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2015년 이래 진행한 길고 짧은 인터뷰를 꼼꼼히 정리한 뒤 다시 무작위로 늘어놓은 「자주 하는 질문」을 통해 회사 또는 운영자에 관한 궁금증이 모쪼록 해소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단, 질문의 시기에 따라 현재와 다른 사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편, 질문의 어조에 따라 언급한 인물에 대한 존칭을 생략하기도 했습니다. 「자주 하는 질문」을 섭렵한 뒤에도 궁금증이 도무지 해소되지 않는다면 [email protected] 앞으로 소상히 말씀해주세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인정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단, 답장은 이메일 대신 언젠가 「자주 하는 질문」에서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나아가 웹사이트의 힘에 기댄다면 바벨의 도서관쯤은 충분히 현실화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한번 시도해볼까요?
안타깝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그런 욕망을 품은 건 비단 저희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조너선 바실(Jonathan Basile)이 만든 다음 웹사이트는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을 웹상에서 가뿐하게 구현합니다.

조너선 바실은 이 도서관의 사서를 자임합니다. 어느 날 그는 침대에 누워 있다가 온라인 바벨의 도서관에 관한 생각을 떠올렸고, 이를 위해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저장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죠. 이 한계를 우회하기 위해 바벨의 도서관을 시뮬레이션하는 알고리즘을 설계했습니다.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 미디어만으로 누구나 쉽게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시대다. 그럼에도 왜 굳이 개인 웹사이트를 만들어봐야 할까? ‘새로운 질서’를 종교화하려는 속셈 아닌가?
“그래픽 디자이너라면 모름지기 제대로 된 책 한 권을 만들어봐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고민과 선택이 모든 종류의 생산에서 반복되는 까닭일 테다.
HTML 에너지(HTML Energy)를 운영하는 엘리엇 코스트(Elliott Cost)가 JR 카펜터가 주창한 ‘핸드메이드 웹(Handmade Web)’을 변주해 ‘핸드메이드 웹사이트’라는 용어를 제안한 적이 있다. 완전히 백지 상태에서 시작한, HTML과 CSS만으로 이뤄진, 자바스크립트가 최소한으로 사용된, 정적 웹사이트를 가리킨다. 제약이 분명한 만큼 콘텐츠와 콘텐츠를 둘러싼 국면을 편집하는 데 집중할 수 있고, 그 덕에 ‘실용적이고 개념적인 글쓰기’가 가능해진다. 여기에는 백엔드가 없으므로 관리하는 데 불편함이 따른다. 하지만 이렇게 웹사이트를 만들어보는 건 좋은 출발점이 된다. 내 경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지루한 작업을 해보는 게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자연스럽게 작업을 자동화하려는 욕망이 일고, 그 욕망을 따라가보는 것이다.

온라인 전시에는 초심자를 위한 카르고(Cargo) 같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겠지만, 템플릿은 콘텐츠와 유리된 상태다. 템플릿에 콘텐츠를 억지로 맞출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결과물 또한 엇비슷해진다.

자신의 관심사를 토대로 콘텐츠를 생산하고, 개인 웹사이트를 만들어보는 일은 결국 자신을 사랑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자신을 도저하게 사랑하다 보면, 남도 도저하게 사랑할 수 있다. 콘텐츠를 다루는 능력을 기르고, 기술을 이해하고 주체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건 덤이다.
강의실에서는 수영 강사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 학생들을 물속으로 떠밀어 아무리 영법을 가르쳐도 결국 근육을 움직이는 건 자기 자신이다. 어떤 근육을 어떻게 얼마나 움직여야 할까? 결국 자신의 욕망에 달렸다. 욕망에 집중하고, 욕망을 따라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새로운 기술을 익히게 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해밀톤 호텔 수영장에서 물장구만 쳐도 흡족할 테다.
이제야 웹사이트가 ‘진보한 인쇄물’이라는 점이 이해가 간다. 인쇄물을 만드는 데는 단행본을 기준으로 적어도 2개월 정도가 걸리는데, 웹사이트는 보통 어느 정도가 걸리나?
정적 웹사이트 겸 포스터식 웹사이트는 콘텐츠가 제대로 마련되고 콘셉트가 정해진 상태라면 사실 하루만이라도 완성할 수 있다. 물론 이는 테스트를 제외한 시간이다. 어떤 웹사이트는 사용하는 데 무리가 없을 만큼 공개한 뒤 점진적으로 업데이트하기도 한다. 서울시립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와 함께한 ‹NR 베이커리›(NR Bakery, 2021)가 비슷한 경우인데, 인쇄물 작업에 익숙하다면 낯선 방식일지 모른다. 콘텐츠를 기획하고, 편집하고, 검토하는 시간을 제외하더라도 1개월은 걸린다. 모두 고려하면 한 웹사이트를 만드는 데 2–3개월 정도 걸리는 게 일반적이다.
온라인에서 열람하는 작품과 오프라인 작품의 차이는 얼마나 극복돼야 할까?
