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2015년 이래 진행한 길고 짧은 인터뷰를 꼼꼼히 정리한 뒤 다시 무작위로 늘어놓은 「자주 하는 질문」을 통해 회사 또는 운영자에 관한 궁금증이 모쪼록 해소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단, 질문의 시기에 따라 현재와 다른 사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편, 질문의 어조에 따라 언급한 인물에 대한 존칭을 생략하기도 했습니다. 「자주 하는 질문」을 섭렵한 뒤에도 궁금증이 도무지 해소되지 않는다면 [email protected] 앞으로 소상히 말씀해주세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인정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단, 답장은 이메일 대신 언젠가 「자주 하는 질문」에서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미술계를 돌아보는 전시를 기획하려 하는 큐레이터입니다. 온라인 전시를 위한 웹사이트를 구축하며 일부는 기획에도 참여한 적이 있다고 들었는데, 절적한 전시명이 있을까요?
많은 전시에서 자연스럽게 사용된 문장을 본받아 ‘별도의 오프닝은 없습니다’는 어떨까요?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졸업생입니다. 웹사이트를 만들 때 글자를 독특하게 구사해본 경험이 있나요?
명확한 이유가 있다면 글자를 독특하게 구사할 필요가 있겠지만, 그런 상황 자체를 함부로 만들지 않는 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태도를 견지하다보면 아무래도 콘텐츠에 더 집중하게 되거든요. 웹사이트가 하나의 이야기라면, 어떻게 이야기할지보다 무엇을 이야기할지를 먼저 생각하는 거죠. 실제로 가로세로 1픽셀 정방형만큼은 그게 더 중요하고요. 얼마 전에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학생분들을 대상으로 강연할 기회가 있었는데, 여기서 『웹사이트 탄소 계산기』(Website Carbon Calculator)라는 웹사이트를 소개했어요. 이 웹사이트는 여러 웹사이트가 발생시키는 탄소를 수치화해 보여주는데, 이를 통해 웹이 결국 화석 연료에 기반하고, 웹사이트가 무거울수록 환경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상기할 수 있습니다. 2020년 연평균 이산화탄소 농도가 413.2 ppm으로, 산업화 이전(278.0 ppm)보다 48퍼센트 정도 증가했다고 해요. 이미지, 영상, 애니메이션 등 시각적인 부분에 집중할수록 웹사이트가 무거워지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제가 극단적인 환경론자는 아니지만, 웹사이트를 가볍게 만드는 게 조금이나마 인류에 공헌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싶어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모든 생산 활동의 기저에는 어떤 대상을, 나아가 생산자 자신을 소개하고픈 소중하고 아름다운 욕망이 자리한다고 주장해왔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결국 모든 건 ‘소개’로 수렴하는 것 같다.
정확하다. 결국 어떤 대상을 어떻게(취향), 얼마나(야심) 소개하는지에 달렸다. 온라인 전시뿐일까?
웹사이트에서 콘텐츠를 다루는 방식에서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전략은?
영업 비밀이 드러날 수 있으므로 자세히 밝히기는 곤란하지만, 좋아하는 몇 가지 방식을 소개할 수는 있겠다. 하나는 ‘화면 가운데에 맞춘, 화면 너비에 크기가 비례하는 글자’다. 타이포그래피의 여러 강조법 가운데 특히 ‘가운데 맞추기’를 좋아하는데, 가장 단순하면서 효과적인 강조법이라는 생각에서다. 특히 화면 가운데 놓이면 어떤 권위를 생기기도 한다. 좋아하는 만큼 즐겨 사용하기도 한다. 이렇게 범용적인 스타일을 구축한 뒤에는 콘텐츠 자체에 관해서만 고민할 수 있다.

또 하나는 ‘무작위’다. 웹사이트에 접속할 때마다 새로운 또는 생경한 느낌을 주려는 의도다. 가나다순, 알파벳순, 게시 날짜 역순 등 기본적인 콘텐츠 정렬 순서 탓에 눈에 잘 띄지 않는 콘텐츠를 위한 장치이기도 하고, 수많은 디자인적 선택에 따른 책임을 함수(function), 즉 컴퓨터에 전가하려는 태도이기도 하다.



‘최소 입력, 최대 출력’을 지향한다. 즉, 콘텐츠를 굳이 여러 페이지로 나누기보다 한 페이지 안에서 기본적인 열람 방식인 상하 스크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사용자의 클릭이나 터치 또한 노동력이 필요하므로 이를 최소화하려는 의도다.


콘텐츠를 한 화면에 배치하기보다 레이어별로 세분화하고, 여기에 모션이나 시퀀스를 부여하는 등 시간이라는 요소를 도입하기도 한다.

웹 브라우저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콘텐츠는 반드시 웹 브라우저의 주 화면에만 놓이지 않는다. 예컨대 제목 표시줄이나 패비콘(Favicon), 웹 조사기를 활성화한 뒤에 볼 수 있는 소스 코드나 콘솔(console) 화면 또한 웹사이트의 일부분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도메인, 즉 웹사이트 주소 또한 웹사이트에서 파생된 콘텐츠다. 김뉘연과 전용완의 웹사이트 주소(http://kimnuiyeon.jeonyongwan.kr)가 좋은 보기다. 도메인은 크게 주 도메인(main domain)과 보조 도메인(subdomain)으로 나뉘는데, 보조 도메인(김뉘연)은 주 도메인(전용완) 없이 성립할 수 없고, 보조 도메인(김뉘연) 없이 주 도메인(전용완)만으로는 웹사이트에 접속할 수 없다. 듀오로 활동하는 생산자의 웹사이트에 개념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적합한 도메인 형태 아닐까 싶다. 게다가 그 덕에 조금 길긴 하지만, [email protected](김뉘연)과 [email protected](전용완) 같이 아주 근사한 이메일 주소가 탄생했다.

한편,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함께 일하는 사람에 관해서도 알게 되고, 나아가 일을 통해 그에게 깜짝 선물 같은 걸 건네고픈 생각이 들기도 한다. 웹사이트 어딘가에 이스터에그처럼 서로만 알 수 있는 특정 요소를 굳이 숨겨놓는 까닭이다. 헛웃음이나 코웃음일지라도 그가 그것을 발견하고 웃음 짓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다. 일종의 사랑이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숙주를 떠나 독립할 가능성이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없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숙주를 떠나는 순간 폐업할 수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수많은 요청에도 사업자 등록증을 발급받지 않은 까닭입니다. 코로나19 이후 많은 산업의 기반이 흔들리는 오늘날 회사가 생존할 가능성을 키우는 마지노선입니다.
