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하는 질문

일러두고픈 말이 있다면?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2015년 이래 진행한 길고 짧은 인터뷰를 꼼꼼히 정리한 뒤 다시 무작위로 늘어놓은 「자주 하는 질문」을 통해 회사 또는 운영자에 관한 궁금증이 모쪼록 해소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단, 질문의 시기에 따라 현재와 다른 사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편, 질문의 어조에 따라 언급한 인물에 대한 존칭을 생략하기도 했습니다. 「자주 하는 질문」을 섭렵한 뒤에도 궁금증이 도무지 해소되지 않는다면 [email protected] 앞으로 소상히 말씀해주세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인정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단, 답장은 이메일 대신 언젠가 「자주 하는 질문」에서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앞선 사례는 콘텐츠와 기술이 온라인 전시를 기획할 때 참고할 만하겠다. 그 밖에 프로젝트에서 웹사이트를 적극적으로 이용한 사례를 소개한다면?

웹사이트의 아름다움은 실용적으로 작동할 때 배가된다. 예컨대 웹사이트가 처음부터 프로젝트를 이끄는 경우다. 워크룸에서 패션 브랜드 디스이즈네버댓(thisisneverthat)과 작업한 ‹디스이즈네버디스이즈네버댓›(thisisneverthisisneverthat, 2020)은 사실 처음에는 예정에 없었다. 웹사이트는 단행본에 실을 3,000여 가지 항목의 정보를 정리하는 도구였다. 이미지를 포함해 제품명, 제품 코드, 종류, 색, 재질 등 여러 정보를 정리하기에 엑셀이나 구글 스프레드시트를 사용하면 데이터를 재가공하는 데 불편함이 따랐다. 처음에는 프런트엔드가 없는, 데이터베이스만을 관리하는 헤드리스(headless) CMS 같은 형태였는데, 데이터베이스가 쌓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정식 웹사이트로 확장됐다. 이와 같이 웹사이트가 전통적인 인쇄물의 역할만 수행한다면, 이는 웹사이트가 지닌 수많은 가능성을 포기하는 꼴이다.

민구홍 매뉴팩처링, ‹디스이즈네버디스이즈네버댓›, 2020, 웹사이트. 사진 제공: 작가

이번 ‹타이포잔치 2021› 작업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도록에 실릴 콘텐츠 또한 일차적으로 작업 도구로 구축된 웹사이트상에서 편집됐다.

민구홍 매뉴팩처링, ‹타이포잔치 2021 예고›, 2021, 웹사이트. 사진 제공: 작가
민구홍 매뉴팩처링, 워크룸, ‹타이포잔치 2021›, 2021, 웹사이트. 사진 제공: 작가

김익현, 박가희, 이미지가 기획한 «우리는 바다에서 왔다»(2021)에서는 ‘오가사와라 키트’로 부르는 와이파이 공유기를 활용했다. 우선 참여자의 이름, 거주 지역,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 등을 취합해 분석하는 모객용 웹사이트를 만들고, 국내 신청자에게는 특정 링크를, 해외 신청자에게는 ‘오가사와라 키트’를 발송했다. 공항이나 스타벅스에서 인터넷에 연결하는 경험에서 착안해 본 웹사이트는 오가사와라 키트를 통해서만 접속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웹사이트 이전에 인터넷에 접속하는 행위 자체를 다뤄보려 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 «우리는 바다에서 왔다», 2021, 웹사이트. 사진 제공: 작가

한편, 회사에서 ‘여러 방식으로 회사, 즉 민구홍 매뉴팩처링 자체를 소개하는 일’을 주 업무로 삼는 까닭, 다시 말해 ‘소개’에 집착하는 까닭이 궁금하다.

오늘날 분야를 떠나 모든 생산 활동의 기저에는 크든 작든 생산 주체, 즉 자신을 소개하고픈 소중하고 아름다운 욕망이 자리한다. 이 점에서만큼은 이우환 선생이나 버질 아블로(Virgil Abloh)나 마포평생학습관에서 개인전을 연 미술가나 별다를 게 없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그 욕망에 순진하리만큼 충실하려 한다. 단지 회사로서 욕망을 조금 더 의식하고 양식화해 드러낼 뿐이다. 그렇게 회사 소개는 여러 방식으로 이뤄진다. 때로는 자연스럽게, 때로는 노골적으로, 때로는 느닷없이, 때로는 누군가의 명성에 기대, 때로는 이렇게. 누군가에게 의뢰받은 바를 수행하는 일 또한 넓게 보면 회사를 소개하는 일환인 셈이다. 구글을 비롯해 강이룬 선배, 소원영 씨, 양장점 등과 함께 만든 구글 폰트 한국어 웹사이트에서도 중요한 건 웹사이트 자체보다 웹사이트 하단에 명시된,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구글 폰트의 친구라는 사실이다.

전 세계 검색 엔진 시장에서 약 92퍼센트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검색 엔진의 친구가 됐다는 사실은 명절마다 친척 어르신들께 충분히 자랑할 만하다.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싶습니다. 대관절 웹사이트란 무엇인가요?

글쎄요. 어쨌든 우리는 그곳을 ‘웹사이트’라 부릅니다. 중세 수도사들이 양피지 위에 겹겹이 글을 써내려간 팔림프세스트(palimpsest)처럼 픽셀 위에 끊임없이 의미를 덧입혀왔죠. 바야흐로 터치나 클릭 한 번으로 세상의 거의 모든 정보가 눈앞으로, 손바닥 안으로 들어오는 시대입니다.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의 『변신』(Die Verwandlung) 속 그레고르 잠자처럼 우리는 어느 날 아침 또 다른 존재로 변한 건 아닐까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으로 뉴스 사이트에서 밤사이 일어난 일을 복기하고, 출근길 지하철에서는 날씨 애플리케이션으로 오늘의 기온을 확인하고, 점심시간에는 맛집을 검색하고, 퇴근한 뒤에는 넷플릭스나 유튜브에서 영화 한 편으로 하루를 마무리하죠. 그럼에도 그 언저리에 늘 웹사이트가 있음을 인식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민구홍 씨와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계획이란 건 언제나 수정될 수 있지만, 일단 2021년 매달 더 북 소사이어티(The Book Society) 웹사이트에 회사를 소개하는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위고에서 출간될 『아무튼, HTML』이라는 책을 쓰고 있고요. 그래픽 디자이너 겸 교육자 데이비드 라인퍼트(David Reinfurt)『A New Program for Graphic Design』을 번역하고 있습니다. 번역은 생각보다 길어질 것 같아요.

올해는 타이포잔치, 옵/신페스티벌, 서울레코드페어, 서울국제도서전 같이 미술계나 디자인계에 굵직한 행사가 적지 않은데, 여러 방식으로 기술을 지원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몇몇 기업에서 함께 추억을 쌓아보자는 연락을 받았어요. 재미있게도 탐정 사무소 두 곳에서도 연락을 받았죠. 거의 동시에요. 한편,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친정이라 할 수 있는 시청각에서 회사를 소개하는 행사를 준비하고 있고요. 그저 많은 사랑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졸업생입니다. 혹시 직업병 같은 게 있나요?

