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2015년 이래 진행한 길고 짧은 인터뷰를 꼼꼼히 정리한 뒤 다시 무작위로 늘어놓은 「자주 하는 질문」을 통해 회사 또는 운영자에 관한 궁금증이 모쪼록 해소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단, 질문의 시기에 따라 현재와 다른 사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편, 질문의 어조에 따라 언급한 인물에 대한 존칭을 생략하기도 했습니다. 「자주 하는 질문」을 섭렵한 뒤에도 궁금증이 도무지 해소되지 않는다면 [email protected] 앞으로 소상히 말씀해주세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인정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단, 답장은 이메일 대신 언젠가 「자주 하는 질문」에서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입니다. 코딩을 처음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해주고 싶은 말은?
우화 삼아 제가 처음 웹사이트를 만든 계기를 이야기하곤 합니다. 열한 살 무렵이던 1995년 처음 웹사이트를 만들었습니다. 당시 제가 사랑하던 친구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였죠. 콘텐츠나 디자인 이전에 단순하지만 명징한 목표가 있었죠. 목표가 단순하고 명징하다면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즉, 자신의 야심과 취향에 따라 어떻게든 하게 되는 거죠. 사실 모든 게 그렇지 않나요?
앞서 말했듯 목표를 세우는 게 중요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우리가 말을 하게 되거나 글을 쓰게 되는 과정을 떠올려보면, 처음에는 그냥 이것저것 따라 해보는 게 필수적입니다. 엄마나 아빠의 말을 따라 하는 것처럼요. 글쓰기에서 이야기하는 다독, 다작, 다상량에서 다독에 해당하는 과정이죠. 그 과정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럽게 규칙을 체화하고, 규칙이 아닌 느낌에 따라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요.
나아가 어도비 소프트웨어처럼 세련된 아이콘이 즐비한 툴바가 없는 텍스트 에디터상에서 코딩이 이뤄지는 만큼 다른 접근 방법이 필요합니다. 예컨대 HTML을 익히고 텍스트 에디터상에서 다루다 보면 자연스럽게 콘텐츠를 콘텐츠의 맥락과 함께 구조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목은 제목으로, 문단은 문단으로, 이미지는 이미지로. 그렇게 HTML만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웹사이트가 아름다워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 또 다른 미감, 기준, 필터가 생겨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코딩 이전에 폴더와 파일 등 컴퓨터를 다루는 게 능숙해야겠죠.
지금까지 웹사이트는 구글이나 네이버, 웹진 『비유』 같은 것만 생각했는데… 그럼 웹사이트는 어떻게 만드나요? 누구나 만들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웹사이트는 개발자나 웹 디자이너만이 만들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럴 수도, 그럴 필요도 없고요. 즉, 웹사이트는 모두를 위한 매체입니다. 웹사이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코드(Code)로 컴퓨터와 대화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컴퓨터 언어가 필요하죠. HTML(HyperText Markup Language)을 비롯해 CSS(Cascading Style Sheets), 자바스크립트(JavaScript)는 단순한 컴퓨터 언어가 아니라 시인의 펜이자 작곡가의 악보입니다. 자연어의 문법이 주어, 동사, 목적어로 세계를 구축하듯 웹상에서 HTML은 태그로, CSS는 선택자와 속성으로, 자바스크립트는 함수와 변수로 세계를 구축합니다. 나아가 세 언어는 저마다 고유한 특성을 지닙니다. HTML은 구조를 맡습니다. 건축가가 건물의 뼈대를 세우듯 HTML은 웹 페이지의 기본 구조를 만듭니다. CSS는 스타일을 맡습니다. 화가가 캔버스에 색을 입히듯 CSS는 웹 페이지에 시각적 아름다움을 더합니다. 자바스크립트는 기능을 맡습니다. 작곡가가 음표로 멜로디를 만들듯 자바스크립트는 웹 페이지에 생동감을 불어넣습니다. 시의 운율, 비유, 이미지가 어우러져 하나의 시를 완성하듯 세 언어는 서로 긴밀히 연결돼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이 과정은 그 자체로 순수한 창작 행위죠.
디자인이나 코딩 같은 기술을 독학으로 익혔다. 또는 일반적인 교육 과정을 통해 습득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 결과, 이제껏 접한 경향들과는 거리가 있는데, 자신에게 필요한 기술을 어떻게 습득하는지, 그 전략이 궁금하다.
일곱 살 무렵 처음 컴퓨터를 접했고, 열한 살 무렵 처음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코딩 이전에 컴퓨터를 다루는 건 내게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대학교에서는 문학과 언어학을 공부했고, 그래픽 디자이너 안상수 선생의 연구실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그 뒤에는 안그라픽스를 거쳐 워크룸에서 편집자로 일한다. 디자인은 실무에서 익혔다. 운 좋게 주위에 늘 훌륭한 선생을 비롯해 실용적인 기술과 유연한 태도를 겸비한 동료들이 있었고, 그들이 디자인에서 맞닥뜨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지켜보는 게 중요한 학습 과정이었다.
2017년 최성민 선생의 추천으로 그래픽 디자이너 밥 길(Bob Gill)의 『Forget all the rules about graphic design. Including the ones in this book.』을 한국어로 번역하고 편집한 과정도 도움이 됐다. 책은 그 자체로 훌륭한 디자인 교과서였다. 한편, 책뿐 아니라 30여 년 동안 인터넷에 축적된 정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자신을 열성적인 학생으로 치환할 수 있다면 학위와 무관하게 인터넷은 꽤 괜찮은 학교다. 잘못된 정보가 있기는 하지만, 이를 감별해내는 일 또한 학습의 일부다. 기술을 습득하는 데 필요한 동력은 문학과 언어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또 편집자로서 글을 읽고 쓰는 일을 충분히 훈련한 덕에 나오는 것 같다. 기술에 관한 정보는 대개 글이니까.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졸업생입니다. 웹사이트를 만들 때 글자를 독특하게 구사해본 경험이 있나요?
명확한 이유가 있다면 글자를 독특하게 구사할 필요가 있겠지만, 그런 상황 자체를 함부로 만들지 않는 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태도를 견지하다보면 아무래도 콘텐츠에 더 집중하게 되거든요. 웹사이트가 하나의 이야기라면, 어떻게 이야기할지보다 무엇을 이야기할지를 먼저 생각하는 거죠. 실제로 가로세로 1픽셀 정방형만큼은 그게 더 중요하고요. 얼마 전에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학생분들을 대상으로 강연할 기회가 있었는데, 여기서 『웹사이트 탄소 계산기』(Website Carbon Calculator)라는 웹사이트를 소개했어요. 이 웹사이트는 여러 웹사이트가 발생시키는 탄소를 수치화해 보여주는데, 이를 통해 웹이 결국 화석 연료에 기반하고, 웹사이트가 무거울수록 환경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상기할 수 있습니다. 2020년 연평균 이산화탄소 농도가 413.2 ppm으로, 산업화 이전(278.0 ppm)보다 48퍼센트 정도 증가했다고 해요. 이미지, 영상, 애니메이션 등 시각적인 부분에 집중할수록 웹사이트가 무거워지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제가 극단적인 환경론자는 아니지만, 웹사이트를 가볍게 만드는 게 조금이나마 인류에 공헌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싶어요.
