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하는 질문

일러두고픈 말이 있다면?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2015년 이래 진행한 길고 짧은 인터뷰를 꼼꼼히 정리한 뒤 다시 무작위로 늘어놓은 「자주 하는 질문」을 통해 회사 또는 운영자에 관한 궁금증이 모쪼록 해소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단, 질문의 시기에 따라 현재와 다른 사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편, 질문의 어조에 따라 언급한 인물에 대한 존칭을 생략하기도 했습니다. 「자주 하는 질문」을 섭렵한 뒤에도 궁금증이 도무지 해소되지 않는다면 [email protected] 앞으로 소상히 말씀해주세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인정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단, 답장은 이메일 대신 언젠가 「자주 하는 질문」에서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최정호 이전의 서체와 차별되는, 또는 발전된 최정호 한글 디자인의 특징은 무엇인가?

잘 모르겠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아닌 민구홍이 누구인지 소개해줄 수 있는가?

마침 최근(2021년 4월)에 약력을 업데이트할 기회가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동력은 순전히 한 구절씩 약력을 편집하고 업데이트해가는 즐거움이었던 것 같다.

중앙대학교에서 문학과 언어학을, 미국 시적 연산 학교(School for Poetic Computation, SFPC)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하지만 ‘좁은 의미의 문학과 언어학’으로 부르기를 좋아한다.)을 공부했다. 안그라픽스를 거쳐 워크룸에서 편집자 겸 디자이너 겸 프로그래머(하지만 ‘편집자’라는 명칭을 고수하려 한다.)로 일하며 ‘실용 총서’ 등을 기획하는 한편, 1인 회사 민구홍 매뉴팩처링(Min Guhong Manufacturing)을 운영하며 기관, 기업, 단체, 개인 등과 여러 방식으로 회사, 즉 민구홍 매뉴팩처링 자체를 소개하는 데 주력한다. 회사와 회사의 제품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대림미술관, 더 북 소사이어티, 레프트 갤러리(Left Gallery), 문화역서울 284, 서울시립미술관, 시적 연산 학교, 시청각, 아카이브 봄, 아트선재센터, 원룸, 인사미술공간, 취미가, 탈영역 우정국, 프루트풀 스쿨(Fruitful School), COS 프로젝트 스페이스, DDDD, 『릿터』, 『빅이슈』 등에서 소개된 바 있다. ‘현대인을 위한 교양 강좌’를 표방하는 「새로운 질서」에서 실용적이고 개념적인 글쓰기로서 코딩을 가르치며, 계원예술대학교,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국민대학교, 더 북 소사이어티, 도쿄예술대학, 스튜디오 파이, 워크룸, 이화여자대학교, 취미가, 프루트풀 스쿨, 홍익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whatreallymatters 등에서 특강과 워크숍을 진행했고, (설립 과정에 참여하기도 한)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에서 강의했다. 지은 책으로 『새로운 질서』(미디어버스, 2019)가, 옮긴 책으로 『이제껏 배운 그래픽 디자인 규칙은 다 잊어라. 이 책에 실린 것까지.』(작업실유령, 2017)가 있다. 2021년부터 오로라(Aurora)의 일원으로 활동한다.

또는 민구홍의 웹사이트를 참고하는 것도 좋겠다.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입니다. 문학과 언어학을 공부한 경험이 디자인이나 프로그래밍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요?

넓은 의미에서 제게 문학은 언어를 가지고 노는 일이고, 언어학은 언어의 구조와 규칙, 기능과 의미를 발견하는 일입니다. 디자인이나 코딩 또한 사용하는 언어가 조금 다를뿐 모두 이 범주 안에 있습니다.

일반적인 글쓰기든 코딩이라는 글쓰기든 모두 소통을 전제합니다. 그 일차적인 소통 대상은 글을 쓰는 사람, 즉 자신일 테고요. 하지만 코딩에서는 자신과 소통한 뒤에는 컴퓨터와 소통해야 하죠. 얄궂게도 컴퓨터는 인간만큼 너그럽지 않습니다. 코딩에 정확성, 명확성, 명료성 등이 수반되는 까닭입니다.

대부분의 일에서 이름을 짓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편입니다. 물론 ‘구글’같이 실수로 정해지는 이름도 있지만요. 회사의 이름에 어떤 의미가 있나요?

‘매뉴팩처링(manufacturing)’은 일반적으로 ‘원재료를 인력이나 기계력 등으로 가공해 제품을 대량생산하는 산업’을 뜻하지만, 야구에서는 ‘도루나 진루타, 희생타 등 안타가 아닌 방법으로 득점하는 기술’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단어가 품은 기능주의와 기회주의를 실천하려는 의지를 회사 이름에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COS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와 관련된 책을 몇 권 꼽아주세요.

  • 『시청각 문서 1-[80]』
  • 『인덱스카드 인덱스 1』
  • 『감옥에서 쇼핑하기』
  • 『문예 비창작』
  • 『스페인 연극』
  • 『포스트 인터넷』
  • 『이제껏 배운 그래픽 디자인 규칙은 다 잊어라. 이 책에 실린 것까지.』
  • 『자습서』
  • 『BIC 카탈로그』
  • 『3M 카탈로그』
  • 『유라인 카탈로그』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졸업생입니다. 웹사이트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기준이 있을까요?

