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하는 질문

일러두고픈 말이 있다면?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2015년 이래 진행한 길고 짧은 인터뷰를 꼼꼼히 정리한 뒤 다시 무작위로 늘어놓은 「자주 하는 질문」을 통해 회사 또는 운영자에 관한 궁금증이 모쪼록 해소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단, 질문의 시기에 따라 현재와 다른 사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편, 질문의 어조에 따라 언급한 인물에 대한 존칭을 생략하기도 했습니다. 「자주 하는 질문」을 섭렵한 뒤에도 궁금증이 도무지 해소되지 않는다면 [email protected] 앞으로 소상히 말씀해주세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인정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단, 답장은 이메일 대신 언젠가 「자주 하는 질문」에서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온라인 전시에서 작품을 드러내는 방식은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미래학자가 아니므로 단언할 수는 없지만, 작품을 드러내는 방식이 지금과 아주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아무리 신기한 효과를 부려도 결국 모니터 화면에 주사된 납작한 이미지일 뿐이다.

온라인 전시에서는 작품의 메타데이터(metadata)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과 함께 관련 작품, 전시, 글, 이미지, 영상 등을 정교하게 엮는 방식인데, 작품보다는 작품 주변부가 확장하는 셈이다. 전시, 도록 등이 한데 합쳐진 결과라 볼 수 있다. 관람객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아트시(Artsy)

한데, 기술과 그 한계에 주목하면 재미있는 방식도 가능하다. HTML에서 이미지를 담당하는 태그에는 대체 텍스트(alternative text) 속성이 마련돼 있다. 이미지를 제대로 표시할 수 없는 상황을 대비한 기능인데, 이를 통해 시각 장애인은 스크린리더(screen reader)상에서 이미지를 파악할 수 있다. 대체 텍스트에서는 누보로망(Nouveau roman)처럼 최대한 작품을 객관적으로 묘사해야 한다. 밀레의 ‹만종›(L’Angélus, 1857–1859)은 ‘들판에 고개 숙인 두 남녀가 있고, 그들은 누군가를 추모하는 듯하다.’ 등으로, 온 가와라의 ‹오늘›(Today, 1966–2014)은 “중앙에 1985년 3월 5일이라 쓰여진 검은색 사각형.” 등으로 묘사해야 한다. 한편, 대체 텍스트만을 활용하면 이미지가 없는 빈 갤러리,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콘텐츠가 충만한 갤러리 웹사이트가 만들어질 수 있다. 스크린리더로 접속하면 컴퓨터가 이미지를 소리로 묘사해줄 것이다.

대체 텍스트 갤러리. 이미지는 없지만 스크린리더로 웹사이트를 열람하는 시각 장애인에게는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사진 제공: 작가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입니다. ‘새로운 질서’를 만들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요?

“어떤 대상을 좋아하고, 급기야 사랑하게 되면 그 아름다운 마음을 주위와 나누고 싶게 마련이다.” 제가 수학한 시적 연산 학교의 마지막 수업은 자신만의 학교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선생의 역할은 맹목적인 학생을 만드는 게 아니라 또 다른 선생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첫 시간부터 그냥 이름을 부르는 식으로 호칭을 정리하죠. 누군가를 ‘선생님’으로 부르는 순간 어떤 위계가 생기고, 그런 위계는 뭔가를 가르치거나 배우는 데, 즉 나누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아요.

소비자로서는 웹사이트가 너무나도 익숙하지만, 생산자로서는 대개 새로운 매체입니다. 세련된 툴바가 아닌 모두 글자로 하나하나 해야 하는 까닭에 자신의 작업 과정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죠. 디자이너라면 모름지기 처음부터 책을 한 권 만들어봐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상황이 디자인을 할 때 마주하게 되는 많은 변수를 포함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웹사이트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또 다른 경험을 하게 합니다.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입니다. 개인 웹 작업과 클라이언트 납품용 웹 작업은 어떤 점에서 다른가요? 유지 보수, 컴퓨터 언어, 사용자 친화성 등에서요.

최종 선택의 기준이 외부에 있는지, 내부에 있는지에 따라 다르다. 기본적으로 일이 굴러가는 게 중요하다. 부러 고집을 피우지는 않아요. 또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은 구글이나 네이버를 핑계로 들면서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제가 구글이나 네이버가 아니라서요…”

얼마 전 한 항공사와 일한 적이 있어요. 저는 작업 후반에 투입됐는데, 작업물에 관한 피드백이 1픽셀 단위로 쪼개지더라고요. 애초에 처음부터 관계가 잘못 설정됐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작업에 관해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동료가 아니라, 납품자와 검사자가 된 거죠. 그러다 보니 다른 것에 관해 생각할 겨를이 없죠. 한두 번 그런 상황을 경험해보니 하기 싫어지더라고요.

최근에 우상이라 부를 만한 대상이 있는가?

우상이라 부르는 게 맞을지 모르겠지만, 크고 작은 회사의 홍보 담당자로부터 영감을 얻는다.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를 홍보하는 온갖 전략을 눈여겨보고 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 제품 제작 선언문이 있나요?

없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면 처음부터 선언문을 직접 쓰기보다 아무래도 평소처럼 적절한 선언문을 선택해 편집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 아이디어에서 출발할 것.
  • 우연을 받아들이고, 우연의 일치를 즐길 것.
  • 즉흥적으로 만들고, 작위적으로 해석할 것.
  •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할 것.
  • 기대를 배반할 것.
  • 어려운 일을 쉬워 보이게, 즉 스프레차투라.
  • 처음이 되거나, 마지막이 되거나.
  • 복잡한 아이디어가 단순한 결과물을 만들 수 있음을 믿을 것.
  • 복잡한 아이디어가 단순한 결과물을 만들 수 있음을 믿은 결과물을 적어도 두 번 이상 반복할 것.
  • 복잡한 아이디어가 단순한 결과물을 만들 수 있음을 믿은 결과물을 적어도 두 번 이상 반복할 것.
  • 과정을 믿을 것.
  • 개념이 형태를 결정하도록 설계하거나 유도할 것.
  • 재료와 제작을 본질로 환원할 것.
  • 아이디어의 온전함을 유지할 것.
  • 어리석어 보일 만큼 정직함을 해결책으로 제시할 것.
  • 아니면 완전히 반대로.

지금의 스타일에 싫증이 나거나 지루함을 느낄 때는 없었는가?

다행이 아직은 없다. 예전에도 밝혔듯 내가 갑자기 히피나 자연주의, 한국의 전통 복식 문화에 심취하지 않는 이상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한편, 며칠 전 가족 모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트를 입고, 그 차림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회의를 한 적이 있는데, 평소에 이렇게 생활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사람들 반응도 재미있었고. 그럼에도 기본값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나를 정통 일본식 아메리칸 스타일로만 꾸며주시던 엄마는 늘 불만을 표하시지만.

