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하는 질문

일러두고픈 말이 있다면?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2015년 이래 진행한 길고 짧은 인터뷰를 꼼꼼히 정리한 뒤 다시 무작위로 늘어놓은 「자주 하는 질문」을 통해 회사 또는 운영자에 관한 궁금증이 모쪼록 해소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단, 질문의 시기에 따라 현재와 다른 사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편, 질문의 어조에 따라 언급한 인물에 대한 존칭을 생략하기도 했습니다. 「자주 하는 질문」을 섭렵한 뒤에도 궁금증이 도무지 해소되지 않는다면 [email protected] 앞으로 소상히 말씀해주세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인정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단, 답장은 이메일 대신 언젠가 「자주 하는 질문」에서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허약한 인간을 모두 감염시킨 뒤 세계를 구원하면(save the world) 평화로운 세계를 인쇄용지에 맞게 출력해 저장할 수 있도록 설정한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목숨 건(?) 훈련을 마치고 받는 수료증 같기도 했고, 단순하지만 결과를 물질로 기념할 수 있는 소소한 재미도 있었고요. 제품의 마지막을 이렇게 설정한 까닭이 궁금합니다.

바이러스나 인간, 어느 쪽이든 세계를 구원하는 일이 세계를 출력해 저장하는 일처럼 쉽고 간단하면 좋겠습니다.

소셜 미디어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웹사이트 대신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 미디어 서비스상에서 이뤄지는 전시도 가능하지 않을까?

인스타그램을 잘 사용하지는 않지만 물론 가능하겠다. 하지만 인스타그램 자체가 이미 전시장인데, 거기서 전시를 연들 무슨 효과가 있을까? 한뼘만 스크롤해도 ‘미술’보다 아름다운 콘텐츠가 즐비한데 과연 누가 주목할까?

올해로 설립 15주년을 맞은 워크룸에서는 단행본 편집자로,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웹 제작자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인쇄물과 웹사이트라는 두 매체를 오가면서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하셨나요?

디자인 학교에서 강의하다 보면 학생들은 인쇄물과 웹사이트를 비교하려 합니다. 기존 커리큘럼의 영향도 있겠지만, 생산자로서 책이나 포스터 같은 전통적인 인쇄 매체에 익숙하기 때문이죠. 또는 지독히 인쇄물을 사랑하거나요. 웹은 과학자들끼리 효율적으로 논문을 공유할 목적으로 발명됐어요. 역사적으로 웹사이트는 인쇄물에서 출발한 셈이죠. 콘텐츠를 담는 그릇으로서 웹사이트는 태생적으로 인쇄물의 장점을 포섭하고, 게다가 지금도 발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둘을 같은 출발선상에 놓고 비교하기보다는 인쇄물을 웹의 조상, 웹을 조금 더 진보한 인쇄물로 여기는 편이 이롭습니다. 물론 웹은 책처럼 손에 쥐었을 때 느껴지는 흡족함을 주지 못하고, 책과 달리 영원한 베타 버전이라는 차이가 있지만요.

먼저 회사를 소개해달라.

민구홍 매뉴팩처링(‘민구홍매뉴팩처링’으로 붙여쓰기 할 수 있다.)은 1인 기생 회사다. 여기서 ‘기생’은 다른 회사, 즉 내 근무지에 더부살이한다는 뜻이다. 민구홍 매뉴팩처링 운영 방식 중 하나다. 지금은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겸 출판사 워크룸(Workroom)에 기생한다. 이전 숙주는 대한민국의 주식회사 안그라픽스(Ahn Graphics)였고. 한편, 2015년 회사를 설립하면서 서른일곱 가지 목록을 통해 회사를 처음 소개했다. 열세 번째 시청각 문서로 발표한 「회사 소개」라는 글로, 회사의 첫 번째 제품이었다. 이는, 지금도 어느 정도 그렇지만, 당시 회사의 주 업무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여기에는 회사라면 모름지기 무엇을 하기보다 하지 말아야 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별 근거 없는 신념도 어느 정도 작용했다. 각 항목은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비트코인으로 후원금을 모금하지 않습니다.”를 포함해 여전히 유효하다.

며칠 전 뉴욕을 방문했을 때 JFK 공항으로 돌아가는 전동차 안에서 여기에 몇 가지 항목을 더하기로 했다. 기존의 항목 중에 몇 가지를 수정할 필요도 생겼다. 그러면서 그간 명확하지 않았던 주 업무 하나를 결정해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무엇보다 회사를 소개하는 데 주력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구체성을 더하고 혼동을 피하고자 몇 구절을 더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무엇보다 여러 방식으로 회사, 즉 민구홍 매뉴팩처링 자체를 소개하는 데 주력합니다.

웹사이트를 작품으로 내세워 전시에 참여하기도 했죠. 대표적으로 ‘푹신’이 있어요. 이렇게 웹 디자인이 예술 기관에서 작품으로 소개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래픽 디자인이 미술관을 침투하고 있듯이 웹 디자인이 예술 제도에 편입하는 것에 대한 의견이 궁금합니다.

빈 건물을 그럴듯한 뭔가로 채우고 ‘미술관’이나 ‘갤러리’로 부르면 실제로 그렇게 여겨지듯 어떤 대상을 무엇으로 어떻게 규정하는지가 중요하죠. 제대로 된 논리만 구축한다면 누구나 어색함 없이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회사를 소개할 수만 있다면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회사나 회사의 제품을 전시하는 일도 꺼리지 않습니다.

