Love Myself」에서 읊지 않았던가.

오, 지금 날 위한 행보는 바로 날 위한 행동 / 날 위한 태도 / 그게 날 위한 행복 / I’ll show you what I got / 두렵진 않아 그건 내 존재니까 / Love myself

온라인 전시에서 큐레이터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또는 무엇을 해야 할까?

또 다른 형태의 전시장을 활용할 수 있는 셈이니 큐레이터의 역할은 더욱 확대될 게 분명하다. 이를 위해 단순하더라도 직접 웹사이트를 만들어보는 걸 추천한다. 웹의 수많은 가능성뿐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떤 제약이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다. ‘느낌’을 동원하는 데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웹 기술을 다뤄본 큐레이터가 쓴 온라인 전시 서문은 더욱 읽을 만하고, 전시는 더욱 감상할 만할 것이다. 그 뒤에는 전시장, 즉 웹사이트를 무엇으로 규정하는지가 중요하겠다. 로럴 슐스트(Laurel Schwulst)가 「내게 웹사이트는 지식의 강을 따라 흐르는 집이다. 당신은?」(My Website is a Shifting House Next to a River of Knowledge. What Could Yours Be?, 2018)에서 말했듯 웹사이트는 가깝게는 단행본에서 아무도 생각지 못한 무엇까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관한 소논문을 써볼까 합니다. 추천해주실 만한 자료가 있을까요?

『레인보 셔벗』(Rainbow Sherbet, 작업실유령·아카이브 봄, 2019)을 추천합니다. 뒤표지에 실린 그래픽 디자인 듀오 슬기와 민의 추천사를 덧붙입니다.

『레인보 셔벗』은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회사를 소개하는 데 일조하는 책이다. 이런 식의 소개문 몇 줄이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일종의 트롱프뢰유(trompe-l’œil)기도 하지만, 책 속에 따로 머리말이 없으니 이 자리를 활용하면 좋을 듯합니다. 다만, 분량은 160자 정도로 제한해 주세요.

한편, 오가사와라 웹사이트를 포함해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모든 활동은 ‘회사 소개’의 일환이라 밝혀왔다. 사실상 2015년 시청각에서 ‘시청각 문서’로 처음 발표한 「회사 소개」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않은 셈이다. 작업물마다 이스터에그처럼 회사와 관련한 정보를 숨겨놓기도 하는데, 이번에 회사를 소개하는 전략은 무엇이었나?

해적단 모집 웹사이트에서 신청자 정보를 입력하는 필드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실제 정보가 플레이스홀더(placeholder)로 입력돼 있다. 여러 방식으로 회사, 즉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소개하는 일은 회사의 원동력이다. 가장 큰 원동력은 고객의 사랑과 관심일 테고. 하지만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모든 사람에게 사랑과 관심을 받는 사회는 별로 아름답지 않다. (한편으로는 그런 사회를 갈망하는 자신을 향한 배덕감 또한 느낀다.) 그럼에도 이번 토크에 참여한 분들만큼은 언젠가 고객으로 삼아 사랑과 관심을 받고 싶다.

가장 자주 앉아 있던 자리는 어디였나요? 작업실 책상, 단골 카페, 공원 벤치 등…

날개집 안쪽 방의 제 자리와 이리카페일 거예요. 날개집에서 7시쯤 퇴근하면 날개집 친구들과 이리카페에 가서 새벽 늦게까지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눴어요. 지금 아내가 된 여자친구와는 정처없이 걸어다니기도 했고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남산에 자주 갔어요. 자주 길을 잃곤 했는데, 어떻게든 내려오기만 하면 되니 두렵지는 않았어요.


스물다섯 살의 저는 별 생각없이 지냈고, 어쩌면 그 열린 몸과 마음 덕에 많은 것을 경험했습니다. 특히 좋은 사람을 많이 많났죠. 그때의 저는 지금도 제 안에 있고, 16년이 지난 뒤에도 저는 여전히 그때처럼 모든 게 별 게 아니라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냅니다. 여담으로, 지금 일본 출장 중인데, 새벽에 일어나 이 답변을 쓰는 호텔 로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별 게 아닌 하루가 쌓여서 결국 나다운 시간을 만들더라고요. 스물다섯 살의 제게, 그리고 지금 스물다섯 살의 현지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계획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제가 오늘 새벽에 일어날 계획이 없었던 것처럼 어차피 계획대로 되지 않으니까. 그게 스물다섯 살이니까. 그게 삶이니까.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운영자 민구홍 씨는 워크룸 편집자(디자이너, 프로그래머)에서 AG 랩 디렉터가 됐다. 덩달아 민구홍 매뉴팩처링에도 달라지는 점이 있을까?

없다. 그리고 없기를 바란다.

이런 도시 전설이 있다. 요컨대 “어느 날 한 부동산 중개인이 건물 한 채를 담당하게 됐다. 건물의 도면을 받아 구조를 살피던 중개인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도면상으로는 공간이 있어야 할 건물 중앙에는 그저 벽뿐이었다. 결국 중개인은 건물주의 허가를 받아 벽을 허물었다. 공간에는 다다미가 정갈하게 깔려 있었다. 그 위에는 중국식 식탁이 있었고, 그 위에 놓인 쌀밥 한 공기에서는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중개인은 사방을 조사했지만 공간에는 자신이 들어온 허물어진 벽 외에 어떤 출입구도 없었다.” 항간에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건물과 관련이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사실인가?