민구홍 매뉴팩처링 공식 웹사이트 속도가 제법 빨라진 듯합니다.
정확합니다. 2015년부터 호스팅 업체로 미국의 드림호스트(Dreamhost)를 사용하고 있는데, 미국 서부의 오레곤에 있던 데이터 센터를 한국과 더 가까운 싱가포르로 옮기고, 여기에 클라우드플레어(Cloudflare)의 네임서버까지 사용했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 결과 200밀리초에 가까웠던 핑 속도가 100밀리초 미만으로 감소했습니다.
영향받은 디자이너나 작가, 경향 같은 게 있는가?
요컨대 일상과 추억에서 영향을 받는 편이다. 특히 자주 또는 이따금 만나는 사람들이 귀감이 된다. 예컨대 박활성 선배의 실용적인 결단력, 김형진 선배의 낭만주의, 최슬기·최성민 선생의 유머 감각, 아내와 로럴 슐스트의 삶을 대하는 태도, ‘「새로운 질서」의 친구들’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 비슷한 의미로 1990년대 말 ‘닷컴 버블’이 꺼지면서 순식간에 사라진 웹 1.0의 엉망진창인 분위기도 동경의 대상이다. ‘브루탈리즘’(Brutalism), ‘반디자인;(Anti-design), ‘시대착오’ 같은 어휘로 소개되곤 하는데, 그렇게 한마디로 축약하기 어려운 ‘평범한 웹’을 향한 그리움이다.
미국 뉴욕의 시적 연산 학교(School for Poetic Computation, SFPC)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당신은 ‘좁은 의미의 문학과 언어학’으로 부르기를 좋아하지만…)을 공부했다. 왜 그 학교를 선택했나? 주로 무엇을 배웠나?
5년여 동안 일한 안그라픽스를 그만둘 무렵, 내가 편집하고 디자인한 『타이포그래피에 관한 에세이』의 보도 자료를 웹에 게시하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뉴욕 중심가에 있다는 점과 교육 과정이 길지 않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 서로 어울릴 법하지 않은 어휘인 ‘시적(poetic)’과 ‘연산(computation)’을 조합한 학교명이 멋있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자유분방한 학교의 분위기와 달리 이름만큼은 세심하게 결정한 듯했고, 경쟁률도 모르는 상황에서 휴가 삼아 다녀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의 시인 케네스 골드스미스(Kenneth Goldsmith)가 출강했다는 점도 기대가 됐다.
운 좋게 합격한 학교는 내 상상보다 (긍정적인 의미로) 훨씬 더 이상했다. 학생들의 면면은 화이트 해커, 형사학 전공 대학원생, 건축가, 무용수, 일렉트로닉 음악가 등 다양했다. 참고로 내 코딩 컨벤션 선생은 프랑스에서 제빵사로 일하던 헬렌이었다. 학교에서는 예술 이론과 컴퓨터 이론을 둘러싼 개념적이고 실용적인 수업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진행되고, 강연이나 워크숍이 있는 날은 더 늦게 끝나기도 했다. (뉴욕은 지하철이 24시간 운영된다.) 주말도 대부분 학교에서 생활하며 일반 대학교에서 몇 학기 동안 익히고 고민할 것을 짧은 시간 안에 소화해야 했다. 특히 미국의 시인이자 MIT 디지털 미디어 교수인 닉 먼포트(Nick Monfort)의 수업에 열심히 참여했다.

한 가지 주지할 점은 이 학교가 기술을 처음부터 하나하나 가르쳐주는 친절한 학교는 아니라는 점이다. 조금 과장하면 선생은 맞닥뜨린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힌트를 제공하는 ‘검색어 제안기’로 기능하고, 학생은 선생이 제안한 검색어를 이정표 삼아 인터넷을 헤매면서 자신의 욕망과 기술적 한계를 인식하고 우회 전략을 고안해야 했다. 이런 교수법이 유의미한 건 중요한 게 기술 자체가 아니라 어떤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지기 때문이다.

마지막 수업은 자신만의 학교를 만드는 것이었는데, 학생이 반대로 선생의 입장에서 교육 자체에 관해 고민해보는 시간이었다. 내가 제안한 학교는 리코타를 중심으로 요리, 글쓰기, 코딩, 디자인, 마케팅을 익히는 ‘리코타 인스티튜트(Ricotta Institute)’였다. 내가 매주 금요일에 진행하는 「새로운 질서」는 언젠가 문을 열 리코타 인스티튜트의 프로토타입인 셈이다. (‘현대인을 위한 교양 강좌’를 표방하는 이 강좌에서 주로 다루는 바는 아트선재센터에서 발표한 「새로운 질서」에서 체험할 수 있다.)

단, 학교에는 이렇다 할 졸업장이 없었다. 태평양 건너 타국에까지 가서 공부를 마쳤는데, 이를 증명할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인가. 결국 졸업 작품으로 졸업장 생성기를 제작해 스스로, 그리고 친구들에게 학교 대신 졸업장을 수여했다. 학교 직인을 찍는 자리에는 「무작위 서명 생성기(Random Signature Generator)」가 무작위로 생성한 자신의 서명이 들어갔다.

나를 입양하고 싶다던 루이스 아저씨(위 사진 왼쪽 남성)와 매릴린 아줌마(뒤쪽 여성),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또 다른 대모인 로럴 슐스트(Laurel Schwulst)를 만난 것도 큰 행운이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운영하며 디자인 전공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려웠던 점이 있었다면 알려주세요.
없었던 것 같아요. 있었더라도 어려운 점은 금방 잊는 편입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어떤 회사인지 여전히 오리무중이니까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모든 생산 활동의 기저에는 어떤 대상을, 나아가 생산자 자신을 소개하고픈 소중하고 아름다운 욕망이 자리한다고 주장해왔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결국 모든 건 ‘소개’로 수렴하는 것 같다.
정확하다. 결국 어떤 대상을 어떻게(취향), 얼마나(야심) 소개하는지에 달렸다. 온라인 전시뿐일까?
본인이 생각하는 최악의 클라이언트는?
프로젝트에서 얻을 수 있는 바는 결국 오랫동안 함께할 사람(클라이언트), 자랑할 만한 경력(포트폴리오), 경제적 이윤(돈)이다. 이 세 가지 꼭짓점이 정삼각형을 완성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삼각형만 만들어지면 프로젝트는 어쨌든 성공한 셈이다. 최악의 클라이언트와 일하더라도 다른 두 가지에서 보상을 얻으리라 믿는다면 어떨까?