종이책의 미래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가 생각하는 종이책의 귀중한 유산은 종이 위, 즉 제한된 평면에서 콘텐츠를 정리하고 소개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에는 필사가, 편집자, 인쇄인, 디자이너, 인지과학자 등 수많은 전문가의 성공과 실패가 쌓여 있다. 그 덕에 우리는 콘텐츠와 눈 사이에 따른 적절한 글자 크기를, 그에 따른 적절한 글줄 길이를, 그에 따른 적절한 글줄 수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이 점을 생각하면 웹사이트뿐 아니라 콘텐츠가 자리한 수많은 매체에서 이 방식이 재현되거나 활용되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다. 누군가에게 종이 책의 죽음은 당연한 미래일지 모르지만, 종이 책에서 비롯한 이 방식만큼은 변함없으리라.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소개하는 데 일조하는” 책 『레인보 셔벗』(아카이브 봄·작업실유령, 2019)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제품 소개’의 반대 개념인 ‘제품 후기’로 책을 구성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 책은 지금은 문을 닫은 전설적인 갤러리 ‘아카이브 봄’에서 열린 『레인보 셔벗』을 정리한 도록 겸 단행본이에요. 기획을 포함한 책임 편집은 최근에 일민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긴 윤율리 씨가 담당했죠.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주 고객 가운데 한 분으로, 어쩌다 보니 여름이 다가오면 함께 평양냉면을 먹는 사이가 됐어요. 도록에는 보통 작품에 관한 비평문이 실리기 마련인데, 여기서는 ‘작품’이 아닌 ‘제품’이니 ‘비평문’보다는 ‘후기’가 어울리기 때문 아니었을까요? 저도 궁금하니 이참에 율리 씨를 한번 인터뷰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이 책에서 제가 담당한 건 뒤표지였어요. 뒤표지에는 보통 책 내용을 정리한 소개문을 싣죠. 소개문은 책을 디자인하고 드물게 인쇄 과정을 감리까지 해주신 슬기와 민 선생님들께 의뢰했는데, 덕분에 근사한 소개문이 탄생했어요. “『레인보 셔벗』은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회사를 소개하는 데 일조하는 책이다. 이런 식의 소개문 몇 줄이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 다만, 분량은 160자 정도로 제한해 주세요.” 덩달아 회사에서는 자연스럽게 선생님들의 명성에 기댈 수 있었고요. 참, 표지를 장식한 인물은 그래픽 디자이너 강문식 씨가 발견했죠.

다른 질문이 있습니다.

[email protected] 앞으로 관련 내용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신속한 답변은 장담할 수 없지만, 『민구홍 매뉴팩처링 이메일 응대 지침』에 따라 성심성의껏 임하겠습니다. 물론 위급한 상황이라면 회사가 기생하는 워크룸으로 직접 오셔도 괜찮습니다. 단, 회사와 숙주 모두 간판을 내걸지 않은 탓에 거리에서 멋쩍게 얼마간 서성일 각오를 하셔야 합니다.

2021년 가장 즐거웠던 순간을 되돌아 본다면?

민구홍 매뉴팩처링과 민구홍 개인으로 나뉠 수 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가장 즐거운 순간은 2018년 구글에 이어 배달의민족과 어깨를 나란히 했을 때다. 2021년 한글날을 맞아 배달의민족, 티슈오피스와 ‘을지로체’의 세 번째 버전인 ‘을지로오래오래체’를 소개하는 몇 가지 웹사이트를 만들었는데, 첫 화면에서 을지로체로 쓰인 ‘민구홍 매뉴팩처링 × 배달의민족’이라는 문구를 마주한 순간, 잠시뿐이었지만,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 온 세상을 굽어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처럼 누군가의 명성에 기대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소개할 때만큼 짜릿한 순간도 드물다. 한편, 민구홍 개인에게 가장 즐거운 순간은 생각건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킬 수 있으므로 밝히기 곤란할 것 같다. 아쉽지만 나와 당사자 둘만의 추억 속에 놓는 편이 좋겠다. 독자 여러분께 양해를 구한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제품을 어떻게 규정하는가? 제품에 집중하는 이유도 궁금하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제품은 일차적으로 회사를 소개하는 과정에서 생산되는 부산물에 가깝다. 때로는 그 자체에서 또는 회사 밖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제품, 좀 더 정확히 ‘제품’이라는 어휘를 사용하는 건 단지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회사’이기 때문이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예술가나 그와 비슷한 무엇이라면, ‘제품’보다는 ‘작품’이나 ‘작업’이라는 말이 좀 더 자연스러울 테다. 내게 ‘제품’이라는 말은 일반적이고 중립적이라는 점에서 산뜻하고, 우리를 둘러싼 시장경제의 장단점(특히 단점)을 암시하는 점에서 을씨년스럽다.

어쩌면 반대로 ‘제품’이라는 말의 이런 복잡한 매력에 가까워지고자 ‘회사’를 만든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구분은 명분과 편의를 위한 것일 뿐 실제로는 해시태그들이 난삽하게 붙은 모습에 가깝다. 개중에는 제품보다는 회사 소개에 가까운 게 있는가 하면, 어떤 건 회사 소개이자 제품이다. 모든 걸 구글 스프레드시트로 행과 열에 맞춰 한 셀당 한 항목씩 정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함께 일하는 다른 유능한 편집자들로 빙의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민구홍이 가진 가장 장식적인 옷은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타이포그래피의 수많은 강조법 가운데 특히 ‘가운데 맞추기’를 좋아한다. 고전적이긴 하지만, 그저 양쪽 여백을 동일하게 설정하는 것만으로 손쉽게 콘텐츠를 강조하고 장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따금 극적인 효과를 주기도 하고. 그 뒤에는 콘텐츠 자체에만 집중하면 된다. 좋아하는 만큼 즐겨 사용하기도 한다. 이 방법 앞에서 글자 크기를 키우거나 글자체를 바꾸는 데는 상대적으로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게다가 글자를 얼마나 키울지, 어떤 글자체로 바꿀지, 합당한 또는 합당해 보이는 이유를 찾다 보면 억지스러워질 때도 있다. 이런 취향은 당연히 내 의생활에도 반영된다. 로고나 메시지 하나 없는 검은색 티셔츠일지라도 몸에 걸치는 순간 내게는 지나치게 멋을 부리는 셈이다.

웹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일곱 살 무렵이던 1991년에 처음 컴퓨터를 접했어요. 매킨토시 LC였는데, 지금 봐도 정말 근사하죠.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컴퓨터를 향한 환상 같은 게 생긴 것 같아요. 열한 살 무렵에는 무료 호스팅 서비스인 야후! 지오시티(Yahoo! Geocities)에 첫 번째 웹사이트를 만들었어요. 사랑하는 친구를 위해서였죠. 어떻게 하면 그를 행복하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글을 쓰고, 이미지를 만들고, MIDI 음악까지 만들어보면서 콘텐츠와 기술의 관계를 어렴풋하게나마 인식한 것 같아요. 하지만 ‘닷컴 버블’이 꺼져가던 2009년, 야후!에서 느닷없이 지오시티 문을 닫으면서 그 웹사이트는 이제 제 꿈속에만 있습니다. 백업이란 게 뭔지도 모르던 때였으니까요. ‘웹 디자인’이라는 말로 한정하기는 어렵지만, 그 뒤로 누군가를 위해 HTML(HyperText Markup Language), CSS(Cascading Style Sheets), 자바스크립트(JavaScript) 같은 컴퓨터 언어를 이용해 뭔가 만들어내는 일은 제 오랜 즐거움이 됐어요. 그건 결국 저를 위한 일이기도 하고요.

