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2015년 이래 진행한 길고 짧은 인터뷰를 꼼꼼히 정리한 뒤 다시 무작위로 늘어놓은 「자주 하는 질문」을 통해 회사 또는 운영자에 관한 궁금증이 모쪼록 해소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단, 질문의 시기에 따라 현재와 다른 사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편, 질문의 어조에 따라 언급한 인물에 대한 존칭을 생략하기도 했습니다. 「자주 하는 질문」을 섭렵한 뒤에도 궁금증이 도무지 해소되지 않는다면 [email protected] 앞으로 소상히 말씀해주세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인정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단, 답장은 이메일 대신 언젠가 「자주 하는 질문」에서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2015년 시청각에서 「회사 소개」를 발표하며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일반적인 회사 소개와 달리 회사에서 하지 않는 일을 소개했죠.
사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무엇을 하는 게 좋을지 전혀 몰랐기 때문에 하지 않는 일을 소개하기로 마음먹었죠. 회사라면 모름지기 무엇을 해야 하는지보다 하지 않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인공지능을 이용한 ‘바이브 코딩’(Vibe Coding)이 그야말로 유행입니다. 이에 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저도 물론 이따금 바이브 코딩을 이용하곤 합니다. 하지만 아무런 계획 없이 처음부터 모두 인공지능에 맡겨버린다면 말 그대로 분위기(vibe)에 취해 이도 저도 아닌 결과물을 마주하게 됩니다. 제게 바이브 코딩은 술이나 마약 등 약물에 의존한 코딩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몹시 짜릿해도 뒷맛이 개운하지 않죠.
민구홍 님이 속한 웹의 세계에서는 그래픽 디자인 전공이 아니어도 충분히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또는 본인의 경우가 특수한 걸까요?
저는 디자인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운 좋게 주위에 솜씨 좋은 선생님, 선배, 동료가 있었고, 그들 바로 옆에서 그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지켜보며 디자인을, 정확히는 ‘디자인’이라는 기술을 익힐 수 있었어요. 특히 그들이 디자인하며 결정을 내릴 때 그 이유를 따져보는 게 도움이 됐죠. 제가 디자인을 익힌 또 다른 학교인 구글(Google)의 도움도 많이 받았고요. 요즘에는 챗GTP(ChatGTP)의 도움까지 받죠. 디자이너로서 저는 일반적이거나 모범적인 사례는 아니에요. 일종의 우화(寓話)로 보는 게 맞겠죠.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목표 없이 우연히 또는 느닷없이 디자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만큼 당연히 따라야 할 모범이나 따르고픈 모범 같은 것도 없었고요. 무엇보다 모범을 따른다고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는 보장도 없죠. 모범이 있다면, 그를 참고해 자신에 맞게 편집하는 게 중요하겠죠. 지금 제 모습은 그저 제가 발 디딘 자리에서 최고의 선(善), 즉 하루 24시간 가운데 여덟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는 상태를 더듬어본 결과 또는 과정입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웹진 『비유』를 운영하는 연희문학창작촌에 전하픈 말이 있다면요?
이제 웹사이트를 매체로 삼는 작가 또한 엄연히, 그리고 마땅히 연희문학창작촌에 입주할 때입니다. 웹사이트를 문학답게 문학으로 포섭하는 것, 문학이 ‘오늘’과 어깨동무하는 또 다른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그게 제2, 제3의 한강이 아닌 새로운 무언가를 만드는 길일 테고요.
구글(Google)을 통해 매듭 묶는 방법, 이케바나(いけばな), 디자인 등 갖가지 실용적인 기술을 익혔다는 점도 재미있었어요.
웹은 제게 또 다른 학교입니다. 요즘에는 누구에게나 그렇지 않을까요? 물론 잘못된 정보가 적지 않지만, 거기서 옥석을 가려내는 것도 학습의 일부예요. 물론 조금 더 수월하게 디자인을 익힌 데는 안상수 선생님 연구실, 안그라픽스, 워크룸을 거치면서 솜씨 좋은 생산자들과 교유한 덕도 있죠. 『이제껏 배운 그래픽 디자인 규칙은 다 잊어라. 이 책에 실린 것까지.』를 번역하는 과정도 공부가 됐어요. 실제로 이 책은 여러 학교에서 그래픽 디자인 교재로 사용되고, 네덜란드의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익스페리멘털 젯셋(Experimental Jetset)은 이 책을 거의 성경처럼 여기죠. 차례만 읽어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책 제목처럼 언젠가는 잊어버려야겠지만요.
텍스트를 주원료로 삼는 만큼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제품은 한국어만으로 이뤄지거나 한국어를 포함한다. 한국어에 관한 생각이 궁금하다.
