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2015년 이래 진행한 길고 짧은 인터뷰를 꼼꼼히 정리한 뒤 다시 무작위로 늘어놓은 「자주 하는 질문」을 통해 회사 또는 운영자에 관한 궁금증이 모쪼록 해소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단, 질문의 시기에 따라 현재와 다른 사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편, 질문의 어조에 따라 언급한 인물에 대한 존칭을 생략하기도 했습니다. 「자주 하는 질문」을 섭렵한 뒤에도 궁금증이 도무지 해소되지 않는다면 [email protected] 앞으로 소상히 말씀해주세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인정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단, 답장은 이메일 대신 언젠가 「자주 하는 질문」에서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기술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기관, 단체, 기업, 개인 등과 협업하기도 한다. 형태는 웹사이트 구축이나 소프트웨어 개발뿐 아니라 저술, 번역 등 다양하다. 민감한 질문일 수 있는데, 기술 지원 비용은 보통 어떻게 책정하는 편인가?
민감할수록 분명히 밝혀야 한다. 게다가 많든 적든, 길든 짧든 회사의 노동력과 시간을 투여하는 만큼 이는 회사의 생존 측면에서 중요한 문제다. 하안선은 있지만 서로 어색해지 않는 선에서 많을수록 좋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어떤 식으로든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소개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하안선을 충족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회사를 적극적으로 소개하는 것으로 갈음하기도 한다. 예컨대 소설가라면 4대 문예지 가운데 한 곳에 회사에 관한 작품을 발표해야 하는 식이다.
한편,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디자인 에이전시였다면, 908A를 운영하는 강이룬 선배의 조언을 기준으로 삼았을 것이다.
사람, 돈, 포트폴리오 가운데 하나만 충족하면 된다.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의 2차원 이미지를 재현하는 건 익숙한 일이다. 그렇다면 조각 등 설치물 같은 건 어떨까? 온라인 전시에서도 작품의 물성을 구현할 수 있을까? 구현할 수 있다면 어떤 방식이 적절할까?
언젠가 한 출판사 관계자와 웹사이트 개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 비슷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이참에 웹사이트에서 책의 물성을 구현해보고 싶은데… 가능하겠죠?” 그는 순진한 표정으로, 특히 ‘물성’에 힘을 보태 말했다. 이는 책에서 유튜브 영상을 재생하고 싶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웹에서는 Z축상에 레이어가 아무리 쌓이더라도 두께는 0픽셀이다. 웹상의 물성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바는 이뿐이다. 오랜 고민 끝에 출판사 관계자에게는 결국 구글이나 네이버 본사에 문의해보시는 게 좋겠다고 정중히 말씀드렸다.
결국 연결, 아니 연결을 위한 연결이군요!
나아가 연결을 위한 연결을 연결하는 연결일 수도 있겠죠? 이를 위한 하이퍼텍스트는 웹사이트, 나아가 웹의 근간을 이룹니다. 수많은 웹 페이지는 서로 하이퍼링크로 연결되고, 사용자는 하이퍼링크를 통해 정보의 바다를 항해합니다. 이는 기술적 특성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내러티브와 사고방식을 가능케 합니다. 특히 마이클 조이스(Michael Joyce)의 「오후, 이야기」(afternoon, a story)는 하이퍼텍스트 문학의 선구적 작품입니다. 이 작품에서 독자는 하이퍼링크를 클릭하며 자신만의 고유한 서사를 만들어갑니다.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가 말한 ‘저자의 죽음’을 산뜻하게 실현하는 동시에 독자를 적극적인 공동 창작자로 끌어올리는 거죠. 웹사이트의 구조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용자는 자신의 관심사와 선택에 따라 웹사이트를 탐험하며, 그 과정에서 개인화된 경험을 만들어갑니다. 그렇게 사용자는 고유한 디지털 오디세이로 떠납니다. 나아가 하이퍼텍스트의 개념은 텍스트의 경계를 넘어서기도 합니다. 웹사이트에서는 텍스트, 이미지, 영상, 소리 등 다양한 매체가 서로 연결돼 복합적인 경험을 만들어내니까요.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가 꿈꾼 ‘종합 예술’의 디지털 버전 아닐까 싶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제품이 주로 웹 기술을 통해 이뤄지는 만큼 당신은 첨단 기술의 목적과 방향 또한 염두에 둬야 한다. 오늘날 수없이 쏟아지는 제품이 우리 삶을 얼마나 더 개선할 수 있을까?
2009년 겨울, 일본 도쿄를 방문한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Michael Moore)는 아키하바라에서 어이없다는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여기선 쓸데없는 물건이 엄청나게 팔린다. 쇼핑을 하면 기분이 좋아질지 모르지만, 자신을 속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다이슨(Dyson)의 최신 무선 청소기가 더 빠르고 깔끔하게 먼지를 빨아들일수록 우리는 더 행복해질까? 1페타바이트 파일을 1초 만에 내려받는 세상은 지금보다 더 아름다울까? 기술 발전은 우리가 행복을 유지하는 것과 별로 상관없을지 모른다. 물론 기술이 발전하면 당신과 내가 좀 더 쉽게 만날 수 있겠지만. 어쨌든 회사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세상에 제품을 선보이는 데 책임감을 느끼는 건 사실이다. 제품을 홍보할 때면 더더욱 그렇다. 「회사 소개」에서 밝혔듯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생화학 무기와 도청 장비, 무엇보다 샤워 커튼을 제작하지 않는 이유다.
지금의 스타일에 싫증이 나거나 지루함을 느낄 때는 없었는가?