말이 나왔으니, 최근 네이버 디자인과의 인터뷰에서 HTML과 CSS를 한국어, 영어, 일본어 다음으로 잘 다루는 언어라 밝힌 바 있다. 웹사이트를 만드는 과정에서 두 언어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HTML은 콘텐츠에 개념적인 구조와 맥락을 부여하며 현재 총 113가지 태그(tag)를 지원한다. 이를 통해 웹 브라우저는 콘텐츠에서 무엇이 제목이고, 문단이고, 이미지고, 캡션인지 파악한다. 모든 웹 기술의 공통분모라는 점에서 HTML은 개념적으로 그래픽 디자인에서 타이포그래피에 해당한다. CSS는 HTML로 구조와 맥락을 부여받은 콘텐츠에 스타일을 부여한다. 여기서 스타일은 마이크로 타이포그래피뿐 아니라 매크로 타이포그래피, 애니메이션을 아우르며 현재 CSS가 지원하는 129가지 속성(property)으로 스타일이 만들어진다. 거칠게 말하면, 웹사이트를 만드는 일에서 중요한 부분은 결국 113가지 HTML 태그와 129가지 CSS 속성을 조합하고 편집하는 일이다. 태그와 속성이 조합되는 경우의 수는 최소로 계산해도 무한(106,559,732,167,812,574,200)에 가깝다. HTML과 CSS는 아마 가장 익히기 쉬운 언어일 것이다. 복잡한 연산을 수행하는 프로그래밍 언어는 아니지만, 탐구해 볼수록 ‘코딩이라는 글쓰기’와 관련해 생각할 거리가 적지 않다. 여기에 특정 기능이 필요하다면 프런트엔드에서는 자바스크립트(JavaScript, JS), 백엔드에서는 자바(Java), PHP(PHP: Hypertext Preprocessor), 파이썬(Python) 등의 언어가 필요하다.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싶습니다. 대관절 웹사이트란 무엇인가요?

글쎄요. 어쨌든 우리는 그곳을 ‘웹사이트’라 부릅니다. 중세 수도사들이 양피지 위에 겹겹이 글을 써내려간 팔림프세스트(palimpsest)처럼 픽셀 위에 끊임없이 의미를 덧입혀왔죠. 바야흐로 터치나 클릭 한 번으로 세상의 거의 모든 정보가 눈앞으로, 손바닥 안으로 들어오는 시대입니다.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의 『변신』(Die Verwandlung) 속 그레고르 잠자처럼 우리는 어느 날 아침 또 다른 존재로 변한 건 아닐까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으로 뉴스 사이트에서 밤사이 일어난 일을 복기하고, 출근길 지하철에서는 날씨 애플리케이션으로 오늘의 기온을 확인하고, 점심시간에는 맛집을 검색하고, 퇴근한 뒤에는 넷플릭스나 유튜브에서 영화 한 편으로 하루를 마무리하죠. 그럼에도 그 언저리에 늘 웹사이트가 있음을 인식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쇠젓가락은 끝이 뭉뚝하고 무거워 사용하는 데 의외로 고난이도의 기술을 요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혹시 젓가락질을 잘하면 글자도 잘 쓸까요?

젓가락으로 콩자반을 하나씩 집어 먹다 보면 누구보다 젓가락질을 잘한다고 자부하게 됩니다. 반대로 계약서나 전시 방명록에 이름을 쓸 때는 제가 쓴 글자가 마음에 든 적이 별로 없어요. 원하지 않는 곳으로 획이 나아가 어딘가 어색한 지점에서 멈추곤 합니다. 필기구가 하필 붓이라면 결과물은 더 엉망이죠.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젓가락질을 하는 데 사용하는 근육과 글자를 쓰는 데 사용하는 근육은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키보드나 마우스, 터치스크린이 더 익숙해서 그럴지도 모르고요. 젓가락질을 조금 더 연습해야 할까요?

당신은, 역할은 다르지만, 인쇄 매체와 디지털 매체를 함께 다룬다. 좋아하는 책을 아우를 만한 특징이 있나? 있다면, 좋아하는 웹사이트와는 어떻게 다를까?

얼핏 평온하고 순진해 보이지만 들여다볼수록 어딘가 불온해 보인다. (또는 그 반대.) 처음 세운 논리와 원칙을 끝까지 유지하며 동시에 부순다. 가볍다.

소비자로서 내용은 내게 유익하기만 하면 그만이다. 이는 아무래도 상대적이고 유동적이다. 예컨대 간식으로 먹을 파이를 만드는 데 칼 세이건(Carl Sagan)의 『코스모스』(Cosmos)는 내가 구운 ‘우주적’ 파이의 맛까지 보장해주지 않으니까.

형식에 관해서는 할 말이 좀 더 있다. 마이크로 타이포그래피는 완벽할수록 좋지만, 매크로 타이포그래피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앞표지에 예쁜 꽃 사진 한 장만 넣어도 충분할 때가 있다. 중요한 건 그게 수선화인지, 양귀비인지다.

한편, 나는 디자인 학교에서 넓게는 웹, 좁게는 인터랙티브 디자인을 가르치기도 한다. 학생들에게 웹사이트는 판형이 정해지지 않은, 부피와 무게가 없는 책이고, 책은 하이퍼링크와 스크롤바가 없는, 부피와 무게가 있는 웹사이트라고 말하곤 한다. 당신도 알다시피, 웹이 과학자들의 논문 공유를 통한 공동 연구를 위해 시작된 것처럼 웹사이트의 형식은 책에 많은 부분을 빚지고 있다. 언젠가 둘은 형식에서는 갈림길에서 헤어졌지만 목적지는 하나다. (둘이 가는 길은 테서랙트 안에 있는 것 같다.) 물론 이사할 때는 책이 훨씬 불리하다. 반대로 웹사이트는 ‘인쇄한(publish)’ 뒤에도 언제든 수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절제력과 결단력이 없으면 팔목터널증후군이 생길 가능성이 커지니 주의해야 한다.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졸업생입니다. 웹사이트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기준이 있을까요?

