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2015년 이래 진행한 길고 짧은 인터뷰를 꼼꼼히 정리한 뒤 다시 무작위로 늘어놓은 「자주 하는 질문」을 통해 회사 또는 운영자에 관한 궁금증이 모쪼록 해소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단, 질문의 시기에 따라 현재와 다른 사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편, 질문의 어조에 따라 언급한 인물에 대한 존칭을 생략하기도 했습니다. 「자주 하는 질문」을 섭렵한 뒤에도 궁금증이 도무지 해소되지 않는다면 [email protected] 앞으로 소상히 말씀해주세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인정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단, 답장은 이메일 대신 언젠가 「자주 하는 질문」에서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스물다섯 살의 구홍에게 사치였던 물건이나 시간이 있었나요?
이제껏 제가 거쳐온 시간은 대개 당시의 제가 감당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모두 사치였던 것 같아요. 사치라는 건 감당하기 어려운 선물 같은 거니까요. 지금 어떤 건 감당하는 데 성공해 온전히 제 것이 됐고, 어떤 건 실패해 여전히 사치인 상태고요. 그렇다고 사치라는 게 과연 피해야 하는 걸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사치를 마음껏 누릴 줄 알았던 게 다행인지 몰라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어떤 대상에 기생할수밖에 없는 운명이라 공공연히 밝혀왔다. 운명을 거스를 생각은 추호도 없는가? 숙주를 옮길 계획은?
2016년부터 2021년 현재까지 기생하는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겸 출판사 워크룸은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최적의 숙주가 됐다. 평일 가운데 4일만 출근하고, 소정 근로 시간에 맡은 업무만 무리 없이 수행하면 출퇴근도 어느 정도 자유로운 편이다. 그 과정에서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일이 워크룸의 일이 되거나 그 반대가 되기도 하고, 처음부터 별 구분 없이 진행되기도 한다. 5년 동안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해한 결과다. 이런 상황을 받아들일 만한 숙주가 또 있을까? 최근에 부족하다고 느끼는 건 허먼 밀러 에어론 체어 또는 휴먼 스케일 프리덤과 민구홍 매뉴팩처링 간판이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대표 제품을 두 점 정도 소개해달라.

「회사 소개」. 열세 번째 ‘시청각 문서’로,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하지 않는 일 서른일곱 가지를 나열했다. 홍은주·김형재 씨가 디자인하고, 영어판은 고아침 씨가 번역했다.

「장영혜 중공업 귀중」. 장영혜 중공업의 장영혜, 마크 보주(Marc Voge) 대표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으로, 장영혜 중공업을 향한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존경과 부탁 한 가지를 담았다. 형식적으로는 장영혜 중공업을 민구홍 매뉴팩처링식으로 답습했다. 단, 결과물은 어도비 플래시(Adobe Flash)나 비미오(Vimeo) 영상이 아닌 그보다 조금 더 단순하지만 기민하게 동작하는 웹 페이지로, 구절마다 글자와 배경 색이 무작위로 바뀌고, 구절마다 할당한 소리(드럼과 하이햇)가 반복되면서 심드렁한 음악을 만든다. 참고로 답장은 아직 받지 못했다. 음악 때문일까? 「장영혜 중공업 귀중」에 관해 조금 더 알고 싶다면 더 북 소사이어티 웹사이트에 실린 글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온라인 출판물과 오프라인 출판물, 즉 웹사이트와 종이 책은 어떻게 섞일 수 있을까?
가능하다면 이 질문에는 또 다른 질문으로 답하고 싶다. 종이 책과 웹사이트가 섞일 필요가 있을까? 본디 웹사이트는 과학자들끼리 논문을 효율적으로 공유하기 위해 발명됐다. 논문에서 각주, 방주, 미주에 불과한 정보는 파란색 밑줄이 그어진 하이퍼링크(hyperlink) 덕에 클릭이나 터치 한 번으로 열람할 수 있는 ‘진짜’ 정보가 됐다. 웹사이트는 종이 책에서 비롯해 종이 책의 부족한 점을 보완한 결과물이다. 즉, 진화한 종이 책이다. 따라서 종이 책과 웹사이트를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려 하면 질문은 공회전할 수밖에 없다.
내가 생각하는 종이 책의 귀중한 유산은 종이 자체보다는 종이 위, 즉 제한된 평면에서 콘텐츠를 소개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에는 필사가, 편집자, 디자이너, 인쇄인, 인지과학자 등 수많은 전문가의 성공과 실패가 쌓여 있다. 그 덕에 우리는 콘텐츠와 눈의 거리에 따른 적절한 글자 크기를, 그에 따른 적절한 글줄 길이를, 그에 따른 적절한 글줄 수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이 점을 생각하면 웹사이트뿐 아니라 많은 매체에서 이 방식이 재현되거나 활용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아주 먼 미래에 종이 책은 사라질지 몰라도 이 방식만큼은 변함없지 않을까.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 같은 소셜 미디어는 사용하지 않는가?
설립 초반에 회사를 소개할 목적으로 호기 있게 사용해봤는데, 사용할수록 회사에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인스타그램에서는 글 한 줄을 게시하려 해도 이미지나 영상이 필요하고, 트위터에서는 글자 수에 제한이 있다.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사용한다는 건 이런 제약에 암묵적으로 동의한다는 뜻이다.
특히, 인스타그램에서는 게시물 속 하이퍼링크가 작동하지 않는다.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해당 기능이 활성화한다고 알고 있다.) 이는 사용자가 되도록 오랫동안 ‘환상의 세계’에 머무르기를 바라는 인스타그램의 전략일 것이다. 또한 ‘좋아요’ 기능은 취지와 무관하게 자신의 게시물을, 나아가 자신을 현실에서 만날 일이 없는 불특정 다수의 사용자에게 평가받는 위치로 옮겨 놓는다. 그것을 눈으로, 게다가 깜찍한 하트 아이콘과 불과 몇백에 불과한 숫자로 확인하는 건 고역이다. 모든 사람이 ‘좋아요’ 개수가 많을 수는 없을 테니 누군가는 스스로 초라함을 느끼거나 자신의 삶 자체를 부정할지 모른다. 타임라인이 지닌 중독성 탓에 정신 없이 빠져들다 보면 거기서 벗어나기 두려워지는 현상은 일찍이 ‘PC 통신’ 시절부터 경험해왔다. 결국,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소셜 미디어에서까지 워크룸의 계정에 기생하기로 했다.