다행이 아직은 없다. 예전에도 밝혔듯 내가 갑자기 히피나 자연주의, 한국의 전통 복식 문화에 심취하지 않는 이상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한편, 며칠 전 가족 모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트를 입고, 그 차림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회의를 한 적이 있는데, 평소에 이렇게 생활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사람들 반응도 재미있었고. 그럼에도 기본값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나를 정통 일본식 아메리칸 스타일로만 꾸며주시던 엄마는 늘 불만을 표하시지만.
이따금이기는 하지만,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회사인 만큼 제품을 출시하기도 한다. 2020년 현재 추천하고픈 제품이 있는가?

「바이러스 시뮬레이터」(Virus Simulator). 제품 속 세계에는 인간 열 명이 있다. 이 가운데 다섯 명은 약하고, 다섯 명은 강하다. 바이러스가 된 사용자는 약한 인간을 찾아내 감염시켜야 한다. 모든 인간을 감염시키면 세상은 조금 더 평화로워진다. 반대로 강한 인간을 감염시키려 하면 목숨을 조금씩 잃고, 제품은 다음과 같이 사용자의 안부를 묻는다. “건강 조심하세요.” “안녕하세요?” 인간과 바이러스의 관계를 뒤집어본 이 제품이 던지는 메시지는 인간 또한 또 다른 바이러스라는 게 아니라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 아닐까?
「슈프림 귀중」(Messrs. Supreme). 패션을 넘어 생활용품 영역까지 노리는 굴지의 브랜드 슈프림에 콜래보레이션 임무를 부여하는 온라인 시스템이다. 사용자가 입력한 임무는 슈프림 공식 이메일로 전달되고, 해당 웹사이트에 저장된다. 물론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슈프림 관계자 마음이다. 기본 임무는 다음과 같다.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캠벨 수프 회사(Campbell Soup Company)와 협업해 깡통 전화기를 발매하라.”
그리고 그밖의 제품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될 예정이었는데, 공공시설이 폐쇄된 지금으로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사실 지금 같은 상황에 사람이 물리적으로 모일 여지를 만드는 일이 윤리적으로 옳은지 생각하고 있다.
시각언어 측면에서 ‘가운데 맞추기’를 즐겨 사용한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콘텐츠를 강조하는 가장 단순하고 효과적인 방법이라 생각한다. 대상 주위에 아무것도 범접할 수 없는 여백을 두는 것만으로도 위대해 보인다.
2019년부터 매주 금요일마다 ‘현대인을 위한 교양 강좌’를 표방하는 ‹새로운 질서›를 진행한다. 개설될 때마다 신청이 마감되는 이 강좌의 정체는 무엇인가.
‹새로운 질서›는 2016년 크리스마스 이튿날 워크룸에서 열린 비공개 웹 세미나에서 시작됐다. 시적 연산 학교를 마치고 뉴욕에서 막 돌아온 참이었는데, ‘현대인을 위한 교양’으로서 웹 기술을 익혀두면 워크룸 구성원들이 일하는 데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서였다. 그 뒤 여러 특강과 워크숍,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강의 등을 통해 조금씩 커리큘럼이 다듬어져 지금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200여 명의 ‘‹새로운 질서› 친구들’과 추억을 쌓았고, 이들 가운데는 국립현대미술관의 «프로젝트 해시태그»(Project Hashtag, 2020–) 사업에 선정돼 느닷없이 미술계로 편입되기도 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 ‹새로운 질서›, 웹사이트. 웹사이트 제목인 ‘새로운 질서’는 1초마다 낱자별로 새로운 질서를 부여받는다. 사진 제공: 작가
‹새로운 질서›에서는 기술로서 디자인을 다루기도 하지만, 웹 디자인 강좌가 아니다. 오히려 ‘실용적이고 개념적인 글쓰기’ 강좌에 가깝다. ‹새로운 질서› 친구들은 자신의 관심사(자신이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등)를 토대로 자신만의 콘텐츠를 생산하고, HTML, CSS, 자바스크립트 같은 컴퓨터 언어를 익혀 콘텐츠에 단계별로 새로운 질서를 부여해본다. 기술을 다루므로 실패에 익숙해지고, 자신의 한계를 파악해 욕망을 발산할 우회 전략을 고민해보기도 한다. 글쓰기의 결과물은 결국 웹사이트지만, 사실 더욱 가치 있는 건 그 과정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대학교 졸업 예정자입니다. 내년 상반기에 직원이나 인턴을 채용할 계획은 없나요?
상반기는 물론이고 하반기에도 없습니다. 회사에서 제공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운영자가 사용하는 책상의 일부 공간, 스툴, 사원(인턴)증, 명함, minguhongmfg.com을 도메인 네임으로 한 업무용 이메일 주소뿐이거든요.
아카이브 봄, 아트선재센터, 서울시립미술관 등에서 제품을 전시한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오는 9월에 예정된 DDDD의 기획 전시에도 참여할 예정입니다. 오프라인 전시는 온라인과 달리 매체, 설치 과정, 전시, 관람 방식 등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 2차원이 아닌 3차원의 결과물을 선보이는 것은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감사하게도 제가 서울시에 납부해온 세금으로 또 다른 매체를 활용해볼 수 있다는 점 외에 회사, 즉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소개한다는 주 업무에는 큰 변화가 없습니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2차원이든 3차원이든 결국 추억 속에는 민구홍 매뉴팩처링만 놓이지 않을까요?
2016년 청담동의 COS 매장 3층에 마련된 프로젝트 스페이스에서 발표한 「보기」(더 북 소사이어티·김영나 기획)는 빨강 버튼을 누를 때마다 무작위로 조합된 경고나 행운의 메시지를 대형 스크린에 출력하는 제품이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것 가운데 가장 섬뜩한 메시지가 있다면?



귀하는 / 유니클로에서 / 느닷없이 / 친척 어른에게 / 귀하의 직업을 / 설명하게 될 것입니다. / 축하드립니다.

