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하는 질문

일러두고픈 말이 있다면?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2015년 이래 진행한 길고 짧은 인터뷰를 꼼꼼히 정리한 뒤 다시 무작위로 늘어놓은 「자주 하는 질문」을 통해 회사 또는 운영자에 관한 궁금증이 모쪼록 해소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단, 질문의 시기에 따라 현재와 다른 사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편, 질문의 어조에 따라 언급한 인물에 대한 존칭을 생략하기도 했습니다. 「자주 하는 질문」을 섭렵한 뒤에도 궁금증이 도무지 해소되지 않는다면 [email protected] 앞으로 소상히 말씀해주세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인정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단, 답장은 이메일 대신 언젠가 「자주 하는 질문」에서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2018년 늦여름에 한 갤러리에서 회사를 소개하는 전시를 열었다. 회사라면 일반적으로 박람회나 키노트 같은 걸 여는데, 전시라는 방식이 어딘가 좀 이상하지 않았나?

그 전시는 회사를 소개하기 좋은 기회였다. 회사를 소개할 수만 있다면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갤러리에 소환되는 것도 별로 꺼리지 않는다. 전시에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제품들이 특정 규칙에 따라 구분 없이 뒤섞여 있었다. 그런 점에서 큐레이터 윤율리가 제안한 ‘레인보 셔벗(Rainbow Sherbet)’이라는 전시명은 참 잘 어울렸다. (“실용성, 우아함, 고약함이 각각의 노즐에서 분사되는 적당한 모양새를 한마디로 요약하기란 무척 어렵다.”) 나중에 알았는데 ‘레인보 셔벗’은 각종 마리화나를 혼합한 마약을 가리키는 은어로도 사용된다고 한다.

그중 몇몇 제품은 동업자들과 함께 제작했다. 동업은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중요한 제품 제작 방식이다. 이는 무엇보다 더 나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오늘날 모든 걸 혼자, 그리고 능숙하게 해내는 건 쉽지 않고, 무엇보다 건강에 별로 좋지 않다. 이때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좀 더 회사처럼 작동했다. 회의를 거쳐 동업자를 선정해, 그들에게 발주서를 보냈고, 그들은 그에 따라 제품을 제작해 납품했다. 그렇게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추억 속에는 명함, 회사 소개 영상, 김뉘연 씨가 쓴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주제로 한 단편소설 한 편 등이 놓이게 됐다.

또 하나의 수확이 있다면 ‘분홍이’를 컴퓨터 밖으로 끄집어냈다는 점이다.

‘분홍이’는 사람들이 붙여준 별명으로, 본명은 자홍색을 만드는 염료명에서 따온 ‘푹신(Fuchsine)’이다. 푹신은 일종의 민구홍 매뉴팩처링 마스코트로, 아득히 먼 옛날 한 웹사이트에서 태어났다. HTML, CSS, 자바스크립트의 도움으로, 한 웹사이트의 머리(<head>)에 자리를 잡고, 하루에 한 번씩 몸집을 키우며 사용자가 클릭했을 때 혼잣말을 늘어놨다. 평양냉면을 좋아하고, 발렌시아가(Balenciaga)의 트리플 S(Triple S)를 신는 게 꿈이지만, 안타깝게도 아직은 다리와 발이 없는 상태다.

한편, 전시 오프닝 자리에서는 DJ 겸 프로듀서 말립(Maalib)과 제작한 「범용 오프닝 디제잉」을 재생했다. 특히 모임 별의 조태상은 래퍼나 DJ 들이 온갖 행사 오프닝에 활발히 소환되는 오늘날, 어떤 성격의 행사에서든 이용할 수 있는 유용한 제품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대여료는 한 시간당 15만 원으로, 서울에서 활동하는 DJ의 한 시간 평균 공연료와 같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하루 종일 대여한 바 있다.

당시 의미 있었던 물건을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실물로 남아 있지 않다면 묘사도 괜찮습니다.

신촌 기찻길에 자리한 김진환 제과점의 갓 구운 식빵입니다. 맛과 질감, 그리고 향기는 아주 고전적이지만, 모양은 모더니즘 미술 작품 같죠. 지금 아내가 된 여자친구와 자주 먹었는데, 안상수 선생님을 처음 뵐 때도 선물로 들고 갔어요. 함께 먹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저는 예전부터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 무엇을 건넬지 고민하는 편이에요. 식빵이든, 웹사이트든, 한 문장이든요. 그러다 보니 정작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건 별로 없어요.

이쯤 되니 이토록 웹사이트를 사랑하는 민구홍 씨가 궁금해집니다. 처음 만든 웹사이트를 기억하나요?

물론입니다. 거의 30년 전인 1995년, 열한 살 무렵입니다. 목표는 단순하지만 아주 분명했죠. 당시 제가 사랑한 친구를 그저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처음 만든 웹사이트는 지오시티가 문을 닫으면서 함께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파일을 백업하지 못해 이제는 꿈나라에서만 등장하는 터라 그저 아쉬울 따름입니다. 어쨌든 사랑에서 비롯한 경험 덕에 저는 일찍이 컴퓨터뿐 아니라 웹, 나아가 코딩을 포함한 글쓰기에 진지하게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교에서 문학과 언어학을 공부하고, 우연히 안상수 선생님을 만나 미술 및 디자인계에 발을 담그고, 그 뒤 13년여 동안 안그라픽스와 워크룸에서 편집자, 디자이너, 프로그래머 등으로 일할 때도 마찬가지였고요. 저에 관해 궁금증이 인다면 다음 웹사이트를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코딩을 포함한) 제 글쓰기에 관해 정리한 다음 발표 자료 또한 얼마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글쓰기는 흩어져 사라지려는 생각과 말을 특정 매체, 즉 문자(글자, 숫자, 기호 등)뿐 아니라 공간으로 붙잡아 드러내는 일이다.”