나아가 웹사이트의 힘에 기댄다면 바벨의 도서관쯤은 충분히 현실화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한번 시도해볼까요?
안타깝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그런 욕망을 품은 건 비단 저희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조너선 바실(Jonathan Basile)이 만든 다음 웹사이트는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을 웹상에서 가뿐하게 구현합니다.

조너선 바실은 이 도서관의 사서를 자임합니다. 어느 날 그는 침대에 누워 있다가 온라인 바벨의 도서관에 관한 생각을 떠올렸고, 이를 위해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저장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죠. 이 한계를 우회하기 위해 바벨의 도서관을 시뮬레이션하는 알고리즘을 설계했습니다.
웹사이트를 만드는 데 필요한 비용은 어느 정도가 적절할까? 비용 앞에서는 누구나 숨을 죽이게 되는 만큼 어쩌면 가장 중요한 질문일지 모른다.
일정, 웹사이트의 규모나 필요한 기능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적게는 몇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이 들기도 한다. 작업자마다 요율도 다를 것이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단행본 한 권을 제작하는 데 필요한 전체 비용을 기준으로 삼는 편이다. 기획, 편집, 디자인 같이 매체와 무관한 일뿐 아니라 제작, 유통, 관리 등도 웹사이트를 만드는 일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비용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도메인 구입 비용, 서버를 임대하는 비용, 트래픽이 초과됐을 때 트래픽을 초기화하는 비용 등이다. 모든 프로젝트의 예산이 넉넉한 건 아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고객의 마음을 헤아려 어떤 방식으로든 일이 진행되도록 예산에 적합한 방식을 제안하기도 한다. 대신 ‘회사 소개’라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주업무에 입각해 어떤 방식으로든 회사를 소개해달라고 주문하는 식이다.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졸업생입니다. 웹사이트를 만들 때 글자를 독특하게 구사해본 경험이 있나요?
명확한 이유가 있다면 글자를 독특하게 구사할 필요가 있겠지만, 그런 상황 자체를 함부로 만들지 않는 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태도를 견지하다보면 아무래도 콘텐츠에 더 집중하게 되거든요. 웹사이트가 하나의 이야기라면, 어떻게 이야기할지보다 무엇을 이야기할지를 먼저 생각하는 거죠. 실제로 가로세로 1픽셀 정방형만큼은 그게 더 중요하고요. 얼마 전에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학생분들을 대상으로 강연할 기회가 있었는데, 여기서 『웹사이트 탄소 계산기』(Website Carbon Calculator)라는 웹사이트를 소개했어요. 이 웹사이트는 여러 웹사이트가 발생시키는 탄소를 수치화해 보여주는데, 이를 통해 웹이 결국 화석 연료에 기반하고, 웹사이트가 무거울수록 환경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상기할 수 있습니다. 2020년 연평균 이산화탄소 농도가 413.2 ppm으로, 산업화 이전(278.0 ppm)보다 48퍼센트 정도 증가했다고 해요. 이미지, 영상, 애니메이션 등 시각적인 부분에 집중할수록 웹사이트가 무거워지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제가 극단적인 환경론자는 아니지만, 웹사이트를 가볍게 만드는 게 조금이나마 인류에 공헌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싶어요.
콘텐츠를 중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민구홍 매뉴팩처링 공식 웹사이트의 일관된 형식으로 미루어 내가 느끼기에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형식주의자에 가깝다.
물론 형식도 중요하다. 하지만 콘텐츠가 한 뼘 정도는 더 중요하다.
오가사와라 프로젝트를 제안한 뒤 7~8개월 정도 지났다. 최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이하 ‘코로나’)으로 웹 기반 프로젝트가 많아졌는데, 웹을 주요 매체로 작업하는 사람이 보기에 이 상황은 어떤가?
작년 늦여름,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느닷없이 찾아온 수상한 인물들에게 포위당하고, 급기야 납치당했다. 자신을 해적단이라 소개한 그들은 태평양의 오가사와라 제도로 떠나야 한다고 말한 뒤 해적단과 함께하라고 회사에 명령했다. 간헐적으로 화상 회의 링크가 이메일로 전송되고, 회의가 끝날 무렵에는 비밀 결사 단체처럼 특정 구호나 제스처를 따라 하라고 강요하기도 했다. 고양이 앞 생쥐처럼, 너구리 앞 고양이처럼, 한동안 회사는 그들과 함께했다. 이처럼 느닷없이 찾아온 코로나는 우리를 포위하고 납치해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국면으로 옮겨놨다. 모든 분야에서 예정된 행사는 연기되거나 취소됐고, 사람들은 사람이 모이는 일의 경제적인 효과를 느닷없이 실감했다. 오프라인이 누려온 혜택은 이제 온라인의 차지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제법 성장했다. 상호를 밝힐 수 없는 두 회사에서 인수를 제안받기도 했다. 물론 일부는 코로나가 불러일으킨 비극에서 비롯한 반사이익이다.