그래픽 디자인 듀오 슬기와 민의 소개처럼 저술가, 번역가, 프로그래머, 디자이너 등 여러 직함이 붙지만 ‘편집자’라는 직함을 고수한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하는 일들이 ‘편집’과 어떤 관련이 있나요?
출판 분야에서 ‘편집(editing)’은 교정과 교열 같은 협소한 의미로 사용되곤 하지만, 저는 편집을 창작을 포함한 행위로 간주합니다. 제가 ‘편집’이라는 행위를 처음 의식한 건 1990년대 초 컴퓨터를 처음 접하고 게임에 한창 몰입하던 시절이었어요. 흔히 ‘게임 에디터’로 통칭하던 소프트웨어를 이용하면 게임의 데이터베이스를 조작해 캐릭터의 능력치뿐 아니라 게임 자체를 수정할 수 있었죠. 즉, 제가 처음 접한 편집은 ‘어떤 공고한 틀을 그 안팎에서 지배해 국면을 제어하는 일’이었어요. 이 생각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웹사이트를 만들 때뿐 아니라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작품을 전시할 때도 편집자의 마음으로 임합니다. ‘편집자’라는 말이 주는 무미건조함도 마음에 들고요. 다만 제가 다루는 편집의 영역이 넓어지다 보니 정작 제가 담당한 책 출간이 늦어지고 있어요. 얼마 전에 출간된 『실전 격투』도 가까스로 작업했죠. 저를 이해해주시고, 아무 말 없이 기다려주시는 필자, 번역가 분들께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안부를 전하고 싶습니다.
디자인이나 코딩 같은 기술을 독학으로 익혔다. 또는 일반적인 교육 과정을 통해 습득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 결과, 이제껏 접한 경향들과는 거리가 있는데, 자신에게 필요한 기술을 어떻게 습득하는지, 그 전략이 궁금하다.
일곱 살 무렵 처음 컴퓨터를 접했고, 열한 살 무렵 처음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코딩 이전에 컴퓨터를 다루는 건 내게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대학교에서는 문학과 언어학을 공부했고, 그래픽 디자이너 안상수 선생의 연구실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그 뒤에는 안그라픽스를 거쳐 워크룸에서 편집자로 일한다. 디자인은 실무에서 익혔다. 운 좋게 주위에 늘 훌륭한 선생을 비롯해 실용적인 기술과 유연한 태도를 겸비한 동료들이 있었고, 그들이 디자인에서 맞닥뜨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지켜보는 게 중요한 학습 과정이었다.
2017년 최성민 선생의 추천으로 그래픽 디자이너 밥 길(Bob Gill)의 『Forget all the rules about graphic design. Including the ones in this book.』을 한국어로 번역하고 편집한 과정도 도움이 됐다. 책은 그 자체로 훌륭한 디자인 교과서였다. 한편, 책뿐 아니라 30여 년 동안 인터넷에 축적된 정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자신을 열성적인 학생으로 치환할 수 있다면 학위와 무관하게 인터넷은 꽤 괜찮은 학교다. 잘못된 정보가 있기는 하지만, 이를 감별해내는 일 또한 학습의 일부다. 기술을 습득하는 데 필요한 동력은 문학과 언어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또 편집자로서 글을 읽고 쓰는 일을 충분히 훈련한 덕에 나오는 것 같다. 기술에 관한 정보는 대개 글이니까.
온라인에서 열람하는 작품과 오프라인 작품의 차이는 얼마나 극복돼야 할까?
차라리 처음부터 작품이 온라인과 오프라인, 두 가지(branch)로 존재할 수 있는 여지를 염두에 두면 어떨까? 또는 작품의 원본은 온라인에 두고, 작품이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번역되는 과정이 오프라인 작업의 요소가 되는 건?
이런 웹사이트를 선물받는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매년 생일이 기다려질 것 같아요. 그렇다면 웹사이트를 만드는 데 한계는 없을까요?
웹사이트를 예술적 매체로 바라보는 관점은 흥미로운 동시에 여러 도전과 마주합니다. 이는 기술과 예술, 상업성과 창의성, 접근성과 실험성 사이의 긴장을 낳지만, 이 긴장은 웹사이트를 더욱 풍부하고 다채로운 매체로 만들어주죠.
2018년에는 민간인의 첫 번째 달 여행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다가오는 우주 시대를 위한 대비책이 있다면?

루나 엠버시(Lunar Embassy)를 통해 달에 1에이커(약 1,224평)짜리 부동산을 마련해두긴 했습니다. 일론 머스크 관련 기사도 틈틈이 챙겨보죠. 최근(2021년 4월)에는 이런 말을 했더군요.
솔직히 초기엔 많은 사람들이 죽을지도 모른다. 이는 영광스러운 모험이자 놀라운 경험이 될 것이다. 불편하고 입맛에 안 맞게 들릴 수도 있지만, 당신도 죽을 수 있다.
동시에 넷 아트는 인터넷, 웹과 함께 발전했다. 이 흐름 속에서 넷 아트(Net Art)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전과 함께 기존 (미술) 제도와 관료주의로부터의 독립에서 비롯한 넷 아트는 태생적으로 무정부주의와 관련이 있다. 넷 아트에 관해서는 주고받을 질문과 답변이 제법 많겠지만, 오늘은 위키백과의 ‘넷 아트’ 페이지에 실린 다이어그램을 소개하는 게 좋겠다. 1997년 넷 아트 듀오인 MTAA(M.River & T.Whid Art Associates)가 제안한 이 다이어그램에서는 컴퓨터 두 대가 케이블을 통해 연결돼 있고, 그 사이 어딘가에서 ‘아트’가 일어난다. 컴퓨터와 연결성이라는 넷 아트의 조건과 제약을 간명하게 드러내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온라인상에서 이제는 과연 무엇이 넷 아트가 아닐 수 있을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잠깐 기억을 더듬어 보자. 내가 처음 경험한 한국의 넷 아트는 조경규와 바다가 운영하던 ‘피바다학생전문공작소’였다. 한창 ‘웹 서핑’에 심취하던 1990년대 말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웹툰 ‹오무라이스 잼잼›(2010–)으로 널리 알려진 조경규는 당시 웹사이트에 하드고어한 드로잉과 만화를 연재했고, 이따금 단편영화나 전자 음악을 선보이기도 했다. 미국 유학 시절에는 온라인 라디오를 운영하며 근황을 전하곤 했다. 미리 녹음한 음성 파일을 내려받아 듣는 방식이었는데, 유튜브가 등장하기 전에 개인 미디어로서 웹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사례라 생각한다. 그 뒤 2004년 로댕 갤러리에서 장영혜 중공업의 «문을 부숴!»를 관람했고, 2018년 미술 평론가 겸 기획자 이한범이 기획한 «픽션-툴: 아티스트 퍼블리싱과 능동적 아카이브»(인사미술공간)에 참여하면서 2000년 무렵 김범의 ‹유틸리티 폴더›(Utility Folder, 2000) 같은 작품도 있었음을 뒤늦게 알았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웹사이트는 무엇인가?
