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하는 질문

일러두고픈 말이 있다면?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2015년 이래 진행한 길고 짧은 인터뷰를 꼼꼼히 정리한 뒤 다시 무작위로 늘어놓은 「자주 하는 질문」을 통해 회사 또는 운영자에 관한 궁금증이 모쪼록 해소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단, 질문의 시기에 따라 현재와 다른 사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편, 질문의 어조에 따라 언급한 인물에 대한 존칭을 생략하기도 했습니다. 「자주 하는 질문」을 섭렵한 뒤에도 궁금증이 도무지 해소되지 않는다면 [email protected] 앞으로 소상히 말씀해주세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인정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단, 답장은 이메일 대신 언젠가 「자주 하는 질문」에서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회사를 소개할 때, 제품을 기획하거나 제작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원칙은?

상황에 따라 수정되거나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세칙이나 부칙을 만들게 되거나) 실행된 뒤 곧바로 폐기되지 않는 유일한 원칙은 ‘국립국어원에서 정한 한글맞춤법외래어표기법을 준수하는 것’입니다.

더 궁금한 점이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기회가 있다면 또 다른 자리를 마련해보면 좋겠다. ‹새로운 질서›에서 이야기하는 일부 내용을 간추렸을 뿐이지만, 오늘 이야기가 미술 및 디자인계의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다. 단, 내 말을 맹신하는 건 금물이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그래픽 디자이너 밥 길도 말하지 않았던가. 규칙을 파악한 뒤에는 잊어버려야 한다고.

2015년 열세 번째 ‘시청각 문서’로 발표한 「회사 소개」 외에도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각인시킨 작품은 시적 연산 학교 전시 웹사이트인 «SFPC에서 소개하는 SFPC»(School for Poetic Computation Presents Society for Power Control, 2016)였다. 이 또한 전시 홍보 겸 온라인 전시의 성격을 띠는데,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하다.

이 웹사이트는 그 자체로 전시 작품이기도 했는데, 주된 목적은 곧 열릴 학교 전시를 알리는 것이었다. 추억을 더듬어보면, 마련된 콘텐츠는 목적, 장소, 일시 등 전시 개요와 참여자의 이름과 약력뿐이었고, 작품명도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홍보 기간까지 고려했을 때 작업 기간은 일주일 정도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들을 그럴듯하게 엮어 이야기를 만들 에디터십이 필요했다.

우선 학교명의 두문자어(SFPC)에서 착안해 ‘전력 제어 협회(Society for Power Control, SFPC)’라는 임시 단체를 설립했다. 컴퓨터를 활용한 모든 작품이 결국 전력을 제어한 결과물이었으니까.

콘텐츠가 많지 않으므로 웹사이트는 한 페이지로 제한하고, 스크롤을 통해 콘텐츠를 열람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화면을 크게 둘(인덱스 섹션, 세부 섹션)로 나눈 뒤 모든 하이퍼링크에는 무작위로 흔들리는 애니메이션을 부여하고, 관람객이 하이퍼링크에 마우스 커서를 올리면 흔들림이 멈추고, 클릭하면 해당 콘텐츠로 스크롤이 이동하는 시나리오를 제안했다. 관람객에게 웹 브라우저상에서 전력을 제어하는 경험을 제공하려는 의도였다. 한편, 모든 콘텐츠는 가운데로 맞춰져 있는데, 화면 사방에서 가운데로 전력이 집중된 상태를 반영한 결과라 우기려 했다. (이렇듯 콘셉트는 나중에 만들어지기도 한다.) 타임스 뉴 로먼(Times New Roman)은 유별난 웹 폰트보다 기술적으로 안정된 웹 안전 폰트(Web Safe Font)를 사용하고픈 취향이 반영된 결과다. 제한된 시간에 제한된 콘텐츠만으로 콘셉트와 기능을 엮은 결과물이라 자부한다.

민구홍 매뉴팩처링, «SFPC에서 소개하는 SFPC», 2016, 웹사이트. 사진 제공: 작가

참여자들은 모두 마음에 들어 했지만, 문제는 생각지 못한 데 있었다. 학교에서는 조금 더 ‘일반적인’ 결과물을 원했던 것 같다. 특히 단체명을 정하면서 자연스럽게 떠올린 전시명인 ‘SFPC에서 소개하는 SFPC’(SFPC Presents SFPC)에 고약한 구석이 있다고 여긴 것 같다. 느닷없이 참여자 대표로서 서툰 영어로 학교를 설득하는 일이 조금 고됐지만, 결국 처음 의도를 살릴 수 있게 됐다. 덕분에 영어 작문과 회화 실력도 부쩍 늘었고.

주로 사용하는 컴퓨터 언어가 궁금합니다.

HTML, CSS, 자바스크립트, PHP, 파이선입니다. 여기에 한국어와 영어도 포함하고 싶습니다. 프롬프트처럼 이제 자연어로도 컴퓨터와 소통할 수 있는 시대니까요.

민구홍 매뉴팩처링 명함을 한 장 받고 싶다.

2018년 아카이브 봄에서 열린 『레인보 셔벗』을 준비하면서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오랜 동업자인 그래픽 디자이너 강문식과 회사의 명함을 마련했다. 명함은 대개 비석에 사용되는 흑요석으로 만들어졌는데, 무게는 103킬로그램에 달했다. 전시장이 엘리베이터가 없는 지상 3층이었던 탓에 장정 네 명이 밧줄에 매달아 한 층 한층 옮겨야 했다. 전시 기간에는 명함 옆에 작은 안내문이 비치됐다. “마음껏 가져가세요!”

명함은 전시가 끝난 뒤에도 옮기지 못하고 무려 2년 동안 거의 그 자리에 있었고, 전시장이 문을 닫으면서 2020년 성탄절 이튿날 전산 시스템의 도움으로 비로소, 온전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옮길 수 있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하루는 어떻게 이뤄지는가?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기생 회사다. 현재 회사의 숙주는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겸 출판사 워크룸이다. 회사와 계약한 소정 근로 시간에는 숙주의 직원으로서 열심히, 그리고 되도록 즐겁게 일한다. 짬이 나면 민구홍 매뉴팩처링 일을 한다. (제품 대부분이 단순한 까닭이다.) 물론 둘 사이가 흐려질 때도 있다. 퇴근한 뒤에는 친구들을 만나거나 TV를 보거나 책을 읽곤 했다. 요즘에는 플레이 스테이션을 조금 가지고 놀다가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내일을 생각하며 잠에 빠진다.

