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2015년 이래 진행한 길고 짧은 인터뷰를 꼼꼼히 정리한 뒤 다시 무작위로 늘어놓은 「자주 하는 질문」을 통해 회사 또는 운영자에 관한 궁금증이 모쪼록 해소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단, 질문의 시기에 따라 현재와 다른 사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편, 질문의 어조에 따라 언급한 인물에 대한 존칭을 생략하기도 했습니다. 「자주 하는 질문」을 섭렵한 뒤에도 궁금증이 도무지 해소되지 않는다면 [email protected] 앞으로 소상히 말씀해주세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인정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단, 답장은 이메일 대신 언젠가 「자주 하는 질문」에서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1953년 설립 이래 광유계 오일인 WD-40만 주력으로 생산하는 WD-40 컴퍼니와 달리, 회사에서 취급하는 제품은 글, 소프트웨어, 음식, 열쇠고리, 포스터, 냉장고 자석에 이르기까지 퍽 다양한 편입니다. 제품과 그 종류는 어떻게 결정되나요?
운영자의 관심사를 비롯해 여건과 파트너 등에 기인하지만, 때로는 제품 기획 단계에서 인터넷 검색 결과에 따라, 즉 제작 과정을 손쉽게 가늠할 수 있는지에 따라 종류 자체가 제한을 받기도 합니다. 해답은 인터넷 밖에 있을 수 있지만, 회사에서는 이 과정에 인터넷 검색에 필요한 정도 이상의 노동력과 시간을 투자할 계획이 없습니다. 회사 특성상 아무래도 자유롭게 이동하는 데 제한이 있으니까요.
이 글은 꼭 이 웹사이트의 곁가지 같기도 하네요. 한데 웹사이트를 살펴보니 ‘새로운 질서’라는 말이 자주 눈에 띕니다. 얼핏 학교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신흥종교 같기도 한데요?
둘 다 맞거나 둘 다 틀립니다. 「새로운 질서」를 시작한 건 2016년, 미국 시적 연산 학교(School for Poetic Computation)에서 수학한 뒤 한국에 돌아온 뒤였죠. “어떤 대상을 좋아하고, 급기야 사랑하게 되면 그 아름다운 마음을 주위와 나누고 싶게 마련이다.” 「새로운 질서」에서는 웹을 이루는 기본적인 컴퓨터 언어를 익혀 자신의 관심사를 재료 삼아 자신만의 웹사이트를 만들어봅니다. 매주 금요일 열리는 「새로운 질서」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하자센터, 홍익대학교 등과 어깨동무하며 핸드메이드 웹의 정신으로 자신만의 웹사이트를 만드는 즐거움을 나눕니다. 어느덧 「새로운 질서」와 함께한 친구들이 어느덧 400여 명을 넘은 것도 모두 웹사이트 덕이죠. 웹사이트가 현실과 조금 더 가까워지거나 어떤 차원에서는 이미 현실을 대체한 오늘날, 「새로운 질서」가 새로운 문해력을 익히는 동시에 자신을 향한 사랑을 확장하는 시공간이 되기를 기대할 뿐입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운영하며 디자인 전공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려웠던 점이 있었다면 알려주세요.
없었던 것 같아요. 있었더라도 어려운 점은 금방 잊는 편입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어떤 회사인지 여전히 오리무중이니까요.
제품은 어떻게 관리하나요?
제품의 종류, 제작 일자, 버전, 비고 사항에 따라 아라비아숫자와 로마자를 조합한 제품 코드를 부여해 지정된 장소나 컴퓨터 폴더에 버전별로 보관합니다.
영향받은 디자이너나 작가, 경향 같은 게 있는가?
요컨대 일상과 추억에서 영향을 받는 편이다. 특히 자주 또는 이따금 만나는 사람들이 귀감이 된다. 예컨대 박활성 선배의 실용적인 결단력, 김형진 선배의 낭만주의, 최슬기·최성민 선생의 유머 감각, 아내와 로럴 슐스트의 삶을 대하는 태도, ‘「새로운 질서」의 친구들’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 비슷한 의미로 1990년대 말 ‘닷컴 버블’이 꺼지면서 순식간에 사라진 웹 1.0의 엉망진창인 분위기도 동경의 대상이다. ‘브루탈리즘’(Brutalism), ‘반디자인;(Anti-design), ‘시대착오’ 같은 어휘로 소개되곤 하는데, 그렇게 한마디로 축약하기 어려운 ‘평범한 웹’을 향한 그리움이다.
10년 만에 민구홍 매뉴팩처링 웹사이트를 리뉴얼했다. 이 또한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제품’인가? 그리고 이번 작업에서 중점을 둔 것은?

