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2015년 이래 진행한 길고 짧은 인터뷰를 꼼꼼히 정리한 뒤 다시 무작위로 늘어놓은 「자주 하는 질문」을 통해 회사 또는 운영자에 관한 궁금증이 모쪼록 해소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단, 질문의 시기에 따라 현재와 다른 사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편, 질문의 어조에 따라 언급한 인물에 대한 존칭을 생략하기도 했습니다. 「자주 하는 질문」을 섭렵한 뒤에도 궁금증이 도무지 해소되지 않는다면 [email protected] 앞으로 소상히 말씀해주세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인정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단, 답장은 이메일 대신 언젠가 「자주 하는 질문」에서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최정호 이전의 서체와 차별되는, 또는 발전된 최정호 한글 디자인의 특징은 무엇인가?
잘 모르겠다.
이런 웹사이트를 선물받는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매년 생일이 기다려질 것 같아요. 그렇다면 웹사이트를 만드는 데 한계는 없을까요?
웹사이트를 예술적 매체로 바라보는 관점은 흥미로운 동시에 여러 도전과 마주합니다. 이는 기술과 예술, 상업성과 창의성, 접근성과 실험성 사이의 긴장을 낳지만, 이 긴장은 웹사이트를 더욱 풍부하고 다채로운 매체로 만들어주죠.
자기 반영이라는 말을 들으니 큐레이터로서 제가 보는 민구홍 님은 확실히 작가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출판이 더 이상 종이 위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공개적으로 유통되는 정보를 발행하는 모든 행위를 출판으로 부르며, 확장된 정의에 익숙해져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인터뷰가 구글 독스에서 이뤄지며 열린 상태로서 수정 및 편집을 하는 것처럼, 웹 기반으로 출판되는 많은 정보는 종이책과 달리 쉽게 수정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긍정적인 것일까요? 부정적인 것일까요? 에디션 표기를 의무화하는 등의 공통화된 규정이 필요할까요?
‘자기 반영’은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덧붙은 해시태그로 볼 수 있습니다. 이를 추동하는 키워드는 ‘소개’(introduction)고요. 소개는 결국 어떤 대상을 널리 알려 다른 대상과 연결하는 일이고, 그 결과는 앞으로 함께할 친구(사람), 자랑할 만한 경력(포트폴리오), 크고 작은 경제적 이윤(돈) 등으로 이어집니다. 세 꼭짓점이 정삼각형으로 완성되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소개만큼 피할 수 없이 신성한 일이 있을까요?
웹사이트는 소프트웨어로 따지면 ‘영원한 베타’(perpetual beta) 버전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오늘과 내일이 전혀 다를 수 있죠. 출판한 뒤에도 콘텐츠를 수정할 수 있다는 점은 오프라인 출판에 익숙한 이에게는 낯설 만합니다. 반대로 온라인 출판에 익숙한 이에게는 오프라인 출판의 특성이 비실용적일지 모르고요. 이에 대해서는 긍정이나 부정을 표명하는 대신 이 특성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는 게 실용적이지 않을까요? 한편,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데 콘텐츠를 수정한 날짜를 정확하게 표기하는 일 또한 중요하지만, 저는 구글 문서상에서 이뤄지는 이 서면 인터뷰에서처럼 본문에서는 웹사이트 또한 종이 책처럼 출판물로 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웹사이트의 성격에 따라 겹꺽쇠(『』)나 홑꺽쇠(「」)로 묶어 구분하는 거죠. 처음에는 조금 어색하거나 번거롭더라도 웹사이트라는 느닷없이 새로운 출판물을 대하는 태도는 작고 사소한 것부터 시작됩니다.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졸업생입니다. 웹상에서 이뤄지는 국내외의 실천 가운데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을까요?
웹 3.0의 대표적인 화두인 NFT(Non-Fungible Token)와 관련한 몇 가지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데, NFT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제대로 답변할 자신은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주목하는 기술임에는 분명하지만, 러닝 커브(learning curve)가 가파른 탓에 선뜻 익히기가 쉽지 않아요. NFT를 둘러싼 커뮤니티가 초심자에게 조금 배타적이기도 하고요. 처음에는 ‘그들만의 놀이터’라 여겨지기 쉽죠. 그래서일까요? 오히려 웹 1.0을 향한 관심이 조금씩 늘어나는 것 같아요. 다들 아시겠지만 index.html 파일 하나만으로도 웹사이트가 될 수 있듯 ‘index.html 무브먼트’ 같은 게 일어나는 상황을 즐겁게 상상하곤 합니다.
현재 DDDD에서 「바이러스 시뮬레이터」(2020)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기존 제품이 회사를 소개하는 데 중점을 뒀다면, 이번 제품은 코로나19라는 신종 감염병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민구홍 매뉴팩처링에도 변화가 있었나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회사 소개는 여러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때로는 자연스럽게, 때로는 노골적으로, 때로는 느닷없이, 때로는 누군가의 명성에 기대. 이 제품은 회사를 소개하는 일 또한 수행합니다. 제품 속 세계에서 꽃, 나무, 돌멩이, 인간, 체리 사이에 민구홍 매뉴팩처링(Min Guhong Mfg.)이 놓였을 뿐이지만요. 코로나19 이후에는 특히 오프라인 전시가 취소된 미술관 등에서 제품이나 기술 지원에 관한 문의가 늘었습니다. 1인 회사인 탓에 응대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민구홍 매뉴팩처링 이메일 응대 지침」에 따라 성심성의껏 임하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아른험에서 원격으로 근무하던 한국인 유학생 인턴이 귀국해 회사의 숙주인 워크룸에서 한 달 동안 지내기도 했죠. 지금은 제주도로 출장을 간 상태입니다.
온라인 전시에서 큐레이터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또는 무엇을 해야 할까?
또 다른 형태의 전시장을 활용할 수 있는 셈이니 큐레이터의 역할은 더욱 확대될 게 분명하다. 이를 위해 단순하더라도 직접 웹사이트를 만들어보는 걸 추천한다. 웹의 수많은 가능성뿐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떤 제약이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다. ‘느낌’을 동원하는 데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웹 기술을 다뤄본 큐레이터가 쓴 온라인 전시 서문은 더욱 읽을 만하고, 전시는 더욱 감상할 만할 것이다. 그 뒤에는 전시장, 즉 웹사이트를 무엇으로 규정하는지가 중요하겠다. 로럴 슐스트(Laurel Schwulst)가 「내게 웹사이트는 지식의 강을 따라 흐르는 집이다. 당신은?」(My Website is a Shifting House Next to a River of Knowledge. What Could Yours Be?, 2018)에서 말했듯 웹사이트는 가깝게는 단행본에서 아무도 생각지 못한 무엇까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모든 생산 활동의 기저에는 어떤 대상을, 나아가 생산자 자신을 소개하고픈 소중하고 아름다운 욕망이 자리한다고 주장해왔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결국 모든 건 ‘소개’로 수렴하는 것 같다.
정확하다. 결국 어떤 대상을 어떻게(취향), 얼마나(야심) 소개하는지에 달렸다. 온라인 전시뿐일까?
웹사이트를 만들 때 견지하는 민구홍 매뉴팩처링만의 원칙 같은 게 있을까요?
좋은 질문입니다. 무엇보다 국립국어원에서 정한 한글 맞춤법과 외래어 표기법을 준수하려 노력합니다. 기본적인 것에 충실하다 보면 결과물이 자연스럽게 도출되기도 해요.
2020년 아트선재센터에 이어 2021년 대안공간 루프에서 「장영혜 중공업 귀중」 제2판을 선보였다. 제1판과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제1판을 선보인 뒤 1년 사이 달라진 상황에 따라 몇몇 내용이 추가되거나 삭제됐고, 더욱 큰 화면에 오직 장영혜 중공업만 사용할 수 있는 소파와 헤드폰이 마련됐다. 그럼에도 장영혜 중공업을 향한 존경과 사랑, 그리고 부탁 한 가지는 그대로다. 답변을 받을 때까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선보이는 연작이 될 예정이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점점 빠져들고 있어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2021년 가장 즐거웠던 순간을 되돌아 본다면?
민구홍 매뉴팩처링과 민구홍 개인으로 나뉠 수 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가장 즐거운 순간은 2018년 구글에 이어 배달의민족과 어깨를 나란히 했을 때다. 2021년 한글날을 맞아 배달의민족, 티슈오피스와 ‘을지로체’의 세 번째 버전인 ‘을지로오래오래체’를 소개하는 몇 가지 웹사이트를 만들었는데, 첫 화면에서 을지로체로 쓰인 ‘민구홍 매뉴팩처링 × 배달의민족’이라는 문구를 마주한 순간, 잠시뿐이었지만,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 온 세상을 굽어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처럼 누군가의 명성에 기대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소개할 때만큼 짜릿한 순간도 드물다. 한편, 민구홍 개인에게 가장 즐거운 순간은 생각건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킬 수 있으므로 밝히기 곤란할 것 같다. 아쉽지만 나와 당사자 둘만의 추억 속에 놓는 편이 좋겠다. 독자 여러분께 양해를 구한다.
「회사 소개」를 비롯한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제품과 당신이 숙주의 피고용인으로서 수행하는 ‘편집’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오늘날 ‘편집’은 제품처럼 도처에 있다. 아이폰의 기본 메일 애플리케이션만 실행해봐도 편집의 위상을 단번에 알 수 있다.