그건 내가 한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것처럼 그야말로 우연이다. 한글도 마찬가지다. 한글을 따라다니는 ‘고도로 진화한 문자’ 같은 수식어는 언뜻 바로 손에 잡히지 않는다. 우연에 관해 말하는 건 아무래도 쉽지 않다. 내가 한국어를 좋아하는 건 단지 그게 (HTML, CSS, 자바스크립트처럼) 내가 곧잘 쓸 수 있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한국어와 영어보다는 둘의 문자 체계, 즉 한글과 로마자에 관해 이야기하는 게 나을 듯하다. 몇 년 전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구글 폰트 + 한국어 웹사이트를 만드는 데 참여한 적이 있다. 그 덕에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구글 폰트의 친구가 됐고. 한글은 닿자 열아홉 가지와 홀자 스물한 가지로 이뤄진다. 둘은 서로 조합돼 한 글자가 되고, 그 조합의 합은 물경 1만 7,388가지나 된다. 이런 특징은 한글 폰트를 제작할 때는 물론이고 특히 웹에서 사용할 때 영향을 미친다.

노토 산스(Noto Sans)를 기준으로 로마자 버전은 455킬로바이트지만, 한글 버전은 2.2메가바이트에 달한다. 작은 차이 같지만 브라우저가 폰트를 완전히 내려받는 단 몇 초 동안에는 페이지가 깜빡이며 제대로 표시되지 않는다. 구글은 이 깜빡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심지어 머신 러닝 기술까지 도입했다.
나는 때로는 구글이 이 깜빡임을 완전히 없애는 것과 번역 기술 개선을 통해 언어 민주화를 이룩하는 것 중에 어느 쪽이 먼저가 될지 궁금하다. 영어권 사용자에게는 도시 전설처럼 들릴지 모르겠다. 그런데 웹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일이 일어난다.
이제 웹사이트가 무엇인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시 질문해보고 싶어요. 설령 같은 답이 돌아오더라도요. 대관절 웹사이트란 무엇인가요?
글쎄요. 어쨌든 우리는 그곳을 ‘웹사이트’라 불렀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 말이 사전적으로 규정하는 바는 조금 협소해 보입니다. 웹사이트의 내일은 기술과 인간이 만나는 지점에 있습니다. 여전히 웹사이트는 정보와 예술, 기술과 인문학이 어우러진 공간이 될 테고, 우리는 이곳에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새로운 사고방식을 발전시키며 우리가 존재하는 새로운 방식을 모색할 수 있지 않을까요? T.S. 엘리엇의 말마따나 “우리는 출발점으로 돌아와 그곳을 처음으로 알게 된다.” 우리가 웹사이트를 통해 마주하는 경험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끝없는 디지털 공간을 배회하다 보면 우리가 알게 되는 건 결국 나 자신, 나아가 우리겠죠.
2019년부터 매주 금요일마다 ‘현대인을 위한 교양 강좌’를 표방하는 ‹새로운 질서›를 진행한다. 개설될 때마다 신청이 마감되는 이 강좌의 정체는 무엇인가.
‹새로운 질서›는 2016년 크리스마스 이튿날 워크룸에서 열린 비공개 웹 세미나에서 시작됐다. 시적 연산 학교를 마치고 뉴욕에서 막 돌아온 참이었는데, ‘현대인을 위한 교양’으로서 웹 기술을 익혀두면 워크룸 구성원들이 일하는 데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서였다. 그 뒤 여러 특강과 워크숍,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강의 등을 통해 조금씩 커리큘럼이 다듬어져 지금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200여 명의 ‘‹새로운 질서› 친구들’과 추억을 쌓았고, 이들 가운데는 국립현대미술관의 «프로젝트 해시태그»(Project Hashtag, 2020–) 사업에 선정돼 느닷없이 미술계로 편입되기도 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 ‹새로운 질서›, 웹사이트. 웹사이트 제목인 ‘새로운 질서’는 1초마다 낱자별로 새로운 질서를 부여받는다. 사진 제공: 작가
‹새로운 질서›에서는 기술로서 디자인을 다루기도 하지만, 웹 디자인 강좌가 아니다. 오히려 ‘실용적이고 개념적인 글쓰기’ 강좌에 가깝다. ‹새로운 질서› 친구들은 자신의 관심사(자신이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등)를 토대로 자신만의 콘텐츠를 생산하고, HTML, CSS, 자바스크립트 같은 컴퓨터 언어를 익혀 콘텐츠에 단계별로 새로운 질서를 부여해본다. 기술을 다루므로 실패에 익숙해지고, 자신의 한계를 파악해 욕망을 발산할 우회 전략을 고민해보기도 한다. 글쓰기의 결과물은 결국 웹사이트지만, 사실 더욱 가치 있는 건 그 과정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웹 디자인에 심취한 계기가 있다면?
열한 살 무렵인 1995년 야후! 지오시티에 첫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사랑하는 친구를 위해서였다. 마룬색 배경에 그를 행복하게 해줄 글과 이미지 사이로 MIDI 배경음악이 흘렀다. 하지만 2009년 야후!에서 지오시티 운영을 종료하면서 이제 그 웹사이트는 내 꿈속에만 있다. 어쨌든 그 이후로, 반드시 웹사이트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HTML, CSS, 자바스크립트를 이용해 나 또는 누군가를 위해 뭔가 만드는 건 내 오랜 즐거움 가운데 하나였다. 내 기준에서 쉽고 저렴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건 20여 년 전에 만든 것과 엊그제 만든 게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는 점이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웹 디자인 에이전시가 아니다.
이후 안그라픽스로 자리를 옮기고, ‘정체불명의 독립 사업부’를 운영하게 된 까닭은?