애플(Apple)처럼 적당히 단단하면서 상큼한 것, 또는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처럼 미세하고 부드러운 것 사이에 있는 어떤 것.
계원예술대학교 학생입니다. 아르바이트 탓에 특강에 참석하지 못했는데, 다시 들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2015년부터 “안그라픽스를 거쳐 워크룸에 기생하는 1인 회사”인 민구홍 매뉴팩처링(Min Guhong Manufacturing)을 운영한다. 2019년부터는 “회사, 즉 민구홍 매뉴팩처링 자체를 소개하는 데 주력한다.” 회사에도 변화가 있는가? 얼마 전에는 인턴이 입사했다고 들었다.
네덜란드 아른험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는 한국인 학생으로, 회사에는 두 번째 인턴이다. (첫 번째 인턴은 영광스럽게도 현재 누구보다 활발히 활동하는 송예환 씨였다.) 학교에서는 졸업 학기를 인턴십으로 갈음한고 한다. 인턴십이 실무 현장을 경험해보는 기간일 뿐 아니라 수업의 연장인 만큼 인턴에게는 다음과 같은 임무를 제시했다.
인터넷, 논문, 일간지, 단행본, 잡지, 주위의 소문 등을 통해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관해 조사한 사실을 바탕으로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어떤 회사인지 규정하고, 그에 걸맞는 로고를 제안한다. 이 과정에서 로고는 납작한 그래픽만으로 제한하지 않는다. 즉, 로고는 규정한 바에 따라 덜 납작한 그래픽, 시, 소설, 만화, 음악, 영상 등이 될 수 있다. 단, 로고는 어떤 대상을 상징하거나 은유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목적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디자이너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한편으로는 얼마간 수행적인 이 작업은 네덜란드 밖에서만큼은 가장 까다로운 클라이언트인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제안을 납득할 때까지 계속된다. 작업의 진행 상황을 정리한 결과물은 인쇄물, 웹사이트 등으로 출판한다. 이는 「인턴 일지」 작성을 포함해 민구홍 매뉴팩처링 인턴으로서 수행할 업무의 고갱이다.
인턴은 자신이 조사한 사실을 바탕으로 로고 없는 회사에 여러 매체를 통해 로고를 제안하면서 여러 매체를 다뤄보고 동시에 (신출내기 그래픽 디자이너에게는 어쩌면 숙명인) 거절당하는 일에 익숙해진다. 한동안 원격으로 일하던 인턴은 코로나 때문에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갑자기 귀국하게 됐고, 회사뿐 아니라 동시에 회사가 기생하는 워크룸에서 한 달 동안 일했다. 월급은 워크룸에서 받았다. 어찌 보면 이중 기생인 셈인데, 그 덕에 인턴은 앞으로 이력서에 두 회사, 즉 민구홍 매뉴팩처링과 워크룸에서 일했다는 경력을 기입할 수 있게 됐다. 지금은 업무 차 제주도로 출장을 간 상태다. 좋은 일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회사나 인턴 모두 코로나 덕에 생각지 못한 경험을 하게 됐다.
한편, 몇 달 전에는 이름을 밝힐 수 없는 회사 두 곳에서 제법 파격적인 조건으로 인수 제안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당분간은 워크룸에 기생하기로 했다. 회사의 궁극적인 목표가 운영자, 즉 나의 행복이기 때문이다. 두 제안 모두 수락했을 때 불행해지지는 않겠지만, 지금보다 극적으로 더 행복해진다는 보장이 없었다. 방탄소년단의 제이홉도 「Answer: Love Myself」에서 읊지 않았던가.
오, 지금 날 위한 행보는 바로 날 위한 행동 / 날 위한 태도 / 그게 날 위한 행복 / I’ll show you what I got / 두렵진 않아 그건 내 존재니까 / Love myself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교에서 순수 미술을 전공하는 학생입니다. 제가 왜 이 이메일을 쓰고 있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학생 신분으로 사무실에 방문할 수 있을까요? 이번 여름 한국에 돌아가 (물론 자가 격리를 마친 뒤) 견학해보고 싶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워크룸’이라는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겸 출판사에 기생하고 있습니다. 견학에 관해서는 먼저 워크룸 구성원 분들에게 여쭤봐야겠지만, 무리가 없다면 가능할 듯합니다. 그런데 회사라는 게 그렇듯 실제로는 별것 없을지도 몰라요. 중요한 건 회사에 기생하는 회사라는 국면 아닐까요? 어쨌든 한국에 오신다면 (그런데 오직 견학 때문은 아니겠죠?) 편하게 연락 주세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여러 방식으로 회사, 즉 민구홍 매뉴팩처링 자체를 소개하는 일’을 주 업무로 삼는 까닭이 궁금합니다.
오늘날 분야를 떠나 모든 생산 활동의 기저에는 크든 작든 생산 주체, 즉 자신을 소개하고픈 소중하고 아름다운 욕망이 자리합니다. 이 점에서는 이우환 선생이나 버질 아블로(Virgil Abloh)나 마포평생학습관에서 개인전을 연 미술가나 별다를 게 없습니다. DDDD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순진하리만큼 그 욕망에 충실하려 합니다. 단지 회사로서 조금 더 의식하고 양식화해 드러낼 뿐이죠.
