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2015년 이래 진행한 길고 짧은 인터뷰를 꼼꼼히 정리한 뒤 다시 무작위로 늘어놓은 「자주 하는 질문」을 통해 회사 또는 운영자에 관한 궁금증이 모쪼록 해소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단, 질문의 시기에 따라 현재와 다른 사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편, 질문의 어조에 따라 언급한 인물에 대한 존칭을 생략하기도 했습니다. 「자주 하는 질문」을 섭렵한 뒤에도 궁금증이 도무지 해소되지 않는다면 [email protected] 앞으로 소상히 말씀해주세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인정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단, 답장은 이메일 대신 언젠가 「자주 하는 질문」에서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워크룸은 민구홍 님에게 첫 번째 직장이었나요? 그곳에 다니기 전부터 워크룸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나요? 출판사이자 디자인 스튜디오인 그곳에서 일을 시작한 것이 지금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운영하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쳤나요? 워크룸에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이 있다면 무엇이었나요?
시적 연산 학교에 합격한 무렵 워크룸의 박활성 선배에게 연락을 받았어요. “같이 일합시다.” 박활성 선배를 비롯해 김형진, 이경수 선배는 안그라픽스에서 ’16시’를 기획하면서 처음 만났어요. 그 뒤로 좋아하고, 또 존경하는 선배였고, 당연히 그들과 일하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죠. 그렇게 학교를 마치고 귀국한 뒤 자연스럽게 워크룸에 입사하게 됐습니다. 사실 워크룸의 제안이 없었다면 저는 지금도 미국에 있었을 거예요. 동기들처럼 작가로 활동하거나 학교에 출강하면서요. 워크룸에서 제 역할은 편집자였지만, 가장 먼저 한 일은 밥 길(Bob Gill)의 『이제껏 배운 그래픽 디자인 규칙은 다 잊어라. 이 책에 실린 것까지.』(Forget all the rules about graphic design. Including the ones in this book.)를 한국어로 번역하고, 워크룸 웹사이트와 워크룸 프레스 웹사이트를 개편한 일이었어요. 워크룸이 구성원의 역할을 엄격하게 규정하지 않은 덕에 가능한 일이었죠. 그 뒤 ‘실용 총서’ 등 여러 책을 기획하고, 미술 및 디자인계 안팎의 크고 작은 웹사이트를 만들며 사람을 대하고 일하는 방법을 배웠죠. 이 과정에서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널리 소개할 수 있게 됐고요. 워크룸 덕에 30대 초중반을 정말이지 행복하게 보냈습니다.
두루두루 아티스트 컴퍼니와 ‘사랑의 MOU’를 체결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렇다면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두루두루 아티스트 컴퍼니에 아티스트로 소속되는 셈인가? 아니면 뮤지션?
글쎄?
종이책의 미래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가 생각하는 종이책의 귀중한 유산은 종이 위, 즉 제한된 평면에서 콘텐츠를 정리하고 소개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에는 필사가, 편집자, 인쇄인, 디자이너, 인지과학자 등 수많은 전문가의 성공과 실패가 쌓여 있다. 그 덕에 우리는 콘텐츠와 눈 사이에 따른 적절한 글자 크기를, 그에 따른 적절한 글줄 길이를, 그에 따른 적절한 글줄 수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이 점을 생각하면 웹사이트뿐 아니라 콘텐츠가 자리한 수많은 매체에서 이 방식이 재현되거나 활용되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다. 누군가에게 종이 책의 죽음은 당연한 미래일지 모르지만, 종이 책에서 비롯한 이 방식만큼은 변함없으리라.
별자리가 물고기 자리인 사람은 감정에 쉽게 휩쓸린다. 당신은 내가 아는 사람 가운데 가장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최근에 관심이 가거나 눈에 띄는 창작자가 있는가?
잘 모르겠다.
미국 뉴욕의 시적 연산 학교(School for Poetic Computation, SFPC)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당신은 ‘좁은 의미의 문학과 언어학’으로 부르기를 좋아하지만…)을 공부했다. 왜 그 학교를 선택했나? 주로 무엇을 배웠나?
5년여 동안 일한 안그라픽스를 그만둘 무렵, 내가 편집하고 디자인한 『타이포그래피에 관한 에세이』의 보도 자료를 웹에 게시하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뉴욕 중심가에 있다는 점과 교육 과정이 길지 않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 서로 어울릴 법하지 않은 어휘인 ‘시적(poetic)’과 ‘연산(computation)’을 조합한 학교명이 멋있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자유분방한 학교의 분위기와 달리 이름만큼은 세심하게 결정한 듯했고, 경쟁률도 모르는 상황에서 휴가 삼아 다녀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의 시인 케네스 골드스미스(Kenneth Goldsmith)가 출강했다는 점도 기대가 됐다.
운 좋게 합격한 학교는 내 상상보다 (긍정적인 의미로) 훨씬 더 이상했다. 학생들의 면면은 화이트 해커, 형사학 전공 대학원생, 건축가, 무용수, 일렉트로닉 음악가 등 다양했다. 참고로 내 코딩 컨벤션 선생은 프랑스에서 제빵사로 일하던 헬렌이었다. 학교에서는 예술 이론과 컴퓨터 이론을 둘러싼 개념적이고 실용적인 수업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진행되고, 강연이나 워크숍이 있는 날은 더 늦게 끝나기도 했다. (뉴욕은 지하철이 24시간 운영된다.) 주말도 대부분 학교에서 생활하며 일반 대학교에서 몇 학기 동안 익히고 고민할 것을 짧은 시간 안에 소화해야 했다. 특히 미국의 시인이자 MIT 디지털 미디어 교수인 닉 먼포트(Nick Monfort)의 수업에 열심히 참여했다.

한 가지 주지할 점은 이 학교가 기술을 처음부터 하나하나 가르쳐주는 친절한 학교는 아니라는 점이다. 조금 과장하면 선생은 맞닥뜨린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힌트를 제공하는 ‘검색어 제안기’로 기능하고, 학생은 선생이 제안한 검색어를 이정표 삼아 인터넷을 헤매면서 자신의 욕망과 기술적 한계를 인식하고 우회 전략을 고안해야 했다. 이런 교수법이 유의미한 건 중요한 게 기술 자체가 아니라 어떤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지기 때문이다.

마지막 수업은 자신만의 학교를 만드는 것이었는데, 학생이 반대로 선생의 입장에서 교육 자체에 관해 고민해보는 시간이었다. 내가 제안한 학교는 리코타를 중심으로 요리, 글쓰기, 코딩, 디자인, 마케팅을 익히는 ‘리코타 인스티튜트(Ricotta Institute)’였다. 내가 매주 금요일에 진행하는 「새로운 질서」는 언젠가 문을 열 리코타 인스티튜트의 프로토타입인 셈이다. (‘현대인을 위한 교양 강좌’를 표방하는 이 강좌에서 주로 다루는 바는 아트선재센터에서 발표한 「새로운 질서」에서 체험할 수 있다.)