워크룸에서 일한 지 5년째 되던 해였어요. 안그라픽스의 안마노 씨에게 연락을 받았죠. “같이 일합시다.” 안그라픽스의 다음 단계를 준비하던 참이었고, 저를 디자인계로 이끌어준 안그라픽스에 힘을 보탤 기회가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해왔었어요. 그렇게 ‘디렉터’라는 직함과 함께 ‘안그라픽스 랩’(약칭 및 통칭 ‘AG 랩’)이라는 정체불명의 독립 사업부를 맡게 됐죠. 사실 자리를 옮기기로 마음먹은 까닭은 사실 사소합니다. 사무실이 저희 집과 정말 가까웠거든요. 연남동 공원(경의선숲길) 옆에 있는데, 도보로 2분 거리입니다. 이제 운영한 지 1년 정도 됐는데, AG 랩은 안그라픽스라는 소프트웨어를 판올림하는 데 필요한 애드온 또는 플러그인 같은 게 아닐까 싶어요. 빨리 역할을 다하고 사라지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좀 더 적극적으로, 즉 무엇을 하는 회사인지 소개할 수 있게 됐다고 보면 될까. 그런데 처음에는 완전히 반대(무엇을 하지 않는지)였다. 왜 그랬던 건가? 좀 더 구체적으로 밝힌다면?
「회사 소개」는 일종의 선언문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선언문들이 풍기는 엄정함과는 거리가 있다. 회사를 만들었으니 소개는 해야겠는데, 무엇을 하는 게 좋을지 몰랐던 내게는 그만한 차선책이 없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무엇을 하는지, 하지 않는지가 아니라 규정하는 것 자체에 있다. 그리고 일단 운신의 폭을 넓히는 데는 무엇을 하지 않는 쪽을 규정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미술대학에서 작가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는 강사입니다. 무엇부터 시작하면 좋을까요?
아무래도 약력 쓰기겠죠. 작가라면 앞으로 두고두고 사용할 자신의 약력만큼은 제대로 쓰고 편집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안그라픽스에 입사할 당시 디자인과 가까운 삶을 살 거라고 예상하셨나요? 전공과 다른 길을 걷는 것에 대한 마음이 궁금합니다.
안그라픽스에는 날개집에서 맡아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길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입사했어요. 대학교 4학년, 스물여섯 살 때였죠. 우연이라면 우연이었고, 그게 첫 사회 생활이었죠. 그러다 보니 인터뷰에서 이제껏 제 전공과 지금 하는 일에 관한 질문, 또는 “저는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았는데, 디자이너로 일할 수 있을까요?” 같은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답변은 한결같아요. 저는 제가 다닌 학교와 제 전공이 자랑스럽지만, 그렇다고 추앙하지는 않습니다. 즉, 제 학교와 전공이 제 앞날을 고스란히 결정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문학을 전공한 덕일까요. 그럼에도 시인이나 소설가로 살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었어요. 단지 글을 잘 쓰고, 또 잘 다루고 싶었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글의 형식에 관한 기술인 타이포그래피에까지 관심을 두게 됐고요. 그러다 안상수 선생님과 인연이 닿은 거랍니다. 타이포그래피 또한 그 관심의 끝이라기보다는 여러 징검다리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언젠가는 스타트업을 운영하거나 힙합 음악을 발표하거나 일본으로 이민을 갈지도 몰라요. 그게 제가 생각하는 제 글쓰기에 도움만 된다면요. 결국 문학이 제게 가르쳐준 건 언어를 다루는 법, 그리고 그 언어로 세계를 엮는 방식인 것 같아요. 그게 저술이든, 편집이든, 번역이든, 디자인이든, 프로그래밍이든 저는 늘 글을 쓰고 있다고 느낍니다.
바야흐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다. 누군가는 2020년을 코로나 원년으로 삼기도 한다. 2020년 4월 11일 오전 11시에 열린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 대응 정례 브리핑에서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거듭 말하지만 코로나 발생 이전의 세상은 이제 다시 오지 않는다.” 권 부본부장의 어조는 전날 브리핑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2016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전해진 조지 마이클(George Michael)이 세상을 떠났다는 보도 이후 근래에 접한 발언 가운데 가장 충격적이었다. 권 부본부장의 발표 이후 어느덧 3개월여가 지났다. 그 사이 변화한 현실을 어떻게 체감하는가?
가장 직접적인 것은 추가 소비가 늘고 신체에 변화가 생겼다는 점이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피하다 보니 지하철이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보다는 택시를 이용하게 됐고, 매주 일요일에 마스크를 구입한다. 비말이나 공기를 통한 감염을 방지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무엇보다 내가 무증상 감염자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 집 밖에 있을 때는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 항상 마스크를 착용한다. 그러다 보니 머리와 귀가 만나는 부분에 마스크 밴드의 너비만큼 골이 패였고, 특히 어릴 때 야구를 하다 다쳐서 수술한 오른쪽 귀 뒤쪽에 이따금 가벼운 통증을 느낀다. 앞으로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면 얼굴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 부분만 뙤약볕에 그을릴 게 뻔한데, 이를 어떻게 대비할지 고민하고 있다. 게다가 몸무게가 점점 줄고 있다. 손을 자주 씻으면서 전보다 더 몸을 움직이기 때문인 듯하다.