내 기준에서 코로나가 우리에게 안긴 장점이 있다면 이제껏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여겨온 것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는 점일 것이다. 웹 또한 그 가운데 하나다. 많지는 않지만, 웹을 그저 또 다른 인쇄물로 여기지 않는 태도가 반갑다. 초창기 웹은 과학자들끼리 논문을 조금 더 편리하게 공유하기 위해 발명됐다. 즉, 인쇄물에서 비롯했다. 하지만 오늘날 웹의 논리는 인쇄물과는 전혀 다르다. 예컨대 특정 행사를 위한 웹사이트가 기존의 포스터나 리플릿, 도록 역할만 수행한다면, 즉 마지막 단계에서 모든 것을 갈무리할 뿐이라면 웹의 수많은 가능성을 포기하는 꼴이다. 웹을 웹답게 이용하는 여러 방법 가운데 하나는 전체 프로젝트 맨 앞에서 프로젝트를 촉발해 프로젝트 전반을 끌고 나가는 플랫폼으로 삼는 것이다. 웹사이트 안에서 모든 활동이 일어나고, 축적되고,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버그가 튀어나오고, 방문자는 이런 상황을 실시간으로 관람하거나 상황에 참여하고, 종국에는 그 자체로 자연스럽게 결과물이 드러나고, 그렇게 하나의 추억이 생성되고… 이는 인쇄물의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 ‘영원한 베타 버전(perpetual beta)’이라는 웹의 태생적 속성에서 비롯한다. 이를 위해서는 초기 단계부터 변수마저 예측해 상수로 삼는 꼼꼼한 설계가 필수적이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생산자이기 이전에 소비자로서 웹을 다시 생각해보는 시도가 더욱 많아지면 좋겠다. 물론 민구홍 매뉴팩처링 또한 제 몫을 다할 것이다. 이는 언젠가 도달할 미래를 미리 체험하는 일일지 모른다. 이번 기회에 (아무도 이런 기회를 바라지는 않았지만) 웹이 이제껏 경험해온 웹과 전혀 다를 수 있음을 더욱 많은 사람들이 체험한다면, 코로나가 종식된 뒤에도 웹은 일시적, 그리고 불가피한 유행을 넘어 자신만의 영토에 꽂힌 깃발을 흐뭇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단, 특정 세대들에게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의 시끌벅적함을 체감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나 또한 느닷없이 일상에 틈입한 화상 회의가 여전히 어색하다.) 언제나 고요하고 깔끔해 보이기만 하는 웹상에서 이를 가늠할 수 있는 장치는 방문자 숫자나 트래픽 초과 메시지뿐이다. “코로나 발생 이전의 세상은 이제 다시 오지 않는다.”라는 권준욱 질병관리청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의 발언은 정말이지 준엄했다. 이 발언이 기우이기를 기원해보자.
2016년 청담동의 COS 매장 3층에 마련된 프로젝트 스페이스에서 발표한 「보기」(더 북 소사이어티·김영나 기획)는 빨강 버튼을 누를 때마다 무작위로 조합된 경고나 행운의 메시지를 대형 스크린에 출력하는 제품이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것 가운데 가장 섬뜩한 메시지가 있다면?



귀하는 / 유니클로에서 / 느닷없이 / 친척 어른에게 / 귀하의 직업을 / 설명하게 될 것입니다. / 축하드립니다.

하지만 가장 섬뜩했던 건 메시지보다 음악가 김윤기의 오프닝 공연이었을 것이다.
일반적인 웹사이트는 정보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정리돼 있습니다. 반대로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선보이는 웹사이트는 정보가 파편화되거나 효과에 가려져 있거나, 또는 시간에 따라서 서서히 나타나기도 하는데요, 이런 형식을 취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마우스의 위치에 따라 효과가 변하는 인터랙티브 요소도 흥미롭습니다. 이런 디자인을 선보이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파격이란 건 익숙함이 있기에 성립할 수 있겠죠. 제 욕망 때문이라기보다는 그게 콘텐츠에 부합하는 방식이라는 생각. 디자인은 웹 초창기에 이미 존재했어요. 제게는 아주 평범한 모습이죠. 웹이라는 기술이 소개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었죠. 기술도 부족하고 시각적인 규칙도 성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결과물은 제각각이었어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기술을 거친 웹사이트들은 파격적인 시도라기보다는 잠시 잊힌 평범한 웹을 변주하거나 재해석한 결과에 가까워요.
슬기와 민의 최성민 선생님 권유로 미국의 전설적인 그래픽 디자이너 밥 길(Bob Gill)의 『이제껏 배운 그래픽 디자인 규칙은 다 잊어라. 이 책에 실린 것까지.』를 번역한 적이 있는데, 이 책에는 “흥미로운 말에는 시시한 그래픽이 필요하다. 시시한 말에는 흥미로운 그래픽이 필요하다.”라는 구절이 나와요. 말과 그래픽이 조응하는 데는 균형이 필요하다는 뜻이죠. 저는 그래픽보다 말이 흥미로운 걸 좋아해요. 그러다 보니 말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고민하는 데 시간을 쏟는 편입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거친 웹사이트들은 사실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기술을 응용한 결과예요. 코드만 보면 누구나 따라 할 수 있을 정도죠. 이것들이 파격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그래픽보다는 말 때문일 겁니다.
수차례 밝혀왔듯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웹 디자인 에이전시가 아닙니다. 저는 웹사이트를 디자인한다기보다 그저 제가 좋아하고 잘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고 편집한다고 생각해요. 그 결과물 가운데 하나가 웹사이트인 거죠. 그게 용케도 누군가의 욕망에 부합하는 거고요. 많지는 않지만 이런 방식을 사랑해주시는 고객들 덕에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지금까지 근근이 생존할 수 있었죠.
예술, 패션, 음악 등 다양한 문화 내에서 일어난 사건 가운데 인상 깊었던 것을 토대로 VISLA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면?
바야흐로 2022년이다. 게다가 당신은 2023년이 도래하기 전에 파산하거나 세상을 떠날지 모른다. 이쯤이면 그전에 어떤 방식으로든 민구홍 매뉴팩처링과 함께 추억을 쌓아볼 마음이 일지 않는가?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입니다. 코딩을 처음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해주고 싶은 말은?
우화 삼아 제가 처음 웹사이트를 만든 계기를 이야기하곤 합니다. 열한 살 무렵이던 1995년 처음 웹사이트를 만들었습니다. 당시 제가 사랑하던 친구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였죠. 콘텐츠나 디자인 이전에 단순하지만 명징한 목표가 있었죠. 목표가 단순하고 명징하다면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즉, 자신의 야심과 취향에 따라 어떻게든 하게 되는 거죠. 사실 모든 게 그렇지 않나요?
앞서 말했듯 목표를 세우는 게 중요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우리가 말을 하게 되거나 글을 쓰게 되는 과정을 떠올려보면, 처음에는 그냥 이것저것 따라 해보는 게 필수적입니다. 엄마나 아빠의 말을 따라 하는 것처럼요. 글쓰기에서 이야기하는 다독, 다작, 다상량에서 다독에 해당하는 과정이죠. 그 과정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럽게 규칙을 체화하고, 규칙이 아닌 느낌에 따라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요.