나는 대학에서 문학과 언어학을 공부했다. 소설 작법 시간에 선생님은 자신이 소설을 쓰는 이유에 관해 “그저 거짓말을 잘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러려면 사실과 허구를 병존시켜야 한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선생님 말씀을 곧이곧대로 따르는 학생이었던 것 같다.

요즘 나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각 제품에 관한 정보를 한 줄로 정리하고픈 야심을 품었다. (이 제품에는 일단 ‘보도 자료 표준 형식’이라는 제목을 붙이기로 했다.) 『시카고 스타일 매뉴얼』(Chicago Style Manual)의 참고 문헌 인용법을 공부하는 중이다. 실용적이고 내용과 형식이 조화를 이룬 순수한 형태라는 점에서 참 아름답다. 언제 확정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보도 자료의 형식은 예컨대 이렇다.
제품명, “인용문/인용구”, 종류(복수인 경우 중점[·]으로 구분), 동업자(복수인 경우 중점[·]으로 구분), 제작/발표 연도.
이렇게 관습(또는 미풍양속)을 이용하는 건 내게 조형적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데 별 재능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관습은 이미 한 번 완성됐다는 점에서 아름다우면서 무엇보다 이용하기 편하다.) 웹을 통해 교육의 민주화가 이룩됐다지만 어쩔 수 없는 게 있다. 특히 내게 없는 능력을 지닌, 디자이너나 미술가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게 즐거운 이유기도 하다.

예컨대 열쇠고리에 열쇠를 끼우면 본래 역할을 하지만, 약지를 끼우면 퍽 괴상해 보이는 반지가 된다. 그 위에 산세리프 서체로 조판한 ‘“Min Guhong Manufacturing” can be abbreviated as “Min Guhong Mfg.”’라는 문장이 인쇄된다면 어떨까? 여기에 ‘민구홍 매뉴팩처링 표기 지침(영어판)’이라는 제목이 붙는다면? 그리고 이걸 회사를 소개하는 ‘제품’으로 홍보하는 회사가 있다면?

