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2015년 이래 진행한 길고 짧은 인터뷰를 꼼꼼히 정리한 뒤 다시 무작위로 늘어놓은 「자주 하는 질문」을 통해 회사 또는 운영자에 관한 궁금증이 모쪼록 해소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단, 질문의 시기에 따라 현재와 다른 사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편, 질문의 어조에 따라 언급한 인물에 대한 존칭을 생략하기도 했습니다. 「자주 하는 질문」을 섭렵한 뒤에도 궁금증이 도무지 해소되지 않는다면 [email protected] 앞으로 소상히 말씀해주세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인정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단, 답장은 이메일 대신 언젠가 「자주 하는 질문」에서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웹사이트는 구글이나 네이버, 웹진 『비유』 같은 것만 생각했는데… 그럼 웹사이트는 어떻게 만드나요? 누구나 만들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웹사이트는 개발자나 웹 디자이너만이 만들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럴 수도, 그럴 필요도 없고요. 즉, 웹사이트는 모두를 위한 매체입니다. 웹사이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코드(Code)로 컴퓨터와 대화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컴퓨터 언어가 필요하죠. HTML(HyperText Markup Language)을 비롯해 CSS(Cascading Style Sheets), 자바스크립트(JavaScript)는 단순한 컴퓨터 언어가 아니라 시인의 펜이자 작곡가의 악보입니다. 자연어의 문법이 주어, 동사, 목적어로 세계를 구축하듯 웹상에서 HTML은 태그로, CSS는 선택자와 속성으로, 자바스크립트는 함수와 변수로 세계를 구축합니다. 나아가 세 언어는 저마다 고유한 특성을 지닙니다. HTML은 구조를 맡습니다. 건축가가 건물의 뼈대를 세우듯 HTML은 웹 페이지의 기본 구조를 만듭니다. CSS는 스타일을 맡습니다. 화가가 캔버스에 색을 입히듯 CSS는 웹 페이지에 시각적 아름다움을 더합니다. 자바스크립트는 기능을 맡습니다. 작곡가가 음표로 멜로디를 만들듯 자바스크립트는 웹 페이지에 생동감을 불어넣습니다. 시의 운율, 비유, 이미지가 어우러져 하나의 시를 완성하듯 세 언어는 서로 긴밀히 연결돼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이 과정은 그 자체로 순수한 창작 행위죠.
이제는 안그라픽스 랩이 기생지가 되었군요! 웹을 생각하면서 웹 브라우저의 중요성을 종종 잊곤 하는데, 웹 ‘출판’도 이미 주어진 틀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출판’을 위한 작업을 할 때, 온라인과 오프라인 각각에서 어떠한 자유와 한계를 느끼며 작업하는지 궁금합니다.
10여 년 동안 종이책과 웹사이트를 편집해온 바로 오프라인 출판은 핑퐁 게임과 비슷합니다. 생산자의 역할은 크게 편집과 디자인으로 나뉘고, 서로 콘텐츠를 탁구공 삼아 주고받으며 결과물을 완성하죠. 반대로 온라인 출판, 즉 웹사이트는 저 한 사람이 거의 모든 것을 총괄합니다. 혼자 벌이는 핑퐁 게임이랄까요? 이 과정은 제게 글쓰기와 같습니다. 텍스트 에디터상에서 코딩, 즉 글을 쓰면서 시작해 트러블슈팅(troubleshooting), 즉 퇴고로 끝나니까요.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결과물의 구조적 질서, 시각적 질서, 기능적 질서까지 고려하게 되고요. 이 글쓰기의 끝에는 반드시 웹사이트만 있는 건 아닙니다. 공장에서 제품이 컨베이어벨트를 지나며 차곡차곡 조립되는 것처럼 과정이 분명하면 좋겠지만, 실제로는 아주 엉망진창입니다. 글쓰기 또는 웹처럼요.
넷 아트의 변천사를 훑어볼 수 있는 웹사이트는 없을까요?
물론 있죠. 미국 뉴욕의 미술관인 뉴 뮤지엄(New Museum) 산하의 디지털 아트 전문 기관인 라이좀(Rhizome)이 운영하는 「넷 아트 앤솔러지」(Net Art Anthology)는 넷 아트와 인터넷 문화를 중심으로 한 예술 작품 아카이브이자 온라인 전시 공간입니다.

