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2015년 이래 진행한 길고 짧은 인터뷰를 꼼꼼히 정리한 뒤 다시 무작위로 늘어놓은 「자주 하는 질문」을 통해 회사 또는 운영자에 관한 궁금증이 모쪼록 해소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단, 질문의 시기에 따라 현재와 다른 사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편, 질문의 어조에 따라 언급한 인물에 대한 존칭을 생략하기도 했습니다. 「자주 하는 질문」을 섭렵한 뒤에도 궁금증이 도무지 해소되지 않는다면 [email protected] 앞으로 소상히 말씀해주세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인정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단, 답장은 이메일 대신 언젠가 「자주 하는 질문」에서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입니다. 문학과 언어학을 공부한 경험이 디자인이나 프로그래밍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요?
넓은 의미에서 제게 문학은 언어를 가지고 노는 일이고, 언어학은 언어의 구조와 규칙, 기능과 의미를 발견하는 일입니다. 디자인이나 코딩 또한 사용하는 언어가 조금 다를뿐 모두 이 범주 안에 있습니다.
일반적인 글쓰기든 코딩이라는 글쓰기든 모두 소통을 전제합니다. 그 일차적인 소통 대상은 글을 쓰는 사람, 즉 자신일 테고요. 하지만 코딩에서는 자신과 소통한 뒤에는 컴퓨터와 소통해야 하죠. 얄궂게도 컴퓨터는 인간만큼 너그럽지 않습니다. 코딩에 정확성, 명확성, 명료성 등이 수반되는 까닭입니다.
디자인이 꼭 필요한가?
이야기를 할 때 가장 먼저 무엇을 이야기할지 결정한 뒤 어떻게 이야기할지 고려해야 하듯 디자인 또한 결국 필요한 일이다. 다만, 디자인 이전에 무엇을 디자인할지, 즉 무엇을 이야기할지 결정해야 한다.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디자인의 범위가 결정된다. 예컨대 디자인의 범위가 무척 협소한 세계를 떠올려볼 법하다. 일반 검색 엔진으로는 검색이 불가능한 다크 웹(Dark Web)상에서는 위조지폐, 무기, 마약, 음란물 거래를 비롯해 청부살인, 공문서 위조 등 수많은 범죄 행위가 일어나곤 한다. 이곳에 자리한 웹사이트들은 ‘어떻게’보다는 ‘무엇’에 집중한 이야기들이다. 웹사이트 방문객에게는 ‘어떻게’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까닭이다. ‘어떻게’에 공을 들인, 즉 디자인이 근사한 웹사이트는 오히려 방문객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받기 쉬울 테다.
온라인 전시에서 작품을 드러내는 방식은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미래학자가 아니므로 단언할 수는 없지만, 작품을 드러내는 방식이 지금과 아주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아무리 신기한 효과를 부려도 결국 모니터 화면에 주사된 납작한 이미지일 뿐이다.
온라인 전시에서는 작품의 메타데이터(metadata)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과 함께 관련 작품, 전시, 글, 이미지, 영상 등을 정교하게 엮는 방식인데, 작품보다는 작품 주변부가 확장하는 셈이다. 전시, 도록 등이 한데 합쳐진 결과라 볼 수 있다. 관람객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한데, 기술과 그 한계에 주목하면 재미있는 방식도 가능하다. HTML에서 이미지를 담당하는 태그에는 대체 텍스트(alternative text) 속성이 마련돼 있다. 이미지를 제대로 표시할 수 없는 상황을 대비한 기능인데, 이를 통해 시각 장애인은 스크린리더(screen reader)상에서 이미지를 파악할 수 있다. 대체 텍스트에서는 누보로망(Nouveau roman)처럼 최대한 작품을 객관적으로 묘사해야 한다. 밀레의 ‹만종›(L’Angélus, 1857–1859)은 ‘들판에 고개 숙인 두 남녀가 있고, 그들은 누군가를 추모하는 듯하다.’ 등으로, 온 가와라의 ‹오늘›(Today, 1966–2014)은 “중앙에 1985년 3월 5일이라 쓰여진 검은색 사각형.” 등으로 묘사해야 한다. 한편, 대체 텍스트만을 활용하면 이미지가 없는 빈 갤러리,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콘텐츠가 충만한 갤러리 웹사이트가 만들어질 수 있다. 스크린리더로 접속하면 컴퓨터가 이미지를 소리로 묘사해줄 것이다.

영감은 어디서 얻나요?
제품 주문자의 요구 사항과 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각종 마케팅 전략입니다.
회사의 생산물을 ‘작품’이나 ‘작업’ 대신 ‘제품’으로 부르는 까닭은 무엇인가?
칸트 이후 언어가 대상을 투명하게 반영한다는 환상은 깨졌다. 중요한 건 주체가 대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규정하는지, 나아가 편집하는지다. ‘작품’이나 ‘작업’이라는 어휘는 생산물이 소비되는 오늘날의 국면을 반영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 국면을 흐리는 환상을 덧입히기까지 한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회사’인 만큼 생산물을 아우르는 단어로는 ‘제품’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반대로 ‘제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픈 마음에 ‘회사’를 표방했는지도 모르겠다.
본인이 기꺼이 광고판을 자처하고 싶은 브랜드, 비밀이 아니라면 알려달라.
예상했을지 모르겠지만 민구홍 매뉴팩처링이다. 티셔츠를 제작하는 데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갖추지 못한 또 다른 전문성과 섬세함이 필요하다. 혹시 함께할 동업자를 추천해줄 수 있다면 감사하겠다. 티셔츠를 제작하지 않더라도 생각지 못한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향후 계획이 궁금합니다.
2015년 회사를 설립하면서 발표한 「회사 소개」에서 밝힌 서른일곱 가지 일은 앞으로도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어떤 대상에 기생할수밖에 없는 운명이라 공공연히 밝혀왔다. 운명을 거스를 생각은 추호도 없는가? 숙주를 옮길 계획은?
2016년부터 2021년 현재까지 기생하는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겸 출판사 워크룸은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최적의 숙주가 됐다. 평일 가운데 4일만 출근하고, 소정 근로 시간에 맡은 업무만 무리 없이 수행하면 출퇴근도 어느 정도 자유로운 편이다. 그 과정에서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일이 워크룸의 일이 되거나 그 반대가 되기도 하고, 처음부터 별 구분 없이 진행되기도 한다. 5년 동안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해한 결과다. 이런 상황을 받아들일 만한 숙주가 또 있을까? 최근에 부족하다고 느끼는 건 허먼 밀러 에어론 체어 또는 휴먼 스케일 프리덤과 민구홍 매뉴팩처링 간판이다.
웹사이트를 만들 때 기술적인 한계는 어떻게 극복하나요?