차라리 처음부터 작품이 온라인과 오프라인, 두 가지(branch)로 존재할 수 있는 여지를 염두에 두면 어떨까? 또는 작품의 원본은 온라인에 두고, 작품이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번역되는 과정이 오프라인 작업의 요소가 되는 건?
질서와 정리 정돈이라는 행동양식이 몸에 익은 것처럼 보인다. 민구홍에게 무질서란 사고(accident)인가? 본인이 접해온 무질서한 상황의 예시나, 이와 같은 상황을 접할 때 어떤 순서로 대책을 세우는지 또는 때로는 세우지 않는지 알려달라.
내가 관심 있는 건 질서 자체가 아닌, 어떤 대상에 질서를 부여하는 과정과 방식이다. 물론 어떤 상황에서는 우스꽝스러워 보일 정도로 지나치게 질서에 집착하지만, 모든 것을 완벽하고 깔끔하게 편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모든 외래어를 순화하려는 국립국어원의 시도가 이를 증명한다. 특정한 원칙을 마련한 뒤 충실히 따르려 해도 해당 원칙을 무너뜨리는, 그래서 옹색한 세칙을 마련할 수밖에 없는, 내가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이 일어나고야 만다. 따라서 우리 집은 물론이고, 내가 일하는 책상과 책상 주변은 질서와는 거리가 멀다. 온갖 콘텐츠와 기술이 뒤섞인 웹처럼, 가깝게는 우리 생활처럼 차라리 엉망진창이 자연스러운 상태임을 인정하는 편이 정신 건강에 이롭다.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입니다. ‘새로운 질서’를 만들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요?
“어떤 대상을 좋아하고, 급기야 사랑하게 되면 그 아름다운 마음을 주위와 나누고 싶게 마련이다.” 제가 수학한 시적 연산 학교의 마지막 수업은 자신만의 학교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선생의 역할은 맹목적인 학생을 만드는 게 아니라 또 다른 선생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첫 시간부터 그냥 이름을 부르는 식으로 호칭을 정리하죠. 누군가를 ‘선생님’으로 부르는 순간 어떤 위계가 생기고, 그런 위계는 뭔가를 가르치거나 배우는 데, 즉 나누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아요.
소비자로서는 웹사이트가 너무나도 익숙하지만, 생산자로서는 대개 새로운 매체입니다. 세련된 툴바가 아닌 모두 글자로 하나하나 해야 하는 까닭에 자신의 작업 과정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죠. 디자이너라면 모름지기 처음부터 책을 한 권 만들어봐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상황이 디자인을 할 때 마주하게 되는 많은 변수를 포함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웹사이트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또 다른 경험을 하게 합니다.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졸업생입니다. 웹사이트상에서 이뤄지는 타이포그래피만의 특징이 있을까요?
2022년 초에 운 좋게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에 직접 가서 강연할 기회가 있었는데, 여기서 할머니, 딸, 손녀가 함께한 사진을 보여주며 웹사이트는 책의 자녀, 즉 진화한 종이 책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할머니가 종이 책이라면, 딸은 웹사이트고, 손녀는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볼 수 있는 또 다른 무엇이라고요. 웹사이트는 진화한 종이 책답게 지면보다 공간적인 제약이 덜한 편입니다. 제작 비용에 영향을 미치는 판형이나 쪽수 같은 개념이 흐릿하니까요. 제 경험상 지면용 타이포그래피를 위한 수치를 웹사이트에 그대로 적용하면 어딘가 조금 작고 좁고 빽빽한 느낌을 받습니다. 지면의 일반적인 본문 글자 크기인 10포인트를 픽셀로 환산하면 13.5픽셀에 가까운데, 저는 웹 브라우저상에서 기본으로 설정된 본문 글자 크기가 16픽셀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18픽셀이나 20픽셀 이상이 적절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고요. 글줄 사이 공간도 지면보다 조금 더 넉넉한 게 좋다고 생각해요. 글이 긴 경우 문단과 문단을 들여쓰기가 아닌, 한 줄 공백으로 구분하는 것도 그런 이유겠죠. 한편, 웹사이트는 발광하는 화면, 즉 RGB 색상으로 구현되는 만큼 흑백의 대비가 지면보다 큰 편이라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입니다. 시, 소설, 작업, 노래, 영상 등 최근에 접한 것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단 한 가지로 수렴할 수밖에 없는 ‘가장’이라는 표현은 저와는 별로 어울리지 않습니다. 너무 많은 게 한꺼번에 떠오르거든요. 그래서 차라리 제 생활 패턴을 말씀드리는 게 어떨까 싶어요.