이따금 웹 조사기(Web Inspector)를 실행해 웹사이트의 코드를 들여다보게 됩니다. 코드에서 주석으로 처리된 메시지를 찾아보는 게 또 다른 즐거움이거든요. 나아가 사물, 인물, 공간, 음악 등 어떤 인상적인 대상을 마주하면 머릿속 샌드박스에서 웹사이트로 치환해보기도 해요. 아주 단순한 형태부터 아주 복잡한 형태까지요. 직업병보다는 습관에 가깝지 않을까 해요. 사무실을 떠나면 컴퓨터나 스마트폰은 별로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데, 오히려 이쪽이 직업병에 가깝습니다. 증상이 악화하다 보니 몇 달 전에는 아예 집에서 컴퓨터뿐 아니라 컴퓨터와 비슷한 물건은 죄다 치워버렸죠. 웬만하면 스마트폰도 그만 쓰고 싶어요.

현재 DDDD에서 「바이러스 시뮬레이터」(2020)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기존 제품이 회사를 소개하는 데 중점을 뒀다면, 이번 제품은 코로나19라는 신종 감염병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민구홍 매뉴팩처링에도 변화가 있었나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회사 소개는 여러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때로는 자연스럽게, 때로는 노골적으로, 때로는 느닷없이, 때로는 누군가의 명성에 기대. 이 제품은 회사를 소개하는 일 또한 수행합니다. 제품 속 세계에서 꽃, 나무, 돌멩이, 인간, 체리 사이에 민구홍 매뉴팩처링(Min Guhong Mfg.)이 놓였을 뿐이지만요. 코로나19 이후에는 특히 오프라인 전시가 취소된 미술관 등에서 제품이나 기술 지원에 관한 문의가 늘었습니다. 1인 회사인 탓에 응대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민구홍 매뉴팩처링 이메일 응대 지침」에 따라 성심성의껏 임하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아른험에서 원격으로 근무하던 한국인 유학생 인턴이 귀국해 회사의 숙주인 워크룸에서 한 달 동안 지내기도 했죠. 지금은 제주도로 출장을 간 상태입니다.

‘푹신’(Fuchsine)을 처음 본 건 2018년 인사미술공간에서 열린 『픽션-툴』(Fiction-tool) 전시장에서였다. 로비에 설치된 전시용 아카이브 웹사이트 속에서 푹신은 전시에 관한 논평이나 해설, 또는 야릇한 말을 중얼거리며 하루하루 몸집을 키워갔다. 그 뒤에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견학하는 어드벤처 게임에서, 미술가 박현정의 전시에서, 난지미술창작레지던시와 관련한 웹사이트 등에 등장해 중얼거림을 이어갔다. 마젠타색 몸에 눈인지 코인지 입인지 알 수 없는 생략 부호(…), 평양 냉면을 좋아하고, 발렌시아가의 대표적 어글리 슈즈인 트리플 S를 신는 게 꿈이라는 이 생명체의 정체는 무엇인가?

‘분홍이’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불리는 푹신은 아득히 먼 옛날 미술 평론가 겸 기획자 이한범 씨가 기획한 아카이브 전시 『픽션-툴』 웹사이트에서 태어났다. 웹사이트 자체가 또 하나의 전시였으므로 웹사이트상의 전시를 해설할 도슨트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시 관련자가 아닌 제3자, 즉 관람객의 입장에서 말이다. 그렇게 웹사이트 화면을 돌아다니며 클릭할 때마다 메시지를 출력하는 기능이 탑재됐다. 그리고 전시 전체 기간을 백분율로 계산해 하루에 웹사이트 화면 높이의 일정 비율씩 커지도록 했다. 전시 종료일에 화면을 가득 채우는 모습을 의도한 것이기도 하다. 이한범은 전시 리플릿에 푹신에 관해 이렇게 썼다.

이제 여러분은 1층으로 다시 돌아와 한 벽면에 놓인 모니터를 통해 전시장에서 본 작업들의 정리된 정보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아마 남몰래 목록을 더해가고 있을 테니 시간 날 때마다 슬쩍 슬쩍 구경해도 재미가 쏠쏠하겠죠? 잠깐만요, 그런데 화면에 떠다니는 귀여운 녀석이 보이시나요? 커서로 쫓아가 (모바일 디바이스라면 손가락으로!) 건드리고 클릭하면 여러분께 말을 건넬지 모릅니다! 이 친구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만든 신제품입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웹이라고 하는 공간에 기반해 그 시스템의 기술을 이용한 기생형 프로그램을 만듭니다. 말하자면 직접 어떤 공간을 새로이 만들지 않고, 기존에 있는 공간에 달라붙어 그것을 비틀거나 변형시키는 방식으로 기능하는 거죠.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심각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우리를 유쾌하게 해주는 장난스러운 개구장이에 더 가깝죠. 화면의 저 분홍색 친구는 절대 여러분을 해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전시 기간 하루가 달리 몸집이 불어난다고 하니 조금 걱정이 되긴 하네요.

모양은 UX 분야에서 전통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생략 버튼’(ellipsis button)에서 따왔다. 대개 클릭하면 두드러질 필요 없는 부가적인 기능이나 정보를 드러내는데, 그 속성이 도슨트의 역할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곡률은 이후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 개발할 것까지 고려해 여러 모바일 운영 체제 아이콘 곡률의 평균값(전체 크기의 약 22퍼센트)을 지정했다.

이후 잠시 현실로 도피했다가…

지금은 다시 웹상에서 중얼거림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난지미술창작레지던시의 큐레이터 정시우 씨와 코디네이터 정지원 씨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이제 슬슬 마무리를 할 때가 된 것 같다. 일곱 살 무렵부터 웹을 사용하고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오래 전부터 웹을 사용해온 소비자, 크고 작은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한 생산자, 웹 기술을 가르치는 교육자로서 앞으로 미술 또는 디자인계에서 수행할 만한 과제를 제시한다면?

2001년에 열린 «코리아 웹 아트 페스티벌 2001» 이후 20여 년이 지났다. 그 사이 미술을 둘러싼 웹 생태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되돌아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일단 «웹-레트로» 전시 웹사이트부터 다시 운영하면 어떨까? 웹을 둘러싼 생산자를 정리하는 작업도 필요하겠다. 느닷없는 흐름에 휩쓸리듯 편승한 생산자도 있겠지만, 그 전부터 웹을 통해 이런저런 시도를 해온 사람도 적지 않다. 그들이 만든 지형도는 분명히 기존 미술 또는 디자인의 지형도와는 또 다른 모습일 것이다. 게다가 이 작업의 결과물은 누구나 어디서든 쉽게 열람할 수 있는 매체, 즉 웹사이트인 편이 좋겠다. 여기에 단순한 포럼 형태여도 좋으니 담론을 만들어내는 공간도 마련되면 좋겠다. 1996년 이래 수많은 생산자의 성공과 실패를 축적해온 뉴 뮤지엄(New Museum)의 아티스트 레지던시인 리좀(Rhizome)이 좋은 보기다. 사실 이 작업은 뜻이 맞는 몇몇 생산자와 이야기를 시작한 상태다. 혹시 관심 있는 생산자와 소비자는 [email protected] 앞으로 메일을 보내주시라.