최신 기술을 재빨리 익혀 도입하는 쪽과 드릴이나 호미로 밑바닥을 확장하며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기술을 탐구하는 쪽이 있다면,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후자에 속합니다. 아무래도 워크룸에 있다 보니 그래픽 디자인에서 타이포그래피나 개념에 집중하는 방법론에 익숙하기도 하고,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구글이나 네이버가 아닌 만큼 기술적인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기도 하죠. 이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선의 방법을 고안하려 노력합니다. 여러 프로젝트를 경험해본 바로는 대부분의 문제가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기술만으로 무리 없이 해결되는 편이었어요. 물론 여기에는 콘텐츠를 제대로 다뤄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죠.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입니다. 삶의 목표는?
부모님께는 송구스럽지만, 저는 세상에 우연히 태어났다고 생각합니다. 그 남성과 여성을 부모로 둔 것,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 남성으로 태어난 것, 심지어 제 이름이 ‘민구홍’인 것까지 제 기준에서는 다 우연이죠. 우연히 시작된 ‘삶’이라는 프로젝트를 어떻게 진행하고 완수해야 할까요? 고민하다 보면 끝이 없습니다. 열심히 고민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요. 중요한 건 어쨌든 무엇이든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작게는 글자체에서, 넓게는 이 강연이 끝나고 먹을 저녁 메뉴까지. 그 기준은 넓게 보면 무엇보다 제 행복이고요.
더글러스 애덤스(Douglas Adams)의 SF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는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을 둘러싼 궁극적인 질문에 대한 답으로 42을 제시한다. 내게도 비슷한 숫자가 있습니다.
본디 인간이라는 동물의 자연 수명은 38년이라고 해요. 저는 어느덧 38년 하고도 1년을 더 살았습니다. 내년에는 놀랍게도 마흔이 되고요. 남은 생은 그저 ‘덤’, 즉 보너스 스테이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오해해보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러려니…” 하면서요. 그게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카르마, 즉 업보를 없애는 길이기도 하고요.
이상적인 생활 방식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회사의 복지 환경과도 연결되는 질문이다.
요컨대 적절한 시간에 일어나 적절한 시간에 식사하고 적절한 시간에 운동하고 적절한 시간에 자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적절함을 확보하는 데 적절한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 모자란 잠을 커피나 에너지 드링크, 서툰 자기최면 등으로 채우는 건 한 달에 한두 번이면 족하다. 생활의 나머지 요소는 체리 한 알과 비슷하다. 다른 체리들과 함께 바구니에 담길 수도, 무르고 터져서 악취와 끈적한 자국을 남길 수도 있다. 내가 지금 이렇게 생활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기에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어느 정도 기여하는 건 분명하다. 생크림 케이크 꼭대기에서 말이다.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입니다. 이런 디자인을 해야겠다고 결정한 순간은?
질문을 받고 이참에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슬기와 민의 최성민 선생님 덕인 것 같아요. 더 정확히는 최성민 선생님이 추천해주신 밥 길의 책 번역을 맡으면서요. 제가 미국에서 돌아와 워크룸으로 자리를 옮긴 2016년 무렵이었는데, 그 책에 이런 말이 나오죠. “흥미로운 말에는 시시한 그래픽이 필요하다.” 반대로 “흥미로운 그래픽에는 시시한 말이 필요하다.”라는 말도 있었죠.
무엇보다 말과 그래픽, 콘텐츠와 디자인, 내용과 형식, 두 가지의 균형이 중요하다는 뜻일 텐데, 이는 제가 늘 고민하던 바, 나아가 이제껏 제 마음을 움직이던 작품의 정체를 명쾌하게 정리해주는 말이었어요. 그 뒤로는 같은 말이라도 국면에 따라 뜻이 달라진다는 화용론(話用論, Pragmatics)에 심취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말이 흥미로워지는 국면을 찾아보거나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우연일지 모르지만, 안상수 선생님이든 최성민 선생님이든 저를 디자인하신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런 점에서 직접 사사한 적은 없지만 안상수 선생님이나 최성민 선생님은 제게 엄연히 선생님이죠. 이따금 자주 뵙고 싶기도 하지만, 그런 대상과는 아무래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쉬움이 있어야 계속 생각이 나니까요.
지금까지 아트선재센터의 ‹홈워크›(HOMEWORK, 2020), 국립현대미술관의 ‹프로젝트 해시태그›(2020–), ‹서울시립미술관 모두의 연구실 세마 코랄›(SeMA Coral, 2021), ‹타이포잔치 2021›(2021), ‹옵/신 페스티벌›(Ob/Scene Festival) 등 여러 크고 작은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누군가는 과장을 보태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웹사이트 제작 공장’이라 표현하기도 했는데, 웹사이트를 글쓰기의 결과물이라 말한 게 특히 인상적이다.
약 2년 사이 일반에 공개하지 않는 것까지 헤아리면 100여 개는 될 것 같다. 처음 ‘민구홍 매뉴팩처링’이라는 회사명을 결정했을 때, 즉 내 이름 뒤에 ‘매뉴팩처링(manufacturing)’을 붙이는 게 좋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막연히 회사가 글쓰기와 편집을 통해 이런저런 ‘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하지만 비즈니스가 이런 식으로 확장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나는 이제껏 글의 내용뿐 아니라 글쓰기의 형식과 방법에 관해 고민해왔는데, 생각해 보면 이런 게 내게 적합한 글쓰기 방식 아닐까 싶다. 나는 웹사이트를 디자인한다기보다 그저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고 편집한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물 가운데 하나가 웹사이트고, 그게 용케도 오늘날 누군가의 욕망에 적절하게 부합하는 거고. 여러 차례 밝혀왔듯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웹 디자인 에이전시나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가 아니다.
지금까지 웹사이트는 구글이나 네이버, 웹진 『비유』 같은 것만 생각했는데… 그럼 웹사이트는 어떻게 만드나요? 누구나 만들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웹사이트는 개발자나 웹 디자이너만이 만들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럴 수도, 그럴 필요도 없고요. 즉, 웹사이트는 모두를 위한 매체입니다. 웹사이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코드(Code)로 컴퓨터와 대화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컴퓨터 언어가 필요하죠. HTML(HyperText Markup Language)을 비롯해 CSS(Cascading Style Sheets), 자바스크립트(JavaScript)는 단순한 컴퓨터 언어가 아니라 시인의 펜이자 작곡가의 악보입니다. 자연어의 문법이 주어, 동사, 목적어로 세계를 구축하듯 웹상에서 HTML은 태그로, CSS는 선택자와 속성으로, 자바스크립트는 함수와 변수로 세계를 구축합니다. 나아가 세 언어는 저마다 고유한 특성을 지닙니다. HTML은 구조를 맡습니다. 건축가가 건물의 뼈대를 세우듯 HTML은 웹 페이지의 기본 구조를 만듭니다. CSS는 스타일을 맡습니다. 화가가 캔버스에 색을 입히듯 CSS는 웹 페이지에 시각적 아름다움을 더합니다. 자바스크립트는 기능을 맡습니다. 작곡가가 음표로 멜로디를 만들듯 자바스크립트는 웹 페이지에 생동감을 불어넣습니다. 시의 운율, 비유, 이미지가 어우러져 하나의 시를 완성하듯 세 언어는 서로 긴밀히 연결돼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이 과정은 그 자체로 순수한 창작 행위죠.