평일 가운데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회사에서 열심히 일합니다. 학기 중에는 목요일에 학교에서 강의를 하고요. 금요일에는 새로운 질서에서 친구들과 만나고요. 퇴근한 뒤에는 특히 드라마나 영화를 많이 봅니다. 최근에는 시트콤 『사인펠드』에 푹 빠졌고, 『세브란스: 단절』도 두 번째 시즌이 나올 때까지 계속 보죠. 음악도 많이 듣고요. 게임도 합니다. 아내와 산책하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죠. 얼마 전에는 일본 이민에 관해 진지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주말에는 심심하면 번역과 작곡에 심취하고요. 그리고 12시 전에 자고, 8시 전에 일어납니다.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자연스럽게 고립에 익숙해진다. 집에서는 무엇을 하는가? 전과 달라진 점이 있는가?
10여 년 전 대학교 4학년 때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서 “일이 곧 생활이 돼야 한다.”라는 가르침을 받은 이래 일과 생활을 철저히 구분하는 편이다. 주중에는 열심히 일하지만, 주말에는 웬만하면 약속도 잡지 않고 대부분 집에서 보낸다. 거실 소파에 누워 TV를 많이 보고, 그러다 나른해지면 잠에 빠지곤 한다. 발코니에서 공원을 오가는 사람들을 내려다보거나 함께 지내는 고양이에게 말을 건네며 하염없이 턱 주변을 쓰다듬기도 한다. 집밖에서는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을 깔끔하게 편집, 즉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강박에 휩싸이지만, 이런 감정은 집 현관문을 여는 순간 사라진다. 집은 관리비나 생활 요금 외에 아무것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가장 편안하고 안전한 공간이다. 최근에 코로나 때문에 외국에서 돌아오신 어머니는 오랜 타향살이보다 2주 동안의 자가 격리 기간이 더욱 고통스러웠다고 말씀하셨지만, 사실 나는 집밖에서 이 답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집에 가고 싶은 생각뿐이다. 영화 「새벽의 저주」(Dawn of the Dead)나 「미스트」(The Mist)처럼 좀비나 외계 생명체가 창궐하더라도 피난처로는 쇼핑몰이나 슈퍼마켓보다 집을 택할 것 같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하루는 어떻게 이뤄지는가?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기생 회사다. 현재 회사의 숙주는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겸 출판사 워크룸이다. 회사와 계약한 소정 근로 시간에는 숙주의 직원으로서 열심히, 그리고 되도록 즐겁게 일한다. 짬이 나면 민구홍 매뉴팩처링 일을 한다. (제품 대부분이 단순한 까닭이다.) 물론 둘 사이가 흐려질 때도 있다. 퇴근한 뒤에는 친구들을 만나거나 TV를 보거나 책을 읽곤 했다. 요즘에는 플레이 스테이션을 조금 가지고 놀다가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내일을 생각하며 잠에 빠진다.
내년에는 꼭 도전하고 싶은 일은?
다음 조건을 만족하는 사람 이름 짓기. 순서는 무순이다. 특정 성별을 암시하지 않을 것. 누구나 발음하기 쉬울 것. 순우리말 같지만 한자로 표기할 수 있을 것. 영어로 표기했을 때 열 글자 이하일 것. 지나치게 유별나지 않을 것, 즉 주위에서 놀림감이 될 여지가 없을 것, 즉 이름의 주인이 뒤늦게 나를 증오할 가능성을 차단할 것. 시대를 초월해 우아하고 세련될 것. 한 글자 이상일 것. 음양오행의 조화를 이룰 것. 성은 ‘민’일 것.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향한 사랑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손으로 쥐거나 눈으로 볼 수 없는 사랑을 어떻게 실체화할지 오랫동안 고민해왔습니다. 고객의 관심과 사랑을 원동력으로 삼는 회사인 만큼 이는 당연한 당면 과제였죠. 막연한 느낌은 대개 막연한 채로 남고, 어떤 느낌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사랑만큼은 분명히 다르다고 확신합니다.

조금 부족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사랑을 표현할 수 있다면!

받는 쪽은 어쨌든 감사할 따름일 겁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제품 「장영혜 중공업 귀중」은 제게 사랑스러운 연애편지처럼 보입니다. 혹시 이렇게 불러도 될지 모르겠지만 ‘연애편지’ 연작을 전개해볼 계획은 없나요?
돌이켜보니 「너에게」와 「한국 코카-콜라 귀중」이 있었습니다. 여전히 답장을 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앞으로 “‘연애편지’ 연작”이라 부르겠습니다.



워크룸은 민구홍 님에게 첫 번째 직장이었나요? 그곳에 다니기 전부터 워크룸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나요? 출판사이자 디자인 스튜디오인 그곳에서 일을 시작한 것이 지금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운영하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쳤나요? 워크룸에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이 있다면 무엇이었나요?