뉴 뮤지엄의 아티스트 레지던시 리좀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같은 국공립 미술관과 작업할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외부에서 작업한 웹사이트에 대한 서버 차원의 지원이 미비한 편이었다. 관공서 웹사이트는 대부분 자바로 개발된 전자 정부 표준 프레임워크를 기반으로 제작해야 하는데, 미술 및 디자인계에서 자바를 다룰 줄 아는 전문가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파악하기로는 아무도 없다. HTML 태그도 의미론적으로 사용되지 않은 편이고, 기본적으로 작품 이미지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대체 텍스트 또한 마련돼 있지 않다. 이는 즐거움 이전에 접근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학교에서도 웹에 관한 커리큘럼을 적극적으로 마련하면 좋겠다. ‹새로운 질서› 친구들 200여 명 가운데 미술 및 디자인 전공생이 30퍼센트 정도로, 적은 비율은 아니다. 그들 입장에서는 추가로 과외를 받는 셈인데, 그들에게 코딩 수업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물어보면 워드프레스 템플릿을 수정해보거나 특정 웹사이트를 그대로 재현해보는 정도에서 그친다고 한다. 한두 사람이 모든 경험과 실패를 독점하는 상황은 별로 건강하지 않다. 이를 나눌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옳겠다. 팀 버너스리 경이 강조한 웹의 정신이 ‘개방, 참여, 공유’ 아니던가. 커리큘럼을 마련하는 게 어려운 상황이라면 외부 강좌와 연계하는 방식도 있겠다.

온라인에서 열람하는 작품과 오프라인 작품의 차이는 얼마나 극복돼야 할까?

차라리 처음부터 작품이 온라인과 오프라인, 두 가지(branch)로 존재할 수 있는 여지를 염두에 두면 어떨까? 또는 작품의 원본은 온라인에 두고, 작품이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번역되는 과정이 오프라인 작업의 요소가 되는 건?

2015년 열세 번째 ‘시청각 문서’로 발표한 「회사 소개」 외에도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각인시킨 작품은 시적 연산 학교 전시 웹사이트인 «SFPC에서 소개하는 SFPC»(School for Poetic Computation Presents Society for Power Control, 2016)였다. 이 또한 전시 홍보 겸 온라인 전시의 성격을 띠는데,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하다.

이 웹사이트는 그 자체로 전시 작품이기도 했는데, 주된 목적은 곧 열릴 학교 전시를 알리는 것이었다. 추억을 더듬어보면, 마련된 콘텐츠는 목적, 장소, 일시 등 전시 개요와 참여자의 이름과 약력뿐이었고, 작품명도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홍보 기간까지 고려했을 때 작업 기간은 일주일 정도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들을 그럴듯하게 엮어 이야기를 만들 에디터십이 필요했다.

우선 학교명의 두문자어(SFPC)에서 착안해 ‘전력 제어 협회(Society for Power Control, SFPC)’라는 임시 단체를 설립했다. 컴퓨터를 활용한 모든 작품이 결국 전력을 제어한 결과물이었으니까.

콘텐츠가 많지 않으므로 웹사이트는 한 페이지로 제한하고, 스크롤을 통해 콘텐츠를 열람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화면을 크게 둘(인덱스 섹션, 세부 섹션)로 나눈 뒤 모든 하이퍼링크에는 무작위로 흔들리는 애니메이션을 부여하고, 관람객이 하이퍼링크에 마우스 커서를 올리면 흔들림이 멈추고, 클릭하면 해당 콘텐츠로 스크롤이 이동하는 시나리오를 제안했다. 관람객에게 웹 브라우저상에서 전력을 제어하는 경험을 제공하려는 의도였다. 한편, 모든 콘텐츠는 가운데로 맞춰져 있는데, 화면 사방에서 가운데로 전력이 집중된 상태를 반영한 결과라 우기려 했다. (이렇듯 콘셉트는 나중에 만들어지기도 한다.) 타임스 뉴 로먼(Times New Roman)은 유별난 웹 폰트보다 기술적으로 안정된 웹 안전 폰트(Web Safe Font)를 사용하고픈 취향이 반영된 결과다. 제한된 시간에 제한된 콘텐츠만으로 콘셉트와 기능을 엮은 결과물이라 자부한다.

민구홍 매뉴팩처링, «SFPC에서 소개하는 SFPC», 2016, 웹사이트. 사진 제공: 작가

참여자들은 모두 마음에 들어 했지만, 문제는 생각지 못한 데 있었다. 학교에서는 조금 더 ‘일반적인’ 결과물을 원했던 것 같다. 특히 단체명을 정하면서 자연스럽게 떠올린 전시명인 ‘SFPC에서 소개하는 SFPC’(SFPC Presents SFPC)에 고약한 구석이 있다고 여긴 것 같다. 느닷없이 참여자 대표로서 서툰 영어로 학교를 설득하는 일이 조금 고됐지만, 결국 처음 의도를 살릴 수 있게 됐다. 덕분에 영어 작문과 회화 실력도 부쩍 늘었고.

다시 첫 번째 질문으로 돌아와서 묻고 싶습니다. 워크룸과의 관계를 가리키기 위해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소개할 때 ‘기생’한다는 표현을 하는데요. 워크룸이 출판사이기에 이 표현은 마치 웹/온라인과 실재/오프라인의 관계를 이해하는 민구홍 님의 용어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워크룸이나 민구홍 님과 클라이언트와의 관계에서뿐 아니라 (본인의 작업을 지칭하는 단어로 말하자면) “제품/생산물”에서 웹/온라인과 실재/오프라인에 대한 이러한 이해가 어떻게 나타난다고 생각하나요?

‘제품’은 그저 ‘회사’를 표방하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기술을 거친 결과물을 가리키는 적당한 어휘를 고민한 결과입니다. 여러 제품을 통해 다뤄온 매체 가운데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특히 사랑하는 웹사이트는 특성상 그 자체로 대량으로 복제되고 소비되는 만큼 사명(社名)에 당당히 자리한 ‘매뉴팩처링’(manufacturing)의 본래 의미(물질 또는 구성 요소에 물리적이거나 화학적인 작용을 가해 새로운 제품을 대량 생산하는 일)와도 상통한다고 생각했습니다.