하지만 가장 섬뜩했던 건 메시지보다 음악가 김윤기의 오프닝 공연이었을 것이다.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졸업생입니다. 작품을 작동시키는 모티브는 어디에서 얻나요?
어떤 프로젝트든 결과물을 예상했을 때 반드시 필요한 것, 특히 제목에서 모티브를 찾아보려 하는 편입니다. 조금 더 정확한 뜻을 파악하기 위해 사전을 들춰보기도 하고, 관련된 경험이나 추억은 없는지 되뇌어 보기도 합니다. 그러는 와중에 거리를 걷다가 나무나 돌멩이를 보고 갑자기 뭔가 떠오를 때도 있고요. 그 과정이 적절하다면, 많은 부분은 자연스럽게 해결된다고 믿습니다. 예컨대 『타이포잔치 2021: 거북이와 두루미』의 경우 거북이와 두루미가 지닌 특성에 주목했어요. 거북이는 땅에서 느릿느릿 기어다니고, 두루미는 하늘을 날죠. 그렇게 웹사이트상에서 두 가지 읽기 환경을 제안했어요. ‘거북이’ 환경에서는 콘텐츠를 느긋하게 열람할 수 있도록 1단으로, ‘두루미’ 환경에서는 전체 콘텐츠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최대 6단으로 설정했죠. 제목에 관해 조금 더 이야기하면, 스스로 제목을 제어할 수 있는 개인 프로젝트에서는 제목이 영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머지가 다 마무리됐더라도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기본적으로 제목이 프로젝트 자체를 규정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전체 작업 기간 가운데 제목에 공을 들이는 게 반 이상은 될 거예요.
온라인 전시에서 큐레이터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또는 무엇을 해야 할까?
또 다른 형태의 전시장을 활용할 수 있는 셈이니 큐레이터의 역할은 더욱 확대될 게 분명하다. 이를 위해 단순하더라도 직접 웹사이트를 만들어보는 걸 추천한다. 웹의 수많은 가능성뿐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떤 제약이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다. ‘느낌’을 동원하는 데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웹 기술을 다뤄본 큐레이터가 쓴 온라인 전시 서문은 더욱 읽을 만하고, 전시는 더욱 감상할 만할 것이다. 그 뒤에는 전시장, 즉 웹사이트를 무엇으로 규정하는지가 중요하겠다. 로럴 슐스트(Laurel Schwulst)가 「내게 웹사이트는 지식의 강을 따라 흐르는 집이다. 당신은?」(My Website is a Shifting House Next to a River of Knowledge. What Could Yours Be?, 2018)에서 말했듯 웹사이트는 가깝게는 단행본에서 아무도 생각지 못한 무엇까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입니다. 이런 디자인을 해야겠다고 결정한 순간은?
질문을 받고 이참에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슬기와 민의 최성민 선생님 덕인 것 같아요. 더 정확히는 최성민 선생님이 추천해주신 밥 길의 책 번역을 맡으면서요. 제가 미국에서 돌아와 워크룸으로 자리를 옮긴 2016년 무렵이었는데, 그 책에 이런 말이 나오죠. “흥미로운 말에는 시시한 그래픽이 필요하다.” 반대로 “흥미로운 그래픽에는 시시한 말이 필요하다.”라는 말도 있었죠.
무엇보다 말과 그래픽, 콘텐츠와 디자인, 내용과 형식, 두 가지의 균형이 중요하다는 뜻일 텐데, 이는 제가 늘 고민하던 바, 나아가 이제껏 제 마음을 움직이던 작품의 정체를 명쾌하게 정리해주는 말이었어요. 그 뒤로는 같은 말이라도 국면에 따라 뜻이 달라진다는 화용론(話用論, Pragmatics)에 심취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말이 흥미로워지는 국면을 찾아보거나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우연일지 모르지만, 안상수 선생님이든 최성민 선생님이든 저를 디자인하신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런 점에서 직접 사사한 적은 없지만 안상수 선생님이나 최성민 선생님은 제게 엄연히 선생님이죠. 이따금 자주 뵙고 싶기도 하지만, 그런 대상과는 아무래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쉬움이 있어야 계속 생각이 나니까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운영자 민구홍 씨는 워크룸 편집자(디자이너, 프로그래머)에서 AG 랩 디렉터가 됐다. 덩달아 민구홍 매뉴팩처링에도 달라지는 점이 있을까?
없다. 그리고 없기를 바란다.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입니다. 가장 처음 취업한 곳부터 지금까지의 과정은?
디자인에 발을 들이게 된 건 안상수 선생님 덕입니다. 대학교 3학년 때 우연히 선생님을 알게 됐어요. 그리고 전역한 뒤 대학교 4학년 1학기 때부터 안상수 선생님 연구실인 ‘날개집’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기 시작했고요. 졸업 작품만 제대로 마무리하는 조건으로 학교에 취업계를 제출하고 매일 날개집으로 출근했죠.
날개집은 디자인 스튜디오이자 제게 또 다른 학교였어요. 사실 제가 하는 일은 별로 없었는데, 회의에 참여해 말을 얹거나 연구원들이 디자인을 어떻게 시작하고 끝내는지 구경하는 정도였죠. 그때 만난 김병조, 김동신, 박찬신 씨는 제 인디자인 선생님이기도 하죠.
그러다 안그라픽스와 연계된 프로젝트에 참여하다 4학년 2학기 때 자연스럽게 안그라픽스로 자리를 옮겼죠. 그때는 안그라픽스 전체 임직원이 100명이 넘는 규모였죠. 거기서 6년 정도 일했고요. 그러다가 시적 연산 학교에 갔다가 워크룸으로 자리를 옮겨 7년 정도 일하고, 다시 안그라픽스로 자리를 옮겨 2022년 2월 22일부터 지금까지 안그라픽스 랩 디렉터로 일하고 있고요.