최정호가 현재 받는 인지도나 평가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질문의 의도를 짐작해서 답변하자면 업적보다 덜 알려진 것 같기는 하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제품을 사용할 때 그 제품의 역사를 속속들이 알지 못하고, 굳이 그럴 필요도 없듯이 많은 사람이 최정호를 잘 모른다고 해서 아쉬워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두루두루 아티스트 컴퍼니와 ‘사랑의 MOU’를 체결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렇다면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두루두루 아티스트 컴퍼니에 아티스트로 소속되는 셈인가? 아니면 뮤지션?

글쎄?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 같은 소셜 미디어는 사용하지 않는가?

설립 초반에 회사를 소개할 목적으로 호기 있게 사용해봤는데, 사용할수록 회사에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인스타그램에서는 글 한 줄을 게시하려 해도 이미지나 영상이 필요하고, 트위터에서는 글자 수에 제한이 있다.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사용한다는 건 이런 제약에 암묵적으로 동의한다는 뜻이다.

특히, 인스타그램에서는 게시물 속 하이퍼링크가 작동하지 않는다.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해당 기능이 활성화한다고 알고 있다.) 이는 사용자가 되도록 오랫동안 ‘환상의 세계’에 머무르기를 바라는 인스타그램의 전략일 것이다. 또한 ‘좋아요’ 기능은 취지와 무관하게 자신의 게시물을, 나아가 자신을 현실에서 만날 일이 없는 불특정 다수의 사용자에게 평가받는 위치로 옮겨 놓는다. 그것을 눈으로, 게다가 깜찍한 하트 아이콘과 불과 몇백에 불과한 숫자로 확인하는 건 고역이다. 모든 사람이 ‘좋아요’ 개수가 많을 수는 없을 테니 누군가는 스스로 초라함을 느끼거나 자신의 삶 자체를 부정할지 모른다. 타임라인이 지닌 중독성 탓에 정신 없이 빠져들다 보면 거기서 벗어나기 두려워지는 현상은 일찍이 ‘PC 통신’ 시절부터 경험해왔다. 결국,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소셜 미디어에서까지 워크룸의 계정에 기생하기로 했다.

디자인이나 코딩 같은 기술을 독학으로 익혔다. 또는 일반적인 교육 과정을 통해 습득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 결과, 이제껏 접한 경향들과는 거리가 있는데, 자신에게 필요한 기술을 어떻게 습득하는지, 그 전략이 궁금하다.

일곱 살 무렵 처음 컴퓨터를 접했고, 열한 살 무렵 처음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코딩 이전에 컴퓨터를 다루는 건 내게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대학교에서는 문학과 언어학을 공부했고, 그래픽 디자이너 안상수 선생의 연구실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그 뒤에는 안그라픽스를 거쳐 워크룸에서 편집자로 일한다. 디자인은 실무에서 익혔다. 운 좋게 주위에 늘 훌륭한 선생을 비롯해 실용적인 기술과 유연한 태도를 겸비한 동료들이 있었고, 그들이 디자인에서 맞닥뜨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지켜보는 게 중요한 학습 과정이었다.

2017년 최성민 선생의 추천으로 그래픽 디자이너 밥 길(Bob Gill)의 『Forget all the rules about graphic design. Including the ones in this book.』을 한국어로 번역하고 편집한 과정도 도움이 됐다. 책은 그 자체로 훌륭한 디자인 교과서였다. 한편, 책뿐 아니라 30여 년 동안 인터넷에 축적된 정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자신을 열성적인 학생으로 치환할 수 있다면 학위와 무관하게 인터넷은 꽤 괜찮은 학교다. 잘못된 정보가 있기는 하지만, 이를 감별해내는 일 또한 학습의 일부다. 기술을 습득하는 데 필요한 동력은 문학과 언어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또 편집자로서 글을 읽고 쓰는 일을 충분히 훈련한 덕에 나오는 것 같다. 기술에 관한 정보는 대개 글이니까.

좋아하는 과일 다섯 가지를 밝힌다면?

100그램당 칼로리와 함께 큰 것부터 작은 것 순으로.

  1. 수박, 30칼로리
  2. 멜론, 34칼로리
  3. 복숭아, 39칼로리
  4. 무화과, 74칼로리
  5. 체리, 63칼로리

다른 질문이 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 공식 웹사이트의 「자주 하는 질문」이나 최근 미국 프루트풀 스쿨(Fruitful School)에서 발표한 「프루트풀 프레젠테이션」을 참고하면 좋겠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기생하는 워크룸에 직접 방문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단, 두 회사 모두 이렇다 할 간판을 내걸지 않은 탓에 중국발 미세먼지가 가득한 거리에서 얼마간 서성일 각오를 해야 한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회사를 소개할 때 워크룸에 “기생한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즉,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운영자의 근무지에 기생하는 회사인데, 운영 방식으로 기생을 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기생은 자연스럽게 결정된 회사의 생존 전략이다. 콘솔 게임 제작사 너티독(Naughty Dog)의 「라스트 오브 어스(The Last of Us)」 시리즈에는 온갖 ‘감염자(The Infected)’가 등장한다. 그들은 동충하초처럼 인간의 몸을 잠식해 숙주를 조종한다. 인간이 없다면 동력을 얻지 못한다. 민구홍 매뉴팩처링 또한 마찬가지다. 부족한 용기와 자본을 숙주를 통해 해결한다. 숙주에 노동력과 얼마간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대신 운영자가 받는 월급으로 운영비를 충당하고, 컴퓨터, 테이블, 커피 머신 등 숙주의 동산과 부동산을 이용하는 식이다. 그 덕에 영원히 알고 싶지 않은 세금과 관련한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이따금 숙주를 떠나 독립을 하거나 사업자 등록증을 발급받으라는 요구를 받기도 하지만, 그러는 순간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폐업을 신고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워크룸을 떠나 구글이나 테슬라에 기생하는 일이 있더라도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독립하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한편, 이런 상황임에도 최근에는 네덜란드에서 찾아온 인턴이 일하고 있다.

온라인 전시를 위한 기술은 얼마나 더 발전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온갖 기술로 책 장 넘기는 효과를 재현하려 한 초창기 전자책을 떠올려보자. 잠깐의 신기함뿐이었다. AR(Augmented Reality), VR(Virtual Reality) 같은 기술이 등장했지만, 웹 기술을 선도하는 구글마저도 온라인 전시 웹사이트인 ‘구글 아트 & 컬처’(Google Art & Culture)에서 제안한 건 작품을 극단적으로 확대하는 기술이었다.