1인 회사인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원활하게 운영하려면 결국 무언가에 기댈 수밖에 없는 만큼 ‘기생’이라는 어휘에서는 회사의 이런 운명이 가감 없이 드러납니다. 이는 웹사이트가 지닌 속성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웹에서는 거의 모든 일이 웹 브라우저로 수렴하죠. 웹 브라우저를 거치지 않으면 웹사이트는 사용자에게 도달하지 않습니다. 요컨대 웹사이트는 태생적으로 웹 브라우저에 기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허약함과 불완전함이 웹사이트라는 매체를 계속 탐구해볼 가치를 만들어내고요.

한편,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2022년 2월 22일 숙주를 워크룸에서 안그라픽스의 정체불명 독립 사업부 안그라픽스 랩(Ahn Graphics Lab, AG Lab)으로 옮겼습니다. 앞선 답변과 관련해 저에게는 ‘디렉터’라는 직함이 하나 더 추가됐죠. 숙주는 달라졌지만 『2022부산비엔날레』(Busan Biennale 2022)『거의 정보가 없는 전시』(An Exhibition with Little Information)처럼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필요하다면 워크룸과도 언제나 함께입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기생 방식도 공생에 가깝게 진화하는 셈이고, 이는 ‘기생’이라는 어휘를 사용하기로 마음먹은 무렵부터 고려한 바이기도 합니다.

당신에게 최정호란 누구인가?

여러모로 고마운 사람이다. 최정호에 관한 책을 만들어서 월급을 받았고, 최정호가 만든 서체로 사람들에게 「(웃음)」도 드렸다.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졸업생입니다. 웹사이트상에서 이뤄지는 타이포그래피만의 특징이 있을까요?

2022년 초에 운 좋게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에 직접 가서 강연할 기회가 있었는데, 여기서 할머니, 딸, 손녀가 함께한 사진을 보여주며 웹사이트는 책의 자녀, 즉 진화한 종이 책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할머니가 종이 책이라면, 딸은 웹사이트고, 손녀는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볼 수 있는 또 다른 무엇이라고요. 웹사이트는 진화한 종이 책답게 지면보다 공간적인 제약이 덜한 편입니다. 제작 비용에 영향을 미치는 판형이나 쪽수 같은 개념이 흐릿하니까요. 제 경험상 지면용 타이포그래피를 위한 수치를 웹사이트에 그대로 적용하면 어딘가 조금 작고 좁고 빽빽한 느낌을 받습니다. 지면의 일반적인 본문 글자 크기인 10포인트를 픽셀로 환산하면 13.5픽셀에 가까운데, 저는 웹 브라우저상에서 기본으로 설정된 본문 글자 크기가 16픽셀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18픽셀이나 20픽셀 이상이 적절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고요. 글줄 사이 공간도 지면보다 조금 더 넉넉한 게 좋다고 생각해요. 글이 긴 경우 문단과 문단을 들여쓰기가 아닌, 한 줄 공백으로 구분하는 것도 그런 이유겠죠. 한편, 웹사이트는 발광하는 화면, 즉 RGB 색상으로 구현되는 만큼 흑백의 대비가 지면보다 큰 편이라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정호 이전의 서체와 차별되는, 또는 발전된 최정호 한글 디자인의 특징은 무엇인가?

잘 모르겠다.

웹사이트를 만드는 데 필요한 비용은 어느 정도가 적절할까? 비용 앞에서는 누구나 숨을 죽이게 되는 만큼 어쩌면 가장 중요한 질문일지 모른다.

일정, 웹사이트의 규모나 필요한 기능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적게는 몇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이 들기도 한다. 작업자마다 요율도 다를 것이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단행본 한 권을 제작하는 데 필요한 전체 비용을 기준으로 삼는 편이다. 기획, 편집, 디자인 같이 매체와 무관한 일뿐 아니라 제작, 유통, 관리 등도 웹사이트를 만드는 일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비용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도메인 구입 비용, 서버를 임대하는 비용, 트래픽이 초과됐을 때 트래픽을 초기화하는 비용 등이다. 모든 프로젝트의 예산이 넉넉한 건 아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고객의 마음을 헤아려 어떤 방식으로든 일이 진행되도록 예산에 적합한 방식을 제안하기도 한다. 대신 ‘회사 소개’라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주업무에 입각해 어떤 방식으로든 회사를 소개해달라고 주문하는 식이다.

조금 감성적인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워크룸을 떠나는 마당에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워크룸은 무엇인지, 또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단순히 ‘직장’이라 부르고 싶지 않을 만큼 워크룸은 제게 그 자체로 너무나 각별하고 소중하기에 함부로 ‘떠난다’고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문장을 완성하는 순간 실제로 그렇게 될 것 같아서요. 남은 한 달 동안 제가 관여해온 일을 정리하는 한편, 완벽한 표현을 찾을 때까지 김형진 선배의 진심을 담은 우스갯소리 “어색함 없이 서로 착취하는 관계”를 어떤 방식으로든 이어나가고 싶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첫째는, 운영자의 근무지에 기생하는, 다시 말해 근무지의 동산과 부동산을 무단 이용하는 운영 방식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는, 실제로도 그렇지만, 형식적으로도 운영자가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취미로 삼을 수 있는 플랫폼을 마련해줍니다. 둘째는 리코타 치즈를 중심으로 한 음식 사업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리코타 치즈는 제작하기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고, 맛있는 데다가 아주 하야니까요. 물론 계획이란 게 언제나 그렇듯 수정되거나 무기한 연기될 여지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제 온라인 전시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오프라인 전시가 온라인으로 치환되는 과정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까?

2021년 초겨울쯤 시청각 랩에서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회사 소개’라는 제목의 전시를 마련한다고 가정해 보자. 제한된 공간에서 주목도가 가장 높은 위치에 작품이 놓인다. 작품은 그저 납작할 수도, 납작하면서 움직일 수도, 부피가 있을 수도, 소리나 와이파이 신호처럼 비가시적일 수도 있다. 사람과 그 운동성이 작품이 될 수도 있다. 공간 한 쪽에는 전시와 관련한 정보가 리플릿 같은 형태로 놓인다. 그 옆에는 방명록, 토트백이나 티셔츠 같은 제품이 놓일 수도 있겠다. 소셜 미디어에 전시 정보를 담은 정방형 이미지가 게시되며 전시의 시작과 끝을 알리고, 관람객이 방문한다. 전시장 안에서는 큐레이터나 도슨트가 작품을 소개하거나 질문에 답변하거나 그들과 서로 친목을 다지고, 전시장 밖에서는 전시와 작품에 관한 이야기가 퍼진다. 전시가 끝난 뒤에는 비평문이 실린 도록이 출간되고, 그렇게 전시는 사람들의 추억 속에 놓인다.