2020년 현재 HTML의 표준 명세인 HTML5에서 사용되는 태그 113가지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태그는 무엇인가요?
<a> 태그입니다. 하이퍼링크를 만들어 콘텐츠와 콘텐츠를 잇는 태그죠. a는 ‘닻(anchor)’을 뜻하고요. 즉, 우리가 어떤 웹사이트에서 하이퍼링크를 클릭했을 때 우리는 그곳에 닻을 내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셈입니다. 인쇄물과 웹사이트를 구별짓는 대표적인 태그이기도 합니다. 인쇄물에서 각주, 방주, 미주에 불과했던 콘텐츠는 <a> 태그 덕에 웹에서 새로운 지위를 획득했습니다. 웹을 웹답게 만드는, 웹의 산소 같은 존재가 된 거죠.
추앙하는 숫자가 있나요?
제법 많습니다. 0.125, 2, 3, 6, 12, 14, 16, 24, 38, 42, 999입니다. 어떤 것은 글쓰기, 어떤 것은 또 다른 글쓰기, 즉 코딩, 어떤 것은 마이크로 타이포그래피, 어떤 것은 매크로 타이포그래피와 관련이 있습니다.
구글(Google)을 통해 매듭 묶는 방법, 이케바나(いけばな), 디자인 등 갖가지 실용적인 기술을 익혔다는 점도 재미있었어요.
웹은 제게 또 다른 학교입니다. 요즘에는 누구에게나 그렇지 않을까요? 물론 잘못된 정보가 적지 않지만, 거기서 옥석을 가려내는 것도 학습의 일부예요. 물론 조금 더 수월하게 디자인을 익힌 데는 안상수 선생님 연구실, 안그라픽스, 워크룸을 거치면서 솜씨 좋은 생산자들과 교유한 덕도 있죠. 『이제껏 배운 그래픽 디자인 규칙은 다 잊어라. 이 책에 실린 것까지.』를 번역하는 과정도 공부가 됐어요. 실제로 이 책은 여러 학교에서 그래픽 디자인 교재로 사용되고, 네덜란드의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익스페리멘털 젯셋(Experimental Jetset)은 이 책을 거의 성경처럼 여기죠. 차례만 읽어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책 제목처럼 언젠가는 잊어버려야겠지만요.
그럼 가장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은요?
너무 사적인 질문 같습니다. 조금 더 친해지면 말씀드릴게요.
2019년부터 매주 금요일마다 ‘현대인을 위한 교양 강좌’를 표방하는 ‹새로운 질서›를 진행한다. 개설될 때마다 신청이 마감되는 이 강좌의 정체는 무엇인가.
‹새로운 질서›는 2016년 크리스마스 이튿날 워크룸에서 열린 비공개 웹 세미나에서 시작됐다. 시적 연산 학교를 마치고 뉴욕에서 막 돌아온 참이었는데, ‘현대인을 위한 교양’으로서 웹 기술을 익혀두면 워크룸 구성원들이 일하는 데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서였다. 그 뒤 여러 특강과 워크숍,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강의 등을 통해 조금씩 커리큘럼이 다듬어져 지금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200여 명의 ‘‹새로운 질서› 친구들’과 추억을 쌓았고, 이들 가운데는 국립현대미술관의 «프로젝트 해시태그»(Project Hashtag, 2020–) 사업에 선정돼 느닷없이 미술계로 편입되기도 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 ‹새로운 질서›, 웹사이트. 웹사이트 제목인 ‘새로운 질서’는 1초마다 낱자별로 새로운 질서를 부여받는다. 사진 제공: 작가
‹새로운 질서›에서는 기술로서 디자인을 다루기도 하지만, 웹 디자인 강좌가 아니다. 오히려 ‘실용적이고 개념적인 글쓰기’ 강좌에 가깝다. ‹새로운 질서› 친구들은 자신의 관심사(자신이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등)를 토대로 자신만의 콘텐츠를 생산하고, HTML, CSS, 자바스크립트 같은 컴퓨터 언어를 익혀 콘텐츠에 단계별로 새로운 질서를 부여해본다. 기술을 다루므로 실패에 익숙해지고, 자신의 한계를 파악해 욕망을 발산할 우회 전략을 고민해보기도 한다. 글쓰기의 결과물은 결국 웹사이트지만, 사실 더욱 가치 있는 건 그 과정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입니다. 문학과 언어학을 공부한 경험이 디자인이나 프로그래밍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요?
넓은 의미에서 제게 문학은 언어를 가지고 노는 일이고, 언어학은 언어의 구조와 규칙, 기능과 의미를 발견하는 일입니다. 디자인이나 코딩 또한 사용하는 언어가 조금 다를뿐 모두 이 범주 안에 있습니다.
일반적인 글쓰기든 코딩이라는 글쓰기든 모두 소통을 전제합니다. 그 일차적인 소통 대상은 글을 쓰는 사람, 즉 자신일 테고요. 하지만 코딩에서는 자신과 소통한 뒤에는 컴퓨터와 소통해야 하죠. 얄궂게도 컴퓨터는 인간만큼 너그럽지 않습니다. 코딩에 정확성, 명확성, 명료성 등이 수반되는 까닭입니다.
나아가 웹사이트의 힘에 기댄다면 바벨의 도서관쯤은 충분히 현실화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한번 시도해볼까요?
안타깝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그런 욕망을 품은 건 비단 저희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조너선 바실(Jonathan Basile)이 만든 다음 웹사이트는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을 웹상에서 가뿐하게 구현합니다.

조너선 바실은 이 도서관의 사서를 자임합니다. 어느 날 그는 침대에 누워 있다가 온라인 바벨의 도서관에 관한 생각을 떠올렸고, 이를 위해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저장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죠. 이 한계를 우회하기 위해 바벨의 도서관을 시뮬레이션하는 알고리즘을 설계했습니다.
