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하는 질문

일러두고픈 말이 있다면?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2015년 이래 진행한 길고 짧은 인터뷰를 꼼꼼히 정리한 뒤 다시 무작위로 늘어놓은 「자주 하는 질문」을 통해 회사 또는 운영자에 관한 궁금증이 모쪼록 해소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단, 질문의 시기에 따라 현재와 다른 사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편, 질문의 어조에 따라 언급한 인물에 대한 존칭을 생략하기도 했습니다. 「자주 하는 질문」을 섭렵한 뒤에도 궁금증이 도무지 해소되지 않는다면 [email protected] 앞으로 소상히 말씀해주세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인정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단, 답장은 이메일 대신 언젠가 「자주 하는 질문」에서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푹신’(Fuchsine)을 처음 본 건 2018년 인사미술공간에서 열린 『픽션-툴』(Fiction-tool) 전시장에서였다. 로비에 설치된 전시용 아카이브 웹사이트 속에서 푹신은 전시에 관한 논평이나 해설, 또는 야릇한 말을 중얼거리며 하루하루 몸집을 키워갔다. 그 뒤에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견학하는 어드벤처 게임에서, 미술가 박현정의 전시에서, 난지미술창작레지던시와 관련한 웹사이트 등에 등장해 중얼거림을 이어갔다. 마젠타색 몸에 눈인지 코인지 입인지 알 수 없는 생략 부호(…), 평양 냉면을 좋아하고, 발렌시아가의 대표적 어글리 슈즈인 트리플 S를 신는 게 꿈이라는 이 생명체의 정체는 무엇인가?

‘분홍이’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불리는 푹신은 아득히 먼 옛날 미술 평론가 겸 기획자 이한범 씨가 기획한 아카이브 전시 『픽션-툴』 웹사이트에서 태어났다. 웹사이트 자체가 또 하나의 전시였으므로 웹사이트상의 전시를 해설할 도슨트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시 관련자가 아닌 제3자, 즉 관람객의 입장에서 말이다. 그렇게 웹사이트 화면을 돌아다니며 클릭할 때마다 메시지를 출력하는 기능이 탑재됐다. 그리고 전시 전체 기간을 백분율로 계산해 하루에 웹사이트 화면 높이의 일정 비율씩 커지도록 했다. 전시 종료일에 화면을 가득 채우는 모습을 의도한 것이기도 하다. 이한범은 전시 리플릿에 푹신에 관해 이렇게 썼다.

이제 여러분은 1층으로 다시 돌아와 한 벽면에 놓인 모니터를 통해 전시장에서 본 작업들의 정리된 정보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아마 남몰래 목록을 더해가고 있을 테니 시간 날 때마다 슬쩍 슬쩍 구경해도 재미가 쏠쏠하겠죠? 잠깐만요, 그런데 화면에 떠다니는 귀여운 녀석이 보이시나요? 커서로 쫓아가 (모바일 디바이스라면 손가락으로!) 건드리고 클릭하면 여러분께 말을 건넬지 모릅니다! 이 친구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만든 신제품입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웹이라고 하는 공간에 기반해 그 시스템의 기술을 이용한 기생형 프로그램을 만듭니다. 말하자면 직접 어떤 공간을 새로이 만들지 않고, 기존에 있는 공간에 달라붙어 그것을 비틀거나 변형시키는 방식으로 기능하는 거죠.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심각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우리를 유쾌하게 해주는 장난스러운 개구장이에 더 가깝죠. 화면의 저 분홍색 친구는 절대 여러분을 해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전시 기간 하루가 달리 몸집이 불어난다고 하니 조금 걱정이 되긴 하네요.

모양은 UX 분야에서 전통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생략 버튼’(ellipsis button)에서 따왔다. 대개 클릭하면 두드러질 필요 없는 부가적인 기능이나 정보를 드러내는데, 그 속성이 도슨트의 역할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곡률은 이후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 개발할 것까지 고려해 여러 모바일 운영 체제 아이콘 곡률의 평균값(전체 크기의 약 22퍼센트)을 지정했다.

이후 잠시 현실로 도피했다가…

지금은 다시 웹상에서 중얼거림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난지미술창작레지던시의 큐레이터 정시우 씨와 코디네이터 정지원 씨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COS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와 관련된 책을 몇 권 꼽아주세요.

  • 『시청각 문서 1-[80]』
  • 『인덱스카드 인덱스 1』
  • 『감옥에서 쇼핑하기』
  • 『문예 비창작』
  • 『스페인 연극』
  • 『포스트 인터넷』
  • 『이제껏 배운 그래픽 디자인 규칙은 다 잊어라. 이 책에 실린 것까지.』
  • 『자습서』
  • 『BIC 카탈로그』
  • 『3M 카탈로그』
  • 『유라인 카탈로그』

그러고 보니 이 글 또한 웹사이트를 통해 읽고 있군요. 웹사이트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겠죠.

샤를 보들레르(Charle Baudelaire)는 『현대의 삶을 그리는 화가』(The Painter of Modern Life and Other Essays)에서 산업화와 도시화가 변화시킨 19세기 파리의 모습을 포착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웹사이트가 그 역할을 맡는다고 생각합니다. 웹사이트는 기술과 문화뿐 아니라 철학과 미학이 집약된 공간입니다. 때로는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의 시뮬라크르처럼 현실을 대체하고, 때로는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말한 ‘아우라’를 지닌 예술 작품이 되면서요. 실리콘 밸리의 스타트업에서 도쿄의 아방가르드 예술가, 나이로비의 사회 활동가에 이르기까지 웹사이트는 마주한 국면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형태와 기능으로 발전해왔습니다. 이제 잠시 그곳을 다시 돌아볼 때입니다. 그곳에는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세계가 있으니까요.

그 시작으로 제가 운영하는 민구홍 매뉴팩처링(Min Guhong Manufacturing)의 웹사이트 기반 제품을 살펴볼까요?. 제목은 「너에게」로, ‘연애편지’ 연작 가운데 하나입니다. 여기서 ‘너’는 과연 누구이고, ‘이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책을 멘탈 푸드로 꼽는 분들도 계신데, 이 말에 동의하시나요?