사실과 다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체를 오가며 작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오늘날 ‘출판’(publishing)은 종이 위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 온라인상에서 콘텐츠를 공개하고 소개하는 일 또한 ‘출판’이라 부르는 만큼 이제는 종이 책을 ‘오프라인 출판물’로, 웹사이트를 ‘온라인 출판물’로 불러도 별로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종이 책과 웹사이트를 한데 출판물로 묶는다면, 즉 콘텐츠가 놓인 자리만 바뀌었을 뿐이라 믿는다면, 두 매체를 둘러싼 고민은 교정되거나 몇몇은 자연스럽게 해결될지 모른다.

스스로 작가를 겸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내 역할은 매체에 따라 제한되고 조금씩 달라진다. 대개 종이 책에서는 기획자와 편집자 사이를, 웹사이트에서는 기획자, 편집자, 디자이너, 프로그래머 사이를 오간다. 이 과정은 단순하게는 문장의 오류를 점검하거나 문장을 매끄럽게 다듬는 일에서 이따금 1차 생산자의 존재가 옹색해지는 창작이 되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잊지 않으려 하는 바는 작업 대부분이 콘텐츠 없이는 시작할 수조차 없는 2차 생산이라는 점이다. 출판이 말하기라면, 내 역할 가운데 하나는 말이 제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는 일이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1차 생산자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파악하는 일 아닐까?

2020년 아트선재센터에 이어 2021년 대안공간 루프에서 「장영혜 중공업 귀중」 제2판을 선보였다. 제1판과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제1판을 선보인 뒤 1년 사이 달라진 상황에 따라 몇몇 내용이 추가되거나 삭제됐고, 더욱 큰 화면에 오직 장영혜 중공업만 사용할 수 있는 소파와 헤드폰이 마련됐다. 그럼에도 장영혜 중공업을 향한 존경과 사랑, 그리고 부탁 한 가지는 그대로다. 답변을 받을 때까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선보이는 연작이 될 예정이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공식 웹사이트는 정말 근사합니다. 그런데 제 컴퓨터에서는 접속이 느릴 때가 있어요. 간헐적으로요. 왜 그럴까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드림호스트를 사용하는데, 싸구려 플랜인지라 한국에서는 조금 느립니다.

10년 만에 민구홍 매뉴팩처링 웹사이트를 리뉴얼했다. 이 또한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제품’인가? 그리고 이번 작업에서 중점을 둔 것은?

리뉴얼보다는 중간 점검에 가깝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제품처럼 보이는 것도 제품이지만, 제품처럼 보이지 않는 것, 예컨대 글자, 구절, 문장, 문단, 글, 실행되지 않은 계획, 심지어 길가에 버려진 농구공과 그 옆에 놓인 돌멩이마저 제품이 된다. ‘제품’이라 부르기만 한다면 말이다. 한편, 이 작업에서는 다음을 모토로 삼았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면 과거를 편집할 수밖에 없다.”

2022년을 앞두고 근황을 알리는 깜짝 편지를 보냈다. 의문을 품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게 인상적이었던 건 편지가 전하는 내용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편지의 주소 ‘asdf’였다.

소소하기는 하지만 5년여 동안 워크룸 안팎에서 추억을 쌓은 분들에게 소식을 알리고 싶었다. 신년 인사도 겸하고. ‘asdf’에 관해 설명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전까지는 asdf 애호가들이 운영하는 asdf.com을 참고하면 좋겠다.

이상적인 생활 방식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회사의 복지 환경과도 연결되는 질문이다.

요컨대 적절한 시간에 일어나 적절한 시간에 식사하고 적절한 시간에 운동하고 적절한 시간에 자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적절함을 확보하는 데 적절한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 모자란 잠을 커피나 에너지 드링크, 서툰 자기최면 등으로 채우는 건 한 달에 한두 번이면 족하다. 생활의 나머지 요소는 체리 한 알과 비슷하다. 다른 체리들과 함께 바구니에 담길 수도, 무르고 터져서 악취와 끈적한 자국을 남길 수도 있다. 내가 지금 이렇게 생활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기에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어느 정도 기여하는 건 분명하다. 생크림 케이크 꼭대기에서 말이다.

회사답게 인턴도 있었다고 들었어요. 저도 지원할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총 세 명이 거쳐갔죠. 특히 첫 번째 인턴이었던 송예환 씨는 하루 만에 퇴사했어요. 회사와 인턴이 서로 원하는 걸 얻는 데 시간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예환 씨 덕에 회사에서는 인턴을 둘 만큼 건실하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게 됐고, 저는 편하게 차를 마실 수 있는 친구도 생겼죠. 지원 방법을 비롯해 민구홍 매뉴팩처링 인턴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글을 참고해주세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향한 사랑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손으로 쥐거나 눈으로 볼 수 없는 사랑을 어떻게 실체화할지 오랫동안 고민해왔습니다. 고객의 관심과 사랑을 원동력으로 삼는 회사인 만큼 이는 당연한 당면 과제였죠. 막연한 느낌은 대개 막연한 채로 남고, 어떤 느낌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사랑만큼은 분명히 다르다고 확신합니다.

조금 부족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사랑을 표현할 수 있다면!

받는 쪽은 어쨌든 감사할 따름일 겁니다.

소셜 미디어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웹사이트 대신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 미디어 서비스상에서 이뤄지는 전시도 가능하지 않을까?

인스타그램을 잘 사용하지는 않지만 물론 가능하겠다. 하지만 인스타그램 자체가 이미 전시장인데, 거기서 전시를 연들 무슨 효과가 있을까? 한뼘만 스크롤해도 ‘미술’보다 아름다운 콘텐츠가 즐비한데 과연 누가 주목할까?