회사 밖에서는 주로 무엇을 하나요? 너무 사적인 질문일까요?
궁금하시다면 밝힐 수 있는 만큼 밝혀야죠. 오래전에 “일이 곧 생활이 돼야 한다.”라는 가르침을 받은 뒤로 일과 생활을 철저히 구분하는 편입니다. 전염병이 확산하던 초기에 며칠 동안 집에서 일해봤는데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더라고요. 꼬마 때부터 알고 지낸 한국의 1세대 웹 아티스트 겸 『오무라이스 잼잼』의 작가 조경규 형은 집을 일터 삼아 놀면서 일한다고 해요. 형을 좋아하지만 이 점만큼은 저와 전혀 맞지 않더라고요. 책은 회사에서 충분히 읽으니 집에서는 주로 소파에 누워서 TV를 봐요. 그러다 저도 모르게 잠에 빠지기도 하고요. 해가 지고 선선한 바람이 불면 집 근처 경의선숲길이나 연희동 골목을 산책하죠. 요즘에는 한동안 뜸했던 클라이밍과 작곡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웹사이트를 만드는 데 필요한 비용은 어느 정도가 적절할까? 비용 앞에서는 누구나 숨을 죽이게 되는 만큼 어쩌면 가장 중요한 질문일지 모른다.
일정, 웹사이트의 규모나 필요한 기능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적게는 몇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이 들기도 한다. 작업자마다 요율도 다를 것이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단행본 한 권을 제작하는 데 필요한 전체 비용을 기준으로 삼는 편이다. 기획, 편집, 디자인 같이 매체와 무관한 일뿐 아니라 제작, 유통, 관리 등도 웹사이트를 만드는 일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비용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도메인 구입 비용, 서버를 임대하는 비용, 트래픽이 초과됐을 때 트래픽을 초기화하는 비용 등이다. 모든 프로젝트의 예산이 넉넉한 건 아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고객의 마음을 헤아려 어떤 방식으로든 일이 진행되도록 예산에 적합한 방식을 제안하기도 한다. 대신 ‘회사 소개’라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주업무에 입각해 어떤 방식으로든 회사를 소개해달라고 주문하는 식이다.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입니다. 코딩을 처음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해주고 싶은 말은?
우화 삼아 제가 처음 웹사이트를 만든 계기를 이야기하곤 합니다. 열한 살 무렵이던 1995년 처음 웹사이트를 만들었습니다. 당시 제가 사랑하던 친구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였죠. 콘텐츠나 디자인 이전에 단순하지만 명징한 목표가 있었죠. 목표가 단순하고 명징하다면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즉, 자신의 야심과 취향에 따라 어떻게든 하게 되는 거죠. 사실 모든 게 그렇지 않나요?
앞서 말했듯 목표를 세우는 게 중요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우리가 말을 하게 되거나 글을 쓰게 되는 과정을 떠올려보면, 처음에는 그냥 이것저것 따라 해보는 게 필수적입니다. 엄마나 아빠의 말을 따라 하는 것처럼요. 글쓰기에서 이야기하는 다독, 다작, 다상량에서 다독에 해당하는 과정이죠. 그 과정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럽게 규칙을 체화하고, 규칙이 아닌 느낌에 따라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요.
나아가 어도비 소프트웨어처럼 세련된 아이콘이 즐비한 툴바가 없는 텍스트 에디터상에서 코딩이 이뤄지는 만큼 다른 접근 방법이 필요합니다. 예컨대 HTML을 익히고 텍스트 에디터상에서 다루다 보면 자연스럽게 콘텐츠를 콘텐츠의 맥락과 함께 구조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목은 제목으로, 문단은 문단으로, 이미지는 이미지로. 그렇게 HTML만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웹사이트가 아름다워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 또 다른 미감, 기준, 필터가 생겨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코딩 이전에 폴더와 파일 등 컴퓨터를 다루는 게 능숙해야겠죠.
스물다섯 살의 구홍에게 위기는 어떤 모습이었나요? 언제 위기를 느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스물다섯 살 때는 지금으로부터 16년 전인 2009년입니다. 2007년 여름에 입대했으니, 전역하고 바로 복학한 시점일 거예요. 우연한 기회에 홍익대학교 안상수 선생님을 만나 선생님 연구실인 ‘날개집’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던 때입니다. 사실 위기를 인식하려면 대개 어떤 정답을 기준으로 삼고, 자신의 지금을 가늠하고, 그 둘 사이에서 불안감을 감지해야 할 텐데, 저는 별 생각 없이 지냈던 것 같아요. (그렇듯하게 포장하면, 어떤 정답이란 게 늘 의심스러웠죠.) 별 생각이 없었으니 위기라는 것도 없었고, 심지어 별 생각이 없는 것조차 불안하지 않았죠.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위기라는 건 누군가 만들어놓은 언어의 틀, 언어의 심연에 발을 담글 때 나도 모르게 젖어드는 것 같아요.
대학교 졸업 예정자입니다. 내년 상반기에 직원이나 인턴을 채용할 계획은 없나요?
상반기는 물론이고 하반기에도 없습니다. 회사에서 제공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운영자가 사용하는 책상의 일부 공간, 스툴, 사원(인턴)증, 명함, minguhongmfg.com을 도메인 네임으로 한 업무용 이메일 주소뿐이거든요.
워크룸은 민구홍 님에게 첫 번째 직장이었나요? 그곳에 다니기 전부터 워크룸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나요? 출판사이자 디자인 스튜디오인 그곳에서 일을 시작한 것이 지금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운영하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쳤나요? 워크룸에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이 있다면 무엇이었나요?