리뉴얼보다는 중간 점검에 가깝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제품처럼 보이는 것도 제품이지만, 제품처럼 보이지 않는 것, 예컨대 글자, 구절, 문장, 문단, 글, 실행되지 않은 계획, 심지어 길가에 버려진 농구공과 그 옆에 놓인 돌멩이마저 제품이 된다. ‘제품’이라 부르기만 한다면 말이다. 한편, 이 작업에서는 다음을 모토로 삼았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면 과거를 편집할 수밖에 없다.”
늘 견지하는 모토가 있다면?
보안관님, 피트 마텔 씬데요, 음, 전화 돌려드릴게요. 빨간색 의자 옆 테이블에 놓인 전화기로요. 벽에 붙은 빨간색 의자요. 테이블 위엔 램프가 있고요. 그 왜, 전에 우리가 저쪽 구석에서 옮긴 램프 있잖아요. 전화기는 갈색 말고, 검은색이요!
1990년대를 풍미한 미국 드라마 「트윈 픽스」(Twin Peaks)의 등장인물 루시 모런(Lucy Moran)의 역사적인 첫 대사다. 이는 「새로운 질서」의 모토이기도 하다. 보안관 사무실에서 비서로 일하는 루시가 보안관에게 전화를 돌려주는 모습에서 드러나는 것은 어떤 대상(여기서는 전화기)에 대한 편집증적인 집중이다. 내게 그 대상은 이따금 아무리 우스꽝스러워 보일지라도 무엇보다 나 자신이다.
어쨌든 갑작스러운 변화 뒤에는 문득 후회나 미련이 밀려오기도 한다. “그때 알았던 것을 지금 알았더라면…”
후회나 미련은 결과적으로 어떤 선택에 대한 호기심 어린 아쉬움이다. 후회는 무엇을 선택한 것에 대한, 미련은 무엇을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어쨌든 후회나 미련 모두 몰입하면 몰입할수록 불행해지기 마련이고, 이제껏 잊고 있던 근원적 질문이 피어오른다. 나는 왜 태어났는가. 그것도 한국인 부모 사이에서. 따라서 되도록 후회와 미련에서 멀어지려 하지만, 일상이 크고 작은 선택으로 이뤄진 만큼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때 그 여성에게 조금 더 적극적으로 고백했더라면… 그때 그 선생님에게 이메일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그때 그 약물을 복용하지 않았더라면… 그때 뉴욕에 더 오래 머물렀더라면… 그때 그 아파트를 매수했더라면… 그때 그 인물에게 투표했더라면… 그때 이 원고 청탁을 거절했더라면…
숙주에 기생하는 기분은 어떤가? 그게 ‘현대적’이면서 ‘건강한’ 방식일까?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독립하는 대신 운영자의 근무지에 기생하는 방식을 취한 건 무엇보다 자본과 용기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내가 조세법에 완전히 무지하고 집에서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점도 한몫했다. 그렇게 회사는 숙주에 노동력과 얼마간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대신 운영자의 월급으로 운영비를 충당하고 숙주의 동산과 부동산, 즉 작업 공간을 비롯해 컴퓨터, 책상, 와이파이, 커피 머신 등을 이용할 기회를 얻는다. 이런 방식은 회사를 취미 삼아, 즉 이윤 창출에 대한 고민 없이 순전히 개인의 행복을 위해 운영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마련해준다. 바람은 민구홍 매뉴팩처링과 숙주가 서로 필요한 부분을 제공하며, 함께 일하는 동료의 말을 인용하면 “어색함 없이 서로 착취하며”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피를 빨아먹는다’는 일반적 의미의 기생과 다른 점이다. 이때 필요한 양분은 고객의 사랑과 관심일 테고.
자기 반영이라는 말을 들으니 큐레이터로서 제가 보는 민구홍 님은 확실히 작가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출판이 더 이상 종이 위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공개적으로 유통되는 정보를 발행하는 모든 행위를 출판으로 부르며, 확장된 정의에 익숙해져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인터뷰가 구글 독스에서 이뤄지며 열린 상태로서 수정 및 편집을 하는 것처럼, 웹 기반으로 출판되는 많은 정보는 종이책과 달리 쉽게 수정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긍정적인 것일까요? 부정적인 것일까요? 에디션 표기를 의무화하는 등의 공통화된 규정이 필요할까요?
‘자기 반영’은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덧붙은 해시태그로 볼 수 있습니다. 이를 추동하는 키워드는 ‘소개’(introduction)고요. 소개는 결국 어떤 대상을 널리 알려 다른 대상과 연결하는 일이고, 그 결과는 앞으로 함께할 친구(사람), 자랑할 만한 경력(포트폴리오), 크고 작은 경제적 이윤(돈) 등으로 이어집니다. 세 꼭짓점이 정삼각형으로 완성되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소개만큼 피할 수 없이 신성한 일이 있을까요?
웹사이트는 소프트웨어로 따지면 ‘영원한 베타’(perpetual beta) 버전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오늘과 내일이 전혀 다를 수 있죠. 출판한 뒤에도 콘텐츠를 수정할 수 있다는 점은 오프라인 출판에 익숙한 이에게는 낯설 만합니다. 반대로 온라인 출판에 익숙한 이에게는 오프라인 출판의 특성이 비실용적일지 모르고요. 이에 대해서는 긍정이나 부정을 표명하는 대신 이 특성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는 게 실용적이지 않을까요? 한편,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데 콘텐츠를 수정한 날짜를 정확하게 표기하는 일 또한 중요하지만, 저는 구글 문서상에서 이뤄지는 이 서면 인터뷰에서처럼 본문에서는 웹사이트 또한 종이 책처럼 출판물로 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웹사이트의 성격에 따라 겹꺽쇠(『』)나 홑꺽쇠(「」)로 묶어 구분하는 거죠. 처음에는 조금 어색하거나 번거롭더라도 웹사이트라는 느닷없이 새로운 출판물을 대하는 태도는 작고 사소한 것부터 시작됩니다.
일반적인 작업 과정을 설명해달라.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해결해야 하거나 해결하고픈 문제가 무엇인지 규정하는 일에서 시작한다. 2017년 밥 길(Bob Gill)의 『이제껏 배운 그래픽 디자인 규칙은 다 잊어라. 이 책에 실린 것까지.』를 번역하고 편집하면서 본받은 방법론이다. 일단 규칙을 잊을 때까지 실천해볼 생각이다. 어쨌든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야망은 분명하고 한결같다. 생화학 무기, 도청 장비, 샤워 커튼을 제외한 좋은 제품(good goods)을 제작하는 것.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입니다. 항상 크리에이티브한 작업을 하시는 것 같아요. 작업을 위한 영감은 대체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제가 마주하는 모든 대상에서 얻습니다. 다만, 그 과정은 단순히 ‘영감을 얻는다’는 말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무의식적인 차원에 있습니다.
커비 퍼거슨(Kirby Ferguson)의 『모든 것은 리믹스다』(Everything is Remix)라는 다큐멘터리가 있습니다. 제목처럼 인간의 모든 창작물은 리믹스, 즉 이미 존재하는 것을 조합한 결과물이라는 뜻이죠. 우리가 늘 손에 쥐는 아이폰이 대표적이고요. 스티브 잡스가 이야기했듯 아이폰은 이미 존재하던 MP3 플레이어, 전화기, 인터넷 단말기를 조합하고 필터링한 결과물이죠. 그렇게 이해해보면 (또는 오해해보면) 크리에이티브라는 건 결국 에디터십에서 비롯합니다. 에디터십은 이미 존재하는 것에 반응하고, 필터링하고, 연결하고, 관리하는 힘이죠. 제게 ‘크리에이티브’라는 건 그런 것 같아요.
그 다음에 필요한 건 족쇄, 즉 제약입니다. 말을 하든, 글을 쓰든, 포스터나 책, 웹사이트를 만들든 우리는 매체의 제약에 놓입니다. 거칠게 말해 제약 없이는 아무것도 시작하기 어렵죠. 설령 제약이 없다면 (또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면) 가장 먼저 제약을 창작해야 합니다. 제약을 창작하는 일이 곧 작품을 창작하는 일이라 믿는 까닭입니다. 크리에이티브의 첫 번째 대상은 제약입니다.
한편, 오가사와라 웹사이트를 포함해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모든 활동은 ‘회사 소개’의 일환이라 밝혀왔다. 사실상 2015년 시청각에서 ‘시청각 문서’로 처음 발표한 「회사 소개」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않은 셈이다. 작업물마다 이스터에그처럼 회사와 관련한 정보를 숨겨놓기도 하는데, 이번에 회사를 소개하는 전략은 무엇이었나?
해적단 모집 웹사이트에서 신청자 정보를 입력하는 필드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실제 정보가 플레이스홀더(placeholder)로 입력돼 있다. 여러 방식으로 회사, 즉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소개하는 일은 회사의 원동력이다. 가장 큰 원동력은 고객의 사랑과 관심일 테고. 하지만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모든 사람에게 사랑과 관심을 받는 사회는 별로 아름답지 않다. (한편으로는 그런 사회를 갈망하는 자신을 향한 배덕감 또한 느낀다.) 그럼에도 이번 토크에 참여한 분들만큼은 언젠가 고객으로 삼아 사랑과 관심을 받고 싶다.
30여 년이라는 시간 덕일까요? 디자인과는 무관해 보이지만 그 자체로 아우라가 느껴집니다.
바람직한 태도입니다. 어떤 대상에 아우라를 부여하는 건 디자인뿐이 아니죠. 그리고 1990년대 중반, 웹에서 움튼 새로운 공동체가 탄생했고, 특히 지오시티(GeoCities)는 이들의 커뮤니티이자 놀이터였습니다. 형광색 배경에 깜빡이는 GIF 이미지들, 방문자 카운터, 공사 중임을 드러내는 아이콘… 지금은 다소 우스꽝스럽게 보이지만 그때는 오늘날의 챗GTP(ChatGTP)처럼 최첨단이었죠. 태초의 인간이 동굴에 벽화를 그렸듯 그들은 HTML로 자신을 표현하는 법을 배운 셈입니다. 저 또한 그들 가운데 한 명이었고요.