불과 몇 년 전에 운영되던 웹사이트에서도 끊어진 하이퍼링크를 발견하곤 합니다. 웹사이트는 영구적으로 보존하기 어려운 매체입니다. 이런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웹사이트는 강력하지만 동시에 허약한 매체입니다. 만질 수도 없고, 일반적으로 웹 브라우저 없이는 열람할 수조차 없죠. 그리고 세입자가 방을 빌리듯이, 웹사이트도 돈을 내서 도메인의 일정 용량을 사용합니다. 이렇게 되면 한곳에 모든 데이터가 모이죠. 자칫하면 데이터를 관리하는 회사가 정보를 통제하는 위험성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어요. 예컨대 비커 브라우저(Beaker Browser)를 사용하면 사용자의 컴퓨터는 클라이언트이자 서버가 됩니다. 즉, 사용자는 중앙 서버를 거치지 않고 서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죠. 데이터를 조각내서 공유하는 토렌트(Torrent)와 유사해요. 웹사이트와 P2P(Peer-to-peer)가 결합한 형태로 인터넷의 탈중앙화를 꾀하는 시도죠. 이렇게 의문을 제기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웹사이트는 ‘영원한 베타(perpetual beta)’ 버전입니다. 서버를 운영하는 데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폐쇄되죠. 링크가 깨지는 경우도 많고요. 하지만 웹의 존속은 제작자의 마음에 달려있다고 생각해요. 예컨대 전시나 행사를 위한 웹사이트일 경우, 일정 기간 필요한 정보를 모두 전달하면 더 이상 유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도록이나 아카이브로 사용하는 웹이라면 오래 존재할 수 있죠. 예컨대 최초의 웹사이트는 30년 넘게 지금까지도 운영 중이에요. 똑같은 내용과 똑같은 형식으로 말이죠. 그래서 웹의 생명이 짧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습니다. 필요에 따라서 어떤 웹사이트는 오랫동안 지속하기도 하니까요.
지방의 공립 도서관 사서입니다. 한 명의 ‘현대인’으로서 웹 기술을 익혀보고 싶은데, 추천해주실 만한 책이 있을까요?
수영을 익히려면 얕더라도 일단 물에 들어가야 하듯 웹 기술을 익히기 가장 좋은 학교는 아무래도 웹이겠죠. 웹 기술에 관한 책을 집필하고, 편집하고, 디자인하고, 인쇄하는 순간에도 기술은 발전하고, 다듬어집니다.
우선 HTML(HyperText Markup Language)을 익혀 자신의 관심사를 다룬 웹사이트를 하나 만들어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CSS(Cascading Style Sheets)를 익히고픈 욕망이 입니다. 그 뒤에는 자바스크립트(JavaScript, JS), PHP(PHP: Hypertext Preprocessor), 파이선(Python), 루비(Ruby) 등으로 확장되고, 욕망이 커진다면 자신만의 컴퓨터 언어까지 만들게 될지도 모르죠. 즉, 어디에 사용할지 모를 기술에서 시작하는 게 아닌 아닌 자신의 욕망에 따라 기술을 취하는 게 흥미와 동력을 잃지 않는 방법입니다. 단, 어떻게 시작하는지가 중요할 텐데, 민구홍 매뉴팩처링 주위에는 「새로운 질서」와 프루트풀 스쿨(Fruitful School)이 있습니다.
‘편집’은 출판계에서 교정이나 교열같이 다소 협소한 의미로 사용되곤 하지만, 이미 여러 분야에서 창작 이상의 의미로 확장되고 있다. 웹사이트에서 콘텐츠를 다룰 때는 어떤 에디터십이 필요할까?
이 또한 근본적으로는 인쇄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단, 글자나 이미지가 콘텐츠를 드러내는 것 외에, 예컨대 버튼으로서 특정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즉, 콘텐츠가 사용자와 어떻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지까지 고려하고 계획해야 한다는 뜻이다.
COS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와 관련된 책을 몇 권 꼽아주세요.
쇠젓가락은 끝이 뭉뚝하고 무거워 사용하는 데 의외로 고난이도의 기술을 요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혹시 젓가락질을 잘하면 글자도 잘 쓸까요?
젓가락으로 콩자반을 하나씩 집어 먹다 보면 누구보다 젓가락질을 잘한다고 자부하게 됩니다. 반대로 계약서나 전시 방명록에 이름을 쓸 때는 제가 쓴 글자가 마음에 든 적이 별로 없어요. 원하지 않는 곳으로 획이 나아가 어딘가 어색한 지점에서 멈추곤 합니다. 필기구가 하필 붓이라면 결과물은 더 엉망이죠.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젓가락질을 하는 데 사용하는 근육과 글자를 쓰는 데 사용하는 근육은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키보드나 마우스, 터치스크린이 더 익숙해서 그럴지도 모르고요. 젓가락질을 조금 더 연습해야 할까요?
아무래도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있을 때가 많을 듯한데 운동도 하시나요?
물론입니다. 한때는 실내 클라이밍에 심취했고, 최근에는 달리기와 계단 오르기에 심취해 있습니다.
민구홍 님이 속한 웹의 세계에서는 그래픽 디자인 전공이 아니어도 충분히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또는 본인의 경우가 특수한 걸까요?
저는 디자인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운 좋게 주위에 솜씨 좋은 선생님, 선배, 동료가 있었고, 그들 바로 옆에서 그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지켜보며 디자인을, 정확히는 ‘디자인’이라는 기술을 익힐 수 있었어요. 특히 그들이 디자인하며 결정을 내릴 때 그 이유를 따져보는 게 도움이 됐죠. 제가 디자인을 익힌 또 다른 학교인 구글(Google)의 도움도 많이 받았고요. 요즘에는 챗GTP(ChatGTP)의 도움까지 받죠. 디자이너로서 저는 일반적이거나 모범적인 사례는 아니에요. 일종의 우화(寓話)로 보는 게 맞겠죠.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목표 없이 우연히 또는 느닷없이 디자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만큼 당연히 따라야 할 모범이나 따르고픈 모범 같은 것도 없었고요. 무엇보다 모범을 따른다고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는 보장도 없죠. 모범이 있다면, 그를 참고해 자신에 맞게 편집하는 게 중요하겠죠. 지금 제 모습은 그저 제가 발 디딘 자리에서 최고의 선(善), 즉 하루 24시간 가운데 여덟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는 상태를 더듬어본 결과 또는 과정입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회사를 소개하는 데 소셜 미디어를 활용하지 않는 이유와 관련이 있을까요?

몇 번 시도해봤지만 아무래도 지나치게 몰입하게 됩니다. 남들에게 주목받기 위해 공연한 이야기를 하게 되고요. 꼬마 때부터 인터넷을 사용하면서 경험한 바예요. 처음에는 재미있지만 나중에는 결국 그만두게 되더라고요. 그럼에도 실용성을 따지면 완전히 멀리할 수는 없기에 결국 소셜 미디어, 특히 인스타그램에서도 워크룸의 계정에 기생하기로 했죠. 팔로워 수도 적지 않은 만큼 파급력도 무시할 수 없고요. 이처럼 누군가의 명성에 기대는 것도 회사를 소개하는 방식 가운데 하나입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이하 ‘회사’)은 “대한민국의 주식회사 안그라픽스를 거쳐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겸 출판사인 워크룸에 기생하는 1인 회사”입니다. 설립 배경이 궁금합니다.