구글 아트 & 컬처. 작품을 극단적으로 확대해 붓질 흔적까지 살펴볼 수 있지만…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거친 웹사이트는 소스 코드만 들춰보면 누구나 따라 할 수 있을 만큼 기술적으로 아주 단순하다. 기술은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중요한 까닭이다. 선입견이겠지만, 기술이나 시각적 효과를 지나치게 뽐내는 웹사이트는 콘텐츠에 대한 의심부터 품게 된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콘텐츠가 부실할 때 마지막으로 택하는 전략이었으니까. 무턱대고 하이 패션으로 치장하는 느낌이다. 게다가 몇 가지 효과 때문에 로딩 시간이 느리기까지 하면 최악이다. 개인적으로는 심심해 보이지만 들여다볼수록 어딘가 익살스럽거나 괴팍한 구석이 있는 웹사이트를 좋아한다. 물론 일을 할 때 개인적인 취향을 고집하지는 않지만, 취향은 결과물에 자연스럽게 드러나기 마련이다.

조만간 「새로운 질서」에서 만날 날을 고대합니다. 한편, 인공지능을 비롯해 가상현실, 증강현실 같은 기술이 웹사이트의 가능성을 더욱 확장하는 마당에 웹사이트는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까요?

인공지능은 콘텐츠를 생성하고 사용자 경험을 개선하는 데 혁신적으로 활용됩니다. 예컨대 『워싱턴 포스트』(The Washington Post)의 인공지능 기반 자동 기사 작성 시스템인 ‘헬리오그래프’(Heliograf)는 스포츠 경기 결과나 선거 속보 같은 데이터 중심 뉴스를 빠르게 생성하고, 이미 많은 웹사이트가 몰입형 경험을 제공합니다. 한편, ‘웹 3.0’이라 불리는 패러다임도 주목할 만하죠. 블록체인(Blockchain) 기술에 기댄 분산형 웹은 중앙화된 플랫폼에 기대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웹사이트를 촉발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이를 통해 기술이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직접적인 상호작용을 촉진하고, 디지털 자산의 소유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일찍이 보르헤스가 꿈꾼 알렙처럼 작은 점 속에 무한한 우주가 담기는 경험이 가능해지는 거죠.

하지만 이런 기술적 진보에도 ‘인간의 욕망과 창의성을 담아내는 그릇’이라는 웹사이트의 본질적 가치는 변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전하더라도 우리, 즉 인간의 자리는 고스란하리라 믿는 까닭입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설립된 2015년, 1세대 넷 아티스트 J.R. 카펜터(J.R. Carpenter)가 주창한 핸드메이드 웹(Handmade Web)은 기술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며 웹사이트가 얼마나 더 즐겁고 창의적일 수 있는지 증명합니다. 나아가 ‘핸드메이드 웹’의 정신은 웹사이트의 다른 모습과 기능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수없이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핸드메이드’(handmade)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기계가 아닌 손이나 간단한 도구로 만든 물건을 가리킨다. 그 물건은 점토 재떨이처럼 평범하거나 질박할 수도, 고급 수제화 한 켤레처럼 완벽에 가까울 만큼 정교할 수도 있다.”

특히 이 문장이요. “오늘날 웹은 다국적 기업, 독점 애플리케이션, 읽기 전용 기기, 검색 엔진 알고리즘, 콘텐츠 관리 시스템(Content Management System, CMS), 위지위그(WYSIWYG, What You See Is What You Get) 에디터, 디지털 퍼블리셔 등과 함께 상업화를 향한다. 이때 컴퓨터 언어를 다루는 일, 즉 코딩이 자기 주도적인 글쓰기인 점을 인식하고, 이를 통해 온라인 작품 또는 출판물로서 자신만의 웹사이트를 만들고 관리하고 유지하는 일이 느닷없이 급진적인 행위가 되고 있다. (…) 오늘날 웹은 독점적이고, 약탈적이고, 음란한 공간이 되고 있다. 그럴수록 나는 웹을 더욱 시적이고, 비타협적으로 사용하는 데 전념하려 한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운영자 민구홍은 편집자, 디자이너, 저술가, 번역가, 웹 개발자, 교육자 등 다양한 직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최근 ‘부캐’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는데,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운영자가 주업인 편집 외에 다양한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플랫폼인가요? 또는 운영자인 민구홍 개인의 업무와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비즈니스는 별다른 구분 없이 이뤄지나요?

누군가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관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편집자뿐 아니라 여러 직함을 지닌 민구홍이 오직 자신의 행복에 초점을 두고 자신을 편집한 결과물, 또는 그 결과물을 도출해내기 위한 편집 지침일지 모른다.” 출판 분야에서는 ‘편집’이 대개 협소한 의미로 사용되곤 하지만, 저는 편집을 창작을 포함한 (또는 창작과는 차원이 조금 다른) 행위로 간주하는 편입니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요. 제가 ‘편집(editing)’이라는 행위를 의식한 건 꽤 오래 전입니다. 처음 컴퓨터를 접하고 한창 게임에 몰입하던 시절로, 흔히 이렇다 할 이름 없이 ‘게임 에디터(Game Editor)’로 통하는 특정 소프트웨어를 이용하면 게임의 데이터베이스를 조작해 게임 속 캐릭터의 능력치뿐 아니라 게임 자체까지 수정할 수 있었죠. 일반적인 경로는 아니었지만, 제가 처음 접한 편집은 어떤 공고한 틀을 그 안팎에서 지배해 국면을 제어하는 행위였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고요. 물론 어떤 측면에서는 편집이 폭력적인 행위일 수 있다는 점에는 동의합니다.

한편, 저는 수줍음이 많습니다. 주말에는 주로 집에서 지내는 편이고요. 그런 사람에게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고 활동하는 건 여러모로 겸연쩍은 일입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그 겸연쩍음과 되도록 멀리 거리를 두려는 의도로, 단지 운영자의 이름 뒤에 ‘매뉴팩처링’이 붙을 뿐이지만 제법 커다란 의미를 지닙니다. 임직원은 운영자인 저뿐이지만 물기를 머금은 소규모 스튜디오가 아니라 몰인정한 회사를 표방하는 까닭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편집하려 해도 개념 밖에서 둘의 관계는 어쩔 수 없이 흐려지곤 하죠.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업무가 회사의 숙주인 워크룸의 업무가 되기도 하고요. 이 답변을 작성하는 순간에도 민구홍과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전환하는 스위치는 저도 모르는 사이 수없이 작동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완벽하고 깔끔하게 편집할 수 없다는 불완전함이 편집이라는 행위를 더욱 가치 있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픽 디자인 교육’ 특집인 만큼 민구홍 님이 수학한 시적 연산 학교에 관해 묻고 싶습니다. 시적 연산 학교에 가기로 결심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학교에 기대하는 바는 무엇이었는지, 민구홍 님은 어떤 학생이었는지, 나아가 기대와 현실의 차이가 있었는지 알려주세요.