흰 배경에 ‘NET ART ANTHOLOGY’라는 보라색 글자가 자리한다. 그 아래에는 이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라이좀의 로고가 자리한다. 하단에는 베이지색 띠가 있는데 웹사이트에 직접 접속하지 않고는 어떤 기능을 하는지 알기 어렵다.
이 웹사이트는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넷 아트 작품을 선별해 소개하며, 디지털 예술의 역사와 발전을 탐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기능합니다. 웹사이트에 소개된 작품은 시대의 맥락, 작가의 의도, 작품의 미학적·기술적 특징 등과 함께 제공되며, 넷 아트에 관심 있는 연구자와 예술가들에게 풍부한 영감과 지식을 제공합니다. 잠깐 이야기를 멈추고 이 웹사이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둘러보시는 건 어떨까요? 라이좀을 향한 감사와 이보다 더 나은 웹사이트를 만들고픈 욕망을 품고요.
민구홍 매뉴팩처링 공식 웹사이트는 5년 동안 같은 모습을 유지합니다. 특별한 까닭이 있나요?
일반에 공개된 세계 최초의 웹사이트가 30여 년 동안 같은 모습을 유지하는 까닭과 다르지 않습니다.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졸업생입니다. 종이 책과 웹사이트에서 섞어짜기를 구사하는 데 어떤 차이가 있나요?
개념은 같아요. 차이는 방법에 있습니다. CSS에서 글자체를 제어하는 ‘font-family’ 속성에서는 폴백(fallback) 기능을 지원합니다. 쉽게 말해 몇 가지 글자체를 지정해두고, 첫 번째로 지정한 글자체의 폰트가 지원하지 않는 글리프가 있다면 다음 글자체의 폰트가 담당하는 기능이죠. 이 기능을 이용하면 섬세하지는 않지만 기본적인 섞어 짜기가 가능해요. 이보다 조금 복잡하기는 해도 자바스크립트의 힘을 빌리면 인디자인에서처럼 정규 표현식을 통해 자동으로 한글, 로만 알파벳, 한자, 가나 등 언어별 문자마다 스타일을 지정할 수 있고요. 시적 연산 학교 동문이기도 한 MIT의 소원영 씨와 뉴 스쿨(The New School)의 강이룬 선배가 만든 멀티링구얼 JS가 이를 위한 대표적인 자바스크립트 플러그인인데, 『타이포잔치 2021: 거북이와 두루미』, 『2022 부산비엔날레』 등에서 유용하게 사용했습니다. 마지막 업데이트 시점에서 무려 6년이나 지났지만, 사용하는 데 전혀 무리가 없었고요. 이 자리를 빌려 두 분께 존경을 표합니다. 나아가 아예 폰트를 커스터마이징해 앞서 말씀드린 얄궂은 설정이 필요 없는 완전한 다문자용 폰트를 만들 수도 있고요. 구글과 어도비가 합작한 노토 산스(Noto Sans)가 대표적인 보기죠.
자기 반영이라는 말을 들으니 큐레이터로서 제가 보는 민구홍 님은 확실히 작가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출판이 더 이상 종이 위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공개적으로 유통되는 정보를 발행하는 모든 행위를 출판으로 부르며, 확장된 정의에 익숙해져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인터뷰가 구글 독스에서 이뤄지며 열린 상태로서 수정 및 편집을 하는 것처럼, 웹 기반으로 출판되는 많은 정보는 종이책과 달리 쉽게 수정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긍정적인 것일까요? 부정적인 것일까요? 에디션 표기를 의무화하는 등의 공통화된 규정이 필요할까요?
‘자기 반영’은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덧붙은 해시태그로 볼 수 있습니다. 이를 추동하는 키워드는 ‘소개’(introduction)고요. 소개는 결국 어떤 대상을 널리 알려 다른 대상과 연결하는 일이고, 그 결과는 앞으로 함께할 친구(사람), 자랑할 만한 경력(포트폴리오), 크고 작은 경제적 이윤(돈) 등으로 이어집니다. 세 꼭짓점이 정삼각형으로 완성되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소개만큼 피할 수 없이 신성한 일이 있을까요?
웹사이트는 소프트웨어로 따지면 ‘영원한 베타’(perpetual beta) 버전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오늘과 내일이 전혀 다를 수 있죠. 출판한 뒤에도 콘텐츠를 수정할 수 있다는 점은 오프라인 출판에 익숙한 이에게는 낯설 만합니다. 반대로 온라인 출판에 익숙한 이에게는 오프라인 출판의 특성이 비실용적일지 모르고요. 이에 대해서는 긍정이나 부정을 표명하는 대신 이 특성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는 게 실용적이지 않을까요? 한편,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데 콘텐츠를 수정한 날짜를 정확하게 표기하는 일 또한 중요하지만, 저는 구글 문서상에서 이뤄지는 이 서면 인터뷰에서처럼 본문에서는 웹사이트 또한 종이 책처럼 출판물로 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웹사이트의 성격에 따라 겹꺽쇠(『』)나 홑꺽쇠(「」)로 묶어 구분하는 거죠. 처음에는 조금 어색하거나 번거롭더라도 웹사이트라는 느닷없이 새로운 출판물을 대하는 태도는 작고 사소한 것부터 시작됩니다.
COS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의 콘셉트는 무엇인가요?
정지, 금지, 위험, 경고 등을 의미하는, 하지만 포춘 쿠키 속 메시지처럼 방문객에게 우연한 기쁨을 줄지 모를 빨강 문자들입니다.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졸업생입니다. 웹사이트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기준이 있을까요?
웹사이트에서 이야기하는 대상과 방식에 따라 완성도의 기준은 천차만별일 거예요. 앞서 말씀드렸듯 일단 웹 브라우저상에서 제대로 동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사실 이를 위해 고려해야 할 부분만 따져도 무궁무진합니다. 뜬금없을지 모르지만 저는 어떤 글쓰기에 관해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문학을 공부하던 시절에 배운 좋은 글쓰기의 원칙 가운데 중언부언하지 않는다는 게 있어요. 같은 대상에 관한 두 가지 진술이 있다면 간단한 쪽을 택하는 게 좋다는 오컴의 면도날(Occam’s Razor)도 비슷한 원칙이고요. 이 원칙은 코드를 포함한 웹사이트에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중복되는 요소나 기능을 하나로 합치는 것처럼요. 이를 위해서는 글쓰기처럼 수차례 퇴고 과정이 필요하죠. 지난할 수 있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고요. 한 문장만으로 이뤄진 웹사이트라 해도 퇴고 과정을 얼마나 거쳤는지에 따라 결과물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지방의 공립 도서관 사서입니다. 한 명의 ‘현대인’으로서 웹 기술을 익혀보고 싶은데, 추천해주실 만한 책이 있을까요?
수영을 익히려면 얕더라도 일단 물에 들어가야 하듯 웹 기술을 익히기 가장 좋은 학교는 아무래도 웹이겠죠. 웹 기술에 관한 책을 집필하고, 편집하고, 디자인하고, 인쇄하는 순간에도 기술은 발전하고, 다듬어집니다.
우선 HTML(HyperText Markup Language)을 익혀 자신의 관심사를 다룬 웹사이트를 하나 만들어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CSS(Cascading Style Sheets)를 익히고픈 욕망이 입니다. 그 뒤에는 자바스크립트(JavaScript, JS), PHP(PHP: Hypertext Preprocessor), 파이선(Python), 루비(Ruby) 등으로 확장되고, 욕망이 커진다면 자신만의 컴퓨터 언어까지 만들게 될지도 모르죠. 즉, 어디에 사용할지 모를 기술에서 시작하는 게 아닌 아닌 자신의 욕망에 따라 기술을 취하는 게 흥미와 동력을 잃지 않는 방법입니다. 단, 어떻게 시작하는지가 중요할 텐데, 민구홍 매뉴팩처링 주위에는 「새로운 질서」와 프루트풀 스쿨(Fruitful School)이 있습니다.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입니다. 디자인에서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가치나 핵심이 궁금합니다.
며칠 전 고토 데쓰야(後藤哲也, Tetsuya Goto) 선생님과 만난 적이 있는데, 그때 “디자인은 내 글쓰기를 위한 플러그인과 비슷하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 말처럼 제게 디자인은 기본적으로 도구입니다.
2019년 이래 금요일마다 진행하는 「새로운 질서」에서 디자인은 일반적으로 목적어가 필요한 동사, 더 정확히는 타동사라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개념적으로는 하라 겐야(原研哉)의 ‘디자인의 디자인’이라는 말이 있지만, 제 일천한 경험으로 미루어 목적어가 디자인 자체가 되는 경우는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따라서 제게는 우선 디자인의 목적어, 다른 말로는 콘텐츠를 파악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디자인이라는 도구를 어떻게 활용할지 판단할 수 있으니까요.
이는 특히 웹사이트를 만들 때마다 절실하게 체감합니다. 단 한 글자라도 콘텐츠가 있어야 HTML의 태그를, CSS의 선택자를, 자바스크립트의 함수를 활용할 수 있으니까요.
콘텐츠 매니지먼트 시스템(Content Management System, 이하 ‘CMS’)이 필요한 동적 웹사이트는 대개 워드프레스(Wordpress)를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또 다른 대안은 없을까?
CMS의 가장 큰 장점은 사용자가 코드를 다룰 필요 없이 따로 마련된 페이지에서 콘텐츠를 관리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반드시 모든 웹사이트에 CMS가 필요한 건 아니다. 한번 공개한 뒤 더는 수정할 필요가 없거나 수정의 범위가 아주 제한적이라면 오히려 HTML과 CSS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정적 웹사이트가 실용적이다. 게다가 두 언어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웹사이트를 만들 수 있다.
2003년 처음 공개돼 지금까지 꾸준히 업데이트되는 워드프레스는 훌륭한 소프트웨어다. 역사가 긴 만큼 사용자도 많고, 매뉴얼도 충실하다. 이는 문제가 생겼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많다는 뜻이다. 전 세계 웹사이트 가운데 40여 퍼센트가 워드프레스 기반으로 만들어져 운영되고, 사용되는 CMS 가운데는 60여 퍼센트를 차지한다. 단, 범용성을 염두에 둔 탓에 기능이 지나치게 많아 기본적으로 용량도 크고 무거운 편이다. 모든 CMS가 그렇지만, 특정 기능을 구현하려면 추가적인 프로그래밍이 필요하고, 그럴 능력이 없다면 누군가 만들어놓은 플러그인을 막연하게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플러그인끼리 꼬이면서 웹사이트가 느려지거나 오작동하기도 한다. 워드프레스 웹사이트 하단의 “코드는 시다.(Code is poetry.)”라는 모토가 무색할 정도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웹사이트를 만드는 일이 워드프레스를 다루는 일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하지만, 워드프레스는 수많은 CMS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기술을 선택하고 사용하는 데는 조금 덜 세련된 방식과 조금 더 세련된 방식이 있을 뿐 정답은 없다. 한국에 비교적 덜 알려진 CMS 가운데는 표준 메타데이터 요소의 집합인 더블린 코어(Dublin Core)를 지원하는 ‘오메카(Omeka)’를 주목할 만하다.