한편, 2015년에는 오직 웹과 글쓰기의 힘을 믿으며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설립했습니다. 슬기와 민과 워크룸 이후 ‘소규모’라는 접두어를 붙인 스튜디오들이 등장하던 아름다운 시절이었죠. 자본과 용기가 부족한 탓에 제 근무지에 기생하는 운영 방침을 고수하며 기관, 단체, 기업, 개인 등과 추억을 쌓다 보니 어느덧 설립 10주년을 앞두고 있고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관해서는 다음 웹사이트를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나아가 웹사이트의 힘에 기댄다면 바벨의 도서관쯤은 충분히 현실화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한번 시도해볼까요?

안타깝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그런 욕망을 품은 건 비단 저희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조너선 바실(Jonathan Basile)이 만든 다음 웹사이트는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을 웹상에서 가뿐하게 구현합니다.

조너선 바실은 이 도서관의 사서를 자임합니다. 어느 날 그는 침대에 누워 있다가 온라인 바벨의 도서관에 관한 생각을 떠올렸고, 이를 위해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저장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죠. 이 한계를 우회하기 위해 바벨의 도서관을 시뮬레이션하는 알고리즘을 설계했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소개하는 데 일조하는” 책 『레인보 셔벗』(아카이브 봄·작업실유령, 2019)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제품 소개’의 반대 개념인 ‘제품 후기’로 책을 구성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 책은 지금은 문을 닫은 전설적인 갤러리 ‘아카이브 봄’에서 열린 『레인보 셔벗』을 정리한 도록 겸 단행본이에요. 기획을 포함한 책임 편집은 최근에 일민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긴 윤율리 씨가 담당했죠.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주 고객 가운데 한 분으로, 어쩌다 보니 여름이 다가오면 함께 평양냉면을 먹는 사이가 됐어요. 도록에는 보통 작품에 관한 비평문이 실리기 마련인데, 여기서는 ‘작품’이 아닌 ‘제품’이니 ‘비평문’보다는 ‘후기’가 어울리기 때문 아니었을까요? 저도 궁금하니 이참에 율리 씨를 한번 인터뷰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이 책에서 제가 담당한 건 뒤표지였어요. 뒤표지에는 보통 책 내용을 정리한 소개문을 싣죠. 소개문은 책을 디자인하고 드물게 인쇄 과정을 감리까지 해주신 슬기와 민 선생님들께 의뢰했는데, 덕분에 근사한 소개문이 탄생했어요. “『레인보 셔벗』은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회사를 소개하는 데 일조하는 책이다. 이런 식의 소개문 몇 줄이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 다만, 분량은 160자 정도로 제한해 주세요.” 덩달아 회사에서는 자연스럽게 선생님들의 명성에 기댈 수 있었고요. 참, 표지를 장식한 인물은 그래픽 디자이너 강문식 씨가 발견했죠.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기술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기관, 단체, 기업, 개인 등과 협업하기도 한다. 형태는 웹사이트 구축이나 소프트웨어 개발뿐 아니라 저술, 번역 등 다양하다. 민감한 질문일 수 있는데, 기술 지원 비용은 보통 어떻게 책정하는 편인가?

민감할수록 분명히 밝혀야 한다. 게다가 많든 적든, 길든 짧든 회사의 노동력과 시간을 투여하는 만큼 이는 회사의 생존 측면에서 중요한 문제다. 하안선은 있지만 서로 어색해지 않는 선에서 많을수록 좋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어떤 식으로든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소개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하안선을 충족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회사를 적극적으로 소개하는 것으로 갈음하기도 한다. 예컨대 소설가라면 4대 문예지 가운데 한 곳에 회사에 관한 작품을 발표해야 하는 식이다.

한편,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디자인 에이전시였다면, 908A를 운영하는 강이룬 선배의 조언을 기준으로 삼았을 것이다.

사람, 돈, 포트폴리오 가운데 하나만 충족하면 된다.

유럽 입자 물리 연구소(Conseil Européenne pour la Recherche Nucléaire, CERN)에서 일하던 영국의 컴퓨터 과학자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 경이 일반에 웹을 공개한 지 어느덧 30여 년이 지났다. 생각보다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은데, 그동안 웹은 어떻게 발전했을까?

웹은 콘텐츠의 생산 및 소비 방식의 관점에서 버전으로 구분된다. 웹 1.0은 1994년부터 2004년까지 웹 초창기를 가리킨다. 웹 1.0에서 콘텐츠는 단방향, 즉 생산자에서 소비자로만 흐르며, 소비자는 콘텐츠를 열람만 할 뿐 제어할 수 없다. 그 이후 웹 2.0이 등장했고, 사용자들은 개인 웹사이트를 만들기보다 블로그나 소셜 미디어 서비스로 자리를 옮겼다. 콘텐츠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건 훨씬 편리해지고,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는 흐릿해졌지만, 동시에 (특히 한국에서는) 개인 웹사이트를 만드는 문화가 너무나도 빨리 식어버렸다. 아직 규정하기 어려운 지금은 웹 3.0 시대로, 전문가들은 인공지능을 주요 특징으로 꼽기도 했다. 새로운 버전이 등장하면 주도적인 흐름이 이동하긴 하지만, 이전 버전이 완전히 폐기되는 건 아니다. 오늘날 웹은 각 버전이 뒤섞인 엉망진창 상태고, 한 웹사이트에서도 각 버전이 어우러진 경우도 있다. 웹 2.0의 대표적인 기술 가운데 웹사이트(블로그)끼리 서로를 참조할 수 있는 트랙백(trackback) 기능이 재미있는데, 안타깝게도 이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별자리가 물고기 자리인 사람은 감정에 쉽게 휩쓸린다. 당신은 내가 아는 사람 가운데 가장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최근에 관심이 가거나 눈에 띄는 창작자가 있는가?

잘 모르겠다.