회사의 첫 번째 숙주인 안그라픽스에는 근무 시간 일부를 개인 작업에 사용할 수 있는 제도가 있습니다. 작업 성격에 따라 금전적으로 지원도 해주고요. “한국 그래픽 디자인의 역사를 새롭게 만들어가기 위한 크리에이티브 집단”에 어울릴 만한 제도였지만, 무슨 이유인지 아무도 이용하지 않았죠. 내 회사가 있으면 좋겠다는 기약 없던 꿈은 그 기회를 통해 실현됐습니다. 자본과 용기가 부족한 탓에 근무지에 기생하는 운영 방식을 택했지만요. 그렇게 회사는 숙주에 노동력과 얼마간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대신 운영비를 충당하고 숙주의 동산과 부동산을 이용할 기회를 얻습니다. 이런 방식은 회사를 취미 삼아, 즉 이윤 창출에 대한 고민 없이 순전히 개인의 행복을 위해 운영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마련해줍니다. 바람은 회사와 숙주가 서로 필요한 부분을 제공하며, 누구가의 말을 인용하면 “서로 착취하며”, 함께 성장하는 것입니다. ‘피를 빨아먹는다’는 일반적인 의미의 기생과 다른 점이죠. 이때 필요한 양분은 고객의 사랑과 관심이겠고요.
최정호가 현재 받는 인지도나 평가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질문의 의도를 짐작해서 답변하자면 업적보다 덜 알려진 것 같기는 하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제품을 사용할 때 그 제품의 역사를 속속들이 알지 못하고, 굳이 그럴 필요도 없듯이 많은 사람이 최정호를 잘 모른다고 해서 아쉬워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래픽 디자인 듀오 슬기와 민의 소개처럼 저술가, 번역가, 프로그래머, 디자이너 등 여러 직함이 붙지만 ‘편집자’라는 직함을 고수한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하는 일들이 ‘편집’과 어떤 관련이 있나요?
출판 분야에서 ‘편집(editing)’은 교정과 교열 같은 협소한 의미로 사용되곤 하지만, 저는 편집을 창작을 포함한 행위로 간주합니다. 제가 ‘편집’이라는 행위를 처음 의식한 건 1990년대 초 컴퓨터를 처음 접하고 게임에 한창 몰입하던 시절이었어요. 흔히 ‘게임 에디터’로 통칭하던 소프트웨어를 이용하면 게임의 데이터베이스를 조작해 캐릭터의 능력치뿐 아니라 게임 자체를 수정할 수 있었죠. 즉, 제가 처음 접한 편집은 ‘어떤 공고한 틀을 그 안팎에서 지배해 국면을 제어하는 일’이었어요. 이 생각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웹사이트를 만들 때뿐 아니라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작품을 전시할 때도 편집자의 마음으로 임합니다. ‘편집자’라는 말이 주는 무미건조함도 마음에 들고요. 다만 제가 다루는 편집의 영역이 넓어지다 보니 정작 제가 담당한 책 출간이 늦어지고 있어요. 얼마 전에 출간된 『실전 격투』도 가까스로 작업했죠. 저를 이해해주시고, 아무 말 없이 기다려주시는 필자, 번역가 분들께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안부를 전하고 싶습니다.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입니다. 가장 처음 취업한 곳부터 지금까지의 과정은?
디자인에 발을 들이게 된 건 안상수 선생님 덕입니다. 대학교 3학년 때 우연히 선생님을 알게 됐어요. 그리고 전역한 뒤 대학교 4학년 1학기 때부터 안상수 선생님 연구실인 ‘날개집’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기 시작했고요. 졸업 작품만 제대로 마무리하는 조건으로 학교에 취업계를 제출하고 매일 날개집으로 출근했죠.
날개집은 디자인 스튜디오이자 제게 또 다른 학교였어요. 사실 제가 하는 일은 별로 없었는데, 회의에 참여해 말을 얹거나 연구원들이 디자인을 어떻게 시작하고 끝내는지 구경하는 정도였죠. 그때 만난 김병조, 김동신, 박찬신 씨는 제 인디자인 선생님이기도 하죠.
그러다 안그라픽스와 연계된 프로젝트에 참여하다 4학년 2학기 때 자연스럽게 안그라픽스로 자리를 옮겼죠. 그때는 안그라픽스 전체 임직원이 100명이 넘는 규모였죠. 거기서 6년 정도 일했고요. 그러다가 시적 연산 학교에 갔다가 워크룸으로 자리를 옮겨 7년 정도 일하고, 다시 안그라픽스로 자리를 옮겨 2022년 2월 22일부터 지금까지 안그라픽스 랩 디렉터로 일하고 있고요.
따지고 보면 대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죠. 제가 전역할 무렵 저희 부대에 국가정보원 취업을 준비하던 친구들이 꽤 많았는데, 안상수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저도 국정원 요원으로서 국가에 헌신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구홍의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생각이 있으신가요?
없는 것 같아요. 뭐가 맞고 뭐가 틀리다는 생각 자체를 별로 하지 않는 편이에요. 살다 보면 조금 전까지 당연히 맞다고 생각한 게 몇 분 뒤 당연히 틀린 게 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일어나잖아요. 질문과 비슷한 제목의 영화가 2015년에 개봉했는데, 아마 그게 제가 마지막으로 본 홍상수 감독의 영화일 거예요. 제가 오직 맞다고 생각하는 건 맞음과 틀림이 없음을 맞다고 생각하는 게 틀림없어요.
스물다섯 살의 구홍에게 위기는 어떤 모습이었나요? 언제 위기를 느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스물다섯 살 때는 지금으로부터 16년 전인 2009년입니다. 2007년 여름에 입대했으니, 전역하고 바로 복학한 시점일 거예요. 우연한 기회에 홍익대학교 안상수 선생님을 만나 선생님 연구실인 ‘날개집’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던 때입니다. 사실 위기를 인식하려면 대개 어떤 정답을 기준으로 삼고, 자신의 지금을 가늠하고, 그 둘 사이에서 불안감을 감지해야 할 텐데, 저는 별 생각 없이 지냈던 것 같아요. (그렇듯하게 포장하면, 어떤 정답이란 게 늘 의심스러웠죠.) 별 생각이 없었으니 위기라는 것도 없었고, 심지어 별 생각이 없는 것조차 불안하지 않았죠.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위기라는 건 누군가 만들어놓은 언어의 틀, 언어의 심연에 발을 담글 때 나도 모르게 젖어드는 것 같아요.
제품 제작 과정을 한마디로 설명해주신다면요?
편집을 통해 문제, 특히 제품 주문자의 요구 사항을 해결하는 과정입니다. 제품 제작 방식은 ‘매뉴팩처링’이라는 용어에서 어느 정도 드러납니다. ‘매뉴팩처링’은 본디 원재료를 인력이나 기계력 등으로 가공해 제품을 생산하는 제조업을 뜻하지만, 야구에서는 도루나 진루타, 희생타 등 안타가 아닌 방법으로 득점하는 기술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한편, 제품 제작 과정은 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큰 틀은 비슷합니다. 제품 주문이 들어오면 제작해 납품하는 식입니다. 물론 자체적으로 제품을 제작하기도 합니다.