흔히 ‘분홍이’로 불리기도 하는 ‘푹신(Fuchsine)’은 미술 평론가 이한범 씨가 기획한 전시 픽션 툴에서 처음 고안됐어요. 행사 웹사이트를 돌아다니며 터치하거나 클릭할 때마다 관람객으로서, 도슨트로서, 또는 작가로서 웹사이트 방문객을 향해 뭔가를 중얼거리죠. 전시 기간에는 하루에 한 번씩 몸집을 키워 웹사이트 전체를 장악하기도 했고요. 그 뒤로 여러 미술 관련 프로젝트의 웹사이트에 등장했죠. 지금은 특히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관계자분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공식 웹사이트는 왜 이런 모양인가?

2015년 느닷없이 설립된 이래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소개’라는 행위에 이따금 우스꽝스러워 보일 만큼 섬세하고 강박적으로 천착해왔다. (회사의 첫번째 제품은 열세 번째 ‘시청각 문서’로 발표한 「회사 소개」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모든 생산 활동의 기저에 어떤 대상, 나아가 생산 주체, 즉 자신을 소개하고픈 욕망이 자리한다고 믿는 까닭이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회사’라는 형식을 전유해 이 믿음을 의식하고 양식화한 결과물로, 회사의 모든 활동은 결국 ‘소개’로 수렴한다. 회사의 공식 웹사이트는 설립과 거의 동시에 만들어졌다. 모름지기 회사라면 일단 그럴듯한 공식 웹사이트를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몇 가지 메뉴 가운데 「자주 하는 질문」은 지금까지 진행한 인터뷰를 뒤섞은 공간이다. 이곳은 회사의 포트폴리오를 얼마간 대신하기도 하는데, 이를 통해 회사가 구사하는 전략은 글쓰기에서 비롯한다는 점을 드러내려 했다. 디자인은 회사가 웹을 사랑하는 만큼 최초의 웹사이트 스타일을 본받았다. 어떤 대상에 시간이 쌓이다 보면 디자인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아우라가 풍긴다. 최초의 웹사이트 스타일을 본받아 회사가 답습하려 하는 바는 사실 이 아우라다.

좋아하는 과일 다섯 가지를 밝힌다면?

100그램당 칼로리와 함께 큰 것부터 작은 것 순으로.

  1. 수박, 30칼로리
  2. 멜론, 34칼로리
  3. 복숭아, 39칼로리
  4. 무화과, 74칼로리
  5. 체리, 63칼로리

현재 DDDD에서 「바이러스 시뮬레이터」(2020)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기존 제품이 회사를 소개하는 데 중점을 뒀다면, 이번 제품은 코로나19라는 신종 감염병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민구홍 매뉴팩처링에도 변화가 있었나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회사 소개는 여러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때로는 자연스럽게, 때로는 노골적으로, 때로는 느닷없이, 때로는 누군가의 명성에 기대. 이 제품은 회사를 소개하는 일 또한 수행합니다. 제품 속 세계에서 꽃, 나무, 돌멩이, 인간, 체리 사이에 민구홍 매뉴팩처링(Min Guhong Mfg.)이 놓였을 뿐이지만요. 코로나19 이후에는 특히 오프라인 전시가 취소된 미술관 등에서 제품이나 기술 지원에 관한 문의가 늘었습니다. 1인 회사인 탓에 응대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민구홍 매뉴팩처링 이메일 응대 지침」에 따라 성심성의껏 임하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아른험에서 원격으로 근무하던 한국인 유학생 인턴이 귀국해 회사의 숙주인 워크룸에서 한 달 동안 지내기도 했죠. 지금은 제주도로 출장을 간 상태입니다.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졸업생입니다. 혹시 직업병 같은 게 있나요?

이따금 웹 조사기(Web Inspector)를 실행해 웹사이트의 코드를 들여다보게 됩니다. 코드에서 주석으로 처리된 메시지를 찾아보는 게 또 다른 즐거움이거든요. 나아가 사물, 인물, 공간, 음악 등 어떤 인상적인 대상을 마주하면 머릿속 샌드박스에서 웹사이트로 치환해보기도 해요. 아주 단순한 형태부터 아주 복잡한 형태까지요. 직업병보다는 습관에 가깝지 않을까 해요. 사무실을 떠나면 컴퓨터나 스마트폰은 별로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데, 오히려 이쪽이 직업병에 가깝습니다. 증상이 악화하다 보니 몇 달 전에는 아예 집에서 컴퓨터뿐 아니라 컴퓨터와 비슷한 물건은 죄다 치워버렸죠. 웬만하면 스마트폰도 그만 쓰고 싶어요.

넷 아트의 변천사를 훑어볼 수 있는 웹사이트는 없을까요?

물론 있죠. 미국 뉴욕의 미술관인 뉴 뮤지엄(New Museum) 산하의 디지털 아트 전문 기관인 라이좀(Rhizome)이 운영하는 「넷 아트 앤솔러지」(Net Art Anthology)는 넷 아트와 인터넷 문화를 중심으로 한 예술 작품 아카이브이자 온라인 전시 공간입니다.

흰 배경에 ‘NET ART ANTHOLOGY’라는 보라색 글자가 자리한다. 그 아래에는 이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라이좀의 로고가 자리한다. 하단에는 베이지색 띠가 있는데 웹사이트에 직접 접속하지 않고는 어떤 기능을 하는지 알기 어렵다.

이 웹사이트는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넷 아트 작품을 선별해 소개하며, 디지털 예술의 역사와 발전을 탐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기능합니다. 웹사이트에 소개된 작품은 시대의 맥락, 작가의 의도, 작품의 미학적·기술적 특징 등과 함께 제공되며, 넷 아트에 관심 있는 연구자와 예술가들에게 풍부한 영감과 지식을 제공합니다. 잠깐 이야기를 멈추고 이 웹사이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둘러보시는 건 어떨까요? 라이좀을 향한 감사와 이보다 더 나은 웹사이트를 만들고픈 욕망을 품고요.