특히 올리아 리알리나는 「버내큘러 웹」(Vernacular Web)을 통해 오늘날 웹 디자이너가 곱씹어볼 만한 초창기 웹의 미학을 꾸준히 탐구해왔습니다. “‘공사 중’ 이미지는 단순한 경고에서 웹 페이지가 계속 성장하리라는 약속의 의미로 바뀌었다. 이 이미지에는 변명과 초대가 뒤섞여 있다.”
디자인 이전에 콘텐츠에 대한 태도가 재미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웹사이트가 있나요?
얼마 전 프루트풀 스쿨과 계원예술대학교에서 열린 특강에서도 같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답변은 한결같아요.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 경이 만든 일반에 공개된 최초의 웹사이트예요. 웹을 소개하는 웹사이트 속 콘텐츠는 공들여 번역하고 싶을 만큼 우아하고 실용적이에요. 게다가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무리 없이 작동하죠. 흰색 배경, 검은색 글자, 밑줄이 그어진 파란색 링크 같은 기본 스타일이 적용돼 있는데. 이 웹사이트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추구하는 바를 여실히 드러냅니다.

최초의 웹사이트만큼은 아니지만 일본의 배우 아베 히로시(阿部寛)의 공식 웹사이트도 좋아해요. 『릿터』 24호에도 이와 관련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1996년 무렵 팬이 만든 웹사이트를 배우가 공식 웹사이트로 삼으면서 지금까지 당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죠. 얼핏 웹 기술에 갓 입문한 사람이 만든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도 최신 정보가 업데이트돼요. 배우의 과거 사진, 에세이 등 쉽게 접하기 어려운 정보도 싣고 있고요. 한 웹사이트가 25년여 동안 같은 스타일을 유지하는 데는 여전히 구형 해치백을 몬다는 배우의 취향도 어느 정도 작용했겠죠?
앞서 소개한 두 웹사이트는 그동안 쌓인 시간 덕에 설명하기 어려운 아우라가 느껴집니다. 콘텐츠가 디자인을 장악하는 증거죠. 장영혜 중공업이나 양혜규 선생님의 웹사이트 또한 비슷한 맥락에 있습니다. 콘텐츠가 아름답다면 스타일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모든 경우에 적용할 수는 없겠지만, 많은 경우 그렇게 적용할 수 있게끔 국면을 편집할 수 있죠.
웹사이트에서 콘텐츠를 다루는 방식에서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전략은?
영업 비밀이 드러날 수 있으므로 자세히 밝히기는 곤란하지만, 좋아하는 몇 가지 방식을 소개할 수는 있겠다. 하나는 ‘화면 가운데에 맞춘, 화면 너비에 크기가 비례하는 글자’다. 타이포그래피의 여러 강조법 가운데 특히 ‘가운데 맞추기’를 좋아하는데, 가장 단순하면서 효과적인 강조법이라는 생각에서다. 특히 화면 가운데 놓이면 어떤 권위를 생기기도 한다. 좋아하는 만큼 즐겨 사용하기도 한다. 이렇게 범용적인 스타일을 구축한 뒤에는 콘텐츠 자체에 관해서만 고민할 수 있다.

또 하나는 ‘무작위’다. 웹사이트에 접속할 때마다 새로운 또는 생경한 느낌을 주려는 의도다. 가나다순, 알파벳순, 게시 날짜 역순 등 기본적인 콘텐츠 정렬 순서 탓에 눈에 잘 띄지 않는 콘텐츠를 위한 장치이기도 하고, 수많은 디자인적 선택에 따른 책임을 함수(function), 즉 컴퓨터에 전가하려는 태도이기도 하다.



‘최소 입력, 최대 출력’을 지향한다. 즉, 콘텐츠를 굳이 여러 페이지로 나누기보다 한 페이지 안에서 기본적인 열람 방식인 상하 스크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사용자의 클릭이나 터치 또한 노동력이 필요하므로 이를 최소화하려는 의도다.


콘텐츠를 한 화면에 배치하기보다 레이어별로 세분화하고, 여기에 모션이나 시퀀스를 부여하는 등 시간이라는 요소를 도입하기도 한다.

웹 브라우저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콘텐츠는 반드시 웹 브라우저의 주 화면에만 놓이지 않는다. 예컨대 제목 표시줄이나 패비콘(Favicon), 웹 조사기를 활성화한 뒤에 볼 수 있는 소스 코드나 콘솔(console) 화면 또한 웹사이트의 일부분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도메인, 즉 웹사이트 주소 또한 웹사이트에서 파생된 콘텐츠다. 김뉘연과 전용완의 웹사이트 주소(http://kimnuiyeon.jeonyongwan.kr)가 좋은 보기다. 도메인은 크게 주 도메인(main domain)과 보조 도메인(subdomain)으로 나뉘는데, 보조 도메인(김뉘연)은 주 도메인(전용완) 없이 성립할 수 없고, 보조 도메인(김뉘연) 없이 주 도메인(전용완)만으로는 웹사이트에 접속할 수 없다. 듀오로 활동하는 생산자의 웹사이트에 개념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적합한 도메인 형태 아닐까 싶다. 게다가 그 덕에 조금 길긴 하지만, [email protected](김뉘연)과 [email protected](전용완) 같이 아주 근사한 이메일 주소가 탄생했다.

한편,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함께 일하는 사람에 관해서도 알게 되고, 나아가 일을 통해 그에게 깜짝 선물 같은 걸 건네고픈 생각이 들기도 한다. 웹사이트 어딘가에 이스터에그처럼 서로만 알 수 있는 특정 요소를 굳이 숨겨놓는 까닭이다. 헛웃음이나 코웃음일지라도 그가 그것을 발견하고 웃음 짓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다. 일종의 사랑이다.
스물다섯 살에 만든 웹사이트가 있나요?
너무 많아서 하나도 기억 나지 않아요. 열한살 무렵 처음 웹사이트를 만든 이래 웹사이트를 만드는 게 일종의 취미가 된 터라 사실 대학교 졸업 작품까지 웹사이트로 만들었죠. 물론 보기 좋게 반려당했지만요.
이쯤이면 회사의 사훈이 궁금해진다.