넷 아트가 뉴 미디어 아트, 인터랙티브 아트 같은 현대 미술의 흐름과도 이어지는 것 같은데요?
적확한 지적입니다. 이제는 그런 구분이 무의미할 정도죠. 예컨대 로이 애스콧(Roy Ascott)이 주창한 ‘텔레마틱 아트’(Telematic Art)나 제프리 쇼(Jeffrey Shaw)의 인터랙티브 설치 작품은 넷 아트가 추구한 가치와 포개지며 기술과 예술의 결합, 관객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라파엘 로자노헤머(Rafael Lozano-Hemmer)의 「벡터 고도」(Vectorial Elevation)에서 관객은 웹사이트를 통해 도시의 조명을 제어할 수 있었고, 애런 코블린(Aaron Koblin)의 「조니 캐시 프로젝트」(The Johnny Cash Project)는 웹사이트를 통해 전 세계 사람들이 함께 뮤직비디오를 만들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했죠.
넷 아트는 웹사이트를 정보의 저장고를 넘어 예술가의 상상력을 담는 그릇이자 관객과 소통하는 인터페이스, 나아가 새로운 미학적 경험을 만들어내는 공간으로 다시 정의했습니다. 동시에 디지털 시대의 아방가르드로서 우리에게 웹사이트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했죠. 벤야민이 말했듯 기술적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은 그 본질을 바꿉니다. 넷 아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복제와 변형, 참여가 작품의 본질이 되는 새로운 예술 형식을 만들어냈고요. 이는 그 자체로 우리에게 디지털 시대의 예술, 나아가 우리의 존재 방식에 관해 곱씹어볼 기회를 제공합니다.
소셜 미디어만으로도 충분히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시대, 민구홍 매뉴팩처링 스타일로 이야기하면 ‘소개의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개인 웹사이트를 만드는 일이 유의미할까요?
파급력만 놓고 보면 소셜 미디어만 한 도구가 없죠. 하지만 소셜 미디어에는 저마다 제약이 있고, 이런 제약은 사용자의 행복을 제한해요. 예컨대 트위터에서는 게시물 글자 수에 제한이 있고, 인스타그램에서는 글 한 줄을 게시하려 해도 이미지나 영상이 필요해요. 게시물 속 하이퍼링크도 작동하지 않고요. 사용자를 인스타그램에 영원히 머물게 하려는 전략이죠.
또한 ‘좋아요’ 기능은 자신의 생활을, 자신의 작품을, 나아가 자신을 불특정 다수에게 평가받는 위치로 옮겨놓습니다. 그 결과를 깜찍한 하트 아이콘과 몇백에 불과한 숫자로 확인는 건 그리 유쾌하지 않죠. 누구나 ‘좋아요’ 수가 많지는 않을 테니 누군가는 초라함을 느끼거나 자신의 작업 또는 삶 자체를 부정하게 되기도 하고요. 주체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분위기에 휩쓸릴 수밖에 없죠.

한편, 디자인계에서 주로 소비되는 카르고(Cargo) 같은 서비스는 코딩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을 위해 그럴듯한 템플릿을 제공합니다. 사용하기 편리한 건 사실이지만, 템플릿들은 사실 콘텐츠와는 유리된 상태예요. 이미 짜인 틀에 콘텐츠를 맞추는 셈이죠. 그러다 보니 사용하다 보면 어딘가 입맛에 맞지 않고, 디자인에서 이런저런 요소를 바꿔보려고 시도해보면 쉽지 않죠. 덩달아 코드도 지저분해지고요. 웹사이트를 만드는 건 이런 템플릿을 수정하는 일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하죠.
몇 가지 컴퓨터 언어를 익히면 거의 모든 걸 스스로 제어할 수 있습니다. 백지 상태에서 오직 자신을 위한 웹사이트를 만드는 건 ‘현대인을 위한 교양’으로서 해볼 만한 일이죠.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생각해보고, 그것을 정리해 글을 써보고, 그것에 컴퓨터 언어로 어떻게 새로운 질서를 부여할지 고민하는 건 소중한 일입니다. 게다가 기술을 주체적으로 받아들이고 사용할 수 있게 되고요.
전염병 때문에 ‘죽음’이라는 말이 어느 때보다 익숙한 시대입니다. 매일 아침이면 어제 몇 명이 세상을 떠났는지 보도되죠. 그만큼 생활에 관해 생각해보게 돼요. 자신을 위한 웹사이트를 만드는 일은 어쩌면 자신을 도저하게 사랑하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나를 도저하게 사랑하다 보면 남도 도저하게 사랑할 수 있죠. 사랑과 그에 따른 행복은 전염병보다 빠르게 전염되고요. 죽기 전에 해야 할 이보다 중요한 일이 있을까요?
‘온라인에서 전시하기’ 또는 ‘온라인에서 생산하기’를 주제로 질문하기 전에 몇 가지 개념을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순전히 우리의 대화를 엿보는 누군가, 특히 이제 막 온라인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미술 및 디자인계 관계자를 위해서다.
좋은 지적이다. 단, ‘온라인’이란 말은 범위가 너무 넓으니 여기서는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 이하 ‘웹’)으로 한정하는 게 좋겠다. 먼저 인터넷(Internet)은 수많은 컴퓨터가 물리적으로, 즉 대륙 간 해저 케이블로 연결된 네트워크다. 놀랄지 모르겠지만, 인터넷은 웹이 아니다. 웹보다 크고, 1950년대에 처음 고안됐으니 웹보다 훨씬 오래됐다. 1990년 무렵 일반에 공개된 웹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기술 가운데 하나로, 수많은 웹 페이지(web page)가 거미줄처럼 엮인 공간이다. 웹 페이지는 기본적으로 컴퓨터 언어인 HTML(HyperText Markup Language)로 작성된 문서로, 웹을 이루는 최소단위라 할 수 있다. 텍스트, 이미지, 영상 등의 정보는 웹 페이지에 담겨 표준 규약인 HTTP(The Hypertext Transfer Protocol)를 통해 컴퓨터 사이를 오간다. 웹사이트(website)는 같은 도메인(domain), 예컨대 minguhongmfg.com에 위치한 웹 페이지의 묶음으로, 웹 페이지 하나만으로 이뤄질 수도 있다. 일상에서 웹사이트와 혼용하곤 하는 홈페이지(homepage)는 웹사이트의 첫 페이지를 가리킨다.