사람마다 다르겠죠. 멘탈 푸드가 정신에 도움이 되는 무엇이라면, 책을 만드는 입장에서는 동의하기 어려워요. 저한테 책을 읽고, 보고, 만지고 하는 건 아무래도 일의 범주 안에 있으니까요.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온갖 책과 씨름하다가 퇴근한 뒤에는 웬만하면 책은 더 이상 대하고 싶지 않아요. 책을 만드는 게 즐거운 일이긴 해도 늘 옥수수수염차만 마실 수는 없잖아요. 여덟 시간 동안 책을 만들면서 한쪽으로 기울어진 정신은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이나 스릴러 영화, 민구홍 매뉴팩처링 같은 것으로 바로잡죠.

민구홍 매뉴팩처링 제품 제작 선언문이 있나요?

없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면 처음부터 선언문을 직접 쓰기보다 아무래도 평소처럼 적절한 선언문을 선택해 편집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 아이디어에서 출발할 것.
  • 우연을 받아들이고, 우연의 일치를 즐길 것.
  • 즉흥적으로 만들고, 작위적으로 해석할 것.
  •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할 것.
  • 기대를 배반할 것.
  • 어려운 일을 쉬워 보이게, 즉 스프레차투라.
  • 처음이 되거나, 마지막이 되거나.
  • 복잡한 아이디어가 단순한 결과물을 만들 수 있음을 믿을 것.
  • 복잡한 아이디어가 단순한 결과물을 만들 수 있음을 믿은 결과물을 적어도 두 번 이상 반복할 것.
  • 복잡한 아이디어가 단순한 결과물을 만들 수 있음을 믿은 결과물을 적어도 두 번 이상 반복할 것.
  • 과정을 믿을 것.
  • 개념이 형태를 결정하도록 설계하거나 유도할 것.
  • 재료와 제작을 본질로 환원할 것.
  • 아이디어의 온전함을 유지할 것.
  • 어리석어 보일 만큼 정직함을 해결책으로 제시할 것.
  • 아니면 완전히 반대로.

LSD에 한껏 취한 시인이 쓴 시를 읽는 기분입니다. 뭐가 뭔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더 집요하게 알고 싶어요. 설령 제가 끝없이 침몰하더라도요.

저도 일찍이 경험한 바입니다. 이 웹사이트에 접속하면 검은색 베경에 무질서해 보이는 라임색 기호가 화면을 메웁니다. 하지만 이 혼돈 속에는 새로운 질서가 숨어 있죠. 웹 브라우저의 개발자 도구를 이용해 웹 페이지의 소스 코드를 들여다보면, 아스키(ASCII) 코드로 그려진 핵폭발 이미지가 드러납니다. 디지털 세계의 표면과 내면, 가시성과 비가시성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죠. 무질서 속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는 일은 관객의 몫이 되고요. 이처럼 넷 아트의 실험과 도전은 웹사이트가 단순한 정보 전달 매체를 넘어 예술적 표현의 장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고, 이는 오늘날 예술의 맥락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뒤샹이 일상의 물건을 예술로 치환했듯 넷 아티스트들은 웹사이트라는 일상의 매체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거죠. 이는 예술의 정의와 경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무엇이 예술이고, 무엇이 예술이 아닌가? 나아가 예술 작품과 그것을 담는 매체의 경계는?

앞으로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웹을 통해 해보고 싶은 일은?

글을 쓰다 보면 글의 형식을 제어해보고 싶고, 나아가 형식에 적합한 글자까지 만들어보고 싶어지곤 한다. 글을 둘러싼 모든 요소를 지배하고픈 자연스러운 욕망이다. 웹사이트를 만드는 것도 물론 즐겁지만, 웹사이트가 만들어지는 기반을 다지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 웹 브라우저를 만들거나 차기 HTML과 CSS의 표준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민구홍 매뉴팩처링뿐 아니라 미래의 동료를 위한 일이다.

듣고 보니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당신이 오로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편집한 결과물, 또는 그를 위한 편집 지침처럼 보인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감사할 따름이다.

워크룸의 단행본 편집자인 한편, 웹에도 관심이 적지 않다. 두 매체를 구분하는 것의 장점과 단점이 무엇일까? 두 매체를 오가면서 어떤 이유에서 각 매체를 선택하는가?

웹은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회사를 소개하기 위해 활용하는 매체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웹의 비중이 적지 않기 때문에 이따금 웹 디자인 에이전시로 오해받곤 한다. 회사에서 웹을 주로 이용하는 까닭은 다루기 쉽고, (인쇄물에 비해) 파급력이 클 뿐 아니라 무엇보다 많은 사람이 잠들기 직전에 마주하는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 경이 과학자들끼리 효율적으로 논문을 공유할 목적으로 웹을 발명한 만큼 역사적으로 웹은 인쇄물에서 출발했다.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의 측면에서 웹은 태생적으로 인쇄물의 장점을 포섭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발전을 거듭한다. 따라서 둘을 같은 출발선상에 놓고, 일대일로 비교하기보다는 인쇄물을 웹의 조상, 웹을 조금 더 진보한 인쇄물로 여기는 편이 이롭다. 당장 생각 나는 둘의 분명한 차이가 있다면 웹은 책을 손에 쥐었을 때 느껴지는 흡족함을 주지 못한다는 점과 책과 달리 영원히 베타 버전이라는 점이다.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졸업생입니다. 웹사이트의 방문객을 어떻게 고려하나요?