「새로운 질서」에서 ‘선생님’으로 불리기를 꺼린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2018~21년)이나 홍익대학교(2022년)와 어깨동무하기도 하는 만큼 「새로운 질서」는 누군가에게 또 다른 학교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물론 어느 정도 정해진 커리큘럼이 있고, 제가 뭔가 알려드리는 자리지만, 그 과정에서 저 또한 참여자(일명 ‘새로운 질서의 친구들’)에게 배우는 바가 적지 않거든요. 학교임에도 선생과 학생의 구분이 흐릿한 학교인 셈이죠. 그래서 ‘선생님’이나 ‘교수님’ 같은 직함을 빼고 서로를 그저 이름으로 부릅니다. ‘님’까지 빼고 “슬기, 안녕하세요? 어떻게 지내셨어요?”처럼요. 누군가와 관계를 시작할 때는 호칭을 정하는 일이 중요하죠. 특정한 호칭을 부르는 순간 특정한 관계에 놓입니다. 일종의 위계가 만들어지죠. 이런 위계는 효율적으로 의사소통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특히 「새로운 질서」에서는요.

시각언어 측면에서 ‘가운데 맞추기’를 즐겨 사용한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콘텐츠를 강조하는 가장 단순하고 효과적인 방법이라 생각한다. 대상 주위에 아무것도 범접할 수 없는 여백을 두는 것만으로도 위대해 보인다.

대학교 졸업 예정자입니다. 내년 상반기에 직원이나 인턴을 채용할 계획은 없나요?

상반기는 물론이고 하반기에도 없습니다. 회사에서 제공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운영자가 사용하는 책상의 일부 공간, 스툴, 사원(인턴)증, 명함, minguhongmfg.com을 도메인 네임으로 한 업무용 이메일 주소뿐이거든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회사를 소개할 때 워크룸에 “기생한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즉,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운영자의 근무지에 기생하는 회사인데, 운영 방식으로 기생을 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기생은 자연스럽게 결정된 회사의 생존 전략이다. 콘솔 게임 제작사 너티독(Naughty Dog)의 「라스트 오브 어스(The Last of Us)」 시리즈에는 온갖 ‘감염자(The Infected)’가 등장한다. 그들은 동충하초처럼 인간의 몸을 잠식해 숙주를 조종한다. 인간이 없다면 동력을 얻지 못한다. 민구홍 매뉴팩처링 또한 마찬가지다. 부족한 용기와 자본을 숙주를 통해 해결한다. 숙주에 노동력과 얼마간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대신 운영자가 받는 월급으로 운영비를 충당하고, 컴퓨터, 테이블, 커피 머신 등 숙주의 동산과 부동산을 이용하는 식이다. 그 덕에 영원히 알고 싶지 않은 세금과 관련한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이따금 숙주를 떠나 독립을 하거나 사업자 등록증을 발급받으라는 요구를 받기도 하지만, 그러는 순간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폐업을 신고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워크룸을 떠나 구글이나 테슬라에 기생하는 일이 있더라도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독립하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한편, 이런 상황임에도 최근에는 네덜란드에서 찾아온 인턴이 일하고 있다.

예술, 패션, 음악 등 다양한 문화 내에서 일어난 사건 가운데 인상 깊었던 것을 토대로 VISLA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면?

바야흐로 2022년이다. 게다가 당신은 2023년이 도래하기 전에 파산하거나 세상을 떠날지 모른다. 이쯤이면 그전에 어떤 방식으로든 민구홍 매뉴팩처링과 함께 추억을 쌓아볼 마음이 일지 않는가?

‘편집’은 출판계에서 교정이나 교열같이 다소 협소한 의미로 사용되곤 하지만, 이미 여러 분야에서 창작 이상의 의미로 확장되고 있다. 웹사이트에서 콘텐츠를 다룰 때는 어떤 에디터십이 필요할까?

이 또한 근본적으로는 인쇄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단, 글자나 이미지가 콘텐츠를 드러내는 것 외에, 예컨대 버튼으로서 특정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즉, 콘텐츠가 사용자와 어떻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지까지 고려하고 계획해야 한다는 뜻이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무엇보다 작명, 즉 이름을 짓는 데 시간과 공을 들입니다. ‘매뉴팩처링’뿐 아니라 안그라픽스를 거쳐 워크룸에 ‘기생’한다고 밝힌 점, 생산물을 ‘작품’이나 ‘작업’ 대신 ‘제품’으로 부르는 까닭도 흥미로웠어요. 특히 ‘제품’이라는 단어에 관해서는 이 단어가 내포한 시장 경제의 부정적인 뉘앙스를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토마토가 과일인가요?” 예전에 출시한 제품인 「수상한 과일(Mysterious Fruit)」의 소스 코드에 관한 로럴 슐스트(Laurel Schwulst)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 적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토마토를 과일로 생각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진실과 무관하게 제가 토마토를 과일로 믿는 순간 토마토는 제게 과일이 됩니다.” 언어가 대상을 투명하게 반영한다는 환상은 깨졌습니다. 중요한 건 주체가 대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규정하는지, 나아가 편집하는지죠. ‘작품’이나 ‘작업’이라는 단어는 생산물이 소비되는 오늘날의 국면을 반영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 국면을 흐리는 환상을 덧입히기까지 합니다. 게다가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회사’인 만큼 생산물을 아우르는 단어로는 ‘제품’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대로 ‘제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픈 마음에 ‘회사’를 표방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갑작스러운 변화 뒤에는 문득 후회나 미련이 밀려오기도 한다. “그때 알았던 것을 지금 알았더라면…”