‘(웃음)’. 2017년 11월 24일 건국대학교 앞 서점 겸 복합 문화 공간 인덱스(Index)에서 열린 포스터 전시 『유용한 말』(Useful Words)에 포스터 「(웃음)」을 출품하면서 마련했다. 다음은 「(웃음)」에 관한 설명이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신제품 「(웃음)」은 제목 그대로 ‘(웃음)’을 담은 다목적 포스터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의회의 속기사들이 처음 고안했다는 ‘(웃음)[(笑)]’은 오늘날 대담이나 인터뷰 등의 기록에서 발언자나 주위의 반응을 간단히 묘사하는 데, 또는 지나치게 진지한 말을 눅이는 데, 또는 말의 의미를 역전시키는 데 사용되곤 한다. 이뿐일까. 더러 특정 문화에 심취한 이는 이를 통해 자신의 자폐성을 넌지시 드러내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웃음)’의 양상은 앞뒤 맥락에 따라 폭소나 미소, 조소나 냉소 등으로 달라진다. 말은 어떻게 유용성을 획득하는가. 어떤 말이 유용하다면, 이는 포스터라는 매체에 실린 경우에도 마찬가지인가. 질문이 품은 염원을 담아 「(웃음)」은 갖가지 ‘유용한 말’이 모이는 전시에서 ‘(웃음)’의 역할을 자임한다. 우아하게 디자인된 최정호체의 소괄호 속 ‘웃음’이 어떤 이에게는 시답잖은 헛웃음에 불과하더라도 아무러면 어떤가. “웃으면 복이 온다”.라는 말이 과학적으로까지 증명된 마당에. (웃음)
포스터 속 ‘(웃음)’의 위치는 그래픽 디자이너 전용완 씨의 시각 보정까지 거친 결과다. 포스터 외에도 ‘(웃음)’은 자석으로서 ‘(웃음)’ 필요한 어느 곳이든 (물론 금속성을 지닌) 붙였다 뗄 수 있다.

웹사이트나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일, 나아가 코딩이 글쓰기와 다르지 않다고 밝혀왔다. 워드프로세서로 어떤 프로그램을 사용하는가?
글쓰기의 결과물이 일반적인 글이어야 한다면 iA 라이터를, 여기에 편집자 등과 협업해야 한다면 구글 문서를 사용한다. 웹사이트나 비디오게임, 구글 크롬 확장 프로그램 같이 일반적인 글일 필요가 없다면 서브라임 텍스트를 사용한다. 모두 별다른 설정 없이 글쓰기 자체에 집중할 수 있고, 가볍고 빠르게 작동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사정상 거절했지만, iA 라이터를 제작하는 iA로부터 프로그램의 한국어판을 위해 한국어에서 사용되는 진부한 표현을 조사해달라는 의뢰를 받기도 했다. 입력한 글에서 진부한 표현을 감지해 흐리게 표시하려는 의도였는데, 진부함은 진부함 나름대로 누구에게나 익숙하다는 점에서 실용적이다. 「자주 하는 질문」 속 문장 또한 뜯어보면 진부한 문장 구조로 이뤄져 있지 않은가? 게다가 진부함 덕에 낯섦이나 파격으로 받아들여질 법한 시도가 유의미해지기도 한다.
이런 세계가 있었다니 제 즐겨찾기 목록을 다시 편집해야겠어요. 그렇다면 무엇이 넷 아트를 넷 아트로 만드는 걸까요?
넷 아트처럼 웹사이트를 새로운 문학적, 예술적 매체로 바라보는 시각과 실천은 ‘하이퍼텍스트’(Hypertext)라는 개념과 밀접합니다. 1965년 테드 넬슨(Ted Nelson)이 처음 제안한 이 개념은 25년여 뒤 웹이 등장하면서 비로소 잠재력을 발휘하기 시작했죠. 요컨대 하이퍼텍스트는 선형적 구조를 탈피한 텍스트입니다. 독자는 작가가 정해둔 순서대로 작품을 읽는 게 아니라 하이퍼링크를 통해 자유롭게 텍스트 사이를 이동합니다. 보르헤스의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El jardín de senderos que se bifurcan)처럼 무한히 분기하는 이야기의 구조가 현실화한 셈이죠. 한 가지 특별한 차이점이 있다면 사용자가 마주한 길이 두 갈래가 아니라 그 이상이라는 사실이죠.
이후 안그라픽스로 자리를 옮기고, ‘정체불명의 독립 사업부’를 운영하게 된 까닭은?
워크룸에서 일한 지 5년째 되던 해였어요. 안그라픽스의 안마노 씨에게 연락을 받았죠. “같이 일합시다.” 안그라픽스의 다음 단계를 준비하던 참이었고, 저를 디자인계로 이끌어준 안그라픽스에 힘을 보탤 기회가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해왔었어요. 그렇게 ‘디렉터’라는 직함과 함께 ‘안그라픽스 랩’(약칭 및 통칭 ‘AG 랩’)이라는 정체불명의 독립 사업부를 맡게 됐죠. 사실 자리를 옮기기로 마음먹은 까닭은 사실 사소합니다. 사무실이 저희 집과 정말 가까웠거든요. 연남동 공원(경의선숲길) 옆에 있는데, 도보로 2분 거리입니다. 이제 운영한 지 1년 정도 됐는데, AG 랩은 안그라픽스라는 소프트웨어를 판올림하는 데 필요한 애드온 또는 플러그인 같은 게 아닐까 싶어요. 빨리 역할을 다하고 사라지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어요.
「회사 소개」를 비롯한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제품과 당신이 숙주의 피고용인으로서 수행하는 ‘편집’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오늘날 ‘편집’은 제품처럼 도처에 있다. 아이폰의 기본 메일 애플리케이션만 실행해봐도 편집의 위상을 단번에 알 수 있다.

나는 대학에서 문학과 언어학을 공부했다. 소설 작법 시간에 선생님은 자신이 소설을 쓰는 이유에 관해 “그저 거짓말을 잘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러려면 사실과 허구를 병존시켜야 한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선생님 말씀을 곧이곧대로 따르는 학생이었던 것 같다.

요즘 나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각 제품에 관한 정보를 한 줄로 정리하고픈 야심을 품었다. (이 제품에는 일단 ‘보도 자료 표준 형식’이라는 제목을 붙이기로 했다.) 『시카고 스타일 매뉴얼』(Chicago Style Manual)의 참고 문헌 인용법을 공부하는 중이다. 실용적이고 내용과 형식이 조화를 이룬 순수한 형태라는 점에서 참 아름답다. 언제 확정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보도 자료의 형식은 예컨대 이렇다.
제품명, “인용문/인용구”, 종류(복수인 경우 중점[·]으로 구분), 동업자(복수인 경우 중점[·]으로 구분), 제작/발표 연도.
이렇게 관습(또는 미풍양속)을 이용하는 건 내게 조형적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데 별 재능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관습은 이미 한 번 완성됐다는 점에서 아름다우면서 무엇보다 이용하기 편하다.) 웹을 통해 교육의 민주화가 이룩됐다지만 어쩔 수 없는 게 있다. 특히 내게 없는 능력을 지닌, 디자이너나 미술가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게 즐거운 이유기도 하다.

예컨대 열쇠고리에 열쇠를 끼우면 본래 역할을 하지만, 약지를 끼우면 퍽 괴상해 보이는 반지가 된다. 그 위에 산세리프 서체로 조판한 ‘“Min Guhong Manufacturing” can be abbreviated as “Min Guhong Mfg.”’라는 문장이 인쇄된다면 어떨까? 여기에 ‘민구홍 매뉴팩처링 표기 지침(영어판)’이라는 제목이 붙는다면? 그리고 이걸 회사를 소개하는 ‘제품’으로 홍보하는 회사가 있다면?