웹사이트에서 이야기하는 대상과 방식에 따라 완성도의 기준은 천차만별일 거예요. 앞서 말씀드렸듯 일단 웹 브라우저상에서 제대로 동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사실 이를 위해 고려해야 할 부분만 따져도 무궁무진합니다. 뜬금없을지 모르지만 저는 어떤 글쓰기에 관해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문학을 공부하던 시절에 배운 좋은 글쓰기의 원칙 가운데 중언부언하지 않는다는 게 있어요. 같은 대상에 관한 두 가지 진술이 있다면 간단한 쪽을 택하는 게 좋다는 오컴의 면도날(Occam’s Razor)도 비슷한 원칙이고요. 이 원칙은 코드를 포함한 웹사이트에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중복되는 요소나 기능을 하나로 합치는 것처럼요. 이를 위해서는 글쓰기처럼 수차례 퇴고 과정이 필요하죠. 지난할 수 있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고요. 한 문장만으로 이뤄진 웹사이트라 해도 퇴고 과정을 얼마나 거쳤는지에 따라 결과물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제야 웹사이트가 ‘진보한 인쇄물’이라는 점이 이해가 간다. 인쇄물을 만드는 데는 단행본을 기준으로 적어도 2개월 정도가 걸리는데, 웹사이트는 보통 어느 정도가 걸리나?

정적 웹사이트 겸 포스터식 웹사이트는 콘텐츠가 제대로 마련되고 콘셉트가 정해진 상태라면 사실 하루만이라도 완성할 수 있다. 물론 이는 테스트를 제외한 시간이다. 어떤 웹사이트는 사용하는 데 무리가 없을 만큼 공개한 뒤 점진적으로 업데이트하기도 한다. 서울시립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와 함께한 ‹NR 베이커리›(NR Bakery, 2021)가 비슷한 경우인데, 인쇄물 작업에 익숙하다면 낯선 방식일지 모른다. 콘텐츠를 기획하고, 편집하고, 검토하는 시간을 제외하더라도 1개월은 걸린다. 모두 고려하면 한 웹사이트를 만드는 데 2–3개월 정도 걸리는 게 일반적이다.

작업할 때 참고하는 웹사이트가 있는가? 추천할 만한 웹사이트는?

시간 관계상 1,000여 개에 육박하는 즐겨찾기 목록을 공개하는 건 어려울 것 같다. 잘 만들어진 웹사이트를 참고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과물이 너무나도 매력적이면 콘텐츠와 무관하게 나도 모르게 따라 하게 된다.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아닌 콘텐츠를 어떻게 대하고 다뤘는지 따져보며 처음부터 작업 과정을 상상해본다. 순전히 자신의 행복을 위해 만든 웹사이트에 눈길이 간다. 특히, 네오시티(Neocities)FC2 웹에 자주 들른다. 그런 웹사이트는 시각적으로 거칠기도 하지만, 공식에 얽매이지 않고, 위악적으로 공식을 배반하기도 한다. 그들의 콘텐츠와 그들이 콘텐츠를 다루는 방식은 잠시 잊었던 뭔가를 다시 떠올리게 하고, 동시에 CMS나 자바스크립트를 위시한 새로운 기술을 잊게 한다. 나아가 그런 웹사이트를 만든 사람과 친구가 되고 싶어지기도 한다.

순전히 자신의 행복을 위해 만든 웹사이트를 들여다보면 잠시 잊었던 뭔가가 떠오른다.

한편, 최신 웹 기술을 참고하는 데는 모질라 재단(Mozilla Foundation)에서 운영하는 ‘MDN 웹 문서(MDN Web Docs)’만한 곳이 없다.

MDN 웹 문서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회사 소개」에서 ‘하지 않습니다.’의 형식에 빗대어 본인의 의생활을 표현한 다섯 문장을 소개한다면?

두 문장이면 족하다. 민구홍은 옷 한 벌에 100만 원 이상 투자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민구홍은 발목 양말이나 페이크 삭스를 신지 않습니다.

웹 디자인에 심취한 계기가 있다면?

열한 살 무렵인 1995년 야후! 지오시티에 첫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사랑하는 친구를 위해서였다. 마룬색 배경에 그를 행복하게 해줄 글과 이미지 사이로 MIDI 배경음악이 흘렀다. 하지만 2009년 야후!에서 지오시티 운영을 종료하면서 이제 그 웹사이트는 내 꿈속에만 있다. 어쨌든 그 이후로, 반드시 웹사이트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HTML, CSS, 자바스크립트를 이용해 나 또는 누군가를 위해 뭔가 만드는 건 내 오랜 즐거움 가운데 하나였다. 내 기준에서 쉽고 저렴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건 20여 년 전에 만든 것과 엊그제 만든 게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는 점이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웹 디자인 에이전시가 아니다.

구글 크롬 확장 프로그램 「읽기 전에 태우라」 탓에 웹에서 작성하던 글을 모두 날려버렸습니다. 어떻게 책임지실 건가요?

죄송합니다. 일찍이 시인 송승언 씨 또한 같은 상황을 경험하고 분노와 당혹감을 표출한 바 있습니다. 『레인보 셔벗』에 실린 그의 경험담을 읽으며 일단 화를 눅여보시는 건 어떨까요?