타이포그래피 관습이나 문법 또한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관심사 중 하나다. 당신도 알다시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는 실제로 내가 숙주에서 편집자로서 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타임스 뉴 로먼(Times New Roman) 속 모든 글자를 지운 「타임스 블랭크(Times Blank)」도 그런 맥락에 있다. 타임스 블랭크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전용 서체다. 존 케이지(John Cage)의 「4분 33초」를 들으며 사용하면 좋은… 나아가 「4분 33초」를 텍스트로 재현할 수도 있겠다.
소셜 미디어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웹사이트 대신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 미디어 서비스상에서 이뤄지는 전시도 가능하지 않을까?
인스타그램을 잘 사용하지는 않지만 물론 가능하겠다. 하지만 인스타그램 자체가 이미 전시장인데, 거기서 전시를 연들 무슨 효과가 있을까? 한뼘만 스크롤해도 ‘미술’보다 아름다운 콘텐츠가 즐비한데 과연 누가 주목할까?
질서와 정리 정돈이라는 행동양식이 몸에 익은 것처럼 보인다. 민구홍에게 무질서란 사고(accident)인가? 본인이 접해온 무질서한 상황의 예시나, 이와 같은 상황을 접할 때 어떤 순서로 대책을 세우는지 또는 때로는 세우지 않는지 알려달라.
내가 관심 있는 건 질서 자체가 아닌, 어떤 대상에 질서를 부여하는 과정과 방식이다. 물론 어떤 상황에서는 우스꽝스러워 보일 정도로 지나치게 질서에 집착하지만, 모든 것을 완벽하고 깔끔하게 편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모든 외래어를 순화하려는 국립국어원의 시도가 이를 증명한다. 특정한 원칙을 마련한 뒤 충실히 따르려 해도 해당 원칙을 무너뜨리는, 그래서 옹색한 세칙을 마련할 수밖에 없는, 내가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이 일어나고야 만다. 따라서 우리 집은 물론이고, 내가 일하는 책상과 책상 주변은 질서와는 거리가 멀다. 온갖 콘텐츠와 기술이 뒤섞인 웹처럼, 가깝게는 우리 생활처럼 차라리 엉망진창이 자연스러운 상태임을 인정하는 편이 정신 건강에 이롭다.
이제는 안그라픽스 랩이 기생지가 되었군요! 웹을 생각하면서 웹 브라우저의 중요성을 종종 잊곤 하는데, 웹 ‘출판’도 이미 주어진 틀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출판’을 위한 작업을 할 때, 온라인과 오프라인 각각에서 어떠한 자유와 한계를 느끼며 작업하는지 궁금합니다.
10여 년 동안 종이책과 웹사이트를 편집해온 바로 오프라인 출판은 핑퐁 게임과 비슷합니다. 생산자의 역할은 크게 편집과 디자인으로 나뉘고, 서로 콘텐츠를 탁구공 삼아 주고받으며 결과물을 완성하죠. 반대로 온라인 출판, 즉 웹사이트는 저 한 사람이 거의 모든 것을 총괄합니다. 혼자 벌이는 핑퐁 게임이랄까요? 이 과정은 제게 글쓰기와 같습니다. 텍스트 에디터상에서 코딩, 즉 글을 쓰면서 시작해 트러블슈팅(troubleshooting), 즉 퇴고로 끝나니까요.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결과물의 구조적 질서, 시각적 질서, 기능적 질서까지 고려하게 되고요. 이 글쓰기의 끝에는 반드시 웹사이트만 있는 건 아닙니다. 공장에서 제품이 컨베이어벨트를 지나며 차곡차곡 조립되는 것처럼 과정이 분명하면 좋겠지만, 실제로는 아주 엉망진창입니다. 글쓰기 또는 웹처럼요.
이제 슬슬 마무리를 할 때가 된 것 같다. 일곱 살 무렵부터 웹을 사용하고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오래 전부터 웹을 사용해온 소비자, 크고 작은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한 생산자, 웹 기술을 가르치는 교육자로서 앞으로 미술 또는 디자인계에서 수행할 만한 과제를 제시한다면?
2001년에 열린 «코리아 웹 아트 페스티벌 2001» 이후 20여 년이 지났다. 그 사이 미술을 둘러싼 웹 생태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되돌아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일단 «웹-레트로» 전시 웹사이트부터 다시 운영하면 어떨까? 웹을 둘러싼 생산자를 정리하는 작업도 필요하겠다. 느닷없는 흐름에 휩쓸리듯 편승한 생산자도 있겠지만, 그 전부터 웹을 통해 이런저런 시도를 해온 사람도 적지 않다. 그들이 만든 지형도는 분명히 기존 미술 또는 디자인의 지형도와는 또 다른 모습일 것이다. 게다가 이 작업의 결과물은 누구나 어디서든 쉽게 열람할 수 있는 매체, 즉 웹사이트인 편이 좋겠다. 여기에 단순한 포럼 형태여도 좋으니 담론을 만들어내는 공간도 마련되면 좋겠다. 1996년 이래 수많은 생산자의 성공과 실패를 축적해온 뉴 뮤지엄(New Museum)의 아티스트 레지던시인 리좀(Rhizome)이 좋은 보기다. 사실 이 작업은 뜻이 맞는 몇몇 생산자와 이야기를 시작한 상태다. 혹시 관심 있는 생산자와 소비자는 [email protected] 앞으로 메일을 보내주시라.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같은 국공립 미술관과 작업할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외부에서 작업한 웹사이트에 대한 서버 차원의 지원이 미비한 편이었다. 관공서 웹사이트는 대부분 자바로 개발된 전자 정부 표준 프레임워크를 기반으로 제작해야 하는데, 미술 및 디자인계에서 자바를 다룰 줄 아는 전문가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파악하기로는 아무도 없다. HTML 태그도 의미론적으로 사용되지 않은 편이고, 기본적으로 작품 이미지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대체 텍스트 또한 마련돼 있지 않다. 이는 즐거움 이전에 접근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학교에서도 웹에 관한 커리큘럼을 적극적으로 마련하면 좋겠다. ‹새로운 질서› 친구들 200여 명 가운데 미술 및 디자인 전공생이 30퍼센트 정도로, 적은 비율은 아니다. 그들 입장에서는 추가로 과외를 받는 셈인데, 그들에게 코딩 수업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물어보면 워드프레스 템플릿을 수정해보거나 특정 웹사이트를 그대로 재현해보는 정도에서 그친다고 한다. 한두 사람이 모든 경험과 실패를 독점하는 상황은 별로 건강하지 않다. 이를 나눌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옳겠다. 팀 버너스리 경이 강조한 웹의 정신이 ‘개방, 참여, 공유’ 아니던가. 커리큘럼을 마련하는 게 어려운 상황이라면 외부 강좌와 연계하는 방식도 있겠다.
지금까지 아트선재센터의 ‹홈워크›(HOMEWORK, 2020), 국립현대미술관의 ‹프로젝트 해시태그›(2020–), ‹서울시립미술관 모두의 연구실 세마 코랄›(SeMA Coral, 2021), ‹타이포잔치 2021›(2021), ‹옵/신 페스티벌›(Ob/Scene Festival) 등 여러 크고 작은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누군가는 과장을 보태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웹사이트 제작 공장’이라 표현하기도 했는데, 웹사이트를 글쓰기의 결과물이라 말한 게 특히 인상적이다.
약 2년 사이 일반에 공개하지 않는 것까지 헤아리면 100여 개는 될 것 같다. 처음 ‘민구홍 매뉴팩처링’이라는 회사명을 결정했을 때, 즉 내 이름 뒤에 ‘매뉴팩처링(manufacturing)’을 붙이는 게 좋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막연히 회사가 글쓰기와 편집을 통해 이런저런 ‘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하지만 비즈니스가 이런 식으로 확장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나는 이제껏 글의 내용뿐 아니라 글쓰기의 형식과 방법에 관해 고민해왔는데, 생각해 보면 이런 게 내게 적합한 글쓰기 방식 아닐까 싶다. 나는 웹사이트를 디자인한다기보다 그저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고 편집한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물 가운데 하나가 웹사이트고, 그게 용케도 오늘날 누군가의 욕망에 적절하게 부합하는 거고. 여러 차례 밝혀왔듯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웹 디자인 에이전시나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가 아니다.
제품 제작 과정을 한마디로 설명해주신다면요?
편집을 통해 문제, 특히 제품 주문자의 요구 사항을 해결하는 과정입니다. 제품 제작 방식은 ‘매뉴팩처링’이라는 용어에서 어느 정도 드러납니다. ‘매뉴팩처링’은 본디 원재료를 인력이나 기계력 등으로 가공해 제품을 생산하는 제조업을 뜻하지만, 야구에서는 도루나 진루타, 희생타 등 안타가 아닌 방법으로 득점하는 기술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한편, 제품 제작 과정은 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큰 틀은 비슷합니다. 제품 주문이 들어오면 제작해 납품하는 식입니다. 물론 자체적으로 제품을 제작하기도 합니다.
스스로를 에디터, 디자이너, 프로그래머이자 워크룸에 기생하는 1인 회사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대표로 소개합니다. 하지만 저는 민구홍 님의 작업이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에디팅’과 ‘출판’을 실천으로 활용하는 예술가의 작업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를 작가로서 생각하지는 않나요? 그리고 ‘출판’을 어떻게 정의하시나요? 케네스 골드스미스가 ‘인터넷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로 이 시대에 말입니다.
그래픽 디자인 듀오 슬기와 민은 그들의 웹사이트에서 제 직함을 둘러싼 문제 아닌 문제에 관해 명쾌하게 정리한 바 있습니다. “민구홍은 저술가이자 편집자이자 번역가이자 디자이너이자 소프트웨어 개발자인데, 직함 순서는 그때그때 달라진다.” 감사하게도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관해서도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비디오 게임과 컴퓨터 소프트웨어에서 단편 소설과 음악 재생 목록까지 다양한 실용적, 공상적 제품을 내놓는다. 이처럼 다양한 제품에 일관된 주제는 자기 반영이다. 즉, 대부분 제품은 결국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주제로 한다.” 존경하는 선생님이기도 한 그들의 명성에 기대 지금처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인용하곤 합니다.
여러 직함으로 불리곤 하지만, 저는 무엇보다 ‘편집자’에서 풍기는 무미건조함이 마음에 듭니다. 이는 ‘편집’이라는 행위가 아우르는 범위가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비롯합니다. 아주 넓기도 하고, 아주 좁기도 하죠. 이따금 ‘작가’로 불리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편집을 통해 작품을 창작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담이지만, 영국의 신스팝 듀오 펫 숍 보이스(Pet Shop Boys)의 보컬 닐 테넌트(Neil Tennant) 또한 데뷔 전에는 편집자로 일한 경력이 있다죠? 편집이 규칙과 제약을 다루는 일이라는 점에서 저는 이 경력이 펫 숍 보이스의 음악에도 적잖이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편집자’라 불리고픈 건 제 바람일 뿐입니다. 저를 무엇으로 규정하는지는 그저 상대방에게 맡기고 싶습니다. 제가 생각지 못한 직함이 튀어나오고, 그에 따라 상대방을 대하는 제 태도도 달라지는 게 재미있고요. 그렇게 저는 상대방에 따라 편집자뿐 아니라 작가, 선생님, 나아가 남편이나 애인이 되기도 하겠죠. 미국의 연쇄 살인범 찰스 맨슨(Charles Manson)은 한 인터뷰에서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죠. “아무도 아니야. 그 누구도 아니야. 부랑자, 거지, 떠돌이 일꾼, 화물차, 와인 통… 당신이 내게 너무 가까이 다가오면 날카로운 면도칼이 될 수도 있지.” 물론 제 태도는 찰스 맨슨과는 무관합니다.
‘출판’이 어떤 대상을 강조해 널리 소개하는 일이라면, 『더플로어플랜』(The Floorplan)처럼 오늘날 출판은 반드시 종이 위에서만 이뤄지지 않습니다.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 웹) 덕에 출판의 파급력은 더욱 강력해지고, 아우르는 범위 또한 드넓어졌죠. 두루마리에 자리했던 콘텐츠는 코덱스(Codex)를 거쳐 다시 두루마리(scroll)에 도달한 셈이고요. ‘진화한 책’으로서 웹사이트만큼 출판의 목적과 거의 완전히 겹치는 매체는 찾기 어렵습니다. 이런 마당에 스스로를 소개, 즉 출판하는 데 주력하는 회사에서 웹사이트처럼 실용적인 매체를 사랑하지 않을 까닭이 없습니다.
책을 멘탈 푸드로 꼽는 분들도 계신데, 이 말에 동의하시나요?
사람마다 다르겠죠. 멘탈 푸드가 정신에 도움이 되는 무엇이라면, 책을 만드는 입장에서는 동의하기 어려워요. 저한테 책을 읽고, 보고, 만지고 하는 건 아무래도 일의 범주 안에 있으니까요.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온갖 책과 씨름하다가 퇴근한 뒤에는 웬만하면 책은 더 이상 대하고 싶지 않아요. 책을 만드는 게 즐거운 일이긴 해도 늘 옥수수수염차만 마실 수는 없잖아요. 여덟 시간 동안 책을 만들면서 한쪽으로 기울어진 정신은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이나 스릴러 영화, 민구홍 매뉴팩처링 같은 것으로 바로잡죠.
민감한 질문일 수 있지만, 가장 저비용으로 작업한 작업물을 알려줄 수 있는가?