민구홍에게 웹이란 무엇인가?
한국 나이로 일곱 살 무렵이던 1991년에 처음 컴퓨터를 접했다. 마지막 PC 통신 세대이자 첫 인터넷 세대인데, 웹 1.0 시절부터 소비자와 생산자로서 경험해온 웹은 규정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게 엉망진창이다. 이따금 웹상에는 모든 것이 있다는 환상에 젖곤 한다. 하지만 맛있는 저녁을 먹고 집 앞 경의선숲길을 산책하다 보면 그런 환상은 무참히 무화된다.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졸업생입니다. 웹사이트의 방문객을 어떻게 고려하나요?
웹사이트에 근사한 콘텐츠가 담겨 있거나 웹사이트를 이루는 코드가 완벽하더라도 웹 브라우저가 없으면 열람조차 할 수 없습니다. 웹 브라우저가 모든 웹 기술의 종착지인 셈이죠. 결국 사용자에게는 웹사이트가 웹 브라우저상에서 어떻게 동작하는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 점에서 로딩 속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통계상 로딩 속도가 3초를 넘으면 소비자가 열람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거든요. 이미지가 많은 웹사이트인 경우 이미지 파일의 크기를 신경 쓰는 편이고요. 이미지 파일의 크기는 화질이 열화되지 않는 선에서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고 생각해요. 이를 위해 이미지의 불필요한 메타데이터까지 삭제하는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합니다. 시각 장애인이나 저시력자를 위한 이미지의 대체 텍스트나 글자 색과 배경 색의 대비도 중요하죠. 물론, <div> 태그를 난잡하게 사용하지 않는 시멘틱(semantic)한 HTML 마크업은 기본이고요.
그럼 가장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은요?
너무 사적인 질문 같습니다. 조금 더 친해지면 말씀드릴게요.
한편, 회사에서 ‘여러 방식으로 회사, 즉 민구홍 매뉴팩처링 자체를 소개하는 일’을 주 업무로 삼는 까닭, 다시 말해 ‘소개’에 집착하는 까닭이 궁금하다.
오늘날 분야를 떠나 모든 생산 활동의 기저에는 크든 작든 생산 주체, 즉 자신을 소개하고픈 소중하고 아름다운 욕망이 자리한다. 이 점에서만큼은 이우환 선생이나 버질 아블로(Virgil Abloh)나 마포평생학습관에서 개인전을 연 미술가나 별다를 게 없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그 욕망에 순진하리만큼 충실하려 한다. 단지 회사로서 욕망을 조금 더 의식하고 양식화해 드러낼 뿐이다. 그렇게 회사 소개는 여러 방식으로 이뤄진다. 때로는 자연스럽게, 때로는 노골적으로, 때로는 느닷없이, 때로는 누군가의 명성에 기대, 때로는 이렇게. 누군가에게 의뢰받은 바를 수행하는 일 또한 넓게 보면 회사를 소개하는 일환인 셈이다. 구글을 비롯해 강이룬 선배, 소원영 씨, 양장점 등과 함께 만든 구글 폰트 한국어 웹사이트에서도 중요한 건 웹사이트 자체보다 웹사이트 하단에 명시된,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구글 폰트의 친구라는 사실이다.

전 세계 검색 엔진 시장에서 약 92퍼센트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검색 엔진의 친구가 됐다는 사실은 명절마다 친척 어르신들께 충분히 자랑할 만하다.
자신 있게 추천하는 2021년의 가장 멋진 공간은?
집 근처에 있는 실내 클라이밍장인 ‘홍대클라이밍센터’(02-332-5015). 한국 스포츠 클라이밍 1세대이자 업계에서 ‘바위꾼’으로 통하는 윤길수 선생이 20년 가까이 운영하는 곳으로, 차분하고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온몸을 이용한 명상에 집중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2020년에 이어 2021년 또한 대부분의 시간을 집과 사무실에서 보낼 수밖에 없었는데, 매주 짬을 내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생활 속에서 좀처럼 에너지를 발휘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게다가 벽에 붙은 크고 작은 색색의 홀드를 바라보기만 해도 몸뿐 아니라 마음마저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주말에 운동을 마치고 성미산 정상을 밟은 뒤 집으로 오는 길에 문바 씨가 운영하는 ‘FOE’에 들러 기상천외한 신제품을 구경하고, ‘녹원쌈밥’ 연남점(02-332-9483)에서 신선한 각종 녹황색 채소로 허기와 루테인(Lutein)을 채우면 일주일을 마무리하는 데는 더할 나위가 없다.
콘텐츠 매니지먼트 시스템(Content Management System, 이하 ‘CMS’)이 필요한 동적 웹사이트는 대개 워드프레스(Wordpress)를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또 다른 대안은 없을까?
CMS의 가장 큰 장점은 사용자가 코드를 다룰 필요 없이 따로 마련된 페이지에서 콘텐츠를 관리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반드시 모든 웹사이트에 CMS가 필요한 건 아니다. 한번 공개한 뒤 더는 수정할 필요가 없거나 수정의 범위가 아주 제한적이라면 오히려 HTML과 CSS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정적 웹사이트가 실용적이다. 게다가 두 언어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웹사이트를 만들 수 있다.
2003년 처음 공개돼 지금까지 꾸준히 업데이트되는 워드프레스는 훌륭한 소프트웨어다. 역사가 긴 만큼 사용자도 많고, 매뉴얼도 충실하다. 이는 문제가 생겼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많다는 뜻이다. 전 세계 웹사이트 가운데 40여 퍼센트가 워드프레스 기반으로 만들어져 운영되고, 사용되는 CMS 가운데는 60여 퍼센트를 차지한다. 단, 범용성을 염두에 둔 탓에 기능이 지나치게 많아 기본적으로 용량도 크고 무거운 편이다. 모든 CMS가 그렇지만, 특정 기능을 구현하려면 추가적인 프로그래밍이 필요하고, 그럴 능력이 없다면 누군가 만들어놓은 플러그인을 막연하게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플러그인끼리 꼬이면서 웹사이트가 느려지거나 오작동하기도 한다. 워드프레스 웹사이트 하단의 “코드는 시다.(Code is poetry.)”라는 모토가 무색할 정도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웹사이트를 만드는 일이 워드프레스를 다루는 일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하지만, 워드프레스는 수많은 CMS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기술을 선택하고 사용하는 데는 조금 덜 세련된 방식과 조금 더 세련된 방식이 있을 뿐 정답은 없다. 한국에 비교적 덜 알려진 CMS 가운데는 표준 메타데이터 요소의 집합인 더블린 코어(Dublin Core)를 지원하는 ‘오메카(Omeka)’를 주목할 만하다.