이런 세계가 있었다니 제 즐겨찾기 목록을 다시 편집해야겠어요. 그렇다면 무엇이 넷 아트를 넷 아트로 만드는 걸까요?

넷 아트처럼 웹사이트를 새로운 문학적, 예술적 매체로 바라보는 시각과 실천은 ‘하이퍼텍스트’(Hypertext)라는 개념과 밀접합니다. 1965년 테드 넬슨(Ted Nelson)이 처음 제안한 이 개념은 25년여 뒤 웹이 등장하면서 비로소 잠재력을 발휘하기 시작했죠. 요컨대 하이퍼텍스트는 선형적 구조를 탈피한 텍스트입니다. 독자는 작가가 정해둔 순서대로 작품을 읽는 게 아니라 하이퍼링크를 통해 자유롭게 텍스트 사이를 이동합니다. 보르헤스의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El jardín de senderos que se bifurcan)처럼 무한히 분기하는 이야기의 구조가 현실화한 셈이죠. 한 가지 특별한 차이점이 있다면 사용자가 마주한 길이 두 갈래가 아니라 그 이상이라는 사실이죠.

이쯤이면 회사의 사훈이 궁금해진다.

‘(웃음)’. 2017년 11월 24일 건국대학교 앞 서점 겸 복합 문화 공간 인덱스(Index)에서 열린 포스터 전시 『유용한 말』(Useful Words)에 포스터 「(웃음)」을 출품하면서 마련했다. 다음은 「(웃음)」에 관한 설명이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신제품 「(웃음)」은 제목 그대로 ‘(웃음)’을 담은 다목적 포스터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의회의 속기사들이 처음 고안했다는 ‘(웃음)[(笑)]’은 오늘날 대담이나 인터뷰 등의 기록에서 발언자나 주위의 반응을 간단히 묘사하는 데, 또는 지나치게 진지한 말을 눅이는 데, 또는 말의 의미를 역전시키는 데 사용되곤 한다. 이뿐일까. 더러 특정 문화에 심취한 이는 이를 통해 자신의 자폐성을 넌지시 드러내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웃음)’의 양상은 앞뒤 맥락에 따라 폭소나 미소, 조소나 냉소 등으로 달라진다. 말은 어떻게 유용성을 획득하는가. 어떤 말이 유용하다면, 이는 포스터라는 매체에 실린 경우에도 마찬가지인가. 질문이 품은 염원을 담아 「(웃음)」은 갖가지 ‘유용한 말’이 모이는 전시에서 ‘(웃음)’의 역할을 자임한다. 우아하게 디자인된 최정호체의 소괄호 속 ‘웃음’이 어떤 이에게는 시답잖은 헛웃음에 불과하더라도 아무러면 어떤가. “웃으면 복이 온다”.라는 말이 과학적으로까지 증명된 마당에. (웃음)

포스터 속 ‘(웃음)’의 위치는 그래픽 디자이너 전용완 씨의 시각 보정까지 거친 결과다. 포스터 외에도 ‘(웃음)’은 자석으로서 ‘(웃음)’ 필요한 어느 곳이든 (물론 금속성을 지닌) 붙였다 뗄 수 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과 COS 사이에 공통점이 있을까요?

생화학 무기와 도청 장비, 무엇보다 샤워 커튼을 제외하고, 좋은 제품을 제작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회사답게 인턴도 있었다고 들었어요. 저도 지원할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총 세 명이 거쳐갔죠. 특히 첫 번째 인턴이었던 송예환 씨는 하루 만에 퇴사했어요. 회사와 인턴이 서로 원하는 걸 얻는 데 시간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예환 씨 덕에 회사에서는 인턴을 둘 만큼 건실하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게 됐고, 저는 편하게 차를 마실 수 있는 친구도 생겼죠. 지원 방법을 비롯해 민구홍 매뉴팩처링 인턴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글을 참고해주세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점점 빠져들고 있어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최근 ‘새로운 질서 그 후…’라는 팀의 행보가 눈에 띕니다. 여러모로 영향을 주고받은 것 같은데, 「새로운 질서」와는 어떤 관계인가요?

유일하게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진행한 「새로운 질서」에서 추억을 쌓은 ‘「새로운 질서」의 친구들’로, 문학, 미술, 디자인 등 다방면의 전문가가 꾸린 느슨한 컬렉티브입니다.

얼마 남지 않은 2021년, 꼭 마무리 짓고 싶은 일이 있다면?

VISLA와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컬래버레이션. 그리고 욕조 설치. 불과 몇 년 전 욕실을 리모델링하면서 호기롭게 욕조를 철거했는데,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는 일이 이렇게까지 어려워질 줄은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그의 핵심 측근을 제외하면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입니다. 문학과 언어학을 공부한 경험이 디자인이나 프로그래밍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요?

넓은 의미에서 제게 문학은 언어를 가지고 노는 일이고, 언어학은 언어의 구조와 규칙, 기능과 의미를 발견하는 일입니다. 디자인이나 코딩 또한 사용하는 언어가 조금 다를뿐 모두 이 범주 안에 있습니다.

일반적인 글쓰기든 코딩이라는 글쓰기든 모두 소통을 전제합니다. 그 일차적인 소통 대상은 글을 쓰는 사람, 즉 자신일 테고요. 하지만 코딩에서는 자신과 소통한 뒤에는 컴퓨터와 소통해야 하죠. 얄궂게도 컴퓨터는 인간만큼 너그럽지 않습니다. 코딩에 정확성, 명확성, 명료성 등이 수반되는 까닭입니다.

추앙하는 숫자가 있나요?

제법 많습니다. 0.125, 2, 3, 6, 12, 14, 16, 24, 38, 42, 999입니다. 어떤 것은 글쓰기, 어떤 것은 또 다른 글쓰기, 즉 코딩, 어떤 것은 마이크로 타이포그래피, 어떤 것은 매크로 타이포그래피와 관련이 있습니다.