10년 만에 민구홍 매뉴팩처링 웹사이트를 리뉴얼했다. 이 또한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제품’인가? 그리고 이번 작업에서 중점을 둔 것은?

리뉴얼보다는 중간 점검에 가깝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제품처럼 보이는 것도 제품이지만, 제품처럼 보이지 않는 것, 예컨대 글자, 구절, 문장, 문단, 글, 실행되지 않은 계획, 심지어 길가에 버려진 농구공과 그 옆에 놓인 돌멩이마저 제품이 된다. ‘제품’이라 부르기만 한다면 말이다. 한편, 이 작업에서는 다음을 모토로 삼았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면 과거를 편집할 수밖에 없다.”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입니다. 가장 처음 취업한 곳부터 지금까지의 과정은?
디자인에 발을 들이게 된 건 안상수 선생님 덕입니다. 대학교 3학년 때 우연히 선생님을 알게 됐어요. 그리고 전역한 뒤 대학교 4학년 1학기 때부터 안상수 선생님 연구실인 ‘날개집’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기 시작했고요. 졸업 작품만 제대로 마무리하는 조건으로 학교에 취업계를 제출하고 매일 날개집으로 출근했죠.
날개집은 디자인 스튜디오이자 제게 또 다른 학교였어요. 사실 제가 하는 일은 별로 없었는데, 회의에 참여해 말을 얹거나 연구원들이 디자인을 어떻게 시작하고 끝내는지 구경하는 정도였죠. 그때 만난 김병조, 김동신, 박찬신 씨는 제 인디자인 선생님이기도 하죠.
그러다 안그라픽스와 연계된 프로젝트에 참여하다 4학년 2학기 때 자연스럽게 안그라픽스로 자리를 옮겼죠. 그때는 안그라픽스 전체 임직원이 100명이 넘는 규모였죠. 거기서 6년 정도 일했고요. 그러다가 시적 연산 학교에 갔다가 워크룸으로 자리를 옮겨 7년 정도 일하고, 다시 안그라픽스로 자리를 옮겨 2022년 2월 22일부터 지금까지 안그라픽스 랩 디렉터로 일하고 있고요.
따지고 보면 대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죠. 제가 전역할 무렵 저희 부대에 국가정보원 취업을 준비하던 친구들이 꽤 많았는데, 안상수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저도 국정원 요원으로서 국가에 헌신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1953년 설립 이래 광유계 오일인 WD-40만 주력으로 생산하는 WD-40 컴퍼니와 달리, 회사에서 취급하는 제품은 글, 소프트웨어, 음식, 열쇠고리, 포스터, 냉장고 자석에 이르기까지 퍽 다양한 편입니다. 제품과 그 종류는 어떻게 결정되나요?
운영자의 관심사를 비롯해 여건과 파트너 등에 기인하지만, 때로는 제품 기획 단계에서 인터넷 검색 결과에 따라, 즉 제작 과정을 손쉽게 가늠할 수 있는지에 따라 종류 자체가 제한을 받기도 합니다. 해답은 인터넷 밖에 있을 수 있지만, 회사에서는 이 과정에 인터넷 검색에 필요한 정도 이상의 노동력과 시간을 투자할 계획이 없습니다. 회사 특성상 아무래도 자유롭게 이동하는 데 제한이 있으니까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웹사이트는 무엇인가?
애플(Apple)처럼 적당히 단단하면서 상큼한 것, 또는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처럼 미세하고 부드러운 것 사이에 있는 어떤 것.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관한 소논문을 쓰다가 한 가지 문제에 봉착했습니다. 『레인보 셔벗』 포스터나 표지에 등장하는 인물은 누구인가요?

잘 모르겠습니다. 민구홍 씨가 아닌 것 만큼은 분명합니다. 해당 인물을 실은 전시 포스터를 처음 제안한 그래픽 디자이너 강문식 씨에게 여쭤보시면 어떨까요?
모든 이름에는 크고 작은 의미가 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
회사 이름은 ‘민구홍’과 ‘매뉴팩처링’으로 구성된다. 전자는 다름 아닌 내 이름이다. 후자인 ‘매뉴팩처링’은 일반적으로 ‘원재료를 인력이나 기계력 등으로 가공해 제품을 대량생산하는 산업’을 뜻하지만, 야구에서는 ‘도루나 진루타, 희생타 등 안타가 아닌 방법으로 득점하는 기술’을 가리키기도 한다. 나는 대부분의 일에서 이름을 짓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편이다. ‘매뉴팩처링’이라는 단어가 품은 기능주의와 기회주의를 실천하려는 의지를 회사 이름에 드러내고 싶었다.
이야기하는 동안 눈치챘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이다. 나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쉽게 기뻐하고 쉽게 상처받기도 한다. 이는 내게 짐이 되곤 한다. 그런데 회사 뒤에 있으면, 생활과 일을 분리해 이런 것에 어느 정도 무신경해질 수 있다. 공연 예술가 앤디 코프먼(Andy Kaufman)은 자신의 또 다른 자아를 투영할 요량으로 토니 클리프턴(Tony Clifton)을 창조해냈다. 위악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지만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내게 앤디의 토니인 셈이다.