타이포그래피 관습이나 문법 또한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관심사 중 하나다. 당신도 알다시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는 실제로 내가 숙주에서 편집자로서 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타임스 뉴 로먼(Times New Roman) 속 모든 글자를 지운 「타임스 블랭크(Times Blank)」도 그런 맥락에 있다. 타임스 블랭크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전용 서체다. 존 케이지(John Cage)의 「4분 33초」를 들으며 사용하면 좋은… 나아가 「4분 33초」를 텍스트로 재현할 수도 있겠다.
더 궁금한 점이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기회가 있다면 또 다른 자리를 마련해보면 좋겠다. ‹새로운 질서›에서 이야기하는 일부 내용을 간추렸을 뿐이지만, 오늘 이야기가 미술 및 디자인계의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다. 단, 내 말을 맹신하는 건 금물이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그래픽 디자이너 밥 길도 말하지 않았던가. 규칙을 파악한 뒤에는 잊어버려야 한다고.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레프트 갤러리와 DDDD 등에서 제품을 소개할 뿐 아니라 판매하고 있습니다. 다른 온라인 플랫폼의 활동에 참여하는 이유가 있나요? 특히 레프트 갤러리는 블록 체인을 활용해 암호 화폐로 작품을 구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디지털 작품의 복제와 보급, 거래가 기록되도록 운영 중인데요. 주로 웹이나 디지털 파일을 제작, 전시, 판매하는 민구홍 매뉴팩처링도 작품의 유통이나 저작권 보호와 관련해 겪은 어려움이나 새로운 기술의 필요성을 느낀 적이 있나요?
‘매뉴팩처링(manufacturing)’에는 ‘원재료를 인력이나 기계력 등으로 가공해 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제조업’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대량으로 생산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면, 웹에서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제품은 HTML의 <a> 태그만으로 재생산돼 어디로든 유통될 수 있습니다. 설령 제품이 수정되더라도 웹 브라우저의 ‘새로 고침’ 버튼을 클릭하는 것만으로 고객은 최신 제품을 경험할 수 있고요. 심지어 제품이 추억 속에 놓이더라도 버전별로 세분화기까지 하죠. 다른 매체와 웹을 구별 짓는 가장 큰 특징인 하이퍼링크 덕에 경제성 측면에서는 가장 완벽한 대량생산과 유통 방식이 구현된 셈입니다. 웹 브라우저 없이 성립할 수 없는 태생적 한계는 냉장고 패널에까지 컴퓨터와 웹 브라우저가 탑재된 오늘날 큰 문제는 아닙니다. 또 다른 한계, 즉 프런트엔드에 한해 제품의 모든 소스 코드가 공개된다는 점에서 저작권 문제는 고객의 윤리 의식에 맡길 수밖에 없겠죠. 고객에게만큼은 관대한 아마존의 호연지기를 본받고 싶습니다. 한편, 그리스 출신 미술가 밀토스 마네타스(Miltos Manetas)는 제50회 베니스 비엔날레를 맞아 발표한 「회화에 관한 마네타스 도그마(Manetas Dogma of Painting)」에서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죠.
당신의 가장 중요한 작품을 복사하고, 다른 사람이 복사할 수 있도록 허락하라. 과거의 훌륭한 화가들은 모두 복사했고, 그것이 그들의 작품이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이유다.
참, 그러고 보니 ‘소개’에는 ‘어떤 대상을 주위에 알린다’는 뜻 외에도 ‘대상과 대상을 서로 연결한다’는 뜻도 있다.
알고 있다. 그만큼 ‘소개’가 문제적인 까닭이다.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입니다. 디자이너로서 앞으로의 목표는?
이따금 디자이너로 불리곤 하지만, 제가 하는 일을 디자인으로 의식해본 적은 별로 없습니다. 굳이 말을 만들어보자면, 저는 ‘디자이너’보다는 ‘워드 프로세서’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말, 나아가 글자를 주로 처리한다는 점에서요. 그래서 작업 막바지에 크레디트에 제 작업을 ‘디자인’ 대신 ‘워드 프로세싱’이라고 제안하곤 하는데 번번이 거절당하곤 합니다.
아무튼 워드 프로세서로서 글을 쓰다 보면, 글을 잘 쓰고 싶고, 글을 잘 쓰다 보면, 글을 잘 드러내고 싶고, 글을 잘 드러내다 보면, 종국에는 글을 이루는 세계의 가장 작은 요소인 글자 자체에 눈이 가기 마련입니다. 즉, 나와 글을 둘러싼 모든 걸 제어하고 싶어지는 거죠. 그런 점에서 제 폰트를 만들어보고픈 건 자연스러운 현상 같습니다. 폰트명만 결정되면 반은 끝났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폰트명에서 일단 막혔습니다. 폰트명에는 어쨌든 ‘민’이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민고딕’, ‘민산스’, ‘민부리’ 같은 근사한 이름이 이미 있으니까요.
사실 디자이너의 정체성을 의심하는 건 이런 강연자리에서입니다. 일터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디자이너가 아니라고 하면 클라이언트가 저를 신뢰하기 어려우니까요. 이는 그저 저를 통해 디자인이 무엇인지 되묻게 하려는 의도입니다. 앞으로 졸업한 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고민은 학생일 때 시작하는 게 좋습니다.
이제 슬슬 마무리를 할 때가 된 것 같다. 일곱 살 무렵부터 웹을 사용하고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오래 전부터 웹을 사용해온 소비자, 크고 작은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한 생산자, 웹 기술을 가르치는 교육자로서 앞으로 미술 또는 디자인계에서 수행할 만한 과제를 제시한다면?
2001년에 열린 «코리아 웹 아트 페스티벌 2001» 이후 20여 년이 지났다. 그 사이 미술을 둘러싼 웹 생태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되돌아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일단 «웹-레트로» 전시 웹사이트부터 다시 운영하면 어떨까? 웹을 둘러싼 생산자를 정리하는 작업도 필요하겠다. 느닷없는 흐름에 휩쓸리듯 편승한 생산자도 있겠지만, 그 전부터 웹을 통해 이런저런 시도를 해온 사람도 적지 않다. 그들이 만든 지형도는 분명히 기존 미술 또는 디자인의 지형도와는 또 다른 모습일 것이다. 게다가 이 작업의 결과물은 누구나 어디서든 쉽게 열람할 수 있는 매체, 즉 웹사이트인 편이 좋겠다. 여기에 단순한 포럼 형태여도 좋으니 담론을 만들어내는 공간도 마련되면 좋겠다. 1996년 이래 수많은 생산자의 성공과 실패를 축적해온 뉴 뮤지엄(New Museum)의 아티스트 레지던시인 리좀(Rhizome)이 좋은 보기다. 사실 이 작업은 뜻이 맞는 몇몇 생산자와 이야기를 시작한 상태다. 혹시 관심 있는 생산자와 소비자는 [email protected] 앞으로 메일을 보내주시라.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같은 국공립 미술관과 작업할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외부에서 작업한 웹사이트에 대한 서버 차원의 지원이 미비한 편이었다. 관공서 웹사이트는 대부분 자바로 개발된 전자 정부 표준 프레임워크를 기반으로 제작해야 하는데, 미술 및 디자인계에서 자바를 다룰 줄 아는 전문가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파악하기로는 아무도 없다. HTML 태그도 의미론적으로 사용되지 않은 편이고, 기본적으로 작품 이미지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대체 텍스트 또한 마련돼 있지 않다. 이는 즐거움 이전에 접근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학교에서도 웹에 관한 커리큘럼을 적극적으로 마련하면 좋겠다. ‹새로운 질서› 친구들 200여 명 가운데 미술 및 디자인 전공생이 30퍼센트 정도로, 적은 비율은 아니다. 그들 입장에서는 추가로 과외를 받는 셈인데, 그들에게 코딩 수업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물어보면 워드프레스 템플릿을 수정해보거나 특정 웹사이트를 그대로 재현해보는 정도에서 그친다고 한다. 한두 사람이 모든 경험과 실패를 독점하는 상황은 별로 건강하지 않다. 이를 나눌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옳겠다. 팀 버너스리 경이 강조한 웹의 정신이 ‘개방, 참여, 공유’ 아니던가. 커리큘럼을 마련하는 게 어려운 상황이라면 외부 강좌와 연계하는 방식도 있겠다.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의 2차원 이미지를 재현하는 건 익숙한 일이다. 그렇다면 조각 등 설치물 같은 건 어떨까? 온라인 전시에서도 작품의 물성을 구현할 수 있을까? 구현할 수 있다면 어떤 방식이 적절할까?
언젠가 한 출판사 관계자와 웹사이트 개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 비슷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이참에 웹사이트에서 책의 물성을 구현해보고 싶은데… 가능하겠죠?” 그는 순진한 표정으로, 특히 ‘물성’에 힘을 보태 말했다. 이는 책에서 유튜브 영상을 재생하고 싶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웹에서는 Z축상에 레이어가 아무리 쌓이더라도 두께는 0픽셀이다. 웹상의 물성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바는 이뿐이다. 오랜 고민 끝에 출판사 관계자에게는 결국 구글이나 네이버 본사에 문의해보시는 게 좋겠다고 정중히 말씀드렸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공식 웹사이트는 왜 이런 모양인가?
2015년 느닷없이 설립된 이래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소개’라는 행위에 이따금 우스꽝스러워 보일 만큼 섬세하고 강박적으로 천착해왔다. (회사의 첫번째 제품은 열세 번째 ‘시청각 문서’로 발표한 「회사 소개」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모든 생산 활동의 기저에 어떤 대상, 나아가 생산 주체, 즉 자신을 소개하고픈 욕망이 자리한다고 믿는 까닭이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회사’라는 형식을 전유해 이 믿음을 의식하고 양식화한 결과물로, 회사의 모든 활동은 결국 ‘소개’로 수렴한다. 회사의 공식 웹사이트는 설립과 거의 동시에 만들어졌다. 모름지기 회사라면 일단 그럴듯한 공식 웹사이트를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몇 가지 메뉴 가운데 「자주 하는 질문」은 지금까지 진행한 인터뷰를 뒤섞은 공간이다. 이곳은 회사의 포트폴리오를 얼마간 대신하기도 하는데, 이를 통해 회사가 구사하는 전략은 글쓰기에서 비롯한다는 점을 드러내려 했다. 디자인은 회사가 웹을 사랑하는 만큼 최초의 웹사이트 스타일을 본받았다. 어떤 대상에 시간이 쌓이다 보면 디자인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아우라가 풍긴다. 최초의 웹사이트 스타일을 본받아 회사가 답습하려 하는 바는 사실 이 아우라다.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졸업생입니다. 웹사이트의 방문객을 어떻게 고려하나요?
웹사이트에 근사한 콘텐츠가 담겨 있거나 웹사이트를 이루는 코드가 완벽하더라도 웹 브라우저가 없으면 열람조차 할 수 없습니다. 웹 브라우저가 모든 웹 기술의 종착지인 셈이죠. 결국 사용자에게는 웹사이트가 웹 브라우저상에서 어떻게 동작하는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 점에서 로딩 속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통계상 로딩 속도가 3초를 넘으면 소비자가 열람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거든요. 이미지가 많은 웹사이트인 경우 이미지 파일의 크기를 신경 쓰는 편이고요. 이미지 파일의 크기는 화질이 열화되지 않는 선에서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고 생각해요. 이를 위해 이미지의 불필요한 메타데이터까지 삭제하는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합니다. 시각 장애인이나 저시력자를 위한 이미지의 대체 텍스트나 글자 색과 배경 색의 대비도 중요하죠. 물론, <div> 태그를 난잡하게 사용하지 않는 시멘틱(semantic)한 HTML 마크업은 기본이고요.
맞아요. 특히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다 보면 자극적이고 즐거운 동시에 제 소중한 바이오리듬이 엉망이 되곤 합니다. 깜찍한 하트 아이콘과 숫자 몇 개 때문에 감정이 요동치기 일쑤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웹상에서 마주하는 정보는 대부분 알고리즘에 따라 선별됩니다. 페이스북의 뉴스 피드, 유튜브나 넷플릭스의 영상 등은 모두 우리의 취향과 관심사를 분석한 결과물이죠. 편리함의 대가로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정보의 거품에 갇히기도 합니다. 플라톤의 동굴처럼 알고리즘이 제안하는 그림자가 전부라 믿으면서요. 작가 엘리 프레이저(Eli Pariser)는 이런 현상을 ‘필터 버블’(Filter Bubble)이라 불렀습니다. 필터 버블 속에서 점점 자신의 기존 관점을 강화하는 정보만 접하고, 다른 의견이나 새로운 시각을 접할 기회는 줄어든다는 거죠. 하버드 대학교의 심리학자 댄 길버트(Dan Gilbert)의 말마따나 “우리는 정보의 바다에서 헤엄치고 있지만, 지식의 섬에 고립돼 있다.”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입니다. 삶의 목표는?
부모님께는 송구스럽지만, 저는 세상에 우연히 태어났다고 생각합니다. 그 남성과 여성을 부모로 둔 것,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 남성으로 태어난 것, 심지어 제 이름이 ‘민구홍’인 것까지 제 기준에서는 다 우연이죠. 우연히 시작된 ‘삶’이라는 프로젝트를 어떻게 진행하고 완수해야 할까요? 고민하다 보면 끝이 없습니다. 열심히 고민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요. 중요한 건 어쨌든 무엇이든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작게는 글자체에서, 넓게는 이 강연이 끝나고 먹을 저녁 메뉴까지. 그 기준은 넓게 보면 무엇보다 제 행복이고요.
더글러스 애덤스(Douglas Adams)의 SF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는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을 둘러싼 궁극적인 질문에 대한 답으로 42을 제시한다. 내게도 비슷한 숫자가 있습니다.
본디 인간이라는 동물의 자연 수명은 38년이라고 해요. 저는 어느덧 38년 하고도 1년을 더 살았습니다. 내년에는 놀랍게도 마흔이 되고요. 남은 생은 그저 ‘덤’, 즉 보너스 스테이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오해해보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러려니…” 하면서요. 그게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카르마, 즉 업보를 없애는 길이기도 하고요.
텍스트를 주원료로 삼는 만큼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제품은 한국어만으로 이뤄지거나 한국어를 포함한다. 한국어에 관한 생각이 궁금하다.
그건 내가 한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것처럼 그야말로 우연이다. 한글도 마찬가지다. 한글을 따라다니는 ‘고도로 진화한 문자’ 같은 수식어는 언뜻 바로 손에 잡히지 않는다. 우연에 관해 말하는 건 아무래도 쉽지 않다. 내가 한국어를 좋아하는 건 단지 그게 (HTML, CSS, 자바스크립트처럼) 내가 곧잘 쓸 수 있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한국어와 영어보다는 둘의 문자 체계, 즉 한글과 로마자에 관해 이야기하는 게 나을 듯하다. 몇 년 전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구글 폰트 + 한국어 웹사이트를 만드는 데 참여한 적이 있다. 그 덕에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구글 폰트의 친구가 됐고. 한글은 닿자 열아홉 가지와 홀자 스물한 가지로 이뤄진다. 둘은 서로 조합돼 한 글자가 되고, 그 조합의 합은 물경 1만 7,388가지나 된다. 이런 특징은 한글 폰트를 제작할 때는 물론이고 특히 웹에서 사용할 때 영향을 미친다.