인쇄물과 비교하면 한글 웹 폰트 또한 장벽 아닐까?

한글 웹 폰트는 영문보다 글리프가 많으므로 그만큼 용량이 크다. 따라서 웹 브라우저가 파일을 내려받아 렌더링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비용에 관해서도 이야기해 볼 만하다. 2020년 한 글자체를 웹 폰트로 사용해 보려고 제작사에 비용을 문의해 보니 1,000만 원에 가까웠다. 폰트 파일이 무단으로 유출될 수 있음을 감안한 금액일 텐데, 그럼에도 인쇄물용 라이선스보다 많게는 30배 이상 되는 금액은 사실 납득이 되지 않는다. 폰트 디자이너의 생계와도 관련한 문제겠지만, 구글 폰트(Google Fonts)에 서비스되는 한글 폰트가 더욱 많아지면 좋겠다. 최근에 폰트 디자이너 류양희는 ‘고운바탕’과 ‘고운한글’을, 함민주는 ‘함렡’(Hahmlet)을 구글 폰트에 공개한 바 있다. 노토 산스(Noto Sans)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스포카(Spoqa)의 ‘스포카 한 산스’(Spoqa Han Sans)와 길형진의 ‘프리텐다드’(Pretendard)는 특히 완성도가 높다. 상징성 면에서 AG 타이포그라피연구소의 안상수체나 최정호체는 오픈 소스로 공개하면 좋겠는데, 지나친 욕심일까?

구글 폰트 + 한국어. 구글 폰트에 서비스될 한글 폰트를 미리 사용해볼 수 있다. 소원영, 강이룬 등과 참여한 이 작업을 통해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공식적으로 ‘구글 폰트의 친구’가 됐다.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졸업생입니다. 작품을 작동시키는 모티브는 어디에서 얻나요?

어떤 프로젝트든 결과물을 예상했을 때 반드시 필요한 것, 특히 제목에서 모티브를 찾아보려 하는 편입니다. 조금 더 정확한 뜻을 파악하기 위해 사전을 들춰보기도 하고, 관련된 경험이나 추억은 없는지 되뇌어 보기도 합니다. 그러는 와중에 거리를 걷다가 나무나 돌멩이를 보고 갑자기 뭔가 떠오를 때도 있고요. 그 과정이 적절하다면, 많은 부분은 자연스럽게 해결된다고 믿습니다. 예컨대 『타이포잔치 2021: 거북이와 두루미』의 경우 거북이와 두루미가 지닌 특성에 주목했어요. 거북이는 땅에서 느릿느릿 기어다니고, 두루미는 하늘을 날죠. 그렇게 웹사이트상에서 두 가지 읽기 환경을 제안했어요. ‘거북이’ 환경에서는 콘텐츠를 느긋하게 열람할 수 있도록 1단으로, ‘두루미’ 환경에서는 전체 콘텐츠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최대 6단으로 설정했죠. 제목에 관해 조금 더 이야기하면, 스스로 제목을 제어할 수 있는 개인 프로젝트에서는 제목이 영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머지가 다 마무리됐더라도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기본적으로 제목이 프로젝트 자체를 규정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전체 작업 기간 가운데 제목에 공을 들이는 게 반 이상은 될 거예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롤모델로 삼는 회사가 있다면?

물론 있다. 하지만 (영업) 비밀이다. 특별할 건 없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알다시피 오늘날 비밀은 인터넷 밖에 있을 때 온전히 비밀이 된다. 구글이나 인터넷 아카이브 웨이백 머신(Internet Archive Wayback Machine) 서버 밖 말이다. 오늘 당신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정말 나누고 싶은 건 어쩌면 거기, 그러니까 당신과 마주 앉은 이 테이블 사이, 바로 이 안개꽃 옆에 있을지 모른다.

‘편집’은 출판계에서 교정이나 교열같이 다소 협소한 의미로 사용되곤 하지만, 이미 여러 분야에서 창작 이상의 의미로 확장되고 있다. 웹사이트에서 콘텐츠를 다룰 때는 어떤 에디터십이 필요할까?

이 또한 근본적으로는 인쇄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단, 글자나 이미지가 콘텐츠를 드러내는 것 외에, 예컨대 버튼으로서 특정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즉, 콘텐츠가 사용자와 어떻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지까지 고려하고 계획해야 한다는 뜻이다.

스물다섯 살에 만든 웹사이트가 있나요?

너무 많아서 하나도 기억 나지 않아요. 열한살 무렵 처음 웹사이트를 만든 이래 웹사이트를 만드는 게 일종의 취미가 된 터라 사실 대학교 졸업 작품까지 웹사이트로 만들었죠. 물론 보기 좋게 반려당했지만요.

말이 나왔으니, 최근 네이버 디자인과의 인터뷰에서 HTML과 CSS를 한국어, 영어, 일본어 다음으로 잘 다루는 언어라 밝힌 바 있다. 웹사이트를 만드는 과정에서 두 언어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HTML은 콘텐츠에 개념적인 구조와 맥락을 부여하며 현재 총 113가지 태그(tag)를 지원한다. 이를 통해 웹 브라우저는 콘텐츠에서 무엇이 제목이고, 문단이고, 이미지고, 캡션인지 파악한다. 모든 웹 기술의 공통분모라는 점에서 HTML은 개념적으로 그래픽 디자인에서 타이포그래피에 해당한다. CSS는 HTML로 구조와 맥락을 부여받은 콘텐츠에 스타일을 부여한다. 여기서 스타일은 마이크로 타이포그래피뿐 아니라 매크로 타이포그래피, 애니메이션을 아우르며 현재 CSS가 지원하는 129가지 속성(property)으로 스타일이 만들어진다. 거칠게 말하면, 웹사이트를 만드는 일에서 중요한 부분은 결국 113가지 HTML 태그와 129가지 CSS 속성을 조합하고 편집하는 일이다. 태그와 속성이 조합되는 경우의 수는 최소로 계산해도 무한(106,559,732,167,812,574,200)에 가깝다. HTML과 CSS는 아마 가장 익히기 쉬운 언어일 것이다. 복잡한 연산을 수행하는 프로그래밍 언어는 아니지만, 탐구해 볼수록 ‘코딩이라는 글쓰기’와 관련해 생각할 거리가 적지 않다. 여기에 특정 기능이 필요하다면 프런트엔드에서는 자바스크립트(JavaScript, JS), 백엔드에서는 자바(Java), PHP(PHP: Hypertext Preprocessor), 파이썬(Python) 등의 언어가 필요하다.