단, 학교에는 이렇다 할 졸업장이 없었다. 태평양 건너 타국에까지 가서 공부를 마쳤는데, 이를 증명할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인가. 결국 졸업 작품으로 졸업장 생성기를 제작해 스스로, 그리고 친구들에게 학교 대신 졸업장을 수여했다. 학교 직인을 찍는 자리에는 「무작위 서명 생성기(Random Signature Generator)」가 무작위로 생성한 자신의 서명이 들어갔다.

나를 입양하고 싶다던 루이스 아저씨(위 사진 왼쪽 남성)와 매릴린 아줌마(뒤쪽 여성),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또 다른 대모인 로럴 슐스트(Laurel Schwulst)를 만난 것도 큰 행운이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관한 소논문을 쓰다가 한 가지 문제에 봉착했습니다. 『레인보 셔벗』 포스터나 표지에 등장하는 인물은 누구인가요?

잘 모르겠습니다. 민구홍 씨가 아닌 것 만큼은 분명합니다. 해당 인물을 실은 전시 포스터를 처음 제안한 그래픽 디자이너 강문식 씨에게 여쭤보시면 어떨까요?
지금까지 아트선재센터의 ‹홈워크›(HOMEWORK, 2020), 국립현대미술관의 ‹프로젝트 해시태그›(2020–), ‹서울시립미술관 모두의 연구실 세마 코랄›(SeMA Coral, 2021), ‹타이포잔치 2021›(2021), ‹옵/신 페스티벌›(Ob/Scene Festival) 등 여러 크고 작은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누군가는 과장을 보태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웹사이트 제작 공장’이라 표현하기도 했는데, 웹사이트를 글쓰기의 결과물이라 말한 게 특히 인상적이다.
약 2년 사이 일반에 공개하지 않는 것까지 헤아리면 100여 개는 될 것 같다. 처음 ‘민구홍 매뉴팩처링’이라는 회사명을 결정했을 때, 즉 내 이름 뒤에 ‘매뉴팩처링(manufacturing)’을 붙이는 게 좋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막연히 회사가 글쓰기와 편집을 통해 이런저런 ‘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하지만 비즈니스가 이런 식으로 확장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나는 이제껏 글의 내용뿐 아니라 글쓰기의 형식과 방법에 관해 고민해왔는데, 생각해 보면 이런 게 내게 적합한 글쓰기 방식 아닐까 싶다. 나는 웹사이트를 디자인한다기보다 그저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고 편집한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물 가운데 하나가 웹사이트고, 그게 용케도 오늘날 누군가의 욕망에 적절하게 부합하는 거고. 여러 차례 밝혀왔듯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웹 디자인 에이전시나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가 아니다.
웹사이트를 작품으로 내세워 전시에 참여하기도 했죠. 대표적으로 ‘푹신’이 있어요. 이렇게 웹 디자인이 예술 기관에서 작품으로 소개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래픽 디자인이 미술관을 침투하고 있듯이 웹 디자인이 예술 제도에 편입하는 것에 대한 의견이 궁금합니다.
빈 건물을 그럴듯한 뭔가로 채우고 ‘미술관’이나 ‘갤러리’로 부르면 실제로 그렇게 여겨지듯 어떤 대상을 무엇으로 어떻게 규정하는지가 중요하죠. 제대로 된 논리만 구축한다면 누구나 어색함 없이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회사를 소개할 수만 있다면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회사나 회사의 제품을 전시하는 일도 꺼리지 않습니다.
흔히 ‘분홍이’로 불리기도 하는 ‘푹신(Fuchsine)’은 미술 평론가 이한범 씨가 기획한 전시 픽션 툴에서 처음 고안됐어요. 행사 웹사이트를 돌아다니며 터치하거나 클릭할 때마다 관람객으로서, 도슨트로서, 또는 작가로서 웹사이트 방문객을 향해 뭔가를 중얼거리죠. 전시 기간에는 하루에 한 번씩 몸집을 키워 웹사이트 전체를 장악하기도 했고요. 그 뒤로 여러 미술 관련 프로젝트의 웹사이트에 등장했죠. 지금은 특히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관계자분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대상을 만드는 데 구조, 표현, 기능이라는 세 가지 레이어가 필요한 셈이군요. 노엄 촘스키(Noam Chomsky)의 말이 떠오르네요. “언어는 무한한 표현을 가능케 하는 유한한 규칙 체계다.”
자연어와 컴퓨터 언어 모두 문법 구조를 지니고, 의미를 전달하며, 추상적 개념을 표현합니다. 하지만 컴퓨터 언어는 자연어로 실현할 수 없는 일을 가능케 하죠. 요컨대 컴퓨터 언어로 쓴 코드는 실행할 수 있습니다. 『스노 크래시』(Snow Crash)의 작가 닐 스티븐슨(Neal Stephenson)은 이를 ‘언어의 실행 가능성’으로 불렀죠.
일반적인 작업 과정을 설명해달라.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해결해야 하거나 해결하고픈 문제가 무엇인지 규정하는 일에서 시작한다. 2017년 밥 길(Bob Gill)의 『이제껏 배운 그래픽 디자인 규칙은 다 잊어라. 이 책에 실린 것까지.』를 번역하고 편집하면서 본받은 방법론이다. 일단 규칙을 잊을 때까지 실천해볼 생각이다. 어쨌든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야망은 분명하고 한결같다. 생화학 무기, 도청 장비, 샤워 커튼을 제외한 좋은 제품(good goods)을 제작하는 것.
회사의 생산물을 ‘작품’이나 ‘작업’ 대신 ‘제품’으로 부르는 까닭은 무엇인가?
칸트 이후 언어가 대상을 투명하게 반영한다는 환상은 깨졌다. 중요한 건 주체가 대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규정하는지, 나아가 편집하는지다. ‘작품’이나 ‘작업’이라는 어휘는 생산물이 소비되는 오늘날의 국면을 반영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 국면을 흐리는 환상을 덧입히기까지 한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회사’인 만큼 생산물을 아우르는 단어로는 ‘제품’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반대로 ‘제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픈 마음에 ‘회사’를 표방했는지도 모르겠다.
웹사이트에서 콘텐츠를 다루는 방식에서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전략은?
영업 비밀이 드러날 수 있으므로 자세히 밝히기는 곤란하지만, 좋아하는 몇 가지 방식을 소개할 수는 있겠다. 하나는 ‘화면 가운데에 맞춘, 화면 너비에 크기가 비례하는 글자’다. 타이포그래피의 여러 강조법 가운데 특히 ‘가운데 맞추기’를 좋아하는데, 가장 단순하면서 효과적인 강조법이라는 생각에서다. 특히 화면 가운데 놓이면 어떤 권위를 생기기도 한다. 좋아하는 만큼 즐겨 사용하기도 한다. 이렇게 범용적인 스타일을 구축한 뒤에는 콘텐츠 자체에 관해서만 고민할 수 있다.