따지고 보면 대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죠. 제가 전역할 무렵 저희 부대에 국가정보원 취업을 준비하던 친구들이 꽤 많았는데, 안상수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저도 국정원 요원으로서 국가에 헌신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디자인이나 코딩 같은 기술을 독학으로 익혔다. 또는 일반적인 교육 과정을 통해 습득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 결과, 이제껏 접한 경향들과는 거리가 있는데, 자신에게 필요한 기술을 어떻게 습득하는지, 그 전략이 궁금하다.
일곱 살 무렵 처음 컴퓨터를 접했고, 열한 살 무렵 처음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코딩 이전에 컴퓨터를 다루는 건 내게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대학교에서는 문학과 언어학을 공부했고, 그래픽 디자이너 안상수 선생의 연구실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그 뒤에는 안그라픽스를 거쳐 워크룸에서 편집자로 일한다. 디자인은 실무에서 익혔다. 운 좋게 주위에 늘 훌륭한 선생을 비롯해 실용적인 기술과 유연한 태도를 겸비한 동료들이 있었고, 그들이 디자인에서 맞닥뜨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지켜보는 게 중요한 학습 과정이었다.
2017년 최성민 선생의 추천으로 그래픽 디자이너 밥 길(Bob Gill)의 『Forget all the rules about graphic design. Including the ones in this book.』을 한국어로 번역하고 편집한 과정도 도움이 됐다. 책은 그 자체로 훌륭한 디자인 교과서였다. 한편, 책뿐 아니라 30여 년 동안 인터넷에 축적된 정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자신을 열성적인 학생으로 치환할 수 있다면 학위와 무관하게 인터넷은 꽤 괜찮은 학교다. 잘못된 정보가 있기는 하지만, 이를 감별해내는 일 또한 학습의 일부다. 기술을 습득하는 데 필요한 동력은 문학과 언어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또 편집자로서 글을 읽고 쓰는 일을 충분히 훈련한 덕에 나오는 것 같다. 기술에 관한 정보는 대개 글이니까.
매체를 떠나 무언가를 만들 때 이정표로 삼는 말이 있을까요?
10년 정도 무언가를 만들다 보니 세 가지로 좁혀지는 듯합니다. 하나는 제약입니다. 제약이 없다면, 그리고 제약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습니다. 다른 하나는 내용입니다. 내용 없는 형식은 공허하니까요. 나머지 하나는 형식입니다. 형식 없는 내용은 존재할 수 없으니까요.
올해로 설립 15주년을 맞은 워크룸에서는 단행본 편집자로,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웹 제작자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인쇄물과 웹사이트라는 두 매체를 오가면서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하셨나요?
디자인 학교에서 강의하다 보면 학생들은 인쇄물과 웹사이트를 비교하려 합니다. 기존 커리큘럼의 영향도 있겠지만, 생산자로서 책이나 포스터 같은 전통적인 인쇄 매체에 익숙하기 때문이죠. 또는 지독히 인쇄물을 사랑하거나요. 웹은 과학자들끼리 효율적으로 논문을 공유할 목적으로 발명됐어요. 역사적으로 웹사이트는 인쇄물에서 출발한 셈이죠. 콘텐츠를 담는 그릇으로서 웹사이트는 태생적으로 인쇄물의 장점을 포섭하고, 게다가 지금도 발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둘을 같은 출발선상에 놓고 비교하기보다는 인쇄물을 웹의 조상, 웹을 조금 더 진보한 인쇄물로 여기는 편이 이롭습니다. 물론 웹은 책처럼 손에 쥐었을 때 느껴지는 흡족함을 주지 못하고, 책과 달리 영원한 베타 버전이라는 차이가 있지만요.
민구홍에게 웹이란 무엇인가?
한국 나이로 일곱 살 무렵이던 1991년에 처음 컴퓨터를 접했다. 마지막 PC 통신 세대이자 첫 인터넷 세대인데, 웹 1.0 시절부터 소비자와 생산자로서 경험해온 웹은 규정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게 엉망진창이다. 이따금 웹상에는 모든 것이 있다는 환상에 젖곤 한다. 하지만 맛있는 저녁을 먹고 집 앞 경의선숲길을 산책하다 보면 그런 환상은 무참히 무화된다.
브랜딩, 예컨대 작명 서비스도 제공하나요?
그래픽 디자이너 겸 저술가 김동신 씨가 운영하는 ‘동신사’ 외에는 아직 없습니다. 서로 자신이 앞으로 운영할 사업체를 구상할 즈음이었죠. 처음에 제안한 건 ‘김동신 매뉴팩처링’이었던 것 같습니다.
미술계에는 크게 웹사이트를 소비하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온라인 전시같이 미술을 소개하는 웹사이트다. 또 다른 하나는, 미술을 생산하는 웹사이트, 즉 미술로서의 웹사이트다. 또 다른 유의미한 구분법은 없을까?
콘텐츠를 제어하는 방식에 따라 구분하면 정적(static) 웹사이트와 동적(dynamic) 웹사이트가 있겠다. 정적 웹사이트에서 콘텐츠는 말 그대로 고정적이다. 파일을 교체하지 않는 이상 언제나 그대로다. 동적 웹사이트에서는 클라이언트의 요청에 따라 백엔드를 통해 생성되고, 콘텐츠가 담긴 웹 페이지는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한편, 콘텐츠의 분량에 따라 구분하면 ‘포스터식 웹사이트’와 ‘넷플릭스식 웹사이트’가 있겠다. 한두 페이지만으로 이뤄진 포스터식 웹사이트는 콘텐츠의 분량이 많지 않은 경우에 적합하다. 포스터식 웹사이트에서 콘텐츠를 열람하는 방식은 스크롤이다. 콘텐츠의 분량이 많다면 넷플릭스식 웹사이트가 적합하다. 이 웹사이트는 크게 콘텐츠를 한눈에 훑어볼 수 있는 인덱스 페이지와 콘텐츠의 세부 페이지로 나뉘는데, 온라인 전시뿐 아니라 포트폴리오 등 많은 웹사이트가 여기에 속할 수 있다. 어떤 기능이 탑재되는지에 더욱 세분화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정적 웹사이트는 포스터식 웹사이트에, 동적 웹사이트는 넷플릭스식 웹사이트에 적합하겠다.