최근에 우상이라 부를 만한 대상이 있는가?
우상이라 부르는 게 맞을지 모르겠지만, 크고 작은 회사의 홍보 담당자로부터 영감을 얻는다.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를 홍보하는 온갖 전략을 눈여겨보고 있다.
사는 곳은 어디인가?
대한민국 서울이다. 북녘에 계시는 김 선생님의 잠재적 주요 타깃이기도 하다.
웹사이트를 만드는 데 필요한 비용은 어느 정도가 적절할까? 비용 앞에서는 누구나 숨을 죽이게 되는 만큼 어쩌면 가장 중요한 질문일지 모른다.
일정, 웹사이트의 규모나 필요한 기능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적게는 몇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이 들기도 한다. 작업자마다 요율도 다를 것이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단행본 한 권을 제작하는 데 필요한 전체 비용을 기준으로 삼는 편이다. 기획, 편집, 디자인 같이 매체와 무관한 일뿐 아니라 제작, 유통, 관리 등도 웹사이트를 만드는 일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비용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도메인 구입 비용, 서버를 임대하는 비용, 트래픽이 초과됐을 때 트래픽을 초기화하는 비용 등이다. 모든 프로젝트의 예산이 넉넉한 건 아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고객의 마음을 헤아려 어떤 방식으로든 일이 진행되도록 예산에 적합한 방식을 제안하기도 한다. 대신 ‘회사 소개’라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주업무에 입각해 어떤 방식으로든 회사를 소개해달라고 주문하는 식이다.
다시 첫 번째 질문으로 돌아와서 묻고 싶습니다. 워크룸과의 관계를 가리키기 위해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소개할 때 ‘기생’한다는 표현을 하는데요. 워크룸이 출판사이기에 이 표현은 마치 웹/온라인과 실재/오프라인의 관계를 이해하는 민구홍 님의 용어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워크룸이나 민구홍 님과 클라이언트와의 관계에서뿐 아니라 (본인의 작업을 지칭하는 단어로 말하자면) “제품/생산물”에서 웹/온라인과 실재/오프라인에 대한 이러한 이해가 어떻게 나타난다고 생각하나요?
‘제품’은 그저 ‘회사’를 표방하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기술을 거친 결과물을 가리키는 적당한 어휘를 고민한 결과입니다. 여러 제품을 통해 다뤄온 매체 가운데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특히 사랑하는 웹사이트는 특성상 그 자체로 대량으로 복제되고 소비되는 만큼 사명(社名)에 당당히 자리한 ‘매뉴팩처링’(manufacturing)의 본래 의미(물질 또는 구성 요소에 물리적이거나 화학적인 작용을 가해 새로운 제품을 대량 생산하는 일)와도 상통한다고 생각했습니다.
1인 회사인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원활하게 운영하려면 결국 무언가에 기댈 수밖에 없는 만큼 ‘기생’이라는 어휘에서는 회사의 이런 운명이 가감 없이 드러납니다. 이는 웹사이트가 지닌 속성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웹에서는 거의 모든 일이 웹 브라우저로 수렴하죠. 웹 브라우저를 거치지 않으면 웹사이트는 사용자에게 도달하지 않습니다. 요컨대 웹사이트는 태생적으로 웹 브라우저에 기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허약함과 불완전함이 웹사이트라는 매체를 계속 탐구해볼 가치를 만들어내고요.
한편,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2022년 2월 22일 숙주를 워크룸에서 안그라픽스의 정체불명 독립 사업부 안그라픽스 랩(Ahn Graphics Lab, AG Lab)으로 옮겼습니다. 앞선 답변과 관련해 저에게는 ‘디렉터’라는 직함이 하나 더 추가됐죠. 숙주는 달라졌지만 『2022부산비엔날레』(Busan Biennale 2022)나 『거의 정보가 없는 전시』(An Exhibition with Little Information)처럼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필요하다면 워크룸과도 언제나 함께입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기생 방식도 공생에 가깝게 진화하는 셈이고, 이는 ‘기생’이라는 어휘를 사용하기로 마음먹은 무렵부터 고려한 바이기도 합니다.
넷 아트가 뉴 미디어 아트, 인터랙티브 아트 같은 현대 미술의 흐름과도 이어지는 것 같은데요?
적확한 지적입니다. 이제는 그런 구분이 무의미할 정도죠. 예컨대 로이 애스콧(Roy Ascott)이 주창한 ‘텔레마틱 아트’(Telematic Art)나 제프리 쇼(Jeffrey Shaw)의 인터랙티브 설치 작품은 넷 아트가 추구한 가치와 포개지며 기술과 예술의 결합, 관객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라파엘 로자노헤머(Rafael Lozano-Hemmer)의 「벡터 고도」(Vectorial Elevation)에서 관객은 웹사이트를 통해 도시의 조명을 제어할 수 있었고, 애런 코블린(Aaron Koblin)의 「조니 캐시 프로젝트」(The Johnny Cash Project)는 웹사이트를 통해 전 세계 사람들이 함께 뮤직비디오를 만들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했죠.