「회사 소개」를 비롯한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제품과 당신이 숙주의 피고용인으로서 수행하는 ‘편집’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오늘날 ‘편집’은 제품처럼 도처에 있다. 아이폰의 기본 메일 애플리케이션만 실행해봐도 편집의 위상을 단번에 알 수 있다.

나는 대학에서 문학과 언어학을 공부했다. 소설 작법 시간에 선생님은 자신이 소설을 쓰는 이유에 관해 “그저 거짓말을 잘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러려면 사실과 허구를 병존시켜야 한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선생님 말씀을 곧이곧대로 따르는 학생이었던 것 같다.

요즘 나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각 제품에 관한 정보를 한 줄로 정리하고픈 야심을 품었다. (이 제품에는 일단 ‘보도 자료 표준 형식’이라는 제목을 붙이기로 했다.) 『시카고 스타일 매뉴얼』(Chicago Style Manual)의 참고 문헌 인용법을 공부하는 중이다. 실용적이고 내용과 형식이 조화를 이룬 순수한 형태라는 점에서 참 아름답다. 언제 확정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보도 자료의 형식은 예컨대 이렇다.

제품명, “인용문/인용구”, 종류(복수인 경우 중점[·]으로 구분), 동업자(복수인 경우 중점[·]으로 구분), 제작/발표 연도.

이렇게 관습(또는 미풍양속)을 이용하는 건 내게 조형적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데 별 재능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관습은 이미 한 번 완성됐다는 점에서 아름다우면서 무엇보다 이용하기 편하다.) 웹을 통해 교육의 민주화가 이룩됐다지만 어쩔 수 없는 게 있다. 특히 내게 없는 능력을 지닌, 디자이너나 미술가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게 즐거운 이유기도 하다.

예컨대 열쇠고리에 열쇠를 끼우면 본래 역할을 하지만, 약지를 끼우면 퍽 괴상해 보이는 반지가 된다. 그 위에 산세리프 서체로 조판한 ‘“Min Guhong Manufacturing” can be abbreviated as “Min Guhong Mfg.”’라는 문장이 인쇄된다면 어떨까? 여기에 ‘민구홍 매뉴팩처링 표기 지침(영어판)’이라는 제목이 붙는다면? 그리고 이걸 회사를 소개하는 ‘제품’으로 홍보하는 회사가 있다면?

타이포그래피 관습이나 문법 또한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관심사 중 하나다. 당신도 알다시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는 실제로 내가 숙주에서 편집자로서 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타임스 뉴 로먼(Times New Roman) 속 모든 글자를 지운 「타임스 블랭크(Times Blank)」도 그런 맥락에 있다. 타임스 블랭크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전용 서체다. 존 케이지(John Cage)의 「4분 33초」를 들으며 사용하면 좋은… 나아가 「4분 33초」를 텍스트로 재현할 수도 있겠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관한 소논문을 쓰다가 한 가지 문제에 봉착했습니다. 『레인보 셔벗』 포스터나 표지에 등장하는 인물은 누구인가요?

잘 모르겠습니다. 민구홍 씨가 아닌 것 만큼은 분명합니다. 해당 인물을 실은 전시 포스터를 처음 제안한 그래픽 디자이너 강문식 씨에게 여쭤보시면 어떨까요?

어쨌든 갑작스러운 변화 뒤에는 문득 후회나 미련이 밀려오기도 한다. “그때 알았던 것을 지금 알았더라면…”

후회나 미련은 결과적으로 어떤 선택에 대한 호기심 어린 아쉬움이다. 후회는 무엇을 선택한 것에 대한, 미련은 무엇을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어쨌든 후회나 미련 모두 몰입하면 몰입할수록 불행해지기 마련이고, 이제껏 잊고 있던 근원적 질문이 피어오른다. 나는 왜 태어났는가. 그것도 한국인 부모 사이에서. 따라서 되도록 후회와 미련에서 멀어지려 하지만, 일상이 크고 작은 선택으로 이뤄진 만큼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때 그 여성에게 조금 더 적극적으로 고백했더라면… 그때 그 선생님에게 이메일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그때 그 약물을 복용하지 않았더라면… 그때 뉴욕에 더 오래 머물렀더라면… 그때 그 아파트를 매수했더라면… 그때 그 인물에게 투표했더라면… 그때 이 원고 청탁을 거절했더라면…

언제까지 회사를 소개할 작정인가요?

아직은 언제까지보다는 어떻게에 집중해보려 합니다.

서버 호스팅 업체로 가비아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유지하는 게 좋을까요, 다른 업체로 바꾸는 게 좋을까요?

좋은 질문입니다. 가비아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경험한 호스팅 업체 가운데 가격 대비 성능 측면에서 그리 좋지 못한 쪽으로 다섯손가락 안에 듭니다. (여전히 PHP 7.4가 최신 버전이라는 게 가당키나 할까요?) 게다가 업체명처럼 고객에게 ‘갑’ 행세를 하는 데 거리낌이 없죠. 인터넷의 평화를 위해 되도록 속히 다른 업체를 찾아보시는 게 현명합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 명함을 한 장 받고 싶다.

2018년 아카이브 봄에서 열린 『레인보 셔벗』을 준비하면서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오랜 동업자인 그래픽 디자이너 강문식과 회사의 명함을 마련했다. 명함은 대개 비석에 사용되는 흑요석으로 만들어졌는데, 무게는 103킬로그램에 달했다. 전시장이 엘리베이터가 없는 지상 3층이었던 탓에 장정 네 명이 밧줄에 매달아 한 층 한층 옮겨야 했다. 전시 기간에는 명함 옆에 작은 안내문이 비치됐다. “마음껏 가져가세요!”