또 하나는 ‘무작위’다. 웹사이트에 접속할 때마다 새로운 또는 생경한 느낌을 주려는 의도다. 가나다순, 알파벳순, 게시 날짜 역순 등 기본적인 콘텐츠 정렬 순서 탓에 눈에 잘 띄지 않는 콘텐츠를 위한 장치이기도 하고, 수많은 디자인적 선택에 따른 책임을 함수(function), 즉 컴퓨터에 전가하려는 태도이기도 하다.



‘최소 입력, 최대 출력’을 지향한다. 즉, 콘텐츠를 굳이 여러 페이지로 나누기보다 한 페이지 안에서 기본적인 열람 방식인 상하 스크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사용자의 클릭이나 터치 또한 노동력이 필요하므로 이를 최소화하려는 의도다.


콘텐츠를 한 화면에 배치하기보다 레이어별로 세분화하고, 여기에 모션이나 시퀀스를 부여하는 등 시간이라는 요소를 도입하기도 한다.

웹 브라우저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콘텐츠는 반드시 웹 브라우저의 주 화면에만 놓이지 않는다. 예컨대 제목 표시줄이나 패비콘(Favicon), 웹 조사기를 활성화한 뒤에 볼 수 있는 소스 코드나 콘솔(console) 화면 또한 웹사이트의 일부분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도메인, 즉 웹사이트 주소 또한 웹사이트에서 파생된 콘텐츠다. 김뉘연과 전용완의 웹사이트 주소(http://kimnuiyeon.jeonyongwan.kr)가 좋은 보기다. 도메인은 크게 주 도메인(main domain)과 보조 도메인(subdomain)으로 나뉘는데, 보조 도메인(김뉘연)은 주 도메인(전용완) 없이 성립할 수 없고, 보조 도메인(김뉘연) 없이 주 도메인(전용완)만으로는 웹사이트에 접속할 수 없다. 듀오로 활동하는 생산자의 웹사이트에 개념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적합한 도메인 형태 아닐까 싶다. 게다가 그 덕에 조금 길긴 하지만, [email protected](김뉘연)과 [email protected](전용완) 같이 아주 근사한 이메일 주소가 탄생했다.

한편,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함께 일하는 사람에 관해서도 알게 되고, 나아가 일을 통해 그에게 깜짝 선물 같은 걸 건네고픈 생각이 들기도 한다. 웹사이트 어딘가에 이스터에그처럼 서로만 알 수 있는 특정 요소를 굳이 숨겨놓는 까닭이다. 헛웃음이나 코웃음일지라도 그가 그것을 발견하고 웃음 짓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다. 일종의 사랑이다.
일찍이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가 묘사한 ‘멋진 신세계’군요. 이참에 인터넷을 해지하는 게 좋겠어요. 소셜 미디어도 죄다 탈퇴하고요.
너무 극단적인데요? 오늘날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가 되는 건 아무래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럼에도 웹사이트의 가치는 무화하지 않습니다.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뉴스, 24시간 운영되는 쇼핑몰, 언제 어디서나 접속할 수 있는 은행 등 오늘날 저뿐 아니라 누구나 마주하는 이기(利器)는 모두 웹사이트 덕이니까요.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저 웹사이트를 조금 더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시선 아닐까요? 요컨대 웹사이트는 새로운 표현의 장이자 새로운 언어가 될 수 있습니다. 율리시스가 세이렌의 노래를 감상하며 배를 조종했듯 디지털의 온갖 유혹에 현명하게 대처할 수만 있다면 말이죠. 이쯤에서 잠시 생각해볼까요? 오늘 하루 얼마나 많은 웹사이트를 방문했을까요? 그 경험은 무엇을 남겼을까요? 시인이 언어로 시를 쓰듯 웹사이트로 무엇을 표현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에서 웹사이트의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또 다른 제품 「‘좋아요’가 좋아요」입니다. 많은 사람이 깜찍한 하트 아이콘을 위시한 ‘좋아요’의 자발적 노예가 된 오늘날, ‘좋아요’를 신봉하는 이 웹사이트에서 방문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좋아요’뿐입니다. 그 앞에서 다른 기능은 불필요하죠.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입니다. 시적 연산 학교에서의 경험담이 궁금합니다.
안그라픽스가 지루해질 무렵 우연히 발견했어요. 저는 이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인데, ‘시’(poetic)와 ‘연산’(computation)을 조합한 학교 이름이 근사했습니다. 제 관심사를 잘 정리한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만큼 제 이력서의 학력에 이 학교가 들어가면 어울리겠다고 생각했죠.
잘 다니던 회사를 갑자기 그만두고 미국에 다녀오겠다는 말에 어머니는 아연실색하셨죠. 결혼도 한 상태였거든요. 나중에 알고 보니 경쟁률이 꽤 높았는데, 사실 어떻게 합격했는지 모르겠어요. 일종의 대안 학교였고, 3개월 과정이었지만,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계속 수업이 있었고, 수업이 끝나면 밤 늦게까지 이런 외부 특강 같은 행사가 거의 매일 열렸어요. 다른 지역이나 다른 나라에 살던 친구들이 많았던 터라 주말에도 딱히 할 일이 없어서 대부분 학교에 있었고요.
오랜만에 학생이 되니 무엇보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가장 큰 수확은 사람이었어요. 친구를 많이 사귀었습니다. 최태윤, 강이룬, 소원영 등 당시 뉴욕의 미술 및 디자인계에서 활동하던 한국인뿐 아니라 예전부터 이메일로만 연락하던 로럴 슐스트(Laurel Schwulst)라는 친구를 만났고, 그 덕에 데이비드 라인퍼트(David Reinfurt), 존 프로벤처, 민디 서 같은 또 다른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고요. 최근에 출간된 책을 번역하거나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강연할 수 있었던 건 이 친구들 덕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뉴욕에 친구가 많다는 건 뉴욕에 놀러갔을 때 저렴한 비용으로 잘 수 있는 공간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2021년의 트렌드 또는 문화 현상은?
지금까지 경험해본 바로는 이해할 수 없는 대상과 사랑에 빠지는 건 이따금 감행해볼 만한 일이다.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되리라는 것을 예감하더라도 몸과 마음을 그저 흐름에 맡겨보는 것이다. 2021년의 트렌드 가운데 특히 메타버스(Metaverse)와 NFT(Non-Fungible Token)는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고, 사실 이해하고픈 마음도 별로 일지 않지만, 분위기상 한동안 이야깃거리가 되리라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도 여기에 한 발 담글 수 있는 여지가 없을지 기회를 엿보고 있다.
이제야 웹사이트가 ‘진보한 인쇄물’이라는 점이 이해가 간다. 인쇄물을 만드는 데는 단행본을 기준으로 적어도 2개월 정도가 걸리는데, 웹사이트는 보통 어느 정도가 걸리나?
정적 웹사이트 겸 포스터식 웹사이트는 콘텐츠가 제대로 마련되고 콘셉트가 정해진 상태라면 사실 하루만이라도 완성할 수 있다. 물론 이는 테스트를 제외한 시간이다. 어떤 웹사이트는 사용하는 데 무리가 없을 만큼 공개한 뒤 점진적으로 업데이트하기도 한다. 서울시립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와 함께한 ‹NR 베이커리›(NR Bakery, 2021)가 비슷한 경우인데, 인쇄물 작업에 익숙하다면 낯선 방식일지 모른다. 콘텐츠를 기획하고, 편집하고, 검토하는 시간을 제외하더라도 1개월은 걸린다. 모두 고려하면 한 웹사이트를 만드는 데 2–3개월 정도 걸리는 게 일반적이다.
이 글은 꼭 이 웹사이트의 곁가지 같기도 하네요. 한데 웹사이트를 살펴보니 ‘새로운 질서’라는 말이 자주 눈에 띕니다. 얼핏 학교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신흥종교 같기도 한데요?
둘 다 맞거나 둘 다 틀립니다. 「새로운 질서」를 시작한 건 2016년, 미국 시적 연산 학교(School for Poetic Computation)에서 수학한 뒤 한국에 돌아온 뒤였죠. “어떤 대상을 좋아하고, 급기야 사랑하게 되면 그 아름다운 마음을 주위와 나누고 싶게 마련이다.” 「새로운 질서」에서는 웹을 이루는 기본적인 컴퓨터 언어를 익혀 자신의 관심사를 재료 삼아 자신만의 웹사이트를 만들어봅니다. 매주 금요일 열리는 「새로운 질서」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하자센터, 홍익대학교 등과 어깨동무하며 핸드메이드 웹의 정신으로 자신만의 웹사이트를 만드는 즐거움을 나눕니다. 어느덧 「새로운 질서」와 함께한 친구들이 어느덧 400여 명을 넘은 것도 모두 웹사이트 덕이죠. 웹사이트가 현실과 조금 더 가까워지거나 어떤 차원에서는 이미 현실을 대체한 오늘날, 「새로운 질서」가 새로운 문해력을 익히는 동시에 자신을 향한 사랑을 확장하는 시공간이 되기를 기대할 뿐입니다.