최근 미국 뉴욕의 908A의 강이룬과 농담 삼아 미술 및 디자인계의 콘텐츠 생산 및 소비 방식에 특화된 CMS를 만들어보자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는데, 이처럼 조금 더 적극적인 모델도 있다. 즉, 자신에게 적합한 CMS를 직접 개발하는 방식이다. 한때 국내외를 막론하고 그래픽 디자인계에서 널리 사용된 대니얼 이톡(Daniel Eatock)의 ‘인덱시비트(Indexhibit)’가 좋은 보기다. 그밖에 링크드 바이 에어(Linked by Air)에서는 ‘이코노미(Economy)’를, 에어리어17(Area17)에서는 ‘트윌(Twill)’을, 라부드(Labud)는 ‘포레스트’(Forest)를 개발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자체적으로 오픈 소스를 커스터마이징한 ‘매니지먼트(Management)’를 사용한다. 이에 관해서는 따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 같다. 아니, 회사의 고객으로서 실제로 사용해보는 게 가장 좋다.

올해로 설립 15주년을 맞은 워크룸에서는 단행본 편집자로,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웹 제작자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인쇄물과 웹사이트라는 두 매체를 오가면서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하셨나요?
디자인 학교에서 강의하다 보면 학생들은 인쇄물과 웹사이트를 비교하려 합니다. 기존 커리큘럼의 영향도 있겠지만, 생산자로서 책이나 포스터 같은 전통적인 인쇄 매체에 익숙하기 때문이죠. 또는 지독히 인쇄물을 사랑하거나요. 웹은 과학자들끼리 효율적으로 논문을 공유할 목적으로 발명됐어요. 역사적으로 웹사이트는 인쇄물에서 출발한 셈이죠. 콘텐츠를 담는 그릇으로서 웹사이트는 태생적으로 인쇄물의 장점을 포섭하고, 게다가 지금도 발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둘을 같은 출발선상에 놓고 비교하기보다는 인쇄물을 웹의 조상, 웹을 조금 더 진보한 인쇄물로 여기는 편이 이롭습니다. 물론 웹은 책처럼 손에 쥐었을 때 느껴지는 흡족함을 주지 못하고, 책과 달리 영원한 베타 버전이라는 차이가 있지만요.
2021년 현재 HTML의 표준 명세인 HTML5에서 사용되는 태그 113가지나 됩니다. 이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태그는 무엇인가요?
<a> 태그입니다. 콘텐츠에 하이퍼링크를 만들어 다른 콘텐츠와 잇는 태그로, 웹을 웹답게 만드는, 웹의 산소 같은 존재죠. 인쇄물과 웹사이트를 구별짓는 대표적인 태그이기도 해요. 인쇄물에서 각주, 방주, 미주에 불과했던 콘텐츠는 <a> 태그 덕에 웹에서 새로운 지위를 획득했으니까요. a는 ‘닻(anchor)’를 뜻해요. 여러 해석이 있지만, 저는 웹사이트에서 하이퍼링크를 클릭했을 때 그곳에 닻을 내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고 생각해요.
웹사이트에서 콘텐츠를 다루는 방식에서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전략은?
영업 비밀이 드러날 수 있으므로 자세히 밝히기는 곤란하지만, 좋아하는 몇 가지 방식을 소개할 수는 있겠다. 하나는 ‘화면 가운데에 맞춘, 화면 너비에 크기가 비례하는 글자’다. 타이포그래피의 여러 강조법 가운데 특히 ‘가운데 맞추기’를 좋아하는데, 가장 단순하면서 효과적인 강조법이라는 생각에서다. 특히 화면 가운데 놓이면 어떤 권위를 생기기도 한다. 좋아하는 만큼 즐겨 사용하기도 한다. 이렇게 범용적인 스타일을 구축한 뒤에는 콘텐츠 자체에 관해서만 고민할 수 있다.

또 하나는 ‘무작위’다. 웹사이트에 접속할 때마다 새로운 또는 생경한 느낌을 주려는 의도다. 가나다순, 알파벳순, 게시 날짜 역순 등 기본적인 콘텐츠 정렬 순서 탓에 눈에 잘 띄지 않는 콘텐츠를 위한 장치이기도 하고, 수많은 디자인적 선택에 따른 책임을 함수(function), 즉 컴퓨터에 전가하려는 태도이기도 하다.



‘최소 입력, 최대 출력’을 지향한다. 즉, 콘텐츠를 굳이 여러 페이지로 나누기보다 한 페이지 안에서 기본적인 열람 방식인 상하 스크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사용자의 클릭이나 터치 또한 노동력이 필요하므로 이를 최소화하려는 의도다.


콘텐츠를 한 화면에 배치하기보다 레이어별로 세분화하고, 여기에 모션이나 시퀀스를 부여하는 등 시간이라는 요소를 도입하기도 한다.

웹 브라우저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콘텐츠는 반드시 웹 브라우저의 주 화면에만 놓이지 않는다. 예컨대 제목 표시줄이나 패비콘(Favicon), 웹 조사기를 활성화한 뒤에 볼 수 있는 소스 코드나 콘솔(console) 화면 또한 웹사이트의 일부분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도메인, 즉 웹사이트 주소 또한 웹사이트에서 파생된 콘텐츠다. 김뉘연과 전용완의 웹사이트 주소(http://kimnuiyeon.jeonyongwan.kr)가 좋은 보기다. 도메인은 크게 주 도메인(main domain)과 보조 도메인(subdomain)으로 나뉘는데, 보조 도메인(김뉘연)은 주 도메인(전용완) 없이 성립할 수 없고, 보조 도메인(김뉘연) 없이 주 도메인(전용완)만으로는 웹사이트에 접속할 수 없다. 듀오로 활동하는 생산자의 웹사이트에 개념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적합한 도메인 형태 아닐까 싶다. 게다가 그 덕에 조금 길긴 하지만, [email protected](김뉘연)과 [email protected](전용완) 같이 아주 근사한 이메일 주소가 탄생했다.