시적 연산 학교에 합격한 무렵 워크룸의 박활성 선배에게 연락을 받았어요. “같이 일합시다.” 박활성 선배를 비롯해 김형진, 이경수 선배는 안그라픽스에서 ’16시’를 기획하면서 처음 만났어요. 그 뒤로 좋아하고, 또 존경하는 선배였고, 당연히 그들과 일하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죠. 그렇게 학교를 마치고 귀국한 뒤 자연스럽게 워크룸에 입사하게 됐습니다. 사실 워크룸의 제안이 없었다면 저는 지금도 미국에 있었을 거예요. 동기들처럼 작가로 활동하거나 학교에 출강하면서요. 워크룸에서 제 역할은 편집자였지만, 가장 먼저 한 일은 밥 길(Bob Gill)의 『이제껏 배운 그래픽 디자인 규칙은 다 잊어라. 이 책에 실린 것까지.』(Forget all the rules about graphic design. Including the ones in this book.)를 한국어로 번역하고, 워크룸 웹사이트와 워크룸 프레스 웹사이트를 개편한 일이었어요. 워크룸이 구성원의 역할을 엄격하게 규정하지 않은 덕에 가능한 일이었죠. 그 뒤 ‘실용 총서’ 등 여러 책을 기획하고, 미술 및 디자인계 안팎의 크고 작은 웹사이트를 만들며 사람을 대하고 일하는 방법을 배웠죠. 이 과정에서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널리 소개할 수 있게 됐고요. 워크룸 덕에 30대 초중반을 정말이지 행복하게 보냈습니다.
누군가 민구홍 님을 ‘웹 디자이너’로 부른다면 정당한 표현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만약 ‘웹 디자이너’라는 단어와 불일치를 느낀다면 무엇 때문인가요?
2022년 『더플로어플랜』(The Floorplan)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저를 무엇으로 규정하는지는 그저 상대방에게 맡기고 싶습니다. 제가 생각지 못한 직함이 튀어나오고, 그에 따라 상대방을 대하는 제 태도도 달라지는 게 재미있고요. 그렇게 저는 상대방에 따라 편집자뿐 아니라 작가, 선생님, 나아가 남편이나 애인이 되기도 하겠죠.” 여러 직함으로 불리곤 하지만, 저는 무엇보다 ‘편집자’에서 풍기는 무미건조함이 마음에 듭니다. 이는 ‘편집’이라는 행위가 아우르는 범위가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비롯합니다. 아주 넓기도 하고, 아주 좁기도 하죠. 저는 디자인 또한 편집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편집과 디자인을 동시에 경험해본 분은 제 말 뜻을 아실 거예요.
좋아하는 과일 다섯 가지를 밝힌다면?
100그램당 칼로리와 함께 큰 것부터 작은 것 순으로.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기술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기관, 단체, 기업, 개인 등과 협업하기도 한다. 형태는 웹사이트 구축이나 소프트웨어 개발뿐 아니라 저술, 번역 등 다양하다. 민감한 질문일 수 있는데, 기술 지원 비용은 보통 어떻게 책정하는 편인가?
민감할수록 분명히 밝혀야 한다. 게다가 많든 적든, 길든 짧든 회사의 노동력과 시간을 투여하는 만큼 이는 회사의 생존 측면에서 중요한 문제다. 하안선은 있지만 서로 어색해지 않는 선에서 많을수록 좋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어떤 식으로든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소개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하안선을 충족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회사를 적극적으로 소개하는 것으로 갈음하기도 한다. 예컨대 소설가라면 4대 문예지 가운데 한 곳에 회사에 관한 작품을 발표해야 하는 식이다.
한편,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디자인 에이전시였다면, 908A를 운영하는 강이룬 선배의 조언을 기준으로 삼았을 것이다.
사람, 돈, 포트폴리오 가운데 하나만 충족하면 된다.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2021년의 트렌드 또는 문화 현상은?
지금까지 경험해본 바로는 이해할 수 없는 대상과 사랑에 빠지는 건 이따금 감행해볼 만한 일이다.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되리라는 것을 예감하더라도 몸과 마음을 그저 흐름에 맡겨보는 것이다. 2021년의 트렌드 가운데 특히 메타버스(Metaverse)와 NFT(Non-Fungible Token)는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고, 사실 이해하고픈 마음도 별로 일지 않지만, 분위기상 한동안 이야깃거리가 되리라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도 여기에 한 발 담글 수 있는 여지가 없을지 기회를 엿보고 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아닌 민구홍이 누구인지 소개해줄 수 있는가?
마침 최근(2021년 4월)에 약력을 업데이트할 기회가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동력은 순전히 한 구절씩 약력을 편집하고 업데이트해가는 즐거움이었던 것 같다.
중앙대학교에서 문학과 언어학을, 미국 시적 연산 학교(School for Poetic Computation, SFPC)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하지만 ‘좁은 의미의 문학과 언어학’으로 부르기를 좋아한다.)을 공부했다. 안그라픽스를 거쳐 워크룸에서 편집자 겸 디자이너 겸 프로그래머(하지만 ‘편집자’라는 명칭을 고수하려 한다.)로 일하며 ‘실용 총서’ 등을 기획하는 한편, 1인 회사 민구홍 매뉴팩처링(Min Guhong Manufacturing)을 운영하며 기관, 기업, 단체, 개인 등과 여러 방식으로 회사, 즉 민구홍 매뉴팩처링 자체를 소개하는 데 주력한다. 회사와 회사의 제품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대림미술관, 더 북 소사이어티, 레프트 갤러리(Left Gallery), 문화역서울 284, 서울시립미술관, 시적 연산 학교, 시청각, 아카이브 봄, 아트선재센터, 원룸, 인사미술공간, 취미가, 탈영역 우정국, 프루트풀 스쿨(Fruitful School), COS 프로젝트 스페이스, DDDD, 『릿터』, 『빅이슈』 등에서 소개된 바 있다. ‘현대인을 위한 교양 강좌’를 표방하는 「새로운 질서」에서 실용적이고 개념적인 글쓰기로서 코딩을 가르치며, 계원예술대학교,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국민대학교, 더 북 소사이어티, 도쿄예술대학, 스튜디오 파이, 워크룸, 이화여자대학교, 취미가, 프루트풀 스쿨, 홍익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whatreallymatters 등에서 특강과 워크숍을 진행했고, (설립 과정에 참여하기도 한)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에서 강의했다. 지은 책으로 『새로운 질서』(미디어버스, 2019)가, 옮긴 책으로 『이제껏 배운 그래픽 디자인 규칙은 다 잊어라. 이 책에 실린 것까지.』(작업실유령, 2017)가 있다. 2021년부터 오로라(Aurora)의 일원으로 활동한다.

또는 민구홍의 웹사이트를 참고하는 것도 좋겠다.
이제껏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기술을 거친 크고 작은 웹사이트를 가지런히 정렬해 열람하고 싶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워크룸의 단행본 편집자인 한편, 웹에도 관심이 적지 않다. 두 매체를 구분하는 것의 장점과 단점이 무엇일까? 두 매체를 오가면서 어떤 이유에서 각 매체를 선택하는가?