최근 미국 뉴욕의 908A의 강이룬과 농담 삼아 미술 및 디자인계의 콘텐츠 생산 및 소비 방식에 특화된 CMS를 만들어보자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는데, 이처럼 조금 더 적극적인 모델도 있다. 즉, 자신에게 적합한 CMS를 직접 개발하는 방식이다. 한때 국내외를 막론하고 그래픽 디자인계에서 널리 사용된 대니얼 이톡(Daniel Eatock)의 ‘인덱시비트(Indexhibit)’가 좋은 보기다. 그밖에 링크드 바이 에어(Linked by Air)에서는 ‘이코노미(Economy)’를, 에어리어17(Area17)에서는 ‘트윌(Twill)’을, 라부드(Labud)는 ‘포레스트’(Forest)를 개발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자체적으로 오픈 소스를 커스터마이징한 ‘매니지먼트(Management)’를 사용한다. 이에 관해서는 따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 같다. 아니, 회사의 고객으로서 실제로 사용해보는 게 가장 좋다.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 같은 소셜 미디어는 사용하지 않는가?
설립 초반에 회사를 소개할 목적으로 호기 있게 사용해봤는데, 사용할수록 회사에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인스타그램에서는 글 한 줄을 게시하려 해도 이미지나 영상이 필요하고, 트위터에서는 글자 수에 제한이 있다.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사용한다는 건 이런 제약에 암묵적으로 동의한다는 뜻이다.
특히, 인스타그램에서는 게시물 속 하이퍼링크가 작동하지 않는다.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해당 기능이 활성화한다고 알고 있다.) 이는 사용자가 되도록 오랫동안 ‘환상의 세계’에 머무르기를 바라는 인스타그램의 전략일 것이다. 또한 ‘좋아요’ 기능은 취지와 무관하게 자신의 게시물을, 나아가 자신을 현실에서 만날 일이 없는 불특정 다수의 사용자에게 평가받는 위치로 옮겨 놓는다. 그것을 눈으로, 게다가 깜찍한 하트 아이콘과 불과 몇백에 불과한 숫자로 확인하는 건 고역이다. 모든 사람이 ‘좋아요’ 개수가 많을 수는 없을 테니 누군가는 스스로 초라함을 느끼거나 자신의 삶 자체를 부정할지 모른다. 타임라인이 지닌 중독성 탓에 정신 없이 빠져들다 보면 거기서 벗어나기 두려워지는 현상은 일찍이 ‘PC 통신’ 시절부터 경험해왔다. 결국,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소셜 미디어에서까지 워크룸의 계정에 기생하기로 했다.
이쯤 되니 이토록 웹사이트를 사랑하는 민구홍 씨가 궁금해집니다. 처음 만든 웹사이트를 기억하나요?
물론입니다. 거의 30년 전인 1995년, 열한 살 무렵입니다. 목표는 단순하지만 아주 분명했죠. 당시 제가 사랑한 친구를 그저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처음 만든 웹사이트는 지오시티가 문을 닫으면서 함께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파일을 백업하지 못해 이제는 꿈나라에서만 등장하는 터라 그저 아쉬울 따름입니다. 어쨌든 사랑에서 비롯한 경험 덕에 저는 일찍이 컴퓨터뿐 아니라 웹, 나아가 코딩을 포함한 글쓰기에 진지하게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교에서 문학과 언어학을 공부하고, 우연히 안상수 선생님을 만나 미술 및 디자인계에 발을 담그고, 그 뒤 13년여 동안 안그라픽스와 워크룸에서 편집자, 디자이너, 프로그래머 등으로 일할 때도 마찬가지였고요. 저에 관해 궁금증이 인다면 다음 웹사이트를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코딩을 포함한) 제 글쓰기에 관해 정리한 다음 발표 자료 또한 얼마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글쓰기는 흩어져 사라지려는 생각과 말을 특정 매체, 즉 문자(글자, 숫자, 기호 등)뿐 아니라 공간으로 붙잡아 드러내는 일이다.”