넷 아트는 웹사이트를 정보의 저장고를 넘어 예술가의 상상력을 담는 그릇이자 관객과 소통하는 인터페이스, 나아가 새로운 미학적 경험을 만들어내는 공간으로 다시 정의했습니다. 동시에 디지털 시대의 아방가르드로서 우리에게 웹사이트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했죠. 벤야민이 말했듯 기술적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은 그 본질을 바꿉니다. 넷 아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복제와 변형, 참여가 작품의 본질이 되는 새로운 예술 형식을 만들어냈고요. 이는 그 자체로 우리에게 디지털 시대의 예술, 나아가 우리의 존재 방식에 관해 곱씹어볼 기회를 제공합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여러 방식으로 회사를 소개하는 데 주력하는 이유와 연결되는 것 같다.
정확하다. 소개는 반드시, 그리고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니 그 일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졸업생입니다. 웹사이트상에서 이뤄지는 타이포그래피만의 특징이 있을까요?
2022년 초에 운 좋게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에 직접 가서 강연할 기회가 있었는데, 여기서 할머니, 딸, 손녀가 함께한 사진을 보여주며 웹사이트는 책의 자녀, 즉 진화한 종이 책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할머니가 종이 책이라면, 딸은 웹사이트고, 손녀는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볼 수 있는 또 다른 무엇이라고요. 웹사이트는 진화한 종이 책답게 지면보다 공간적인 제약이 덜한 편입니다. 제작 비용에 영향을 미치는 판형이나 쪽수 같은 개념이 흐릿하니까요. 제 경험상 지면용 타이포그래피를 위한 수치를 웹사이트에 그대로 적용하면 어딘가 조금 작고 좁고 빽빽한 느낌을 받습니다. 지면의 일반적인 본문 글자 크기인 10포인트를 픽셀로 환산하면 13.5픽셀에 가까운데, 저는 웹 브라우저상에서 기본으로 설정된 본문 글자 크기가 16픽셀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18픽셀이나 20픽셀 이상이 적절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고요. 글줄 사이 공간도 지면보다 조금 더 넉넉한 게 좋다고 생각해요. 글이 긴 경우 문단과 문단을 들여쓰기가 아닌, 한 줄 공백으로 구분하는 것도 그런 이유겠죠. 한편, 웹사이트는 발광하는 화면, 즉 RGB 색상으로 구현되는 만큼 흑백의 대비가 지면보다 큰 편이라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안그라픽스를 거쳐 2016년부터는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겸 워크룸에 기생하고 있습니다. 워크룸에 기생하는 데 어려움은 없나요? 자율성은 얼마나 보장되나요?
‘기생’은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주요한 생존 전략입니다. 회사를 설립한 2015년 무렵에는 생산자들이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독립 스튜디오를 꾸리는 게 유행 아닌 유행이었어요. 저도 그 유행에 편승하고 싶었지만, 자본과 용기가 부족한 탓에 결국 제가 일하던 안그라픽스에 기생하기로 했죠. 그 덕에 숙주에게 노동력과 얼마간의 즐거움을 제공하면, 숙주의 동산과 부동산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워크룸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워크룸은 영리를 추구하는 회사지만, 이름처럼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는 생산자들이 모인 ‘작업실’이기도 해요. 소정 근로 시간(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에 맡은 업무만 무리 없이 수행하면 워크룸에서는 전시, 강연, 기고 등 외부 활동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편이에요. 특히 편집자 김뉘연 씨는 워크룸의 전 디자이너 전용완 씨와 미술가로 활동하며 출판사 ‘외밀’을 운영하고, 디자이너 유현선 씨는 ‘파일드(Filed)’의 일원이기도 해요. 구성원들이 회사에 멍에를 지지 않고, 후회나 미련 없이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아슬아슬한 환경이 역설적으로 워크룸의 에너지가 됩니다. 게다가 출판, 기획, 편집, 디자인, 웹사이트 구축, 소프트웨어 제작, 교육 등을 한데 수행하는 스튜디오가 드문 만큼 적지 않은 자극이 되고요. 2020년에는 이름을 밝힐 수 없는 회사 두 곳에서 파격적인 조건으로 민구홍 매뉴팩처링 인수를 제의받았는데, 고민 끝에 결국 워크룸에 남은 건 이런 환경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었어요. 지갑은 지금보다 훨씬 두둑해졌겠지만, 행복의 총량을 따져보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도 하고요. 혹시 민구홍 매뉴팩처링 인수에 관심 있는 분은 참고해주세요.
2021년 가장 즐거웠던 순간을 되돌아 본다면?
민구홍 매뉴팩처링과 민구홍 개인으로 나뉠 수 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가장 즐거운 순간은 2018년 구글에 이어 배달의민족과 어깨를 나란히 했을 때다. 2021년 한글날을 맞아 배달의민족, 티슈오피스와 ‘을지로체’의 세 번째 버전인 ‘을지로오래오래체’를 소개하는 몇 가지 웹사이트를 만들었는데, 첫 화면에서 을지로체로 쓰인 ‘민구홍 매뉴팩처링 × 배달의민족’이라는 문구를 마주한 순간, 잠시뿐이었지만,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 온 세상을 굽어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처럼 누군가의 명성에 기대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소개할 때만큼 짜릿한 순간도 드물다. 한편, 민구홍 개인에게 가장 즐거운 순간은 생각건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킬 수 있으므로 밝히기 곤란할 것 같다. 아쉽지만 나와 당사자 둘만의 추억 속에 놓는 편이 좋겠다. 독자 여러분께 양해를 구한다.