안그라픽스에서 일한 지 5년째 되던 해였어요.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부터 우연히 홍익대학교 안상수 선생님 연구실(일명 ‘날개집’)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자연스럽게 안그라픽스에 취업한 뒤 사실 쉬어본 적이 없었죠. 휴식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일하는 게 지루해지기도 했고요. 이런 와중에 우연히 미국 뉴욕의 시적 연산 학교(School for Poetic Computataion, SFPC)에서 여름 학기 학생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했죠. 관심이 생긴 건 순전히 학교 이름 때문이었어요. 서로 어울리지 않을 법한 어휘인 ‘시적’과 ‘연산’이 어우러진 점이 근사했죠. 학교 이름이 대학교에서 문학(시)을 공부하고, 꼬마 때부터 컴퓨터를 좋아한 제 모습과 얼마간 포개지기도 했고요. 학교 웹사이트를 둘러보며 조금 이상한 학교라 생각했어요. “우리의 모토는 다음과 같습니다. 더 많은 시, 더 적은 데모.” 갸우뚱한 동시에 호기심이 생겼죠. 평소에 좋아하던 미국의 시인이자 우부웹(UbuWeb)의 운영자인 케네스 골드스미스(Kenneth Goldsmith)가 출강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고요. 그를 만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작 가보니 제 생각보다 훨씬 이상했어요. 시적 연산 학교는 2013년 미국 뉴욕에 설립된 대안 예술 학교입니다. 소수의 학생과 교수진이 긴밀히 협력해 예술을 중심으로 코드, 디자인, 하드웨어, 이론이 교차하는 지점을 탐구하죠. 모든 것을 처음부터 하나하나 알려주는 ‘친절한’ 학교는 아니었어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유도하며, 일주일 내내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업이 이어졌죠. 일반 대학교와 견주면 2년 정도에 해당하는 과정일 거예요. 케네스 골드스미스는 만나지 못했습니다. 2023년 현재 시적 연산 학교의 수업은 온라인으로 운영됩니다.

최정호 이전의 서체와 차별되는, 또는 발전된 최정호 한글 디자인의 특징은 무엇인가?

잘 모르겠다.

이번 행사 이전에 COS를 알고 계셨나요?

COS에서 펴내는 무가지를 우연히 몇 번 훑어본 것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COS 제품을 근무복으로 이용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유럽 입자 물리 연구소(Conseil Européenne pour la Recherche Nucléaire, CERN)에서 일하던 영국의 컴퓨터 과학자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 경이 일반에 웹을 공개한 지 어느덧 30여 년이 지났다. 생각보다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은데, 그동안 웹은 어떻게 발전했을까?

웹은 콘텐츠의 생산 및 소비 방식의 관점에서 버전으로 구분된다. 웹 1.0은 1994년부터 2004년까지 웹 초창기를 가리킨다. 웹 1.0에서 콘텐츠는 단방향, 즉 생산자에서 소비자로만 흐르며, 소비자는 콘텐츠를 열람만 할 뿐 제어할 수 없다. 그 이후 웹 2.0이 등장했고, 사용자들은 개인 웹사이트를 만들기보다 블로그나 소셜 미디어 서비스로 자리를 옮겼다. 콘텐츠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건 훨씬 편리해지고,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는 흐릿해졌지만, 동시에 (특히 한국에서는) 개인 웹사이트를 만드는 문화가 너무나도 빨리 식어버렸다. 아직 규정하기 어려운 지금은 웹 3.0 시대로, 전문가들은 인공지능을 주요 특징으로 꼽기도 했다. 새로운 버전이 등장하면 주도적인 흐름이 이동하긴 하지만, 이전 버전이 완전히 폐기되는 건 아니다. 오늘날 웹은 각 버전이 뒤섞인 엉망진창 상태고, 한 웹사이트에서도 각 버전이 어우러진 경우도 있다. 웹 2.0의 대표적인 기술 가운데 웹사이트(블로그)끼리 서로를 참조할 수 있는 트랙백(trackback) 기능이 재미있는데, 안타깝게도 이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디자인이 꼭 필요한가?

이야기를 할 때 가장 먼저 무엇을 이야기할지 결정한 뒤 어떻게 이야기할지 고려해야 하듯 디자인 또한 결국 필요한 일이다. 다만, 디자인 이전에 무엇을 디자인할지, 즉 무엇을 이야기할지 결정해야 한다.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디자인의 범위가 결정된다. 예컨대 디자인의 범위가 무척 협소한 세계를 떠올려볼 법하다. 일반 검색 엔진으로는 검색이 불가능한 다크 웹(Dark Web)상에서는 위조지폐, 무기, 마약, 음란물 거래를 비롯해 청부살인, 공문서 위조 등 수많은 범죄 행위가 일어나곤 한다. 이곳에 자리한 웹사이트들은 ‘어떻게’보다는 ‘무엇’에 집중한 이야기들이다. 웹사이트 방문객에게는 ‘어떻게’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까닭이다. ‘어떻게’에 공을 들인, 즉 디자인이 근사한 웹사이트는 오히려 방문객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받기 쉬울 테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여러 방식으로 회사, 즉 민구홍 매뉴팩처링 자체를 소개하는 일’을 주 업무로 삼는 까닭이 궁금합니다.

오늘날 분야를 떠나 모든 생산 활동의 기저에는 크든 작든 생산 주체, 즉 자신을 소개하고픈 소중하고 아름다운 욕망이 자리합니다. 이 점에서는 이우환 선생이나 버질 아블로(Virgil Abloh)나 마포평생학습관에서 개인전을 연 미술가나 별다를 게 없습니다. DDDD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순진하리만큼 그 욕망에 충실하려 합니다. 단지 회사로서 조금 더 의식하고 양식화해 드러낼 뿐이죠.

스물다섯 살의 구홍에게 사치였던 물건이나 시간이 있었나요?