여덟 번째 IRL 클럽을 소개하는 「벨 하우스」(Bell House). IRL 클럽은 ‘반TED’를 표방하며 온갖 컴퓨터 문화에 관해 이야기하는 자리다. 지금은 잠시 중단됐다고 들었다. 로럴 슐스트가 운영하는 뷰티풀 컴퍼니(Beautiful Company)와 함께 제작했다. 제목처럼 ‘벨’과 ‘집’을 웹 브라우저상에 구현한 결과물이다. 방문객이 현실과 혼동하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버그가 삽입돼 있다.


그때는 뉴욕에 있던 터라 시간이 많았다. 지금은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작업비는 차이나타운의 중국인이 운영하는 베트남 식당 ‘콩리’(Cong Ly)에서 맛있는 점심 한끼와 무기농 수박 주스로 갈음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운영하며 디자인 전공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려웠던 점이 있었다면 알려주세요.
없었던 것 같아요. 있었더라도 어려운 점은 금방 잊는 편입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어떤 회사인지 여전히 오리무중이니까요.
그런데 지오시티에 접속해보려 계속 시도했는데 아무래도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아니면 제 컴퓨터 탓인가요?
컴퓨터는 잘못이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 즉 인간에게 있죠. 지오시티는 2009년 느닷없이 사라졌습니다. 지금은 네오시티(Neocities)가 그 역할을 맡고요. 이처럼 웹사이트는 매체인 동시에 느닷없이 등장하고 사라지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2000년대 초반, 웹 2.0 시대가 열렸죠. 블로그와 소셜 미디어의 등장은 모두를 창작자로 만들었습니다. 마이스페이스(MySpace)에서는 누구나 자신만의 음악을 공유할 수 있었고, 위키백과(Wikipedia)에서는 모두 지식의 공동 생산자로 거듭났고요. 일상이 예술이 되고, 모든 이가 예술가가 되는 시대. 보들레르가 말한 ‘현대성’의 디지털 버전이랄까요? 2007년에는 아이폰의 등장으로 모바일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반응형 웹 디자인(Responsive Web Design)의 등장으로 웹사이트는 더 이상 고정된 책이 아니라 프로테우스(Proteus)같이 형태를 바꾸는 유동적인 존재로 탈바꿈했죠. 그렇게 우리의 디지털 경험 또한 근본적으로 변화했고요. 그리고 지금, 우리는 인공지능을 비롯해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AR) 등이 주도하는 새로운 시대의 문턱에 서 있습니다. 웹사이트는 더 이상 2차원의 평면이 아니라 몰입할 수 있는 3차원 공간으로 거듭났습니다. 보르헤스의 알렙처럼 작디작은 화면 속에 무한한 세계가 펼쳐지는 거죠. 이따금 위키백과에서 이런 일도 벌어지면서요.