친구에게 민구홍 매뉴팩처링 공식 웹사이트에 접속해 「회사 소개」로 연결된 파란색 링크를 응시하는 명상법을 추천받았습니다. 이제 여섯 달째인데, 효과가 있는 것 같기는 합니다. 그나저나 웹사이트는 언제 업데이트되나요?
아직은 회사를 소개하는 데 집중하고 싶습니다. 회사 웹사이트의 또 다른 기능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사 밖에서는 주로 무엇을 하나요? 너무 사적인 질문일까요?
궁금하시다면 밝힐 수 있는 만큼 밝혀야죠. 오래전에 “일이 곧 생활이 돼야 한다.”라는 가르침을 받은 뒤로 일과 생활을 철저히 구분하는 편입니다. 전염병이 확산하던 초기에 며칠 동안 집에서 일해봤는데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더라고요. 꼬마 때부터 알고 지낸 한국의 1세대 웹 아티스트 겸 『오무라이스 잼잼』의 작가 조경규 형은 집을 일터 삼아 놀면서 일한다고 해요. 형을 좋아하지만 이 점만큼은 저와 전혀 맞지 않더라고요. 책은 회사에서 충분히 읽으니 집에서는 주로 소파에 누워서 TV를 봐요. 그러다 저도 모르게 잠에 빠지기도 하고요. 해가 지고 선선한 바람이 불면 집 근처 경의선숲길이나 연희동 골목을 산책하죠. 요즘에는 한동안 뜸했던 클라이밍과 작곡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는 사업자 등록증이 따로 없다고 들었습니다. “사업자 등록증을 발급받는 순간 폐업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함께 추억을 쌓았을 때 인보이스를 발급받을 수는 있나요?
물론 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908A에 발급한 바 있고요.

워크룸은 민구홍 님에게 첫 번째 직장이었나요? 그곳에 다니기 전부터 워크룸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나요? 출판사이자 디자인 스튜디오인 그곳에서 일을 시작한 것이 지금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운영하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쳤나요? 워크룸에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이 있다면 무엇이었나요?
시적 연산 학교에 합격한 무렵 워크룸의 박활성 선배에게 연락을 받았어요. “같이 일합시다.” 박활성 선배를 비롯해 김형진, 이경수 선배는 안그라픽스에서 ’16시’를 기획하면서 처음 만났어요. 그 뒤로 좋아하고, 또 존경하는 선배였고, 당연히 그들과 일하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죠. 그렇게 학교를 마치고 귀국한 뒤 자연스럽게 워크룸에 입사하게 됐습니다. 사실 워크룸의 제안이 없었다면 저는 지금도 미국에 있었을 거예요. 동기들처럼 작가로 활동하거나 학교에 출강하면서요. 워크룸에서 제 역할은 편집자였지만, 가장 먼저 한 일은 밥 길(Bob Gill)의 『이제껏 배운 그래픽 디자인 규칙은 다 잊어라. 이 책에 실린 것까지.』(Forget all the rules about graphic design. Including the ones in this book.)를 한국어로 번역하고, 워크룸 웹사이트와 워크룸 프레스 웹사이트를 개편한 일이었어요. 워크룸이 구성원의 역할을 엄격하게 규정하지 않은 덕에 가능한 일이었죠. 그 뒤 ‘실용 총서’ 등 여러 책을 기획하고, 미술 및 디자인계 안팎의 크고 작은 웹사이트를 만들며 사람을 대하고 일하는 방법을 배웠죠. 이 과정에서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널리 소개할 수 있게 됐고요. 워크룸 덕에 30대 초중반을 정말이지 행복하게 보냈습니다.
이제껏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기술을 거친 크고 작은 웹사이트를 가지런히 정렬해 열람하고 싶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주로 사용하는 컴퓨터 언어가 궁금합니다.
HTML, CSS, 자바스크립트, PHP, 파이선입니다. 여기에 한국어와 영어도 포함하고 싶습니다. 프롬프트처럼 이제 자연어로도 컴퓨터와 소통할 수 있는 시대니까요.
최근 선보인 대안공간 루프의 웹사이트가 인상적이다.

일반적으로 갤러리 웹사이트는 콘텐츠와 구조 덕에 메타적인 전시의 형식을 띨 수밖에 없다. 대안공간 루프 웹사이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웹사이트의 요소는 루프의 영문명(Loop)을 암시하는 동시에 여러 페이지를 오갈 수 있는 내비게이션으로 기능한다. 접속할 때마다 무작위로 바뀌는 두 번째 ‘O’는 과거 전시와 연결되는데, 방문객뿐 아니라 루프의 구성원에게 그동안 루프에 쌓인 시간을 되새기려는 의도였다. 한편,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웹사이트 제작으로 루프에 후원했다. 한국 대안 공간의 효시인 루프의 활동을 그렇게나마 응원하고 싶었다.