노토 산스(Noto Sans)를 기준으로 로마자 버전은 455킬로바이트지만, 한글 버전은 2.2메가바이트에 달한다. 작은 차이 같지만 브라우저가 폰트를 완전히 내려받는 단 몇 초 동안에는 페이지가 깜빡이며 제대로 표시되지 않는다. 구글은 이 깜빡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심지어 머신 러닝 기술까지 도입했다.
나는 때로는 구글이 이 깜빡임을 완전히 없애는 것과 번역 기술 개선을 통해 언어 민주화를 이룩하는 것 중에 어느 쪽이 먼저가 될지 궁금하다. 영어권 사용자에게는 도시 전설처럼 들릴지 모르겠다. 그런데 웹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일이 일어난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제품을 어떻게 규정하는가? 제품에 집중하는 이유도 궁금하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제품은 일차적으로 회사를 소개하는 과정에서 생산되는 부산물에 가깝다. 때로는 그 자체에서 또는 회사 밖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제품, 좀 더 정확히 ‘제품’이라는 어휘를 사용하는 건 단지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회사’이기 때문이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예술가나 그와 비슷한 무엇이라면, ‘제품’보다는 ‘작품’이나 ‘작업’이라는 말이 좀 더 자연스러울 테다. 내게 ‘제품’이라는 말은 일반적이고 중립적이라는 점에서 산뜻하고, 우리를 둘러싼 시장경제의 장단점(특히 단점)을 암시하는 점에서 을씨년스럽다.