시적 연산 학교에 합격한 무렵 워크룸의 박활성 선배에게 연락을 받았어요. “같이 일합시다.” 박활성 선배를 비롯해 김형진, 이경수 선배는 안그라픽스에서 ’16시’를 기획하면서 처음 만났어요. 그 뒤로 좋아하고, 또 존경하는 선배였고, 당연히 그들과 일하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죠. 그렇게 학교를 마치고 귀국한 뒤 자연스럽게 워크룸에 입사하게 됐습니다. 사실 워크룸의 제안이 없었다면 저는 지금도 미국에 있었을 거예요. 동기들처럼 작가로 활동하거나 학교에 출강하면서요. 워크룸에서 제 역할은 편집자였지만, 가장 먼저 한 일은 밥 길(Bob Gill)의 『이제껏 배운 그래픽 디자인 규칙은 다 잊어라. 이 책에 실린 것까지.』(Forget all the rules about graphic design. Including the ones in this book.)를 한국어로 번역하고, 워크룸 웹사이트와 워크룸 프레스 웹사이트를 개편한 일이었어요. 워크룸이 구성원의 역할을 엄격하게 규정하지 않은 덕에 가능한 일이었죠. 그 뒤 ‘실용 총서’ 등 여러 책을 기획하고, 미술 및 디자인계 안팎의 크고 작은 웹사이트를 만들며 사람을 대하고 일하는 방법을 배웠죠. 이 과정에서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널리 소개할 수 있게 됐고요. 워크룸 덕에 30대 초중반을 정말이지 행복하게 보냈습니다.
종이책의 미래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가 생각하는 종이책의 귀중한 유산은 종이 위, 즉 제한된 평면에서 콘텐츠를 정리하고 소개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에는 필사가, 편집자, 인쇄인, 디자이너, 인지과학자 등 수많은 전문가의 성공과 실패가 쌓여 있다. 그 덕에 우리는 콘텐츠와 눈 사이에 따른 적절한 글자 크기를, 그에 따른 적절한 글줄 길이를, 그에 따른 적절한 글줄 수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이 점을 생각하면 웹사이트뿐 아니라 콘텐츠가 자리한 수많은 매체에서 이 방식이 재현되거나 활용되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다. 누군가에게 종이 책의 죽음은 당연한 미래일지 모르지만, 종이 책에서 비롯한 이 방식만큼은 변함없으리라.
더 궁금한 점이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기회가 있다면 또 다른 자리를 마련해보면 좋겠다. ‹새로운 질서›에서 이야기하는 일부 내용을 간추렸을 뿐이지만, 오늘 이야기가 미술 및 디자인계의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다. 단, 내 말을 맹신하는 건 금물이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그래픽 디자이너 밥 길도 말하지 않았던가. 규칙을 파악한 뒤에는 잊어버려야 한다고.
워크룸의 단행본 편집자인 한편, 웹에도 관심이 적지 않다. 두 매체를 구분하는 것의 장점과 단점이 무엇일까? 두 매체를 오가면서 어떤 이유에서 각 매체를 선택하는가?
웹은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회사를 소개하기 위해 활용하는 매체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웹의 비중이 적지 않기 때문에 이따금 웹 디자인 에이전시로 오해받곤 한다. 회사에서 웹을 주로 이용하는 까닭은 다루기 쉽고, (인쇄물에 비해) 파급력이 클 뿐 아니라 무엇보다 많은 사람이 잠들기 직전에 마주하는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 경이 과학자들끼리 효율적으로 논문을 공유할 목적으로 웹을 발명한 만큼 역사적으로 웹은 인쇄물에서 출발했다.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의 측면에서 웹은 태생적으로 인쇄물의 장점을 포섭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발전을 거듭한다. 따라서 둘을 같은 출발선상에 놓고, 일대일로 비교하기보다는 인쇄물을 웹의 조상, 웹을 조금 더 진보한 인쇄물로 여기는 편이 이롭다. 당장 생각 나는 둘의 분명한 차이가 있다면 웹은 책을 손에 쥐었을 때 느껴지는 흡족함을 주지 못한다는 점과 책과 달리 영원히 베타 버전이라는 점이다.
좋아하는 과일 다섯 가지를 밝힌다면?
100그램당 칼로리와 함께 큰 것부터 작은 것 순으로.
당신에게 최정호란 누구인가?
여러모로 고마운 사람이다. 최정호에 관한 책을 만들어서 월급을 받았고, 최정호가 만든 서체로 사람들에게 「(웃음)」도 드렸다.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의 2차원 이미지를 재현하는 건 익숙한 일이다. 그렇다면 조각 등 설치물 같은 건 어떨까? 온라인 전시에서도 작품의 물성을 구현할 수 있을까? 구현할 수 있다면 어떤 방식이 적절할까?
언젠가 한 출판사 관계자와 웹사이트 개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 비슷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이참에 웹사이트에서 책의 물성을 구현해보고 싶은데… 가능하겠죠?” 그는 순진한 표정으로, 특히 ‘물성’에 힘을 보태 말했다. 이는 책에서 유튜브 영상을 재생하고 싶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웹에서는 Z축상에 레이어가 아무리 쌓이더라도 두께는 0픽셀이다. 웹상의 물성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바는 이뿐이다. 오랜 고민 끝에 출판사 관계자에게는 결국 구글이나 네이버 본사에 문의해보시는 게 좋겠다고 정중히 말씀드렸다.