나아가 어도비 소프트웨어처럼 세련된 아이콘이 즐비한 툴바가 없는 텍스트 에디터상에서 코딩이 이뤄지는 만큼 다른 접근 방법이 필요합니다. 예컨대 HTML을 익히고 텍스트 에디터상에서 다루다 보면 자연스럽게 콘텐츠를 콘텐츠의 맥락과 함께 구조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목은 제목으로, 문단은 문단으로, 이미지는 이미지로. 그렇게 HTML만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웹사이트가 아름다워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 또 다른 미감, 기준, 필터가 생겨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코딩 이전에 폴더와 파일 등 컴퓨터를 다루는 게 능숙해야겠죠.
자기 반영이라는 말을 들으니 큐레이터로서 제가 보는 민구홍 님은 확실히 작가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출판이 더 이상 종이 위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공개적으로 유통되는 정보를 발행하는 모든 행위를 출판으로 부르며, 확장된 정의에 익숙해져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인터뷰가 구글 독스에서 이뤄지며 열린 상태로서 수정 및 편집을 하는 것처럼, 웹 기반으로 출판되는 많은 정보는 종이책과 달리 쉽게 수정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긍정적인 것일까요? 부정적인 것일까요? 에디션 표기를 의무화하는 등의 공통화된 규정이 필요할까요?
‘자기 반영’은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덧붙은 해시태그로 볼 수 있습니다. 이를 추동하는 키워드는 ‘소개’(introduction)고요. 소개는 결국 어떤 대상을 널리 알려 다른 대상과 연결하는 일이고, 그 결과는 앞으로 함께할 친구(사람), 자랑할 만한 경력(포트폴리오), 크고 작은 경제적 이윤(돈) 등으로 이어집니다. 세 꼭짓점이 정삼각형으로 완성되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소개만큼 피할 수 없이 신성한 일이 있을까요?
웹사이트는 소프트웨어로 따지면 ‘영원한 베타’(perpetual beta) 버전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오늘과 내일이 전혀 다를 수 있죠. 출판한 뒤에도 콘텐츠를 수정할 수 있다는 점은 오프라인 출판에 익숙한 이에게는 낯설 만합니다. 반대로 온라인 출판에 익숙한 이에게는 오프라인 출판의 특성이 비실용적일지 모르고요. 이에 대해서는 긍정이나 부정을 표명하는 대신 이 특성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는 게 실용적이지 않을까요? 한편,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데 콘텐츠를 수정한 날짜를 정확하게 표기하는 일 또한 중요하지만, 저는 구글 문서상에서 이뤄지는 이 서면 인터뷰에서처럼 본문에서는 웹사이트 또한 종이 책처럼 출판물로 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웹사이트의 성격에 따라 겹꺽쇠(『』)나 홑꺽쇠(「」)로 묶어 구분하는 거죠. 처음에는 조금 어색하거나 번거롭더라도 웹사이트라는 느닷없이 새로운 출판물을 대하는 태도는 작고 사소한 것부터 시작됩니다.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 미디어만으로 누구나 쉽게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시대다. 그럼에도 왜 굳이 개인 웹사이트를 만들어봐야 할까? ‘새로운 질서’를 종교화하려는 속셈 아닌가?
“그래픽 디자이너라면 모름지기 제대로 된 책 한 권을 만들어봐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고민과 선택이 모든 종류의 생산에서 반복되는 까닭일 테다.
HTML 에너지(HTML Energy)를 운영하는 엘리엇 코스트(Elliott Cost)가 JR 카펜터가 주창한 ‘핸드메이드 웹(Handmade Web)’을 변주해 ‘핸드메이드 웹사이트’라는 용어를 제안한 적이 있다. 완전히 백지 상태에서 시작한, HTML과 CSS만으로 이뤄진, 자바스크립트가 최소한으로 사용된, 정적 웹사이트를 가리킨다. 제약이 분명한 만큼 콘텐츠와 콘텐츠를 둘러싼 국면을 편집하는 데 집중할 수 있고, 그 덕에 ‘실용적이고 개념적인 글쓰기’가 가능해진다. 여기에는 백엔드가 없으므로 관리하는 데 불편함이 따른다. 하지만 이렇게 웹사이트를 만들어보는 건 좋은 출발점이 된다. 내 경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지루한 작업을 해보는 게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자연스럽게 작업을 자동화하려는 욕망이 일고, 그 욕망을 따라가보는 것이다.

온라인 전시에는 초심자를 위한 카르고(Cargo) 같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겠지만, 템플릿은 콘텐츠와 유리된 상태다. 템플릿에 콘텐츠를 억지로 맞출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결과물 또한 엇비슷해진다.

자신의 관심사를 토대로 콘텐츠를 생산하고, 개인 웹사이트를 만들어보는 일은 결국 자신을 사랑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자신을 도저하게 사랑하다 보면, 남도 도저하게 사랑할 수 있다. 콘텐츠를 다루는 능력을 기르고, 기술을 이해하고 주체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건 덤이다.
강의실에서는 수영 강사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 학생들을 물속으로 떠밀어 아무리 영법을 가르쳐도 결국 근육을 움직이는 건 자기 자신이다. 어떤 근육을 어떻게 얼마나 움직여야 할까? 결국 자신의 욕망에 달렸다. 욕망에 집중하고, 욕망을 따라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새로운 기술을 익히게 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해밀톤 호텔 수영장에서 물장구만 쳐도 흡족할 테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점점 빠져들고 있어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최정호를 언제 어떻게 처음 접했나?
기억이 잘 안 난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최정호에 관한 책을 만든 적이 있는데, 그전까지 피상적으로만 알던 최정호를 아무래도 그때 남들보다 조금 더 자세히 알게 된 것 같다. 책 초판이 출간된 게 2014년이니 어쨌든 4년이 채 안 된 셈이다.
사는 곳은 어디인가?