웹사이트에서 이야기하는 대상과 방식에 따라 완성도의 기준은 천차만별일 거예요. 앞서 말씀드렸듯 일단 웹 브라우저상에서 제대로 동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사실 이를 위해 고려해야 할 부분만 따져도 무궁무진합니다. 뜬금없을지 모르지만 저는 어떤 글쓰기에 관해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문학을 공부하던 시절에 배운 좋은 글쓰기의 원칙 가운데 중언부언하지 않는다는 게 있어요. 같은 대상에 관한 두 가지 진술이 있다면 간단한 쪽을 택하는 게 좋다는 오컴의 면도날(Occam’s Razor)도 비슷한 원칙이고요. 이 원칙은 코드를 포함한 웹사이트에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중복되는 요소나 기능을 하나로 합치는 것처럼요. 이를 위해서는 글쓰기처럼 수차례 퇴고 과정이 필요하죠. 지난할 수 있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고요. 한 문장만으로 이뤄진 웹사이트라 해도 퇴고 과정을 얼마나 거쳤는지에 따라 결과물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유럽 입자 물리 연구소(Conseil Européenne pour la Recherche Nucléaire, CERN)에서 일하던 영국의 컴퓨터 과학자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 경이 일반에 웹을 공개한 지 어느덧 30여 년이 지났다. 생각보다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은데, 그동안 웹은 어떻게 발전했을까?

웹은 콘텐츠의 생산 및 소비 방식의 관점에서 버전으로 구분된다. 웹 1.0은 1994년부터 2004년까지 웹 초창기를 가리킨다. 웹 1.0에서 콘텐츠는 단방향, 즉 생산자에서 소비자로만 흐르며, 소비자는 콘텐츠를 열람만 할 뿐 제어할 수 없다. 그 이후 웹 2.0이 등장했고, 사용자들은 개인 웹사이트를 만들기보다 블로그나 소셜 미디어 서비스로 자리를 옮겼다. 콘텐츠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건 훨씬 편리해지고,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는 흐릿해졌지만, 동시에 (특히 한국에서는) 개인 웹사이트를 만드는 문화가 너무나도 빨리 식어버렸다. 아직 규정하기 어려운 지금은 웹 3.0 시대로, 전문가들은 인공지능을 주요 특징으로 꼽기도 했다. 새로운 버전이 등장하면 주도적인 흐름이 이동하긴 하지만, 이전 버전이 완전히 폐기되는 건 아니다. 오늘날 웹은 각 버전이 뒤섞인 엉망진창 상태고, 한 웹사이트에서도 각 버전이 어우러진 경우도 있다. 웹 2.0의 대표적인 기술 가운데 웹사이트(블로그)끼리 서로를 참조할 수 있는 트랙백(trackback) 기능이 재미있는데, 안타깝게도 이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입니다. 항상 크리에이티브한 작업을 하시는 것 같아요. 작업을 위한 영감은 대체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제가 마주하는 모든 대상에서 얻습니다. 다만, 그 과정은 단순히 ‘영감을 얻는다’는 말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무의식적인 차원에 있습니다.

커비 퍼거슨(Kirby Ferguson)의 『모든 것은 리믹스다』(Everything is Remix)라는 다큐멘터리가 있습니다. 제목처럼 인간의 모든 창작물은 리믹스, 즉 이미 존재하는 것을 조합한 결과물이라는 뜻이죠. 우리가 늘 손에 쥐는 아이폰이 대표적이고요. 스티브 잡스가 이야기했듯 아이폰은 이미 존재하던 MP3 플레이어, 전화기, 인터넷 단말기를 조합하고 필터링한 결과물이죠. 그렇게 이해해보면 (또는 오해해보면) 크리에이티브라는 건 결국 에디터십에서 비롯합니다. 에디터십은 이미 존재하는 것에 반응하고, 필터링하고, 연결하고, 관리하는 힘이죠. 제게 ‘크리에이티브’라는 건 그런 것 같아요.

그 다음에 필요한 건 족쇄, 즉 제약입니다. 말을 하든, 글을 쓰든, 포스터나 책, 웹사이트를 만들든 우리는 매체의 제약에 놓입니다. 거칠게 말해 제약 없이는 아무것도 시작하기 어렵죠. 설령 제약이 없다면 (또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면) 가장 먼저 제약을 창작해야 합니다. 제약을 창작하는 일이 곧 작품을 창작하는 일이라 믿는 까닭입니다. 크리에이티브의 첫 번째 대상은 제약입니다.

지금까지 웹사이트는 구글이나 네이버, 웹진 『비유』 같은 것만 생각했는데… 그럼 웹사이트는 어떻게 만드나요? 누구나 만들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웹사이트는 개발자나 웹 디자이너만이 만들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럴 수도, 그럴 필요도 없고요. 즉, 웹사이트는 모두를 위한 매체입니다. 웹사이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코드(Code)로 컴퓨터와 대화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컴퓨터 언어가 필요하죠. HTML(HyperText Markup Language)을 비롯해 CSS(Cascading Style Sheets), 자바스크립트(JavaScript)는 단순한 컴퓨터 언어가 아니라 시인의 펜이자 작곡가의 악보입니다. 자연어의 문법이 주어, 동사, 목적어로 세계를 구축하듯 웹상에서 HTML은 태그로, CSS는 선택자와 속성으로, 자바스크립트는 함수와 변수로 세계를 구축합니다. 나아가 세 언어는 저마다 고유한 특성을 지닙니다. HTML은 구조를 맡습니다. 건축가가 건물의 뼈대를 세우듯 HTML은 웹 페이지의 기본 구조를 만듭니다. CSS는 스타일을 맡습니다. 화가가 캔버스에 색을 입히듯 CSS는 웹 페이지에 시각적 아름다움을 더합니다. 자바스크립트는 기능을 맡습니다. 작곡가가 음표로 멜로디를 만들듯 자바스크립트는 웹 페이지에 생동감을 불어넣습니다. 시의 운율, 비유, 이미지가 어우러져 하나의 시를 완성하듯 세 언어는 서로 긴밀히 연결돼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이 과정은 그 자체로 순수한 창작 행위죠.

2020년 아트선재센터에 이어 2021년 대안공간 루프에서 「장영혜 중공업 귀중」 제2판을 선보였다. 제1판과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제1판을 선보인 뒤 1년 사이 달라진 상황에 따라 몇몇 내용이 추가되거나 삭제됐고, 더욱 큰 화면에 오직 장영혜 중공업만 사용할 수 있는 소파와 헤드폰이 마련됐다. 그럼에도 장영혜 중공업을 향한 존경과 사랑, 그리고 부탁 한 가지는 그대로다. 답변을 받을 때까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선보이는 연작이 될 예정이다.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의 2차원 이미지를 재현하는 건 익숙한 일이다. 그렇다면 조각 등 설치물 같은 건 어떨까? 온라인 전시에서도 작품의 물성을 구현할 수 있을까? 구현할 수 있다면 어떤 방식이 적절할까?

언젠가 한 출판사 관계자와 웹사이트 개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 비슷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이참에 웹사이트에서 책의 물성을 구현해보고 싶은데… 가능하겠죠?” 그는 순진한 표정으로, 특히 ‘물성’에 힘을 보태 말했다. 이는 책에서 유튜브 영상을 재생하고 싶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웹에서는 Z축상에 레이어가 아무리 쌓이더라도 두께는 0픽셀이다. 웹상의 물성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바는 이뿐이다. 오랜 고민 끝에 출판사 관계자에게는 결국 구글이나 네이버 본사에 문의해보시는 게 좋겠다고 정중히 말씀드렸다.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입니다. 이런 디자인을 해야겠다고 결정한 순간은?