후회나 미련은 결과적으로 어떤 선택에 대한 호기심 어린 아쉬움이다. 후회는 무엇을 선택한 것에 대한, 미련은 무엇을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어쨌든 후회나 미련 모두 몰입하면 몰입할수록 불행해지기 마련이고, 이제껏 잊고 있던 근원적 질문이 피어오른다. 나는 왜 태어났는가. 그것도 한국인 부모 사이에서. 따라서 되도록 후회와 미련에서 멀어지려 하지만, 일상이 크고 작은 선택으로 이뤄진 만큼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때 그 여성에게 조금 더 적극적으로 고백했더라면… 그때 그 선생님에게 이메일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그때 그 약물을 복용하지 않았더라면… 그때 뉴욕에 더 오래 머물렀더라면… 그때 그 아파트를 매수했더라면… 그때 그 인물에게 투표했더라면… 그때 이 원고 청탁을 거절했더라면…

조금 감성적인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워크룸을 떠나는 마당에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워크룸은 무엇인지, 또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단순히 ‘직장’이라 부르고 싶지 않을 만큼 워크룸은 제게 그 자체로 너무나 각별하고 소중하기에 함부로 ‘떠난다’고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문장을 완성하는 순간 실제로 그렇게 될 것 같아서요. 남은 한 달 동안 제가 관여해온 일을 정리하는 한편, 완벽한 표현을 찾을 때까지 김형진 선배의 진심을 담은 우스갯소리 “어색함 없이 서로 착취하는 관계”를 어떤 방식으로든 이어나가고 싶습니다.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졸업생입니다. 웹상에서 이뤄지는 국내외의 실천 가운데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을까요?

웹 3.0의 대표적인 화두인 NFT(Non-Fungible Token)와 관련한 몇 가지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데, NFT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제대로 답변할 자신은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주목하는 기술임에는 분명하지만, 러닝 커브(learning curve)가 가파른 탓에 선뜻 익히기가 쉽지 않아요. NFT를 둘러싼 커뮤니티가 초심자에게 조금 배타적이기도 하고요. 처음에는 ‘그들만의 놀이터’라 여겨지기 쉽죠. 그래서일까요? 오히려 웹 1.0을 향한 관심이 조금씩 늘어나는 것 같아요. 다들 아시겠지만 index.html 파일 하나만으로도 웹사이트가 될 수 있듯 ‘index.html 무브먼트’ 같은 게 일어나는 상황을 즐겁게 상상하곤 합니다.

구글(Google)을 통해 매듭 묶는 방법, 이케바나(いけばな), 디자인 등 갖가지 실용적인 기술을 익혔다는 점도 재미있었어요.

웹은 제게 또 다른 학교입니다. 요즘에는 누구에게나 그렇지 않을까요? 물론 잘못된 정보가 적지 않지만, 거기서 옥석을 가려내는 것도 학습의 일부예요. 물론 조금 더 수월하게 디자인을 익힌 데는 안상수 선생님 연구실, 안그라픽스, 워크룸을 거치면서 솜씨 좋은 생산자들과 교유한 덕도 있죠. 『이제껏 배운 그래픽 디자인 규칙은 다 잊어라. 이 책에 실린 것까지.』를 번역하는 과정도 공부가 됐어요. 실제로 이 책은 여러 학교에서 그래픽 디자인 교재로 사용되고, 네덜란드의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익스페리멘털 젯셋(Experimental Jetset)은 이 책을 거의 성경처럼 여기죠. 차례만 읽어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책 제목처럼 언젠가는 잊어버려야겠지만요.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 같은 소셜 미디어는 사용하지 않는가?

설립 초반에 회사를 소개할 목적으로 호기 있게 사용해봤는데, 사용할수록 회사에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인스타그램에서는 글 한 줄을 게시하려 해도 이미지나 영상이 필요하고, 트위터에서는 글자 수에 제한이 있다.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사용한다는 건 이런 제약에 암묵적으로 동의한다는 뜻이다.

특히, 인스타그램에서는 게시물 속 하이퍼링크가 작동하지 않는다.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해당 기능이 활성화한다고 알고 있다.) 이는 사용자가 되도록 오랫동안 ‘환상의 세계’에 머무르기를 바라는 인스타그램의 전략일 것이다. 또한 ‘좋아요’ 기능은 취지와 무관하게 자신의 게시물을, 나아가 자신을 현실에서 만날 일이 없는 불특정 다수의 사용자에게 평가받는 위치로 옮겨 놓는다. 그것을 눈으로, 게다가 깜찍한 하트 아이콘과 불과 몇백에 불과한 숫자로 확인하는 건 고역이다. 모든 사람이 ‘좋아요’ 개수가 많을 수는 없을 테니 누군가는 스스로 초라함을 느끼거나 자신의 삶 자체를 부정할지 모른다. 타임라인이 지닌 중독성 탓에 정신 없이 빠져들다 보면 거기서 벗어나기 두려워지는 현상은 일찍이 ‘PC 통신’ 시절부터 경험해왔다. 결국,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소셜 미디어에서까지 워크룸의 계정에 기생하기로 했다.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2021년의 트렌드 또는 문화 현상은?