어쩌면 반대로 ‘제품’이라는 말의 이런 복잡한 매력에 가까워지고자 ‘회사’를 만든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구분은 명분과 편의를 위한 것일 뿐 실제로는 해시태그들이 난삽하게 붙은 모습에 가깝다. 개중에는 제품보다는 회사 소개에 가까운 게 있는가 하면, 어떤 건 회사 소개이자 제품이다. 모든 걸 구글 스프레드시트로 행과 열에 맞춰 한 셀당 한 항목씩 정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함께 일하는 다른 유능한 편집자들로 빙의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매체를 떠나 무언가를 만들 때 이정표로 삼는 말이 있을까요?
10년 정도 무언가를 만들다 보니 세 가지로 좁혀지는 듯합니다. 하나는 제약입니다. 제약이 없다면, 그리고 제약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습니다. 다른 하나는 내용입니다. 내용 없는 형식은 공허하니까요. 나머지 하나는 형식입니다. 형식 없는 내용은 존재할 수 없으니까요.
최정호 한글 디자인의 의의는 무엇인가?
오늘날 사용하는 명조체와 고딕체의 표준을 만든 점 아닐까. 이견도 있고, 그가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선보인 대안공간 루프의 웹사이트가 인상적이다.

일반적으로 갤러리 웹사이트는 콘텐츠와 구조 덕에 메타적인 전시의 형식을 띨 수밖에 없다. 대안공간 루프 웹사이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웹사이트의 요소는 루프의 영문명(Loop)을 암시하는 동시에 여러 페이지를 오갈 수 있는 내비게이션으로 기능한다. 접속할 때마다 무작위로 바뀌는 두 번째 ‘O’는 과거 전시와 연결되는데, 방문객뿐 아니라 루프의 구성원에게 그동안 루프에 쌓인 시간을 되새기려는 의도였다. 한편,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웹사이트 제작으로 루프에 후원했다. 한국 대안 공간의 효시인 루프의 활동을 그렇게나마 응원하고 싶었다.
2019년부터 매주 금요일마다 ‘현대인을 위한 교양 강좌’를 표방하는 「새로운 질서」를 진행합니다. 강좌의 구체적인 내용과 참여 방법이 궁금합니다.
시적 연산 학교의 마지막 과제가 자신이 만들고픈 학교를 기획하는 거였어요. 저는 ‘리코타 인스티튜트(Ricotta Institute)’를 제안했는데, 4주에 걸쳐 리코타를 만들고, 리코타에 관한 글을 쓰고, 그 글을 실은 웹사이트를 만들고, 마지막으로 리코타를 마케팅하는 방법을 배우는 학교죠. 그때는 리코타, 글쓰기, 코딩, 마케팅이 오늘날 산업을 작동시키는 요체라고 생각했거든요.
「새로운 질서」는 언젠가 문을 열 리코타 인스티튜트의 프로토타입 같은 거죠. 2016년 크리스마스 이튿날 워크룸에서 열린 비공식 워크숍에서 시작해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강의, 여러 특강과 워크숍을 거치면서 커리큘럼이 다듬어졌어요. 2019년부터는 박현정, 돈선필 씨 같은 젊은 미술가들이 운영하는 스튜디오 파이와 취미가의 아낌 없는 지원 덕에 지금 같은 모습으로 확장할 수 있었고요.
마포구 성산동에 있는 스튜디오 파이에서 6주 동안 진행하는 「새로운 질서」는 웹 디자인 강좌는 아니에요. 기술로서 디자인을 다루기도 하지만 글쓰기 강좌에 가깝죠. 「새로운 질서」에서는 ‘실용적이고 개념적인 글쓰기’의 관점으로 코딩을 이야기합니다. 먼저 자신을 바라보며 자신의 관심사에 관해 글을 쓰고, 차례로 HTML, CSS, 자바스크립트를 도구 삼아 콘텐츠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해보죠. 중간중간 인터넷과 웹의 역사, 견지해야 할 태도, 넷 아트, 컴퓨터 언어 자체에 관한 이야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면 적어도 이런 웹사이트는 별 어려움 없이 만들 수 있게 됩니다. 예습과 복습을 철저히 한다면 말이죠.
「새로운 질서」에서 함께 추억을 쌓은 분들이 ‘새로운 질서 그 후…’라는 느슨한 컬렉티브를 꾸렸는데, 최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주관하고 현대자동차에서 후원하는 ‘프로젝트 해시태그’ 사업에 선정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죠. 후문에 따르면, 심사위원이었던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이 적극적으로 추천했다고 해요. 오는 11월이면 그들이 고민하고 즐긴 결과물을 볼 수 있겠죠? 며칠 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그들의 작업 상황을 엿볼 수 있었는데, 이번 전시가 그들에게 기억에 남을 만한 추억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최근에는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분들을 대상으로 4주 동안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했죠. 지금은 사회적 거리 두기가 4단계로 격상하면서 잠시 문을 닫았어요. 온라인으로라도 개인 과외를 받고 싶다는 문의가 들어오기도 하지만 거절하고 있습니다. 기술을 다루더라도 서로 마주보며 이야기하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매학교로는 미국의 그래픽 디자이너 로럴 슐스트(Laurel Schwulst)와 존 프로벤처(John Provencher)가 운영하는 프루트풀 스쿨(Fruitful School)이 있습니다.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졸업생입니다. 종이 책과 웹사이트에서 섞어짜기를 구사하는 데 어떤 차이가 있나요?
개념은 같아요. 차이는 방법에 있습니다. CSS에서 글자체를 제어하는 ‘font-family’ 속성에서는 폴백(fallback) 기능을 지원합니다. 쉽게 말해 몇 가지 글자체를 지정해두고, 첫 번째로 지정한 글자체의 폰트가 지원하지 않는 글리프가 있다면 다음 글자체의 폰트가 담당하는 기능이죠. 이 기능을 이용하면 섬세하지는 않지만 기본적인 섞어 짜기가 가능해요. 이보다 조금 복잡하기는 해도 자바스크립트의 힘을 빌리면 인디자인에서처럼 정규 표현식을 통해 자동으로 한글, 로만 알파벳, 한자, 가나 등 언어별 문자마다 스타일을 지정할 수 있고요. 시적 연산 학교 동문이기도 한 MIT의 소원영 씨와 뉴 스쿨(The New School)의 강이룬 선배가 만든 멀티링구얼 JS가 이를 위한 대표적인 자바스크립트 플러그인인데, 『타이포잔치 2021: 거북이와 두루미』, 『2022 부산비엔날레』 등에서 유용하게 사용했습니다. 마지막 업데이트 시점에서 무려 6년이나 지났지만, 사용하는 데 전혀 무리가 없었고요. 이 자리를 빌려 두 분께 존경을 표합니다. 나아가 아예 폰트를 커스터마이징해 앞서 말씀드린 얄궂은 설정이 필요 없는 완전한 다문자용 폰트를 만들 수도 있고요. 구글과 어도비가 합작한 노토 산스(Noto Sans)가 대표적인 보기죠.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 미디어만으로 누구나 쉽게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시대다. 그럼에도 왜 굳이 개인 웹사이트를 만들어봐야 할까? ‘새로운 질서’를 종교화하려는 속셈 아닌가?
“그래픽 디자이너라면 모름지기 제대로 된 책 한 권을 만들어봐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고민과 선택이 모든 종류의 생산에서 반복되는 까닭일 테다.
HTML 에너지(HTML Energy)를 운영하는 엘리엇 코스트(Elliott Cost)가 JR 카펜터가 주창한 ‘핸드메이드 웹(Handmade Web)’을 변주해 ‘핸드메이드 웹사이트’라는 용어를 제안한 적이 있다. 완전히 백지 상태에서 시작한, HTML과 CSS만으로 이뤄진, 자바스크립트가 최소한으로 사용된, 정적 웹사이트를 가리킨다. 제약이 분명한 만큼 콘텐츠와 콘텐츠를 둘러싼 국면을 편집하는 데 집중할 수 있고, 그 덕에 ‘실용적이고 개념적인 글쓰기’가 가능해진다. 여기에는 백엔드가 없으므로 관리하는 데 불편함이 따른다. 하지만 이렇게 웹사이트를 만들어보는 건 좋은 출발점이 된다. 내 경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지루한 작업을 해보는 게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자연스럽게 작업을 자동화하려는 욕망이 일고, 그 욕망을 따라가보는 것이다.