웹은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회사를 소개하기 위해 활용하는 매체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웹의 비중이 적지 않기 때문에 이따금 웹 디자인 에이전시로 오해받곤 한다. 회사에서 웹을 주로 이용하는 까닭은 다루기 쉽고, (인쇄물에 비해) 파급력이 클 뿐 아니라 무엇보다 많은 사람이 잠들기 직전에 마주하는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 경이 과학자들끼리 효율적으로 논문을 공유할 목적으로 웹을 발명한 만큼 역사적으로 웹은 인쇄물에서 출발했다.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의 측면에서 웹은 태생적으로 인쇄물의 장점을 포섭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발전을 거듭한다. 따라서 둘을 같은 출발선상에 놓고, 일대일로 비교하기보다는 인쇄물을 웹의 조상, 웹을 조금 더 진보한 인쇄물로 여기는 편이 이롭다. 당장 생각 나는 둘의 분명한 차이가 있다면 웹은 책을 손에 쥐었을 때 느껴지는 흡족함을 주지 못한다는 점과 책과 달리 영원히 베타 버전이라는 점이다.
원래 이렇게 센스가 넘치나요?
워크룸에서 지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되는 것 아닐까요?
민구홍 매뉴팩처링 공식 웹사이트는 5년 동안 같은 모습을 유지합니다. 특별한 까닭이 있나요?
일반에 공개된 세계 최초의 웹사이트가 30여 년 동안 같은 모습을 유지하는 까닭과 다르지 않습니다.
앞선 사례는 콘텐츠와 기술이 온라인 전시를 기획할 때 참고할 만하겠다. 그 밖에 프로젝트에서 웹사이트를 적극적으로 이용한 사례를 소개한다면?
웹사이트의 아름다움은 실용적으로 작동할 때 배가된다. 예컨대 웹사이트가 처음부터 프로젝트를 이끄는 경우다. 워크룸에서 패션 브랜드 디스이즈네버댓(thisisneverthat)과 작업한 ‹디스이즈네버디스이즈네버댓›(thisisneverthisisneverthat, 2020)은 사실 처음에는 예정에 없었다. 웹사이트는 단행본에 실을 3,000여 가지 항목의 정보를 정리하는 도구였다. 이미지를 포함해 제품명, 제품 코드, 종류, 색, 재질 등 여러 정보를 정리하기에 엑셀이나 구글 스프레드시트를 사용하면 데이터를 재가공하는 데 불편함이 따랐다. 처음에는 프런트엔드가 없는, 데이터베이스만을 관리하는 헤드리스(headless) CMS 같은 형태였는데, 데이터베이스가 쌓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정식 웹사이트로 확장됐다. 이와 같이 웹사이트가 전통적인 인쇄물의 역할만 수행한다면, 이는 웹사이트가 지닌 수많은 가능성을 포기하는 꼴이다.

이번 ‹타이포잔치 2021› 작업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도록에 실릴 콘텐츠 또한 일차적으로 작업 도구로 구축된 웹사이트상에서 편집됐다.


김익현, 박가희, 이미지가 기획한 «우리는 바다에서 왔다»(2021)에서는 ‘오가사와라 키트’로 부르는 와이파이 공유기를 활용했다. 우선 참여자의 이름, 거주 지역,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 등을 취합해 분석하는 모객용 웹사이트를 만들고, 국내 신청자에게는 특정 링크를, 해외 신청자에게는 ‘오가사와라 키트’를 발송했다. 공항이나 스타벅스에서 인터넷에 연결하는 경험에서 착안해 본 웹사이트는 오가사와라 키트를 통해서만 접속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웹사이트 이전에 인터넷에 접속하는 행위 자체를 다뤄보려 했다.

미국 뉴욕의 시적 연산 학교(School for Poetic Computation, SFPC)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공부하셨죠. 서울과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미술가 최태윤 씨를 주축으로 시인, 프로그래머, 디자이너, 수학자, 발명가 등이 뜻을 모아 설립한 학교로 들었는데, 거기서 무엇을 배우셨나요?
5년여 동안 일한 안그라픽스를 그만둘 무렵 우연히 알게 된 학교예요. 일단 ‘시’와 ‘연산’이라는 서로 어울리지 않을 법한 어휘를 조합한 학교 이름과 평소 좋아하던 시인인 케네스 골드스미스(Kenneth Goldsmith)가 출강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아쉽게도 제가 있던 시기에는 출강하지 않았지만요.) 처음에는 단순히 컴퓨터를 통해 뭔가 이상한 걸 해보는 학교로 생각했는데, 실제로 마주한 학교는 생각보다 훨씬 더 이상했죠.
학교에서는 예술과 컴퓨터에 관한 개념적이고 실용적인 수업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진행됐어요. 뉴욕은 지하철이 24시간 운영되기 때문이었을까요? 특강이나 워크숍이 있는 날은 밤 늦게 끝나기도 했죠. 주말에도 학교에서 생활하면서 일반 학교에서 몇 학기 동안 익히고 고민할 내용을 짧은 시간 안에 소화해야 했죠. 특히 시인이자 MIT의 디지털 미디어 부문 교수인 닉 먼포트(Nick Monfort)의 수업에 열심히 참여했습니다. 학생들도 화이트 해커, 형사학 전공 대학원생, 건축가, 무용수, 일렉트로닉 음악가 등 다양했어요. 예컨대 제 코딩 컨벤션 선생님은 프랑스에서 제빵사로 일하던 친구였죠. 며칠 전에도 연락했는데 요즘에는 터키식 디저트인 카이막(Kaymak)을 만드는 데 심취해 있더군요.
단, 이 학교는 기술을 처음부터 하나하나 가르쳐주는 친절한 학교는 아니에요. 적어도 컴퓨터 언어에 익숙해야 수업을 따라가는 데 무리가 없죠. 선생님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힌트를 제공하면, 학생은 이를 이정표 삼아 인터넷을 헤매면서 자신의 욕망과 기술적 한계를 인식하고 우회 전략을 고안해야 했어요. 기술 자체가 아니라 어떤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지가 중요하기 때문이죠.