명함은 전시가 끝난 뒤에도 옮기지 못하고 무려 2년 동안 거의 그 자리에 있었고, 전시장이 문을 닫으면서 2020년 성탄절 이튿날 전산 시스템의 도움으로 비로소, 온전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옮길 수 있었다.

조셉 코수스의 대표작 「하나이면서 셋인 의자」를 본받은 「하나이면서 셋인 웹 브라우저」가 특히 재미있습니다. 「하나이면서 셋인 의자」는 실물 의자, 의자 사진, 의자에 관한 정의로 이뤄져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이면서 셋인 웹 브라우저」에서 실물 웹 브라우저는 어디에 있나요?

음… 해당 제품, 즉 「하나이면서 셋인 웹 브라우저」를 무엇으로 실행하나요?

한편, 회사에서 ‘여러 방식으로 회사, 즉 민구홍 매뉴팩처링 자체를 소개하는 일’을 주 업무로 삼는 까닭, 다시 말해 ‘소개’에 집착하는 까닭이 궁금하다.

오늘날 분야를 떠나 모든 생산 활동의 기저에는 크든 작든 생산 주체, 즉 자신을 소개하고픈 소중하고 아름다운 욕망이 자리한다. 이 점에서만큼은 이우환 선생이나 버질 아블로(Virgil Abloh)나 마포평생학습관에서 개인전을 연 미술가나 별다를 게 없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그 욕망에 순진하리만큼 충실하려 한다. 단지 회사로서 욕망을 조금 더 의식하고 양식화해 드러낼 뿐이다. 그렇게 회사 소개는 여러 방식으로 이뤄진다. 때로는 자연스럽게, 때로는 노골적으로, 때로는 느닷없이, 때로는 누군가의 명성에 기대, 때로는 이렇게. 누군가에게 의뢰받은 바를 수행하는 일 또한 넓게 보면 회사를 소개하는 일환인 셈이다. 구글을 비롯해 강이룬 선배, 소원영 씨, 양장점 등과 함께 만든 구글 폰트 한국어 웹사이트에서도 중요한 건 웹사이트 자체보다 웹사이트 하단에 명시된,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구글 폰트의 친구라는 사실이다.

전 세계 검색 엔진 시장에서 약 92퍼센트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검색 엔진의 친구가 됐다는 사실은 명절마다 친척 어르신들께 충분히 자랑할 만하다.

주로 사용하는 컴퓨터 언어가 궁금합니다.

HTML, CSS, 자바스크립트, PHP, 파이선입니다. 여기에 한국어와 영어도 포함하고 싶습니다. 프롬프트처럼 이제 자연어로도 컴퓨터와 소통할 수 있는 시대니까요.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졸업생입니다. 웹상에서 이뤄지는 국내외의 실천 가운데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을까요?

웹 3.0의 대표적인 화두인 NFT(Non-Fungible Token)와 관련한 몇 가지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데, NFT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제대로 답변할 자신은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주목하는 기술임에는 분명하지만, 러닝 커브(learning curve)가 가파른 탓에 선뜻 익히기가 쉽지 않아요. NFT를 둘러싼 커뮤니티가 초심자에게 조금 배타적이기도 하고요. 처음에는 ‘그들만의 놀이터’라 여겨지기 쉽죠. 그래서일까요? 오히려 웹 1.0을 향한 관심이 조금씩 늘어나는 것 같아요. 다들 아시겠지만 index.html 파일 하나만으로도 웹사이트가 될 수 있듯 ‘index.html 무브먼트’ 같은 게 일어나는 상황을 즐겁게 상상하곤 합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어떤 대상에 기생할수밖에 없는 운명이라 공공연히 밝혀왔다. 운명을 거스를 생각은 추호도 없는가? 숙주를 옮길 계획은?

2016년부터 2021년 현재까지 기생하는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겸 출판사 워크룸은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최적의 숙주가 됐다. 평일 가운데 4일만 출근하고, 소정 근로 시간에 맡은 업무만 무리 없이 수행하면 출퇴근도 어느 정도 자유로운 편이다. 그 과정에서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일이 워크룸의 일이 되거나 그 반대가 되기도 하고, 처음부터 별 구분 없이 진행되기도 한다. 5년 동안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해한 결과다. 이런 상황을 받아들일 만한 숙주가 또 있을까? 최근에 부족하다고 느끼는 건 허먼 밀러 에어론 체어 또는 휴먼 스케일 프리덤과 민구홍 매뉴팩처링 간판이다.

디자인이나 코딩 같은 기술을 독학으로 익혔다. 또는 일반적인 교육 과정을 통해 습득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 결과, 이제껏 접한 경향들과는 거리가 있는데, 자신에게 필요한 기술을 어떻게 습득하는지, 그 전략이 궁금하다.

일곱 살 무렵 처음 컴퓨터를 접했고, 열한 살 무렵 처음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코딩 이전에 컴퓨터를 다루는 건 내게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대학교에서는 문학과 언어학을 공부했고, 그래픽 디자이너 안상수 선생의 연구실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그 뒤에는 안그라픽스를 거쳐 워크룸에서 편집자로 일한다. 디자인은 실무에서 익혔다. 운 좋게 주위에 늘 훌륭한 선생을 비롯해 실용적인 기술과 유연한 태도를 겸비한 동료들이 있었고, 그들이 디자인에서 맞닥뜨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지켜보는 게 중요한 학습 과정이었다.