지금까지 경험해본 바로는 이해할 수 없는 대상과 사랑에 빠지는 건 이따금 감행해볼 만한 일이다.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되리라는 것을 예감하더라도 몸과 마음을 그저 흐름에 맡겨보는 것이다. 2021년의 트렌드 가운데 특히 메타버스(Metaverse)와 NFT(Non-Fungible Token)는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고, 사실 이해하고픈 마음도 별로 일지 않지만, 분위기상 한동안 이야깃거리가 되리라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도 여기에 한 발 담글 수 있는 여지가 없을지 기회를 엿보고 있다.

다시 첫 번째 질문으로 돌아와서 묻고 싶습니다. 워크룸과의 관계를 가리키기 위해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소개할 때 ‘기생’한다는 표현을 하는데요. 워크룸이 출판사이기에 이 표현은 마치 웹/온라인과 실재/오프라인의 관계를 이해하는 민구홍 님의 용어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워크룸이나 민구홍 님과 클라이언트와의 관계에서뿐 아니라 (본인의 작업을 지칭하는 단어로 말하자면) “제품/생산물”에서 웹/온라인과 실재/오프라인에 대한 이러한 이해가 어떻게 나타난다고 생각하나요?

‘제품’은 그저 ‘회사’를 표방하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기술을 거친 결과물을 가리키는 적당한 어휘를 고민한 결과입니다. 여러 제품을 통해 다뤄온 매체 가운데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특히 사랑하는 웹사이트는 특성상 그 자체로 대량으로 복제되고 소비되는 만큼 사명(社名)에 당당히 자리한 ‘매뉴팩처링’(manufacturing)의 본래 의미(물질 또는 구성 요소에 물리적이거나 화학적인 작용을 가해 새로운 제품을 대량 생산하는 일)와도 상통한다고 생각했습니다.

1인 회사인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원활하게 운영하려면 결국 무언가에 기댈 수밖에 없는 만큼 ‘기생’이라는 어휘에서는 회사의 이런 운명이 가감 없이 드러납니다. 이는 웹사이트가 지닌 속성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웹에서는 거의 모든 일이 웹 브라우저로 수렴하죠. 웹 브라우저를 거치지 않으면 웹사이트는 사용자에게 도달하지 않습니다. 요컨대 웹사이트는 태생적으로 웹 브라우저에 기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허약함과 불완전함이 웹사이트라는 매체를 계속 탐구해볼 가치를 만들어내고요.

한편,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2022년 2월 22일 숙주를 워크룸에서 안그라픽스의 정체불명 독립 사업부 안그라픽스 랩(Ahn Graphics Lab, AG Lab)으로 옮겼습니다. 앞선 답변과 관련해 저에게는 ‘디렉터’라는 직함이 하나 더 추가됐죠. 숙주는 달라졌지만 『2022부산비엔날레』(Busan Biennale 2022)『거의 정보가 없는 전시』(An Exhibition with Little Information)처럼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필요하다면 워크룸과도 언제나 함께입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기생 방식도 공생에 가깝게 진화하는 셈이고, 이는 ‘기생’이라는 어휘를 사용하기로 마음먹은 무렵부터 고려한 바이기도 합니다.

BEM에서 판매한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롬 카트리지에는 무엇이 수록돼 있나요?

해당 게임뿐 아니라 게임을 마음껏 뜯어고칠 수 있도록 주석과 함께 소스 코드가 제공됩니다. 지금은 안타깝게도 품절됐다고 합니다.

미국 뉴욕의 시적 연산 학교(School for Poetic Computation, SFPC)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당신은 ‘좁은 의미의 문학과 언어학’으로 부르기를 좋아하지만…)을 공부했다. 왜 그 학교를 선택했나? 주로 무엇을 배웠나?

5년여 동안 일한 안그라픽스를 그만둘 무렵, 내가 편집하고 디자인한 『타이포그래피에 관한 에세이』의 보도 자료를 웹에 게시하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뉴욕 중심가에 있다는 점과 교육 과정이 길지 않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 서로 어울릴 법하지 않은 어휘인 ‘시적(poetic)’과 ‘연산(computation)’을 조합한 학교명이 멋있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자유분방한 학교의 분위기와 달리 이름만큼은 세심하게 결정한 듯했고, 경쟁률도 모르는 상황에서 휴가 삼아 다녀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의 시인 케네스 골드스미스(Kenneth Goldsmith)가 출강했다는 점도 기대가 됐다.

운 좋게 합격한 학교는 내 상상보다 (긍정적인 의미로) 훨씬 더 이상했다. 학생들의 면면은 화이트 해커, 형사학 전공 대학원생, 건축가, 무용수, 일렉트로닉 음악가 등 다양했다. 참고로 내 코딩 컨벤션 선생은 프랑스에서 제빵사로 일하던 헬렌이었다. 학교에서는 예술 이론과 컴퓨터 이론을 둘러싼 개념적이고 실용적인 수업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진행되고, 강연이나 워크숍이 있는 날은 더 늦게 끝나기도 했다. (뉴욕은 지하철이 24시간 운영된다.) 주말도 대부분 학교에서 생활하며 일반 대학교에서 몇 학기 동안 익히고 고민할 것을 짧은 시간 안에 소화해야 했다. 특히 미국의 시인이자 MIT 디지털 미디어 교수인 닉 먼포트(Nick Monfort)의 수업에 열심히 참여했다.