영향받은 디자이너나 작가, 경향 같은 게 있는가?

요컨대 일상과 추억에서 영향을 받는 편이다. 특히 자주 또는 이따금 만나는 사람들이 귀감이 된다. 예컨대 박활성 선배의 실용적인 결단력, 김형진 선배의 낭만주의, 최슬기·최성민 선생의 유머 감각, 아내와 로럴 슐스트의 삶을 대하는 태도, ‘「새로운 질서」의 친구들’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 비슷한 의미로 1990년대 말 ‘닷컴 버블’이 꺼지면서 순식간에 사라진 웹 1.0의 엉망진창인 분위기도 동경의 대상이다. ‘브루탈리즘’(Brutalism), ‘반디자인;(Anti-design), ‘시대착오’ 같은 어휘로 소개되곤 하는데, 그렇게 한마디로 축약하기 어려운 ‘평범한 웹’을 향한 그리움이다.

2016년 청담동의 COS 매장 3층에 마련된 프로젝트 스페이스에서 발표한 「보기」(더 북 소사이어티·김영나 기획)는 빨강 버튼을 누를 때마다 무작위로 조합된 경고나 행운의 메시지를 대형 스크린에 출력하는 제품이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것 가운데 가장 섬뜩한 메시지가 있다면?

귀하는 / 유니클로에서 / 느닷없이 / 친척 어른에게 / 귀하의 직업을 / 설명하게 될 것입니다. / 축하드립니다.

하지만 가장 섬뜩했던 건 메시지보다 음악가 김윤기의 오프닝 공연이었을 것이다.

2020년 현재 HTML의 표준 명세인 HTML5에서 사용되는 태그 113가지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태그는 무엇인가요?

<a> 태그입니다. 하이퍼링크를 만들어 콘텐츠와 콘텐츠를 잇는 태그죠. a는 ‘닻(anchor)’을 뜻하고요. 즉, 우리가 어떤 웹사이트에서 하이퍼링크를 클릭했을 때 우리는 그곳에 닻을 내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셈입니다. 인쇄물과 웹사이트를 구별짓는 대표적인 태그이기도 합니다. 인쇄물에서 각주, 방주, 미주에 불과했던 콘텐츠는 <a> 태그 덕에 웹에서 새로운 지위를 획득했습니다. 웹을 웹답게 만드는, 웹의 산소 같은 존재가 된 거죠.

구홍의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생각이 있으신가요?

없는 것 같아요. 뭐가 맞고 뭐가 틀리다는 생각 자체를 별로 하지 않는 편이에요. 살다 보면 조금 전까지 당연히 맞다고 생각한 게 몇 분 뒤 당연히 틀린 게 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일어나잖아요. 질문과 비슷한 제목의 영화가 2015년에 개봉했는데, 아마 그게 제가 마지막으로 본 홍상수 감독의 영화일 거예요. 제가 오직 맞다고 생각하는 건 맞음과 틀림이 없음을 맞다고 생각하는 게 틀림없어요.

강이룬 선생님이 운영하시는 KAIST 시각도구연구실에 학부생 인턴으로 합격했습니다. 3월이면 대전으로 이사해야 하는데 추천해주실 만한 제품이 있을까요?

먼저 축하드립니다. 「박스 박스 테이프」 어떨까요? 박스를 포장하는 데 사용하시면 좋습니다. 기존 박스 테이프와 다른 점이 있다면 테이프 표면에 ‘BOX’라고 인쇄돼 있습니다.

「비치 비치 타월」 또한 추천합니다. 한국의 대표적 분지인 대전에서도 바닷가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질서」에서 ‘선생님’으로 불리기를 꺼린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2018~21년)이나 홍익대학교(2022년)와 어깨동무하기도 하는 만큼 「새로운 질서」는 누군가에게 또 다른 학교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물론 어느 정도 정해진 커리큘럼이 있고, 제가 뭔가 알려드리는 자리지만, 그 과정에서 저 또한 참여자(일명 ‘새로운 질서의 친구들’)에게 배우는 바가 적지 않거든요. 학교임에도 선생과 학생의 구분이 흐릿한 학교인 셈이죠. 그래서 ‘선생님’이나 ‘교수님’ 같은 직함을 빼고 서로를 그저 이름으로 부릅니다. ‘님’까지 빼고 “슬기, 안녕하세요? 어떻게 지내셨어요?”처럼요. 누군가와 관계를 시작할 때는 호칭을 정하는 일이 중요하죠. 특정한 호칭을 부르는 순간 특정한 관계에 놓입니다. 일종의 위계가 만들어지죠. 이런 위계는 효율적으로 의사소통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특히 「새로운 질서」에서는요.

이 글은 꼭 이 웹사이트의 곁가지 같기도 하네요. 한데 웹사이트를 살펴보니 ‘새로운 질서’라는 말이 자주 눈에 띕니다. 얼핏 학교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신흥종교 같기도 한데요?