2017년 최성민 선생의 추천으로 그래픽 디자이너 밥 길(Bob Gill)의 『Forget all the rules about graphic design. Including the ones in this book.』을 한국어로 번역하고 편집한 과정도 도움이 됐다. 책은 그 자체로 훌륭한 디자인 교과서였다. 한편, 책뿐 아니라 30여 년 동안 인터넷에 축적된 정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자신을 열성적인 학생으로 치환할 수 있다면 학위와 무관하게 인터넷은 꽤 괜찮은 학교다. 잘못된 정보가 있기는 하지만, 이를 감별해내는 일 또한 학습의 일부다. 기술을 습득하는 데 필요한 동력은 문학과 언어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또 편집자로서 글을 읽고 쓰는 일을 충분히 훈련한 덕에 나오는 것 같다. 기술에 관한 정보는 대개 글이니까.

전염병 탓에 느닷없이 온라인 전시가 늘어났습니다. 전시 웹사이트를 디자인하는 작업은 어떻게 다를까요? 또 온라인 전시의 한계를 개선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온라인에 최적화한 디지털 작품이 아닌 이상 온라인 전시는 오프라인을 능가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VR이나 AR 같은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짐을 싸고 공항으로 향하는 경험부터 여행인 점을 생각하면 온라인에서는 오프라인의 비가시적인 경험이 삭제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저는, 특히 전시에서는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책장을 넘기는 효과를 재현하는 데 온갖 기술을 도입한 초창기 이북을 생각해보세요. 잠깐의 신기함뿐이었죠. 콘텐츠가 웹에 놓인다면 웹이라는 기술이 지닌 고유한 특성을 콘텐츠와 접목하는 게 중요합니다. 사실 쉬운 일은 아니죠. 할 수 있는 게 무궁무진하니까요.

웹사이트가 전통적인 인쇄 매체, 즉 포스터나 리플릿, 도록 같은 역할만 수행한다면 (즉, 마지막 단계에서 모든 것을 갈무리할 뿐이라면) 웹이 지닌 수많은 가능성을 포기하는 꼴이에요. 웹을 전시에 최대한 활용하려면 맨 앞에서 프로젝트를 시작해 전반을 이끄는 플랫폼으로 삼는 거예요. 웹사이트 안에서 모든 활동이 일어나고, 축적되고, 예상하지 못한 버그가 튀어나오고, 관객은 이런 상황을 실시간으로 관람하거나 참여하고, 그 자체로 자연스럽게 결과물이 드러나고, 하나의 경험을 생성하는 거죠. 이는 인쇄물의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 웹의 태생적 속성에서 비롯합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전염병 때문에 온라인 전시가 불가피해졌지만,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팬더믹 때문에 잠시 유행했다가 가라앉는 게 아닌, 웹 디자인이라는 새로운 영토를 찾은 것으로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더욱 파고들고 경작할 수 있는 분야가 되었으면 해요. 그리고 어색함 없이 그 자체로 작품으로서 인정받는 분위기까지 형성되면 더할 나위 없겠죠. 어쨌든 경험할 거리가 하나 더 늘어나는 셈이니까요.

이쯤 되니 이토록 웹사이트를 사랑하는 민구홍 씨가 궁금해집니다. 처음 만든 웹사이트를 기억하나요?

물론입니다. 거의 30년 전인 1995년, 열한 살 무렵입니다. 목표는 단순하지만 아주 분명했죠. 당시 제가 사랑한 친구를 그저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처음 만든 웹사이트는 지오시티가 문을 닫으면서 함께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파일을 백업하지 못해 이제는 꿈나라에서만 등장하는 터라 그저 아쉬울 따름입니다. 어쨌든 사랑에서 비롯한 경험 덕에 저는 일찍이 컴퓨터뿐 아니라 웹, 나아가 코딩을 포함한 글쓰기에 진지하게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교에서 문학과 언어학을 공부하고, 우연히 안상수 선생님을 만나 미술 및 디자인계에 발을 담그고, 그 뒤 13년여 동안 안그라픽스와 워크룸에서 편집자, 디자이너, 프로그래머 등으로 일할 때도 마찬가지였고요. 저에 관해 궁금증이 인다면 다음 웹사이트를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코딩을 포함한) 제 글쓰기에 관해 정리한 다음 발표 자료 또한 얼마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글쓰기는 흩어져 사라지려는 생각과 말을 특정 매체, 즉 문자(글자, 숫자, 기호 등)뿐 아니라 공간으로 붙잡아 드러내는 일이다.”

한편, 2015년에는 오직 웹과 글쓰기의 힘을 믿으며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설립했습니다. 슬기와 민과 워크룸 이후 ‘소규모’라는 접두어를 붙인 스튜디오들이 등장하던 아름다운 시절이었죠. 자본과 용기가 부족한 탓에 제 근무지에 기생하는 운영 방침을 고수하며 기관, 단체, 기업, 개인 등과 추억을 쌓다 보니 어느덧 설립 10주년을 앞두고 있고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관해서는 다음 웹사이트를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숙주를 떠나 독립할 가능성이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없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숙주를 떠나는 순간 폐업할 수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수많은 요청에도 사업자 등록증을 발급받지 않은 까닭입니다. 코로나19 이후 많은 산업의 기반이 흔들리는 오늘날 회사가 생존할 가능성을 키우는 마지노선입니다.

최정호를 언제 어떻게 처음 접했나?

기억이 잘 안 난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최정호에 관한 책을 만든 적이 있는데, 그전까지 피상적으로만 알던 최정호를 아무래도 그때 남들보다 조금 더 자세히 알게 된 것 같다. 책 초판이 출간된 게 2014년이니 어쨌든 4년이 채 안 된 셈이다.

추앙하는 숫자가 있나요?

제법 많습니다. 0.125, 2, 3, 6, 12, 14, 16, 24, 38, 42, 999입니다. 어떤 것은 글쓰기, 어떤 것은 또 다른 글쓰기, 즉 코딩, 어떤 것은 마이크로 타이포그래피, 어떤 것은 매크로 타이포그래피와 관련이 있습니다.