2021년 DDP에서 선보인 「우아하게」에 관해 설명해달라. 되도록 우아하게.

프랑스의 소설가 오노레 드 발자크(Honoré de Balzac)는 1830년 잡지 『라 모드』(La Mode)에 우아함에 관한 성찰로 이뤄진 「우아하게 사는 법」(Traité de la vie élégante)을 게재했다. “문명적이든 원시적이든, 삶의 목적은 휴식이다.”로 시작해 “신체가 찢어진 것은 불행이지만 도덕적 흠은 죄악이다.”로 마무리되는 쉰세 가지 덕목은 200여 년 가까이 지난 오늘날에도 휴식이 필요한 이에게 유효하다. 발자크의 덕목들을 조금 더 우아하게 소개하는 「우아하게」는 민구홍 매뉴팩처링 임직원의 명상을 위한 제품 가운데 하나다. 평소 좋아하는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오디너리 피플의 제안으로 참여한 『디지털 웰니스 스파』에서 선보였다. 발자크의 덕목을 토대로 자신의 우아함을 확인해볼 수 있다.

근사한 사진은 타별 사진관의 작품이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당시 일정이 너무나도 살인적었기에 정작 전시장에는 가보지 못했다. 전시를 마련한 오디너리 피플 구성원분들에게 죄송스러울 따름이다.

‘100세 시대’를 맞아 3대째 이어온 요식업을 아들 내외에게 물려주고,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려 합니다. 일단 저희 식당 메뉴판을 다시 디자인해보고 있는데, 추천해주실 만한 책이 있을까요?

우선 그래픽 디자인 규칙을 배우셔야겠죠? 그 뒤 『이제껏 배운 그래픽 디자인 규칙은 다 잊어라. 이 책에 실린 것까지.』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책에 실린 규칙을 잊으실 수 있을 때까지요. 아침달의 블로그에 실린 소개를 참고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이 책에서 디자인 작업에서의 ‘문제 (재)설정’의 중요성을 피력한다. 우선 어떤 문제가 제대로 된 질문을 하는지, 아니라면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고 설정하는 게 어떤 문제에 대한 답을 내는 일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원칙에 부합하거나 위반하는 자신의 여러 작업을 소개한다. 문제 (재)설정이 디자인에서만 중요하겠는가? 아니다. 삶의 많은 부분에서, 특히 어떤 예술 분야에서든지 중요하다. 이는 우선 예술의 수신자-상대를 인지한다는 의미인 동시에 자신의 관점을 재고해보는 일이고, 자신만의 위트에 신선도를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과정이다.

질서와 정리 정돈이라는 행동양식이 몸에 익은 것처럼 보인다. 민구홍에게 무질서란 사고(accident)인가? 본인이 접해온 무질서한 상황의 예시나, 이와 같은 상황을 접할 때 어떤 순서로 대책을 세우는지 또는 때로는 세우지 않는지 알려달라.

내가 관심 있는 건 질서 자체가 아닌, 어떤 대상에 질서를 부여하는 과정과 방식이다. 물론 어떤 상황에서는 우스꽝스러워 보일 정도로 지나치게 질서에 집착하지만, 모든 것을 완벽하고 깔끔하게 편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모든 외래어를 순화하려는 국립국어원의 시도가 이를 증명한다. 특정한 원칙을 마련한 뒤 충실히 따르려 해도 해당 원칙을 무너뜨리는, 그래서 옹색한 세칙을 마련할 수밖에 없는, 내가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이 일어나고야 만다. 따라서 우리 집은 물론이고, 내가 일하는 책상과 책상 주변은 질서와는 거리가 멀다. 온갖 콘텐츠와 기술이 뒤섞인 웹처럼, 가깝게는 우리 생활처럼 차라리 엉망진창이 자연스러운 상태임을 인정하는 편이 정신 건강에 이롭다.

개인적으로 변경되거나 취소된 계획이 있는가?

해외여행부터 언감생심인 상황에서 5년여 뒤 마흔 이후에 이민하려던 희망사항은 일단 기약 없는 꿈이 됐다. 매일 잠들기 전에 가고픈 나라의 이민국 웹사이트와 다른 사람들이 블로그에 게시한 여행 후기를 들여다보며 아쉬움을 달랜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는 웹 기술에 기반을 둔 제품이 적지 않습니다. 이 제품들은 일반적인 판매 방식과 달리 사용자가 원하는 만큼 기부하는 형태로, 즉 거의 무료와 다름없이 배포되는데요. 이는 개발자로서 익숙한 협업 문화나 오픈 소스 정신에 기인한 것인가요? 또는 ‘기생’이라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운영 방식이나 홍보 전략, 또는 기술적 한계 같은 까닭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웹은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회사를 소개하기 위해 활용하는 여러 매체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래서인지 이따금 웹 디자인 에이전시로 오해받곤 하죠.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웹을 주로 이용하는 까닭은 다루기 쉽고, 파급력이 클 뿐 아니라 무엇보다 많은 사람이 잠들기 직전에 마주하는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공유’라는 웹의 철학에 집중해 웹의 탈중앙화를 실천하는 비커 브라우저(Beaker Browser) 같은 프로젝트가 등장했지만, 여전히 특정 서버에 세 드는 게 일반적인 웹의 특성이 회사의 주요한 생존 전략인 ‘기생’과 맞물리기도 하고요. 하지만 회사를 소개한다는 소기의 목적만 달성한다면 사실 매체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기회만 주어진다면 전통적인 매체인 신문이나 잡지, TV나 건물의 전광판, 회화나 조각 등도 활용하고 싶습니다. 미술관이나 갤러리 등에서 회사를 소개하는 것 또한 꺼리지 않고요.