한편, 2015년에는 오직 웹과 글쓰기의 힘을 믿으며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설립했습니다. 슬기와 민과 워크룸 이후 ‘소규모’라는 접두어를 붙인 스튜디오들이 등장하던 아름다운 시절이었죠. 자본과 용기가 부족한 탓에 제 근무지에 기생하는 운영 방침을 고수하며 기관, 단체, 기업, 개인 등과 추억을 쌓다 보니 어느덧 설립 10주년을 앞두고 있고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관해서는 다음 웹사이트를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1953년 설립 이래 광유계 오일인 WD-40만 주력으로 생산하는 WD-40 컴퍼니와 달리, 회사에서 취급하는 제품은 글, 소프트웨어, 음식, 열쇠고리, 포스터, 냉장고 자석에 이르기까지 퍽 다양한 편입니다. 제품과 그 종류는 어떻게 결정되나요?
운영자의 관심사를 비롯해 여건과 파트너 등에 기인하지만, 때로는 제품 기획 단계에서 인터넷 검색 결과에 따라, 즉 제작 과정을 손쉽게 가늠할 수 있는지에 따라 종류 자체가 제한을 받기도 합니다. 해답은 인터넷 밖에 있을 수 있지만, 회사에서는 이 과정에 인터넷 검색에 필요한 정도 이상의 노동력과 시간을 투자할 계획이 없습니다. 회사 특성상 아무래도 자유롭게 이동하는 데 제한이 있으니까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무엇보다 작명, 즉 이름을 짓는 데 시간과 공을 들입니다. ‘매뉴팩처링’뿐 아니라 안그라픽스를 거쳐 워크룸에 ‘기생’한다고 밝힌 점, 생산물을 ‘작품’이나 ‘작업’ 대신 ‘제품’으로 부르는 까닭도 흥미로웠어요. 특히 ‘제품’이라는 단어에 관해서는 이 단어가 내포한 시장 경제의 부정적인 뉘앙스를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토마토가 과일인가요?” 예전에 출시한 제품인 「수상한 과일(Mysterious Fruit)」의 소스 코드에 관한 로럴 슐스트(Laurel Schwulst)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 적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토마토를 과일로 생각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진실과 무관하게 제가 토마토를 과일로 믿는 순간 토마토는 제게 과일이 됩니다.” 언어가 대상을 투명하게 반영한다는 환상은 깨졌습니다. 중요한 건 주체가 대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규정하는지, 나아가 편집하는지죠. ‘작품’이나 ‘작업’이라는 단어는 생산물이 소비되는 오늘날의 국면을 반영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 국면을 흐리는 환상을 덧입히기까지 합니다. 게다가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회사’인 만큼 생산물을 아우르는 단어로는 ‘제품’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대로 ‘제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픈 마음에 ‘회사’를 표방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입니다. 문학과 언어학을 공부한 경험이 디자인이나 프로그래밍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요?
넓은 의미에서 제게 문학은 언어를 가지고 노는 일이고, 언어학은 언어의 구조와 규칙, 기능과 의미를 발견하는 일입니다. 디자인이나 코딩 또한 사용하는 언어가 조금 다를뿐 모두 이 범주 안에 있습니다.
일반적인 글쓰기든 코딩이라는 글쓰기든 모두 소통을 전제합니다. 그 일차적인 소통 대상은 글을 쓰는 사람, 즉 자신일 테고요. 하지만 코딩에서는 자신과 소통한 뒤에는 컴퓨터와 소통해야 하죠. 얄궂게도 컴퓨터는 인간만큼 너그럽지 않습니다. 코딩에 정확성, 명확성, 명료성 등이 수반되는 까닭입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향한 사랑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손으로 쥐거나 눈으로 볼 수 없는 사랑을 어떻게 실체화할지 오랫동안 고민해왔습니다. 고객의 관심과 사랑을 원동력으로 삼는 회사인 만큼 이는 당연한 당면 과제였죠. 막연한 느낌은 대개 막연한 채로 남고, 어떤 느낌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사랑만큼은 분명히 다르다고 확신합니다.

조금 부족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사랑을 표현할 수 있다면!

받는 쪽은 어쨌든 감사할 따름일 겁니다.
고등학교에서 문학 동아리를 지도하는 기간제 교사입니다. 다음주에 학생들과 글쓰기에서 가능한 갖가지 형식 실험에 관해 이야기해보려 하는데, 「자주 하는 질문」을 참고 자료로 활용해도 괜찮을까요?
물론입니다. 과목을 떠나 교육이 목적이라면 이미지를 포함해 마음껏 활용하셔도 좋습니다.
질서와 정리 정돈이라는 행동양식이 몸에 익은 것처럼 보인다. 민구홍에게 무질서란 사고(accident)인가? 본인이 접해온 무질서한 상황의 예시나, 이와 같은 상황을 접할 때 어떤 순서로 대책을 세우는지 또는 때로는 세우지 않는지 알려달라.
내가 관심 있는 건 질서 자체가 아닌, 어떤 대상에 질서를 부여하는 과정과 방식이다. 물론 어떤 상황에서는 우스꽝스러워 보일 정도로 지나치게 질서에 집착하지만, 모든 것을 완벽하고 깔끔하게 편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모든 외래어를 순화하려는 국립국어원의 시도가 이를 증명한다. 특정한 원칙을 마련한 뒤 충실히 따르려 해도 해당 원칙을 무너뜨리는, 그래서 옹색한 세칙을 마련할 수밖에 없는, 내가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이 일어나고야 만다. 따라서 우리 집은 물론이고, 내가 일하는 책상과 책상 주변은 질서와는 거리가 멀다. 온갖 콘텐츠와 기술이 뒤섞인 웹처럼, 가깝게는 우리 생활처럼 차라리 엉망진창이 자연스러운 상태임을 인정하는 편이 정신 건강에 이롭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관한 소논문을 써볼까 합니다. 추천해주실 만한 자료가 있을까요?

『레인보 셔벗』(Rainbow Sherbet, 작업실유령·아카이브 봄, 2019)을 추천합니다. 뒤표지에 실린 그래픽 디자인 듀오 슬기와 민의 추천사를 덧붙입니다.
『레인보 셔벗』은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회사를 소개하는 데 일조하는 책이다. 이런 식의 소개문 몇 줄이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일종의 트롱프뢰유(trompe-l’œil)기도 하지만, 책 속에 따로 머리말이 없으니 이 자리를 활용하면 좋을 듯합니다. 다만, 분량은 160자 정도로 제한해 주세요.
브랜딩, 예컨대 작명 서비스도 제공하나요?
그래픽 디자이너 겸 저술가 김동신 씨가 운영하는 ‘동신사’ 외에는 아직 없습니다. 서로 자신이 앞으로 운영할 사업체를 구상할 즈음이었죠. 처음에 제안한 건 ‘김동신 매뉴팩처링’이었던 것 같습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걸쳐 이제껏 굉장히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가장 만족스러웠던 작업은?
안그라픽스를 거쳐 워크룸에서 일하는 동안 얇게는 16쪽짜리 책에서 두껍게는 1,000쪽에 가까운 책까지 적지 않은 책을 만들어왔다. 모든 책은 웹사이트와 달리 재판(再版)하기 전까지 조금도 수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얼마간 불만족스럽다.