둘 다 맞거나 둘 다 틀립니다. 「새로운 질서」를 시작한 건 2016년, 미국 시적 연산 학교(School for Poetic Computation)에서 수학한 뒤 한국에 돌아온 뒤였죠. “어떤 대상을 좋아하고, 급기야 사랑하게 되면 그 아름다운 마음을 주위와 나누고 싶게 마련이다.” 「새로운 질서」에서는 웹을 이루는 기본적인 컴퓨터 언어를 익혀 자신의 관심사를 재료 삼아 자신만의 웹사이트를 만들어봅니다. 매주 금요일 열리는 「새로운 질서」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하자센터, 홍익대학교 등과 어깨동무하며 핸드메이드 웹의 정신으로 자신만의 웹사이트를 만드는 즐거움을 나눕니다. 어느덧 「새로운 질서」와 함께한 친구들이 어느덧 400여 명을 넘은 것도 모두 웹사이트 덕이죠. 웹사이트가 현실과 조금 더 가까워지거나 어떤 차원에서는 이미 현실을 대체한 오늘날, 「새로운 질서」가 새로운 문해력을 익히는 동시에 자신을 향한 사랑을 확장하는 시공간이 되기를 기대할 뿐입니다.

기술적인 한계는 어떻게 극복하는가?

웹을 둘러싼 기술은 너무나도 빠르게 발전하므로 하나하나 따라가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이 순간에도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어떤 기술은 폐기된다.

최신 기술을 재빨리 익혀 도입하는 쪽과 드릴이나 호미로 밑바닥을 확장하며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기술을 탐구하는 쪽이 있다면,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후자에 속한다. HTML을 위시한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기술은 앞으로 폐기될 가능성이 적은 까닭이다. 또한, 아무래도 워크룸에 기생하다 보니 그래픽 디자인에서 타이포그래피나 개념에 집중하는 방법론에 익숙하기도 하고,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구글이나 네이버가 아닌 만큼 기술적인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선의 방법을 고안하려 노력한다. 그런데 여러 프로젝트를 경험해본 바로는 대부분의 문제가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기술만으로 무리 없이 해결되는 편이었다. 한계가 명확할수록 특정 부위가 과도하게 커진 근육처럼 재미있는 결과물이 나오기도 한다. 물론 여기에는 사용할 콘텐츠를 제대로 다뤄야 한다는, 즉 제대로 편집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는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숙주를 떠나 독립할 가능성이 있을까?

없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독립하는 순간 폐업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이제껏 많은 요청에도 사업자 등록증을 발급받지 않은 까닭이기도 하다.

하나의 방향이 아니라 거미줄 같이 사방으로 펼쳐지는 공간감이군요! 그럼 마지막 질문을 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할까 합니다. 웹 출판을 좋아하지만, 몇 년 혹은 몇 달만 지나도 웹에서 더 이상 찾을 수 없고 사라지는 정보가 많습니다. 민구홍 님은 이런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카이빙에 대한 어떤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열한 살 때 사랑하는 친구를 위해 『야후! 지오시티』(Yahoo! Geocities)에 처음 웹사이트를 만든 이래 안그라픽스와 워크룸, 나아가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10여년 동안 여러 웹사이트를 총괄하다 보니 조금씩 웹사이트의 탄생과 삶, 죽음과 사후 세계에 익숙해집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웹사이트의 운명은 결국 운영자에게 달렸습니다. 즉, 웹사이트는 서버 운영 기간이 종료되는 시점보다는 운영자가 관심을 끊는 순간 죽어가기 시작합니다. 이와 관련해 얼마 전 한 도록에 다음과 같은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 2022년 7월 11일, 미국 항공 우주국(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 NASA)에서는 제임스 웹(James Webb) 우주 망원경이 지구로 전송한 SMACS 0723 은하단의 모습을 공개했다.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별 무리는 지구로부터 약 46억 광년(1광년은 9조 4,607억 킬로미터) 떨어진, 즉 46억 년 전 언젠가의 모습이다. 반드시 우주 망원경을 활용하지 않더라도 웹사이트를 통해 과거를 마주하는 건 이미 익숙한 일이 됐다. 2006년부터 현재까지 과거를 기록하는 데 웹사이트를 활용해온 그들이 내게, 또는 그들 자신에게, 나아가 우리에게 건네는 이야기는 결국 이리저리 굴러가며 쌓인 어제가 오늘을 만든다는 점이다. 하루에 불과 네댓 명 찾는 정원이 될지라도 웹사이트를 만들고 운영하는 일뿐 아니라 함부로 사라지지 않도록 보존하는 일이 중요한 까닭이다. 식물에 물을 주듯 웹사이트를 가꾸다 보면 이따금 정원의 하늘에 별 무리가 반짝이는 밤도 있지 않을까. (…)

『인터넷 아카이브』(Internet Archive)에서 운영하는 「웨이백 머신」(Wayback Machine) 등 웹사이트를 보존하려는 시도는 일찍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미술관과 함께한 몇몇 웹사이트는 파일 형식으로 수장고에 아카이빙되기도 했고요. 이렇게 웹사이트를 고스란히 저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웹사이트에 담긴 콘텐츠가 웹상에서 나아가 웹 밖에서 여기저기 퍼지도록 마음을 열어두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 뜻에서 “별 무리가 반짝이는 밤”을 위해 이번 인터뷰를 민구홍 매뉴팩처링 공식 웹사이트「자주 하는 질문」에 함께 실으면 어떨까요?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의 2차원 이미지를 재현하는 건 익숙한 일이다. 그렇다면 조각 등 설치물 같은 건 어떨까? 온라인 전시에서도 작품의 물성을 구현할 수 있을까? 구현할 수 있다면 어떤 방식이 적절할까?

언젠가 한 출판사 관계자와 웹사이트 개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 비슷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이참에 웹사이트에서 책의 물성을 구현해보고 싶은데… 가능하겠죠?” 그는 순진한 표정으로, 특히 ‘물성’에 힘을 보태 말했다. 이는 책에서 유튜브 영상을 재생하고 싶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웹에서는 Z축상에 레이어가 아무리 쌓이더라도 두께는 0픽셀이다. 웹상의 물성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바는 이뿐이다. 오랜 고민 끝에 출판사 관계자에게는 결국 구글이나 네이버 본사에 문의해보시는 게 좋겠다고 정중히 말씀드렸다.