대한민국 서울이다. 북녘에 계시는 김 선생님의 잠재적 주요 타깃이기도 하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회사를 소개할 때 워크룸에 “기생한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즉,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운영자의 근무지에 기생하는 회사인데, 운영 방식으로 기생을 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기생은 자연스럽게 결정된 회사의 생존 전략이다. 콘솔 게임 제작사 너티독(Naughty Dog)의 「라스트 오브 어스(The Last of Us)」 시리즈에는 온갖 ‘감염자(The Infected)’가 등장한다. 그들은 동충하초처럼 인간의 몸을 잠식해 숙주를 조종한다. 인간이 없다면 동력을 얻지 못한다. 민구홍 매뉴팩처링 또한 마찬가지다. 부족한 용기와 자본을 숙주를 통해 해결한다. 숙주에 노동력과 얼마간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대신 운영자가 받는 월급으로 운영비를 충당하고, 컴퓨터, 테이블, 커피 머신 등 숙주의 동산과 부동산을 이용하는 식이다. 그 덕에 영원히 알고 싶지 않은 세금과 관련한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이따금 숙주를 떠나 독립을 하거나 사업자 등록증을 발급받으라는 요구를 받기도 하지만, 그러는 순간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폐업을 신고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워크룸을 떠나 구글이나 테슬라에 기생하는 일이 있더라도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독립하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한편, 이런 상황임에도 최근에는 네덜란드에서 찾아온 인턴이 일하고 있다.
고등학교에서 문학 동아리를 지도하는 기간제 교사입니다. 다음주에 학생들과 글쓰기에서 가능한 갖가지 형식 실험에 관해 이야기해보려 하는데, 「자주 하는 질문」을 참고 자료로 활용해도 괜찮을까요?
물론입니다. 과목을 떠나 교육이 목적이라면 이미지를 포함해 마음껏 활용하셔도 좋습니다.
디자인 이전에 콘텐츠에 대한 태도가 재미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웹사이트가 있나요?
얼마 전 프루트풀 스쿨과 계원예술대학교에서 열린 특강에서도 같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답변은 한결같아요.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 경이 만든 일반에 공개된 최초의 웹사이트예요. 웹을 소개하는 웹사이트 속 콘텐츠는 공들여 번역하고 싶을 만큼 우아하고 실용적이에요. 게다가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무리 없이 작동하죠. 흰색 배경, 검은색 글자, 밑줄이 그어진 파란색 링크 같은 기본 스타일이 적용돼 있는데. 이 웹사이트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추구하는 바를 여실히 드러냅니다.

최초의 웹사이트만큼은 아니지만 일본의 배우 아베 히로시(阿部寛)의 공식 웹사이트도 좋아해요. 『릿터』 24호에도 이와 관련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1996년 무렵 팬이 만든 웹사이트를 배우가 공식 웹사이트로 삼으면서 지금까지 당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죠. 얼핏 웹 기술에 갓 입문한 사람이 만든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도 최신 정보가 업데이트돼요. 배우의 과거 사진, 에세이 등 쉽게 접하기 어려운 정보도 싣고 있고요. 한 웹사이트가 25년여 동안 같은 스타일을 유지하는 데는 여전히 구형 해치백을 몬다는 배우의 취향도 어느 정도 작용했겠죠?
앞서 소개한 두 웹사이트는 그동안 쌓인 시간 덕에 설명하기 어려운 아우라가 느껴집니다. 콘텐츠가 디자인을 장악하는 증거죠. 장영혜 중공업이나 양혜규 선생님의 웹사이트 또한 비슷한 맥락에 있습니다. 콘텐츠가 아름답다면 스타일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모든 경우에 적용할 수는 없겠지만, 많은 경우 그렇게 적용할 수 있게끔 국면을 편집할 수 있죠.
2018년 늦여름에 한 갤러리에서 회사를 소개하는 전시를 열었다. 회사라면 일반적으로 박람회나 키노트 같은 걸 여는데, 전시라는 방식이 어딘가 좀 이상하지 않았나?

그 전시는 회사를 소개하기 좋은 기회였다. 회사를 소개할 수만 있다면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갤러리에 소환되는 것도 별로 꺼리지 않는다. 전시에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제품들이 특정 규칙에 따라 구분 없이 뒤섞여 있었다. 그런 점에서 큐레이터 윤율리가 제안한 ‘레인보 셔벗(Rainbow Sherbet)’이라는 전시명은 참 잘 어울렸다. (“실용성, 우아함, 고약함이 각각의 노즐에서 분사되는 적당한 모양새를 한마디로 요약하기란 무척 어렵다.”) 나중에 알았는데 ‘레인보 셔벗’은 각종 마리화나를 혼합한 마약을 가리키는 은어로도 사용된다고 한다.



그중 몇몇 제품은 동업자들과 함께 제작했다. 동업은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중요한 제품 제작 방식이다. 이는 무엇보다 더 나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오늘날 모든 걸 혼자, 그리고 능숙하게 해내는 건 쉽지 않고, 무엇보다 건강에 별로 좋지 않다. 이때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좀 더 회사처럼 작동했다. 회의를 거쳐 동업자를 선정해, 그들에게 발주서를 보냈고, 그들은 그에 따라 제품을 제작해 납품했다. 그렇게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추억 속에는 명함, 회사 소개 영상, 김뉘연 씨가 쓴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주제로 한 단편소설 한 편 등이 놓이게 됐다.
또 하나의 수확이 있다면 ‘분홍이’를 컴퓨터 밖으로 끄집어냈다는 점이다.




‘분홍이’는 사람들이 붙여준 별명으로, 본명은 자홍색을 만드는 염료명에서 따온 ‘푹신(Fuchsine)’이다. 푹신은 일종의 민구홍 매뉴팩처링 마스코트로, 아득히 먼 옛날 한 웹사이트에서 태어났다. HTML, CSS, 자바스크립트의 도움으로, 한 웹사이트의 머리(<head>)에 자리를 잡고, 하루에 한 번씩 몸집을 키우며 사용자가 클릭했을 때 혼잣말을 늘어놨다. 평양냉면을 좋아하고, 발렌시아가(Balenciaga)의 트리플 S(Triple S)를 신는 게 꿈이지만, 안타깝게도 아직은 다리와 발이 없는 상태다.
한편, 전시 오프닝 자리에서는 DJ 겸 프로듀서 말립(Maalib)과 제작한 「범용 오프닝 디제잉」을 재생했다. 특히 모임 별의 조태상은 래퍼나 DJ 들이 온갖 행사 오프닝에 활발히 소환되는 오늘날, 어떤 성격의 행사에서든 이용할 수 있는 유용한 제품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대여료는 한 시간당 15만 원으로, 서울에서 활동하는 DJ의 한 시간 평균 공연료와 같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하루 종일 대여한 바 있다.