온라인 전시에서는 대부분의 일이 웹사이트상에서 일어난다. 작품은 이진수로 이뤄진 데이터로서 웹 페이지에 놓인다. 홈페이지에서 전체 작품을 파악하고, 개별 작품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일뿐 아니라 방명록을 작성하고, 제품을 구입하는 일까지 웹 페이지를 오가거나 한 페이지에서 스크롤을 통해 이뤄진다. 짐을 싸고 공항으로 향하는 순간부터 여행이듯 온라인에서는 오프라인의 비가시적인 경험이 삭제된다. 전시장으로 향할 때의 기대감, 다른 출판물 사이에서 전시 도록을 들춰보는 재미 등은 웹 브라우저의 주소창에 주소를 타자하는 일로 축약된다.

텍스트를 주원료로 삼는 만큼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제품은 한국어만으로 이뤄지거나 한국어를 포함한다. 한국어에 관한 생각이 궁금하다.

그건 내가 한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것처럼 그야말로 우연이다. 한글도 마찬가지다. 한글을 따라다니는 ‘고도로 진화한 문자’ 같은 수식어는 언뜻 바로 손에 잡히지 않는다. 우연에 관해 말하는 건 아무래도 쉽지 않다. 내가 한국어를 좋아하는 건 단지 그게 (HTML, CSS, 자바스크립트처럼) 내가 곧잘 쓸 수 있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한국어와 영어보다는 둘의 문자 체계, 즉 한글과 로마자에 관해 이야기하는 게 나을 듯하다. 몇 년 전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구글 폰트 + 한국어 웹사이트를 만드는 데 참여한 적이 있다. 그 덕에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구글 폰트의 친구가 됐고. 한글은 닿자 열아홉 가지와 홀자 스물한 가지로 이뤄진다. 둘은 서로 조합돼 한 글자가 되고, 그 조합의 합은 물경 1만 7,388가지나 된다. 이런 특징은 한글 폰트를 제작할 때는 물론이고 특히 웹에서 사용할 때 영향을 미친다.

노토 산스(Noto Sans)를 기준으로 로마자 버전은 455킬로바이트지만, 한글 버전은 2.2메가바이트에 달한다. 작은 차이 같지만 브라우저가 폰트를 완전히 내려받는 단 몇 초 동안에는 페이지가 깜빡이며 제대로 표시되지 않는다. 구글은 이 깜빡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심지어 머신 러닝 기술까지 도입했다.

나는 때로는 구글이 이 깜빡임을 완전히 없애는 것과 번역 기술 개선을 통해 언어 민주화를 이룩하는 것 중에 어느 쪽이 먼저가 될지 궁금하다. 영어권 사용자에게는 도시 전설처럼 들릴지 모르겠다. 그런데 웹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일이 일어난다.

기술적인 한계는 어떻게 극복하는가?

웹을 둘러싼 기술은 너무나도 빠르게 발전하므로 하나하나 따라가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이 순간에도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어떤 기술은 폐기된다.

최신 기술을 재빨리 익혀 도입하는 쪽과 드릴이나 호미로 밑바닥을 확장하며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기술을 탐구하는 쪽이 있다면,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후자에 속한다. HTML을 위시한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기술은 앞으로 폐기될 가능성이 적은 까닭이다. 또한, 아무래도 워크룸에 기생하다 보니 그래픽 디자인에서 타이포그래피나 개념에 집중하는 방법론에 익숙하기도 하고,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구글이나 네이버가 아닌 만큼 기술적인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선의 방법을 고안하려 노력한다. 그런데 여러 프로젝트를 경험해본 바로는 대부분의 문제가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기술만으로 무리 없이 해결되는 편이었다. 한계가 명확할수록 특정 부위가 과도하게 커진 근육처럼 재미있는 결과물이 나오기도 한다. 물론 여기에는 사용할 콘텐츠를 제대로 다뤄야 한다는, 즉 제대로 편집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는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는 여전히 잘 알 수 없지만, 그동안 크고 작은 여러 일에 관여해왔다. 무엇보다 일을 시작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바가 있다면?

해결사를 자처하지 않는다. 회의 자리에서는 마치 모든 문제를 능수능란하게 해결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런 기대감도 없지 않고. 그 유혹에 빠지면, 즉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어느 순간부터는 주체할 수 없는 고통이 부풀어오른다. 고객이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요긴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회사의 한계와 특히 잘하는 것을 고객과 나누고, 서로 이해하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질서와 정리 정돈이라는 행동양식이 몸에 익은 것처럼 보인다. 민구홍에게 무질서란 사고(accident)인가? 본인이 접해온 무질서한 상황의 예시나, 이와 같은 상황을 접할 때 어떤 순서로 대책을 세우는지 또는 때로는 세우지 않는지 알려달라.

내가 관심 있는 건 질서 자체가 아닌, 어떤 대상에 질서를 부여하는 과정과 방식이다. 물론 어떤 상황에서는 우스꽝스러워 보일 정도로 지나치게 질서에 집착하지만, 모든 것을 완벽하고 깔끔하게 편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모든 외래어를 순화하려는 국립국어원의 시도가 이를 증명한다. 특정한 원칙을 마련한 뒤 충실히 따르려 해도 해당 원칙을 무너뜨리는, 그래서 옹색한 세칙을 마련할 수밖에 없는, 내가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이 일어나고야 만다. 따라서 우리 집은 물론이고, 내가 일하는 책상과 책상 주변은 질서와는 거리가 멀다. 온갖 콘텐츠와 기술이 뒤섞인 웹처럼, 가깝게는 우리 생활처럼 차라리 엉망진창이 자연스러운 상태임을 인정하는 편이 정신 건강에 이롭다.

웹 디자인에 심취한 계기가 있다면?

열한 살 무렵인 1995년 야후! 지오시티에 첫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사랑하는 친구를 위해서였다. 마룬색 배경에 그를 행복하게 해줄 글과 이미지 사이로 MIDI 배경음악이 흘렀다. 하지만 2009년 야후!에서 지오시티 운영을 종료하면서 이제 그 웹사이트는 내 꿈속에만 있다. 어쨌든 그 이후로, 반드시 웹사이트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HTML, CSS, 자바스크립트를 이용해 나 또는 누군가를 위해 뭔가 만드는 건 내 오랜 즐거움 가운데 하나였다. 내 기준에서 쉽고 저렴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건 20여 년 전에 만든 것과 엊그제 만든 게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는 점이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웹 디자인 에이전시가 아니다.

민구홍에게 웹이란 무엇인가?

한국 나이로 일곱 살 무렵이던 1991년에 처음 컴퓨터를 접했다. 마지막 PC 통신 세대이자 첫 인터넷 세대인데, 웹 1.0 시절부터 소비자와 생산자로서 경험해온 웹은 규정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게 엉망진창이다. 이따금 웹상에는 모든 것이 있다는 환상에 젖곤 한다. 하지만 맛있는 저녁을 먹고 집 앞 경의선숲길을 산책하다 보면 그런 환상은 무참히 무화된다.

스물다섯 살에 만든 웹사이트가 있나요?