이런 상황이 해적단 항해의 설계와 구현 과정에 영향을 준 부분이 있는가?
사실상 없다. 코로나와 무관하게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태도는 한결같다. 요컨대 웹을 이루는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기술, 즉 HTML(HyperText Markup Language)과 CSS(Cascading Style Sheets)를 중심으로 다른 컴퓨터 언어를 제약 안에서 맥락에 따라 강박적일 만큼 순수하게, 때로는 순수할 만큼 변칙적으로 구사하려 한다. (물론 필요하다면 최첨단 기술을 도입하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여기에는 앞에서 밝힌 기술을 향한 어떤 까닭 모를 믿음, 즉 기술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규정하고 사용하는지와 관련이 있다. 그래픽 디자이너가 인디자인의 모든 기능을 속속들이 사용하지 않는, 또는 그럴 필요가 없는 까닭과도 같다. 콘텐츠가 아름답다면 콘텐츠를 담은 그릇은 특별한 장식이나 장치 없이, 심지어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특정한 아우라를 지닌다고 믿는다. 즉, 이번 결과물이 해적단에게 유의미하거나 성공적이었다면 모든 공은 해적단 몫이다.
이제 웹사이트가 무엇인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시 질문해보고 싶어요. 설령 같은 답이 돌아오더라도요. 대관절 웹사이트란 무엇인가요?
글쎄요. 어쨌든 우리는 그곳을 ‘웹사이트’라 불렀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 말이 사전적으로 규정하는 바는 조금 협소해 보입니다. 웹사이트의 내일은 기술과 인간이 만나는 지점에 있습니다. 여전히 웹사이트는 정보와 예술, 기술과 인문학이 어우러진 공간이 될 테고, 우리는 이곳에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새로운 사고방식을 발전시키며 우리가 존재하는 새로운 방식을 모색할 수 있지 않을까요? T.S. 엘리엇의 말마따나 “우리는 출발점으로 돌아와 그곳을 처음으로 알게 된다.” 우리가 웹사이트를 통해 마주하는 경험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끝없는 디지털 공간을 배회하다 보면 우리가 알게 되는 건 결국 나 자신, 나아가 우리겠죠.
영감은 어디서 얻나요?
제품 주문자의 요구 사항과 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각종 마케팅 전략입니다.
한편, 오가사와라 웹사이트를 포함해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모든 활동은 ‘회사 소개’의 일환이라 밝혀왔다. 사실상 2015년 시청각에서 ‘시청각 문서’로 처음 발표한 「회사 소개」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않은 셈이다. 작업물마다 이스터에그처럼 회사와 관련한 정보를 숨겨놓기도 하는데, 이번에 회사를 소개하는 전략은 무엇이었나?
해적단 모집 웹사이트에서 신청자 정보를 입력하는 필드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실제 정보가 플레이스홀더(placeholder)로 입력돼 있다. 여러 방식으로 회사, 즉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소개하는 일은 회사의 원동력이다. 가장 큰 원동력은 고객의 사랑과 관심일 테고. 하지만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모든 사람에게 사랑과 관심을 받는 사회는 별로 아름답지 않다. (한편으로는 그런 사회를 갈망하는 자신을 향한 배덕감 또한 느낀다.) 그럼에도 이번 토크에 참여한 분들만큼은 언젠가 고객으로 삼아 사랑과 관심을 받고 싶다.
웹사이트를 작품으로 내세워 전시에 참여하기도 했죠. 대표적으로 ‘푹신’이 있어요. 이렇게 웹 디자인이 예술 기관에서 작품으로 소개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래픽 디자인이 미술관을 침투하고 있듯이 웹 디자인이 예술 제도에 편입하는 것에 대한 의견이 궁금합니다.
빈 건물을 그럴듯한 뭔가로 채우고 ‘미술관’이나 ‘갤러리’로 부르면 실제로 그렇게 여겨지듯 어떤 대상을 무엇으로 어떻게 규정하는지가 중요하죠. 제대로 된 논리만 구축한다면 누구나 어색함 없이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회사를 소개할 수만 있다면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회사나 회사의 제품을 전시하는 일도 꺼리지 않습니다.
흔히 ‘분홍이’로 불리기도 하는 ‘푹신(Fuchsine)’은 미술 평론가 이한범 씨가 기획한 전시 픽션 툴에서 처음 고안됐어요. 행사 웹사이트를 돌아다니며 터치하거나 클릭할 때마다 관람객으로서, 도슨트로서, 또는 작가로서 웹사이트 방문객을 향해 뭔가를 중얼거리죠. 전시 기간에는 하루에 한 번씩 몸집을 키워 웹사이트 전체를 장악하기도 했고요. 그 뒤로 여러 미술 관련 프로젝트의 웹사이트에 등장했죠. 지금은 특히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관계자분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친구에게 민구홍 매뉴팩처링 공식 웹사이트에 접속해 「회사 소개」로 연결된 파란색 링크를 응시하는 명상법을 추천받았습니다. 이제 여섯 달째인데, 효과가 있는 것 같기는 합니다. 그나저나 웹사이트는 언제 업데이트되나요?