출판으로서 발행하는 온라인 문서도 종이책처럼 출판물처럼 대해야 한다는 아이디어가 재미있습니다. e-pub이 다양한 인터페이스 기능을 제공하기에 다양한 링크 기능을 사용하듯이, 원한다면 수정된 것을 추적할 수 있게 하거나, 열린 문서일 경우에는 특정 기호, 닫힌 문서일 경우 다른 기호를 쓰면서요. 이러한 웹 출판물을 개발해보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열린 문서’와 ‘닫힌 문서’라는 개념이 재미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웹사이트를 표기하는 데 어울릴 만한 기호를 고안해볼 필요도 있겠네요. 앞서 말씀드린 세 꼭짓점 가운데 적어도 하나만 충족시킨다면요.
허약한 인간을 모두 감염시킨 뒤 세계를 구원하면(save the world) 평화로운 세계를 인쇄용지에 맞게 출력해 저장할 수 있도록 설정한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목숨 건(?) 훈련을 마치고 받는 수료증 같기도 했고, 단순하지만 결과를 물질로 기념할 수 있는 소소한 재미도 있었고요. 제품의 마지막을 이렇게 설정한 까닭이 궁금합니다.
바이러스나 인간, 어느 쪽이든 세계를 구원하는 일이 세계를 출력해 저장하는 일처럼 쉽고 간단하면 좋겠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좀 더 적극적으로, 즉 무엇을 하는 회사인지 소개할 수 있게 됐다고 보면 될까. 그런데 처음에는 완전히 반대(무엇을 하지 않는지)였다. 왜 그랬던 건가? 좀 더 구체적으로 밝힌다면?
「회사 소개」는 일종의 선언문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선언문들이 풍기는 엄정함과는 거리가 있다. 회사를 만들었으니 소개는 해야겠는데, 무엇을 하는 게 좋을지 몰랐던 내게는 그만한 차선책이 없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무엇을 하는지, 하지 않는지가 아니라 규정하는 것 자체에 있다. 그리고 일단 운신의 폭을 넓히는 데는 무엇을 하지 않는 쪽을 규정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로럴 슐스트(Laurel Schwulst)와는 어떤 관계인가?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가장 친한 친구이자 동료이자 선생이다. 오랜 비즈니스 파트너이기도 하다. 내가 세상을 떠나면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로럴 슐스트 매뉴팩처링’이 될 예정이다.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입니다. 항상 크리에이티브한 작업을 하시는 것 같아요. 작업을 위한 영감은 대체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제가 마주하는 모든 대상에서 얻습니다. 다만, 그 과정은 단순히 ‘영감을 얻는다’는 말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무의식적인 차원에 있습니다.
커비 퍼거슨(Kirby Ferguson)의 『모든 것은 리믹스다』(Everything is Remix)라는 다큐멘터리가 있습니다. 제목처럼 인간의 모든 창작물은 리믹스, 즉 이미 존재하는 것을 조합한 결과물이라는 뜻이죠. 우리가 늘 손에 쥐는 아이폰이 대표적이고요. 스티브 잡스가 이야기했듯 아이폰은 이미 존재하던 MP3 플레이어, 전화기, 인터넷 단말기를 조합하고 필터링한 결과물이죠. 그렇게 이해해보면 (또는 오해해보면) 크리에이티브라는 건 결국 에디터십에서 비롯합니다. 에디터십은 이미 존재하는 것에 반응하고, 필터링하고, 연결하고, 관리하는 힘이죠. 제게 ‘크리에이티브’라는 건 그런 것 같아요.
그 다음에 필요한 건 족쇄, 즉 제약입니다. 말을 하든, 글을 쓰든, 포스터나 책, 웹사이트를 만들든 우리는 매체의 제약에 놓입니다. 거칠게 말해 제약 없이는 아무것도 시작하기 어렵죠. 설령 제약이 없다면 (또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면) 가장 먼저 제약을 창작해야 합니다. 제약을 창작하는 일이 곧 작품을 창작하는 일이라 믿는 까닭입니다. 크리에이티브의 첫 번째 대상은 제약입니다.
‘온라인에서 전시하기’ 또는 ‘온라인에서 생산하기’를 주제로 질문하기 전에 몇 가지 개념을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순전히 우리의 대화를 엿보는 누군가, 특히 이제 막 온라인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미술 및 디자인계 관계자를 위해서다.
좋은 지적이다. 단, ‘온라인’이란 말은 범위가 너무 넓으니 여기서는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 이하 ‘웹’)으로 한정하는 게 좋겠다. 먼저 인터넷(Internet)은 수많은 컴퓨터가 물리적으로, 즉 대륙 간 해저 케이블로 연결된 네트워크다. 놀랄지 모르겠지만, 인터넷은 웹이 아니다. 웹보다 크고, 1950년대에 처음 고안됐으니 웹보다 훨씬 오래됐다. 1990년 무렵 일반에 공개된 웹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기술 가운데 하나로, 수많은 웹 페이지(web page)가 거미줄처럼 엮인 공간이다. 웹 페이지는 기본적으로 컴퓨터 언어인 HTML(HyperText Markup Language)로 작성된 문서로, 웹을 이루는 최소단위라 할 수 있다. 텍스트, 이미지, 영상 등의 정보는 웹 페이지에 담겨 표준 규약인 HTTP(The Hypertext Transfer Protocol)를 통해 컴퓨터 사이를 오간다. 웹사이트(website)는 같은 도메인(domain), 예컨대 minguhongmfg.com에 위치한 웹 페이지의 묶음으로, 웹 페이지 하나만으로 이뤄질 수도 있다. 일상에서 웹사이트와 혼용하곤 하는 홈페이지(homepage)는 웹사이트의 첫 페이지를 가리킨다.