‘타이포잔치’라는 행사가 있어요. 2001년부터 시작한 국제 타이포그래피 전시로 내년이면 어느덧 20년이 되는데요, 혹시 알고 계신가요? 아신다면 간단한 소감이나 인상을 말씀해주시겠어요?
소감이나 인상을 말하는 게 어색할 만큼 잘 알죠. 2년마다 타이포그래피를 주제로 전 세계의 디자이너들이 작가로 참여하는 대규모 전시는 동아시아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드무니까요. 그 대신 우화 한 편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언젠가 미국인 그래픽 디자이너 친구에게 이 행사에 참여하게 됐다고 털어놨을 때 이렇게 묻더군요. “오, 그렇구나… 축하해! 그런데 어떤 오탈자(typo)를 보여줄 계획이니? (Wow… Congratulations! But what type of typo do you want to show?)” 아주 순진한 얼굴로요.
사무실에서 음악을 듣기도 하는가?
거의 듣지 않는다. 듣는다 해도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다. 언제나 자신을 ‘가장 친한 미국인 친구’로 소개해달라는 로럴 슐스트(Laurel Schwulst)는 이따금 손수 꾸린 음악 선집을 보내준다. 여러 음악이 수록돼 있지만, 내가 아는 노래는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왬!(Wham!), 다츠로 야마시타(Yamashita Tatsuro) 정도다. 쿠스코(Cusco)나 일본의 아방가르드 오르간, 바이올린 듀오 시지지스(Syzygys)도 최근 재생 목록에 있다. 매년 회사에 귀여운 연하장을 보내주시는 스튜디오 FNT의 이재민 실장님에게 쿠스코 LP 전집을 선물받았는데, 정작 LP 플레이어가 없어서 죄송하게도 관상용으로 보고 있다.
구글(Google)을 통해 매듭 묶는 방법, 이케바나(いけばな), 디자인 등 갖가지 실용적인 기술을 익혔다는 점도 재미있었어요.
웹은 제게 또 다른 학교입니다. 요즘에는 누구에게나 그렇지 않을까요? 물론 잘못된 정보가 적지 않지만, 거기서 옥석을 가려내는 것도 학습의 일부예요. 물론 조금 더 수월하게 디자인을 익힌 데는 안상수 선생님 연구실, 안그라픽스, 워크룸을 거치면서 솜씨 좋은 생산자들과 교유한 덕도 있죠. 『이제껏 배운 그래픽 디자인 규칙은 다 잊어라. 이 책에 실린 것까지.』를 번역하는 과정도 공부가 됐어요. 실제로 이 책은 여러 학교에서 그래픽 디자인 교재로 사용되고, 네덜란드의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익스페리멘털 젯셋(Experimental Jetset)은 이 책을 거의 성경처럼 여기죠. 차례만 읽어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책 제목처럼 언젠가는 잊어버려야겠지만요.
2016년 청담동의 COS 매장 3층에 마련된 프로젝트 스페이스에서 발표한 「보기」(더 북 소사이어티·김영나 기획)는 빨강 버튼을 누를 때마다 무작위로 조합된 경고나 행운의 메시지를 대형 스크린에 출력하는 제품이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것 가운데 가장 섬뜩한 메시지가 있다면?



귀하는 / 유니클로에서 / 느닷없이 / 친척 어른에게 / 귀하의 직업을 / 설명하게 될 것입니다. / 축하드립니다.

하지만 가장 섬뜩했던 건 메시지보다 음악가 김윤기의 오프닝 공연이었을 것이다.
그래픽 디자인 듀오 슬기와 민의 소개처럼 저술가, 번역가, 프로그래머, 디자이너 등 여러 직함이 붙지만 ‘편집자’라는 직함을 고수한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하는 일들이 ‘편집’과 어떤 관련이 있나요?
출판 분야에서 ‘편집(editing)’은 교정과 교열 같은 협소한 의미로 사용되곤 하지만, 저는 편집을 창작을 포함한 행위로 간주합니다. 제가 ‘편집’이라는 행위를 처음 의식한 건 1990년대 초 컴퓨터를 처음 접하고 게임에 한창 몰입하던 시절이었어요. 흔히 ‘게임 에디터’로 통칭하던 소프트웨어를 이용하면 게임의 데이터베이스를 조작해 캐릭터의 능력치뿐 아니라 게임 자체를 수정할 수 있었죠. 즉, 제가 처음 접한 편집은 ‘어떤 공고한 틀을 그 안팎에서 지배해 국면을 제어하는 일’이었어요. 이 생각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웹사이트를 만들 때뿐 아니라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작품을 전시할 때도 편집자의 마음으로 임합니다. ‘편집자’라는 말이 주는 무미건조함도 마음에 들고요. 다만 제가 다루는 편집의 영역이 넓어지다 보니 정작 제가 담당한 책 출간이 늦어지고 있어요. 얼마 전에 출간된 『실전 격투』도 가까스로 작업했죠. 저를 이해해주시고, 아무 말 없이 기다려주시는 필자, 번역가 분들께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안부를 전하고 싶습니다.