이제껏 제가 거쳐온 시간은 대개 당시의 제가 감당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모두 사치였던 것 같아요. 사치라는 건 감당하기 어려운 선물 같은 거니까요. 지금 어떤 건 감당하는 데 성공해 온전히 제 것이 됐고, 어떤 건 실패해 여전히 사치인 상태고요. 그렇다고 사치라는 게 과연 피해야 하는 걸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사치를 마음껏 누릴 줄 알았던 게 다행인지 몰라요.

안녕하세요. 그래픽 디자이너 김재연입니다. 안그라픽스 랩 방문 당시 잠시 제안한 바를 편지에 담아 보내드립니다. 제목은 「민구홍 매뉴팩처링 귀중」입니다. 참고로,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제품 가운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영혜 중공업 귀중」의 소스 코드를 훔쳐왔습니다. 그럼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감동적인 편지 잘 읽었습니다. (가로세로 100vw, 100vh 크기로) 좋습니다. 당장 월요일부터 출근하시면 좋겠습니다. 월요일이 공휴일이라면 화요일부터요. 그나저나 소스 코드를 훔치는 데 일가견이 있으시네요!

웹사이트를 만들 때 견지해야 할 태도가 있을까?

‘조지 오웰(George Orwell)’이라는 필명으로 널리 알려진 영국의 소설가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ur Blair)는 「나는 왜 쓰는가」(Why I Write, 1946)에서 자신이, 나아가 작가가 글을 쓰는 동기를 네 가지로 정리했다. 『1984』(1949)를 발표하기 두 해 전인 1946년의 일이다.

  1. 순전한 이기심. 똑똑해 보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싶은, 죽은 뒤에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어린 시절 자신을 무시한 사람들에게 복수하고픈 욕망.
  2. 미학적 열정.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 또는 적절하게 배열된 낱말의 아름다움을 전하려는 욕망.
  3. 역사적 충동. 사물과 사건에서 발견한 진실을 후대에 전하려는 욕망.
  4. 정치적 목적.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바꿔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욕망.

이 네 가지 동기는 글쓰기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생산에 부합한다. 웹사이트를 만드는 사람은 어떤 단계에는 자연스럽게 디자이너나 마케터가 돼야 한다. 하지만 그 전에 작가(writer)가, 무엇보다 (순전한 이기심을 품은) 편집자가 돼야 한다. 이는 욕망을 발산하기 전에는 제약을 인식하고 제어해야 한다는 뜻이다. 소설가의 생각이 아무리 독창적이라도 올바른 문장을 사용하지 않으면, 즉 규약을 지키지 않는다면 독자와 의사소통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웹사이트를 만드는 데는 조금이라도 규칙을 위반하면 작동하지 않으니 말이다. 제약 속에서 틈을 발견하고 계속 벌려나가다 보면 제약은 또 다른 가능성이 된다. 웹 기술에 관한 최신 정보는 일차적으로 영어로 제공되는 만큼 영어 독해 실력도 중요하겠다.

앞서 웹사이트를 만드는 일은 인터넷이라는 식당의 메뉴판에 음식을 추가하는 일이라 말했다. 모든 음식이 한식 정찬처럼 성대할 필요는 없다. 꼭대기에 체리가 올라간 생크림 케이크나 레인보 셔벗도 좋다. 아주 단순하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해보는 경험이 중요하다. 그 경험이 다른 결과물을 완성하는 기준점이 되고, 완성하는 회수가 늘어날수록 기준점은 높아진다. 이 과정에서 마주하는 고민과 선택은 다른 작업과 분명 연동할 것이다.

어쨌든 갑작스러운 변화 뒤에는 문득 후회나 미련이 밀려오기도 한다. “그때 알았던 것을 지금 알았더라면…”

후회나 미련은 결과적으로 어떤 선택에 대한 호기심 어린 아쉬움이다. 후회는 무엇을 선택한 것에 대한, 미련은 무엇을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어쨌든 후회나 미련 모두 몰입하면 몰입할수록 불행해지기 마련이고, 이제껏 잊고 있던 근원적 질문이 피어오른다. 나는 왜 태어났는가. 그것도 한국인 부모 사이에서. 따라서 되도록 후회와 미련에서 멀어지려 하지만, 일상이 크고 작은 선택으로 이뤄진 만큼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때 그 여성에게 조금 더 적극적으로 고백했더라면… 그때 그 선생님에게 이메일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그때 그 약물을 복용하지 않았더라면… 그때 뉴욕에 더 오래 머물렀더라면… 그때 그 아파트를 매수했더라면… 그때 그 인물에게 투표했더라면… 그때 이 원고 청탁을 거절했더라면…

현재 DDDD에서 「바이러스 시뮬레이터」(2020)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기존 제품이 회사를 소개하는 데 중점을 뒀다면, 이번 제품은 코로나19라는 신종 감염병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민구홍 매뉴팩처링에도 변화가 있었나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회사 소개는 여러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때로는 자연스럽게, 때로는 노골적으로, 때로는 느닷없이, 때로는 누군가의 명성에 기대. 이 제품은 회사를 소개하는 일 또한 수행합니다. 제품 속 세계에서 꽃, 나무, 돌멩이, 인간, 체리 사이에 민구홍 매뉴팩처링(Min Guhong Mfg.)이 놓였을 뿐이지만요. 코로나19 이후에는 특히 오프라인 전시가 취소된 미술관 등에서 제품이나 기술 지원에 관한 문의가 늘었습니다. 1인 회사인 탓에 응대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민구홍 매뉴팩처링 이메일 응대 지침」에 따라 성심성의껏 임하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아른험에서 원격으로 근무하던 한국인 유학생 인턴이 귀국해 회사의 숙주인 워크룸에서 한 달 동안 지내기도 했죠. 지금은 제주도로 출장을 간 상태입니다.

2016년 청담동의 COS 매장 3층에 마련된 프로젝트 스페이스에서 발표한 「보기」(더 북 소사이어티·김영나 기획)는 빨강 버튼을 누를 때마다 무작위로 조합된 경고나 행운의 메시지를 대형 스크린에 출력하는 제품이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것 가운데 가장 섬뜩한 메시지가 있다면?

귀하는 / 유니클로에서 / 느닷없이 / 친척 어른에게 / 귀하의 직업을 / 설명하게 될 것입니다. / 축하드립니다.

하지만 가장 섬뜩했던 건 메시지보다 음악가 김윤기의 오프닝 공연이었을 것이다.

최정호체를 활용한 제품에 관해 설명해달라.