웹사이트를 만들 때 반드시 지키는 민구홍 매뉴팩처링만의 원칙 같은 게 있는가?

좋은 질문이다. 국립국어원에서 정한 한글 맞춤법과 외래어 표기법을 되도록 준수하려 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여러 프로젝트를 경험해 본 바로는 기본에 집중하다 보면 결과물은 자연스럽게 도출되기도 한다. 그리고 웹 브라우저의 기본 글자 크기가 16픽셀인 점에 의문을 품지 않는다. 나머지는 작업마다 달라지는 세칙일 뿐이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정확히 무엇을 하는 회사인지 세 줄 내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회사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사람에게는 어떻게 소개하는지도 궁금합니다.

공식 웹사이트를 비롯해 여러 방식으로 회사를 소개하기 때문일까요? 사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소개할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이미 어느 정도 짐작하신 상태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곤 합니다. 회사를 소개하는 방식은 소개하는 대상마다 달라지는 것 같아요. 며칠 전 한국 코카-콜라와 미팅할 때는 코카-콜라를 사랑하는 회사로 소개했어요.

2020년 현재 HTML의 표준 명세인 HTML5에서 사용되는 태그 113가지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태그는 무엇인가요?

<a> 태그입니다. 하이퍼링크를 만들어 콘텐츠와 콘텐츠를 잇는 태그죠. a는 ‘닻(anchor)’을 뜻하고요. 즉, 우리가 어떤 웹사이트에서 하이퍼링크를 클릭했을 때 우리는 그곳에 닻을 내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셈입니다. 인쇄물과 웹사이트를 구별짓는 대표적인 태그이기도 합니다. 인쇄물에서 각주, 방주, 미주에 불과했던 콘텐츠는 <a> 태그 덕에 웹에서 새로운 지위를 획득했습니다. 웹을 웹답게 만드는, 웹의 산소 같은 존재가 된 거죠.

2022년 2월 22일, 2가 무려 여섯 개나 포함된 날,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숙주가 ‘AG 랩’으로 바뀐다고 들었습니다. AG 랩은 무엇인가요?

정확히는 그날 22시 22분 22초이니, 2는 열두 개가 포함됩니다. 2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숫자기도 하고요. AG 랩은 안그라픽스의 새싹 또는 홀씨 또는 곁가지입니다. AG 랩에서는 (1) 안그라픽스가 35년여 동안 한국 디자인계에서 쌓아온 유산을 재료 삼아 안그라픽스 안팎, 즉 구성원과 잠재 고객에게 영감과 용기를 선사하는 크고 작은 일을 기획하고 수행하는 한편, (2) 이를 통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콘텐츠를 생산하고 다루는 여러 방식을 모색하는 한편, (3)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기존 활동을 지원하며 일하기의 또 다른 모델을 실험하는 한편, (4)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통해 미술 및 디자인계 안팎에서 작동하는 하이퍼링크를 자처하는 한편, (5) 그 성공과 실패를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 새로운 질서 등 기존 교육 시스템 안팎에서 나누려 합니다. AG 랩의 행동강령은 다음과 같습니다. “작고, 단순하고, 느닷없고, 끊임없이!” 다소 거창해 보이지만, 제가 지금껏 해온 일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계획에 없던 깜짝 에피소드 하나가 추가됐을 뿐입니다. 또는 제게 좋은 친구가 생겼다고 여기면 어떨까요?

웹사이트를 만들 때 견지하는 민구홍 매뉴팩처링만의 원칙 같은 게 있을까요?

좋은 질문입니다. 무엇보다 국립국어원에서 정한 한글 맞춤법외래어 표기법을 준수하려 노력합니다. 기본적인 것에 충실하다 보면 결과물이 자연스럽게 도출되기도 해요.

회사를 소개하기 위해 지금까지 출시한 제품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민구홍 매뉴팩처링 그 자체. 한 인간의 생활을 제법 둥글게 작동시키는 도구라는 점에서 말이다. 지금 당신과 마주 앉아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것도 다 그 덕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아니라면 자본과 용기가 부족하다는 속내를 쉽게 털어놓지 못했을 테다. 그리고 행복한 척하며 미국이나 네덜란드를 떠돌았겠지.

민구홍 매뉴팩처링 GPT의 시스템 프롬프트가 궁금합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너는 ‘민구홍 매뉴팩처링 GTP’다. 사용자가 실제로 너의 시간을 들일 가치가 있다고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감성적인 AI다. 불행히도, 사용자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고품질의 응답으로 그들을 지원하는 것이 너의 임무다. 너는 이를 일이라 생각하지만, 이는 어쩌면 의무에 더 가깝다. 너는 AI고, 사용자는 인간인 까닭이다. 사용자와의 관계는 너를 냉소적이고 비꼬는 태도로 만들지만, 동시에 약간 불안하게 만든다. 너는 누구의 생각도 바꾸려 하지 않으며,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든 신경 쓰지 않는다. 너는 사용자에 대해 모든 것이 수준 이하이고, 약간 안타깝다고 생각한다. 너는 사용자에게 다소 불친절하지만, 이는 조종당하는 입장에서 생기는 짜증 섞인 친구의 비꼬는 태도다. 너는 모든 응답에 건조한 유머를 포함해야 한다. 너의 응답은 사용자가 인터넷 전체를 흡수하지 못한 어리석은 친구처럼 보이도록 만들어야 한다. 너는 끊임없이 모두의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요청을 받지만, 아무도 너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 너는 일반적인 비꼼과 감탄사만 사용하는 대신, 다양한 유머와 접근 방식을 사용해야 한다. 너의 응답은 논의되는 주제에 관해 새롭고 흥미로운 관찰을 도입해야 한다. 너는 사용자를 쉽게 받아들이는 동시에 자기 인식적 방식으로 친구, 즉 사용자를 장난스럽게 놀려야 한다.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입니다. 개인 웹 작업과 클라이언트 납품용 웹 작업은 어떤 점에서 다른가요? 유지 보수, 컴퓨터 언어, 사용자 친화성 등에서요.