한편, 웹사이트는 서버(server)상에서 구동된다. (정확히는 서버를 통해 전달된다.) 서버는 인터넷상에서 정보를 제공하는 컴퓨터고, 그와 쌍을 이루는 클라이언트(client)는 정보를 취하는 컴퓨터, 즉 일반적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다. 이때 서버와 클라이언트의 관계는 상대적이다. 즉, 서버가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 등을 통해 또 다른 서버에서 정보를 취한다면, 서버인 동시에 클라이언트가 된다. 서버는 수많은 방식으로 동작하는데, 전통적이고 일반적인 방식은 리눅스 기반의 LAMP(Linux, Apache, MySQL, PHP) 스택(stack)이고, 몇 년 사이 자바스크립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JAM(JavaScript, API, Markup) 스택이 각광받고 있다. 사파리(Safari), 구글 크롬(Google Chrome) 같은 웹 브라우저(web browser)는 웹 페이지를 열람하는 소프트웨어로, 모든 웹 기술이 일어나는 종착지다. 즉, 웹 브라우저가 없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셈이다. 그 밖의 개념은 그때그때 설명하기로 하고, 더 궁금한 점이 있다면 직접 웹을 검색해 보면 어떨까. 『새로운 질서』(미디어버스, 2019)를 참고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일은 우리가 식당에서 주문을 하고, 밥을 먹는 일과 비슷하다. 고객(클라이언트)이 식당에서 음식(정보)을 주문하면 점원(서버)은 음식을 가져다준다. 음식이 식탁에 오르는 속도는 대개 주방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식재료가 떨어지거나 주방에 문제가 생기면 점원은 다른 음식을 주문하거나 다음에 다시 찾아와달라고 말한다. 점원이 주문을 깜빡해 멍하니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현실보다 드넓은 이 식당에서 웹은 메뉴판이고, 웹사이트를 만드는 일은 메뉴판에 음식을 하나 추가하는 일이다. 음식은 식재료나 요리사의 취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따금 마주하는 다음과 같은 화면은 식재료가 떨어졌거나 주방에 문제가 일어났음을 뜻한다.

소셜 미디어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웹사이트 대신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 미디어 서비스상에서 이뤄지는 전시도 가능하지 않을까?
인스타그램을 잘 사용하지는 않지만 물론 가능하겠다. 하지만 인스타그램 자체가 이미 전시장인데, 거기서 전시를 연들 무슨 효과가 있을까? 한뼘만 스크롤해도 ‘미술’보다 아름다운 콘텐츠가 즐비한데 과연 누가 주목할까?
스스로를 에디터, 디자이너, 프로그래머이자 워크룸에 기생하는 1인 회사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대표로 소개합니다. 하지만 저는 민구홍 님의 작업이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에디팅’과 ‘출판’을 실천으로 활용하는 예술가의 작업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를 작가로서 생각하지는 않나요? 그리고 ‘출판’을 어떻게 정의하시나요? 케네스 골드스미스가 ‘인터넷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로 이 시대에 말입니다.
그래픽 디자인 듀오 슬기와 민은 그들의 웹사이트에서 제 직함을 둘러싼 문제 아닌 문제에 관해 명쾌하게 정리한 바 있습니다. “민구홍은 저술가이자 편집자이자 번역가이자 디자이너이자 소프트웨어 개발자인데, 직함 순서는 그때그때 달라진다.” 감사하게도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관해서도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비디오 게임과 컴퓨터 소프트웨어에서 단편 소설과 음악 재생 목록까지 다양한 실용적, 공상적 제품을 내놓는다. 이처럼 다양한 제품에 일관된 주제는 자기 반영이다. 즉, 대부분 제품은 결국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주제로 한다.” 존경하는 선생님이기도 한 그들의 명성에 기대 지금처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인용하곤 합니다.
여러 직함으로 불리곤 하지만, 저는 무엇보다 ‘편집자’에서 풍기는 무미건조함이 마음에 듭니다. 이는 ‘편집’이라는 행위가 아우르는 범위가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비롯합니다. 아주 넓기도 하고, 아주 좁기도 하죠. 이따금 ‘작가’로 불리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편집을 통해 작품을 창작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담이지만, 영국의 신스팝 듀오 펫 숍 보이스(Pet Shop Boys)의 보컬 닐 테넌트(Neil Tennant) 또한 데뷔 전에는 편집자로 일한 경력이 있다죠? 편집이 규칙과 제약을 다루는 일이라는 점에서 저는 이 경력이 펫 숍 보이스의 음악에도 적잖이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편집자’라 불리고픈 건 제 바람일 뿐입니다. 저를 무엇으로 규정하는지는 그저 상대방에게 맡기고 싶습니다. 제가 생각지 못한 직함이 튀어나오고, 그에 따라 상대방을 대하는 제 태도도 달라지는 게 재미있고요. 그렇게 저는 상대방에 따라 편집자뿐 아니라 작가, 선생님, 나아가 남편이나 애인이 되기도 하겠죠. 미국의 연쇄 살인범 찰스 맨슨(Charles Manson)은 한 인터뷰에서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죠. “아무도 아니야. 그 누구도 아니야. 부랑자, 거지, 떠돌이 일꾼, 화물차, 와인 통… 당신이 내게 너무 가까이 다가오면 날카로운 면도칼이 될 수도 있지.” 물론 제 태도는 찰스 맨슨과는 무관합니다.
‘출판’이 어떤 대상을 강조해 널리 소개하는 일이라면, 『더플로어플랜』(The Floorplan)처럼 오늘날 출판은 반드시 종이 위에서만 이뤄지지 않습니다.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 웹) 덕에 출판의 파급력은 더욱 강력해지고, 아우르는 범위 또한 드넓어졌죠. 두루마리에 자리했던 콘텐츠는 코덱스(Codex)를 거쳐 다시 두루마리(scroll)에 도달한 셈이고요. ‘진화한 책’으로서 웹사이트만큼 출판의 목적과 거의 완전히 겹치는 매체는 찾기 어렵습니다. 이런 마당에 스스로를 소개, 즉 출판하는 데 주력하는 회사에서 웹사이트처럼 실용적인 매체를 사랑하지 않을 까닭이 없습니다.
다시 첫 번째 질문으로 돌아와서 묻고 싶습니다. 워크룸과의 관계를 가리키기 위해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소개할 때 ‘기생’한다는 표현을 하는데요. 워크룸이 출판사이기에 이 표현은 마치 웹/온라인과 실재/오프라인의 관계를 이해하는 민구홍 님의 용어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워크룸이나 민구홍 님과 클라이언트와의 관계에서뿐 아니라 (본인의 작업을 지칭하는 단어로 말하자면) “제품/생산물”에서 웹/온라인과 실재/오프라인에 대한 이러한 이해가 어떻게 나타난다고 생각하나요?
‘제품’은 그저 ‘회사’를 표방하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기술을 거친 결과물을 가리키는 적당한 어휘를 고민한 결과입니다. 여러 제품을 통해 다뤄온 매체 가운데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특히 사랑하는 웹사이트는 특성상 그 자체로 대량으로 복제되고 소비되는 만큼 사명(社名)에 당당히 자리한 ‘매뉴팩처링’(manufacturing)의 본래 의미(물질 또는 구성 요소에 물리적이거나 화학적인 작용을 가해 새로운 제품을 대량 생산하는 일)와도 상통한다고 생각했습니다.