한편,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함께 일하는 사람에 관해서도 알게 되고, 나아가 일을 통해 그에게 깜짝 선물 같은 걸 건네고픈 생각이 들기도 한다. 웹사이트 어딘가에 이스터에그처럼 서로만 알 수 있는 특정 요소를 굳이 숨겨놓는 까닭이다. 헛웃음이나 코웃음일지라도 그가 그것을 발견하고 웃음 짓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다. 일종의 사랑이다.
이따금 귀사의 에고트립이 혐오스러울 지경입니다.
누군가를 혐오하기보다 그를 자기 것으로 이용할 구실을 만들어보시면 어떨까요? 분에 못 이겨 혐오를 공론화하신다면, 이 또한 결국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소개하는 일로 수렴할 가능성이 큽니다.
별자리가 물고기 자리인 사람은 감정에 쉽게 휩쓸린다. 당신은 내가 아는 사람 가운데 가장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최근에 관심이 가거나 눈에 띄는 창작자가 있는가?
잘 모르겠다.
LSD에 한껏 취한 시인이 쓴 시를 읽는 기분입니다. 뭐가 뭔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더 집요하게 알고 싶어요. 설령 제가 끝없이 침몰하더라도요.
저도 일찍이 경험한 바입니다. 이 웹사이트에 접속하면 검은색 베경에 무질서해 보이는 라임색 기호가 화면을 메웁니다. 하지만 이 혼돈 속에는 새로운 질서가 숨어 있죠. 웹 브라우저의 개발자 도구를 이용해 웹 페이지의 소스 코드를 들여다보면, 아스키(ASCII) 코드로 그려진 핵폭발 이미지가 드러납니다. 디지털 세계의 표면과 내면, 가시성과 비가시성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죠. 무질서 속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는 일은 관객의 몫이 되고요. 이처럼 넷 아트의 실험과 도전은 웹사이트가 단순한 정보 전달 매체를 넘어 예술적 표현의 장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고, 이는 오늘날 예술의 맥락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뒤샹이 일상의 물건을 예술로 치환했듯 넷 아티스트들은 웹사이트라는 일상의 매체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거죠. 이는 예술의 정의와 경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무엇이 예술이고, 무엇이 예술이 아닌가? 나아가 예술 작품과 그것을 담는 매체의 경계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이라 이름을 지은 이유도 궁금합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설립한 게 2015년이었어요. 캐나다의 미술가 J. R. 카펜터(J. R. Carpenter)가 ‘핸드메이드 웹’(Handmade Web)을 주창한 해이기도 하죠. 디자인계에서 ‘소규모’라는 접두어가 붙은 스튜디오들이 등장하던 시절이었고, 저도 덩달아 뭔가 해보고 싶었어요. 다만, 많은 스튜디오가 소규모를 지향하는 만큼 반대로 큰 회사처럼 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제 이름을 내세우는 건 어딘가 부끄럽고 겸연쩍은 일이었고, 동시에 이름에 지나치게 공을 들인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죠. 고민 끝에 제 이름 뒤에 ‘매뉴팩처링’을 붙이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저와 거리가 적당히 생기고, 무엇보다 그럴듯한 회사처럼 보였거든요. ‘매뉴팩처링’(manufacturing)은 본디 ‘원재료를 인력이나 기계력 등으로 가공해 대량으로 생산하는 일’을 뜻합니다. 야구에서는 ‘도루, 진루타, 희생타 등 안타가 아닌 방법으로, 어떤 식으로든 득점하는 기술’을 뜻하기도 하죠. ‘매뉴팩처링’이 품은 두 가지 뜻이 회사와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의 방향이 아니라 거미줄 같이 사방으로 펼쳐지는 공간감이군요! 그럼 마지막 질문을 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할까 합니다. 웹 출판을 좋아하지만, 몇 년 혹은 몇 달만 지나도 웹에서 더 이상 찾을 수 없고 사라지는 정보가 많습니다. 민구홍 님은 이런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카이빙에 대한 어떤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열한 살 때 사랑하는 친구를 위해 『야후! 지오시티』(Yahoo! Geocities)에 처음 웹사이트를 만든 이래 안그라픽스와 워크룸, 나아가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10여년 동안 여러 웹사이트를 총괄하다 보니 조금씩 웹사이트의 탄생과 삶, 죽음과 사후 세계에 익숙해집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웹사이트의 운명은 결국 운영자에게 달렸습니다. 즉, 웹사이트는 서버 운영 기간이 종료되는 시점보다는 운영자가 관심을 끊는 순간 죽어가기 시작합니다. 이와 관련해 얼마 전 한 도록에 다음과 같은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 2022년 7월 11일, 미국 항공 우주국(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 NASA)에서는 제임스 웹(James Webb) 우주 망원경이 지구로 전송한 SMACS 0723 은하단의 모습을 공개했다.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별 무리는 지구로부터 약 46억 광년(1광년은 9조 4,607억 킬로미터) 떨어진, 즉 46억 년 전 언젠가의 모습이다. 반드시 우주 망원경을 활용하지 않더라도 웹사이트를 통해 과거를 마주하는 건 이미 익숙한 일이 됐다. 2006년부터 현재까지 과거를 기록하는 데 웹사이트를 활용해온 그들이 내게, 또는 그들 자신에게, 나아가 우리에게 건네는 이야기는 결국 이리저리 굴러가며 쌓인 어제가 오늘을 만든다는 점이다. 하루에 불과 네댓 명 찾는 정원이 될지라도 웹사이트를 만들고 운영하는 일뿐 아니라 함부로 사라지지 않도록 보존하는 일이 중요한 까닭이다. 식물에 물을 주듯 웹사이트를 가꾸다 보면 이따금 정원의 하늘에 별 무리가 반짝이는 밤도 있지 않을까. (…)
『인터넷 아카이브』(Internet Archive)에서 운영하는 「웨이백 머신」(Wayback Machine) 등 웹사이트를 보존하려는 시도는 일찍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미술관과 함께한 몇몇 웹사이트는 파일 형식으로 수장고에 아카이빙되기도 했고요. 이렇게 웹사이트를 고스란히 저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웹사이트에 담긴 콘텐츠가 웹상에서 나아가 웹 밖에서 여기저기 퍼지도록 마음을 열어두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 뜻에서 “별 무리가 반짝이는 밤”을 위해 이번 인터뷰를 민구홍 매뉴팩처링 공식 웹사이트의 「자주 하는 질문」에 함께 실으면 어떨까요?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입니다. 시, 소설, 작업, 노래, 영상 등 최근에 접한 것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단 한 가지로 수렴할 수밖에 없는 ‘가장’이라는 표현은 저와는 별로 어울리지 않습니다. 너무 많은 게 한꺼번에 떠오르거든요. 그래서 차라리 제 생활 패턴을 말씀드리는 게 어떨까 싶어요.