질문을 받고 이참에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슬기와 민의 최성민 선생님 덕인 것 같아요. 더 정확히는 최성민 선생님이 추천해주신 밥 길의 책 번역을 맡으면서요. 제가 미국에서 돌아와 워크룸으로 자리를 옮긴 2016년 무렵이었는데, 그 책에 이런 말이 나오죠. “흥미로운 말에는 시시한 그래픽이 필요하다.” 반대로 “흥미로운 그래픽에는 시시한 말이 필요하다.”라는 말도 있었죠.

무엇보다 말과 그래픽, 콘텐츠와 디자인, 내용과 형식, 두 가지의 균형이 중요하다는 뜻일 텐데, 이는 제가 늘 고민하던 바, 나아가 이제껏 제 마음을 움직이던 작품의 정체를 명쾌하게 정리해주는 말이었어요. 그 뒤로는 같은 말이라도 국면에 따라 뜻이 달라진다는 화용론(話用論, Pragmatics)에 심취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말이 흥미로워지는 국면을 찾아보거나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우연일지 모르지만, 안상수 선생님이든 최성민 선생님이든 저를 디자인하신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런 점에서 직접 사사한 적은 없지만 안상수 선생님이나 최성민 선생님은 제게 엄연히 선생님이죠. 이따금 자주 뵙고 싶기도 하지만, 그런 대상과는 아무래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쉬움이 있어야 계속 생각이 나니까요.

2015년부터 “안그라픽스를 거쳐 워크룸에 기생하는 1인 회사”인 민구홍 매뉴팩처링(Min Guhong Manufacturing)을 운영한다. 2019년부터는 “회사, 즉 민구홍 매뉴팩처링 자체를 소개하는 데 주력한다.” 회사에도 변화가 있는가? 얼마 전에는 인턴이 입사했다고 들었다.

네덜란드 아른험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는 한국인 학생으로, 회사에는 두 번째 인턴이다. (첫 번째 인턴은 영광스럽게도 현재 누구보다 활발히 활동하는 송예환 씨였다.) 학교에서는 졸업 학기를 인턴십으로 갈음한고 한다. 인턴십이 실무 현장을 경험해보는 기간일 뿐 아니라 수업의 연장인 만큼 인턴에게는 다음과 같은 임무를 제시했다.

인터넷, 논문, 일간지, 단행본, 잡지, 주위의 소문 등을 통해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관해 조사한 사실을 바탕으로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어떤 회사인지 규정하고, 그에 걸맞는 로고를 제안한다. 이 과정에서 로고는 납작한 그래픽만으로 제한하지 않는다. 즉, 로고는 규정한 바에 따라 덜 납작한 그래픽, 시, 소설, 만화, 음악, 영상 등이 될 수 있다. 단, 로고는 어떤 대상을 상징하거나 은유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목적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디자이너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한편으로는 얼마간 수행적인 이 작업은 네덜란드 밖에서만큼은 가장 까다로운 클라이언트인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제안을 납득할 때까지 계속된다. 작업의 진행 상황을 정리한 결과물은 인쇄물, 웹사이트 등으로 출판한다. 이는 「인턴 일지」 작성을 포함해 민구홍 매뉴팩처링 인턴으로서 수행할 업무의 고갱이다.

인턴은 자신이 조사한 사실을 바탕으로 로고 없는 회사에 여러 매체를 통해 로고를 제안하면서 여러 매체를 다뤄보고 동시에 (신출내기 그래픽 디자이너에게는 어쩌면 숙명인) 거절당하는 일에 익숙해진다. 한동안 원격으로 일하던 인턴은 코로나 때문에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갑자기 귀국하게 됐고, 회사뿐 아니라 동시에 회사가 기생하는 워크룸에서 한 달 동안 일했다. 월급은 워크룸에서 받았다. 어찌 보면 이중 기생인 셈인데, 그 덕에 인턴은 앞으로 이력서에 두 회사, 즉 민구홍 매뉴팩처링과 워크룸에서 일했다는 경력을 기입할 수 있게 됐다. 지금은 업무 차 제주도로 출장을 간 상태다. 좋은 일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회사나 인턴 모두 코로나 덕에 생각지 못한 경험을 하게 됐다.

한편, 몇 달 전에는 이름을 밝힐 수 없는 회사 두 곳에서 제법 파격적인 조건으로 인수 제안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당분간은 워크룸에 기생하기로 했다. 회사의 궁극적인 목표가 운영자, 즉 나의 행복이기 때문이다. 두 제안 모두 수락했을 때 불행해지지는 않겠지만, 지금보다 극적으로 더 행복해진다는 보장이 없었다. 방탄소년단의 제이홉도 「Answer: Love Myself」에서 읊지 않았던가.

오, 지금 날 위한 행보는 바로 날 위한 행동 / 날 위한 태도 / 그게 날 위한 행복 / I’ll show you what I got / 두렵진 않아 그건 내 존재니까 / Love myself

온라인 출판물과 오프라인 출판물, 즉 웹사이트와 종이 책은 어떻게 섞일 수 있을까?

가능하다면 이 질문에는 또 다른 질문으로 답하고 싶다. 종이 책과 웹사이트가 섞일 필요가 있을까? 본디 웹사이트는 과학자들끼리 논문을 효율적으로 공유하기 위해 발명됐다. 논문에서 각주, 방주, 미주에 불과한 정보는 파란색 밑줄이 그어진 하이퍼링크(hyperlink) 덕에 클릭이나 터치 한 번으로 열람할 수 있는 ‘진짜’ 정보가 됐다. 웹사이트는 종이 책에서 비롯해 종이 책의 부족한 점을 보완한 결과물이다. 즉, 진화한 종이 책이다. 따라서 종이 책과 웹사이트를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려 하면 질문은 공회전할 수밖에 없다.

내가 생각하는 종이 책의 귀중한 유산은 종이 자체보다는 종이 위, 즉 제한된 평면에서 콘텐츠를 소개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에는 필사가, 편집자, 디자이너, 인쇄인, 인지과학자 등 수많은 전문가의 성공과 실패가 쌓여 있다. 그 덕에 우리는 콘텐츠와 눈의 거리에 따른 적절한 글자 크기를, 그에 따른 적절한 글줄 길이를, 그에 따른 적절한 글줄 수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이 점을 생각하면 웹사이트뿐 아니라 많은 매체에서 이 방식이 재현되거나 활용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아주 먼 미래에 종이 책은 사라질지 몰라도 이 방식만큼은 변함없지 않을까.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향후 계획이 궁금합니다.

2015년 회사를 설립하면서 발표한 「회사 소개」에서 밝힌 서른일곱 가지 일은 앞으로도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입니다. 시적 연산 학교에서의 경험담이 궁금합니다.

안그라픽스가 지루해질 무렵 우연히 발견했어요. 저는 이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인데, ‘시’(poetic)와 ‘연산’(computation)을 조합한 학교 이름이 근사했습니다. 제 관심사를 잘 정리한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만큼 제 이력서의 학력에 이 학교가 들어가면 어울리겠다고 생각했죠.