아직은 회사를 소개하는 데 집중하고 싶습니다. 회사 웹사이트의 또 다른 기능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방의 공립 도서관 사서입니다. 한 명의 ‘현대인’으로서 웹 기술을 익혀보고 싶은데, 추천해주실 만한 책이 있을까요?
수영을 익히려면 얕더라도 일단 물에 들어가야 하듯 웹 기술을 익히기 가장 좋은 학교는 아무래도 웹이겠죠. 웹 기술에 관한 책을 집필하고, 편집하고, 디자인하고, 인쇄하는 순간에도 기술은 발전하고, 다듬어집니다.
우선 HTML(HyperText Markup Language)을 익혀 자신의 관심사를 다룬 웹사이트를 하나 만들어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CSS(Cascading Style Sheets)를 익히고픈 욕망이 입니다. 그 뒤에는 자바스크립트(JavaScript, JS), PHP(PHP: Hypertext Preprocessor), 파이선(Python), 루비(Ruby) 등으로 확장되고, 욕망이 커진다면 자신만의 컴퓨터 언어까지 만들게 될지도 모르죠. 즉, 어디에 사용할지 모를 기술에서 시작하는 게 아닌 아닌 자신의 욕망에 따라 기술을 취하는 게 흥미와 동력을 잃지 않는 방법입니다. 단, 어떻게 시작하는지가 중요할 텐데, 민구홍 매뉴팩처링 주위에는 「새로운 질서」와 프루트풀 스쿨(Fruitful School)이 있습니다.
그럼 가장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은요?
너무 사적인 질문 같습니다. 조금 더 친해지면 말씀드릴게요.
지금까지 웹사이트는 구글이나 네이버, 웹진 『비유』 같은 것만 생각했는데… 그럼 웹사이트는 어떻게 만드나요? 누구나 만들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웹사이트는 개발자나 웹 디자이너만이 만들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럴 수도, 그럴 필요도 없고요. 즉, 웹사이트는 모두를 위한 매체입니다. 웹사이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코드(Code)로 컴퓨터와 대화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컴퓨터 언어가 필요하죠. HTML(HyperText Markup Language)을 비롯해 CSS(Cascading Style Sheets), 자바스크립트(JavaScript)는 단순한 컴퓨터 언어가 아니라 시인의 펜이자 작곡가의 악보입니다. 자연어의 문법이 주어, 동사, 목적어로 세계를 구축하듯 웹상에서 HTML은 태그로, CSS는 선택자와 속성으로, 자바스크립트는 함수와 변수로 세계를 구축합니다. 나아가 세 언어는 저마다 고유한 특성을 지닙니다. HTML은 구조를 맡습니다. 건축가가 건물의 뼈대를 세우듯 HTML은 웹 페이지의 기본 구조를 만듭니다. CSS는 스타일을 맡습니다. 화가가 캔버스에 색을 입히듯 CSS는 웹 페이지에 시각적 아름다움을 더합니다. 자바스크립트는 기능을 맡습니다. 작곡가가 음표로 멜로디를 만들듯 자바스크립트는 웹 페이지에 생동감을 불어넣습니다. 시의 운율, 비유, 이미지가 어우러져 하나의 시를 완성하듯 세 언어는 서로 긴밀히 연결돼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이 과정은 그 자체로 순수한 창작 행위죠.
「새로운 질서」에서 ‘선생님’으로 불리기를 꺼린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2018~21년)이나 홍익대학교(2022년)와 어깨동무하기도 하는 만큼 「새로운 질서」는 누군가에게 또 다른 학교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물론 어느 정도 정해진 커리큘럼이 있고, 제가 뭔가 알려드리는 자리지만, 그 과정에서 저 또한 참여자(일명 ‘새로운 질서의 친구들’)에게 배우는 바가 적지 않거든요. 학교임에도 선생과 학생의 구분이 흐릿한 학교인 셈이죠. 그래서 ‘선생님’이나 ‘교수님’ 같은 직함을 빼고 서로를 그저 이름으로 부릅니다. ‘님’까지 빼고 “슬기, 안녕하세요? 어떻게 지내셨어요?”처럼요. 누군가와 관계를 시작할 때는 호칭을 정하는 일이 중요하죠. 특정한 호칭을 부르는 순간 특정한 관계에 놓입니다. 일종의 위계가 만들어지죠. 이런 위계는 효율적으로 의사소통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특히 「새로운 질서」에서는요.
조셉 코수스의 대표작 「하나이면서 셋인 의자」를 본받은 「하나이면서 셋인 웹 브라우저」가 특히 재미있습니다. 「하나이면서 셋인 의자」는 실물 의자, 의자 사진, 의자에 관한 정의로 이뤄져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이면서 셋인 웹 브라우저」에서 실물 웹 브라우저는 어디에 있나요?
음… 해당 제품, 즉 「하나이면서 셋인 웹 브라우저」를 무엇으로 실행하나요?
본인이 기꺼이 광고판을 자처하고 싶은 브랜드, 비밀이 아니라면 알려달라.
예상했을지 모르겠지만 민구홍 매뉴팩처링이다. 티셔츠를 제작하는 데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갖추지 못한 또 다른 전문성과 섬세함이 필요하다. 혹시 함께할 동업자를 추천해줄 수 있다면 감사하겠다. 티셔츠를 제작하지 않더라도 생각지 못한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아이템을 빠뜨렸다. 속옷과 양말은 어떤 브랜드의 제품인가?
대개 유니클로다. 특정 국가의 브랜드를 고집한다기보다 그저 집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매장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아이템인 만큼 조금이라도 해지면 손쉽게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단, 무슨 일이 있어도 페이크 삭스나 발목 양말은 신지 않는다.