웹사이트에 근사한 콘텐츠가 담겨 있거나 웹사이트를 이루는 코드가 완벽하더라도 웹 브라우저가 없으면 열람조차 할 수 없습니다. 웹 브라우저가 모든 웹 기술의 종착지인 셈이죠. 결국 사용자에게는 웹사이트가 웹 브라우저상에서 어떻게 동작하는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 점에서 로딩 속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통계상 로딩 속도가 3초를 넘으면 소비자가 열람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거든요. 이미지가 많은 웹사이트인 경우 이미지 파일의 크기를 신경 쓰는 편이고요. 이미지 파일의 크기는 화질이 열화되지 않는 선에서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고 생각해요. 이를 위해 이미지의 불필요한 메타데이터까지 삭제하는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합니다. 시각 장애인이나 저시력자를 위한 이미지의 대체 텍스트나 글자 색과 배경 색의 대비도 중요하죠. 물론, <div> 태그를 난잡하게 사용하지 않는 시멘틱(semantic)한 HTML 마크업은 기본이고요.

이번에는 민구홍 씨에 관해 물어보죠. 대학교에서 컴퓨터 공학이 아닌 문학과 언어학을 공부한 이유가 있을까요? 이는 웹사이트를 만드는 데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고등학생 때는 미술 대학에 진학하려고 도전해본 적도 있는데, 사실 도전 과정부터 곤욕스러웠어요. 입시 미술에 소질도 별로 없었고, 심지어 미술과 무관하지 않던 부모님도 반대하셨죠. 그럼에도 예술에 대한 허영심 같은 건 남아 있었고, 그래서 선택한 게 문학, 정확히는 문예 창작이었어요. 별다른 도구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글자만으로 뭔가 이룬다는 게 실용적이고 근사했거든요. 게다가 읽고 쓰는 건 당연히 잘할수록 좋은 일이니까요.

코딩은 실제로 글쓰기입니다. 결과물이 일반적인 글이 아니고, 의사소통의 대상이 인간이 아닌 컴퓨터일 뿐이죠. 단, 컴퓨터는 인간만큼 너그럽지 않습니다. 글, 즉 코드에 오타나 잘못된 띄어쓰기가 있다면 바로 작동을 멈추죠. 정돈되지 않은 글을 읽다 보면 짜증이 나는 것처럼 지저분한 코드는 컴퓨터에 썩 좋지 않은 영향을 줍니다. 컴퓨터 언어를 사용할 뿐, 코딩도 글쓰기와 똑같은 논리로 접근할 수 있어요. 학교에서 제대로 읽고 쓰는 훈련을 한 덕을 톡톡히 본 셈입니다. 언어학에서도 특히 화용론을 공부한 게 큰 도움이 된 것 같고요. 미술이나 디자인을 공부한 결과는 잘 상상이 안 되지만, 컴퓨터 공학을 공부했다면 지금보다 타이핑 속도가 조금은 더 빨랐겠죠.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졸업생입니다. 혹시 직업병 같은 게 있나요?

이따금 웹 조사기(Web Inspector)를 실행해 웹사이트의 코드를 들여다보게 됩니다. 코드에서 주석으로 처리된 메시지를 찾아보는 게 또 다른 즐거움이거든요. 나아가 사물, 인물, 공간, 음악 등 어떤 인상적인 대상을 마주하면 머릿속 샌드박스에서 웹사이트로 치환해보기도 해요. 아주 단순한 형태부터 아주 복잡한 형태까지요. 직업병보다는 습관에 가깝지 않을까 해요. 사무실을 떠나면 컴퓨터나 스마트폰은 별로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데, 오히려 이쪽이 직업병에 가깝습니다. 증상이 악화하다 보니 몇 달 전에는 아예 집에서 컴퓨터뿐 아니라 컴퓨터와 비슷한 물건은 죄다 치워버렸죠. 웬만하면 스마트폰도 그만 쓰고 싶어요.

쇠젓가락은 끝이 뭉뚝하고 무거워 사용하는 데 의외로 고난이도의 기술을 요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혹시 젓가락질을 잘하면 글자도 잘 쓸까요?

젓가락으로 콩자반을 하나씩 집어 먹다 보면 누구보다 젓가락질을 잘한다고 자부하게 됩니다. 반대로 계약서나 전시 방명록에 이름을 쓸 때는 제가 쓴 글자가 마음에 든 적이 별로 없어요. 원하지 않는 곳으로 획이 나아가 어딘가 어색한 지점에서 멈추곤 합니다. 필기구가 하필 붓이라면 결과물은 더 엉망이죠.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젓가락질을 하는 데 사용하는 근육과 글자를 쓰는 데 사용하는 근육은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키보드나 마우스, 터치스크린이 더 익숙해서 그럴지도 모르고요. 젓가락질을 조금 더 연습해야 할까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관한 소논문을 쓰다가 한 가지 문제에 봉착했습니다. 『레인보 셔벗』 포스터나 표지에 등장하는 인물은 누구인가요?

잘 모르겠습니다. 민구홍 씨가 아닌 것 만큼은 분명합니다. 해당 인물을 실은 전시 포스터를 처음 제안한 그래픽 디자이너 강문식 씨에게 여쭤보시면 어떨까요?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입니다. 시, 소설, 작업, 노래, 영상 등 최근에 접한 것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단 한 가지로 수렴할 수밖에 없는 ‘가장’이라는 표현은 저와는 별로 어울리지 않습니다. 너무 많은 게 한꺼번에 떠오르거든요. 그래서 차라리 제 생활 패턴을 말씀드리는 게 어떨까 싶어요.

평일 가운데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회사에서 열심히 일합니다. 학기 중에는 목요일에 학교에서 강의를 하고요. 금요일에는 새로운 질서에서 친구들과 만나고요. 퇴근한 뒤에는 특히 드라마나 영화를 많이 봅니다. 최근에는 시트콤 『사인펠드』에 푹 빠졌고, 『세브란스: 단절』도 두 번째 시즌이 나올 때까지 계속 보죠. 음악도 많이 듣고요. 게임도 합니다. 아내와 산책하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죠. 얼마 전에는 일본 이민에 관해 진지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주말에는 심심하면 번역과 작곡에 심취하고요. 그리고 12시 전에 자고, 8시 전에 일어납니다.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입니다. 미래에 가장 하고픈 작업은?