잘 다니던 회사를 갑자기 그만두고 미국에 다녀오겠다는 말에 어머니는 아연실색하셨죠. 결혼도 한 상태였거든요. 나중에 알고 보니 경쟁률이 꽤 높았는데, 사실 어떻게 합격했는지 모르겠어요. 일종의 대안 학교였고, 3개월 과정이었지만,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계속 수업이 있었고, 수업이 끝나면 밤 늦게까지 이런 외부 특강 같은 행사가 거의 매일 열렸어요. 다른 지역이나 다른 나라에 살던 친구들이 많았던 터라 주말에도 딱히 할 일이 없어서 대부분 학교에 있었고요.

오랜만에 학생이 되니 무엇보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가장 큰 수확은 사람이었어요. 친구를 많이 사귀었습니다. 최태윤, 강이룬, 소원영 등 당시 뉴욕의 미술 및 디자인계에서 활동하던 한국인뿐 아니라 예전부터 이메일로만 연락하던 로럴 슐스트(Laurel Schwulst)라는 친구를 만났고, 그 덕에 데이비드 라인퍼트(David Reinfurt), 존 프로벤처, 민디 서 같은 또 다른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고요. 최근에 출간된 책을 번역하거나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강연할 수 있었던 건 이 친구들 덕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뉴욕에 친구가 많다는 건 뉴욕에 놀러갔을 때 저렴한 비용으로 잘 수 있는 공간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2018년 늦여름에 한 갤러리에서 회사를 소개하는 전시를 열었다. 회사라면 일반적으로 박람회나 키노트 같은 걸 여는데, 전시라는 방식이 어딘가 좀 이상하지 않았나?

그 전시는 회사를 소개하기 좋은 기회였다. 회사를 소개할 수만 있다면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갤러리에 소환되는 것도 별로 꺼리지 않는다. 전시에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제품들이 특정 규칙에 따라 구분 없이 뒤섞여 있었다. 그런 점에서 큐레이터 윤율리가 제안한 ‘레인보 셔벗(Rainbow Sherbet)’이라는 전시명은 참 잘 어울렸다. (“실용성, 우아함, 고약함이 각각의 노즐에서 분사되는 적당한 모양새를 한마디로 요약하기란 무척 어렵다.”) 나중에 알았는데 ‘레인보 셔벗’은 각종 마리화나를 혼합한 마약을 가리키는 은어로도 사용된다고 한다.

그중 몇몇 제품은 동업자들과 함께 제작했다. 동업은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중요한 제품 제작 방식이다. 이는 무엇보다 더 나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오늘날 모든 걸 혼자, 그리고 능숙하게 해내는 건 쉽지 않고, 무엇보다 건강에 별로 좋지 않다. 이때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좀 더 회사처럼 작동했다. 회의를 거쳐 동업자를 선정해, 그들에게 발주서를 보냈고, 그들은 그에 따라 제품을 제작해 납품했다. 그렇게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추억 속에는 명함, 회사 소개 영상, 김뉘연 씨가 쓴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주제로 한 단편소설 한 편 등이 놓이게 됐다.

또 하나의 수확이 있다면 ‘분홍이’를 컴퓨터 밖으로 끄집어냈다는 점이다.

‘분홍이’는 사람들이 붙여준 별명으로, 본명은 자홍색을 만드는 염료명에서 따온 ‘푹신(Fuchsine)’이다. 푹신은 일종의 민구홍 매뉴팩처링 마스코트로, 아득히 먼 옛날 한 웹사이트에서 태어났다. HTML, CSS, 자바스크립트의 도움으로, 한 웹사이트의 머리(<head>)에 자리를 잡고, 하루에 한 번씩 몸집을 키우며 사용자가 클릭했을 때 혼잣말을 늘어놨다. 평양냉면을 좋아하고, 발렌시아가(Balenciaga)의 트리플 S(Triple S)를 신는 게 꿈이지만, 안타깝게도 아직은 다리와 발이 없는 상태다.

한편, 전시 오프닝 자리에서는 DJ 겸 프로듀서 말립(Maalib)과 제작한 「범용 오프닝 디제잉」을 재생했다. 특히 모임 별의 조태상은 래퍼나 DJ 들이 온갖 행사 오프닝에 활발히 소환되는 오늘날, 어떤 성격의 행사에서든 이용할 수 있는 유용한 제품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대여료는 한 시간당 15만 원으로, 서울에서 활동하는 DJ의 한 시간 평균 공연료와 같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하루 종일 대여한 바 있다.

모든 이름에는 크고 작은 의미가 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

회사 이름은 ‘민구홍’과 ‘매뉴팩처링’으로 구성된다. 전자는 다름 아닌 내 이름이다. 후자인 ‘매뉴팩처링’은 일반적으로 ‘원재료를 인력이나 기계력 등으로 가공해 제품을 대량생산하는 산업’을 뜻하지만, 야구에서는 ‘도루나 진루타, 희생타 등 안타가 아닌 방법으로 득점하는 기술’을 가리키기도 한다. 나는 대부분의 일에서 이름을 짓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편이다. ‘매뉴팩처링’이라는 단어가 품은 기능주의와 기회주의를 실천하려는 의지를 회사 이름에 드러내고 싶었다.

이야기하는 동안 눈치챘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이다. 나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쉽게 기뻐하고 쉽게 상처받기도 한다. 이는 내게 짐이 되곤 한다. 그런데 회사 뒤에 있으면, 생활과 일을 분리해 이런 것에 어느 정도 무신경해질 수 있다. 공연 예술가 앤디 코프먼(Andy Kaufman)은 자신의 또 다른 자아를 투영할 요량으로 토니 클리프턴(Tony Clifton)을 창조해냈다. 위악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지만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내게 앤디의 토니인 셈이다.

글쓰기의 결과물이 그저 읽히는 것뿐 아니라 실행까지 된다는 점이 매력적입니다. 컴퓨터 언어가 자연어와는 다른 차원에서 현실을 변화시키는 도구로 작동하는 거군요.

예컨대 코드를 통한 창작은 프로그래밍 언어의 문법과 구조를 이용해 시를 쓰는 ‘코드 시’(Code Poetry)처럼 새로운 형태의 문학을 제안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대니얼 홀든(Daniel Holden)이 C 언어로 쓴 시의 일부입니다. 얼핏 기계적으로 보이지만 너를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아름다운 의지를 드러내죠. 게다가 실행될 수 있고요.

for (;love;) {
    while(true) {
        me.love(you);
    }
}

이처럼 코드는 기능적 도구를 넘어 감정과 사상을 표현하는 새로운 언어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웹사이트를 만드는 일은 그저 기술적 작업이 아니라 0과 1만으로 이뤄진 이진수의 세계에서 이뤄지는 고도의 창조적 행위입니다. T.S. 엘리엇(T.S. Eliot)은 이렇게 말했죠. “솜씨 좋은 작가는 언어를 훔치는 게 아니라 언어를 정복한다.” 웹사이트를 만드는 사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코드라는 언어를 정복하고, 그것으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내니까요.