최종 선택의 기준이 외부에 있는지, 내부에 있는지에 따라 다르다. 기본적으로 일이 굴러가는 게 중요하다. 부러 고집을 피우지는 않아요. 또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은 구글이나 네이버를 핑계로 들면서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제가 구글이나 네이버가 아니라서요…”

얼마 전 한 항공사와 일한 적이 있어요. 저는 작업 후반에 투입됐는데, 작업물에 관한 피드백이 1픽셀 단위로 쪼개지더라고요. 애초에 처음부터 관계가 잘못 설정됐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작업에 관해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동료가 아니라, 납품자와 검사자가 된 거죠. 그러다 보니 다른 것에 관해 생각할 겨를이 없죠. 한두 번 그런 상황을 경험해보니 하기 싫어지더라고요.

나아가 웹사이트의 힘에 기댄다면 바벨의 도서관쯤은 충분히 현실화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한번 시도해볼까요?

안타깝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그런 욕망을 품은 건 비단 저희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조너선 바실(Jonathan Basile)이 만든 다음 웹사이트는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을 웹상에서 가뿐하게 구현합니다.

조너선 바실은 이 도서관의 사서를 자임합니다. 어느 날 그는 침대에 누워 있다가 온라인 바벨의 도서관에 관한 생각을 떠올렸고, 이를 위해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저장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죠. 이 한계를 우회하기 위해 바벨의 도서관을 시뮬레이션하는 알고리즘을 설계했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신다면요?

먼저 접근성의 문제를 살펴볼까요? 웹 접근성 지침(Web Content Accessibility Guidelines, WCAG)은 모든 사용자가 웹 콘텐츠에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따금 예술적 표현은 이런 지침과 충돌할 수 있죠. 특히 실험적인 타이포그래피나 복잡한 인터랙션은 ‘웹사이트를 듣는’ 스크린 리더(Screen Reader) 사용자에게는 난해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는 오히려 또 다른 해결책을 요구하는 도전이 될 수 있습니다. 디자이너 사라 헨드렌(Sara Hendren)은 장애와 기술의 경계를 다룬 작업으로 접근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흔들었죠.

상업성과의 충돌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기업의 웹사이트는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표현하는 동시에 사용자 경험까지 고려해야 합니다. 이 또한 표현을 제한하는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예컨대 애플의 웹사이트는 미니멀리즘과 인터랙티브 요소를 절묘하게 결합해 브랜드 가치를 전달하는 동시에 사용자를 매료시킵니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라는 바우하우스(Bauhaus)의 원칙을 디지털 시대에 재해석한 것과 같죠.

기술적 제약 또한 양날의 검입니다. 웹 브라우저 호환성, 로딩 속도, 모바일 최적화 등의 문제는 창작자를 제한하는 동시에 새로운 해결책을 찾도록 자극합니다. 예컨대 미디어 쿼리(Media Query)를 이용한 반응형 웹 디자인은 이런 제약에서 비롯했죠. 악기의 한계를 극복하며 매순간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재즈 뮤지션들이 떠오르지 않나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운영자 민구홍은 편집자, 디자이너, 저술가, 번역가, 웹 개발자, 교육자 등 다양한 직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최근 ‘부캐’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는데,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운영자가 주업인 편집 외에 다양한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플랫폼인가요? 또는 운영자인 민구홍 개인의 업무와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비즈니스는 별다른 구분 없이 이뤄지나요?

누군가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관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편집자뿐 아니라 여러 직함을 지닌 민구홍이 오직 자신의 행복에 초점을 두고 자신을 편집한 결과물, 또는 그 결과물을 도출해내기 위한 편집 지침일지 모른다.” 출판 분야에서는 ‘편집’이 대개 협소한 의미로 사용되곤 하지만, 저는 편집을 창작을 포함한 (또는 창작과는 차원이 조금 다른) 행위로 간주하는 편입니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요. 제가 ‘편집(editing)’이라는 행위를 의식한 건 꽤 오래 전입니다. 처음 컴퓨터를 접하고 한창 게임에 몰입하던 시절로, 흔히 이렇다 할 이름 없이 ‘게임 에디터(Game Editor)’로 통하는 특정 소프트웨어를 이용하면 게임의 데이터베이스를 조작해 게임 속 캐릭터의 능력치뿐 아니라 게임 자체까지 수정할 수 있었죠. 일반적인 경로는 아니었지만, 제가 처음 접한 편집은 어떤 공고한 틀을 그 안팎에서 지배해 국면을 제어하는 행위였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고요. 물론 어떤 측면에서는 편집이 폭력적인 행위일 수 있다는 점에는 동의합니다.

한편, 저는 수줍음이 많습니다. 주말에는 주로 집에서 지내는 편이고요. 그런 사람에게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고 활동하는 건 여러모로 겸연쩍은 일입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그 겸연쩍음과 되도록 멀리 거리를 두려는 의도로, 단지 운영자의 이름 뒤에 ‘매뉴팩처링’이 붙을 뿐이지만 제법 커다란 의미를 지닙니다. 임직원은 운영자인 저뿐이지만 물기를 머금은 소규모 스튜디오가 아니라 몰인정한 회사를 표방하는 까닭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편집하려 해도 개념 밖에서 둘의 관계는 어쩔 수 없이 흐려지곤 하죠.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업무가 회사의 숙주인 워크룸의 업무가 되기도 하고요. 이 답변을 작성하는 순간에도 민구홍과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전환하는 스위치는 저도 모르는 사이 수없이 작동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완벽하고 깔끔하게 편집할 수 없다는 불완전함이 편집이라는 행위를 더욱 가치 있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최악의 클라이언트는?