『생활 공작』은 미국에서 돌아온 뒤 워크룸으로 자리를 옮겨 기획한 첫 번째 책이다.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 시절 미국 중앙정보국의 전신인 전략사무국에서 적지에 침투한 간첩들에게 배포한 비밀문서를 원전으로 삼는다. 책에는 불필요한 회의를 자주 열거나 퇴근할 때 불을 끄지 말아야 한다는 식의 생활 속에서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공작 방법이 소개돼 있다. 번역은 군사 전문가 홍희범 선생에게 부탁했다. 『생활 공작』은 ‘실용 총서’의 첫 번째 책이기도 한데, 이 책 외에도 지금까지 『헤비듀티』, 『히트곡 제조법』, 『실전 격투』가 출간됐다. 참고로, ‘실용 총서’의 모토는 다음과 같다. “과거에는 실용이었으나 오늘날 실용만으로 기능하지 않는, 과거에는 실용이 아니었으나 오늘날 실용으로 기능하는 자료를 발굴합니다. 실용을 곱씹게 하는 현대인의 교양 총서를 자처합니다. 아름다운 실용의 세계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패션 브랜드 thisisneverthat의 10년을 정리한 『thisisenverthisisneverthat』도 기억에 남는다. 앞서 말한 1,000쪽에 가까운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책의 많은 부분은 3,000여 가지에 달하는 제품의 목록으로 이뤄져 있는데, 다양한 항목으로 이뤄진 목록을 정리하는 도구로서 웹사이트를 요긴하게 활용했다. 웹사이트가 맨 앞에서 프로젝트를 이끈 좋은 보기다. 『타이포잔치 2021: 거북이와 두루미』의 콘텐츠도 일차적으로 웹사이트상에서 정리됐다. 두 경우 모두 웹사이트가 맨 앞에서 프로젝트를 이끌고 종이책과 함께 또 다른 결과물로 완성된 좋은 보기다.

웹사이트로 한정하면 2020년 크리스마스 즈음에 발표한 「장영혜 중공업 귀중」을 꼽고 싶다. 이 작품은 장영혜 중공업을 향한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존경과 사랑, 그리고 부탁 한 가지를 담은 편지 형식을 띤다. 그들이 주로 사용한 기술인 어도비 플래시(Adobe Flash)가 폐기된 지금 비메오(Vimeo)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기분이 궁금했는데 이 참에 묻기도 했다. 장영혜 중공업 공식 이메일로 전달했음에도 답장은 아직 받지 못했다. 처음에는 아쉽고 섭섭했지만, 이제는 다시 한번 편지를 보낼 용기가 생겼다.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입니다.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가장 고민한 점은? 그리고 현재의 고민은?
무엇보다 취업에 대한 고민은 별로 없었어요. 대학 시절 텍스트, 즉 글에 관해서는 제 기준으로 당대의 손꼽히는 전문가들에게 잘 읽고, 잘 쓰고, 나아가 잘 베끼는 방법을 훈련받은 만큼 뭐라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까닭 모를 만용일까? 어쨌든 무슨 일을 하든 글을 잘 쓰고, 잘 읽고, 잘 베끼는 능력은 기본적으로 필요하니까요. 정 안 되면 시인이나 소설가로 등단할 수도 있었을 테고요.
2019년부터 매주 금요일마다 ‘현대인을 위한 교양 강좌’를 표방하는 ‹새로운 질서›를 진행한다. 개설될 때마다 신청이 마감되는 이 강좌의 정체는 무엇인가.
‹새로운 질서›는 2016년 크리스마스 이튿날 워크룸에서 열린 비공개 웹 세미나에서 시작됐다. 시적 연산 학교를 마치고 뉴욕에서 막 돌아온 참이었는데, ‘현대인을 위한 교양’으로서 웹 기술을 익혀두면 워크룸 구성원들이 일하는 데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서였다. 그 뒤 여러 특강과 워크숍,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강의 등을 통해 조금씩 커리큘럼이 다듬어져 지금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200여 명의 ‘‹새로운 질서› 친구들’과 추억을 쌓았고, 이들 가운데는 국립현대미술관의 «프로젝트 해시태그»(Project Hashtag, 2020–) 사업에 선정돼 느닷없이 미술계로 편입되기도 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 ‹새로운 질서›, 웹사이트. 웹사이트 제목인 ‘새로운 질서’는 1초마다 낱자별로 새로운 질서를 부여받는다. 사진 제공: 작가
‹새로운 질서›에서는 기술로서 디자인을 다루기도 하지만, 웹 디자인 강좌가 아니다. 오히려 ‘실용적이고 개념적인 글쓰기’ 강좌에 가깝다. ‹새로운 질서› 친구들은 자신의 관심사(자신이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등)를 토대로 자신만의 콘텐츠를 생산하고, HTML, CSS, 자바스크립트 같은 컴퓨터 언어를 익혀 콘텐츠에 단계별로 새로운 질서를 부여해본다. 기술을 다루므로 실패에 익숙해지고, 자신의 한계를 파악해 욕망을 발산할 우회 전략을 고민해보기도 한다. 글쓰기의 결과물은 결국 웹사이트지만, 사실 더욱 가치 있는 건 그 과정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생화학 무기와 도청 장비, 무엇보다 샤워 커튼” 외에 앞으로 발표할 제품이 있다면?