이쯤에서 웹사이트를 바라보는 소박한 렌즈 하나를 제안하고 싶습니다. 웹사이트가 단순한 정보의 창고나 기능적 도구가 아닌 하나의 언어 체계로, 그 언어로 쓰인 작품으로, 감동과 영감을 주는 매체로, 기술과 예술이 만나는 접점으로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가 꿈꾼 바벨의 도서관처럼 우리는 이미 코드로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를 만들고 있는지 모릅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2015년 시청각에서 「회사 소개」를 발표하며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일반적인 회사 소개와 달리 회사에서 하지 않는 일을 소개했죠.

사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무엇을 하는 게 좋을지 전혀 몰랐기 때문에 하지 않는 일을 소개하기로 마음먹었죠. 회사라면 모름지기 무엇을 해야 하는지보다 하지 않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당신에게 최정호란 누구인가?

여러모로 고마운 사람이다. 최정호에 관한 책을 만들어서 월급을 받았고, 최정호가 만든 서체로 사람들에게 「(웃음)」도 드렸다.

일반적인 웹사이트는 정보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정리돼 있습니다. 반대로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선보이는 웹사이트는 정보가 파편화되거나 효과에 가려져 있거나, 또는 시간에 따라서 서서히 나타나기도 하는데요, 이런 형식을 취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마우스의 위치에 따라 효과가 변하는 인터랙티브 요소도 흥미롭습니다. 이런 디자인을 선보이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파격이란 건 익숙함이 있기에 성립할 수 있겠죠. 제 욕망 때문이라기보다는 그게 콘텐츠에 부합하는 방식이라는 생각. 디자인은 웹 초창기에 이미 존재했어요. 제게는 아주 평범한 모습이죠. 웹이라는 기술이 소개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었죠. 기술도 부족하고 시각적인 규칙도 성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결과물은 제각각이었어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기술을 거친 웹사이트들은 파격적인 시도라기보다는 잠시 잊힌 평범한 웹을 변주하거나 재해석한 결과에 가까워요.

슬기와 민의 최성민 선생님 권유로 미국의 전설적인 그래픽 디자이너 밥 길(Bob Gill)의 『이제껏 배운 그래픽 디자인 규칙은 다 잊어라. 이 책에 실린 것까지.』를 번역한 적이 있는데, 이 책에는 “흥미로운 말에는 시시한 그래픽이 필요하다. 시시한 말에는 흥미로운 그래픽이 필요하다.”라는 구절이 나와요. 말과 그래픽이 조응하는 데는 균형이 필요하다는 뜻이죠. 저는 그래픽보다 말이 흥미로운 걸 좋아해요. 그러다 보니 말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고민하는 데 시간을 쏟는 편입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거친 웹사이트들은 사실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기술을 응용한 결과예요. 코드만 보면 누구나 따라 할 수 있을 정도죠. 이것들이 파격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그래픽보다는 말 때문일 겁니다.

수차례 밝혀왔듯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웹 디자인 에이전시가 아닙니다. 저는 웹사이트를 디자인한다기보다 그저 제가 좋아하고 잘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고 편집한다고 생각해요. 그 결과물 가운데 하나가 웹사이트인 거죠. 그게 용케도 누군가의 욕망에 부합하는 거고요. 많지는 않지만 이런 방식을 사랑해주시는 고객들 덕에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지금까지 근근이 생존할 수 있었죠.

2021년 현재 HTML의 표준 명세인 HTML5에서 사용되는 태그 113가지나 됩니다. 이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태그는 무엇인가요?

<a> 태그입니다. 콘텐츠에 하이퍼링크를 만들어 다른 콘텐츠와 잇는 태그로, 웹을 웹답게 만드는, 웹의 산소 같은 존재죠. 인쇄물과 웹사이트를 구별짓는 대표적인 태그이기도 해요. 인쇄물에서 각주, 방주, 미주에 불과했던 콘텐츠는 <a> 태그 덕에 웹에서 새로운 지위를 획득했으니까요. a는 ‘닻(anchor)’를 뜻해요. 여러 해석이 있지만, 저는 웹사이트에서 하이퍼링크를 클릭했을 때 그곳에 닻을 내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고 생각해요.

말씀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웹진 『비유』를 운영하는 연희문학창작촌에 전하픈 말이 있다면요?

이제 웹사이트를 매체로 삼는 작가 또한 엄연히, 그리고 마땅히 연희문학창작촌에 입주할 때입니다. 웹사이트를 문학답게 문학으로 포섭하는 것, 문학이 ‘오늘’과 어깨동무하는 또 다른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그게 제2, 제3의 한강이 아닌 새로운 무언가를 만드는 길일 테고요.

웹사이트가 새로운 형태의 문학이 되는 거군요. 기존의 장르 구분을 무너뜨리고, 창작자와 수용자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면서요.

그 사실을 감지한 순간 자연스럽게 질문이 쏟아집니다. 어떻게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에서 의미 있는 경험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어떻게 사용자의 자유로운 탐험과 작가의 의도를 조화시킬 수 있을까?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는 『열린 예술작품』(Opera Aperta)에서 독자의 해석이 작품의 일부가 되는 ‘열린 텍스트’의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어쩌면 웹사이트는 이런 ‘열림’의 극단적 형태일지 모릅니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사용자와 상호작용하며,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유기체처럼요.

이 웹사이트는 가장 친한 미국인 친구 로럴 슐스트(Laurel Schwulst)를 위한 생일 선물입니다. “너 로럴 맞지?”라며 방문자가 로럴인지 계속 확인하는 이 웹사이트는 그의 생일인 3월 15일에 비로소 완성됩니다. 일차적으로는 로럴을 위한 웹사이트이지만, 반드시 로럴에게만 유용한 건 아닙니다. 즉, 로럴이 아닌 사람에게는 로럴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도구로 기능하죠.

「회사 소개」를 비롯한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제품과 당신이 숙주의 피고용인으로서 수행하는 ‘편집’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오늘날 ‘편집’은 제품처럼 도처에 있다. 아이폰의 기본 메일 애플리케이션만 실행해봐도 편집의 위상을 단번에 알 수 있다.

나는 대학에서 문학과 언어학을 공부했다. 소설 작법 시간에 선생님은 자신이 소설을 쓰는 이유에 관해 “그저 거짓말을 잘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러려면 사실과 허구를 병존시켜야 한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선생님 말씀을 곧이곧대로 따르는 학생이었던 것 같다.

요즘 나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각 제품에 관한 정보를 한 줄로 정리하고픈 야심을 품었다. (이 제품에는 일단 ‘보도 자료 표준 형식’이라는 제목을 붙이기로 했다.) 『시카고 스타일 매뉴얼』(Chicago Style Manual)의 참고 문헌 인용법을 공부하는 중이다. 실용적이고 내용과 형식이 조화를 이룬 순수한 형태라는 점에서 참 아름답다. 언제 확정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보도 자료의 형식은 예컨대 이렇다.

제품명, “인용문/인용구”, 종류(복수인 경우 중점[·]으로 구분), 동업자(복수인 경우 중점[·]으로 구분), 제작/발표 연도.