너무 많아서 하나도 기억 나지 않아요. 열한살 무렵 처음 웹사이트를 만든 이래 웹사이트를 만드는 게 일종의 취미가 된 터라 사실 대학교 졸업 작품까지 웹사이트로 만들었죠. 물론 보기 좋게 반려당했지만요.

예술, 패션, 음악 등 다양한 문화 내에서 일어난 사건 가운데 인상 깊었던 것을 토대로 VISLA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면?

바야흐로 2022년이다. 게다가 당신은 2023년이 도래하기 전에 파산하거나 세상을 떠날지 모른다. 이쯤이면 그전에 어떤 방식으로든 민구홍 매뉴팩처링과 함께 추억을 쌓아볼 마음이 일지 않는가?

지금의 스타일에 싫증이 나거나 지루함을 느낄 때는 없었는가?

다행이 아직은 없다. 예전에도 밝혔듯 내가 갑자기 히피나 자연주의, 한국의 전통 복식 문화에 심취하지 않는 이상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한편, 며칠 전 가족 모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트를 입고, 그 차림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회의를 한 적이 있는데, 평소에 이렇게 생활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사람들 반응도 재미있었고. 그럼에도 기본값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나를 정통 일본식 아메리칸 스타일로만 꾸며주시던 엄마는 늘 불만을 표하시지만.

「새로운 질서」에서 ‘선생님’으로 불리기를 꺼린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2018~21년)이나 홍익대학교(2022년)와 어깨동무하기도 하는 만큼 「새로운 질서」는 누군가에게 또 다른 학교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물론 어느 정도 정해진 커리큘럼이 있고, 제가 뭔가 알려드리는 자리지만, 그 과정에서 저 또한 참여자(일명 ‘새로운 질서의 친구들’)에게 배우는 바가 적지 않거든요. 학교임에도 선생과 학생의 구분이 흐릿한 학교인 셈이죠. 그래서 ‘선생님’이나 ‘교수님’ 같은 직함을 빼고 서로를 그저 이름으로 부릅니다. ‘님’까지 빼고 “슬기, 안녕하세요? 어떻게 지내셨어요?”처럼요. 누군가와 관계를 시작할 때는 호칭을 정하는 일이 중요하죠. 특정한 호칭을 부르는 순간 특정한 관계에 놓입니다. 일종의 위계가 만들어지죠. 이런 위계는 효율적으로 의사소통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특히 「새로운 질서」에서는요.

최정호를 언제 어떻게 처음 접했나?

기억이 잘 안 난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최정호에 관한 책을 만든 적이 있는데, 그전까지 피상적으로만 알던 최정호를 아무래도 그때 남들보다 조금 더 자세히 알게 된 것 같다. 책 초판이 출간된 게 2014년이니 어쨌든 4년이 채 안 된 셈이다.

안그라픽스에 입사할 당시 디자인과 가까운 삶을 살 거라고 예상하셨나요? 전공과 다른 길을 걷는 것에 대한 마음이 궁금합니다.

안그라픽스에는 날개집에서 맡아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길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입사했어요. 대학교 4학년, 스물여섯 살 때였죠. 우연이라면 우연이었고, 그게 첫 사회 생활이었죠. 그러다 보니 인터뷰에서 이제껏 제 전공과 지금 하는 일에 관한 질문, 또는 “저는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았는데, 디자이너로 일할 수 있을까요?” 같은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답변은 한결같아요. 저는 제가 다닌 학교와 제 전공이 자랑스럽지만, 그렇다고 추앙하지는 않습니다. 즉, 제 학교와 전공이 제 앞날을 고스란히 결정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문학을 전공한 덕일까요. 그럼에도 시인이나 소설가로 살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었어요. 단지 글을 잘 쓰고, 또 잘 다루고 싶었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글의 형식에 관한 기술인 타이포그래피에까지 관심을 두게 됐고요. 그러다 안상수 선생님과 인연이 닿은 거랍니다. 타이포그래피 또한 그 관심의 끝이라기보다는 여러 징검다리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언젠가는 스타트업을 운영하거나 힙합 음악을 발표하거나 일본으로 이민을 갈지도 몰라요. 그게 제가 생각하는 제 글쓰기에 도움만 된다면요. 결국 문학이 제게 가르쳐준 건 언어를 다루는 법, 그리고 그 언어로 세계를 엮는 방식인 것 같아요. 그게 저술이든, 편집이든, 번역이든, 디자인이든, 프로그래밍이든 저는 늘 글을 쓰고 있다고 느낍니다.

일반적인 웹사이트는 정보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정리돼 있습니다. 반대로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선보이는 웹사이트는 정보가 파편화되거나 효과에 가려져 있거나, 또는 시간에 따라서 서서히 나타나기도 하는데요, 이런 형식을 취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마우스의 위치에 따라 효과가 변하는 인터랙티브 요소도 흥미롭습니다. 이런 디자인을 선보이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파격이란 건 익숙함이 있기에 성립할 수 있겠죠. 제 욕망 때문이라기보다는 그게 콘텐츠에 부합하는 방식이라는 생각. 디자인은 웹 초창기에 이미 존재했어요. 제게는 아주 평범한 모습이죠. 웹이라는 기술이 소개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었죠. 기술도 부족하고 시각적인 규칙도 성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결과물은 제각각이었어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기술을 거친 웹사이트들은 파격적인 시도라기보다는 잠시 잊힌 평범한 웹을 변주하거나 재해석한 결과에 가까워요.

슬기와 민의 최성민 선생님 권유로 미국의 전설적인 그래픽 디자이너 밥 길(Bob Gill)의 『이제껏 배운 그래픽 디자인 규칙은 다 잊어라. 이 책에 실린 것까지.』를 번역한 적이 있는데, 이 책에는 “흥미로운 말에는 시시한 그래픽이 필요하다. 시시한 말에는 흥미로운 그래픽이 필요하다.”라는 구절이 나와요. 말과 그래픽이 조응하는 데는 균형이 필요하다는 뜻이죠. 저는 그래픽보다 말이 흥미로운 걸 좋아해요. 그러다 보니 말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고민하는 데 시간을 쏟는 편입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거친 웹사이트들은 사실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기술을 응용한 결과예요. 코드만 보면 누구나 따라 할 수 있을 정도죠. 이것들이 파격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그래픽보다는 말 때문일 겁니다.

수차례 밝혀왔듯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웹 디자인 에이전시가 아닙니다. 저는 웹사이트를 디자인한다기보다 그저 제가 좋아하고 잘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고 편집한다고 생각해요. 그 결과물 가운데 하나가 웹사이트인 거죠. 그게 용케도 누군가의 욕망에 부합하는 거고요. 많지는 않지만 이런 방식을 사랑해주시는 고객들 덕에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지금까지 근근이 생존할 수 있었죠.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입니다. 웹 환경에서 디자인할 때 최소한으로 지켜야 할 점이 있을까요?