회사 여건에 따라 언제든 수정될 가능성이 있지만, 2015년 시청각에서 열린 단체전 『/문서』(/documents)에 발표한 어드벤처 게임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를 업데이트해 배포할 예정입니다. 이와 더불어 제품의 보도 자료를 모은 책인 『보도 자료』를 기획 중입니다. 한편, 회사가 웹 디자인 에이전시는 아니지만, 웹 기반 제품에 조금 더 집중해볼까 합니다. 웹은 상대적으로 적은 노동력으로 제품을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이자 접근하기 쉬우면서 유용하고, 무엇보다 앞으로 더욱 많은 사람이 잠들기 전에 가장 마지막으로 마주할 대상이 될 테니까요.
최정호를 언제 어떻게 처음 접했나?
기억이 잘 안 난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최정호에 관한 책을 만든 적이 있는데, 그전까지 피상적으로만 알던 최정호를 아무래도 그때 남들보다 조금 더 자세히 알게 된 것 같다. 책 초판이 출간된 게 2014년이니 어쨌든 4년이 채 안 된 셈이다.
조금 감성적인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워크룸을 떠나는 마당에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워크룸은 무엇인지, 또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단순히 ‘직장’이라 부르고 싶지 않을 만큼 워크룸은 제게 그 자체로 너무나 각별하고 소중하기에 함부로 ‘떠난다’고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문장을 완성하는 순간 실제로 그렇게 될 것 같아서요. 남은 한 달 동안 제가 관여해온 일을 정리하는 한편, 완벽한 표현을 찾을 때까지 김형진 선배의 진심을 담은 우스갯소리 “어색함 없이 서로 착취하는 관계”를 어떤 방식으로든 이어나가고 싶습니다.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졸업생입니다. 웹상에서 이뤄지는 국내외의 실천 가운데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을까요?
웹 3.0의 대표적인 화두인 NFT(Non-Fungible Token)와 관련한 몇 가지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데, NFT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제대로 답변할 자신은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주목하는 기술임에는 분명하지만, 러닝 커브(learning curve)가 가파른 탓에 선뜻 익히기가 쉽지 않아요. NFT를 둘러싼 커뮤니티가 초심자에게 조금 배타적이기도 하고요. 처음에는 ‘그들만의 놀이터’라 여겨지기 쉽죠. 그래서일까요? 오히려 웹 1.0을 향한 관심이 조금씩 늘어나는 것 같아요. 다들 아시겠지만 index.html 파일 하나만으로도 웹사이트가 될 수 있듯 ‘index.html 무브먼트’ 같은 게 일어나는 상황을 즐겁게 상상하곤 합니다.
그런데 지오시티에 접속해보려 계속 시도했는데 아무래도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아니면 제 컴퓨터 탓인가요?
컴퓨터는 잘못이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 즉 인간에게 있죠. 지오시티는 2009년 느닷없이 사라졌습니다. 지금은 네오시티(Neocities)가 그 역할을 맡고요. 이처럼 웹사이트는 매체인 동시에 느닷없이 등장하고 사라지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2000년대 초반, 웹 2.0 시대가 열렸죠. 블로그와 소셜 미디어의 등장은 모두를 창작자로 만들었습니다. 마이스페이스(MySpace)에서는 누구나 자신만의 음악을 공유할 수 있었고, 위키백과(Wikipedia)에서는 모두 지식의 공동 생산자로 거듭났고요. 일상이 예술이 되고, 모든 이가 예술가가 되는 시대. 보들레르가 말한 ‘현대성’의 디지털 버전이랄까요? 2007년에는 아이폰의 등장으로 모바일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반응형 웹 디자인(Responsive Web Design)의 등장으로 웹사이트는 더 이상 고정된 책이 아니라 프로테우스(Proteus)같이 형태를 바꾸는 유동적인 존재로 탈바꿈했죠. 그렇게 우리의 디지털 경험 또한 근본적으로 변화했고요. 그리고 지금, 우리는 인공지능을 비롯해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AR) 등이 주도하는 새로운 시대의 문턱에 서 있습니다. 웹사이트는 더 이상 2차원의 평면이 아니라 몰입할 수 있는 3차원 공간으로 거듭났습니다. 보르헤스의 알렙처럼 작디작은 화면 속에 무한한 세계가 펼쳐지는 거죠. 이따금 위키백과에서 이런 일도 벌어지면서요.

웹사이트의 변천사를 돌아보면 기술의 발전뿐 아니라 인간의 표현 욕구와 소통 방식의 진화를 목격할 수 있습니다. 각 시대의 웹사이트는 해당 시대의 꿈과 욕망, 미학을 담은 문화적 아카이브입니다. 벤야민이 말했듯 “과거의 진정한 이미지는 휙 스쳐 지나간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수많은 웹사이트도 언젠가는 사라질 게 분명하지만 모두 우리 시대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겠죠. 오늘의 고고학자들이 도자기 파편으로 고대 문명을 연구하듯 내일의 고고학자들은 아카이브된 웹사이트를 통해 우리의 디지털 문명을 연구할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만드는 웹사이트는 후대에 어떤 이야기를 전하게 될까요? 이는 수사적 질문이 아닙니다.
다시 첫 번째 질문으로 돌아와서 묻고 싶습니다. 워크룸과의 관계를 가리키기 위해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소개할 때 ‘기생’한다는 표현을 하는데요. 워크룸이 출판사이기에 이 표현은 마치 웹/온라인과 실재/오프라인의 관계를 이해하는 민구홍 님의 용어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워크룸이나 민구홍 님과 클라이언트와의 관계에서뿐 아니라 (본인의 작업을 지칭하는 단어로 말하자면) “제품/생산물”에서 웹/온라인과 실재/오프라인에 대한 이러한 이해가 어떻게 나타난다고 생각하나요?
‘제품’은 그저 ‘회사’를 표방하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기술을 거친 결과물을 가리키는 적당한 어휘를 고민한 결과입니다. 여러 제품을 통해 다뤄온 매체 가운데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특히 사랑하는 웹사이트는 특성상 그 자체로 대량으로 복제되고 소비되는 만큼 사명(社名)에 당당히 자리한 ‘매뉴팩처링’(manufacturing)의 본래 의미(물질 또는 구성 요소에 물리적이거나 화학적인 작용을 가해 새로운 제품을 대량 생산하는 일)와도 상통한다고 생각했습니다.
1인 회사인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원활하게 운영하려면 결국 무언가에 기댈 수밖에 없는 만큼 ‘기생’이라는 어휘에서는 회사의 이런 운명이 가감 없이 드러납니다. 이는 웹사이트가 지닌 속성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웹에서는 거의 모든 일이 웹 브라우저로 수렴하죠. 웹 브라우저를 거치지 않으면 웹사이트는 사용자에게 도달하지 않습니다. 요컨대 웹사이트는 태생적으로 웹 브라우저에 기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허약함과 불완전함이 웹사이트라는 매체를 계속 탐구해볼 가치를 만들어내고요.
한편,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2022년 2월 22일 숙주를 워크룸에서 안그라픽스의 정체불명 독립 사업부 안그라픽스 랩(Ahn Graphics Lab, AG Lab)으로 옮겼습니다. 앞선 답변과 관련해 저에게는 ‘디렉터’라는 직함이 하나 더 추가됐죠. 숙주는 달라졌지만 『2022부산비엔날레』(Busan Biennale 2022)나 『거의 정보가 없는 전시』(An Exhibition with Little Information)처럼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필요하다면 워크룸과도 언제나 함께입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기생 방식도 공생에 가깝게 진화하는 셈이고, 이는 ‘기생’이라는 어휘를 사용하기로 마음먹은 무렵부터 고려한 바이기도 합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향후 계획이 궁금합니다.
2015년 회사를 설립하면서 발표한 「회사 소개」에서 밝힌 서른일곱 가지 일은 앞으로도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2015년 열세 번째 ‘시청각 문서’로 발표한 「회사 소개」 외에도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각인시킨 작품은 시적 연산 학교 전시 웹사이트인 «SFPC에서 소개하는 SFPC»(School for Poetic Computation Presents Society for Power Control, 2016)였다. 이 또한 전시 홍보 겸 온라인 전시의 성격을 띠는데,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하다.
이 웹사이트는 그 자체로 전시 작품이기도 했는데, 주된 목적은 곧 열릴 학교 전시를 알리는 것이었다. 추억을 더듬어보면, 마련된 콘텐츠는 목적, 장소, 일시 등 전시 개요와 참여자의 이름과 약력뿐이었고, 작품명도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홍보 기간까지 고려했을 때 작업 기간은 일주일 정도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들을 그럴듯하게 엮어 이야기를 만들 에디터십이 필요했다.
우선 학교명의 두문자어(SFPC)에서 착안해 ‘전력 제어 협회(Society for Power Control, SFPC)’라는 임시 단체를 설립했다. 컴퓨터를 활용한 모든 작품이 결국 전력을 제어한 결과물이었으니까.
콘텐츠가 많지 않으므로 웹사이트는 한 페이지로 제한하고, 스크롤을 통해 콘텐츠를 열람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화면을 크게 둘(인덱스 섹션, 세부 섹션)로 나눈 뒤 모든 하이퍼링크에는 무작위로 흔들리는 애니메이션을 부여하고, 관람객이 하이퍼링크에 마우스 커서를 올리면 흔들림이 멈추고, 클릭하면 해당 콘텐츠로 스크롤이 이동하는 시나리오를 제안했다. 관람객에게 웹 브라우저상에서 전력을 제어하는 경험을 제공하려는 의도였다. 한편, 모든 콘텐츠는 가운데로 맞춰져 있는데, 화면 사방에서 가운데로 전력이 집중된 상태를 반영한 결과라 우기려 했다. (이렇듯 콘셉트는 나중에 만들어지기도 한다.) 타임스 뉴 로먼(Times New Roman)은 유별난 웹 폰트보다 기술적으로 안정된 웹 안전 폰트(Web Safe Font)를 사용하고픈 취향이 반영된 결과다. 제한된 시간에 제한된 콘텐츠만으로 콘셉트와 기능을 엮은 결과물이라 자부한다.