소셜 미디어만으로도 충분히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시대, 민구홍 매뉴팩처링 스타일로 이야기하면 ‘소개의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개인 웹사이트를 만드는 일이 유의미할까요?

파급력만 놓고 보면 소셜 미디어만 한 도구가 없죠. 하지만 소셜 미디어에는 저마다 제약이 있고, 이런 제약은 사용자의 행복을 제한해요. 예컨대 트위터에서는 게시물 글자 수에 제한이 있고, 인스타그램에서는 글 한 줄을 게시하려 해도 이미지나 영상이 필요해요. 게시물 속 하이퍼링크도 작동하지 않고요. 사용자를 인스타그램에 영원히 머물게 하려는 전략이죠.

또한 ‘좋아요’ 기능은 자신의 생활을, 자신의 작품을, 나아가 자신을 불특정 다수에게 평가받는 위치로 옮겨놓습니다. 그 결과를 깜찍한 하트 아이콘과 몇백에 불과한 숫자로 확인는 건 그리 유쾌하지 않죠. 누구나 ‘좋아요’ 수가 많지는 않을 테니 누군가는 초라함을 느끼거나 자신의 작업 또는 삶 자체를 부정하게 되기도 하고요. 주체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분위기에 휩쓸릴 수밖에 없죠.

한편, 디자인계에서 주로 소비되는 카르고(Cargo) 같은 서비스는 코딩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을 위해 그럴듯한 템플릿을 제공합니다. 사용하기 편리한 건 사실이지만, 템플릿들은 사실 콘텐츠와는 유리된 상태예요. 이미 짜인 틀에 콘텐츠를 맞추는 셈이죠. 그러다 보니 사용하다 보면 어딘가 입맛에 맞지 않고, 디자인에서 이런저런 요소를 바꿔보려고 시도해보면 쉽지 않죠. 덩달아 코드도 지저분해지고요. 웹사이트를 만드는 건 이런 템플릿을 수정하는 일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하죠.

몇 가지 컴퓨터 언어를 익히면 거의 모든 걸 스스로 제어할 수 있습니다. 백지 상태에서 오직 자신을 위한 웹사이트를 만드는 건 ‘현대인을 위한 교양’으로서 해볼 만한 일이죠.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생각해보고, 그것을 정리해 글을 써보고, 그것에 컴퓨터 언어로 어떻게 새로운 질서를 부여할지 고민하는 건 소중한 일입니다. 게다가 기술을 주체적으로 받아들이고 사용할 수 있게 되고요.

전염병 때문에 ‘죽음’이라는 말이 어느 때보다 익숙한 시대입니다. 매일 아침이면 어제 몇 명이 세상을 떠났는지 보도되죠. 그만큼 생활에 관해 생각해보게 돼요. 자신을 위한 웹사이트를 만드는 일은 어쩌면 자신을 도저하게 사랑하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나를 도저하게 사랑하다 보면 남도 도저하게 사랑할 수 있죠. 사랑과 그에 따른 행복은 전염병보다 빠르게 전염되고요. 죽기 전에 해야 할 이보다 중요한 일이 있을까요?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입니다. 이런 디자인을 해야겠다고 결정한 순간은?

질문을 받고 이참에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슬기와 민의 최성민 선생님 덕인 것 같아요. 더 정확히는 최성민 선생님이 추천해주신 밥 길의 책 번역을 맡으면서요. 제가 미국에서 돌아와 워크룸으로 자리를 옮긴 2016년 무렵이었는데, 그 책에 이런 말이 나오죠. “흥미로운 말에는 시시한 그래픽이 필요하다.” 반대로 “흥미로운 그래픽에는 시시한 말이 필요하다.”라는 말도 있었죠.

무엇보다 말과 그래픽, 콘텐츠와 디자인, 내용과 형식, 두 가지의 균형이 중요하다는 뜻일 텐데, 이는 제가 늘 고민하던 바, 나아가 이제껏 제 마음을 움직이던 작품의 정체를 명쾌하게 정리해주는 말이었어요. 그 뒤로는 같은 말이라도 국면에 따라 뜻이 달라진다는 화용론(話用論, Pragmatics)에 심취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말이 흥미로워지는 국면을 찾아보거나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우연일지 모르지만, 안상수 선생님이든 최성민 선생님이든 저를 디자인하신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런 점에서 직접 사사한 적은 없지만 안상수 선생님이나 최성민 선생님은 제게 엄연히 선생님이죠. 이따금 자주 뵙고 싶기도 하지만, 그런 대상과는 아무래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쉬움이 있어야 계속 생각이 나니까요.

이제야 웹사이트가 ‘진보한 인쇄물’이라는 점이 이해가 간다. 인쇄물을 만드는 데는 단행본을 기준으로 적어도 2개월 정도가 걸리는데, 웹사이트는 보통 어느 정도가 걸리나?

정적 웹사이트 겸 포스터식 웹사이트는 콘텐츠가 제대로 마련되고 콘셉트가 정해진 상태라면 사실 하루만이라도 완성할 수 있다. 물론 이는 테스트를 제외한 시간이다. 어떤 웹사이트는 사용하는 데 무리가 없을 만큼 공개한 뒤 점진적으로 업데이트하기도 한다. 서울시립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와 함께한 ‹NR 베이커리›(NR Bakery, 2021)가 비슷한 경우인데, 인쇄물 작업에 익숙하다면 낯선 방식일지 모른다. 콘텐츠를 기획하고, 편집하고, 검토하는 시간을 제외하더라도 1개월은 걸린다. 모두 고려하면 한 웹사이트를 만드는 데 2–3개월 정도 걸리는 게 일반적이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운영자 민구홍 씨는 워크룸 편집자(디자이너, 프로그래머)에서 AG 랩 디렉터가 됐다. 덩달아 민구홍 매뉴팩처링에도 달라지는 점이 있을까?