소셜 미디어만으로도 충분히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시대, 민구홍 매뉴팩처링 스타일로 이야기하면 ‘소개의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개인 웹사이트를 만드는 일이 유의미할까요?
파급력만 놓고 보면 소셜 미디어만 한 도구가 없죠. 하지만 소셜 미디어에는 저마다 제약이 있고, 이런 제약은 사용자의 행복을 제한해요. 예컨대 트위터에서는 게시물 글자 수에 제한이 있고, 인스타그램에서는 글 한 줄을 게시하려 해도 이미지나 영상이 필요해요. 게시물 속 하이퍼링크도 작동하지 않고요. 사용자를 인스타그램에 영원히 머물게 하려는 전략이죠.
또한 ‘좋아요’ 기능은 자신의 생활을, 자신의 작품을, 나아가 자신을 불특정 다수에게 평가받는 위치로 옮겨놓습니다. 그 결과를 깜찍한 하트 아이콘과 몇백에 불과한 숫자로 확인는 건 그리 유쾌하지 않죠. 누구나 ‘좋아요’ 수가 많지는 않을 테니 누군가는 초라함을 느끼거나 자신의 작업 또는 삶 자체를 부정하게 되기도 하고요. 주체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분위기에 휩쓸릴 수밖에 없죠.

한편, 디자인계에서 주로 소비되는 카르고(Cargo) 같은 서비스는 코딩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을 위해 그럴듯한 템플릿을 제공합니다. 사용하기 편리한 건 사실이지만, 템플릿들은 사실 콘텐츠와는 유리된 상태예요. 이미 짜인 틀에 콘텐츠를 맞추는 셈이죠. 그러다 보니 사용하다 보면 어딘가 입맛에 맞지 않고, 디자인에서 이런저런 요소를 바꿔보려고 시도해보면 쉽지 않죠. 덩달아 코드도 지저분해지고요. 웹사이트를 만드는 건 이런 템플릿을 수정하는 일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하죠.
몇 가지 컴퓨터 언어를 익히면 거의 모든 걸 스스로 제어할 수 있습니다. 백지 상태에서 오직 자신을 위한 웹사이트를 만드는 건 ‘현대인을 위한 교양’으로서 해볼 만한 일이죠.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생각해보고, 그것을 정리해 글을 써보고, 그것에 컴퓨터 언어로 어떻게 새로운 질서를 부여할지 고민하는 건 소중한 일입니다. 게다가 기술을 주체적으로 받아들이고 사용할 수 있게 되고요.
전염병 때문에 ‘죽음’이라는 말이 어느 때보다 익숙한 시대입니다. 매일 아침이면 어제 몇 명이 세상을 떠났는지 보도되죠. 그만큼 생활에 관해 생각해보게 돼요. 자신을 위한 웹사이트를 만드는 일은 어쩌면 자신을 도저하게 사랑하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나를 도저하게 사랑하다 보면 남도 도저하게 사랑할 수 있죠. 사랑과 그에 따른 행복은 전염병보다 빠르게 전염되고요. 죽기 전에 해야 할 이보다 중요한 일이 있을까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기술은 AG 랩에서 어떻게 활용되나요?
다음을 참고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만큼 말이 필요 없습니다.






AG와 안그라픽스의 새싹 또는 홀씨 또는 곁가지인 AG 랩의 새싹 또는 홀씨 또는 곁가지에 들러보시는 것도 좋고요.
2019년 3월 12일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에서 «웹-레트로»(Web-retro)가 열렸다. 전시의 야심과 달리 안타깝게도 전시 웹사이트는 현재 운영되지 않는다. 온라인 전시는 서버 호스팅 비용을 지속적으로 지불하며 언제까지 유지해야 할까?
웹사이트가 소프트웨어처럼 ‘영원한 베타(perpetual beta)’라는 점을 고려하면 ‘유지’라는 표현이 과연 적절할까 싶다. 웹사이트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 기존 콘텐츠를 바탕으로, 또 다른 전시나 활동이 가능하다. 슬기와 민 웹사이트의 하단에도 이를 의식한 듯한 문구가 있지 않은가. “이 웹사이트는 영원히 제작 중이다.(This website is forever in the making.)” 최초의 웹사이트가 공개된 이래 지금까지 30여 년 동안 운영되듯 웹사이트를 유지하는 건 운영자의 의지에 달렸다. 온라인 전시도 마찬가지다. 웹사이트는 운영자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순간 죽어가기 시작한다.

미국 브라운 대학교(Brown University) 교수 겸 컴퓨터 과학자 제프 황(Jeff Huang)은 자신의 웹사이트에 「웹에서 콘텐츠를 보존하기 위한 선언문」(A Manifesto for Preserving Content on the Web, 2019–)을 공개하고 틈틈이 업데이트한다. 그는 선언문에서 최신 기술에 기반한 웹사이트일수록 콘텐츠를 보존하기 쉽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서버 환경이 조금이라도 달라지면 특정 기술은 아예 작동하지 않는 까닭이다. 그는 일곱 가지 강령을 제안했는데, 첫 번째는 웹사이트를 만드는 데 순수한(vanilla) HTML과 CSS를 사용해보라는 것이다. 물론, 모든 웹사이트에 적용할 수는 없지만, 콘텐츠를 보존하는 측면에서는 분명히 참고해볼 만하다.