2021년 현재 HTML의 표준 명세인 HTML5에서 사용되는 태그 113가지나 됩니다. 이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태그는 무엇인가요?

<a> 태그입니다. 콘텐츠에 하이퍼링크를 만들어 다른 콘텐츠와 잇는 태그로, 웹을 웹답게 만드는, 웹의 산소 같은 존재죠. 인쇄물과 웹사이트를 구별짓는 대표적인 태그이기도 해요. 인쇄물에서 각주, 방주, 미주에 불과했던 콘텐츠는 <a> 태그 덕에 웹에서 새로운 지위를 획득했으니까요. a는 ‘닻(anchor)’를 뜻해요. 여러 해석이 있지만, 저는 웹사이트에서 하이퍼링크를 클릭했을 때 그곳에 닻을 내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고 생각해요.

구홍의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생각이 있으신가요?

없는 것 같아요. 뭐가 맞고 뭐가 틀리다는 생각 자체를 별로 하지 않는 편이에요. 살다 보면 조금 전까지 당연히 맞다고 생각한 게 몇 분 뒤 당연히 틀린 게 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일어나잖아요. 질문과 비슷한 제목의 영화가 2015년에 개봉했는데, 아마 그게 제가 마지막으로 본 홍상수 감독의 영화일 거예요. 제가 오직 맞다고 생각하는 건 맞음과 틀림이 없음을 맞다고 생각하는 게 틀림없어요.

그럼 가장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은요?

너무 사적인 질문 같습니다. 조금 더 친해지면 말씀드릴게요.

콘텐츠를 중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민구홍 매뉴팩처링 공식 웹사이트의 일관된 형식으로 미루어 내가 느끼기에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형식주의자에 가깝다.

물론 형식도 중요하다. 하지만 콘텐츠가 한 뼘 정도는 더 중요하다.

올해 가장 자주 신은 스니커즈는?

thisisneverthat 박인욱 대표님께 선물 받은 뉴발란스 992. 어쩌다 보니 평소 신어온 신발보다 반 치수 큰데, 외출할 때마다 습관처럼 신다 보니 놀랍게도 신발에 맞게 발이 커지고, 키 또한 조금 자란 느낌이다. 선물이 가져다준 행복의 놀라운 힘일까? 건강 또는 미용상의 이유로 사지연장술을 고민하는 독자가 있다면 모쪼록 참고하기 바란다.

다른 언어를 다른 언어로 변환하는 일, 즉 번역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단행본을 번역한 적도 있는데, 자주 하는 편인가?

나 자신을 번역가로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어쨌든 내가 경험해본 바로 번역 과정은 코딩과 비슷했다. 출발어(입력)와 도착어(출력), 그 사이에 번역(함수)이 있다는 점에서.

이는 재미있게도 내가 배운, 시를 쓰는 과정과도 비슷했다. 시적 대상(입력)과 시(출력), 그 사이에 시적 인식(함수)가 있다는 점에서. 이런 생각은 시적 연산 학교(School for Poetic Computation, SFPC)에서의 경험을 떠올릴 때 더욱 분명해졌다. 내가 거기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이 아니라 주로 문학과 언어학을 배웠다고 말하는 걸 좋아하는 이유다.

민구홍 매뉴팩처링 공식 웹사이트의 ‘회사 소개’ 페이지에서는 한번 읽고서는 정확히 뜻을 헤아리기 어려운 없는 문장이 반복됩니다.

시작은 열세 번째 ‘시청각 문서’로 발표한 「회사 소개」였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A.P.C. 토트백을 분해해 홍보용 수건으로 활용하지 않습니다.” 를 시작으로 회사에서 하지 않는 일 서른일곱 가지를 소개했죠. 지금도 그렇지만, 회사를 설립한 당시 무슨 일을 하는 게 좋을지 몰랐거든요. 따라서 하지 않는 일을 소개하는 게 당연했죠. 나아가 모름지기 회사라면 하는 일보다 하지 않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워크룸의 단행본 편집자인 한편, 웹에도 관심이 적지 않다. 두 매체를 구분하는 것의 장점과 단점이 무엇일까? 두 매체를 오가면서 어떤 이유에서 각 매체를 선택하는가?

웹은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회사를 소개하기 위해 활용하는 매체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웹의 비중이 적지 않기 때문에 이따금 웹 디자인 에이전시로 오해받곤 한다. 회사에서 웹을 주로 이용하는 까닭은 다루기 쉽고, (인쇄물에 비해) 파급력이 클 뿐 아니라 무엇보다 많은 사람이 잠들기 직전에 마주하는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 경이 과학자들끼리 효율적으로 논문을 공유할 목적으로 웹을 발명한 만큼 역사적으로 웹은 인쇄물에서 출발했다.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의 측면에서 웹은 태생적으로 인쇄물의 장점을 포섭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발전을 거듭한다. 따라서 둘을 같은 출발선상에 놓고, 일대일로 비교하기보다는 인쇄물을 웹의 조상, 웹을 조금 더 진보한 인쇄물로 여기는 편이 이롭다. 당장 생각 나는 둘의 분명한 차이가 있다면 웹은 책을 손에 쥐었을 때 느껴지는 흡족함을 주지 못한다는 점과 책과 달리 영원히 베타 버전이라는 점이다.