최근 선보인 대안공간 루프의 웹사이트가 인상적이다.

일반적으로 갤러리 웹사이트는 콘텐츠와 구조 덕에 메타적인 전시의 형식을 띨 수밖에 없다. 대안공간 루프 웹사이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웹사이트의 요소는 루프의 영문명(Loop)을 암시하는 동시에 여러 페이지를 오갈 수 있는 내비게이션으로 기능한다. 접속할 때마다 무작위로 바뀌는 두 번째 ‘O’는 과거 전시와 연결되는데, 방문객뿐 아니라 루프의 구성원에게 그동안 루프에 쌓인 시간을 되새기려는 의도였다. 한편,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웹사이트 제작으로 루프에 후원했다. 한국 대안 공간의 효시인 루프의 활동을 그렇게나마 응원하고 싶었다.
기술적인 한계는 어떻게 극복하는가?
웹을 둘러싼 기술은 너무나도 빠르게 발전하므로 하나하나 따라가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이 순간에도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어떤 기술은 폐기된다.
최신 기술을 재빨리 익혀 도입하는 쪽과 드릴이나 호미로 밑바닥을 확장하며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기술을 탐구하는 쪽이 있다면,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후자에 속한다. HTML을 위시한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기술은 앞으로 폐기될 가능성이 적은 까닭이다. 또한, 아무래도 워크룸에 기생하다 보니 그래픽 디자인에서 타이포그래피나 개념에 집중하는 방법론에 익숙하기도 하고,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구글이나 네이버가 아닌 만큼 기술적인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선의 방법을 고안하려 노력한다. 그런데 여러 프로젝트를 경험해본 바로는 대부분의 문제가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기술만으로 무리 없이 해결되는 편이었다. 한계가 명확할수록 특정 부위가 과도하게 커진 근육처럼 재미있는 결과물이 나오기도 한다. 물론 여기에는 사용할 콘텐츠를 제대로 다뤄야 한다는, 즉 제대로 편집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는다.
COS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와 관련된 책을 몇 권 꼽아주세요.
2021년 가장 즐거웠던 순간을 되돌아 본다면?
민구홍 매뉴팩처링과 민구홍 개인으로 나뉠 수 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가장 즐거운 순간은 2018년 구글에 이어 배달의민족과 어깨를 나란히 했을 때다. 2021년 한글날을 맞아 배달의민족, 티슈오피스와 ‘을지로체’의 세 번째 버전인 ‘을지로오래오래체’를 소개하는 몇 가지 웹사이트를 만들었는데, 첫 화면에서 을지로체로 쓰인 ‘민구홍 매뉴팩처링 × 배달의민족’이라는 문구를 마주한 순간, 잠시뿐이었지만,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 온 세상을 굽어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처럼 누군가의 명성에 기대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소개할 때만큼 짜릿한 순간도 드물다. 한편, 민구홍 개인에게 가장 즐거운 순간은 생각건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킬 수 있으므로 밝히기 곤란할 것 같다. 아쉽지만 나와 당사자 둘만의 추억 속에 놓는 편이 좋겠다. 독자 여러분께 양해를 구한다.
허약한 인간을 모두 감염시킨 뒤 세계를 구원하면(save the world) 평화로운 세계를 인쇄용지에 맞게 출력해 저장할 수 있도록 설정한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목숨 건(?) 훈련을 마치고 받는 수료증 같기도 했고, 단순하지만 결과를 물질로 기념할 수 있는 소소한 재미도 있었고요. 제품의 마지막을 이렇게 설정한 까닭이 궁금합니다.
바이러스나 인간, 어느 쪽이든 세계를 구원하는 일이 세계를 출력해 저장하는 일처럼 쉽고 간단하면 좋겠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향후 계획이 궁금합니다.
2015년 회사를 설립하면서 발표한 「회사 소개」에서 밝힌 서른일곱 가지 일은 앞으로도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콘텐츠를 중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민구홍 매뉴팩처링 공식 웹사이트의 일관된 형식으로 미루어 내가 느끼기에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형식주의자에 가깝다.
물론 형식도 중요하다. 하지만 콘텐츠가 한 뼘 정도는 더 중요하다.
한편,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여러 방식으로 회사, 즉 민구홍 매뉴팩처링 자체를 소개하는 데 주력”한다고 하는데, ‘소개’에 천착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모든 생산 활동의 기저에는 어떤 대상, 나아가 자기 자신을 소개하고픈 욕망이 있습니다. 이 욕망 앞에서는 이우환 선생님이나 버질 아블로, 마포평생학습관에서 첫 개인전을 연 미술가는 서로 다를 게 없죠. 게다가 소개는 절차상 반드시, 그리고 어차피 해야 할 일이죠. 그 일에만 집중하더라도 이야기는 시작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소개가 문제적인 까닭입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이 욕망을 조금 더 의식하고 양식화한 결과물이에요. 김창열 선생님에게 탐구해야 할 대상이 ‘물방울’이었다면, 민구홍 매뉴팩처링에는 ‘소개’인 셈이죠.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아닌 민구홍이 누구인지 소개해줄 수 있는가?