이와 관련해 미술계에도 비슷한 예가 있다. 장영혜 중공업이 주로 사용한 기술인 어도비 플래시(Adobe Flash)는 오늘날 허술한 보안, 컴퓨터 성능 저하 등의 이유로 완전히 폐기됐다. 이제 그들의 작업은 일종의 영상으로서 비메오(Vimeo)에 게시된다. 재생 버튼을 누를 필요도 없이 접속하자마자 작품이 작동하는 어떤 짜릿함은 사라졌다. 사랑과 존경을 포함해 이런 사소한 아쉬움을 ‹장영혜 중공업 귀중›을 통해 전하기도 했는데, 아직 답변은 받지 못했다. 처음에는 아쉽고 섭섭했지만, 이제는 다시 한번 편지를 보낼 용기가 생겼다. 제목은 ‹장영혜 중공업 귀중 2›가 적절할 것 같다.

올해 나만 알고 싶을 정도로 특별한 발견의 순간은?
누구보다 웹을 사랑한다고 자부하지만, 1년 넘게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실수로 스마트폰 설정을 초기화하면서 자동 로그인 기능이 해제된 까닭이다. 사실 터치 몇 번만으로 다시 암호를 찾아 로그인하면 그만인데, 잠시나마 주저하게 되는 데는 분명한 까닭이 있다. 그 아름다운 공간을 해매는 동안 느끼는 행복만큼 그 반대편에서 피어오르는 감정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잊히는 건 아닐까?’ 심각한 우려와 달리 사회성을 유지하는 데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전보다 자주, 어쩌면 더 깊이 사람과 만나고, 전화 통화를 하고, 문자 메시지와 이메일을 쓴 것 같다. 굳이 깜찍한 하트 아이콘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국가를 초월해 연결될 사람은 연결되고, 알아야 할 소식은 알게 된다. 나머지는 간단하고 자연스럽게 굳이 연결되지 않아도 그만인 사람, 알지 않아도 그만인 소식이 된다. 나와 내 곁만 살피기에도 시간은 부족하다.
질서와 정리 정돈이라는 행동양식이 몸에 익은 것처럼 보인다. 민구홍에게 무질서란 사고(accident)인가? 본인이 접해온 무질서한 상황의 예시나, 이와 같은 상황을 접할 때 어떤 순서로 대책을 세우는지 또는 때로는 세우지 않는지 알려달라.
내가 관심 있는 건 질서 자체가 아닌, 어떤 대상에 질서를 부여하는 과정과 방식이다. 물론 어떤 상황에서는 우스꽝스러워 보일 정도로 지나치게 질서에 집착하지만, 모든 것을 완벽하고 깔끔하게 편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모든 외래어를 순화하려는 국립국어원의 시도가 이를 증명한다. 특정한 원칙을 마련한 뒤 충실히 따르려 해도 해당 원칙을 무너뜨리는, 그래서 옹색한 세칙을 마련할 수밖에 없는, 내가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이 일어나고야 만다. 따라서 우리 집은 물론이고, 내가 일하는 책상과 책상 주변은 질서와는 거리가 멀다. 온갖 콘텐츠와 기술이 뒤섞인 웹처럼, 가깝게는 우리 생활처럼 차라리 엉망진창이 자연스러운 상태임을 인정하는 편이 정신 건강에 이롭다.
디자인 이전에 콘텐츠에 대한 태도가 재미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웹사이트가 있나요?
얼마 전 프루트풀 스쿨과 계원예술대학교에서 열린 특강에서도 같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답변은 한결같아요.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 경이 만든 일반에 공개된 최초의 웹사이트예요. 웹을 소개하는 웹사이트 속 콘텐츠는 공들여 번역하고 싶을 만큼 우아하고 실용적이에요. 게다가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무리 없이 작동하죠. 흰색 배경, 검은색 글자, 밑줄이 그어진 파란색 링크 같은 기본 스타일이 적용돼 있는데. 이 웹사이트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추구하는 바를 여실히 드러냅니다.