2019년부터 매주 금요일마다 ‘현대인을 위한 교양 강좌’를 표방하는 「새로운 질서」를 진행합니다. 강좌의 구체적인 내용과 참여 방법이 궁금합니다.

시적 연산 학교의 마지막 과제가 자신이 만들고픈 학교를 기획하는 거였어요. 저는 ‘리코타 인스티튜트(Ricotta Institute)’를 제안했는데, 4주에 걸쳐 리코타를 만들고, 리코타에 관한 글을 쓰고, 그 글을 실은 웹사이트를 만들고, 마지막으로 리코타를 마케팅하는 방법을 배우는 학교죠. 그때는 리코타, 글쓰기, 코딩, 마케팅이 오늘날 산업을 작동시키는 요체라고 생각했거든요.

「새로운 질서」는 언젠가 문을 열 리코타 인스티튜트의 프로토타입 같은 거죠. 2016년 크리스마스 이튿날 워크룸에서 열린 비공식 워크숍에서 시작해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강의, 여러 특강과 워크숍을 거치면서 커리큘럼이 다듬어졌어요. 2019년부터는 박현정, 돈선필 씨 같은 젊은 미술가들이 운영하는 스튜디오 파이취미가의 아낌 없는 지원 덕에 지금 같은 모습으로 확장할 수 있었고요.

마포구 성산동에 있는 스튜디오 파이에서 6주 동안 진행하는 「새로운 질서」는 웹 디자인 강좌는 아니에요. 기술로서 디자인을 다루기도 하지만 글쓰기 강좌에 가깝죠. 「새로운 질서」에서는 ‘실용적이고 개념적인 글쓰기’의 관점으로 코딩을 이야기합니다. 먼저 자신을 바라보며 자신의 관심사에 관해 글을 쓰고, 차례로 HTML, CSS, 자바스크립트를 도구 삼아 콘텐츠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해보죠. 중간중간 인터넷과 웹의 역사, 견지해야 할 태도, 넷 아트, 컴퓨터 언어 자체에 관한 이야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면 적어도 이런 웹사이트는 별 어려움 없이 만들 수 있게 됩니다. 예습과 복습을 철저히 한다면 말이죠.

「새로운 질서」에서 함께 추억을 쌓은 분들이 ‘새로운 질서 그 후…’라는 느슨한 컬렉티브를 꾸렸는데, 최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주관하고 현대자동차에서 후원하는 ‘프로젝트 해시태그’ 사업에 선정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죠. 후문에 따르면, 심사위원이었던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이 적극적으로 추천했다고 해요. 오는 11월이면 그들이 고민하고 즐긴 결과물을 볼 수 있겠죠? 며칠 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그들의 작업 상황을 엿볼 수 있었는데, 이번 전시가 그들에게 기억에 남을 만한 추억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최근에는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분들을 대상으로 4주 동안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했죠. 지금은 사회적 거리 두기가 4단계로 격상하면서 잠시 문을 닫았어요. 온라인으로라도 개인 과외를 받고 싶다는 문의가 들어오기도 하지만 거절하고 있습니다. 기술을 다루더라도 서로 마주보며 이야기하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매학교로는 미국의 그래픽 디자이너 로럴 슐스트(Laurel Schwulst)존 프로벤처(John Provencher)가 운영하는 프루트풀 스쿨(Fruitful School)이 있습니다.

인터넷 공유기로 이뤄진 ‘오가사와라 키트’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을지로에 직접 방문할 수 없는 한국 또는 해외의 참가자들에게 우리는 오가사와라 키트를 보냈다. 구글이나 네이버 등 일반적인 웹으로 진입하기 직전에 사용자를 다른 배에 태우는 일이라 생각한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해적단 사이에서 ‘오가사와라 키트’로 불린 인터넷 공유기는 이제껏 별 고민 없이 접속해온 인터넷에 가시적인 관문을 만드는 장치였다. 즉, 해적단 웹사이트에서 참여 작가들의 활동을 열람하려면 인터넷 공유기를 설치한 뒤 특정 와이파이(ogasawara)에 접속해 일종의 인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 공항이나 스타벅스 같은 공공장소에서 인터넷을 사용해본 적이 있는 사람은 익숙할 것이다. 한편, 인증 절차가 다소 복잡하다는 점(방문자는 단계마다 질문을 받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면 웹상에서 올바른 답변을 찾아내야 한다.)은 보물 상자의 잠금장치를 푸는 일과 비슷하다.

오늘날 웹은 이미 일상이 됐다. 웹 브라우저는 냉장고 패널이나 자동차 대시보드에까지 탑재된다.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생각지 못한 순간과 맞닥뜨리면 자연스러움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인터넷 기술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려는 여러 분야의 시도는 대개 웹사이트 자체에만 집중한다. 이는 비단 미술계뿐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오가사와라 키트는 웹사이트 이전에 인터넷에 접속하는 일 자체를 환기해보려는 장치이기도 하다. 물론 누구나 이용할 수 없다는 점에서 느슨하게 연결된 서로를 확인하는 징표 역할 또한 수행한다.