온라인 전시에는 초심자를 위한 카르고(Cargo) 같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겠지만, 템플릿은 콘텐츠와 유리된 상태다. 템플릿에 콘텐츠를 억지로 맞출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결과물 또한 엇비슷해진다.

자신의 관심사를 토대로 콘텐츠를 생산하고, 개인 웹사이트를 만들어보는 일은 결국 자신을 사랑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자신을 도저하게 사랑하다 보면, 남도 도저하게 사랑할 수 있다. 콘텐츠를 다루는 능력을 기르고, 기술을 이해하고 주체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건 덤이다.
강의실에서는 수영 강사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 학생들을 물속으로 떠밀어 아무리 영법을 가르쳐도 결국 근육을 움직이는 건 자기 자신이다. 어떤 근육을 어떻게 얼마나 움직여야 할까? 결국 자신의 욕망에 달렸다. 욕망에 집중하고, 욕망을 따라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새로운 기술을 익히게 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해밀톤 호텔 수영장에서 물장구만 쳐도 흡족할 테다.
넷 아트가 뉴 미디어 아트, 인터랙티브 아트 같은 현대 미술의 흐름과도 이어지는 것 같은데요?
적확한 지적입니다. 이제는 그런 구분이 무의미할 정도죠. 예컨대 로이 애스콧(Roy Ascott)이 주창한 ‘텔레마틱 아트’(Telematic Art)나 제프리 쇼(Jeffrey Shaw)의 인터랙티브 설치 작품은 넷 아트가 추구한 가치와 포개지며 기술과 예술의 결합, 관객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라파엘 로자노헤머(Rafael Lozano-Hemmer)의 「벡터 고도」(Vectorial Elevation)에서 관객은 웹사이트를 통해 도시의 조명을 제어할 수 있었고, 애런 코블린(Aaron Koblin)의 「조니 캐시 프로젝트」(The Johnny Cash Project)는 웹사이트를 통해 전 세계 사람들이 함께 뮤직비디오를 만들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했죠.
넷 아트는 웹사이트를 정보의 저장고를 넘어 예술가의 상상력을 담는 그릇이자 관객과 소통하는 인터페이스, 나아가 새로운 미학적 경험을 만들어내는 공간으로 다시 정의했습니다. 동시에 디지털 시대의 아방가르드로서 우리에게 웹사이트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했죠. 벤야민이 말했듯 기술적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은 그 본질을 바꿉니다. 넷 아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복제와 변형, 참여가 작품의 본질이 되는 새로운 예술 형식을 만들어냈고요. 이는 그 자체로 우리에게 디지털 시대의 예술, 나아가 우리의 존재 방식에 관해 곱씹어볼 기회를 제공합니다.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졸업생입니다. 웹사이트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기준이 있을까요?
웹사이트에서 이야기하는 대상과 방식에 따라 완성도의 기준은 천차만별일 거예요. 앞서 말씀드렸듯 일단 웹 브라우저상에서 제대로 동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사실 이를 위해 고려해야 할 부분만 따져도 무궁무진합니다. 뜬금없을지 모르지만 저는 어떤 글쓰기에 관해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문학을 공부하던 시절에 배운 좋은 글쓰기의 원칙 가운데 중언부언하지 않는다는 게 있어요. 같은 대상에 관한 두 가지 진술이 있다면 간단한 쪽을 택하는 게 좋다는 오컴의 면도날(Occam’s Razor)도 비슷한 원칙이고요. 이 원칙은 코드를 포함한 웹사이트에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중복되는 요소나 기능을 하나로 합치는 것처럼요. 이를 위해서는 글쓰기처럼 수차례 퇴고 과정이 필요하죠. 지난할 수 있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고요. 한 문장만으로 이뤄진 웹사이트라 해도 퇴고 과정을 얼마나 거쳤는지에 따라 결과물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