마침 최근(2021년 4월)에 약력을 업데이트할 기회가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동력은 순전히 한 구절씩 약력을 편집하고 업데이트해가는 즐거움이었던 것 같다.
중앙대학교에서 문학과 언어학을, 미국 시적 연산 학교(School for Poetic Computation, SFPC)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하지만 ‘좁은 의미의 문학과 언어학’으로 부르기를 좋아한다.)을 공부했다. 안그라픽스를 거쳐 워크룸에서 편집자 겸 디자이너 겸 프로그래머(하지만 ‘편집자’라는 명칭을 고수하려 한다.)로 일하며 ‘실용 총서’ 등을 기획하는 한편, 1인 회사 민구홍 매뉴팩처링(Min Guhong Manufacturing)을 운영하며 기관, 기업, 단체, 개인 등과 여러 방식으로 회사, 즉 민구홍 매뉴팩처링 자체를 소개하는 데 주력한다. 회사와 회사의 제품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대림미술관, 더 북 소사이어티, 레프트 갤러리(Left Gallery), 문화역서울 284, 서울시립미술관, 시적 연산 학교, 시청각, 아카이브 봄, 아트선재센터, 원룸, 인사미술공간, 취미가, 탈영역 우정국, 프루트풀 스쿨(Fruitful School), COS 프로젝트 스페이스, DDDD, 『릿터』, 『빅이슈』 등에서 소개된 바 있다. ‘현대인을 위한 교양 강좌’를 표방하는 「새로운 질서」에서 실용적이고 개념적인 글쓰기로서 코딩을 가르치며, 계원예술대학교,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국민대학교, 더 북 소사이어티, 도쿄예술대학, 스튜디오 파이, 워크룸, 이화여자대학교, 취미가, 프루트풀 스쿨, 홍익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whatreallymatters 등에서 특강과 워크숍을 진행했고, (설립 과정에 참여하기도 한)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에서 강의했다. 지은 책으로 『새로운 질서』(미디어버스, 2019)가, 옮긴 책으로 『이제껏 배운 그래픽 디자인 규칙은 다 잊어라. 이 책에 실린 것까지.』(작업실유령, 2017)가 있다. 2021년부터 오로라(Aurora)의 일원으로 활동한다.

또는 민구홍의 웹사이트를 참고하는 것도 좋겠다.
온라인 전시에서 큐레이터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또는 무엇을 해야 할까?
또 다른 형태의 전시장을 활용할 수 있는 셈이니 큐레이터의 역할은 더욱 확대될 게 분명하다. 이를 위해 단순하더라도 직접 웹사이트를 만들어보는 걸 추천한다. 웹의 수많은 가능성뿐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떤 제약이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다. ‘느낌’을 동원하는 데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웹 기술을 다뤄본 큐레이터가 쓴 온라인 전시 서문은 더욱 읽을 만하고, 전시는 더욱 감상할 만할 것이다. 그 뒤에는 전시장, 즉 웹사이트를 무엇으로 규정하는지가 중요하겠다. 로럴 슐스트(Laurel Schwulst)가 「내게 웹사이트는 지식의 강을 따라 흐르는 집이다. 당신은?」(My Website is a Shifting House Next to a River of Knowledge. What Could Yours Be?, 2018)에서 말했듯 웹사이트는 가깝게는 단행본에서 아무도 생각지 못한 무엇까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민구홍에게 웹이란 무엇인가?
한국 나이로 일곱 살 무렵이던 1991년에 처음 컴퓨터를 접했다. 마지막 PC 통신 세대이자 첫 인터넷 세대인데, 웹 1.0 시절부터 소비자와 생산자로서 경험해온 웹은 규정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게 엉망진창이다. 이따금 웹상에는 모든 것이 있다는 환상에 젖곤 한다. 하지만 맛있는 저녁을 먹고 집 앞 경의선숲길을 산책하다 보면 그런 환상은 무참히 무화된다.
오늘날 편집 디자이너를 희망한다는 것은 멍청한 것인가?
이 질문에는 어떤 대상을 향한 질문자의 마음과 질문자가 느끼는 어떤 대상을 둘러싼 주위의 인식이 어우러진 듯하다. 자신이 지닌 희망 자체에 관해서는 희망에 다가가 성공 또는 실패를 겪은 뒤 판단할 수밖에 없다. 일단 자신이 다가가야 한다. 이에 관해서는 누구도 멍청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조금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다른 사람의 희망에 관해서는 마음을 다해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전염병 탓에 느닷없이 온라인 전시가 늘어났습니다. 전시 웹사이트를 디자인하는 작업은 어떻게 다를까요? 또 온라인 전시의 한계를 개선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온라인에 최적화한 디지털 작품이 아닌 이상 온라인 전시는 오프라인을 능가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VR이나 AR 같은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짐을 싸고 공항으로 향하는 경험부터 여행인 점을 생각하면 온라인에서는 오프라인의 비가시적인 경험이 삭제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저는, 특히 전시에서는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책장을 넘기는 효과를 재현하는 데 온갖 기술을 도입한 초창기 이북을 생각해보세요. 잠깐의 신기함뿐이었죠. 콘텐츠가 웹에 놓인다면 웹이라는 기술이 지닌 고유한 특성을 콘텐츠와 접목하는 게 중요합니다. 사실 쉬운 일은 아니죠. 할 수 있는 게 무궁무진하니까요.