잘 모르겠습니다.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졸업생입니다. 종이 책과 웹사이트에서 섞어짜기를 구사하는 데 어떤 차이가 있나요?

개념은 같아요. 차이는 방법에 있습니다. CSS에서 글자체를 제어하는 ‘font-family’ 속성에서는 폴백(fallback) 기능을 지원합니다. 쉽게 말해 몇 가지 글자체를 지정해두고, 첫 번째로 지정한 글자체의 폰트가 지원하지 않는 글리프가 있다면 다음 글자체의 폰트가 담당하는 기능이죠. 이 기능을 이용하면 섬세하지는 않지만 기본적인 섞어 짜기가 가능해요. 이보다 조금 복잡하기는 해도 자바스크립트의 힘을 빌리면 인디자인에서처럼 정규 표현식을 통해 자동으로 한글, 로만 알파벳, 한자, 가나 등 언어별 문자마다 스타일을 지정할 수 있고요. 시적 연산 학교 동문이기도 한 MIT의 소원영 씨와 뉴 스쿨(The New School)의 강이룬 선배가 만든 멀티링구얼 JS가 이를 위한 대표적인 자바스크립트 플러그인인데, 『타이포잔치 2021: 거북이와 두루미』, 『2022 부산비엔날레』 등에서 유용하게 사용했습니다. 마지막 업데이트 시점에서 무려 6년이나 지났지만, 사용하는 데 전혀 무리가 없었고요. 이 자리를 빌려 두 분께 존경을 표합니다. 나아가 아예 폰트를 커스터마이징해 앞서 말씀드린 얄궂은 설정이 필요 없는 완전한 다문자용 폰트를 만들 수도 있고요. 구글과 어도비가 합작한 노토 산스(Noto Sans)가 대표적인 보기죠.

‘민구홍 매뉴팩처링’이라 이름을 지은 이유도 궁금합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설립한 게 2015년이었어요. 캐나다의 미술가 J. R. 카펜터(J. R. Carpenter)가 ‘핸드메이드 웹’(Handmade Web)을 주창한 해이기도 하죠. 디자인계에서 ‘소규모’라는 접두어가 붙은 스튜디오들이 등장하던 시절이었고, 저도 덩달아 뭔가 해보고 싶었어요. 다만, 많은 스튜디오가 소규모를 지향하는 만큼 반대로 큰 회사처럼 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제 이름을 내세우는 건 어딘가 부끄럽고 겸연쩍은 일이었고, 동시에 이름에 지나치게 공을 들인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죠. 고민 끝에 제 이름 뒤에 ‘매뉴팩처링’을 붙이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저와 거리가 적당히 생기고, 무엇보다 그럴듯한 회사처럼 보였거든요. ‘매뉴팩처링’(manufacturing)은 본디 ‘원재료를 인력이나 기계력 등으로 가공해 대량으로 생산하는 일’을 뜻합니다. 야구에서는 ‘도루, 진루타, 희생타 등 안타가 아닌 방법으로, 어떤 식으로든 득점하는 기술’을 뜻하기도 하죠. ‘매뉴팩처링’이 품은 두 가지 뜻이 회사와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반응형 인프라플랫」에 관해 설명해달라.

미술가 겸 그래픽 디자이너 듀오 (또는 그 반대) 슬기와 민의 9월 5일을 기념하는 선물이다. (하지만 그날이 무슨 날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들이 창안한 개념인 ‘인프라플랫’(infra-flat)을 조금 더 쉽고 다양하게 구현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크기는 반응형, 즉 접속하는 기기나 웹 브라우저의 화면에 따라 달라진다. 주요 재료는 sulki-min.com이다. 인프라플랫에 관해 조금 더 알고 싶다면 불문학자 이지원의 글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2005년 펜실베이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Pennsylvania)에서 열린 한 콘퍼런스 자리에서 미국의 시인이자 아방가르드 작품을 아카이빙해 소개하는 「우부웹」(UbuWeb)의 운영자 케네스 골드스미스(Kenneth Goldsmith)는 말했다. “무엇이 인터넷상에 없다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If it doesn’t exist on the Internet, it doesn’t exist.)”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인터넷이 현실과 조금 더 가까워지거나 다른 차원에서 현실을 대체할 예정이다. 이 점이 회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넓게는 인터넷을, 좁게는 웹을 사랑한다. 웹은 상대적으로 적은 노동력으로 제품을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이자 접근하기 쉬우면서 유용뿐 아니라 무엇보다 많은 사람이 잠들기 전에 마주할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 이후에는 기술 지원에 관한 문의를 많이 받는 편인데, 대가가 합리적이고 여유만 있다면 기꺼이 응하는 편이다.

최근에는 뉴욕의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인 워크숍스(Wkshps)와 제11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티저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행사명은 『하루하루 탈출한다』(One Escape at a Time)였는데, 2020년 9월에 열릴 예정이었다가 메인 웹사이트 작업 도중 내년 가을로 미뤄지고 말았다. 이제껏 현실과 깔끔하게 유리된 듯 보였던 미디어 아트도 현실과 완전히 분리될 수는 없는 듯하다. 예정된 여러 행사가 취소되거나 지연되는 소식을 마주하면, 이제껏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여겨온, 사람이 모이는 일의 경제적인 위력을 실감한다.