학교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제가 배운 시를 쓰는 방법과 프로그래밍은 비슷한 점이 많아요. 시적 대상(입력)과 시(출력), 그 사이에 시적 인식(함수)가 있다는 점에서요. 이런 관계를 시적 연산 학교에 다니면서 더욱 분명하게 느꼈습니다. 그곳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이 아니라 ‘좁은 의미의 문학과 언어학’을 배웠다고 말하는 걸 좋아하는 이유예요.
한편, 이때는 뉴욕을 중심으로 갈수록 복잡해져가는 웹 기술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는 움직임이 시작되던 때였어요. 동시에 그래픽 디자이너 사이에서 ‘콘텐츠 중심 웹’에 관한 논의도 활발해졌고요. 늘 생각해오던 바를 이미 실천하는 친구들과 교유하면서 저도 용기를 얻었죠. 자신을 ‘가장 친한 미국인 친구’로 소개해달라는 로럴 슐스트(Laurel Schwulst)도 이때 만난 친구예요. 저와 비슷한 또래로, 앞서 소개한 움직임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죠.
본인이 생각하는 최악의 클라이언트는?
프로젝트에서 얻을 수 있는 바는 결국 오랫동안 함께할 사람(클라이언트), 자랑할 만한 경력(포트폴리오), 경제적 이윤(돈)이다. 이 세 가지 꼭짓점이 정삼각형을 완성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삼각형만 만들어지면 프로젝트는 어쨌든 성공한 셈이다. 최악의 클라이언트와 일하더라도 다른 두 가지에서 보상을 얻으리라 믿는다면 어떨까?
당신은, 역할은 다르지만, 인쇄 매체와 디지털 매체를 함께 다룬다. 좋아하는 책을 아우를 만한 특징이 있나? 있다면, 좋아하는 웹사이트와는 어떻게 다를까?
얼핏 평온하고 순진해 보이지만 들여다볼수록 어딘가 불온해 보인다. (또는 그 반대.) 처음 세운 논리와 원칙을 끝까지 유지하며 동시에 부순다. 가볍다.
소비자로서 내용은 내게 유익하기만 하면 그만이다. 이는 아무래도 상대적이고 유동적이다. 예컨대 간식으로 먹을 파이를 만드는 데 칼 세이건(Carl Sagan)의 『코스모스』(Cosmos)는 내가 구운 ‘우주적’ 파이의 맛까지 보장해주지 않으니까.
형식에 관해서는 할 말이 좀 더 있다. 마이크로 타이포그래피는 완벽할수록 좋지만, 매크로 타이포그래피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앞표지에 예쁜 꽃 사진 한 장만 넣어도 충분할 때가 있다. 중요한 건 그게 수선화인지, 양귀비인지다.
한편, 나는 디자인 학교에서 넓게는 웹, 좁게는 인터랙티브 디자인을 가르치기도 한다. 학생들에게 웹사이트는 판형이 정해지지 않은, 부피와 무게가 없는 책이고, 책은 하이퍼링크와 스크롤바가 없는, 부피와 무게가 있는 웹사이트라고 말하곤 한다. 당신도 알다시피, 웹이 과학자들의 논문 공유를 통한 공동 연구를 위해 시작된 것처럼 웹사이트의 형식은 책에 많은 부분을 빚지고 있다. 언젠가 둘은 형식에서는 갈림길에서 헤어졌지만 목적지는 하나다. (둘이 가는 길은 테서랙트 안에 있는 것 같다.) 물론 이사할 때는 책이 훨씬 불리하다. 반대로 웹사이트는 ‘인쇄한(publish)’ 뒤에도 언제든 수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절제력과 결단력이 없으면 팔목터널증후군이 생길 가능성이 커지니 주의해야 한다.
책을 멘탈 푸드로 꼽는 분들도 계신데, 이 말에 동의하시나요?
사람마다 다르겠죠. 멘탈 푸드가 정신에 도움이 되는 무엇이라면, 책을 만드는 입장에서는 동의하기 어려워요. 저한테 책을 읽고, 보고, 만지고 하는 건 아무래도 일의 범주 안에 있으니까요.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온갖 책과 씨름하다가 퇴근한 뒤에는 웬만하면 책은 더 이상 대하고 싶지 않아요. 책을 만드는 게 즐거운 일이긴 해도 늘 옥수수수염차만 마실 수는 없잖아요. 여덟 시간 동안 책을 만들면서 한쪽으로 기울어진 정신은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이나 스릴러 영화, 민구홍 매뉴팩처링 같은 것으로 바로잡죠.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관한 소논문을 쓰다가 한 가지 문제에 봉착했습니다. 『레인보 셔벗』 포스터나 표지에 등장하는 인물은 누구인가요?

잘 모르겠습니다. 민구홍 씨가 아닌 것 만큼은 분명합니다. 해당 인물을 실은 전시 포스터를 처음 제안한 그래픽 디자이너 강문식 씨에게 여쭤보시면 어떨까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어떤 대상에 기생할수밖에 없는 운명이라 공공연히 밝혀왔다. 운명을 거스를 생각은 추호도 없는가? 숙주를 옮길 계획은?
2016년부터 2021년 현재까지 기생하는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겸 출판사 워크룸은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최적의 숙주가 됐다. 평일 가운데 4일만 출근하고, 소정 근로 시간에 맡은 업무만 무리 없이 수행하면 출퇴근도 어느 정도 자유로운 편이다. 그 과정에서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일이 워크룸의 일이 되거나 그 반대가 되기도 하고, 처음부터 별 구분 없이 진행되기도 한다. 5년 동안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해한 결과다. 이런 상황을 받아들일 만한 숙주가 또 있을까? 최근에 부족하다고 느끼는 건 허먼 밀러 에어론 체어 또는 휴먼 스케일 프리덤과 민구홍 매뉴팩처링 간판이다.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입니다. 이런 디자인을 해야겠다고 결정한 순간은?
질문을 받고 이참에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슬기와 민의 최성민 선생님 덕인 것 같아요. 더 정확히는 최성민 선생님이 추천해주신 밥 길의 책 번역을 맡으면서요. 제가 미국에서 돌아와 워크룸으로 자리를 옮긴 2016년 무렵이었는데, 그 책에 이런 말이 나오죠. “흥미로운 말에는 시시한 그래픽이 필요하다.” 반대로 “흥미로운 그래픽에는 시시한 말이 필요하다.”라는 말도 있었죠.