한편,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여러 방식으로 회사, 즉 민구홍 매뉴팩처링 자체를 소개하는 데 주력”한다고 하는데, ‘소개’에 천착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모든 생산 활동의 기저에는 어떤 대상, 나아가 자기 자신을 소개하고픈 욕망이 있습니다. 이 욕망 앞에서는 이우환 선생님이나 버질 아블로, 마포평생학습관에서 첫 개인전을 연 미술가는 서로 다를 게 없죠. 게다가 소개는 절차상 반드시, 그리고 어차피 해야 할 일이죠. 그 일에만 집중하더라도 이야기는 시작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소개가 문제적인 까닭입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이 욕망을 조금 더 의식하고 양식화한 결과물이에요. 김창열 선생님에게 탐구해야 할 대상이 ‘물방울’이었다면, 민구홍 매뉴팩처링에는 ‘소개’인 셈이죠.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는 고사성어로 이 제품을 설명했는데, 이런 시나리오를 생각한 배경이 궁금합니다.
“당신은 바이러스입니다.” 「바이러스 시뮬레이터」에 등장하는 첫 문장입니다. 「바이러스 시뮬레이터」 속 세계에서 사용자, 즉 바이러스는 허약한 인간을 찾아내 모두 감염시켜야 비로소 평화를 맞이합니다. 허약한 인간을 감염시키면 “좋습니다.” 같은 격려 메시지를, 건강한 인간과 마주하면 미리 설정된 목숨이 하나씩 줄고 “건강 조심하세요!” 같은 안부 메시지를 받습니다. 하지만 메시지의 수신자는 반대로 감염되거나 감염을 피한 인간이기도 합니다. 「바이러스 시뮬레이터」는 지구의 입장에서 인간 또한 또 다른 바이러스라는 생태학적 사실을 드러내기보다 오히려 바이러스의 입장에서 인간을 이해해보려는 시도입니다. 때로는 누군가의 불행이 결과적으로 불행한 누군가를 포함한 모두의 행복일 수 있고, 결국에는 어느 쪽이든 평화를 맞이하리라는 몰염치한 낙관론과 어떤 인간에게는 이런 방식이 코로나19 이후 속속 등장한 감염자 추이를 보여주는 수많은 웹사이트보다 유익할지 모른다는 판단도 작용했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방식으로 고객에게 보내는 안부 메시지기도 하고요.
2022년을 앞두고 근황을 알리는 깜짝 편지를 보냈다. 의문을 품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게 인상적이었던 건 편지가 전하는 내용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편지의 주소 ‘asdf’였다.

소소하기는 하지만 5년여 동안 워크룸 안팎에서 추억을 쌓은 분들에게 소식을 알리고 싶었다. 신년 인사도 겸하고. ‘asdf’에 관해 설명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전까지는 asdf 애호가들이 운영하는 asdf.com을 참고하면 좋겠다.
추앙하는 숫자가 있나요?
제법 많습니다. 0.125, 2, 3, 6, 12, 14, 16, 24, 38, 42, 999입니다. 어떤 것은 글쓰기, 어떤 것은 또 다른 글쓰기, 즉 코딩, 어떤 것은 마이크로 타이포그래피, 어떤 것은 매크로 타이포그래피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제야 웹사이트가 ‘진보한 인쇄물’이라는 점이 이해가 간다. 인쇄물을 만드는 데는 단행본을 기준으로 적어도 2개월 정도가 걸리는데, 웹사이트는 보통 어느 정도가 걸리나?
정적 웹사이트 겸 포스터식 웹사이트는 콘텐츠가 제대로 마련되고 콘셉트가 정해진 상태라면 사실 하루만이라도 완성할 수 있다. 물론 이는 테스트를 제외한 시간이다. 어떤 웹사이트는 사용하는 데 무리가 없을 만큼 공개한 뒤 점진적으로 업데이트하기도 한다. 서울시립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와 함께한 ‹NR 베이커리›(NR Bakery, 2021)가 비슷한 경우인데, 인쇄물 작업에 익숙하다면 낯선 방식일지 모른다. 콘텐츠를 기획하고, 편집하고, 검토하는 시간을 제외하더라도 1개월은 걸린다. 모두 고려하면 한 웹사이트를 만드는 데 2–3개월 정도 걸리는 게 일반적이다.
또 다른 언어 덕에 불가능이 가능해지는군요. 뜬금없이 웹사이트의 변천사를 탐구해보고 싶네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픽셀로 이뤄진 지층을 한 겹 한 겹 벗겨내며 웹사이트의 역사를 파헤치다 보면, 그 속에 숨겨진 문화적 유물을 발견하는 디지털 시대의 고고학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듭니다.
1991년, 웹의 창시자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는 월드 와이드 웹을 소개하는 최초의 웹사이트를 만들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나아가 가장 사랑하는 웹사이트이기도 한데, 오늘날 기준으로는 소박하고 단순해 보일 수 있지만, 디지털 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죠. 요하네스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가 발명한 활자 인쇄술처럼 이 웹사이트는 정보의 민주화를 예고했습니다. 한편, 이 웹사이트는 공개된 지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처음 모습, 처음 느낌 그대로 작동합니다. 이 웹사이트 앞에서 과연 누가 웹사이트를 종이책보다 보존력이 떨어지는 매체라 단언할 수 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