작년 말에 건국대학교 근처에 문을 연 ‘인덱스’라는 복합 공간에서 전시 『유용한 말』이 열렸다. 포스터 「(웃음)」은 그때 출품한 것이다. 일본어판 위키백과를 찾아보니 ‘(웃음)’은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 일본 의회의 속기사들이 상황을 함축하기 위해 만든 기호라고 하더라. 지금은 주로 인터뷰 지면에서 상황을 묘사하거나 분위기를 환기하는 데 사용하곤 하는데, 온갖 유용할 말이 모일 전시에 그런 ‘(웃음)’의 역할을 하는 작품도 있으면 제법 유용하겠다고 생각했다. 작품에 소괄호와 ‘웃음’이라는 낱말만 들어가는 만큼 서체를 고르는 게 중요했다. 평범하면서 약간 달라 보이는 서체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최정호체 시험판을 써볼 기회가 생겼다. 특히 괄호 모양이 예뻐 보여서 선택했다. 자매품인 동명의 자석도 있다. 전시와 비슷한 시기에 열린 제9회 언리미티드 에디션의 작업실유령 부스에서 제품을 산 분들에게 나눠드렸다. 「(웃음)」을 돈을 받고 팔기보다 그냥 드리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최정호는 웃음과는 거리가 먼, 오로지 글자만 바라보는, 진지한 삶을 산 사람이었던 것 같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신다면요?

먼저 접근성의 문제를 살펴볼까요? 웹 접근성 지침(Web Content Accessibility Guidelines, WCAG)은 모든 사용자가 웹 콘텐츠에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따금 예술적 표현은 이런 지침과 충돌할 수 있죠. 특히 실험적인 타이포그래피나 복잡한 인터랙션은 ‘웹사이트를 듣는’ 스크린 리더(Screen Reader) 사용자에게는 난해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는 오히려 또 다른 해결책을 요구하는 도전이 될 수 있습니다. 디자이너 사라 헨드렌(Sara Hendren)은 장애와 기술의 경계를 다룬 작업으로 접근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흔들었죠.

상업성과의 충돌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기업의 웹사이트는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표현하는 동시에 사용자 경험까지 고려해야 합니다. 이 또한 표현을 제한하는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예컨대 애플의 웹사이트는 미니멀리즘과 인터랙티브 요소를 절묘하게 결합해 브랜드 가치를 전달하는 동시에 사용자를 매료시킵니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라는 바우하우스(Bauhaus)의 원칙을 디지털 시대에 재해석한 것과 같죠.

기술적 제약 또한 양날의 검입니다. 웹 브라우저 호환성, 로딩 속도, 모바일 최적화 등의 문제는 창작자를 제한하는 동시에 새로운 해결책을 찾도록 자극합니다. 예컨대 미디어 쿼리(Media Query)를 이용한 반응형 웹 디자인은 이런 제약에서 비롯했죠. 악기의 한계를 극복하며 매순간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재즈 뮤지션들이 떠오르지 않나요?

2019년부터 매주 금요일마다 ‘현대인을 위한 교양 강좌’를 표방하는 「새로운 질서」를 진행합니다. 강좌의 구체적인 내용과 참여 방법이 궁금합니다.

시적 연산 학교의 마지막 과제가 자신이 만들고픈 학교를 기획하는 거였어요. 저는 ‘리코타 인스티튜트(Ricotta Institute)’를 제안했는데, 4주에 걸쳐 리코타를 만들고, 리코타에 관한 글을 쓰고, 그 글을 실은 웹사이트를 만들고, 마지막으로 리코타를 마케팅하는 방법을 배우는 학교죠. 그때는 리코타, 글쓰기, 코딩, 마케팅이 오늘날 산업을 작동시키는 요체라고 생각했거든요.

「새로운 질서」는 언젠가 문을 열 리코타 인스티튜트의 프로토타입 같은 거죠. 2016년 크리스마스 이튿날 워크룸에서 열린 비공식 워크숍에서 시작해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강의, 여러 특강과 워크숍을 거치면서 커리큘럼이 다듬어졌어요. 2019년부터는 박현정, 돈선필 씨 같은 젊은 미술가들이 운영하는 스튜디오 파이취미가의 아낌 없는 지원 덕에 지금 같은 모습으로 확장할 수 있었고요.

마포구 성산동에 있는 스튜디오 파이에서 6주 동안 진행하는 「새로운 질서」는 웹 디자인 강좌는 아니에요. 기술로서 디자인을 다루기도 하지만 글쓰기 강좌에 가깝죠. 「새로운 질서」에서는 ‘실용적이고 개념적인 글쓰기’의 관점으로 코딩을 이야기합니다. 먼저 자신을 바라보며 자신의 관심사에 관해 글을 쓰고, 차례로 HTML, CSS, 자바스크립트를 도구 삼아 콘텐츠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해보죠. 중간중간 인터넷과 웹의 역사, 견지해야 할 태도, 넷 아트, 컴퓨터 언어 자체에 관한 이야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면 적어도 이런 웹사이트는 별 어려움 없이 만들 수 있게 됩니다. 예습과 복습을 철저히 한다면 말이죠.

「새로운 질서」에서 함께 추억을 쌓은 분들이 ‘새로운 질서 그 후…’라는 느슨한 컬렉티브를 꾸렸는데, 최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주관하고 현대자동차에서 후원하는 ‘프로젝트 해시태그’ 사업에 선정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죠. 후문에 따르면, 심사위원이었던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이 적극적으로 추천했다고 해요. 오는 11월이면 그들이 고민하고 즐긴 결과물을 볼 수 있겠죠? 며칠 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그들의 작업 상황을 엿볼 수 있었는데, 이번 전시가 그들에게 기억에 남을 만한 추억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최근에는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분들을 대상으로 4주 동안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했죠. 지금은 사회적 거리 두기가 4단계로 격상하면서 잠시 문을 닫았어요. 온라인으로라도 개인 과외를 받고 싶다는 문의가 들어오기도 하지만 거절하고 있습니다. 기술을 다루더라도 서로 마주보며 이야기하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매학교로는 미국의 그래픽 디자이너 로럴 슐스트(Laurel Schwulst)존 프로벤처(John Provencher)가 운영하는 프루트풀 스쿨(Fruitful School)이 있습니다.

예술, 패션, 음악 등 다양한 문화 내에서 일어난 사건 가운데 인상 깊었던 것을 토대로 VISLA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면?

바야흐로 2022년이다. 게다가 당신은 2023년이 도래하기 전에 파산하거나 세상을 떠날지 모른다. 이쯤이면 그전에 어떤 방식으로든 민구홍 매뉴팩처링과 함께 추억을 쌓아볼 마음이 일지 않는가?