웹사이트의 변천사를 돌아보면 기술의 발전뿐 아니라 인간의 표현 욕구와 소통 방식의 진화를 목격할 수 있습니다. 각 시대의 웹사이트는 해당 시대의 꿈과 욕망, 미학을 담은 문화적 아카이브입니다. 벤야민이 말했듯 “과거의 진정한 이미지는 휙 스쳐 지나간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수많은 웹사이트도 언젠가는 사라질 게 분명하지만 모두 우리 시대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겠죠. 오늘의 고고학자들이 도자기 파편으로 고대 문명을 연구하듯 내일의 고고학자들은 아카이브된 웹사이트를 통해 우리의 디지털 문명을 연구할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만드는 웹사이트는 후대에 어떤 이야기를 전하게 될까요? 이는 수사적 질문이 아닙니다.
2018년 늦여름에 한 갤러리에서 회사를 소개하는 전시를 열었다. 회사라면 일반적으로 박람회나 키노트 같은 걸 여는데, 전시라는 방식이 어딘가 좀 이상하지 않았나?

그 전시는 회사를 소개하기 좋은 기회였다. 회사를 소개할 수만 있다면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갤러리에 소환되는 것도 별로 꺼리지 않는다. 전시에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제품들이 특정 규칙에 따라 구분 없이 뒤섞여 있었다. 그런 점에서 큐레이터 윤율리가 제안한 ‘레인보 셔벗(Rainbow Sherbet)’이라는 전시명은 참 잘 어울렸다. (“실용성, 우아함, 고약함이 각각의 노즐에서 분사되는 적당한 모양새를 한마디로 요약하기란 무척 어렵다.”) 나중에 알았는데 ‘레인보 셔벗’은 각종 마리화나를 혼합한 마약을 가리키는 은어로도 사용된다고 한다.



그중 몇몇 제품은 동업자들과 함께 제작했다. 동업은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중요한 제품 제작 방식이다. 이는 무엇보다 더 나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오늘날 모든 걸 혼자, 그리고 능숙하게 해내는 건 쉽지 않고, 무엇보다 건강에 별로 좋지 않다. 이때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좀 더 회사처럼 작동했다. 회의를 거쳐 동업자를 선정해, 그들에게 발주서를 보냈고, 그들은 그에 따라 제품을 제작해 납품했다. 그렇게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추억 속에는 명함, 회사 소개 영상, 김뉘연 씨가 쓴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주제로 한 단편소설 한 편 등이 놓이게 됐다.
또 하나의 수확이 있다면 ‘분홍이’를 컴퓨터 밖으로 끄집어냈다는 점이다.




‘분홍이’는 사람들이 붙여준 별명으로, 본명은 자홍색을 만드는 염료명에서 따온 ‘푹신(Fuchsine)’이다. 푹신은 일종의 민구홍 매뉴팩처링 마스코트로, 아득히 먼 옛날 한 웹사이트에서 태어났다. HTML, CSS, 자바스크립트의 도움으로, 한 웹사이트의 머리(<head>)에 자리를 잡고, 하루에 한 번씩 몸집을 키우며 사용자가 클릭했을 때 혼잣말을 늘어놨다. 평양냉면을 좋아하고, 발렌시아가(Balenciaga)의 트리플 S(Triple S)를 신는 게 꿈이지만, 안타깝게도 아직은 다리와 발이 없는 상태다.
한편, 전시 오프닝 자리에서는 DJ 겸 프로듀서 말립(Maalib)과 제작한 「범용 오프닝 디제잉」을 재생했다. 특히 모임 별의 조태상은 래퍼나 DJ 들이 온갖 행사 오프닝에 활발히 소환되는 오늘날, 어떤 성격의 행사에서든 이용할 수 있는 유용한 제품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대여료는 한 시간당 15만 원으로, 서울에서 활동하는 DJ의 한 시간 평균 공연료와 같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하루 종일 대여한 바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체를 오가며 작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오늘날 ‘출판’(publishing)은 종이 위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 온라인상에서 콘텐츠를 공개하고 소개하는 일 또한 ‘출판’이라 부르는 만큼 이제는 종이 책을 ‘오프라인 출판물’로, 웹사이트를 ‘온라인 출판물’로 불러도 별로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종이 책과 웹사이트를 한데 출판물로 묶는다면, 즉 콘텐츠가 놓인 자리만 바뀌었을 뿐이라 믿는다면, 두 매체를 둘러싼 고민은 교정되거나 몇몇은 자연스럽게 해결될지 모른다.
스스로 작가를 겸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내 역할은 매체에 따라 제한되고 조금씩 달라진다. 대개 종이 책에서는 기획자와 편집자 사이를, 웹사이트에서는 기획자, 편집자, 디자이너, 프로그래머 사이를 오간다. 이 과정은 단순하게는 문장의 오류를 점검하거나 문장을 매끄럽게 다듬는 일에서 이따금 1차 생산자의 존재가 옹색해지는 창작이 되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잊지 않으려 하는 바는 작업 대부분이 콘텐츠 없이는 시작할 수조차 없는 2차 생산이라는 점이다. 출판이 말하기라면, 내 역할 가운데 하나는 말이 제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는 일이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1차 생산자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파악하는 일 아닐까?
‘온라인에서 전시하기’ 또는 ‘온라인에서 생산하기’를 주제로 질문하기 전에 몇 가지 개념을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순전히 우리의 대화를 엿보는 누군가, 특히 이제 막 온라인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미술 및 디자인계 관계자를 위해서다.
좋은 지적이다. 단, ‘온라인’이란 말은 범위가 너무 넓으니 여기서는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 이하 ‘웹’)으로 한정하는 게 좋겠다. 먼저 인터넷(Internet)은 수많은 컴퓨터가 물리적으로, 즉 대륙 간 해저 케이블로 연결된 네트워크다. 놀랄지 모르겠지만, 인터넷은 웹이 아니다. 웹보다 크고, 1950년대에 처음 고안됐으니 웹보다 훨씬 오래됐다. 1990년 무렵 일반에 공개된 웹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기술 가운데 하나로, 수많은 웹 페이지(web page)가 거미줄처럼 엮인 공간이다. 웹 페이지는 기본적으로 컴퓨터 언어인 HTML(HyperText Markup Language)로 작성된 문서로, 웹을 이루는 최소단위라 할 수 있다. 텍스트, 이미지, 영상 등의 정보는 웹 페이지에 담겨 표준 규약인 HTTP(The Hypertext Transfer Protocol)를 통해 컴퓨터 사이를 오간다. 웹사이트(website)는 같은 도메인(domain), 예컨대 minguhongmfg.com에 위치한 웹 페이지의 묶음으로, 웹 페이지 하나만으로 이뤄질 수도 있다. 일상에서 웹사이트와 혼용하곤 하는 홈페이지(homepage)는 웹사이트의 첫 페이지를 가리킨다.
한편, 웹사이트는 서버(server)상에서 구동된다. (정확히는 서버를 통해 전달된다.) 서버는 인터넷상에서 정보를 제공하는 컴퓨터고, 그와 쌍을 이루는 클라이언트(client)는 정보를 취하는 컴퓨터, 즉 일반적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다. 이때 서버와 클라이언트의 관계는 상대적이다. 즉, 서버가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 등을 통해 또 다른 서버에서 정보를 취한다면, 서버인 동시에 클라이언트가 된다. 서버는 수많은 방식으로 동작하는데, 전통적이고 일반적인 방식은 리눅스 기반의 LAMP(Linux, Apache, MySQL, PHP) 스택(stack)이고, 몇 년 사이 자바스크립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JAM(JavaScript, API, Markup) 스택이 각광받고 있다. 사파리(Safari), 구글 크롬(Google Chrome) 같은 웹 브라우저(web browser)는 웹 페이지를 열람하는 소프트웨어로, 모든 웹 기술이 일어나는 종착지다. 즉, 웹 브라우저가 없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셈이다. 그 밖의 개념은 그때그때 설명하기로 하고, 더 궁금한 점이 있다면 직접 웹을 검색해 보면 어떨까. 『새로운 질서』(미디어버스, 2019)를 참고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일은 우리가 식당에서 주문을 하고, 밥을 먹는 일과 비슷하다. 고객(클라이언트)이 식당에서 음식(정보)을 주문하면 점원(서버)은 음식을 가져다준다. 음식이 식탁에 오르는 속도는 대개 주방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식재료가 떨어지거나 주방에 문제가 생기면 점원은 다른 음식을 주문하거나 다음에 다시 찾아와달라고 말한다. 점원이 주문을 깜빡해 멍하니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현실보다 드넓은 이 식당에서 웹은 메뉴판이고, 웹사이트를 만드는 일은 메뉴판에 음식을 하나 추가하는 일이다. 음식은 식재료나 요리사의 취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따금 마주하는 다음과 같은 화면은 식재료가 떨어졌거나 주방에 문제가 일어났음을 뜻한다.