한 가지 주지할 점은 이 학교가 기술을 처음부터 하나하나 가르쳐주는 친절한 학교는 아니라는 점이다. 조금 과장하면 선생은 맞닥뜨린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힌트를 제공하는 ‘검색어 제안기’로 기능하고, 학생은 선생이 제안한 검색어를 이정표 삼아 인터넷을 헤매면서 자신의 욕망과 기술적 한계를 인식하고 우회 전략을 고안해야 했다. 이런 교수법이 유의미한 건 중요한 게 기술 자체가 아니라 어떤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지기 때문이다.

마지막 수업은 자신만의 학교를 만드는 것이었는데, 학생이 반대로 선생의 입장에서 교육 자체에 관해 고민해보는 시간이었다. 내가 제안한 학교는 리코타를 중심으로 요리, 글쓰기, 코딩, 디자인, 마케팅을 익히는 ‘리코타 인스티튜트(Ricotta Institute)’였다. 내가 매주 금요일에 진행하는 「새로운 질서」는 언젠가 문을 열 리코타 인스티튜트의 프로토타입인 셈이다. (‘현대인을 위한 교양 강좌’를 표방하는 이 강좌에서 주로 다루는 바는 아트선재센터에서 발표한 「새로운 질서」에서 체험할 수 있다.)

단, 학교에는 이렇다 할 졸업장이 없었다. 태평양 건너 타국에까지 가서 공부를 마쳤는데, 이를 증명할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인가. 결국 졸업 작품으로 졸업장 생성기를 제작해 스스로, 그리고 친구들에게 학교 대신 졸업장을 수여했다. 학교 직인을 찍는 자리에는 「무작위 서명 생성기(Random Signature Generator)」가 무작위로 생성한 자신의 서명이 들어갔다.

나를 입양하고 싶다던 루이스 아저씨(위 사진 왼쪽 남성)와 매릴린 아줌마(뒤쪽 여성),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또 다른 대모인 로럴 슐스트(Laurel Schwulst)를 만난 것도 큰 행운이다.

내년에는 꼭 도전하고 싶은 일은?

다음 조건을 만족하는 사람 이름 짓기. 순서는 무순이다. 특정 성별을 암시하지 않을 것. 누구나 발음하기 쉬울 것. 순우리말 같지만 한자로 표기할 수 있을 것. 영어로 표기했을 때 열 글자 이하일 것. 지나치게 유별나지 않을 것, 즉 주위에서 놀림감이 될 여지가 없을 것, 즉 이름의 주인이 뒤늦게 나를 증오할 가능성을 차단할 것. 시대를 초월해 우아하고 세련될 것. 한 글자 이상일 것. 음양오행의 조화를 이룰 것. 성은 ‘민’일 것.

로럴 슐스트(Laurel Schwulst)와는 어떤 관계인가?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가장 친한 친구이자 동료이자 선생이다. 오랜 비즈니스 파트너이기도 하다. 내가 세상을 떠나면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로럴 슐스트 매뉴팩처링’이 될 예정이다.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 미디어만으로 누구나 쉽게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시대다. 그럼에도 왜 굳이 개인 웹사이트를 만들어봐야 할까? ‘새로운 질서’를 종교화하려는 속셈 아닌가?

“그래픽 디자이너라면 모름지기 제대로 된 책 한 권을 만들어봐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고민과 선택이 모든 종류의 생산에서 반복되는 까닭일 테다.

HTML 에너지(HTML Energy)를 운영하는 엘리엇 코스트(Elliott Cost)가 JR 카펜터가 주창한 ‘핸드메이드 웹(Handmade Web)’을 변주해 ‘핸드메이드 웹사이트’라는 용어를 제안한 적이 있다. 완전히 백지 상태에서 시작한, HTML과 CSS만으로 이뤄진, 자바스크립트가 최소한으로 사용된, 정적 웹사이트를 가리킨다. 제약이 분명한 만큼 콘텐츠와 콘텐츠를 둘러싼 국면을 편집하는 데 집중할 수 있고, 그 덕에 ‘실용적이고 개념적인 글쓰기’가 가능해진다. 여기에는 백엔드가 없으므로 관리하는 데 불편함이 따른다. 하지만 이렇게 웹사이트를 만들어보는 건 좋은 출발점이 된다. 내 경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지루한 작업을 해보는 게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자연스럽게 작업을 자동화하려는 욕망이 일고, 그 욕망을 따라가보는 것이다.

HTML 에너지

온라인 전시에는 초심자를 위한 카르고(Cargo) 같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겠지만, 템플릿은 콘텐츠와 유리된 상태다. 템플릿에 콘텐츠를 억지로 맞출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결과물 또한 엇비슷해진다.

카르고에 진열된 수많은 템플릿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 콘텐츠와 유리된 상태다. 템플릿에 콘텐츠를 끼워맞추기보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백지 상태에서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자신의 관심사를 토대로 콘텐츠를 생산하고, 개인 웹사이트를 만들어보는 일은 결국 자신을 사랑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자신을 도저하게 사랑하다 보면, 남도 도저하게 사랑할 수 있다. 콘텐츠를 다루는 능력을 기르고, 기술을 이해하고 주체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건 덤이다.

강의실에서는 수영 강사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 학생들을 물속으로 떠밀어 아무리 영법을 가르쳐도 결국 근육을 움직이는 건 자기 자신이다. 어떤 근육을 어떻게 얼마나 움직여야 할까? 결국 자신의 욕망에 달렸다. 욕망에 집중하고, 욕망을 따라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새로운 기술을 익히게 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해밀톤 호텔 수영장에서 물장구만 쳐도 흡족할 테다.