아예 온라인에 기반을 둔 레프트 갤러리(Left Gallery)DDDD처럼 조금 더 작지만 시류에 영리하게 영합하는 전시 모델도 있다. 특히 네덜란드의 미술가 하름 판 덴 도르펠(Harm van den Dorpel)이 2015년에 설립한 레프트 갤러리는 작품을 열람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작품의 소스 코드를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등으로 구입할 수 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임시로 소속돼 있기도 하다.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미술가 돈선필의 개인전 『초상권』(Portrait Fist)을 위해 만든 영상 「자기소개」(自己紹介)에서는 25여 분 동안 ‘얼굴’이 자신을 소개한다. 돈선필은 자타가 공인하는 피규어(フィギュア) 오타쿠다. 그가 쓴 대본대로 목소리를 녹음하고, 그가 웹에서 긁어모은 얼굴에 관한 ‘짤방’들에 심취하다 보니 결과물은 자연스럽게 TV 도쿄(テレビ東京)에서 방영하는 교양 프로그램 같은 형식을 띠게 됐다. 이에 관해 조금 더 알고 싶다면 『한국예술종합학교신문』에 실린 김얼터의 「나를 나로 만드는 것」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는 웹 기술에 기반을 둔 제품이 적지 않습니다. 이 제품들은 일반적인 판매 방식과 달리 사용자가 원하는 만큼 기부하는 형태로, 즉 거의 무료와 다름없이 배포되는데요. 이는 개발자로서 익숙한 협업 문화나 오픈 소스 정신에 기인한 것인가요? 또는 ‘기생’이라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운영 방식이나 홍보 전략, 또는 기술적 한계 같은 까닭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웹은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회사를 소개하기 위해 활용하는 여러 매체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래서인지 이따금 웹 디자인 에이전시로 오해받곤 하죠.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웹을 주로 이용하는 까닭은 다루기 쉽고, 파급력이 클 뿐 아니라 무엇보다 많은 사람이 잠들기 직전에 마주하는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공유’라는 웹의 철학에 집중해 웹의 탈중앙화를 실천하는 비커 브라우저(Beaker Browser) 같은 프로젝트가 등장했지만, 여전히 특정 서버에 세 드는 게 일반적인 웹의 특성이 회사의 주요한 생존 전략인 ‘기생’과 맞물리기도 하고요. 하지만 회사를 소개한다는 소기의 목적만 달성한다면 사실 매체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기회만 주어진다면 전통적인 매체인 신문이나 잡지, TV나 건물의 전광판, 회화나 조각 등도 활용하고 싶습니다. 미술관이나 갤러리 등에서 회사를 소개하는 것 또한 꺼리지 않고요.

맞아요. 특히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다 보면 자극적이고 즐거운 동시에 제 소중한 바이오리듬이 엉망이 되곤 합니다. 깜찍한 하트 아이콘과 숫자 몇 개 때문에 감정이 요동치기 일쑤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웹상에서 마주하는 정보는 대부분 알고리즘에 따라 선별됩니다. 페이스북의 뉴스 피드, 유튜브나 넷플릭스의 영상 등은 모두 우리의 취향과 관심사를 분석한 결과물이죠. 편리함의 대가로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정보의 거품에 갇히기도 합니다. 플라톤의 동굴처럼 알고리즘이 제안하는 그림자가 전부라 믿으면서요. 작가 엘리 프레이저(Eli Pariser)는 이런 현상을 ‘필터 버블’(Filter Bubble)이라 불렀습니다. 필터 버블 속에서 점점 자신의 기존 관점을 강화하는 정보만 접하고, 다른 의견이나 새로운 시각을 접할 기회는 줄어든다는 거죠. 하버드 대학교의 심리학자 댄 길버트(Dan Gilbert)의 말마따나 “우리는 정보의 바다에서 헤엄치고 있지만, 지식의 섬에 고립돼 있다.”

COS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의 콘셉트는 무엇인가요?

정지, 금지, 위험, 경고 등을 의미하는, 하지만 포춘 쿠키 속 메시지처럼 방문객에게 우연한 기쁨을 줄지 모를 빨강 문자들입니다.

강이룬 선생님이 운영하시는 KAIST 시각도구연구실에 학부생 인턴으로 합격했습니다. 3월이면 대전으로 이사해야 하는데 추천해주실 만한 제품이 있을까요?

먼저 축하드립니다. 「박스 박스 테이프」 어떨까요? 박스를 포장하는 데 사용하시면 좋습니다. 기존 박스 테이프와 다른 점이 있다면 테이프 표면에 ‘BOX’라고 인쇄돼 있습니다.

「비치 비치 타월」 또한 추천합니다. 한국의 대표적 분지인 대전에서도 바닷가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그래픽 디자이너 김재연입니다. 안그라픽스 랩 방문 당시 잠시 제안한 바를 편지에 담아 보내드립니다. 제목은 「민구홍 매뉴팩처링 귀중」입니다. 참고로,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제품 가운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영혜 중공업 귀중」의 소스 코드를 훔쳐왔습니다. 그럼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감동적인 편지 잘 읽었습니다. (가로세로 100vw, 100vh 크기로) 좋습니다. 당장 월요일부터 출근하시면 좋겠습니다. 월요일이 공휴일이라면 화요일부터요. 그나저나 소스 코드를 훔치는 데 일가견이 있으시네요!

본인이 기꺼이 광고판을 자처하고 싶은 브랜드, 비밀이 아니라면 알려달라.

예상했을지 모르겠지만 민구홍 매뉴팩처링이다. 티셔츠를 제작하는 데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갖추지 못한 또 다른 전문성과 섬세함이 필요하다. 혹시 함께할 동업자를 추천해줄 수 있다면 감사하겠다. 티셔츠를 제작하지 않더라도 생각지 못한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하루는 어떻게 이뤄지는가?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기생 회사다. 현재 회사의 숙주는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겸 출판사 워크룸이다. 회사와 계약한 소정 근로 시간에는 숙주의 직원으로서 열심히, 그리고 되도록 즐겁게 일한다. 짬이 나면 민구홍 매뉴팩처링 일을 한다. (제품 대부분이 단순한 까닭이다.) 물론 둘 사이가 흐려질 때도 있다. 퇴근한 뒤에는 친구들을 만나거나 TV를 보거나 책을 읽곤 했다. 요즘에는 플레이 스테이션을 조금 가지고 놀다가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내일을 생각하며 잠에 빠진다.