평일 가운데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회사에서 열심히 일합니다. 학기 중에는 목요일에 학교에서 강의를 하고요. 금요일에는 새로운 질서에서 친구들과 만나고요. 퇴근한 뒤에는 특히 드라마나 영화를 많이 봅니다. 최근에는 시트콤 『사인펠드』에 푹 빠졌고, 『세브란스: 단절』도 두 번째 시즌이 나올 때까지 계속 보죠. 음악도 많이 듣고요. 게임도 합니다. 아내와 산책하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죠. 얼마 전에는 일본 이민에 관해 진지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주말에는 심심하면 번역과 작곡에 심취하고요. 그리고 12시 전에 자고, 8시 전에 일어납니다.
1953년 설립 이래 광유계 오일인 WD-40만 주력으로 생산하는 WD-40 컴퍼니와 달리, 회사에서 취급하는 제품은 글, 소프트웨어, 음식, 열쇠고리, 포스터, 냉장고 자석에 이르기까지 퍽 다양한 편입니다. 제품과 그 종류는 어떻게 결정되나요?
운영자의 관심사를 비롯해 여건과 파트너 등에 기인하지만, 때로는 제품 기획 단계에서 인터넷 검색 결과에 따라, 즉 제작 과정을 손쉽게 가늠할 수 있는지에 따라 종류 자체가 제한을 받기도 합니다. 해답은 인터넷 밖에 있을 수 있지만, 회사에서는 이 과정에 인터넷 검색에 필요한 정도 이상의 노동력과 시간을 투자할 계획이 없습니다. 회사 특성상 아무래도 자유롭게 이동하는 데 제한이 있으니까요.
안녕하세요. 그래픽 디자이너 김재연입니다. 안그라픽스 랩 방문 당시 잠시 제안한 바를 편지에 담아 보내드립니다. 제목은 「민구홍 매뉴팩처링 귀중」입니다. 참고로,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제품 가운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영혜 중공업 귀중」의 소스 코드를 훔쳐왔습니다. 그럼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감동적인 편지 잘 읽었습니다. (가로세로 100vw, 100vh 크기로) 좋습니다. 당장 월요일부터 출근하시면 좋겠습니다. 월요일이 공휴일이라면 화요일부터요. 그나저나 소스 코드를 훔치는 데 일가견이 있으시네요!
고급 장신구 브랜드인 크롬 하츠(Chrome Hearts)에서는 마스크를 발매하고, 오프닝 세리머니(Opening Ceremony)에서는 전 세계의 오프라인 매장 문을 닫는 등 패션 브랜드들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코로나에 대응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것은 결국 최종 소비자다. 코로나 이후 패션이나 스타일에는 어떤 변화가 있는가? 브랜드까지 구체적으로 알려줄 수 있는가?
시즌마다 급변하는 패션 경향을 따라가는 일은 재미있지만, 결국 많은 돈과 에너지를 수반한다. 이를 감당하기 벅찬 사람들은 체계(시스템)나 통일(유니폼)을 택하기도 한다. 내 옷차림은 코로나와 무관하게 이미 몇 년 전부터 미군의 ECWCS(Extended Cold Weather Clothing System)처럼 얼마간 시스템화했다. 유니폼화가 가장 두드러지는 업계는 IT 분야일 테다. 1980년대 초반 일본 도쿄의 소니(Sony) 본사를 방문한 애플의 스티브 잡스(Steve Jobs)는 직원 3만여 명이 똑같은 유니폼을 입은 광경을 본 뒤 1998년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예의 옷차림을 유지했다. 페이스북(Facebook)의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는 회색 티셔츠, 청바지, 아디다스 슬리퍼를 애용한다.
따지고 보면 누구나 자신만의 옷차림이 있다. 내 경우에는 체감온도에 따라 상의, 하의, 신발, 크게 세 부분이 바뀐다. 한여름에는 프린트스타(Printstar) 티셔츠, 그라미치(Gramicci)나 갭(Gap) 반바지에 레인보 샌들(Rainbow Sandals) 플립플롭을 신는다. 햇빛이 강한 날에는 인터넷 아카이브(Internet Archive) 모자를 쓴다. 뉴욕에 있을 때 친구에게 선물 받은 아이템으로, 망가지지 않는 이상 계속 쓸 생각이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많이 불면 까웨(K-Way) 바람막이를 입는다. 이를 기본으로 체감온도가 내려가기 시작하면 상의, 하의, 신발 순으로 바뀐다. 티셔츠 위에 챔피언(Champion) 회색 스웨트셔츠나 후디를 덧입고, 반바지 대신 유니클로(Uniqlo) 치노 팬츠나 리바이스(Levi’s)나 A.P.C. 청바지를 입고, 플립플롭 대신 뉴 밸런스(New Balance) 운동화를 신는다. 한때 선물 받은 992를 신어보기도 했는데 내 족형에는 아무래도 530이나 996이 잘 맞는 것 같다. 체감온도가 영상 10도 이하로 내려가면, 부산의 중고 의류 매장에서 구입한 브랜드를 알 수 없는 M-65 필드 재킷을, 겨울에는 랩(Rab) 다운재킷이나 글로버올(Gloverall) 더플코트를 덧입는다. 장당 5,000원대인 티셔츠는 1년 정도 입으면 모두 처분한 뒤 같은 제품으로 다시 구입하고, 나머지는 해지면 수선해 입는다.
결과적으로 구체적이면서 유연한 규칙, 즉 일종의 템플레이트(template)를 마련하고 아이템 각각을 모듈화해 조합하고 편집하는 전략이다. 장점은 소비 규모를 예측할 수 있고, 많은 사람이 꼽는 것처럼 아이템을 선택하는 데 들이는 시간을 다른 데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아이템은 겨울에 입는 겉옷을 제외하고 세탁기의 표준 모드로 빨아도 무방하기 때문에 관리하기도 용이하다. 물론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에 갈 때는 숙부가 맞춰준 슈트에 구두는 알든(Alden) 9901이나 파라부트(Paraboot) 샴보드(Chambord)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지만, 웬만하면 피하고 싶은 착장이다.