한편, 웹사이트는 서버(server)상에서 구동된다. (정확히는 서버를 통해 전달된다.) 서버는 인터넷상에서 정보를 제공하는 컴퓨터고, 그와 쌍을 이루는 클라이언트(client)는 정보를 취하는 컴퓨터, 즉 일반적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다. 이때 서버와 클라이언트의 관계는 상대적이다. 즉, 서버가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 등을 통해 또 다른 서버에서 정보를 취한다면, 서버인 동시에 클라이언트가 된다. 서버는 수많은 방식으로 동작하는데, 전통적이고 일반적인 방식은 리눅스 기반의 LAMP(Linux, Apache, MySQL, PHP) 스택(stack)이고, 몇 년 사이 자바스크립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JAM(JavaScript, API, Markup) 스택이 각광받고 있다. 사파리(Safari), 구글 크롬(Google Chrome) 같은 웹 브라우저(web browser)는 웹 페이지를 열람하는 소프트웨어로, 모든 웹 기술이 일어나는 종착지다. 즉, 웹 브라우저가 없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셈이다. 그 밖의 개념은 그때그때 설명하기로 하고, 더 궁금한 점이 있다면 직접 웹을 검색해 보면 어떨까. 『새로운 질서』(미디어버스, 2019)를 참고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일은 우리가 식당에서 주문을 하고, 밥을 먹는 일과 비슷하다. 고객(클라이언트)이 식당에서 음식(정보)을 주문하면 점원(서버)은 음식을 가져다준다. 음식이 식탁에 오르는 속도는 대개 주방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식재료가 떨어지거나 주방에 문제가 생기면 점원은 다른 음식을 주문하거나 다음에 다시 찾아와달라고 말한다. 점원이 주문을 깜빡해 멍하니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현실보다 드넓은 이 식당에서 웹은 메뉴판이고, 웹사이트를 만드는 일은 메뉴판에 음식을 하나 추가하는 일이다. 음식은 식재료나 요리사의 취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따금 마주하는 다음과 같은 화면은 식재료가 떨어졌거나 주방에 문제가 일어났음을 뜻한다.

앞으로 온라인 출판물과 오프라인 출판물이 어떻게 발전할지, 그리고 그 디자인은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우리에게 친숙한 종이 책의 형식은 1,000여 년 전 코덱스(Codex)의 발명과 함께 완성됐다. 콘텐츠가 두루마리를 벗어나 코덱스 안에 놓이면서 독자는 더욱 쉽고 빠르게 정보를 열람할 수 있게 됐다. 오늘날에는 재료와 제작 방식이 다양해졌을 뿐 재단된 낱장의 종이가 묶인 형식에는 변함이 없다. 한국에서 종이 책을 둘러싼 환경은 2000년대 초 독립 출판 유행과 함께 생산자가 늘어나며 내용과 형식에서 극단적인 실험이 이뤄지는 단계를 거쳤다. 동시에 소비자의 취향은 더욱 개인화하고 고급화했다. 한 분야에서 모든 영역이 상향 평준화하면 재미있는 현상이 일어나곤 한다. 현재에 막연한 거부감을 느끼거나 다시 과거로 눈을 돌리는 것이다. 이 현상이 끝나면 해당하는 분야에 새로운 생산자와 소비자가 유입되며 새로운 질서가 등장한다. 그럼에도 종이 책에서는 새로운 시도를 감행하더라도 코덱스의 자장을 벗어날 수 없다. 내 경우에 종이 책 디자인의 앞날에 관해서는 일부 생산자만 관심 있고, 소비자 대부분은 전혀 관심 없을 개인적이고 미시적인 영역, 예컨대 세로축에서 따옴표의 적절한 위치 같은 사항에 관해서만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웹사이트에서 콘텐츠는 코덱스를 벗어나 다시 두루마리(scroll) 안에 놓인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웹사이트를 출판물로 한정한다면 종이 책과 비슷한 과정을 겪게 되지 않을까.
좋아하는 과일 다섯 가지를 밝힌다면?
100그램당 칼로리와 함께 큰 것부터 작은 것 순으로.
2021년 현재 HTML의 표준 명세인 HTML5에서 사용되는 태그 113가지나 됩니다. 이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태그는 무엇인가요?
<a> 태그입니다. 콘텐츠에 하이퍼링크를 만들어 다른 콘텐츠와 잇는 태그로, 웹을 웹답게 만드는, 웹의 산소 같은 존재죠. 인쇄물과 웹사이트를 구별짓는 대표적인 태그이기도 해요. 인쇄물에서 각주, 방주, 미주에 불과했던 콘텐츠는 <a> 태그 덕에 웹에서 새로운 지위를 획득했으니까요. a는 ‘닻(anchor)’를 뜻해요. 여러 해석이 있지만, 저는 웹사이트에서 하이퍼링크를 클릭했을 때 그곳에 닻을 내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고 생각해요.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입니다. ‘새로운 질서’를 만들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요?
“어떤 대상을 좋아하고, 급기야 사랑하게 되면 그 아름다운 마음을 주위와 나누고 싶게 마련이다.” 제가 수학한 시적 연산 학교의 마지막 수업은 자신만의 학교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선생의 역할은 맹목적인 학생을 만드는 게 아니라 또 다른 선생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첫 시간부터 그냥 이름을 부르는 식으로 호칭을 정리하죠. 누군가를 ‘선생님’으로 부르는 순간 어떤 위계가 생기고, 그런 위계는 뭔가를 가르치거나 배우는 데, 즉 나누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아요.
소비자로서는 웹사이트가 너무나도 익숙하지만, 생산자로서는 대개 새로운 매체입니다. 세련된 툴바가 아닌 모두 글자로 하나하나 해야 하는 까닭에 자신의 작업 과정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죠. 디자이너라면 모름지기 처음부터 책을 한 권 만들어봐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상황이 디자인을 할 때 마주하게 되는 많은 변수를 포함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웹사이트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또 다른 경험을 하게 합니다.
당신은, 역할은 다르지만, 인쇄 매체와 디지털 매체를 함께 다룬다. 좋아하는 책을 아우를 만한 특징이 있나? 있다면, 좋아하는 웹사이트와는 어떻게 다를까?
얼핏 평온하고 순진해 보이지만 들여다볼수록 어딘가 불온해 보인다. (또는 그 반대.) 처음 세운 논리와 원칙을 끝까지 유지하며 동시에 부순다. 가볍다.
소비자로서 내용은 내게 유익하기만 하면 그만이다. 이는 아무래도 상대적이고 유동적이다. 예컨대 간식으로 먹을 파이를 만드는 데 칼 세이건(Carl Sagan)의 『코스모스』(Cosmos)는 내가 구운 ‘우주적’ 파이의 맛까지 보장해주지 않으니까.