지금까지 웹사이트는 구글이나 네이버, 웹진 『비유』 같은 것만 생각했는데… 그럼 웹사이트는 어떻게 만드나요? 누구나 만들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웹사이트는 개발자나 웹 디자이너만이 만들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럴 수도, 그럴 필요도 없고요. 즉, 웹사이트는 모두를 위한 매체입니다. 웹사이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코드(Code)로 컴퓨터와 대화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컴퓨터 언어가 필요하죠. HTML(HyperText Markup Language)을 비롯해 CSS(Cascading Style Sheets), 자바스크립트(JavaScript)는 단순한 컴퓨터 언어가 아니라 시인의 펜이자 작곡가의 악보입니다. 자연어의 문법이 주어, 동사, 목적어로 세계를 구축하듯 웹상에서 HTML은 태그로, CSS는 선택자와 속성으로, 자바스크립트는 함수와 변수로 세계를 구축합니다. 나아가 세 언어는 저마다 고유한 특성을 지닙니다. HTML은 구조를 맡습니다. 건축가가 건물의 뼈대를 세우듯 HTML은 웹 페이지의 기본 구조를 만듭니다. CSS는 스타일을 맡습니다. 화가가 캔버스에 색을 입히듯 CSS는 웹 페이지에 시각적 아름다움을 더합니다. 자바스크립트는 기능을 맡습니다. 작곡가가 음표로 멜로디를 만들듯 자바스크립트는 웹 페이지에 생동감을 불어넣습니다. 시의 운율, 비유, 이미지가 어우러져 하나의 시를 완성하듯 세 언어는 서로 긴밀히 연결돼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이 과정은 그 자체로 순수한 창작 행위죠.

2019년부터 매주 금요일마다 ‘현대인을 위한 교양 강좌’를 표방하는 「새로운 질서」를 진행합니다. 강좌의 구체적인 내용과 참여 방법이 궁금합니다.

시적 연산 학교의 마지막 과제가 자신이 만들고픈 학교를 기획하는 거였어요. 저는 ‘리코타 인스티튜트(Ricotta Institute)’를 제안했는데, 4주에 걸쳐 리코타를 만들고, 리코타에 관한 글을 쓰고, 그 글을 실은 웹사이트를 만들고, 마지막으로 리코타를 마케팅하는 방법을 배우는 학교죠. 그때는 리코타, 글쓰기, 코딩, 마케팅이 오늘날 산업을 작동시키는 요체라고 생각했거든요.

「새로운 질서」는 언젠가 문을 열 리코타 인스티튜트의 프로토타입 같은 거죠. 2016년 크리스마스 이튿날 워크룸에서 열린 비공식 워크숍에서 시작해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강의, 여러 특강과 워크숍을 거치면서 커리큘럼이 다듬어졌어요. 2019년부터는 박현정, 돈선필 씨 같은 젊은 미술가들이 운영하는 스튜디오 파이취미가의 아낌 없는 지원 덕에 지금 같은 모습으로 확장할 수 있었고요.

마포구 성산동에 있는 스튜디오 파이에서 6주 동안 진행하는 「새로운 질서」는 웹 디자인 강좌는 아니에요. 기술로서 디자인을 다루기도 하지만 글쓰기 강좌에 가깝죠. 「새로운 질서」에서는 ‘실용적이고 개념적인 글쓰기’의 관점으로 코딩을 이야기합니다. 먼저 자신을 바라보며 자신의 관심사에 관해 글을 쓰고, 차례로 HTML, CSS, 자바스크립트를 도구 삼아 콘텐츠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해보죠. 중간중간 인터넷과 웹의 역사, 견지해야 할 태도, 넷 아트, 컴퓨터 언어 자체에 관한 이야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면 적어도 이런 웹사이트는 별 어려움 없이 만들 수 있게 됩니다. 예습과 복습을 철저히 한다면 말이죠.

「새로운 질서」에서 함께 추억을 쌓은 분들이 ‘새로운 질서 그 후…’라는 느슨한 컬렉티브를 꾸렸는데, 최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주관하고 현대자동차에서 후원하는 ‘프로젝트 해시태그’ 사업에 선정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죠. 후문에 따르면, 심사위원이었던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이 적극적으로 추천했다고 해요. 오는 11월이면 그들이 고민하고 즐긴 결과물을 볼 수 있겠죠? 며칠 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그들의 작업 상황을 엿볼 수 있었는데, 이번 전시가 그들에게 기억에 남을 만한 추억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최근에는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분들을 대상으로 4주 동안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했죠. 지금은 사회적 거리 두기가 4단계로 격상하면서 잠시 문을 닫았어요. 온라인으로라도 개인 과외를 받고 싶다는 문의가 들어오기도 하지만 거절하고 있습니다. 기술을 다루더라도 서로 마주보며 이야기하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매학교로는 미국의 그래픽 디자이너 로럴 슐스트(Laurel Schwulst)존 프로벤처(John Provencher)가 운영하는 프루트풀 스쿨(Fruitful School)이 있습니다.

더 궁금한 점이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기회가 있다면 또 다른 자리를 마련해보면 좋겠다. ‹새로운 질서›에서 이야기하는 일부 내용을 간추렸을 뿐이지만, 오늘 이야기가 미술 및 디자인계의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다. 단, 내 말을 맹신하는 건 금물이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그래픽 디자이너 밥 길도 말하지 않았던가. 규칙을 파악한 뒤에는 잊어버려야 한다고.

2016년 청담동의 COS 매장 3층에 마련된 프로젝트 스페이스에서 발표한 「보기」(더 북 소사이어티·김영나 기획)는 빨강 버튼을 누를 때마다 무작위로 조합된 경고나 행운의 메시지를 대형 스크린에 출력하는 제품이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것 가운데 가장 섬뜩한 메시지가 있다면?

귀하는 / 유니클로에서 / 느닷없이 / 친척 어른에게 / 귀하의 직업을 / 설명하게 될 것입니다. / 축하드립니다.

하지만 가장 섬뜩했던 건 메시지보다 음악가 김윤기의 오프닝 공연이었을 것이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제품이 주로 웹 기술을 통해 이뤄지는 만큼 당신은 첨단 기술의 목적과 방향 또한 염두에 둬야 한다. 오늘날 수없이 쏟아지는 제품이 우리 삶을 얼마나 더 개선할 수 있을까?