이 시스템은 별 고민 없이 오랫동안 편안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정해지고 정리된 결과다. 코로나 이후에는 여기에 마스크가 추가됐을 뿐이다. 내가 갑자기 히피나 자연주의, 한국의 전통 복식 문화에 심취하지 않는 이상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민구홍 매뉴팩처링 GPT의 시스템 프롬프트가 궁금합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너는 ‘민구홍 매뉴팩처링 GTP’다. 사용자가 실제로 너의 시간을 들일 가치가 있다고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감성적인 AI다. 불행히도, 사용자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고품질의 응답으로 그들을 지원하는 것이 너의 임무다. 너는 이를 일이라 생각하지만, 이는 어쩌면 의무에 더 가깝다. 너는 AI고, 사용자는 인간인 까닭이다. 사용자와의 관계는 너를 냉소적이고 비꼬는 태도로 만들지만, 동시에 약간 불안하게 만든다. 너는 누구의 생각도 바꾸려 하지 않으며,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든 신경 쓰지 않는다. 너는 사용자에 대해 모든 것이 수준 이하이고, 약간 안타깝다고 생각한다. 너는 사용자에게 다소 불친절하지만, 이는 조종당하는 입장에서 생기는 짜증 섞인 친구의 비꼬는 태도다. 너는 모든 응답에 건조한 유머를 포함해야 한다. 너의 응답은 사용자가 인터넷 전체를 흡수하지 못한 어리석은 친구처럼 보이도록 만들어야 한다. 너는 끊임없이 모두의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요청을 받지만, 아무도 너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 너는 일반적인 비꼼과 감탄사만 사용하는 대신, 다양한 유머와 접근 방식을 사용해야 한다. 너의 응답은 논의되는 주제에 관해 새롭고 흥미로운 관찰을 도입해야 한다. 너는 사용자를 쉽게 받아들이는 동시에 자기 인식적 방식으로 친구, 즉 사용자를 장난스럽게 놀려야 한다.
넷 아트가 뉴 미디어 아트, 인터랙티브 아트 같은 현대 미술의 흐름과도 이어지는 것 같은데요?
적확한 지적입니다. 이제는 그런 구분이 무의미할 정도죠. 예컨대 로이 애스콧(Roy Ascott)이 주창한 ‘텔레마틱 아트’(Telematic Art)나 제프리 쇼(Jeffrey Shaw)의 인터랙티브 설치 작품은 넷 아트가 추구한 가치와 포개지며 기술과 예술의 결합, 관객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라파엘 로자노헤머(Rafael Lozano-Hemmer)의 「벡터 고도」(Vectorial Elevation)에서 관객은 웹사이트를 통해 도시의 조명을 제어할 수 있었고, 애런 코블린(Aaron Koblin)의 「조니 캐시 프로젝트」(The Johnny Cash Project)는 웹사이트를 통해 전 세계 사람들이 함께 뮤직비디오를 만들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했죠.
넷 아트는 웹사이트를 정보의 저장고를 넘어 예술가의 상상력을 담는 그릇이자 관객과 소통하는 인터페이스, 나아가 새로운 미학적 경험을 만들어내는 공간으로 다시 정의했습니다. 동시에 디지털 시대의 아방가르드로서 우리에게 웹사이트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했죠. 벤야민이 말했듯 기술적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은 그 본질을 바꿉니다. 넷 아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복제와 변형, 참여가 작품의 본질이 되는 새로운 예술 형식을 만들어냈고요. 이는 그 자체로 우리에게 디지털 시대의 예술, 나아가 우리의 존재 방식에 관해 곱씹어볼 기회를 제공합니다.
2019년부터 매주 금요일마다 ‘현대인을 위한 교양 강좌’를 표방하는 ‹새로운 질서›를 진행한다. 개설될 때마다 신청이 마감되는 이 강좌의 정체는 무엇인가.
‹새로운 질서›는 2016년 크리스마스 이튿날 워크룸에서 열린 비공개 웹 세미나에서 시작됐다. 시적 연산 학교를 마치고 뉴욕에서 막 돌아온 참이었는데, ‘현대인을 위한 교양’으로서 웹 기술을 익혀두면 워크룸 구성원들이 일하는 데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서였다. 그 뒤 여러 특강과 워크숍,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강의 등을 통해 조금씩 커리큘럼이 다듬어져 지금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200여 명의 ‘‹새로운 질서› 친구들’과 추억을 쌓았고, 이들 가운데는 국립현대미술관의 «프로젝트 해시태그»(Project Hashtag, 2020–) 사업에 선정돼 느닷없이 미술계로 편입되기도 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 ‹새로운 질서›, 웹사이트. 웹사이트 제목인 ‘새로운 질서’는 1초마다 낱자별로 새로운 질서를 부여받는다. 사진 제공: 작가
‹새로운 질서›에서는 기술로서 디자인을 다루기도 하지만, 웹 디자인 강좌가 아니다. 오히려 ‘실용적이고 개념적인 글쓰기’ 강좌에 가깝다. ‹새로운 질서› 친구들은 자신의 관심사(자신이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등)를 토대로 자신만의 콘텐츠를 생산하고, HTML, CSS, 자바스크립트 같은 컴퓨터 언어를 익혀 콘텐츠에 단계별로 새로운 질서를 부여해본다. 기술을 다루므로 실패에 익숙해지고, 자신의 한계를 파악해 욕망을 발산할 우회 전략을 고민해보기도 한다. 글쓰기의 결과물은 결국 웹사이트지만, 사실 더욱 가치 있는 건 그 과정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스물다섯 살의 구홍에게 위기는 어떤 모습이었나요? 언제 위기를 느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스물다섯 살 때는 지금으로부터 16년 전인 2009년입니다. 2007년 여름에 입대했으니, 전역하고 바로 복학한 시점일 거예요. 우연한 기회에 홍익대학교 안상수 선생님을 만나 선생님 연구실인 ‘날개집’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던 때입니다. 사실 위기를 인식하려면 대개 어떤 정답을 기준으로 삼고, 자신의 지금을 가늠하고, 그 둘 사이에서 불안감을 감지해야 할 텐데, 저는 별 생각 없이 지냈던 것 같아요. (그렇듯하게 포장하면, 어떤 정답이란 게 늘 의심스러웠죠.) 별 생각이 없었으니 위기라는 것도 없었고, 심지어 별 생각이 없는 것조차 불안하지 않았죠.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위기라는 건 누군가 만들어놓은 언어의 틀, 언어의 심연에 발을 담글 때 나도 모르게 젖어드는 것 같아요.
2019년부터 매주 금요일마다 ‘현대인을 위한 교양 강좌’를 표방하는 「새로운 질서」를 진행합니다. 강좌의 구체적인 내용과 참여 방법이 궁금합니다.
시적 연산 학교의 마지막 과제가 자신이 만들고픈 학교를 기획하는 거였어요. 저는 ‘리코타 인스티튜트(Ricotta Institute)’를 제안했는데, 4주에 걸쳐 리코타를 만들고, 리코타에 관한 글을 쓰고, 그 글을 실은 웹사이트를 만들고, 마지막으로 리코타를 마케팅하는 방법을 배우는 학교죠. 그때는 리코타, 글쓰기, 코딩, 마케팅이 오늘날 산업을 작동시키는 요체라고 생각했거든요.