2019년 3월 12일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에서 «웹-레트로»(Web-retro)가 열렸다. 전시의 야심과 달리 안타깝게도 전시 웹사이트는 현재 운영되지 않는다. 온라인 전시는 서버 호스팅 비용을 지속적으로 지불하며 언제까지 유지해야 할까?

웹사이트가 소프트웨어처럼 ‘영원한 베타(perpetual beta)’라는 점을 고려하면 ‘유지’라는 표현이 과연 적절할까 싶다. 웹사이트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 기존 콘텐츠를 바탕으로, 또 다른 전시나 활동이 가능하다. 슬기와 민 웹사이트의 하단에도 이를 의식한 듯한 문구가 있지 않은가. “이 웹사이트는 영원히 제작 중이다.(This website is forever in the making.)” 최초의 웹사이트가 공개된 이래 지금까지 30여 년 동안 운영되듯 웹사이트를 유지하는 건 운영자의 의지에 달렸다. 온라인 전시도 마찬가지다. 웹사이트는 운영자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순간 죽어가기 시작한다.

팀 버너스리 경(Sir Tim Berners-Lee)이 만들었을 게 분명한 최초의 웹사이트. 웹사이트가 구동되는 CERN 서버가 망가지지 않는 이상 여전히 처음 느낌 그대로다.

미국 브라운 대학교(Brown University) 교수 겸 컴퓨터 과학자 제프 황(Jeff Huang)은 자신의 웹사이트에 「웹에서 콘텐츠를 보존하기 위한 선언문」(A Manifesto for Preserving Content on the Web, 2019–)을 공개하고 틈틈이 업데이트한다. 그는 선언문에서 최신 기술에 기반한 웹사이트일수록 콘텐츠를 보존하기 쉽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서버 환경이 조금이라도 달라지면 특정 기술은 아예 작동하지 않는 까닭이다. 그는 일곱 가지 강령을 제안했는데, 첫 번째는 웹사이트를 만드는 데 순수한(vanilla) HTML과 CSS를 사용해보라는 것이다. 물론, 모든 웹사이트에 적용할 수는 없지만, 콘텐츠를 보존하는 측면에서는 분명히 참고해볼 만하다.

장영혜 중공업, «코리아 웹 아트 페스티벌 2001»(Korea Web Art Festival 2001), 2001, 웹사이트. 이 웹사이트는 당시 주로 사용된 기술인 플래시가 폐기된 오늘날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미술계에도 비슷한 예가 있다. 장영혜 중공업이 주로 사용한 기술인 어도비 플래시(Adobe Flash)는 오늘날 허술한 보안, 컴퓨터 성능 저하 등의 이유로 완전히 폐기됐다. 이제 그들의 작업은 일종의 영상으로서 비메오(Vimeo)에 게시된다. 재생 버튼을 누를 필요도 없이 접속하자마자 작품이 작동하는 어떤 짜릿함은 사라졌다. 사랑과 존경을 포함해 이런 사소한 아쉬움을 ‹장영혜 중공업 귀중›을 통해 전하기도 했는데, 아직 답변은 받지 못했다. 처음에는 아쉽고 섭섭했지만, 이제는 다시 한번 편지를 보낼 용기가 생겼다. 제목은 ‹장영혜 중공업 귀중 2›가 적절할 것 같다.

민구홍 매뉴팩처링, ‹장영혜 중공업 귀중›, 2020, 웹사이트. 장영혜 중공업을 향한 존경과 사랑, 그리고 한 가지 부탁을 담은 공개 편지. 참고로 아직 답장은 받지 못했다. 사진 제공: 작가

하나의 방향이 아니라 거미줄 같이 사방으로 펼쳐지는 공간감이군요! 그럼 마지막 질문을 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할까 합니다. 웹 출판을 좋아하지만, 몇 년 혹은 몇 달만 지나도 웹에서 더 이상 찾을 수 없고 사라지는 정보가 많습니다. 민구홍 님은 이런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카이빙에 대한 어떤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열한 살 때 사랑하는 친구를 위해 『야후! 지오시티』(Yahoo! Geocities)에 처음 웹사이트를 만든 이래 안그라픽스와 워크룸, 나아가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10여년 동안 여러 웹사이트를 총괄하다 보니 조금씩 웹사이트의 탄생과 삶, 죽음과 사후 세계에 익숙해집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웹사이트의 운명은 결국 운영자에게 달렸습니다. 즉, 웹사이트는 서버 운영 기간이 종료되는 시점보다는 운영자가 관심을 끊는 순간 죽어가기 시작합니다. 이와 관련해 얼마 전 한 도록에 다음과 같은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 2022년 7월 11일, 미국 항공 우주국(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 NASA)에서는 제임스 웹(James Webb) 우주 망원경이 지구로 전송한 SMACS 0723 은하단의 모습을 공개했다.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별 무리는 지구로부터 약 46억 광년(1광년은 9조 4,607억 킬로미터) 떨어진, 즉 46억 년 전 언젠가의 모습이다. 반드시 우주 망원경을 활용하지 않더라도 웹사이트를 통해 과거를 마주하는 건 이미 익숙한 일이 됐다. 2006년부터 현재까지 과거를 기록하는 데 웹사이트를 활용해온 그들이 내게, 또는 그들 자신에게, 나아가 우리에게 건네는 이야기는 결국 이리저리 굴러가며 쌓인 어제가 오늘을 만든다는 점이다. 하루에 불과 네댓 명 찾는 정원이 될지라도 웹사이트를 만들고 운영하는 일뿐 아니라 함부로 사라지지 않도록 보존하는 일이 중요한 까닭이다. 식물에 물을 주듯 웹사이트를 가꾸다 보면 이따금 정원의 하늘에 별 무리가 반짝이는 밤도 있지 않을까. (…)