참여자들은 모두 마음에 들어 했지만, 문제는 생각지 못한 데 있었다. 학교에서는 조금 더 ‘일반적인’ 결과물을 원했던 것 같다. 특히 단체명을 정하면서 자연스럽게 떠올린 전시명인 ‘SFPC에서 소개하는 SFPC’(SFPC Presents SFPC)에 고약한 구석이 있다고 여긴 것 같다. 느닷없이 참여자 대표로서 서툰 영어로 학교를 설득하는 일이 조금 고됐지만, 결국 처음 의도를 살릴 수 있게 됐다. 덕분에 영어 작문과 회화 실력도 부쩍 늘었고.
앞선 사례는 콘텐츠와 기술이 온라인 전시를 기획할 때 참고할 만하겠다. 그 밖에 프로젝트에서 웹사이트를 적극적으로 이용한 사례를 소개한다면?
웹사이트의 아름다움은 실용적으로 작동할 때 배가된다. 예컨대 웹사이트가 처음부터 프로젝트를 이끄는 경우다. 워크룸에서 패션 브랜드 디스이즈네버댓(thisisneverthat)과 작업한 ‹디스이즈네버디스이즈네버댓›(thisisneverthisisneverthat, 2020)은 사실 처음에는 예정에 없었다. 웹사이트는 단행본에 실을 3,000여 가지 항목의 정보를 정리하는 도구였다. 이미지를 포함해 제품명, 제품 코드, 종류, 색, 재질 등 여러 정보를 정리하기에 엑셀이나 구글 스프레드시트를 사용하면 데이터를 재가공하는 데 불편함이 따랐다. 처음에는 프런트엔드가 없는, 데이터베이스만을 관리하는 헤드리스(headless) CMS 같은 형태였는데, 데이터베이스가 쌓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정식 웹사이트로 확장됐다. 이와 같이 웹사이트가 전통적인 인쇄물의 역할만 수행한다면, 이는 웹사이트가 지닌 수많은 가능성을 포기하는 꼴이다.

이번 ‹타이포잔치 2021› 작업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도록에 실릴 콘텐츠 또한 일차적으로 작업 도구로 구축된 웹사이트상에서 편집됐다.


김익현, 박가희, 이미지가 기획한 «우리는 바다에서 왔다»(2021)에서는 ‘오가사와라 키트’로 부르는 와이파이 공유기를 활용했다. 우선 참여자의 이름, 거주 지역,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 등을 취합해 분석하는 모객용 웹사이트를 만들고, 국내 신청자에게는 특정 링크를, 해외 신청자에게는 ‘오가사와라 키트’를 발송했다. 공항이나 스타벅스에서 인터넷에 연결하는 경험에서 착안해 본 웹사이트는 오가사와라 키트를 통해서만 접속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웹사이트 이전에 인터넷에 접속하는 행위 자체를 다뤄보려 했다.

BEM에서 판매한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롬 카트리지에는 무엇이 수록돼 있나요?