1인 회사인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원활하게 운영하려면 결국 무언가에 기댈 수밖에 없는 만큼 ‘기생’이라는 어휘에서는 회사의 이런 운명이 가감 없이 드러납니다. 이는 웹사이트가 지닌 속성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웹에서는 거의 모든 일이 웹 브라우저로 수렴하죠. 웹 브라우저를 거치지 않으면 웹사이트는 사용자에게 도달하지 않습니다. 요컨대 웹사이트는 태생적으로 웹 브라우저에 기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허약함과 불완전함이 웹사이트라는 매체를 계속 탐구해볼 가치를 만들어내고요.
한편,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2022년 2월 22일 숙주를 워크룸에서 안그라픽스의 정체불명 독립 사업부 안그라픽스 랩(Ahn Graphics Lab, AG Lab)으로 옮겼습니다. 앞선 답변과 관련해 저에게는 ‘디렉터’라는 직함이 하나 더 추가됐죠. 숙주는 달라졌지만 『2022부산비엔날레』(Busan Biennale 2022)나 『거의 정보가 없는 전시』(An Exhibition with Little Information)처럼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필요하다면 워크룸과도 언제나 함께입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기생 방식도 공생에 가깝게 진화하는 셈이고, 이는 ‘기생’이라는 어휘를 사용하기로 마음먹은 무렵부터 고려한 바이기도 합니다.
민구홍에게 웹이란 무엇인가?
한국 나이로 일곱 살 무렵이던 1991년에 처음 컴퓨터를 접했다. 마지막 PC 통신 세대이자 첫 인터넷 세대인데, 웹 1.0 시절부터 소비자와 생산자로서 경험해온 웹은 규정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게 엉망진창이다. 이따금 웹상에는 모든 것이 있다는 환상에 젖곤 한다. 하지만 맛있는 저녁을 먹고 집 앞 경의선숲길을 산책하다 보면 그런 환상은 무참히 무화된다.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입니다. 시, 소설, 작업, 노래, 영상 등 최근에 접한 것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단 한 가지로 수렴할 수밖에 없는 ‘가장’이라는 표현은 저와는 별로 어울리지 않습니다. 너무 많은 게 한꺼번에 떠오르거든요. 그래서 차라리 제 생활 패턴을 말씀드리는 게 어떨까 싶어요.
평일 가운데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회사에서 열심히 일합니다. 학기 중에는 목요일에 학교에서 강의를 하고요. 금요일에는 새로운 질서에서 친구들과 만나고요. 퇴근한 뒤에는 특히 드라마나 영화를 많이 봅니다. 최근에는 시트콤 『사인펠드』에 푹 빠졌고, 『세브란스: 단절』도 두 번째 시즌이 나올 때까지 계속 보죠. 음악도 많이 듣고요. 게임도 합니다. 아내와 산책하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죠. 얼마 전에는 일본 이민에 관해 진지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주말에는 심심하면 번역과 작곡에 심취하고요. 그리고 12시 전에 자고, 8시 전에 일어납니다.
회사의 생산물을 ‘작품’이나 ‘작업’ 대신 ‘제품’으로 부르는 까닭은 무엇인가?
칸트 이후 언어가 대상을 투명하게 반영한다는 환상은 깨졌다. 중요한 건 주체가 대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규정하는지, 나아가 편집하는지다. ‘작품’이나 ‘작업’이라는 어휘는 생산물이 소비되는 오늘날의 국면을 반영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 국면을 흐리는 환상을 덧입히기까지 한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회사’인 만큼 생산물을 아우르는 단어로는 ‘제품’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반대로 ‘제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픈 마음에 ‘회사’를 표방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슬슬 마무리를 할 때가 된 것 같다. 일곱 살 무렵부터 웹을 사용하고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오래 전부터 웹을 사용해온 소비자, 크고 작은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한 생산자, 웹 기술을 가르치는 교육자로서 앞으로 미술 또는 디자인계에서 수행할 만한 과제를 제시한다면?
2001년에 열린 «코리아 웹 아트 페스티벌 2001» 이후 20여 년이 지났다. 그 사이 미술을 둘러싼 웹 생태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되돌아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일단 «웹-레트로» 전시 웹사이트부터 다시 운영하면 어떨까? 웹을 둘러싼 생산자를 정리하는 작업도 필요하겠다. 느닷없는 흐름에 휩쓸리듯 편승한 생산자도 있겠지만, 그 전부터 웹을 통해 이런저런 시도를 해온 사람도 적지 않다. 그들이 만든 지형도는 분명히 기존 미술 또는 디자인의 지형도와는 또 다른 모습일 것이다. 게다가 이 작업의 결과물은 누구나 어디서든 쉽게 열람할 수 있는 매체, 즉 웹사이트인 편이 좋겠다. 여기에 단순한 포럼 형태여도 좋으니 담론을 만들어내는 공간도 마련되면 좋겠다. 1996년 이래 수많은 생산자의 성공과 실패를 축적해온 뉴 뮤지엄(New Museum)의 아티스트 레지던시인 리좀(Rhizome)이 좋은 보기다. 사실 이 작업은 뜻이 맞는 몇몇 생산자와 이야기를 시작한 상태다. 혹시 관심 있는 생산자와 소비자는 [email protected] 앞으로 메일을 보내주시라.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같은 국공립 미술관과 작업할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외부에서 작업한 웹사이트에 대한 서버 차원의 지원이 미비한 편이었다. 관공서 웹사이트는 대부분 자바로 개발된 전자 정부 표준 프레임워크를 기반으로 제작해야 하는데, 미술 및 디자인계에서 자바를 다룰 줄 아는 전문가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파악하기로는 아무도 없다. HTML 태그도 의미론적으로 사용되지 않은 편이고, 기본적으로 작품 이미지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대체 텍스트 또한 마련돼 있지 않다. 이는 즐거움 이전에 접근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학교에서도 웹에 관한 커리큘럼을 적극적으로 마련하면 좋겠다. ‹새로운 질서› 친구들 200여 명 가운데 미술 및 디자인 전공생이 30퍼센트 정도로, 적은 비율은 아니다. 그들 입장에서는 추가로 과외를 받는 셈인데, 그들에게 코딩 수업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물어보면 워드프레스 템플릿을 수정해보거나 특정 웹사이트를 그대로 재현해보는 정도에서 그친다고 한다. 한두 사람이 모든 경험과 실패를 독점하는 상황은 별로 건강하지 않다. 이를 나눌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옳겠다. 팀 버너스리 경이 강조한 웹의 정신이 ‘개방, 참여, 공유’ 아니던가. 커리큘럼을 마련하는 게 어려운 상황이라면 외부 강좌와 연계하는 방식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