책을 디자인할 때 본문 글자 크기를 대개 10포인트(약 3.5밀리미터) 안팎으로 지정하는 데는 역사적이고, 경제적이고, 인지과학적이고, 무엇보다 생물학적인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최소한의 규칙이라면 규칙이죠.

이는 웹에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웹 브라우저에서 설정된 기본 글자 크기는 16픽셀입니다. 저보다 뛰어난 전문가들이 연구한 수치인 만큼 저는 여기에 의문을 품지 않습니다. 이에 따라 모든 수치를 16픽셀을 1REM, 즉 기본값으로 설정합니다. 그리고 모든 곳에 16의 약수와 배수를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는 유별나게 저는 사용하는 방법론은 아닙니다.

다른 한 가지는 웹사이트가 ‘실행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둡니다. 웹사이트가 하나의 공간이라면, 탭이나 클릭은 공간과 공간을 이동하는 일과 비슷합니다. 탭하거나 클릭하는 횟수가 많아지면 동선이 길어지는 셈이죠. 저는 이 동선을 가능하면 최소화하려 합니다. 그러다 보니 웹사이트에서 여러 페이지를 만들기보다 한 페이지를 활용하는 방식을 선호합니다. 즉, 스크롤을 통해 페이지상의 요소를 연결하는 거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웹 페이지가 굉장히 길어지기도 하지만, 그 또한 웹사이트의, 나아가 웹의 자연스러운 특성입니다.

워크룸의 단행본 편집자인 한편, 웹에도 관심이 적지 않다. 두 매체를 구분하는 것의 장점과 단점이 무엇일까? 두 매체를 오가면서 어떤 이유에서 각 매체를 선택하는가?

웹은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회사를 소개하기 위해 활용하는 매체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웹의 비중이 적지 않기 때문에 이따금 웹 디자인 에이전시로 오해받곤 한다. 회사에서 웹을 주로 이용하는 까닭은 다루기 쉽고, (인쇄물에 비해) 파급력이 클 뿐 아니라 무엇보다 많은 사람이 잠들기 직전에 마주하는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 경이 과학자들끼리 효율적으로 논문을 공유할 목적으로 웹을 발명한 만큼 역사적으로 웹은 인쇄물에서 출발했다.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의 측면에서 웹은 태생적으로 인쇄물의 장점을 포섭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발전을 거듭한다. 따라서 둘을 같은 출발선상에 놓고, 일대일로 비교하기보다는 인쇄물을 웹의 조상, 웹을 조금 더 진보한 인쇄물로 여기는 편이 이롭다. 당장 생각 나는 둘의 분명한 차이가 있다면 웹은 책을 손에 쥐었을 때 느껴지는 흡족함을 주지 못한다는 점과 책과 달리 영원히 베타 버전이라는 점이다.

2015년부터 “안그라픽스를 거쳐 워크룸에 기생하는 1인 회사”인 민구홍 매뉴팩처링(Min Guhong Manufacturing)을 운영한다. 2019년부터는 “회사, 즉 민구홍 매뉴팩처링 자체를 소개하는 데 주력한다.” 회사에도 변화가 있는가? 얼마 전에는 인턴이 입사했다고 들었다.

네덜란드 아른험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는 한국인 학생으로, 회사에는 두 번째 인턴이다. (첫 번째 인턴은 영광스럽게도 현재 누구보다 활발히 활동하는 송예환 씨였다.) 학교에서는 졸업 학기를 인턴십으로 갈음한고 한다. 인턴십이 실무 현장을 경험해보는 기간일 뿐 아니라 수업의 연장인 만큼 인턴에게는 다음과 같은 임무를 제시했다.

인터넷, 논문, 일간지, 단행본, 잡지, 주위의 소문 등을 통해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관해 조사한 사실을 바탕으로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어떤 회사인지 규정하고, 그에 걸맞는 로고를 제안한다. 이 과정에서 로고는 납작한 그래픽만으로 제한하지 않는다. 즉, 로고는 규정한 바에 따라 덜 납작한 그래픽, 시, 소설, 만화, 음악, 영상 등이 될 수 있다. 단, 로고는 어떤 대상을 상징하거나 은유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목적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디자이너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한편으로는 얼마간 수행적인 이 작업은 네덜란드 밖에서만큼은 가장 까다로운 클라이언트인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제안을 납득할 때까지 계속된다. 작업의 진행 상황을 정리한 결과물은 인쇄물, 웹사이트 등으로 출판한다. 이는 「인턴 일지」 작성을 포함해 민구홍 매뉴팩처링 인턴으로서 수행할 업무의 고갱이다.

인턴은 자신이 조사한 사실을 바탕으로 로고 없는 회사에 여러 매체를 통해 로고를 제안하면서 여러 매체를 다뤄보고 동시에 (신출내기 그래픽 디자이너에게는 어쩌면 숙명인) 거절당하는 일에 익숙해진다. 한동안 원격으로 일하던 인턴은 코로나 때문에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갑자기 귀국하게 됐고, 회사뿐 아니라 동시에 회사가 기생하는 워크룸에서 한 달 동안 일했다. 월급은 워크룸에서 받았다. 어찌 보면 이중 기생인 셈인데, 그 덕에 인턴은 앞으로 이력서에 두 회사, 즉 민구홍 매뉴팩처링과 워크룸에서 일했다는 경력을 기입할 수 있게 됐다. 지금은 업무 차 제주도로 출장을 간 상태다. 좋은 일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회사나 인턴 모두 코로나 덕에 생각지 못한 경험을 하게 됐다.

한편, 몇 달 전에는 이름을 밝힐 수 없는 회사 두 곳에서 제법 파격적인 조건으로 인수 제안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당분간은 워크룸에 기생하기로 했다. 회사의 궁극적인 목표가 운영자, 즉 나의 행복이기 때문이다. 두 제안 모두 수락했을 때 불행해지지는 않겠지만, 지금보다 극적으로 더 행복해진다는 보장이 없었다. 방탄소년단의 제이홉도 「Answer: Love Myself」에서 읊지 않았던가.

오, 지금 날 위한 행보는 바로 날 위한 행동 / 날 위한 태도 / 그게 날 위한 행복 / I’ll show you what I got / 두렵진 않아 그건 내 존재니까 / Love myself

얼마 남지 않은 2021년, 꼭 마무리 짓고 싶은 일이 있다면?

VISLA와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컬래버레이션. 그리고 욕조 설치. 불과 몇 년 전 욕실을 리모델링하면서 호기롭게 욕조를 철거했는데,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는 일이 이렇게까지 어려워질 줄은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그의 핵심 측근을 제외하면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알파벳 대문자 O 셋, 하이픈(-) 하나로 이뤄진 ‘OOO-’에서 무엇이 떠오르는가?

몇 년 전 오사카 도톤보리에서 아내와 함께 먹은 삼색 당고. 내가 먹은 건 잘 쑨 팥소가 들어 있었다. 충동적으로 떠난 여행의 피로와 긴장이 해소되는 맛이었다. 아내가 먹은 나머지 두 개는 과연 어떤 맛이었을까?