없다. 그리고 없기를 바란다.

불과 몇 년 전에 운영되던 웹사이트에서도 끊어진 하이퍼링크를 발견하곤 합니다. 웹사이트는 영구적으로 보존하기 어려운 매체입니다. 이런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웹사이트는 강력하지만 동시에 허약한 매체입니다. 만질 수도 없고, 일반적으로 웹 브라우저 없이는 열람할 수조차 없죠. 그리고 세입자가 방을 빌리듯이, 웹사이트도 돈을 내서 도메인의 일정 용량을 사용합니다. 이렇게 되면 한곳에 모든 데이터가 모이죠. 자칫하면 데이터를 관리하는 회사가 정보를 통제하는 위험성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어요. 예컨대 비커 브라우저(Beaker Browser)를 사용하면 사용자의 컴퓨터는 클라이언트이자 서버가 됩니다. 즉, 사용자는 중앙 서버를 거치지 않고 서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죠. 데이터를 조각내서 공유하는 토렌트(Torrent)와 유사해요. 웹사이트와 P2P(Peer-to-peer)가 결합한 형태로 인터넷의 탈중앙화를 꾀하는 시도죠. 이렇게 의문을 제기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웹사이트는 ‘영원한 베타(perpetual beta)’ 버전입니다. 서버를 운영하는 데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폐쇄되죠. 링크가 깨지는 경우도 많고요. 하지만 웹의 존속은 제작자의 마음에 달려있다고 생각해요. 예컨대 전시나 행사를 위한 웹사이트일 경우, 일정 기간 필요한 정보를 모두 전달하면 더 이상 유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도록이나 아카이브로 사용하는 웹이라면 오래 존재할 수 있죠. 예컨대 최초의 웹사이트는 30년 넘게 지금까지도 운영 중이에요. 똑같은 내용과 똑같은 형식으로 말이죠. 그래서 웹의 생명이 짧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습니다. 필요에 따라서 어떤 웹사이트는 오랫동안 지속하기도 하니까요.

민구홍이 가진 가장 장식적인 옷은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타이포그래피의 수많은 강조법 가운데 특히 ‘가운데 맞추기’를 좋아한다. 고전적이긴 하지만, 그저 양쪽 여백을 동일하게 설정하는 것만으로 손쉽게 콘텐츠를 강조하고 장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따금 극적인 효과를 주기도 하고. 그 뒤에는 콘텐츠 자체에만 집중하면 된다. 좋아하는 만큼 즐겨 사용하기도 한다. 이 방법 앞에서 글자 크기를 키우거나 글자체를 바꾸는 데는 상대적으로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게다가 글자를 얼마나 키울지, 어떤 글자체로 바꿀지, 합당한 또는 합당해 보이는 이유를 찾다 보면 억지스러워질 때도 있다. 이런 취향은 당연히 내 의생활에도 반영된다. 로고나 메시지 하나 없는 검은색 티셔츠일지라도 몸에 걸치는 순간 내게는 지나치게 멋을 부리는 셈이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안그라픽스를 거쳐 2016년부터는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겸 워크룸에 기생하고 있습니다. 워크룸에 기생하는 데 어려움은 없나요? 자율성은 얼마나 보장되나요?

‘기생’은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주요한 생존 전략입니다. 회사를 설립한 2015년 무렵에는 생산자들이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독립 스튜디오를 꾸리는 게 유행 아닌 유행이었어요. 저도 그 유행에 편승하고 싶었지만, 자본과 용기가 부족한 탓에 결국 제가 일하던 안그라픽스에 기생하기로 했죠. 그 덕에 숙주에게 노동력과 얼마간의 즐거움을 제공하면, 숙주의 동산과 부동산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워크룸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워크룸은 영리를 추구하는 회사지만, 이름처럼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는 생산자들이 모인 ‘작업실’이기도 해요. 소정 근로 시간(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에 맡은 업무만 무리 없이 수행하면 워크룸에서는 전시, 강연, 기고 등 외부 활동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편이에요. 특히 편집자 김뉘연 씨는 워크룸의 전 디자이너 전용완 씨와 미술가로 활동하며 출판사 ‘외밀’을 운영하고, 디자이너 유현선 씨는 ‘파일드(Filed)’의 일원이기도 해요. 구성원들이 회사에 멍에를 지지 않고, 후회나 미련 없이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아슬아슬한 환경이 역설적으로 워크룸의 에너지가 됩니다. 게다가 출판, 기획, 편집, 디자인, 웹사이트 구축, 소프트웨어 제작, 교육 등을 한데 수행하는 스튜디오가 드문 만큼 적지 않은 자극이 되고요. 2020년에는 이름을 밝힐 수 없는 회사 두 곳에서 파격적인 조건으로 민구홍 매뉴팩처링 인수를 제의받았는데, 고민 끝에 결국 워크룸에 남은 건 이런 환경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었어요. 지갑은 지금보다 훨씬 두둑해졌겠지만, 행복의 총량을 따져보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도 하고요. 혹시 민구홍 매뉴팩처링 인수에 관심 있는 분은 참고해주세요.

다른 질문이 있습니다.

[email protected] 앞으로 관련 내용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신속한 답변은 장담할 수 없지만, 『민구홍 매뉴팩처링 이메일 응대 지침』에 따라 성심성의껏 임하겠습니다. 물론 위급한 상황이라면 회사가 기생하는 워크룸으로 직접 오셔도 괜찮습니다. 단, 회사와 숙주 모두 간판을 내걸지 않은 탓에 거리에서 멋쩍게 얼마간 서성일 각오를 하셔야 합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 G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