2009년 겨울, 일본 도쿄를 방문한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Michael Moore)는 아키하바라에서 어이없다는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여기선 쓸데없는 물건이 엄청나게 팔린다. 쇼핑을 하면 기분이 좋아질지 모르지만, 자신을 속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다이슨(Dyson)의 최신 무선 청소기가 더 빠르고 깔끔하게 먼지를 빨아들일수록 우리는 더 행복해질까? 1페타바이트 파일을 1초 만에 내려받는 세상은 지금보다 더 아름다울까? 기술 발전은 우리가 행복을 유지하는 것과 별로 상관없을지 모른다. 물론 기술이 발전하면 당신과 내가 좀 더 쉽게 만날 수 있겠지만. 어쨌든 회사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세상에 제품을 선보이는 데 책임감을 느끼는 건 사실이다. 제품을 홍보할 때면 더더욱 그렇다. 「회사 소개」에서 밝혔듯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생화학 무기와 도청 장비, 무엇보다 샤워 커튼을 제작하지 않는 이유다.

‘100세 시대’를 맞아 3대째 이어온 요식업을 아들 내외에게 물려주고,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려 합니다. 일단 저희 식당 메뉴판을 다시 디자인해보고 있는데, 추천해주실 만한 책이 있을까요?

우선 그래픽 디자인 규칙을 배우셔야겠죠? 그 뒤 『이제껏 배운 그래픽 디자인 규칙은 다 잊어라. 이 책에 실린 것까지.』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책에 실린 규칙을 잊으실 수 있을 때까지요. 아침달의 블로그에 실린 소개를 참고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이 책에서 디자인 작업에서의 ‘문제 (재)설정’의 중요성을 피력한다. 우선 어떤 문제가 제대로 된 질문을 하는지, 아니라면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고 설정하는 게 어떤 문제에 대한 답을 내는 일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원칙에 부합하거나 위반하는 자신의 여러 작업을 소개한다. 문제 (재)설정이 디자인에서만 중요하겠는가? 아니다. 삶의 많은 부분에서, 특히 어떤 예술 분야에서든지 중요하다. 이는 우선 예술의 수신자-상대를 인지한다는 의미인 동시에 자신의 관점을 재고해보는 일이고, 자신만의 위트에 신선도를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과정이다.

검은색 배경에 점멸하는 노란색 글자를 한 시간 정도 명상하듯 읽다 보니 ‘너’와 ‘이것’ 모두 ‘웹사이트’를 가리키는 것 같은데요?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네요. 한때 도서관을 뒤지거나 전문가를 찾아다녀야 비로소 얻을 수 있던 정보가 이제는 검색창에 몇 글자를 입력하는 것만으로 충분할 만큼 쏟아집니다. 하지만 잠시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저도 늘 경험하듯 깊은 사고는 사라지고, 클릭과 ‘좋아요’만 남죠. 어제보다 더 많은 것을 알지만 어쩌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채로요. 나아가 우리의 개인 정보는 끊임없이 수집되고 분석되며, 때로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 판매되기까지 하죠. 미래학자 니콜라스 카(Nicholas Carr)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The Shallows)에서 우려한 대로 우리의 뇌는 점점 단편적인 정보를 처리하는 데 익숙해집니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알림음에 조건반사적으로 반응하면서요. 소셜 미디어를 끊임없이 스크롤하는 사이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을까요?

이 글은 꼭 이 웹사이트의 곁가지 같기도 하네요. 한데 웹사이트를 살펴보니 ‘새로운 질서’라는 말이 자주 눈에 띕니다. 얼핏 학교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신흥종교 같기도 한데요?

둘 다 맞거나 둘 다 틀립니다. 「새로운 질서」를 시작한 건 2016년, 미국 시적 연산 학교(School for Poetic Computation)에서 수학한 뒤 한국에 돌아온 뒤였죠. “어떤 대상을 좋아하고, 급기야 사랑하게 되면 그 아름다운 마음을 주위와 나누고 싶게 마련이다.” 「새로운 질서」에서는 웹을 이루는 기본적인 컴퓨터 언어를 익혀 자신의 관심사를 재료 삼아 자신만의 웹사이트를 만들어봅니다. 매주 금요일 열리는 「새로운 질서」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하자센터, 홍익대학교 등과 어깨동무하며 핸드메이드 웹의 정신으로 자신만의 웹사이트를 만드는 즐거움을 나눕니다. 어느덧 「새로운 질서」와 함께한 친구들이 어느덧 400여 명을 넘은 것도 모두 웹사이트 덕이죠. 웹사이트가 현실과 조금 더 가까워지거나 어떤 차원에서는 이미 현실을 대체한 오늘날, 「새로운 질서」가 새로운 문해력을 익히는 동시에 자신을 향한 사랑을 확장하는 시공간이 되기를 기대할 뿐입니다.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입니다. 웹 환경에서 디자인할 때 최소한으로 지켜야 할 점이 있을까요?

책을 디자인할 때 본문 글자 크기를 대개 10포인트(약 3.5밀리미터) 안팎으로 지정하는 데는 역사적이고, 경제적이고, 인지과학적이고, 무엇보다 생물학적인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최소한의 규칙이라면 규칙이죠.

이는 웹에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웹 브라우저에서 설정된 기본 글자 크기는 16픽셀입니다. 저보다 뛰어난 전문가들이 연구한 수치인 만큼 저는 여기에 의문을 품지 않습니다. 이에 따라 모든 수치를 16픽셀을 1REM, 즉 기본값으로 설정합니다. 그리고 모든 곳에 16의 약수와 배수를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는 유별나게 저는 사용하는 방법론은 아닙니다.

다른 한 가지는 웹사이트가 ‘실행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둡니다. 웹사이트가 하나의 공간이라면, 탭이나 클릭은 공간과 공간을 이동하는 일과 비슷합니다. 탭하거나 클릭하는 횟수가 많아지면 동선이 길어지는 셈이죠. 저는 이 동선을 가능하면 최소화하려 합니다. 그러다 보니 웹사이트에서 여러 페이지를 만들기보다 한 페이지를 활용하는 방식을 선호합니다. 즉, 스크롤을 통해 페이지상의 요소를 연결하는 거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웹 페이지가 굉장히 길어지기도 하지만, 그 또한 웹사이트의, 나아가 웹의 자연스러운 특성입니다.