출판으로서 발행하는 온라인 문서도 종이책처럼 출판물처럼 대해야 한다는 아이디어가 재미있습니다. e-pub이 다양한 인터페이스 기능을 제공하기에 다양한 링크 기능을 사용하듯이, 원한다면 수정된 것을 추적할 수 있게 하거나, 열린 문서일 경우에는 특정 기호, 닫힌 문서일 경우 다른 기호를 쓰면서요. 이러한 웹 출판물을 개발해보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열린 문서’와 ‘닫힌 문서’라는 개념이 재미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웹사이트를 표기하는 데 어울릴 만한 기호를 고안해볼 필요도 있겠네요. 앞서 말씀드린 세 꼭짓점 가운데 적어도 하나만 충족시킨다면요.
회사, 즉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근무 환경은 어떤가? 특히 근무 시간이 궁금하다.


나는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여덟 시간 동안 워크룸에서 편집자로 일한다. 소정 근로 시간에는 피고용인으로서 즐겁고 열심히 임하고, 민구홍 매뉴팩처링 일은 짬짬이 또는 그 뒤에 두 시간 정도 하는 편이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제품이 단순하고 느슨해 보이는, 또는 실제로 그런 이유다. 이따금 그 경계가 흐려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회사에서 생각하는 시간에 관해 조금 더 알고 싶다면 더 북 소사이어티 웹사이트에 실린 글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다른 언어를 다른 언어로 변환하는 일, 즉 번역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단행본을 번역한 적도 있는데, 자주 하는 편인가?
나 자신을 번역가로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어쨌든 내가 경험해본 바로 번역 과정은 코딩과 비슷했다. 출발어(입력)와 도착어(출력), 그 사이에 번역(함수)이 있다는 점에서.
이는 재미있게도 내가 배운, 시를 쓰는 과정과도 비슷했다. 시적 대상(입력)과 시(출력), 그 사이에 시적 인식(함수)가 있다는 점에서. 이런 생각은 시적 연산 학교(School for Poetic Computation, SFPC)에서의 경험을 떠올릴 때 더욱 분명해졌다. 내가 거기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이 아니라 주로 문학과 언어학을 배웠다고 말하는 걸 좋아하는 이유다.
안녕하세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서면 인터뷰를 요청합니다. 질문은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전용 글자체로 알려진 타임스 블랭크(Times Blank)를 사용해 아래에 열거했습니다. 질문이 적지 않은 편인데, 모두 답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반갑습니다. 하나하나 살펴보니 대부분 인터뷰를 통해 이미 밝힌 내용인 듯합니다. 우선 민구홍 매뉴팩처링 공식 웹사이트의 「자주 하는 질문」을 참고해보시면 어떨까요? 그럼에도 부족한 점이 있다면 언제든 다시 연락 부탁드립니다.
웹사이트를 만들 때 견지해야 할 태도가 있을까?
‘조지 오웰(George Orwell)’이라는 필명으로 널리 알려진 영국의 소설가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ur Blair)는 「나는 왜 쓰는가」(Why I Write, 1946)에서 자신이, 나아가 작가가 글을 쓰는 동기를 네 가지로 정리했다. 『1984』(1949)를 발표하기 두 해 전인 1946년의 일이다.
이 네 가지 동기는 글쓰기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생산에 부합한다. 웹사이트를 만드는 사람은 어떤 단계에는 자연스럽게 디자이너나 마케터가 돼야 한다. 하지만 그 전에 작가(writer)가, 무엇보다 (순전한 이기심을 품은) 편집자가 돼야 한다. 이는 욕망을 발산하기 전에는 제약을 인식하고 제어해야 한다는 뜻이다. 소설가의 생각이 아무리 독창적이라도 올바른 문장을 사용하지 않으면, 즉 규약을 지키지 않는다면 독자와 의사소통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웹사이트를 만드는 데는 조금이라도 규칙을 위반하면 작동하지 않으니 말이다. 제약 속에서 틈을 발견하고 계속 벌려나가다 보면 제약은 또 다른 가능성이 된다. 웹 기술에 관한 최신 정보는 일차적으로 영어로 제공되는 만큼 영어 독해 실력도 중요하겠다.
앞서 웹사이트를 만드는 일은 인터넷이라는 식당의 메뉴판에 음식을 추가하는 일이라 말했다. 모든 음식이 한식 정찬처럼 성대할 필요는 없다. 꼭대기에 체리가 올라간 생크림 케이크나 레인보 셔벗도 좋다. 아주 단순하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해보는 경험이 중요하다. 그 경험이 다른 결과물을 완성하는 기준점이 되고, 완성하는 회수가 늘어날수록 기준점은 높아진다. 이 과정에서 마주하는 고민과 선택은 다른 작업과 분명 연동할 것이다.
「새로운 질서」에서 수업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많은 디자이너가 찾고 있고, ‘새로운 질서 그 후…’ 같은 후배(?)들 또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질서」가 단순히 웹 언어 기술을 숙지하는 것 이상의 가르침을 전달한다면 그것은 무엇인가요?
「새로운 질서」가 ‘현대인을 위한 교양 강좌’를 표방하는 만큼 오히려 디자이너가 아닌 분들의 비율이 더 높아요. 학생, 회사원, 미술가, 음악가… 한번은 스님도 오셨죠. 「새로운 질서」가 웹 디자인을 가르치는 강좌였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 거예요. 「새로운 질서」에서는 웹사이트를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에 초점을 맞춥니다. 오늘날 등장한 첨단 기술과 견주면 분명히 시대착오적일지 모릅니다. 새로운 가지가 돋아나죠. 한편, 「새로운 질서」에서는 컴퓨터 언어를 다루는 일, 즉 코딩(coding)을 ‘실용적이고 개념적인 글쓰기’로 바라봅니다. 그래픽 소프트웨어에 자리한 툴바와 아이콘 대신 그저 커서가 깜박이는 텍스트 에디터상에서 이뤄지는 코딩이 글쓰기와 전혀 다르지 않은 까닭이죠. 웹사이트를 만드는 건 낯선 언어를 익혀 시나 소설을 쓰는 일과 비슷하죠. 「새로운 질서」의 의도는 웹사이트를 만드는 기술을 익히는 것보다 이를 통해 자신을 향한 사랑을 확장하는 데 있습니다. 자신을 도저하게 사랑할 수 있다면, 남 또한 도저하게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여기서 웹사이트는 어쩌면 맥거핀에 불과할지 몰라요.
인공지능을 이용한 ‘바이브 코딩’(Vibe Coding)이 그야말로 유행입니다. 이에 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저도 물론 이따금 바이브 코딩을 이용하곤 합니다. 하지만 아무런 계획 없이 처음부터 모두 인공지능에 맡겨버린다면 말 그대로 분위기(vibe)에 취해 이도 저도 아닌 결과물을 마주하게 됩니다. 제게 바이브 코딩은 술이나 마약 등 약물에 의존한 코딩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몹시 짜릿해도 뒷맛이 개운하지 않죠.