2020년 현재 HTML의 표준 명세인 HTML5에서 사용되는 태그 113가지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태그는 무엇인가요?

<a> 태그입니다. 하이퍼링크를 만들어 콘텐츠와 콘텐츠를 잇는 태그죠. a는 ‘닻(anchor)’을 뜻하고요. 즉, 우리가 어떤 웹사이트에서 하이퍼링크를 클릭했을 때 우리는 그곳에 닻을 내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셈입니다. 인쇄물과 웹사이트를 구별짓는 대표적인 태그이기도 합니다. 인쇄물에서 각주, 방주, 미주에 불과했던 콘텐츠는 <a> 태그 덕에 웹에서 새로운 지위를 획득했습니다. 웹을 웹답게 만드는, 웹의 산소 같은 존재가 된 거죠.

구글 크롬 확장 프로그램 「읽기 전에 태우라」 탓에 웹에서 작성하던 글을 모두 날려버렸습니다. 어떻게 책임지실 건가요?

죄송합니다. 일찍이 시인 송승언 씨 또한 같은 상황을 경험하고 분노와 당혹감을 표출한 바 있습니다. 『레인보 셔벗』에 실린 그의 경험담을 읽으며 일단 화를 눅여보시는 건 어떨까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걸쳐 이제껏 굉장히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가장 만족스러웠던 작업은?

안그라픽스를 거쳐 워크룸에서 일하는 동안 얇게는 16쪽짜리 책에서 두껍게는 1,000쪽에 가까운 책까지 적지 않은 책을 만들어왔다. 모든 책은 웹사이트와 달리 재판(再版)하기 전까지 조금도 수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얼마간 불만족스럽다.

『생활 공작』은 미국에서 돌아온 뒤 워크룸으로 자리를 옮겨 기획한 첫 번째 책이다.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 시절 미국 중앙정보국의 전신인 전략사무국에서 적지에 침투한 간첩들에게 배포한 비밀문서를 원전으로 삼는다. 책에는 불필요한 회의를 자주 열거나 퇴근할 때 불을 끄지 말아야 한다는 식의 생활 속에서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공작 방법이 소개돼 있다. 번역은 군사 전문가 홍희범 선생에게 부탁했다. 『생활 공작』은 ‘실용 총서’의 첫 번째 책이기도 한데, 이 책 외에도 지금까지 『헤비듀티』, 『히트곡 제조법』, 『실전 격투』가 출간됐다. 참고로, ‘실용 총서’의 모토는 다음과 같다. “과거에는 실용이었으나 오늘날 실용만으로 기능하지 않는, 과거에는 실용이 아니었으나 오늘날 실용으로 기능하는 자료를 발굴합니다. 실용을 곱씹게 하는 현대인의 교양 총서를 자처합니다. 아름다운 실용의 세계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패션 브랜드 thisisneverthat의 10년을 정리한 『thisisenverthisisneverthat』도 기억에 남는다. 앞서 말한 1,000쪽에 가까운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책의 많은 부분은 3,000여 가지에 달하는 제품의 목록으로 이뤄져 있는데, 다양한 항목으로 이뤄진 목록을 정리하는 도구로서 웹사이트를 요긴하게 활용했다. 웹사이트가 맨 앞에서 프로젝트를 이끈 좋은 보기다. 『타이포잔치 2021: 거북이와 두루미』의 콘텐츠도 일차적으로 웹사이트상에서 정리됐다. 두 경우 모두 웹사이트가 맨 앞에서 프로젝트를 이끌고 종이책과 함께 또 다른 결과물로 완성된 좋은 보기다.

웹사이트로 한정하면 2020년 크리스마스 즈음에 발표한 「장영혜 중공업 귀중」을 꼽고 싶다. 이 작품은 장영혜 중공업을 향한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존경과 사랑, 그리고 부탁 한 가지를 담은 편지 형식을 띤다. 그들이 주로 사용한 기술인 어도비 플래시(Adobe Flash)가 폐기된 지금 비메오(Vimeo)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기분이 궁금했는데 이 참에 묻기도 했다. 장영혜 중공업 공식 이메일로 전달했음에도 답장은 아직 받지 못했다. 처음에는 아쉽고 섭섭했지만, 이제는 다시 한번 편지를 보낼 용기가 생겼다.

소셜 미디어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웹사이트 대신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 미디어 서비스상에서 이뤄지는 전시도 가능하지 않을까?

인스타그램을 잘 사용하지는 않지만 물론 가능하겠다. 하지만 인스타그램 자체가 이미 전시장인데, 거기서 전시를 연들 무슨 효과가 있을까? 한뼘만 스크롤해도 ‘미술’보다 아름다운 콘텐츠가 즐비한데 과연 누가 주목할까?

민구홍 매뉴팩처링에는 사업자 등록증이 따로 없다고 들었습니다. “사업자 등록증을 발급받는 순간 폐업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함께 추억을 쌓았을 때 인보이스를 발급받을 수는 있나요?

물론 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908A에 발급한 바 있고요.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입니다. 시적 연산 학교에서의 경험담이 궁금합니다.

안그라픽스가 지루해질 무렵 우연히 발견했어요. 저는 이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인데, ‘시’(poetic)와 ‘연산’(computation)을 조합한 학교 이름이 근사했습니다. 제 관심사를 잘 정리한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만큼 제 이력서의 학력에 이 학교가 들어가면 어울리겠다고 생각했죠.

잘 다니던 회사를 갑자기 그만두고 미국에 다녀오겠다는 말에 어머니는 아연실색하셨죠. 결혼도 한 상태였거든요. 나중에 알고 보니 경쟁률이 꽤 높았는데, 사실 어떻게 합격했는지 모르겠어요. 일종의 대안 학교였고, 3개월 과정이었지만,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계속 수업이 있었고, 수업이 끝나면 밤 늦게까지 이런 외부 특강 같은 행사가 거의 매일 열렸어요. 다른 지역이나 다른 나라에 살던 친구들이 많았던 터라 주말에도 딱히 할 일이 없어서 대부분 학교에 있었고요.

오랜만에 학생이 되니 무엇보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가장 큰 수확은 사람이었어요. 친구를 많이 사귀었습니다. 최태윤, 강이룬, 소원영 등 당시 뉴욕의 미술 및 디자인계에서 활동하던 한국인뿐 아니라 예전부터 이메일로만 연락하던 로럴 슐스트(Laurel Schwulst)라는 친구를 만났고, 그 덕에 데이비드 라인퍼트(David Reinfurt), 존 프로벤처, 민디 서 같은 또 다른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고요. 최근에 출간된 책을 번역하거나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강연할 수 있었던 건 이 친구들 덕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뉴욕에 친구가 많다는 건 뉴욕에 놀러갔을 때 저렴한 비용으로 잘 수 있는 공간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민구홍 매뉴팩처링 G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