무엇보다 말과 그래픽, 콘텐츠와 디자인, 내용과 형식, 두 가지의 균형이 중요하다는 뜻일 텐데, 이는 제가 늘 고민하던 바, 나아가 이제껏 제 마음을 움직이던 작품의 정체를 명쾌하게 정리해주는 말이었어요. 그 뒤로는 같은 말이라도 국면에 따라 뜻이 달라진다는 화용론(話用論, Pragmatics)에 심취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말이 흥미로워지는 국면을 찾아보거나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우연일지 모르지만, 안상수 선생님이든 최성민 선생님이든 저를 디자인하신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런 점에서 직접 사사한 적은 없지만 안상수 선생님이나 최성민 선생님은 제게 엄연히 선생님이죠. 이따금 자주 뵙고 싶기도 하지만, 그런 대상과는 아무래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쉬움이 있어야 계속 생각이 나니까요.
이쯤이면 회사의 사훈이 궁금해진다.

‘(웃음)’. 2017년 11월 24일 건국대학교 앞 서점 겸 복합 문화 공간 인덱스(Index)에서 열린 포스터 전시 『유용한 말』(Useful Words)에 포스터 「(웃음)」을 출품하면서 마련했다. 다음은 「(웃음)」에 관한 설명이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신제품 「(웃음)」은 제목 그대로 ‘(웃음)’을 담은 다목적 포스터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의회의 속기사들이 처음 고안했다는 ‘(웃음)[(笑)]’은 오늘날 대담이나 인터뷰 등의 기록에서 발언자나 주위의 반응을 간단히 묘사하는 데, 또는 지나치게 진지한 말을 눅이는 데, 또는 말의 의미를 역전시키는 데 사용되곤 한다. 이뿐일까. 더러 특정 문화에 심취한 이는 이를 통해 자신의 자폐성을 넌지시 드러내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웃음)’의 양상은 앞뒤 맥락에 따라 폭소나 미소, 조소나 냉소 등으로 달라진다. 말은 어떻게 유용성을 획득하는가. 어떤 말이 유용하다면, 이는 포스터라는 매체에 실린 경우에도 마찬가지인가. 질문이 품은 염원을 담아 「(웃음)」은 갖가지 ‘유용한 말’이 모이는 전시에서 ‘(웃음)’의 역할을 자임한다. 우아하게 디자인된 최정호체의 소괄호 속 ‘웃음’이 어떤 이에게는 시답잖은 헛웃음에 불과하더라도 아무러면 어떤가. “웃으면 복이 온다”.라는 말이 과학적으로까지 증명된 마당에. (웃음)
포스터 속 ‘(웃음)’의 위치는 그래픽 디자이너 전용완 씨의 시각 보정까지 거친 결과다. 포스터 외에도 ‘(웃음)’은 자석으로서 ‘(웃음)’ 필요한 어느 곳이든 (물론 금속성을 지닌) 붙였다 뗄 수 있다.

2019년부터 매주 금요일마다 ‘현대인을 위한 교양 강좌’를 표방하는 ‹새로운 질서›를 진행한다. 개설될 때마다 신청이 마감되는 이 강좌의 정체는 무엇인가.
‹새로운 질서›는 2016년 크리스마스 이튿날 워크룸에서 열린 비공개 웹 세미나에서 시작됐다. 시적 연산 학교를 마치고 뉴욕에서 막 돌아온 참이었는데, ‘현대인을 위한 교양’으로서 웹 기술을 익혀두면 워크룸 구성원들이 일하는 데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서였다. 그 뒤 여러 특강과 워크숍,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강의 등을 통해 조금씩 커리큘럼이 다듬어져 지금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200여 명의 ‘‹새로운 질서› 친구들’과 추억을 쌓았고, 이들 가운데는 국립현대미술관의 «프로젝트 해시태그»(Project Hashtag, 2020–) 사업에 선정돼 느닷없이 미술계로 편입되기도 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 ‹새로운 질서›, 웹사이트. 웹사이트 제목인 ‘새로운 질서’는 1초마다 낱자별로 새로운 질서를 부여받는다. 사진 제공: 작가
‹새로운 질서›에서는 기술로서 디자인을 다루기도 하지만, 웹 디자인 강좌가 아니다. 오히려 ‘실용적이고 개념적인 글쓰기’ 강좌에 가깝다. ‹새로운 질서› 친구들은 자신의 관심사(자신이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등)를 토대로 자신만의 콘텐츠를 생산하고, HTML, CSS, 자바스크립트 같은 컴퓨터 언어를 익혀 콘텐츠에 단계별로 새로운 질서를 부여해본다. 기술을 다루므로 실패에 익숙해지고, 자신의 한계를 파악해 욕망을 발산할 우회 전략을 고민해보기도 한다. 글쓰기의 결과물은 결국 웹사이트지만, 사실 더욱 가치 있는 건 그 과정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이제는 안그라픽스 랩이 기생지가 되었군요! 웹을 생각하면서 웹 브라우저의 중요성을 종종 잊곤 하는데, 웹 ‘출판’도 이미 주어진 틀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출판’을 위한 작업을 할 때, 온라인과 오프라인 각각에서 어떠한 자유와 한계를 느끼며 작업하는지 궁금합니다.
10여 년 동안 종이책과 웹사이트를 편집해온 바로 오프라인 출판은 핑퐁 게임과 비슷합니다. 생산자의 역할은 크게 편집과 디자인으로 나뉘고, 서로 콘텐츠를 탁구공 삼아 주고받으며 결과물을 완성하죠. 반대로 온라인 출판, 즉 웹사이트는 저 한 사람이 거의 모든 것을 총괄합니다. 혼자 벌이는 핑퐁 게임이랄까요? 이 과정은 제게 글쓰기와 같습니다. 텍스트 에디터상에서 코딩, 즉 글을 쓰면서 시작해 트러블슈팅(troubleshooting), 즉 퇴고로 끝나니까요.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결과물의 구조적 질서, 시각적 질서, 기능적 질서까지 고려하게 되고요. 이 글쓰기의 끝에는 반드시 웹사이트만 있는 건 아닙니다. 공장에서 제품이 컨베이어벨트를 지나며 차곡차곡 조립되는 것처럼 과정이 분명하면 좋겠지만, 실제로는 아주 엉망진창입니다. 글쓰기 또는 웹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