2015년 열세 번째 ‘시청각 문서’로 발표한 「회사 소개」 외에도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각인시킨 작품은 시적 연산 학교 전시 웹사이트인 «SFPC에서 소개하는 SFPC»(School for Poetic Computation Presents Society for Power Control, 2016)였다. 이 또한 전시 홍보 겸 온라인 전시의 성격을 띠는데,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하다.
이 웹사이트는 그 자체로 전시 작품이기도 했는데, 주된 목적은 곧 열릴 학교 전시를 알리는 것이었다. 추억을 더듬어보면, 마련된 콘텐츠는 목적, 장소, 일시 등 전시 개요와 참여자의 이름과 약력뿐이었고, 작품명도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홍보 기간까지 고려했을 때 작업 기간은 일주일 정도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들을 그럴듯하게 엮어 이야기를 만들 에디터십이 필요했다.
우선 학교명의 두문자어(SFPC)에서 착안해 ‘전력 제어 협회(Society for Power Control, SFPC)’라는 임시 단체를 설립했다. 컴퓨터를 활용한 모든 작품이 결국 전력을 제어한 결과물이었으니까.
콘텐츠가 많지 않으므로 웹사이트는 한 페이지로 제한하고, 스크롤을 통해 콘텐츠를 열람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화면을 크게 둘(인덱스 섹션, 세부 섹션)로 나눈 뒤 모든 하이퍼링크에는 무작위로 흔들리는 애니메이션을 부여하고, 관람객이 하이퍼링크에 마우스 커서를 올리면 흔들림이 멈추고, 클릭하면 해당 콘텐츠로 스크롤이 이동하는 시나리오를 제안했다. 관람객에게 웹 브라우저상에서 전력을 제어하는 경험을 제공하려는 의도였다. 한편, 모든 콘텐츠는 가운데로 맞춰져 있는데, 화면 사방에서 가운데로 전력이 집중된 상태를 반영한 결과라 우기려 했다. (이렇듯 콘셉트는 나중에 만들어지기도 한다.) 타임스 뉴 로먼(Times New Roman)은 유별난 웹 폰트보다 기술적으로 안정된 웹 안전 폰트(Web Safe Font)를 사용하고픈 취향이 반영된 결과다. 제한된 시간에 제한된 콘텐츠만으로 콘셉트와 기능을 엮은 결과물이라 자부한다.

참여자들은 모두 마음에 들어 했지만, 문제는 생각지 못한 데 있었다. 학교에서는 조금 더 ‘일반적인’ 결과물을 원했던 것 같다. 특히 단체명을 정하면서 자연스럽게 떠올린 전시명인 ‘SFPC에서 소개하는 SFPC’(SFPC Presents SFPC)에 고약한 구석이 있다고 여긴 것 같다. 느닷없이 참여자 대표로서 서툰 영어로 학교를 설득하는 일이 조금 고됐지만, 결국 처음 의도를 살릴 수 있게 됐다. 덕분에 영어 작문과 회화 실력도 부쩍 늘었고.
‘100세 시대’를 맞아 3대째 이어온 요식업을 아들 내외에게 물려주고,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려 합니다. 일단 저희 식당 메뉴판을 다시 디자인해보고 있는데, 추천해주실 만한 책이 있을까요?

우선 그래픽 디자인 규칙을 배우셔야겠죠? 그 뒤 『이제껏 배운 그래픽 디자인 규칙은 다 잊어라. 이 책에 실린 것까지.』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책에 실린 규칙을 잊으실 수 있을 때까지요. 아침달의 블로그에 실린 소개를 참고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이 책에서 디자인 작업에서의 ‘문제 (재)설정’의 중요성을 피력한다. 우선 어떤 문제가 제대로 된 질문을 하는지, 아니라면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고 설정하는 게 어떤 문제에 대한 답을 내는 일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원칙에 부합하거나 위반하는 자신의 여러 작업을 소개한다. 문제 (재)설정이 디자인에서만 중요하겠는가? 아니다. 삶의 많은 부분에서, 특히 어떤 예술 분야에서든지 중요하다. 이는 우선 예술의 수신자-상대를 인지한다는 의미인 동시에 자신의 관점을 재고해보는 일이고, 자신만의 위트에 신선도를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과정이다.
인터넷 공유기로 이뤄진 ‘오가사와라 키트’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을지로에 직접 방문할 수 없는 한국 또는 해외의 참가자들에게 우리는 오가사와라 키트를 보냈다. 구글이나 네이버 등 일반적인 웹으로 진입하기 직전에 사용자를 다른 배에 태우는 일이라 생각한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해적단 사이에서 ‘오가사와라 키트’로 불린 인터넷 공유기는 이제껏 별 고민 없이 접속해온 인터넷에 가시적인 관문을 만드는 장치였다. 즉, 해적단 웹사이트에서 참여 작가들의 활동을 열람하려면 인터넷 공유기를 설치한 뒤 특정 와이파이(ogasawara)에 접속해 일종의 인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 공항이나 스타벅스 같은 공공장소에서 인터넷을 사용해본 적이 있는 사람은 익숙할 것이다. 한편, 인증 절차가 다소 복잡하다는 점(방문자는 단계마다 질문을 받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면 웹상에서 올바른 답변을 찾아내야 한다.)은 보물 상자의 잠금장치를 푸는 일과 비슷하다.
오늘날 웹은 이미 일상이 됐다. 웹 브라우저는 냉장고 패널이나 자동차 대시보드에까지 탑재된다.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생각지 못한 순간과 맞닥뜨리면 자연스러움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인터넷 기술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려는 여러 분야의 시도는 대개 웹사이트 자체에만 집중한다. 이는 비단 미술계뿐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오가사와라 키트는 웹사이트 이전에 인터넷에 접속하는 일 자체를 환기해보려는 장치이기도 하다. 물론 누구나 이용할 수 없다는 점에서 느슨하게 연결된 서로를 확인하는 징표 역할 또한 수행한다.