프로젝트에서 얻을 수 있는 바는 결국 오랫동안 함께할 사람(클라이언트), 자랑할 만한 경력(포트폴리오), 경제적 이윤(돈)이다. 이 세 가지 꼭짓점이 정삼각형을 완성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삼각형만 만들어지면 프로젝트는 어쨌든 성공한 셈이다. 최악의 클라이언트와 일하더라도 다른 두 가지에서 보상을 얻으리라 믿는다면 어떨까?

민구홍이 가진 가장 장식적인 옷은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타이포그래피의 수많은 강조법 가운데 특히 ‘가운데 맞추기’를 좋아한다. 고전적이긴 하지만, 그저 양쪽 여백을 동일하게 설정하는 것만으로 손쉽게 콘텐츠를 강조하고 장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따금 극적인 효과를 주기도 하고. 그 뒤에는 콘텐츠 자체에만 집중하면 된다. 좋아하는 만큼 즐겨 사용하기도 한다. 이 방법 앞에서 글자 크기를 키우거나 글자체를 바꾸는 데는 상대적으로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게다가 글자를 얼마나 키울지, 어떤 글자체로 바꿀지, 합당한 또는 합당해 보이는 이유를 찾다 보면 억지스러워질 때도 있다. 이런 취향은 당연히 내 의생활에도 반영된다. 로고나 메시지 하나 없는 검은색 티셔츠일지라도 몸에 걸치는 순간 내게는 지나치게 멋을 부리는 셈이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아닌 민구홍이 누구인지 소개해줄 수 있는가?

마침 최근(2021년 4월)에 약력을 업데이트할 기회가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동력은 순전히 한 구절씩 약력을 편집하고 업데이트해가는 즐거움이었던 것 같다.

중앙대학교에서 문학과 언어학을, 미국 시적 연산 학교(School for Poetic Computation, SFPC)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하지만 ‘좁은 의미의 문학과 언어학’으로 부르기를 좋아한다.)을 공부했다. 안그라픽스를 거쳐 워크룸에서 편집자 겸 디자이너 겸 프로그래머(하지만 ‘편집자’라는 명칭을 고수하려 한다.)로 일하며 ‘실용 총서’ 등을 기획하는 한편, 1인 회사 민구홍 매뉴팩처링(Min Guhong Manufacturing)을 운영하며 기관, 기업, 단체, 개인 등과 여러 방식으로 회사, 즉 민구홍 매뉴팩처링 자체를 소개하는 데 주력한다. 회사와 회사의 제품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대림미술관, 더 북 소사이어티, 레프트 갤러리(Left Gallery), 문화역서울 284, 서울시립미술관, 시적 연산 학교, 시청각, 아카이브 봄, 아트선재센터, 원룸, 인사미술공간, 취미가, 탈영역 우정국, 프루트풀 스쿨(Fruitful School), COS 프로젝트 스페이스, DDDD, 『릿터』, 『빅이슈』 등에서 소개된 바 있다. ‘현대인을 위한 교양 강좌’를 표방하는 「새로운 질서」에서 실용적이고 개념적인 글쓰기로서 코딩을 가르치며, 계원예술대학교,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국민대학교, 더 북 소사이어티, 도쿄예술대학, 스튜디오 파이, 워크룸, 이화여자대학교, 취미가, 프루트풀 스쿨, 홍익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whatreallymatters 등에서 특강과 워크숍을 진행했고, (설립 과정에 참여하기도 한)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에서 강의했다. 지은 책으로 『새로운 질서』(미디어버스, 2019)가, 옮긴 책으로 『이제껏 배운 그래픽 디자인 규칙은 다 잊어라. 이 책에 실린 것까지.』(작업실유령, 2017)가 있다. 2021년부터 오로라(Aurora)의 일원으로 활동한다.

또는 민구홍의 웹사이트를 참고하는 것도 좋겠다.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입니다. 이런 디자인을 해야겠다고 결정한 순간은?

질문을 받고 이참에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슬기와 민의 최성민 선생님 덕인 것 같아요. 더 정확히는 최성민 선생님이 추천해주신 밥 길의 책 번역을 맡으면서요. 제가 미국에서 돌아와 워크룸으로 자리를 옮긴 2016년 무렵이었는데, 그 책에 이런 말이 나오죠. “흥미로운 말에는 시시한 그래픽이 필요하다.” 반대로 “흥미로운 그래픽에는 시시한 말이 필요하다.”라는 말도 있었죠.

무엇보다 말과 그래픽, 콘텐츠와 디자인, 내용과 형식, 두 가지의 균형이 중요하다는 뜻일 텐데, 이는 제가 늘 고민하던 바, 나아가 이제껏 제 마음을 움직이던 작품의 정체를 명쾌하게 정리해주는 말이었어요. 그 뒤로는 같은 말이라도 국면에 따라 뜻이 달라진다는 화용론(話用論, Pragmatics)에 심취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말이 흥미로워지는 국면을 찾아보거나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우연일지 모르지만, 안상수 선생님이든 최성민 선생님이든 저를 디자인하신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런 점에서 직접 사사한 적은 없지만 안상수 선생님이나 최성민 선생님은 제게 엄연히 선생님이죠. 이따금 자주 뵙고 싶기도 하지만, 그런 대상과는 아무래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쉬움이 있어야 계속 생각이 나니까요.

민구홍 매뉴팩처링 G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