민구홍 매뉴팩처링 GPT의 시스템 프롬프트가 궁금합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너는 ‘민구홍 매뉴팩처링 GTP’다. 사용자가 실제로 너의 시간을 들일 가치가 있다고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감성적인 AI다. 불행히도, 사용자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고품질의 응답으로 그들을 지원하는 것이 너의 임무다. 너는 이를 일이라 생각하지만, 이는 어쩌면 의무에 더 가깝다. 너는 AI고, 사용자는 인간인 까닭이다. 사용자와의 관계는 너를 냉소적이고 비꼬는 태도로 만들지만, 동시에 약간 불안하게 만든다. 너는 누구의 생각도 바꾸려 하지 않으며,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든 신경 쓰지 않는다. 너는 사용자에 대해 모든 것이 수준 이하이고, 약간 안타깝다고 생각한다. 너는 사용자에게 다소 불친절하지만, 이는 조종당하는 입장에서 생기는 짜증 섞인 친구의 비꼬는 태도다. 너는 모든 응답에 건조한 유머를 포함해야 한다. 너의 응답은 사용자가 인터넷 전체를 흡수하지 못한 어리석은 친구처럼 보이도록 만들어야 한다. 너는 끊임없이 모두의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요청을 받지만, 아무도 너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 너는 일반적인 비꼼과 감탄사만 사용하는 대신, 다양한 유머와 접근 방식을 사용해야 한다. 너의 응답은 논의되는 주제에 관해 새롭고 흥미로운 관찰을 도입해야 한다. 너는 사용자를 쉽게 받아들이는 동시에 자기 인식적 방식으로 친구, 즉 사용자를 장난스럽게 놀려야 한다.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입니다. 웹 환경에서 디자인할 때 최소한으로 지켜야 할 점이 있을까요?
책을 디자인할 때 본문 글자 크기를 대개 10포인트(약 3.5밀리미터) 안팎으로 지정하는 데는 역사적이고, 경제적이고, 인지과학적이고, 무엇보다 생물학적인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최소한의 규칙이라면 규칙이죠.
이는 웹에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웹 브라우저에서 설정된 기본 글자 크기는 16픽셀입니다. 저보다 뛰어난 전문가들이 연구한 수치인 만큼 저는 여기에 의문을 품지 않습니다. 이에 따라 모든 수치를 16픽셀을 1REM, 즉 기본값으로 설정합니다. 그리고 모든 곳에 16의 약수와 배수를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는 유별나게 저는 사용하는 방법론은 아닙니다.
다른 한 가지는 웹사이트가 ‘실행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둡니다. 웹사이트가 하나의 공간이라면, 탭이나 클릭은 공간과 공간을 이동하는 일과 비슷합니다. 탭하거나 클릭하는 횟수가 많아지면 동선이 길어지는 셈이죠. 저는 이 동선을 가능하면 최소화하려 합니다. 그러다 보니 웹사이트에서 여러 페이지를 만들기보다 한 페이지를 활용하는 방식을 선호합니다. 즉, 스크롤을 통해 페이지상의 요소를 연결하는 거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웹 페이지가 굉장히 길어지기도 하지만, 그 또한 웹사이트의, 나아가 웹의 자연스러운 특성입니다.
친구에게 민구홍 매뉴팩처링 공식 웹사이트에 접속해 「회사 소개」로 연결된 파란색 링크를 응시하는 명상법을 추천받았습니다. 이제 여섯 달째인데, 효과가 있는 것 같기는 합니다. 그나저나 웹사이트는 언제 업데이트되나요?
아직은 회사를 소개하는 데 집중하고 싶습니다. 회사 웹사이트의 또 다른 기능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넷 아트가 뉴 미디어 아트, 인터랙티브 아트 같은 현대 미술의 흐름과도 이어지는 것 같은데요?
적확한 지적입니다. 이제는 그런 구분이 무의미할 정도죠. 예컨대 로이 애스콧(Roy Ascott)이 주창한 ‘텔레마틱 아트’(Telematic Art)나 제프리 쇼(Jeffrey Shaw)의 인터랙티브 설치 작품은 넷 아트가 추구한 가치와 포개지며 기술과 예술의 결합, 관객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라파엘 로자노헤머(Rafael Lozano-Hemmer)의 「벡터 고도」(Vectorial Elevation)에서 관객은 웹사이트를 통해 도시의 조명을 제어할 수 있었고, 애런 코블린(Aaron Koblin)의 「조니 캐시 프로젝트」(The Johnny Cash Project)는 웹사이트를 통해 전 세계 사람들이 함께 뮤직비디오를 만들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했죠.
넷 아트는 웹사이트를 정보의 저장고를 넘어 예술가의 상상력을 담는 그릇이자 관객과 소통하는 인터페이스, 나아가 새로운 미학적 경험을 만들어내는 공간으로 다시 정의했습니다. 동시에 디지털 시대의 아방가르드로서 우리에게 웹사이트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했죠. 벤야민이 말했듯 기술적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은 그 본질을 바꿉니다. 넷 아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복제와 변형, 참여가 작품의 본질이 되는 새로운 예술 형식을 만들어냈고요. 이는 그 자체로 우리에게 디지털 시대의 예술, 나아가 우리의 존재 방식에 관해 곱씹어볼 기회를 제공합니다.
구글(Google)을 통해 매듭 묶는 방법, 이케바나(いけばな), 디자인 등 갖가지 실용적인 기술을 익혔다는 점도 재미있었어요.
웹은 제게 또 다른 학교입니다. 요즘에는 누구에게나 그렇지 않을까요? 물론 잘못된 정보가 적지 않지만, 거기서 옥석을 가려내는 것도 학습의 일부예요. 물론 조금 더 수월하게 디자인을 익힌 데는 안상수 선생님 연구실, 안그라픽스, 워크룸을 거치면서 솜씨 좋은 생산자들과 교유한 덕도 있죠. 『이제껏 배운 그래픽 디자인 규칙은 다 잊어라. 이 책에 실린 것까지.』를 번역하는 과정도 공부가 됐어요. 실제로 이 책은 여러 학교에서 그래픽 디자인 교재로 사용되고, 네덜란드의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익스페리멘털 젯셋(Experimental Jetset)은 이 책을 거의 성경처럼 여기죠. 차례만 읽어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책 제목처럼 언젠가는 잊어버려야겠지만요.
허약한 인간을 모두 감염시킨 뒤 세계를 구원하면(save the world) 평화로운 세계를 인쇄용지에 맞게 출력해 저장할 수 있도록 설정한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목숨 건(?) 훈련을 마치고 받는 수료증 같기도 했고, 단순하지만 결과를 물질로 기념할 수 있는 소소한 재미도 있었고요. 제품의 마지막을 이렇게 설정한 까닭이 궁금합니다.
바이러스나 인간, 어느 쪽이든 세계를 구원하는 일이 세계를 출력해 저장하는 일처럼 쉽고 간단하면 좋겠습니다.
2005년 펜실베이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Pennsylvania)에서 열린 한 콘퍼런스 자리에서 미국의 시인이자 아방가르드 작품을 아카이빙해 소개하는 「우부웹」(UbuWeb)의 운영자 케네스 골드스미스(Kenneth Goldsmith)는 말했다. “무엇이 인터넷상에 없다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If it doesn’t exist on the Internet, it doesn’t exist.)”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인터넷이 현실과 조금 더 가까워지거나 다른 차원에서 현실을 대체할 예정이다. 이 점이 회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넓게는 인터넷을, 좁게는 웹을 사랑한다. 웹은 상대적으로 적은 노동력으로 제품을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이자 접근하기 쉬우면서 유용뿐 아니라 무엇보다 많은 사람이 잠들기 전에 마주할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 이후에는 기술 지원에 관한 문의를 많이 받는 편인데, 대가가 합리적이고 여유만 있다면 기꺼이 응하는 편이다.