「새로운 질서」에서 수업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많은 디자이너가 찾고 있고, ‘새로운 질서 그 후…’ 같은 후배(?)들 또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질서」가 단순히 웹 언어 기술을 숙지하는 것 이상의 가르침을 전달한다면 그것은 무엇인가요?

「새로운 질서」가 ‘현대인을 위한 교양 강좌’를 표방하는 만큼 오히려 디자이너가 아닌 분들의 비율이 더 높아요. 학생, 회사원, 미술가, 음악가… 한번은 스님도 오셨죠. 「새로운 질서」가 웹 디자인을 가르치는 강좌였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 거예요. 「새로운 질서」에서는 웹사이트를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에 초점을 맞춥니다. 오늘날 등장한 첨단 기술과 견주면 분명히 시대착오적일지 모릅니다. 새로운 가지가 돋아나죠. 한편, 「새로운 질서」에서는 컴퓨터 언어를 다루는 일, 즉 코딩(coding)을 ‘실용적이고 개념적인 글쓰기’로 바라봅니다. 그래픽 소프트웨어에 자리한 툴바와 아이콘 대신 그저 커서가 깜박이는 텍스트 에디터상에서 이뤄지는 코딩이 글쓰기와 전혀 다르지 않은 까닭이죠. 웹사이트를 만드는 건 낯선 언어를 익혀 시나 소설을 쓰는 일과 비슷하죠. 「새로운 질서」의 의도는 웹사이트를 만드는 기술을 익히는 것보다 이를 통해 자신을 향한 사랑을 확장하는 데 있습니다. 자신을 도저하게 사랑할 수 있다면, 남 또한 도저하게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여기서 웹사이트는 어쩌면 맥거핀에 불과할지 몰라요.

이쯤 되니 이토록 웹사이트를 사랑하는 민구홍 씨가 궁금해집니다. 처음 만든 웹사이트를 기억하나요?

물론입니다. 거의 30년 전인 1995년, 열한 살 무렵입니다. 목표는 단순하지만 아주 분명했죠. 당시 제가 사랑한 친구를 그저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처음 만든 웹사이트는 지오시티가 문을 닫으면서 함께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파일을 백업하지 못해 이제는 꿈나라에서만 등장하는 터라 그저 아쉬울 따름입니다. 어쨌든 사랑에서 비롯한 경험 덕에 저는 일찍이 컴퓨터뿐 아니라 웹, 나아가 코딩을 포함한 글쓰기에 진지하게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교에서 문학과 언어학을 공부하고, 우연히 안상수 선생님을 만나 미술 및 디자인계에 발을 담그고, 그 뒤 13년여 동안 안그라픽스와 워크룸에서 편집자, 디자이너, 프로그래머 등으로 일할 때도 마찬가지였고요. 저에 관해 궁금증이 인다면 다음 웹사이트를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코딩을 포함한) 제 글쓰기에 관해 정리한 다음 발표 자료 또한 얼마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글쓰기는 흩어져 사라지려는 생각과 말을 특정 매체, 즉 문자(글자, 숫자, 기호 등)뿐 아니라 공간으로 붙잡아 드러내는 일이다.”

한편, 2015년에는 오직 웹과 글쓰기의 힘을 믿으며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설립했습니다. 슬기와 민과 워크룸 이후 ‘소규모’라는 접두어를 붙인 스튜디오들이 등장하던 아름다운 시절이었죠. 자본과 용기가 부족한 탓에 제 근무지에 기생하는 운영 방침을 고수하며 기관, 단체, 기업, 개인 등과 추억을 쌓다 보니 어느덧 설립 10주년을 앞두고 있고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관해서는 다음 웹사이트를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새해 소망이 있다면?

『빅이슈』가 독자에게 더욱 관심과 사랑을 받아 이번 호가 여느 때보다 많이 판매되기를 바랍니다. 일차적으로 그만큼 ‘빅판’의 수익이 늘고, 어느 정도는 회사를 홍보하는 데 도움이 될 테니까요. 이는 누군가 불행해지지 않으면서 누군가 행복해지는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제 웹사이트가 무엇인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시 질문해보고 싶어요. 설령 같은 답이 돌아오더라도요. 대관절 웹사이트란 무엇인가요?

글쎄요. 어쨌든 우리는 그곳을 ‘웹사이트’라 불렀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 말이 사전적으로 규정하는 바는 조금 협소해 보입니다. 웹사이트의 내일은 기술과 인간이 만나는 지점에 있습니다. 여전히 웹사이트는 정보와 예술, 기술과 인문학이 어우러진 공간이 될 테고, 우리는 이곳에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새로운 사고방식을 발전시키며 우리가 존재하는 새로운 방식을 모색할 수 있지 않을까요? T.S. 엘리엇의 말마따나 “우리는 출발점으로 돌아와 그곳을 처음으로 알게 된다.” 우리가 웹사이트를 통해 마주하는 경험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끝없는 디지털 공간을 배회하다 보면 우리가 알게 되는 건 결국 나 자신, 나아가 우리겠죠.

이상적인 생활 방식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회사의 복지 환경과도 연결되는 질문이다.

요컨대 적절한 시간에 일어나 적절한 시간에 식사하고 적절한 시간에 운동하고 적절한 시간에 자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적절함을 확보하는 데 적절한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 모자란 잠을 커피나 에너지 드링크, 서툰 자기최면 등으로 채우는 건 한 달에 한두 번이면 족하다. 생활의 나머지 요소는 체리 한 알과 비슷하다. 다른 체리들과 함께 바구니에 담길 수도, 무르고 터져서 악취와 끈적한 자국을 남길 수도 있다. 내가 지금 이렇게 생활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기에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어느 정도 기여하는 건 분명하다. 생크림 케이크 꼭대기에서 말이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롤모델로 삼는 회사가 있다면?

물론 있다. 하지만 (영업) 비밀이다. 특별할 건 없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알다시피 오늘날 비밀은 인터넷 밖에 있을 때 온전히 비밀이 된다. 구글이나 인터넷 아카이브 웨이백 머신(Internet Archive Wayback Machine) 서버 밖 말이다. 오늘 당신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정말 나누고 싶은 건 어쩌면 거기, 그러니까 당신과 마주 앉은 이 테이블 사이, 바로 이 안개꽃 옆에 있을지 모른다.

온라인 전시를 통해 관람객의 역할뿐 아니라 관람 방식 또한 달라지고 있다. 온라인 전시에서 관람객은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까?