이렇게 관습(또는 미풍양속)을 이용하는 건 내게 조형적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데 별 재능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관습은 이미 한 번 완성됐다는 점에서 아름다우면서 무엇보다 이용하기 편하다.) 웹을 통해 교육의 민주화가 이룩됐다지만 어쩔 수 없는 게 있다. 특히 내게 없는 능력을 지닌, 디자이너나 미술가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게 즐거운 이유기도 하다.

예컨대 열쇠고리에 열쇠를 끼우면 본래 역할을 하지만, 약지를 끼우면 퍽 괴상해 보이는 반지가 된다. 그 위에 산세리프 서체로 조판한 ‘“Min Guhong Manufacturing” can be abbreviated as “Min Guhong Mfg.”’라는 문장이 인쇄된다면 어떨까? 여기에 ‘민구홍 매뉴팩처링 표기 지침(영어판)’이라는 제목이 붙는다면? 그리고 이걸 회사를 소개하는 ‘제품’으로 홍보하는 회사가 있다면?

타이포그래피 관습이나 문법 또한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관심사 중 하나다. 당신도 알다시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는 실제로 내가 숙주에서 편집자로서 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타임스 뉴 로먼(Times New Roman) 속 모든 글자를 지운 「타임스 블랭크(Times Blank)」도 그런 맥락에 있다. 타임스 블랭크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전용 서체다. 존 케이지(John Cage)의 「4분 33초」를 들으며 사용하면 좋은… 나아가 「4분 33초」를 텍스트로 재현할 수도 있겠다.

최정호체를 활용한 제품에 관해 설명해달라.

작년 말에 건국대학교 근처에 문을 연 ‘인덱스’라는 복합 공간에서 전시 『유용한 말』이 열렸다. 포스터 「(웃음)」은 그때 출품한 것이다. 일본어판 위키백과를 찾아보니 ‘(웃음)’은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 일본 의회의 속기사들이 상황을 함축하기 위해 만든 기호라고 하더라. 지금은 주로 인터뷰 지면에서 상황을 묘사하거나 분위기를 환기하는 데 사용하곤 하는데, 온갖 유용할 말이 모일 전시에 그런 ‘(웃음)’의 역할을 하는 작품도 있으면 제법 유용하겠다고 생각했다. 작품에 소괄호와 ‘웃음’이라는 낱말만 들어가는 만큼 서체를 고르는 게 중요했다. 평범하면서 약간 달라 보이는 서체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최정호체 시험판을 써볼 기회가 생겼다. 특히 괄호 모양이 예뻐 보여서 선택했다. 자매품인 동명의 자석도 있다. 전시와 비슷한 시기에 열린 제9회 언리미티드 에디션의 작업실유령 부스에서 제품을 산 분들에게 나눠드렸다. 「(웃음)」을 돈을 받고 팔기보다 그냥 드리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최정호는 웃음과는 거리가 먼, 오로지 글자만 바라보는, 진지한 삶을 산 사람이었던 것 같다.

누군가 민구홍 님을 ‘웹 디자이너’로 부른다면 정당한 표현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만약 ‘웹 디자이너’라는 단어와 불일치를 느낀다면 무엇 때문인가요?

2022년 『더플로어플랜』(The Floorplan)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저를 무엇으로 규정하는지는 그저 상대방에게 맡기고 싶습니다. 제가 생각지 못한 직함이 튀어나오고, 그에 따라 상대방을 대하는 제 태도도 달라지는 게 재미있고요. 그렇게 저는 상대방에 따라 편집자뿐 아니라 작가, 선생님, 나아가 남편이나 애인이 되기도 하겠죠.” 여러 직함으로 불리곤 하지만, 저는 무엇보다 ‘편집자’에서 풍기는 무미건조함이 마음에 듭니다. 이는 ‘편집’이라는 행위가 아우르는 범위가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비롯합니다. 아주 넓기도 하고, 아주 좁기도 하죠. 저는 디자인 또한 편집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편집과 디자인을 동시에 경험해본 분은 제 말 뜻을 아실 거예요.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입니다. 가장 처음 취업한 곳부터 지금까지의 과정은?

디자인에 발을 들이게 된 건 안상수 선생님 덕입니다. 대학교 3학년 때 우연히 선생님을 알게 됐어요. 그리고 전역한 뒤 대학교 4학년 1학기 때부터 안상수 선생님 연구실인 ‘날개집’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기 시작했고요. 졸업 작품만 제대로 마무리하는 조건으로 학교에 취업계를 제출하고 매일 날개집으로 출근했죠.

날개집은 디자인 스튜디오이자 제게 또 다른 학교였어요. 사실 제가 하는 일은 별로 없었는데, 회의에 참여해 말을 얹거나 연구원들이 디자인을 어떻게 시작하고 끝내는지 구경하는 정도였죠. 그때 만난 김병조, 김동신, 박찬신 씨는 제 인디자인 선생님이기도 하죠.

그러다 안그라픽스와 연계된 프로젝트에 참여하다 4학년 2학기 때 자연스럽게 안그라픽스로 자리를 옮겼죠. 그때는 안그라픽스 전체 임직원이 100명이 넘는 규모였죠. 거기서 6년 정도 일했고요. 그러다가 시적 연산 학교에 갔다가 워크룸으로 자리를 옮겨 7년 정도 일하고, 다시 안그라픽스로 자리를 옮겨 2022년 2월 22일부터 지금까지 안그라픽스 랩 디렉터로 일하고 있고요.

따지고 보면 대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죠. 제가 전역할 무렵 저희 부대에 국가정보원 취업을 준비하던 친구들이 꽤 많았는데, 안상수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저도 국정원 요원으로서 국가에 헌신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민구홍 님이 속한 웹의 세계에서는 그래픽 디자인 전공이 아니어도 충분히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또는 본인의 경우가 특수한 걸까요?

저는 디자인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운 좋게 주위에 솜씨 좋은 선생님, 선배, 동료가 있었고, 그들 바로 옆에서 그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지켜보며 디자인을, 정확히는 ‘디자인’이라는 기술을 익힐 수 있었어요. 특히 그들이 디자인하며 결정을 내릴 때 그 이유를 따져보는 게 도움이 됐죠. 제가 디자인을 익힌 또 다른 학교인 구글(Google)의 도움도 많이 받았고요. 요즘에는 챗GTP(ChatGTP)의 도움까지 받죠. 디자이너로서 저는 일반적이거나 모범적인 사례는 아니에요. 일종의 우화(寓話)로 보는 게 맞겠죠.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목표 없이 우연히 또는 느닷없이 디자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만큼 당연히 따라야 할 모범이나 따르고픈 모범 같은 것도 없었고요. 무엇보다 모범을 따른다고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는 보장도 없죠. 모범이 있다면, 그를 참고해 자신에 맞게 편집하는 게 중요하겠죠. 지금 제 모습은 그저 제가 발 디딘 자리에서 최고의 선(善), 즉 하루 24시간 가운데 여덟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는 상태를 더듬어본 결과 또는 과정입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 G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