종이책의 미래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가 생각하는 종이책의 귀중한 유산은 종이 위, 즉 제한된 평면에서 콘텐츠를 정리하고 소개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에는 필사가, 편집자, 인쇄인, 디자이너, 인지과학자 등 수많은 전문가의 성공과 실패가 쌓여 있다. 그 덕에 우리는 콘텐츠와 눈 사이에 따른 적절한 글자 크기를, 그에 따른 적절한 글줄 길이를, 그에 따른 적절한 글줄 수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이 점을 생각하면 웹사이트뿐 아니라 콘텐츠가 자리한 수많은 매체에서 이 방식이 재현되거나 활용되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다. 누군가에게 종이 책의 죽음은 당연한 미래일지 모르지만, 종이 책에서 비롯한 이 방식만큼은 변함없으리라.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입니다. ‘새로운 질서’를 만들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요?

“어떤 대상을 좋아하고, 급기야 사랑하게 되면 그 아름다운 마음을 주위와 나누고 싶게 마련이다.” 제가 수학한 시적 연산 학교의 마지막 수업은 자신만의 학교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선생의 역할은 맹목적인 학생을 만드는 게 아니라 또 다른 선생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첫 시간부터 그냥 이름을 부르는 식으로 호칭을 정리하죠. 누군가를 ‘선생님’으로 부르는 순간 어떤 위계가 생기고, 그런 위계는 뭔가를 가르치거나 배우는 데, 즉 나누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아요.

소비자로서는 웹사이트가 너무나도 익숙하지만, 생산자로서는 대개 새로운 매체입니다. 세련된 툴바가 아닌 모두 글자로 하나하나 해야 하는 까닭에 자신의 작업 과정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죠. 디자이너라면 모름지기 처음부터 책을 한 권 만들어봐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상황이 디자인을 할 때 마주하게 되는 많은 변수를 포함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웹사이트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또 다른 경험을 하게 합니다.

코로나 때문에 오프라인 졸업 전시가 취소되면서 온라인에서 전시를 꾸려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저희 같은 학생에게는 기술 지원 비용이 너무 벅찹니다. 혹시 학생 할인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민구홍 매뉴팩처링 기프트 카드」가 준비돼 있습니다. 취미가 또는 스튜디오 파이에 문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카드에 표시된 비율만큼 기술 지원 비용을 할인해드리며, 카드 판매 수익은 회사에서 지원하는 「새로운 질서」를 운영하고,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 사용됩니다.

회사 밖에서는 주로 무엇을 하나요? 너무 사적인 질문일까요?

궁금하시다면 밝힐 수 있는 만큼 밝혀야죠. 오래전에 “일이 곧 생활이 돼야 한다.”라는 가르침을 받은 뒤로 일과 생활을 철저히 구분하는 편입니다. 전염병이 확산하던 초기에 며칠 동안 집에서 일해봤는데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더라고요. 꼬마 때부터 알고 지낸 한국의 1세대 웹 아티스트 겸 『오무라이스 잼잼』의 작가 조경규 형은 집을 일터 삼아 놀면서 일한다고 해요. 형을 좋아하지만 이 점만큼은 저와 전혀 맞지 않더라고요. 책은 회사에서 충분히 읽으니 집에서는 주로 소파에 누워서 TV를 봐요. 그러다 저도 모르게 잠에 빠지기도 하고요. 해가 지고 선선한 바람이 불면 집 근처 경의선숲길이나 연희동 골목을 산책하죠. 요즘에는 한동안 뜸했던 클라이밍과 작곡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입니다. 디자인에서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가치나 핵심이 궁금합니다.

며칠 전 고토 데쓰야(後藤哲也, Tetsuya Goto) 선생님과 만난 적이 있는데, 그때 “디자인은 내 글쓰기를 위한 플러그인과 비슷하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 말처럼 제게 디자인은 기본적으로 도구입니다.

2019년 이래 금요일마다 진행하는 「새로운 질서」에서 디자인은 일반적으로 목적어가 필요한 동사, 더 정확히는 타동사라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개념적으로는 하라 겐야(原研哉)의 ‘디자인의 디자인’이라는 말이 있지만, 제 일천한 경험으로 미루어 목적어가 디자인 자체가 되는 경우는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따라서 제게는 우선 디자인의 목적어, 다른 말로는 콘텐츠를 파악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디자인이라는 도구를 어떻게 활용할지 판단할 수 있으니까요.

이는 특히 웹사이트를 만들 때마다 절실하게 체감합니다. 단 한 글자라도 콘텐츠가 있어야 HTML의 태그를, CSS의 선택자를, 자바스크립트의 함수를 활용할 수 있으니까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공식 웹사이트는 일반적인 디자인 스튜디오 웹사이트의 공식을 따르지 않는 듯하다.