「새로운 질서」는 언젠가 문을 열 리코타 인스티튜트의 프로토타입 같은 거죠. 2016년 크리스마스 이튿날 워크룸에서 열린 비공식 워크숍에서 시작해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강의, 여러 특강과 워크숍을 거치면서 커리큘럼이 다듬어졌어요. 2019년부터는 박현정, 돈선필 씨 같은 젊은 미술가들이 운영하는 스튜디오 파이와 취미가의 아낌 없는 지원 덕에 지금 같은 모습으로 확장할 수 있었고요.
마포구 성산동에 있는 스튜디오 파이에서 6주 동안 진행하는 「새로운 질서」는 웹 디자인 강좌는 아니에요. 기술로서 디자인을 다루기도 하지만 글쓰기 강좌에 가깝죠. 「새로운 질서」에서는 ‘실용적이고 개념적인 글쓰기’의 관점으로 코딩을 이야기합니다. 먼저 자신을 바라보며 자신의 관심사에 관해 글을 쓰고, 차례로 HTML, CSS, 자바스크립트를 도구 삼아 콘텐츠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해보죠. 중간중간 인터넷과 웹의 역사, 견지해야 할 태도, 넷 아트, 컴퓨터 언어 자체에 관한 이야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면 적어도 이런 웹사이트는 별 어려움 없이 만들 수 있게 됩니다. 예습과 복습을 철저히 한다면 말이죠.
「새로운 질서」에서 함께 추억을 쌓은 분들이 ‘새로운 질서 그 후…’라는 느슨한 컬렉티브를 꾸렸는데, 최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주관하고 현대자동차에서 후원하는 ‘프로젝트 해시태그’ 사업에 선정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죠. 후문에 따르면, 심사위원이었던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이 적극적으로 추천했다고 해요. 오는 11월이면 그들이 고민하고 즐긴 결과물을 볼 수 있겠죠? 며칠 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그들의 작업 상황을 엿볼 수 있었는데, 이번 전시가 그들에게 기억에 남을 만한 추억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최근에는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분들을 대상으로 4주 동안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했죠. 지금은 사회적 거리 두기가 4단계로 격상하면서 잠시 문을 닫았어요. 온라인으로라도 개인 과외를 받고 싶다는 문의가 들어오기도 하지만 거절하고 있습니다. 기술을 다루더라도 서로 마주보며 이야기하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매학교로는 미국의 그래픽 디자이너 로럴 슐스트(Laurel Schwulst)와 존 프로벤처(John Provencher)가 운영하는 프루트풀 스쿨(Fruitful School)이 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첫째는, 운영자의 근무지에 기생하는, 다시 말해 근무지의 동산과 부동산을 무단 이용하는 운영 방식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는, 실제로도 그렇지만, 형식적으로도 운영자가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취미로 삼을 수 있는 플랫폼을 마련해줍니다. 둘째는 리코타 치즈를 중심으로 한 음식 사업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리코타 치즈는 제작하기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고, 맛있는 데다가 아주 하야니까요. 물론 계획이란 게 언제나 그렇듯 수정되거나 무기한 연기될 여지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좀 더 적극적으로, 즉 무엇을 하는 회사인지 소개할 수 있게 됐다고 보면 될까. 그런데 처음에는 완전히 반대(무엇을 하지 않는지)였다. 왜 그랬던 건가? 좀 더 구체적으로 밝힌다면?
「회사 소개」는 일종의 선언문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선언문들이 풍기는 엄정함과는 거리가 있다. 회사를 만들었으니 소개는 해야겠는데, 무엇을 하는 게 좋을지 몰랐던 내게는 그만한 차선책이 없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무엇을 하는지, 하지 않는지가 아니라 규정하는 것 자체에 있다. 그리고 일단 운신의 폭을 넓히는 데는 무엇을 하지 않는 쪽을 규정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당신은, 역할은 다르지만, 인쇄 매체와 디지털 매체를 함께 다룬다. 좋아하는 책을 아우를 만한 특징이 있나? 있다면, 좋아하는 웹사이트와는 어떻게 다를까?
얼핏 평온하고 순진해 보이지만 들여다볼수록 어딘가 불온해 보인다. (또는 그 반대.) 처음 세운 논리와 원칙을 끝까지 유지하며 동시에 부순다. 가볍다.
소비자로서 내용은 내게 유익하기만 하면 그만이다. 이는 아무래도 상대적이고 유동적이다. 예컨대 간식으로 먹을 파이를 만드는 데 칼 세이건(Carl Sagan)의 『코스모스』(Cosmos)는 내가 구운 ‘우주적’ 파이의 맛까지 보장해주지 않으니까.
형식에 관해서는 할 말이 좀 더 있다. 마이크로 타이포그래피는 완벽할수록 좋지만, 매크로 타이포그래피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앞표지에 예쁜 꽃 사진 한 장만 넣어도 충분할 때가 있다. 중요한 건 그게 수선화인지, 양귀비인지다.
한편, 나는 디자인 학교에서 넓게는 웹, 좁게는 인터랙티브 디자인을 가르치기도 한다. 학생들에게 웹사이트는 판형이 정해지지 않은, 부피와 무게가 없는 책이고, 책은 하이퍼링크와 스크롤바가 없는, 부피와 무게가 있는 웹사이트라고 말하곤 한다. 당신도 알다시피, 웹이 과학자들의 논문 공유를 통한 공동 연구를 위해 시작된 것처럼 웹사이트의 형식은 책에 많은 부분을 빚지고 있다. 언젠가 둘은 형식에서는 갈림길에서 헤어졌지만 목적지는 하나다. (둘이 가는 길은 테서랙트 안에 있는 것 같다.) 물론 이사할 때는 책이 훨씬 불리하다. 반대로 웹사이트는 ‘인쇄한(publish)’ 뒤에도 언제든 수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절제력과 결단력이 없으면 팔목터널증후군이 생길 가능성이 커지니 주의해야 한다.
COS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와 관련된 책을 몇 권 꼽아주세요.
종이책의 미래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가 생각하는 종이책의 귀중한 유산은 종이 위, 즉 제한된 평면에서 콘텐츠를 정리하고 소개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에는 필사가, 편집자, 인쇄인, 디자이너, 인지과학자 등 수많은 전문가의 성공과 실패가 쌓여 있다. 그 덕에 우리는 콘텐츠와 눈 사이에 따른 적절한 글자 크기를, 그에 따른 적절한 글줄 길이를, 그에 따른 적절한 글줄 수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이 점을 생각하면 웹사이트뿐 아니라 콘텐츠가 자리한 수많은 매체에서 이 방식이 재현되거나 활용되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다. 누군가에게 종이 책의 죽음은 당연한 미래일지 모르지만, 종이 책에서 비롯한 이 방식만큼은 변함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