최초의 웹사이트만큼은 아니지만 일본의 배우 아베 히로시(阿部寛)의 공식 웹사이트도 좋아해요. 『릿터』 24호에도 이와 관련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1996년 무렵 팬이 만든 웹사이트를 배우가 공식 웹사이트로 삼으면서 지금까지 당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죠. 얼핏 웹 기술에 갓 입문한 사람이 만든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도 최신 정보가 업데이트돼요. 배우의 과거 사진, 에세이 등 쉽게 접하기 어려운 정보도 싣고 있고요. 한 웹사이트가 25년여 동안 같은 스타일을 유지하는 데는 여전히 구형 해치백을 몬다는 배우의 취향도 어느 정도 작용했겠죠?
앞서 소개한 두 웹사이트는 그동안 쌓인 시간 덕에 설명하기 어려운 아우라가 느껴집니다. 콘텐츠가 디자인을 장악하는 증거죠. 장영혜 중공업이나 양혜규 선생님의 웹사이트 또한 비슷한 맥락에 있습니다. 콘텐츠가 아름답다면 스타일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모든 경우에 적용할 수는 없겠지만, 많은 경우 그렇게 적용할 수 있게끔 국면을 편집할 수 있죠.
지금까지 웹사이트는 구글이나 네이버, 웹진 『비유』 같은 것만 생각했는데… 그럼 웹사이트는 어떻게 만드나요? 누구나 만들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웹사이트는 개발자나 웹 디자이너만이 만들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럴 수도, 그럴 필요도 없고요. 즉, 웹사이트는 모두를 위한 매체입니다. 웹사이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코드(Code)로 컴퓨터와 대화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컴퓨터 언어가 필요하죠. HTML(HyperText Markup Language)을 비롯해 CSS(Cascading Style Sheets), 자바스크립트(JavaScript)는 단순한 컴퓨터 언어가 아니라 시인의 펜이자 작곡가의 악보입니다. 자연어의 문법이 주어, 동사, 목적어로 세계를 구축하듯 웹상에서 HTML은 태그로, CSS는 선택자와 속성으로, 자바스크립트는 함수와 변수로 세계를 구축합니다. 나아가 세 언어는 저마다 고유한 특성을 지닙니다. HTML은 구조를 맡습니다. 건축가가 건물의 뼈대를 세우듯 HTML은 웹 페이지의 기본 구조를 만듭니다. CSS는 스타일을 맡습니다. 화가가 캔버스에 색을 입히듯 CSS는 웹 페이지에 시각적 아름다움을 더합니다. 자바스크립트는 기능을 맡습니다. 작곡가가 음표로 멜로디를 만들듯 자바스크립트는 웹 페이지에 생동감을 불어넣습니다. 시의 운율, 비유, 이미지가 어우러져 하나의 시를 완성하듯 세 언어는 서로 긴밀히 연결돼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이 과정은 그 자체로 순수한 창작 행위죠.
2020년 아트선재센터에 이어 2021년 대안공간 루프에서 「장영혜 중공업 귀중」 제2판을 선보였다. 제1판과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제1판을 선보인 뒤 1년 사이 달라진 상황에 따라 몇몇 내용이 추가되거나 삭제됐고, 더욱 큰 화면에 오직 장영혜 중공업만 사용할 수 있는 소파와 헤드폰이 마련됐다. 그럼에도 장영혜 중공업을 향한 존경과 사랑, 그리고 부탁 한 가지는 그대로다. 답변을 받을 때까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선보이는 연작이 될 예정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체를 오가며 작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오늘날 ‘출판’(publishing)은 종이 위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 온라인상에서 콘텐츠를 공개하고 소개하는 일 또한 ‘출판’이라 부르는 만큼 이제는 종이 책을 ‘오프라인 출판물’로, 웹사이트를 ‘온라인 출판물’로 불러도 별로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종이 책과 웹사이트를 한데 출판물로 묶는다면, 즉 콘텐츠가 놓인 자리만 바뀌었을 뿐이라 믿는다면, 두 매체를 둘러싼 고민은 교정되거나 몇몇은 자연스럽게 해결될지 모른다.
스스로 작가를 겸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내 역할은 매체에 따라 제한되고 조금씩 달라진다. 대개 종이 책에서는 기획자와 편집자 사이를, 웹사이트에서는 기획자, 편집자, 디자이너, 프로그래머 사이를 오간다. 이 과정은 단순하게는 문장의 오류를 점검하거나 문장을 매끄럽게 다듬는 일에서 이따금 1차 생산자의 존재가 옹색해지는 창작이 되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잊지 않으려 하는 바는 작업 대부분이 콘텐츠 없이는 시작할 수조차 없는 2차 생산이라는 점이다. 출판이 말하기라면, 내 역할 가운데 하나는 말이 제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는 일이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1차 생산자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파악하는 일 아닐까?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졸업생입니다. 웹사이트를 만들 때 글자를 독특하게 구사해본 경험이 있나요?
명확한 이유가 있다면 글자를 독특하게 구사할 필요가 있겠지만, 그런 상황 자체를 함부로 만들지 않는 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태도를 견지하다보면 아무래도 콘텐츠에 더 집중하게 되거든요. 웹사이트가 하나의 이야기라면, 어떻게 이야기할지보다 무엇을 이야기할지를 먼저 생각하는 거죠. 실제로 가로세로 1픽셀 정방형만큼은 그게 더 중요하고요. 얼마 전에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학생분들을 대상으로 강연할 기회가 있었는데, 여기서 『웹사이트 탄소 계산기』(Website Carbon Calculator)라는 웹사이트를 소개했어요. 이 웹사이트는 여러 웹사이트가 발생시키는 탄소를 수치화해 보여주는데, 이를 통해 웹이 결국 화석 연료에 기반하고, 웹사이트가 무거울수록 환경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상기할 수 있습니다. 2020년 연평균 이산화탄소 농도가 413.2 ppm으로, 산업화 이전(278.0 ppm)보다 48퍼센트 정도 증가했다고 해요. 이미지, 영상, 애니메이션 등 시각적인 부분에 집중할수록 웹사이트가 무거워지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제가 극단적인 환경론자는 아니지만, 웹사이트를 가볍게 만드는 게 조금이나마 인류에 공헌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싶어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공식 웹사이트는 정말 근사합니다. 그런데 제 컴퓨터에서는 접속이 느릴 때가 있어요. 간헐적으로요. 왜 그럴까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드림호스트를 사용하는데, 싸구려 플랜인지라 한국에서는 조금 느립니다.
2021년 현재 HTML의 표준 명세인 HTML5에서 사용되는 태그 113가지나 됩니다. 이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태그는 무엇인가요?
<a> 태그입니다. 콘텐츠에 하이퍼링크를 만들어 다른 콘텐츠와 잇는 태그로, 웹을 웹답게 만드는, 웹의 산소 같은 존재죠. 인쇄물과 웹사이트를 구별짓는 대표적인 태그이기도 해요. 인쇄물에서 각주, 방주, 미주에 불과했던 콘텐츠는 <a> 태그 덕에 웹에서 새로운 지위를 획득했으니까요. a는 ‘닻(anchor)’를 뜻해요. 여러 해석이 있지만, 저는 웹사이트에서 하이퍼링크를 클릭했을 때 그곳에 닻을 내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고 생각해요.
최정호가 현재 받는 인지도나 평가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질문의 의도를 짐작해서 답변하자면 업적보다 덜 알려진 것 같기는 하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제품을 사용할 때 그 제품의 역사를 속속들이 알지 못하고, 굳이 그럴 필요도 없듯이 많은 사람이 최정호를 잘 모른다고 해서 아쉬워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입니다. 시, 소설, 작업, 노래, 영상 등 최근에 접한 것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단 한 가지로 수렴할 수밖에 없는 ‘가장’이라는 표현은 저와는 별로 어울리지 않습니다. 너무 많은 게 한꺼번에 떠오르거든요. 그래서 차라리 제 생활 패턴을 말씀드리는 게 어떨까 싶어요.
평일 가운데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회사에서 열심히 일합니다. 학기 중에는 목요일에 학교에서 강의를 하고요. 금요일에는 새로운 질서에서 친구들과 만나고요. 퇴근한 뒤에는 특히 드라마나 영화를 많이 봅니다. 최근에는 시트콤 『사인펠드』에 푹 빠졌고, 『세브란스: 단절』도 두 번째 시즌이 나올 때까지 계속 보죠. 음악도 많이 듣고요. 게임도 합니다. 아내와 산책하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죠. 얼마 전에는 일본 이민에 관해 진지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주말에는 심심하면 번역과 작곡에 심취하고요. 그리고 12시 전에 자고, 8시 전에 일어납니다.
COS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와 관련된 책을 몇 권 꼽아주세요.
이제 웹사이트가 무엇인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시 질문해보고 싶어요. 설령 같은 답이 돌아오더라도요. 대관절 웹사이트란 무엇인가요?
글쎄요. 어쨌든 우리는 그곳을 ‘웹사이트’라 불렀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 말이 사전적으로 규정하는 바는 조금 협소해 보입니다. 웹사이트의 내일은 기술과 인간이 만나는 지점에 있습니다. 여전히 웹사이트는 정보와 예술, 기술과 인문학이 어우러진 공간이 될 테고, 우리는 이곳에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새로운 사고방식을 발전시키며 우리가 존재하는 새로운 방식을 모색할 수 있지 않을까요? T.S. 엘리엇의 말마따나 “우리는 출발점으로 돌아와 그곳을 처음으로 알게 된다.” 우리가 웹사이트를 통해 마주하는 경험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끝없는 디지털 공간을 배회하다 보면 우리가 알게 되는 건 결국 나 자신, 나아가 우리겠죠.
책을 멘탈 푸드로 꼽는 분들도 계신데, 이 말에 동의하시나요?
사람마다 다르겠죠. 멘탈 푸드가 정신에 도움이 되는 무엇이라면, 책을 만드는 입장에서는 동의하기 어려워요. 저한테 책을 읽고, 보고, 만지고 하는 건 아무래도 일의 범주 안에 있으니까요.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온갖 책과 씨름하다가 퇴근한 뒤에는 웬만하면 책은 더 이상 대하고 싶지 않아요. 책을 만드는 게 즐거운 일이긴 해도 늘 옥수수수염차만 마실 수는 없잖아요. 여덟 시간 동안 책을 만들면서 한쪽으로 기울어진 정신은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이나 스릴러 영화, 민구홍 매뉴팩처링 같은 것으로 바로잡죠.
이제 슬슬 마무리를 할 때가 된 것 같다. 일곱 살 무렵부터 웹을 사용하고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오래 전부터 웹을 사용해온 소비자, 크고 작은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한 생산자, 웹 기술을 가르치는 교육자로서 앞으로 미술 또는 디자인계에서 수행할 만한 과제를 제시한다면?
2001년에 열린 «코리아 웹 아트 페스티벌 2001» 이후 20여 년이 지났다. 그 사이 미술을 둘러싼 웹 생태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되돌아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일단 «웹-레트로» 전시 웹사이트부터 다시 운영하면 어떨까? 웹을 둘러싼 생산자를 정리하는 작업도 필요하겠다. 느닷없는 흐름에 휩쓸리듯 편승한 생산자도 있겠지만, 그 전부터 웹을 통해 이런저런 시도를 해온 사람도 적지 않다. 그들이 만든 지형도는 분명히 기존 미술 또는 디자인의 지형도와는 또 다른 모습일 것이다. 게다가 이 작업의 결과물은 누구나 어디서든 쉽게 열람할 수 있는 매체, 즉 웹사이트인 편이 좋겠다. 여기에 단순한 포럼 형태여도 좋으니 담론을 만들어내는 공간도 마련되면 좋겠다. 1996년 이래 수많은 생산자의 성공과 실패를 축적해온 뉴 뮤지엄(New Museum)의 아티스트 레지던시인 리좀(Rhizome)이 좋은 보기다. 사실 이 작업은 뜻이 맞는 몇몇 생산자와 이야기를 시작한 상태다. 혹시 관심 있는 생산자와 소비자는 [email protected] 앞으로 메일을 보내주시라.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같은 국공립 미술관과 작업할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외부에서 작업한 웹사이트에 대한 서버 차원의 지원이 미비한 편이었다. 관공서 웹사이트는 대부분 자바로 개발된 전자 정부 표준 프레임워크를 기반으로 제작해야 하는데, 미술 및 디자인계에서 자바를 다룰 줄 아는 전문가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파악하기로는 아무도 없다. HTML 태그도 의미론적으로 사용되지 않은 편이고, 기본적으로 작품 이미지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대체 텍스트 또한 마련돼 있지 않다. 이는 즐거움 이전에 접근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학교에서도 웹에 관한 커리큘럼을 적극적으로 마련하면 좋겠다. ‹새로운 질서› 친구들 200여 명 가운데 미술 및 디자인 전공생이 30퍼센트 정도로, 적은 비율은 아니다. 그들 입장에서는 추가로 과외를 받는 셈인데, 그들에게 코딩 수업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물어보면 워드프레스 템플릿을 수정해보거나 특정 웹사이트를 그대로 재현해보는 정도에서 그친다고 한다. 한두 사람이 모든 경험과 실패를 독점하는 상황은 별로 건강하지 않다. 이를 나눌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옳겠다. 팀 버너스리 경이 강조한 웹의 정신이 ‘개방, 참여, 공유’ 아니던가. 커리큘럼을 마련하는 게 어려운 상황이라면 외부 강좌와 연계하는 방식도 있겠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관한 소논문을 써볼까 합니다. 추천해주실 만한 자료가 있을까요?