2015년부터 싸구려 웹 호스팅을 사용 중이다. 제품별 이미지를 드러내기에는 속도가 느리므로 제약을 따를 뿐이다. 게다가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디자인 스튜디오가 아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소개하는 데 일조하는” 책 『레인보 셔벗』(아카이브 봄·작업실유령, 2019)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제품 소개’의 반대 개념인 ‘제품 후기’로 책을 구성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 책은 지금은 문을 닫은 전설적인 갤러리 ‘아카이브 봄’에서 열린 『레인보 셔벗』을 정리한 도록 겸 단행본이에요. 기획을 포함한 책임 편집은 최근에 일민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긴 윤율리 씨가 담당했죠.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주 고객 가운데 한 분으로, 어쩌다 보니 여름이 다가오면 함께 평양냉면을 먹는 사이가 됐어요. 도록에는 보통 작품에 관한 비평문이 실리기 마련인데, 여기서는 ‘작품’이 아닌 ‘제품’이니 ‘비평문’보다는 ‘후기’가 어울리기 때문 아니었을까요? 저도 궁금하니 이참에 율리 씨를 한번 인터뷰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이 책에서 제가 담당한 건 뒤표지였어요. 뒤표지에는 보통 책 내용을 정리한 소개문을 싣죠. 소개문은 책을 디자인하고 드물게 인쇄 과정을 감리까지 해주신 슬기와 민 선생님들께 의뢰했는데, 덕분에 근사한 소개문이 탄생했어요. “『레인보 셔벗』은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회사를 소개하는 데 일조하는 책이다. 이런 식의 소개문 몇 줄이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 다만, 분량은 160자 정도로 제한해 주세요.” 덩달아 회사에서는 자연스럽게 선생님들의 명성에 기댈 수 있었고요. 참, 표지를 장식한 인물은 그래픽 디자이너 강문식 씨가 발견했죠.

당신은, 역할은 다르지만, 인쇄 매체와 디지털 매체를 함께 다룬다. 좋아하는 책을 아우를 만한 특징이 있나? 있다면, 좋아하는 웹사이트와는 어떻게 다를까?

얼핏 평온하고 순진해 보이지만 들여다볼수록 어딘가 불온해 보인다. (또는 그 반대.) 처음 세운 논리와 원칙을 끝까지 유지하며 동시에 부순다. 가볍다.

소비자로서 내용은 내게 유익하기만 하면 그만이다. 이는 아무래도 상대적이고 유동적이다. 예컨대 간식으로 먹을 파이를 만드는 데 칼 세이건(Carl Sagan)의 『코스모스』(Cosmos)는 내가 구운 ‘우주적’ 파이의 맛까지 보장해주지 않으니까.

형식에 관해서는 할 말이 좀 더 있다. 마이크로 타이포그래피는 완벽할수록 좋지만, 매크로 타이포그래피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앞표지에 예쁜 꽃 사진 한 장만 넣어도 충분할 때가 있다. 중요한 건 그게 수선화인지, 양귀비인지다.

한편, 나는 디자인 학교에서 넓게는 웹, 좁게는 인터랙티브 디자인을 가르치기도 한다. 학생들에게 웹사이트는 판형이 정해지지 않은, 부피와 무게가 없는 책이고, 책은 하이퍼링크와 스크롤바가 없는, 부피와 무게가 있는 웹사이트라고 말하곤 한다. 당신도 알다시피, 웹이 과학자들의 논문 공유를 통한 공동 연구를 위해 시작된 것처럼 웹사이트의 형식은 책에 많은 부분을 빚지고 있다. 언젠가 둘은 형식에서는 갈림길에서 헤어졌지만 목적지는 하나다. (둘이 가는 길은 테서랙트 안에 있는 것 같다.) 물론 이사할 때는 책이 훨씬 불리하다. 반대로 웹사이트는 ‘인쇄한(publish)’ 뒤에도 언제든 수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절제력과 결단력이 없으면 팔목터널증후군이 생길 가능성이 커지니 주의해야 한다.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자연스럽게 고립에 익숙해진다. 집에서는 무엇을 하는가? 전과 달라진 점이 있는가?

10여 년 전 대학교 4학년 때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서 “일이 곧 생활이 돼야 한다.”라는 가르침을 받은 이래 일과 생활을 철저히 구분하는 편이다. 주중에는 열심히 일하지만, 주말에는 웬만하면 약속도 잡지 않고 대부분 집에서 보낸다. 거실 소파에 누워 TV를 많이 보고, 그러다 나른해지면 잠에 빠지곤 한다. 발코니에서 공원을 오가는 사람들을 내려다보거나 함께 지내는 고양이에게 말을 건네며 하염없이 턱 주변을 쓰다듬기도 한다. 집밖에서는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을 깔끔하게 편집, 즉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강박에 휩싸이지만, 이런 감정은 집 현관문을 여는 순간 사라진다. 집은 관리비나 생활 요금 외에 아무것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가장 편안하고 안전한 공간이다. 최근에 코로나 때문에 외국에서 돌아오신 어머니는 오랜 타향살이보다 2주 동안의 자가 격리 기간이 더욱 고통스러웠다고 말씀하셨지만, 사실 나는 집밖에서 이 답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집에 가고 싶은 생각뿐이다. 영화 「새벽의 저주」(Dawn of the Dead)나 「미스트」(The Mist)처럼 좀비나 외계 생명체가 창궐하더라도 피난처로는 쇼핑몰이나 슈퍼마켓보다 집을 택할 것 같다.

웹사이트를 만드는 데 필요한 비용은 어느 정도가 적절할까? 비용 앞에서는 누구나 숨을 죽이게 되는 만큼 어쩌면 가장 중요한 질문일지 모른다.