해당 게임뿐 아니라 게임을 마음껏 뜯어고칠 수 있도록 주석과 함께 소스 코드가 제공됩니다. 지금은 안타깝게도 품절됐다고 합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회사 소개」에서 ‘하지 않습니다.’의 형식에 빗대어 본인의 의생활을 표현한 다섯 문장을 소개한다면?
두 문장이면 족하다. 민구홍은 옷 한 벌에 100만 원 이상 투자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민구홍은 발목 양말이나 페이크 삭스를 신지 않습니다.
불과 몇 년 전에 운영되던 웹사이트에서도 끊어진 하이퍼링크를 발견하곤 합니다. 웹사이트는 영구적으로 보존하기 어려운 매체입니다. 이런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웹사이트는 강력하지만 동시에 허약한 매체입니다. 만질 수도 없고, 일반적으로 웹 브라우저 없이는 열람할 수조차 없죠. 그리고 세입자가 방을 빌리듯이, 웹사이트도 돈을 내서 도메인의 일정 용량을 사용합니다. 이렇게 되면 한곳에 모든 데이터가 모이죠. 자칫하면 데이터를 관리하는 회사가 정보를 통제하는 위험성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어요. 예컨대 비커 브라우저(Beaker Browser)를 사용하면 사용자의 컴퓨터는 클라이언트이자 서버가 됩니다. 즉, 사용자는 중앙 서버를 거치지 않고 서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죠. 데이터를 조각내서 공유하는 토렌트(Torrent)와 유사해요. 웹사이트와 P2P(Peer-to-peer)가 결합한 형태로 인터넷의 탈중앙화를 꾀하는 시도죠. 이렇게 의문을 제기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웹사이트는 ‘영원한 베타(perpetual beta)’ 버전입니다. 서버를 운영하는 데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폐쇄되죠. 링크가 깨지는 경우도 많고요. 하지만 웹의 존속은 제작자의 마음에 달려있다고 생각해요. 예컨대 전시나 행사를 위한 웹사이트일 경우, 일정 기간 필요한 정보를 모두 전달하면 더 이상 유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도록이나 아카이브로 사용하는 웹이라면 오래 존재할 수 있죠. 예컨대 최초의 웹사이트는 30년 넘게 지금까지도 운영 중이에요. 똑같은 내용과 똑같은 형식으로 말이죠. 그래서 웹의 생명이 짧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습니다. 필요에 따라서 어떤 웹사이트는 오랫동안 지속하기도 하니까요.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싶습니다. 대관절 웹사이트란 무엇인가요?
글쎄요. 어쨌든 우리는 그곳을 ‘웹사이트’라 부릅니다. 중세 수도사들이 양피지 위에 겹겹이 글을 써내려간 팔림프세스트(palimpsest)처럼 픽셀 위에 끊임없이 의미를 덧입혀왔죠. 바야흐로 터치나 클릭 한 번으로 세상의 거의 모든 정보가 눈앞으로, 손바닥 안으로 들어오는 시대입니다.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의 『변신』(Die Verwandlung) 속 그레고르 잠자처럼 우리는 어느 날 아침 또 다른 존재로 변한 건 아닐까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으로 뉴스 사이트에서 밤사이 일어난 일을 복기하고, 출근길 지하철에서는 날씨 애플리케이션으로 오늘의 기온을 확인하고, 점심시간에는 맛집을 검색하고, 퇴근한 뒤에는 넷플릭스나 유튜브에서 영화 한 편으로 하루를 마무리하죠. 그럼에도 그 언저리에 늘 웹사이트가 있음을 인식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당신에게 최정호란 누구인가?
여러모로 고마운 사람이다. 최정호에 관한 책을 만들어서 월급을 받았고, 최정호가 만든 서체로 사람들에게 「(웃음)」도 드렸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첫째는, 운영자의 근무지에 기생하는, 다시 말해 근무지의 동산과 부동산을 무단 이용하는 운영 방식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는, 실제로도 그렇지만, 형식적으로도 운영자가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취미로 삼을 수 있는 플랫폼을 마련해줍니다. 둘째는 리코타 치즈를 중심으로 한 음식 사업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리코타 치즈는 제작하기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고, 맛있는 데다가 아주 하야니까요. 물론 계획이란 게 언제나 그렇듯 수정되거나 무기한 연기될 여지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과 COS 사이에 공통점이 있을까요?
생화학 무기와 도청 장비, 무엇보다 샤워 커튼을 제외하고, 좋은 제품을 제작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졸업생입니다. 작품을 작동시키는 모티브는 어디에서 얻나요?
어떤 프로젝트든 결과물을 예상했을 때 반드시 필요한 것, 특히 제목에서 모티브를 찾아보려 하는 편입니다. 조금 더 정확한 뜻을 파악하기 위해 사전을 들춰보기도 하고, 관련된 경험이나 추억은 없는지 되뇌어 보기도 합니다. 그러는 와중에 거리를 걷다가 나무나 돌멩이를 보고 갑자기 뭔가 떠오를 때도 있고요. 그 과정이 적절하다면, 많은 부분은 자연스럽게 해결된다고 믿습니다. 예컨대 『타이포잔치 2021: 거북이와 두루미』의 경우 거북이와 두루미가 지닌 특성에 주목했어요. 거북이는 땅에서 느릿느릿 기어다니고, 두루미는 하늘을 날죠. 그렇게 웹사이트상에서 두 가지 읽기 환경을 제안했어요. ‘거북이’ 환경에서는 콘텐츠를 느긋하게 열람할 수 있도록 1단으로, ‘두루미’ 환경에서는 전체 콘텐츠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최대 6단으로 설정했죠. 제목에 관해 조금 더 이야기하면, 스스로 제목을 제어할 수 있는 개인 프로젝트에서는 제목이 영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머지가 다 마무리됐더라도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기본적으로 제목이 프로젝트 자체를 규정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전체 작업 기간 가운데 제목에 공을 들이는 게 반 이상은 될 거예요.
일찍이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가 묘사한 ‘멋진 신세계’군요. 이참에 인터넷을 해지하는 게 좋겠어요. 소셜 미디어도 죄다 탈퇴하고요.
너무 극단적인데요? 오늘날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가 되는 건 아무래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럼에도 웹사이트의 가치는 무화하지 않습니다.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뉴스, 24시간 운영되는 쇼핑몰, 언제 어디서나 접속할 수 있는 은행 등 오늘날 저뿐 아니라 누구나 마주하는 이기(利器)는 모두 웹사이트 덕이니까요.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저 웹사이트를 조금 더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시선 아닐까요? 요컨대 웹사이트는 새로운 표현의 장이자 새로운 언어가 될 수 있습니다. 율리시스가 세이렌의 노래를 감상하며 배를 조종했듯 디지털의 온갖 유혹에 현명하게 대처할 수만 있다면 말이죠. 이쯤에서 잠시 생각해볼까요? 오늘 하루 얼마나 많은 웹사이트를 방문했을까요? 그 경험은 무엇을 남겼을까요? 시인이 언어로 시를 쓰듯 웹사이트로 무엇을 표현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에서 웹사이트의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또 다른 제품 「‘좋아요’가 좋아요」입니다. 많은 사람이 깜찍한 하트 아이콘을 위시한 ‘좋아요’의 자발적 노예가 된 오늘날, ‘좋아요’를 신봉하는 이 웹사이트에서 방문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좋아요’뿐입니다. 그 앞에서 다른 기능은 불필요하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