민구홍 매뉴팩처링 공식 웹사이트 속도가 제법 빨라진 듯합니다.
정확합니다. 2015년부터 호스팅 업체로 미국의 드림호스트(Dreamhost)를 사용하고 있는데, 미국 서부의 오레곤에 있던 데이터 센터를 한국과 더 가까운 싱가포르로 옮기고, 여기에 클라우드플레어(Cloudflare)의 네임서버까지 사용했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 결과 200밀리초에 가까웠던 핑 속도가 100밀리초 미만으로 감소했습니다.
책을 멘탈 푸드로 꼽는 분들도 계신데, 이 말에 동의하시나요?
사람마다 다르겠죠. 멘탈 푸드가 정신에 도움이 되는 무엇이라면, 책을 만드는 입장에서는 동의하기 어려워요. 저한테 책을 읽고, 보고, 만지고 하는 건 아무래도 일의 범주 안에 있으니까요.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온갖 책과 씨름하다가 퇴근한 뒤에는 웬만하면 책은 더 이상 대하고 싶지 않아요. 책을 만드는 게 즐거운 일이긴 해도 늘 옥수수수염차만 마실 수는 없잖아요. 여덟 시간 동안 책을 만들면서 한쪽으로 기울어진 정신은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이나 스릴러 영화, 민구홍 매뉴팩처링 같은 것으로 바로잡죠.
2021년 현재 HTML의 표준 명세인 HTML5에서 사용되는 태그 113가지나 됩니다. 이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태그는 무엇인가요?
<a> 태그입니다. 콘텐츠에 하이퍼링크를 만들어 다른 콘텐츠와 잇는 태그로, 웹을 웹답게 만드는, 웹의 산소 같은 존재죠. 인쇄물과 웹사이트를 구별짓는 대표적인 태그이기도 해요. 인쇄물에서 각주, 방주, 미주에 불과했던 콘텐츠는 <a> 태그 덕에 웹에서 새로운 지위를 획득했으니까요. a는 ‘닻(anchor)’를 뜻해요. 여러 해석이 있지만, 저는 웹사이트에서 하이퍼링크를 클릭했을 때 그곳에 닻을 내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고 생각해요.
2015년부터 “안그라픽스를 거쳐 워크룸에 기생하는 1인 회사”인 민구홍 매뉴팩처링(Min Guhong Manufacturing)을 운영한다. 2019년부터는 “회사, 즉 민구홍 매뉴팩처링 자체를 소개하는 데 주력한다.” 회사에도 변화가 있는가? 얼마 전에는 인턴이 입사했다고 들었다.
네덜란드 아른험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는 한국인 학생으로, 회사에는 두 번째 인턴이다. (첫 번째 인턴은 영광스럽게도 현재 누구보다 활발히 활동하는 송예환 씨였다.) 학교에서는 졸업 학기를 인턴십으로 갈음한고 한다. 인턴십이 실무 현장을 경험해보는 기간일 뿐 아니라 수업의 연장인 만큼 인턴에게는 다음과 같은 임무를 제시했다.
인터넷, 논문, 일간지, 단행본, 잡지, 주위의 소문 등을 통해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관해 조사한 사실을 바탕으로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어떤 회사인지 규정하고, 그에 걸맞는 로고를 제안한다. 이 과정에서 로고는 납작한 그래픽만으로 제한하지 않는다. 즉, 로고는 규정한 바에 따라 덜 납작한 그래픽, 시, 소설, 만화, 음악, 영상 등이 될 수 있다. 단, 로고는 어떤 대상을 상징하거나 은유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목적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디자이너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한편으로는 얼마간 수행적인 이 작업은 네덜란드 밖에서만큼은 가장 까다로운 클라이언트인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제안을 납득할 때까지 계속된다. 작업의 진행 상황을 정리한 결과물은 인쇄물, 웹사이트 등으로 출판한다. 이는 「인턴 일지」 작성을 포함해 민구홍 매뉴팩처링 인턴으로서 수행할 업무의 고갱이다.
인턴은 자신이 조사한 사실을 바탕으로 로고 없는 회사에 여러 매체를 통해 로고를 제안하면서 여러 매체를 다뤄보고 동시에 (신출내기 그래픽 디자이너에게는 어쩌면 숙명인) 거절당하는 일에 익숙해진다. 한동안 원격으로 일하던 인턴은 코로나 때문에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갑자기 귀국하게 됐고, 회사뿐 아니라 동시에 회사가 기생하는 워크룸에서 한 달 동안 일했다. 월급은 워크룸에서 받았다. 어찌 보면 이중 기생인 셈인데, 그 덕에 인턴은 앞으로 이력서에 두 회사, 즉 민구홍 매뉴팩처링과 워크룸에서 일했다는 경력을 기입할 수 있게 됐다. 지금은 업무 차 제주도로 출장을 간 상태다. 좋은 일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회사나 인턴 모두 코로나 덕에 생각지 못한 경험을 하게 됐다.
한편, 몇 달 전에는 이름을 밝힐 수 없는 회사 두 곳에서 제법 파격적인 조건으로 인수 제안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당분간은 워크룸에 기생하기로 했다. 회사의 궁극적인 목표가 운영자, 즉 나의 행복이기 때문이다. 두 제안 모두 수락했을 때 불행해지지는 않겠지만, 지금보다 극적으로 더 행복해진다는 보장이 없었다. 방탄소년단의 제이홉도 「Answer: Love Myself」에서 읊지 않았던가.
오, 지금 날 위한 행보는 바로 날 위한 행동 / 날 위한 태도 / 그게 날 위한 행복 / I’ll show you what I got / 두렵진 않아 그건 내 존재니까 / Love mysel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