일정, 웹사이트의 규모나 필요한 기능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적게는 몇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이 들기도 한다. 작업자마다 요율도 다를 것이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단행본 한 권을 제작하는 데 필요한 전체 비용을 기준으로 삼는 편이다. 기획, 편집, 디자인 같이 매체와 무관한 일뿐 아니라 제작, 유통, 관리 등도 웹사이트를 만드는 일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비용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도메인 구입 비용, 서버를 임대하는 비용, 트래픽이 초과됐을 때 트래픽을 초기화하는 비용 등이다. 모든 프로젝트의 예산이 넉넉한 건 아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고객의 마음을 헤아려 어떤 방식으로든 일이 진행되도록 예산에 적합한 방식을 제안하기도 한다. 대신 ‘회사 소개’라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주업무에 입각해 어떤 방식으로든 회사를 소개해달라고 주문하는 식이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여러 방식으로 회사를 소개하는 데 주력하는 이유와 연결되는 것 같다.

정확하다. 소개는 반드시, 그리고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니 그 일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졸업생입니다. 웹상에서 이뤄지는 국내외의 실천 가운데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을까요?

웹 3.0의 대표적인 화두인 NFT(Non-Fungible Token)와 관련한 몇 가지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데, NFT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제대로 답변할 자신은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주목하는 기술임에는 분명하지만, 러닝 커브(learning curve)가 가파른 탓에 선뜻 익히기가 쉽지 않아요. NFT를 둘러싼 커뮤니티가 초심자에게 조금 배타적이기도 하고요. 처음에는 ‘그들만의 놀이터’라 여겨지기 쉽죠. 그래서일까요? 오히려 웹 1.0을 향한 관심이 조금씩 늘어나는 것 같아요. 다들 아시겠지만 index.html 파일 하나만으로도 웹사이트가 될 수 있듯 ‘index.html 무브먼트’ 같은 게 일어나는 상황을 즐겁게 상상하곤 합니다.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졸업생입니다. 혹시 직업병 같은 게 있나요?

이따금 웹 조사기(Web Inspector)를 실행해 웹사이트의 코드를 들여다보게 됩니다. 코드에서 주석으로 처리된 메시지를 찾아보는 게 또 다른 즐거움이거든요. 나아가 사물, 인물, 공간, 음악 등 어떤 인상적인 대상을 마주하면 머릿속 샌드박스에서 웹사이트로 치환해보기도 해요. 아주 단순한 형태부터 아주 복잡한 형태까지요. 직업병보다는 습관에 가깝지 않을까 해요. 사무실을 떠나면 컴퓨터나 스마트폰은 별로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데, 오히려 이쪽이 직업병에 가깝습니다. 증상이 악화하다 보니 몇 달 전에는 아예 집에서 컴퓨터뿐 아니라 컴퓨터와 비슷한 물건은 죄다 치워버렸죠. 웬만하면 스마트폰도 그만 쓰고 싶어요.

최근 선보인 대안공간 루프의 웹사이트가 인상적이다.

일반적으로 갤러리 웹사이트는 콘텐츠와 구조 덕에 메타적인 전시의 형식을 띨 수밖에 없다. 대안공간 루프 웹사이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웹사이트의 요소는 루프의 영문명(Loop)을 암시하는 동시에 여러 페이지를 오갈 수 있는 내비게이션으로 기능한다. 접속할 때마다 무작위로 바뀌는 두 번째 ‘O’는 과거 전시와 연결되는데, 방문객뿐 아니라 루프의 구성원에게 그동안 루프에 쌓인 시간을 되새기려는 의도였다. 한편,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웹사이트 제작으로 루프에 후원했다. 한국 대안 공간의 효시인 루프의 활동을 그렇게나마 응원하고 싶었다.

민구홍 씨와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계획이란 건 언제나 수정될 수 있지만, 일단 2021년 매달 더 북 소사이어티(The Book Society) 웹사이트에 회사를 소개하는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위고에서 출간될 『아무튼, HTML』이라는 책을 쓰고 있고요. 그래픽 디자이너 겸 교육자 데이비드 라인퍼트(David Reinfurt)『A New Program for Graphic Design』을 번역하고 있습니다. 번역은 생각보다 길어질 것 같아요.

올해는 타이포잔치, 옵/신페스티벌, 서울레코드페어, 서울국제도서전 같이 미술계나 디자인계에 굵직한 행사가 적지 않은데, 여러 방식으로 기술을 지원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몇몇 기업에서 함께 추억을 쌓아보자는 연락을 받았어요. 재미있게도 탐정 사무소 두 곳에서도 연락을 받았죠. 거의 동시에요. 한편,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친정이라 할 수 있는 시청각에서 회사를 소개하는 행사를 준비하고 있고요. 그저 많은 사랑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 공식 웹사이트 속도가 제법 빨라진 듯합니다.

정확합니다. 2015년부터 호스팅 업체로 미국의 드림호스트(Dreamhost)를 사용하고 있는데, 미국 서부의 오레곤에 있던 데이터 센터를 한국과 더 가까운 싱가포르로 옮기고, 여기에 클라우드플레어(Cloudflare)의 네임서버까지 사용했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 결과 200밀리초에 가까웠던 핑 속도가 100밀리초 미만으로 감소했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 G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