웹사이트상에서 온라인 전시를 관람하는 일은 의식적으로는 차이가 있겠지만,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털 사이트나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 미디어 서비스를 열람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웹사이트가 전시라는 맥락에 놓이지만 관람객 입장에서는 템플릿만 바뀐 셈이다. 다소 귀찮은 일일 수 있지만, 관람객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클릭, 터치 스크롤 등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웹사이트에 마련된 전시장을 탐험해 볼 필요가 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 ‹무엇이든, 아무것도›, 웹사이트, 2018. 이 웹사이트는 마우스 커서의 이동, 클릭, 터치, 키보드 타자, 웹 브라우저 크기 조절, 대기 등 웹 브라우저상에서 일어나는 사용자의 거의 모든 행위를 파악해 금지한다. 사진 제공: 작가

전시를 관람하다 느닷없이 텅 빈 화면을 마주한다면 문제가 생겼다고 여기기보다 웹 브라우저에 내장된 ‘웹 조사기(Web Inspector)’를 활용해볼 필요도 있겠다. 뜻밖에 제작자가 숨겨놓은 메시지를 발견하게 될지 모르니까.

‘웹 조사기’로 살펴본 시청각 랩 웹사이트. 웹 브라우저에 기본적으로 내장된 웹 조사기를 활성화하면 웹사이트의 구조뿐 아니라 제작 방식을 살펴볼 수 있는 건 물론이고, 제작자가 코드에 숨겨놓은 메시지를 발견하게 될지 모른다.

2020년 아트선재센터에 이어 2021년 대안공간 루프에서 「장영혜 중공업 귀중」 제2판을 선보였다. 제1판과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제1판을 선보인 뒤 1년 사이 달라진 상황에 따라 몇몇 내용이 추가되거나 삭제됐고, 더욱 큰 화면에 오직 장영혜 중공업만 사용할 수 있는 소파와 헤드폰이 마련됐다. 그럼에도 장영혜 중공업을 향한 존경과 사랑, 그리고 부탁 한 가지는 그대로다. 답변을 받을 때까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선보이는 연작이 될 예정이다.

민구홍이 가진 가장 장식적인 옷은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타이포그래피의 수많은 강조법 가운데 특히 ‘가운데 맞추기’를 좋아한다. 고전적이긴 하지만, 그저 양쪽 여백을 동일하게 설정하는 것만으로 손쉽게 콘텐츠를 강조하고 장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따금 극적인 효과를 주기도 하고. 그 뒤에는 콘텐츠 자체에만 집중하면 된다. 좋아하는 만큼 즐겨 사용하기도 한다. 이 방법 앞에서 글자 크기를 키우거나 글자체를 바꾸는 데는 상대적으로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게다가 글자를 얼마나 키울지, 어떤 글자체로 바꿀지, 합당한 또는 합당해 보이는 이유를 찾다 보면 억지스러워질 때도 있다. 이런 취향은 당연히 내 의생활에도 반영된다. 로고나 메시지 하나 없는 검은색 티셔츠일지라도 몸에 걸치는 순간 내게는 지나치게 멋을 부리는 셈이다.

‘푹신’(Fuchsine)을 처음 본 건 2018년 인사미술공간에서 열린 『픽션-툴』(Fiction-tool) 전시장에서였다. 로비에 설치된 전시용 아카이브 웹사이트 속에서 푹신은 전시에 관한 논평이나 해설, 또는 야릇한 말을 중얼거리며 하루하루 몸집을 키워갔다. 그 뒤에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견학하는 어드벤처 게임에서, 미술가 박현정의 전시에서, 난지미술창작레지던시와 관련한 웹사이트 등에 등장해 중얼거림을 이어갔다. 마젠타색 몸에 눈인지 코인지 입인지 알 수 없는 생략 부호(…), 평양 냉면을 좋아하고, 발렌시아가의 대표적 어글리 슈즈인 트리플 S를 신는 게 꿈이라는 이 생명체의 정체는 무엇인가?

‘분홍이’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불리는 푹신은 아득히 먼 옛날 미술 평론가 겸 기획자 이한범 씨가 기획한 아카이브 전시 『픽션-툴』 웹사이트에서 태어났다. 웹사이트 자체가 또 하나의 전시였으므로 웹사이트상의 전시를 해설할 도슨트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시 관련자가 아닌 제3자, 즉 관람객의 입장에서 말이다. 그렇게 웹사이트 화면을 돌아다니며 클릭할 때마다 메시지를 출력하는 기능이 탑재됐다. 그리고 전시 전체 기간을 백분율로 계산해 하루에 웹사이트 화면 높이의 일정 비율씩 커지도록 했다. 전시 종료일에 화면을 가득 채우는 모습을 의도한 것이기도 하다. 이한범은 전시 리플릿에 푹신에 관해 이렇게 썼다.

이제 여러분은 1층으로 다시 돌아와 한 벽면에 놓인 모니터를 통해 전시장에서 본 작업들의 정리된 정보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아마 남몰래 목록을 더해가고 있을 테니 시간 날 때마다 슬쩍 슬쩍 구경해도 재미가 쏠쏠하겠죠? 잠깐만요, 그런데 화면에 떠다니는 귀여운 녀석이 보이시나요? 커서로 쫓아가 (모바일 디바이스라면 손가락으로!) 건드리고 클릭하면 여러분께 말을 건넬지 모릅니다! 이 친구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만든 신제품입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웹이라고 하는 공간에 기반해 그 시스템의 기술을 이용한 기생형 프로그램을 만듭니다. 말하자면 직접 어떤 공간을 새로이 만들지 않고, 기존에 있는 공간에 달라붙어 그것을 비틀거나 변형시키는 방식으로 기능하는 거죠.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심각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우리를 유쾌하게 해주는 장난스러운 개구장이에 더 가깝죠. 화면의 저 분홍색 친구는 절대 여러분을 해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전시 기간 하루가 달리 몸집이 불어난다고 하니 조금 걱정이 되긴 하네요.

모양은 UX 분야에서 전통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생략 버튼’(ellipsis button)에서 따왔다. 대개 클릭하면 두드러질 필요 없는 부가적인 기능이나 정보를 드러내는데, 그 속성이 도슨트의 역할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곡률은 이후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 개발할 것까지 고려해 여러 모바일 운영 체제 아이콘 곡률의 평균값(전체 크기의 약 22퍼센트)을 지정했다.

이후 잠시 현실로 도피했다가…

지금은 다시 웹상에서 중얼거림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난지미술창작레지던시의 큐레이터 정시우 씨와 코디네이터 정지원 씨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 G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