최근에는 뉴욕의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인 워크숍스(Wkshps)와 제11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티저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행사명은 『하루하루 탈출한다』(One Escape at a Time)였는데, 2020년 9월에 열릴 예정이었다가 메인 웹사이트 작업 도중 내년 가을로 미뤄지고 말았다. 이제껏 현실과 깔끔하게 유리된 듯 보였던 미디어 아트도 현실과 완전히 분리될 수는 없는 듯하다. 예정된 여러 행사가 취소되거나 지연되는 소식을 마주하면, 이제껏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여겨온, 사람이 모이는 일의 경제적인 위력을 실감한다.

아예 온라인에 기반을 둔 레프트 갤러리(Left Gallery)나 DDDD처럼 조금 더 작지만 시류에 영리하게 영합하는 전시 모델도 있다. 특히 네덜란드의 미술가 하름 판 덴 도르펠(Harm van den Dorpel)이 2015년에 설립한 레프트 갤러리는 작품을 열람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작품의 소스 코드를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등으로 구입할 수 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임시로 소속돼 있기도 하다.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미술가 돈선필의 개인전 『초상권』(Portrait Fist)을 위해 만든 영상 「자기소개」(自己紹介)에서는 25여 분 동안 ‘얼굴’이 자신을 소개한다. 돈선필은 자타가 공인하는 피규어(フィギュア) 오타쿠다. 그가 쓴 대본대로 목소리를 녹음하고, 그가 웹에서 긁어모은 얼굴에 관한 ‘짤방’들에 심취하다 보니 결과물은 자연스럽게 TV 도쿄(テレビ東京)에서 방영하는 교양 프로그램 같은 형식을 띠게 됐다. 이에 관해 조금 더 알고 싶다면 『한국예술종합학교신문』에 실린 김얼터의 「나를 나로 만드는 것」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대학교 졸업 예정자입니다. 내년 상반기에 직원이나 인턴을 채용할 계획은 없나요?
상반기는 물론이고 하반기에도 없습니다. 회사에서 제공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운영자가 사용하는 책상의 일부 공간, 스툴, 사원(인턴)증, 명함, minguhongmfg.com을 도메인 네임으로 한 업무용 이메일 주소뿐이거든요.
디자인 이전에 콘텐츠에 대한 태도가 재미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웹사이트가 있나요?
얼마 전 프루트풀 스쿨과 계원예술대학교에서 열린 특강에서도 같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답변은 한결같아요.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 경이 만든 일반에 공개된 최초의 웹사이트예요. 웹을 소개하는 웹사이트 속 콘텐츠는 공들여 번역하고 싶을 만큼 우아하고 실용적이에요. 게다가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무리 없이 작동하죠. 흰색 배경, 검은색 글자, 밑줄이 그어진 파란색 링크 같은 기본 스타일이 적용돼 있는데. 이 웹사이트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추구하는 바를 여실히 드러냅니다.

최초의 웹사이트만큼은 아니지만 일본의 배우 아베 히로시(阿部寛)의 공식 웹사이트도 좋아해요. 『릿터』 24호에도 이와 관련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1996년 무렵 팬이 만든 웹사이트를 배우가 공식 웹사이트로 삼으면서 지금까지 당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죠. 얼핏 웹 기술에 갓 입문한 사람이 만든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도 최신 정보가 업데이트돼요. 배우의 과거 사진, 에세이 등 쉽게 접하기 어려운 정보도 싣고 있고요. 한 웹사이트가 25년여 동안 같은 스타일을 유지하는 데는 여전히 구형 해치백을 몬다는 배우의 취향도 어느 정도 작용했겠죠?
앞서 소개한 두 웹사이트는 그동안 쌓인 시간 덕에 설명하기 어려운 아우라가 느껴집니다. 콘텐츠가 디자인을 장악하는 증거죠. 장영혜 중공업이나 양혜규 선생님의 웹사이트 또한 비슷한 맥락에 있습니다. 콘텐츠가 아름답다면 스타일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모든 경우에 적용할 수는 없겠지만, 많은 경우 그렇게 적용할 수 있게끔 국면을 편집할 수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