이제 온라인 전시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오프라인 전시가 온라인으로 치환되는 과정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까?

2021년 초겨울쯤 시청각 랩에서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회사 소개’라는 제목의 전시를 마련한다고 가정해 보자. 제한된 공간에서 주목도가 가장 높은 위치에 작품이 놓인다. 작품은 그저 납작할 수도, 납작하면서 움직일 수도, 부피가 있을 수도, 소리나 와이파이 신호처럼 비가시적일 수도 있다. 사람과 그 운동성이 작품이 될 수도 있다. 공간 한 쪽에는 전시와 관련한 정보가 리플릿 같은 형태로 놓인다. 그 옆에는 방명록, 토트백이나 티셔츠 같은 제품이 놓일 수도 있겠다. 소셜 미디어에 전시 정보를 담은 정방형 이미지가 게시되며 전시의 시작과 끝을 알리고, 관람객이 방문한다. 전시장 안에서는 큐레이터나 도슨트가 작품을 소개하거나 질문에 답변하거나 그들과 서로 친목을 다지고, 전시장 밖에서는 전시와 작품에 관한 이야기가 퍼진다. 전시가 끝난 뒤에는 비평문이 실린 도록이 출간되고, 그렇게 전시는 사람들의 추억 속에 놓인다.

온라인 전시에서는 대부분의 일이 웹사이트상에서 일어난다. 작품은 이진수로 이뤄진 데이터로서 웹 페이지에 놓인다. 홈페이지에서 전체 작품을 파악하고, 개별 작품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일뿐 아니라 방명록을 작성하고, 제품을 구입하는 일까지 웹 페이지를 오가거나 한 페이지에서 스크롤을 통해 이뤄진다. 짐을 싸고 공항으로 향하는 순간부터 여행이듯 온라인에서는 오프라인의 비가시적인 경험이 삭제된다. 전시장으로 향할 때의 기대감, 다른 출판물 사이에서 전시 도록을 들춰보는 재미 등은 웹 브라우저의 주소창에 주소를 타자하는 일로 축약된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는 여전히 잘 알 수 없지만, 그동안 크고 작은 여러 일에 관여해왔다. 무엇보다 일을 시작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바가 있다면?

해결사를 자처하지 않는다. 회의 자리에서는 마치 모든 문제를 능수능란하게 해결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런 기대감도 없지 않고. 그 유혹에 빠지면, 즉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어느 순간부터는 주체할 수 없는 고통이 부풀어오른다. 고객이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요긴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회사의 한계와 특히 잘하는 것을 고객과 나누고, 서로 이해하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타이포잔치’라는 행사가 있어요. 2001년부터 시작한 국제 타이포그래피 전시로 내년이면 어느덧 20년이 되는데요, 혹시 알고 계신가요? 아신다면 간단한 소감이나 인상을 말씀해주시겠어요?

소감이나 인상을 말하는 게 어색할 만큼 잘 알죠. 2년마다 타이포그래피를 주제로 전 세계의 디자이너들이 작가로 참여하는 대규모 전시는 동아시아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드무니까요. 그 대신 우화 한 편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언젠가 미국인 그래픽 디자이너 친구에게 이 행사에 참여하게 됐다고 털어놨을 때 이렇게 묻더군요. “오, 그렇구나… 축하해! 그런데 어떤 오탈자(typo)를 보여줄 계획이니? (Wow… Congratulations! But what type of typo do you want to show?)” 아주 순진한 얼굴로요.

누군가 민구홍 님을 ‘웹 디자이너’로 부른다면 정당한 표현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만약 ‘웹 디자이너’라는 단어와 불일치를 느낀다면 무엇 때문인가요?

2022년 『더플로어플랜』(The Floorplan)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저를 무엇으로 규정하는지는 그저 상대방에게 맡기고 싶습니다. 제가 생각지 못한 직함이 튀어나오고, 그에 따라 상대방을 대하는 제 태도도 달라지는 게 재미있고요. 그렇게 저는 상대방에 따라 편집자뿐 아니라 작가, 선생님, 나아가 남편이나 애인이 되기도 하겠죠.” 여러 직함으로 불리곤 하지만, 저는 무엇보다 ‘편집자’에서 풍기는 무미건조함이 마음에 듭니다. 이는 ‘편집’이라는 행위가 아우르는 범위가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비롯합니다. 아주 넓기도 하고, 아주 좁기도 하죠. 저는 디자인 또한 편집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편집과 디자인을 동시에 경험해본 분은 제 말 뜻을 아실 거예요.

회사를 소개할 때, 제품을 기획하거나 제작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원칙은?

상황에 따라 수정되거나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세칙이나 부칙을 만들게 되거나) 실행된 뒤 곧바로 폐기되지 않는 유일한 원칙은 ‘국립국어원에서 정한 한글맞춤법외래어표기법을 준수하는 것’입니다.

최근 선보인 대안공간 루프의 웹사이트가 인상적이다.

일반적으로 갤러리 웹사이트는 콘텐츠와 구조 덕에 메타적인 전시의 형식을 띨 수밖에 없다. 대안공간 루프 웹사이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웹사이트의 요소는 루프의 영문명(Loop)을 암시하는 동시에 여러 페이지를 오갈 수 있는 내비게이션으로 기능한다. 접속할 때마다 무작위로 바뀌는 두 번째 ‘O’는 과거 전시와 연결되는데, 방문객뿐 아니라 루프의 구성원에게 그동안 루프에 쌓인 시간을 되새기려는 의도였다. 한편,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웹사이트 제작으로 루프에 후원했다. 한국 대안 공간의 효시인 루프의 활동을 그렇게나마 응원하고 싶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 G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