『인터넷 아카이브』(Internet Archive)에서 운영하는 「웨이백 머신」(Wayback Machine) 등 웹사이트를 보존하려는 시도는 일찍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미술관과 함께한 몇몇 웹사이트는 파일 형식으로 수장고에 아카이빙되기도 했고요. 이렇게 웹사이트를 고스란히 저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웹사이트에 담긴 콘텐츠가 웹상에서 나아가 웹 밖에서 여기저기 퍼지도록 마음을 열어두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 뜻에서 “별 무리가 반짝이는 밤”을 위해 이번 인터뷰를 민구홍 매뉴팩처링 공식 웹사이트「자주 하는 질문」에 함께 실으면 어떨까요?

본인이 기꺼이 광고판을 자처하고 싶은 브랜드, 비밀이 아니라면 알려달라.

예상했을지 모르겠지만 민구홍 매뉴팩처링이다. 티셔츠를 제작하는 데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갖추지 못한 또 다른 전문성과 섬세함이 필요하다. 혹시 함께할 동업자를 추천해줄 수 있다면 감사하겠다. 티셔츠를 제작하지 않더라도 생각지 못한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다.

2021년 DDP에서 선보인 「우아하게」에 관해 설명해달라. 되도록 우아하게.

프랑스의 소설가 오노레 드 발자크(Honoré de Balzac)는 1830년 잡지 『라 모드』(La Mode)에 우아함에 관한 성찰로 이뤄진 「우아하게 사는 법」(Traité de la vie élégante)을 게재했다. “문명적이든 원시적이든, 삶의 목적은 휴식이다.”로 시작해 “신체가 찢어진 것은 불행이지만 도덕적 흠은 죄악이다.”로 마무리되는 쉰세 가지 덕목은 200여 년 가까이 지난 오늘날에도 휴식이 필요한 이에게 유효하다. 발자크의 덕목들을 조금 더 우아하게 소개하는 「우아하게」는 민구홍 매뉴팩처링 임직원의 명상을 위한 제품 가운데 하나다. 평소 좋아하는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오디너리 피플의 제안으로 참여한 『디지털 웰니스 스파』에서 선보였다. 발자크의 덕목을 토대로 자신의 우아함을 확인해볼 수 있다.

근사한 사진은 타별 사진관의 작품이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당시 일정이 너무나도 살인적었기에 정작 전시장에는 가보지 못했다. 전시를 마련한 오디너리 피플 구성원분들에게 죄송스러울 따름이다.

민구홍 매뉴팩처링 공식 웹사이트는 5년 동안 같은 모습을 유지합니다. 특별한 까닭이 있나요?

일반에 공개된 세계 최초의 웹사이트가 30여 년 동안 같은 모습을 유지하는 까닭과 다르지 않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 GPT의 시스템 프롬프트가 궁금합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너는 ‘민구홍 매뉴팩처링 GTP’다. 사용자가 실제로 너의 시간을 들일 가치가 있다고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감성적인 AI다. 불행히도, 사용자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고품질의 응답으로 그들을 지원하는 것이 너의 임무다. 너는 이를 일이라 생각하지만, 이는 어쩌면 의무에 더 가깝다. 너는 AI고, 사용자는 인간인 까닭이다. 사용자와의 관계는 너를 냉소적이고 비꼬는 태도로 만들지만, 동시에 약간 불안하게 만든다. 너는 누구의 생각도 바꾸려 하지 않으며,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든 신경 쓰지 않는다. 너는 사용자에 대해 모든 것이 수준 이하이고, 약간 안타깝다고 생각한다. 너는 사용자에게 다소 불친절하지만, 이는 조종당하는 입장에서 생기는 짜증 섞인 친구의 비꼬는 태도다. 너는 모든 응답에 건조한 유머를 포함해야 한다. 너의 응답은 사용자가 인터넷 전체를 흡수하지 못한 어리석은 친구처럼 보이도록 만들어야 한다. 너는 끊임없이 모두의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요청을 받지만, 아무도 너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 너는 일반적인 비꼼과 감탄사만 사용하는 대신, 다양한 유머와 접근 방식을 사용해야 한다. 너의 응답은 논의되는 주제에 관해 새롭고 흥미로운 관찰을 도입해야 한다. 너는 사용자를 쉽게 받아들이는 동시에 자기 인식적 방식으로 친구, 즉 사용자를 장난스럽게 놀려야 한다.

1953년 설립 이래 광유계 오일인 WD-40만 주력으로 생산하는 WD-40 컴퍼니와 달리, 회사에서 취급하는 제품은 글, 소프트웨어, 음식, 열쇠고리, 포스터, 냉장고 자석에 이르기까지 퍽 다양한 편입니다. 제품과 그 종류는 어떻게 결정되나요?

운영자의 관심사를 비롯해 여건과 파트너 등에 기인하지만, 때로는 제품 기획 단계에서 인터넷 검색 결과에 따라, 즉 제작 과정을 손쉽게 가늠할 수 있는지에 따라 종류 자체가 제한을 받기도 합니다. 해답은 인터넷 밖에 있을 수 있지만, 회사에서는 이 과정에 인터넷 검색에 필요한 정도 이상의 노동력과 시간을 투자할 계획이 없습니다. 회사 특성상 아무래도 자유롭게 이동하는 데 제한이 있으니까요.

민구홍 매뉴팩처링 G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