『레인보 셔벗』(Rainbow Sherbet, 작업실유령·아카이브 봄, 2019)을 추천합니다. 뒤표지에 실린 그래픽 디자인 듀오 슬기와 민의 추천사를 덧붙입니다.
『레인보 셔벗』은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회사를 소개하는 데 일조하는 책이다. 이런 식의 소개문 몇 줄이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일종의 트롱프뢰유(trompe-l’œil)기도 하지만, 책 속에 따로 머리말이 없으니 이 자리를 활용하면 좋을 듯합니다. 다만, 분량은 160자 정도로 제한해 주세요.
누군가 민구홍 님을 ‘웹 디자이너’로 부른다면 정당한 표현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만약 ‘웹 디자이너’라는 단어와 불일치를 느낀다면 무엇 때문인가요?
2022년 『더플로어플랜』(The Floorplan)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저를 무엇으로 규정하는지는 그저 상대방에게 맡기고 싶습니다. 제가 생각지 못한 직함이 튀어나오고, 그에 따라 상대방을 대하는 제 태도도 달라지는 게 재미있고요. 그렇게 저는 상대방에 따라 편집자뿐 아니라 작가, 선생님, 나아가 남편이나 애인이 되기도 하겠죠.” 여러 직함으로 불리곤 하지만, 저는 무엇보다 ‘편집자’에서 풍기는 무미건조함이 마음에 듭니다. 이는 ‘편집’이라는 행위가 아우르는 범위가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비롯합니다. 아주 넓기도 하고, 아주 좁기도 하죠. 저는 디자인 또한 편집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편집과 디자인을 동시에 경험해본 분은 제 말 뜻을 아실 거예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공식 웹사이트는 왜 이런 모양인가?
2015년 느닷없이 설립된 이래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소개’라는 행위에 이따금 우스꽝스러워 보일 만큼 섬세하고 강박적으로 천착해왔다. (회사의 첫번째 제품은 열세 번째 ‘시청각 문서’로 발표한 「회사 소개」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모든 생산 활동의 기저에 어떤 대상, 나아가 생산 주체, 즉 자신을 소개하고픈 욕망이 자리한다고 믿는 까닭이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회사’라는 형식을 전유해 이 믿음을 의식하고 양식화한 결과물로, 회사의 모든 활동은 결국 ‘소개’로 수렴한다. 회사의 공식 웹사이트는 설립과 거의 동시에 만들어졌다. 모름지기 회사라면 일단 그럴듯한 공식 웹사이트를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몇 가지 메뉴 가운데 「자주 하는 질문」은 지금까지 진행한 인터뷰를 뒤섞은 공간이다. 이곳은 회사의 포트폴리오를 얼마간 대신하기도 하는데, 이를 통해 회사가 구사하는 전략은 글쓰기에서 비롯한다는 점을 드러내려 했다. 디자인은 회사가 웹을 사랑하는 만큼 최초의 웹사이트 스타일을 본받았다. 어떤 대상에 시간이 쌓이다 보면 디자인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아우라가 풍긴다. 최초의 웹사이트 스타일을 본받아 회사가 답습하려 하는 바는 사실 이 아우라다.
앞선 사례는 콘텐츠와 기술이 온라인 전시를 기획할 때 참고할 만하겠다. 그 밖에 프로젝트에서 웹사이트를 적극적으로 이용한 사례를 소개한다면?
웹사이트의 아름다움은 실용적으로 작동할 때 배가된다. 예컨대 웹사이트가 처음부터 프로젝트를 이끄는 경우다. 워크룸에서 패션 브랜드 디스이즈네버댓(thisisneverthat)과 작업한 ‹디스이즈네버디스이즈네버댓›(thisisneverthisisneverthat, 2020)은 사실 처음에는 예정에 없었다. 웹사이트는 단행본에 실을 3,000여 가지 항목의 정보를 정리하는 도구였다. 이미지를 포함해 제품명, 제품 코드, 종류, 색, 재질 등 여러 정보를 정리하기에 엑셀이나 구글 스프레드시트를 사용하면 데이터를 재가공하는 데 불편함이 따랐다. 처음에는 프런트엔드가 없는, 데이터베이스만을 관리하는 헤드리스(headless) CMS 같은 형태였는데, 데이터베이스가 쌓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정식 웹사이트로 확장됐다. 이와 같이 웹사이트가 전통적인 인쇄물의 역할만 수행한다면, 이는 웹사이트가 지닌 수많은 가능성을 포기하는 꼴이다.