웹사이트가 전통적인 인쇄 매체, 즉 포스터나 리플릿, 도록 같은 역할만 수행한다면 (즉, 마지막 단계에서 모든 것을 갈무리할 뿐이라면) 웹이 지닌 수많은 가능성을 포기하는 꼴이에요. 웹을 전시에 최대한 활용하려면 맨 앞에서 프로젝트를 시작해 전반을 이끄는 플랫폼으로 삼는 거예요. 웹사이트 안에서 모든 활동이 일어나고, 축적되고, 예상하지 못한 버그가 튀어나오고, 관객은 이런 상황을 실시간으로 관람하거나 참여하고, 그 자체로 자연스럽게 결과물이 드러나고, 하나의 경험을 생성하는 거죠. 이는 인쇄물의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 웹의 태생적 속성에서 비롯합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전염병 때문에 온라인 전시가 불가피해졌지만,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팬더믹 때문에 잠시 유행했다가 가라앉는 게 아닌, 웹 디자인이라는 새로운 영토를 찾은 것으로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더욱 파고들고 경작할 수 있는 분야가 되었으면 해요. 그리고 어색함 없이 그 자체로 작품으로서 인정받는 분위기까지 형성되면 더할 나위 없겠죠. 어쨌든 경험할 거리가 하나 더 늘어나는 셈이니까요.
웹사이트를 제작할 때 워드프레스(Wordpress) 같은 콘텐츠 매니지먼트 시스템을 사용하는가?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면 사용하지 않는다. 전 세계 웹사이트 가운데 3분의 1이 워드프레스로 제작된다지만 지나치게 무겁다고 느낀다. 집 근처 공원으로 나들이를 가는데 KTX를 타려는 꼴이다. 게다가 워드프레스의 플러그인은 다양하고 사용하기 편리하지만 유지 보수 면에서는 최악에 가깝다. 그 탓에 워드프레스 공식 웹사이트 하단에 실린 문구인 “Code is poetry.”마저 지나치게 서정적으로 느껴진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워드프레스의 단점을 극복해 오픈 소스를 자체적으로 커스터마이징한 「매니지먼트」(Management)를 사용하고, 고객들에게도 적극적으로 권하는 편이다. 구체적인 건 고객으로서 직접 경험해보는 편이 어떨까? 물론 콘텐츠와 코드를 한땀 한땀 입력하는 하드 코딩이 시간을 가장 절약하는 방식일 때도 있다.
언제까지 회사를 소개할 작정인가요?
아직은 언제까지보다는 어떻게에 집중해보려 합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는 고사성어로 이 제품을 설명했는데, 이런 시나리오를 생각한 배경이 궁금합니다.
“당신은 바이러스입니다.” 「바이러스 시뮬레이터」에 등장하는 첫 문장입니다. 「바이러스 시뮬레이터」 속 세계에서 사용자, 즉 바이러스는 허약한 인간을 찾아내 모두 감염시켜야 비로소 평화를 맞이합니다. 허약한 인간을 감염시키면 “좋습니다.” 같은 격려 메시지를, 건강한 인간과 마주하면 미리 설정된 목숨이 하나씩 줄고 “건강 조심하세요!” 같은 안부 메시지를 받습니다. 하지만 메시지의 수신자는 반대로 감염되거나 감염을 피한 인간이기도 합니다. 「바이러스 시뮬레이터」는 지구의 입장에서 인간 또한 또 다른 바이러스라는 생태학적 사실을 드러내기보다 오히려 바이러스의 입장에서 인간을 이해해보려는 시도입니다. 때로는 누군가의 불행이 결과적으로 불행한 누군가를 포함한 모두의 행복일 수 있고, 결국에는 어느 쪽이든 평화를 맞이하리라는 몰염치한 낙관론과 어떤 인간에게는 이런 방식이 코로나19 이후 속속 등장한 감염자 추이를 보여주는 수많은 웹사이트보다 유익할지 모른다는 판단도 작용했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방식으로 고객에게 보내는 안부 메시지기도 하고요.
얼마 남지 않은 2021년, 꼭 마무리 짓고 싶은 일이 있다면?
VISLA와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컬래버레이션. 그리고 욕조 설치. 불과 몇 년 전 욕실을 리모델링하면서 호기롭게 욕조를 철거했는데,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는 일이 이렇게까지 어려워질 줄은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그의 핵심 측근을 제외하면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