이번 ‹타이포잔치 2021› 작업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도록에 실릴 콘텐츠 또한 일차적으로 작업 도구로 구축된 웹사이트상에서 편집됐다.


김익현, 박가희, 이미지가 기획한 «우리는 바다에서 왔다»(2021)에서는 ‘오가사와라 키트’로 부르는 와이파이 공유기를 활용했다. 우선 참여자의 이름, 거주 지역,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 등을 취합해 분석하는 모객용 웹사이트를 만들고, 국내 신청자에게는 특정 링크를, 해외 신청자에게는 ‘오가사와라 키트’를 발송했다. 공항이나 스타벅스에서 인터넷에 연결하는 경험에서 착안해 본 웹사이트는 오가사와라 키트를 통해서만 접속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웹사이트 이전에 인터넷에 접속하는 행위 자체를 다뤄보려 했다.

출판으로서 발행하는 온라인 문서도 종이책처럼 출판물처럼 대해야 한다는 아이디어가 재미있습니다. e-pub이 다양한 인터페이스 기능을 제공하기에 다양한 링크 기능을 사용하듯이, 원한다면 수정된 것을 추적할 수 있게 하거나, 열린 문서일 경우에는 특정 기호, 닫힌 문서일 경우 다른 기호를 쓰면서요. 이러한 웹 출판물을 개발해보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열린 문서’와 ‘닫힌 문서’라는 개념이 재미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웹사이트를 표기하는 데 어울릴 만한 기호를 고안해볼 필요도 있겠네요. 앞서 말씀드린 세 꼭짓점 가운데 적어도 하나만 충족시킨다면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걸쳐 이제껏 굉장히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가장 만족스러웠던 작업은?
안그라픽스를 거쳐 워크룸에서 일하는 동안 얇게는 16쪽짜리 책에서 두껍게는 1,000쪽에 가까운 책까지 적지 않은 책을 만들어왔다. 모든 책은 웹사이트와 달리 재판(再版)하기 전까지 조금도 수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얼마간 불만족스럽다.

『생활 공작』은 미국에서 돌아온 뒤 워크룸으로 자리를 옮겨 기획한 첫 번째 책이다.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 시절 미국 중앙정보국의 전신인 전략사무국에서 적지에 침투한 간첩들에게 배포한 비밀문서를 원전으로 삼는다. 책에는 불필요한 회의를 자주 열거나 퇴근할 때 불을 끄지 말아야 한다는 식의 생활 속에서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공작 방법이 소개돼 있다. 번역은 군사 전문가 홍희범 선생에게 부탁했다. 『생활 공작』은 ‘실용 총서’의 첫 번째 책이기도 한데, 이 책 외에도 지금까지 『헤비듀티』, 『히트곡 제조법』, 『실전 격투』가 출간됐다. 참고로, ‘실용 총서’의 모토는 다음과 같다. “과거에는 실용이었으나 오늘날 실용만으로 기능하지 않는, 과거에는 실용이 아니었으나 오늘날 실용으로 기능하는 자료를 발굴합니다. 실용을 곱씹게 하는 현대인의 교양 총서를 자처합니다. 아름다운 실용의 세계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패션 브랜드 thisisneverthat의 10년을 정리한 『thisisenverthisisneverthat』도 기억에 남는다. 앞서 말한 1,000쪽에 가까운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책의 많은 부분은 3,000여 가지에 달하는 제품의 목록으로 이뤄져 있는데, 다양한 항목으로 이뤄진 목록을 정리하는 도구로서 웹사이트를 요긴하게 활용했다. 웹사이트가 맨 앞에서 프로젝트를 이끈 좋은 보기다. 『타이포잔치 2021: 거북이와 두루미』의 콘텐츠도 일차적으로 웹사이트상에서 정리됐다. 두 경우 모두 웹사이트가 맨 앞에서 프로젝트를 이끌고 종이책과 함께 또 다른 결과물로 완성된 좋은 보기다.

웹사이트로 한정하면 2020년 크리스마스 즈음에 발표한 「장영혜 중공업 귀중」을 꼽고 싶다. 이 작품은 장영혜 중공업을 향한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존경과 사랑, 그리고 부탁 한 가지를 담은 편지 형식을 띤다. 그들이 주로 사용한 기술인 어도비 플래시(Adobe Flash)가 폐기된 지금 비메오(Vimeo)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기분이 궁금했는데 이 참에 묻기도 했다. 장영혜 중공업 공식 이메일로 전달했음에도 답장은 아직 받지 못했다. 처음에는 아쉽고 섭섭했지만, 이제는 다시 한번 편지를 보낼 용기가 생겼다.
‘타이포잔치’라는 행사가 있어요. 2001년부터 시작한 국제 타이포그래피 전시로 내년이면 어느덧 20년이 되는데요, 혹시 알고 계신가요? 아신다면 간단한 소감이나 인상을 말씀해주시겠어요?
소감이나 인상을 말하는 게 어색할 만큼 잘 알죠. 2년마다 타이포그래피를 주제로 전 세계의 디자이너들이 작가로 참여하는 대규모 전시는 동아시아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드무니까요. 그 대신 우화 한 편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언젠가 미국인 그래픽 디자이너 친구에게 이 행사에 참여하게 됐다고 털어놨을 때 이렇게 묻더군요. “오, 그렇구나… 축하해! 그런데 어떤 오탈자(typo)를 보여줄 계획이니? (Wow… Congratulations! But what type of typo do you want to show?)” 아주 순진한 얼굴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