형식에 관해서는 할 말이 좀 더 있다. 마이크로 타이포그래피는 완벽할수록 좋지만, 매크로 타이포그래피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앞표지에 예쁜 꽃 사진 한 장만 넣어도 충분할 때가 있다. 중요한 건 그게 수선화인지, 양귀비인지다.
한편, 나는 디자인 학교에서 넓게는 웹, 좁게는 인터랙티브 디자인을 가르치기도 한다. 학생들에게 웹사이트는 판형이 정해지지 않은, 부피와 무게가 없는 책이고, 책은 하이퍼링크와 스크롤바가 없는, 부피와 무게가 있는 웹사이트라고 말하곤 한다. 당신도 알다시피, 웹이 과학자들의 논문 공유를 통한 공동 연구를 위해 시작된 것처럼 웹사이트의 형식은 책에 많은 부분을 빚지고 있다. 언젠가 둘은 형식에서는 갈림길에서 헤어졌지만 목적지는 하나다. (둘이 가는 길은 테서랙트 안에 있는 것 같다.) 물론 이사할 때는 책이 훨씬 불리하다. 반대로 웹사이트는 ‘인쇄한(publish)’ 뒤에도 언제든 수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절제력과 결단력이 없으면 팔목터널증후군이 생길 가능성이 커지니 주의해야 한다.
워크룸의 단행본 편집자인 한편, 웹에도 관심이 적지 않다. 두 매체를 구분하는 것의 장점과 단점이 무엇일까? 두 매체를 오가면서 어떤 이유에서 각 매체를 선택하는가?
웹은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회사를 소개하기 위해 활용하는 매체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웹의 비중이 적지 않기 때문에 이따금 웹 디자인 에이전시로 오해받곤 한다. 회사에서 웹을 주로 이용하는 까닭은 다루기 쉽고, (인쇄물에 비해) 파급력이 클 뿐 아니라 무엇보다 많은 사람이 잠들기 직전에 마주하는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 경이 과학자들끼리 효율적으로 논문을 공유할 목적으로 웹을 발명한 만큼 역사적으로 웹은 인쇄물에서 출발했다.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의 측면에서 웹은 태생적으로 인쇄물의 장점을 포섭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발전을 거듭한다. 따라서 둘을 같은 출발선상에 놓고, 일대일로 비교하기보다는 인쇄물을 웹의 조상, 웹을 조금 더 진보한 인쇄물로 여기는 편이 이롭다. 당장 생각 나는 둘의 분명한 차이가 있다면 웹은 책을 손에 쥐었을 때 느껴지는 흡족함을 주지 못한다는 점과 책과 달리 영원히 베타 버전이라는 점이다.
하나의 방향이 아니라 거미줄 같이 사방으로 펼쳐지는 공간감이군요! 그럼 마지막 질문을 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할까 합니다. 웹 출판을 좋아하지만, 몇 년 혹은 몇 달만 지나도 웹에서 더 이상 찾을 수 없고 사라지는 정보가 많습니다. 민구홍 님은 이런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카이빙에 대한 어떤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열한 살 때 사랑하는 친구를 위해 『야후! 지오시티』(Yahoo! Geocities)에 처음 웹사이트를 만든 이래 안그라픽스와 워크룸, 나아가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10여년 동안 여러 웹사이트를 총괄하다 보니 조금씩 웹사이트의 탄생과 삶, 죽음과 사후 세계에 익숙해집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웹사이트의 운명은 결국 운영자에게 달렸습니다. 즉, 웹사이트는 서버 운영 기간이 종료되는 시점보다는 운영자가 관심을 끊는 순간 죽어가기 시작합니다. 이와 관련해 얼마 전 한 도록에 다음과 같은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 2022년 7월 11일, 미국 항공 우주국(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 NASA)에서는 제임스 웹(James Webb) 우주 망원경이 지구로 전송한 SMACS 0723 은하단의 모습을 공개했다.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별 무리는 지구로부터 약 46억 광년(1광년은 9조 4,607억 킬로미터) 떨어진, 즉 46억 년 전 언젠가의 모습이다. 반드시 우주 망원경을 활용하지 않더라도 웹사이트를 통해 과거를 마주하는 건 이미 익숙한 일이 됐다. 2006년부터 현재까지 과거를 기록하는 데 웹사이트를 활용해온 그들이 내게, 또는 그들 자신에게, 나아가 우리에게 건네는 이야기는 결국 이리저리 굴러가며 쌓인 어제가 오늘을 만든다는 점이다. 하루에 불과 네댓 명 찾는 정원이 될지라도 웹사이트를 만들고 운영하는 일뿐 아니라 함부로 사라지지 않도록 보존하는 일이 중요한 까닭이다. 식물에 물을 주듯 웹사이트를 가꾸다 보면 이따금 정원의 하늘에 별 무리가 반짝이는 밤도 있지 않을까. (…)
『인터넷 아카이브』(Internet Archive)에서 운영하는 「웨이백 머신」(Wayback Machine) 등 웹사이트를 보존하려는 시도는 일찍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미술관과 함께한 몇몇 웹사이트는 파일 형식으로 수장고에 아카이빙되기도 했고요. 이렇게 웹사이트를 고스란히 저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웹사이트에 담긴 콘텐츠가 웹상에서 나아가 웹 밖에서 여기저기 퍼지도록 마음을 열어두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 뜻에서 “별 무리가 반짝이는 밤”을 위해 이번 인터뷰를 민구홍 매뉴팩처링 공식 웹사이트의 「자주 하는 질문」에 함께 실으면 어떨까요?
본인이 기꺼이 광고판을 자처하고 싶은 브랜드, 비밀이 아니라면 알려달라.
예상했을지 모르겠지만 민구홍 매뉴팩처링이다. 티셔츠를 제작하는 데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갖추지 못한 또 다른 전문성과 섬세함이 필요하다. 혹시 함께할 동업자를 추천해줄 수 있다면 감사하겠다. 티셔츠를 제작하지 않더라도 생각지 못한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다.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입니다. 이런 디자인을 해야겠다고 결정한 순간은?
질문을 받고 이참에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슬기와 민의 최성민 선생님 덕인 것 같아요. 더 정확히는 최성민 선생님이 추천해주신 밥 길의 책 번역을 맡으면서요. 제가 미국에서 돌아와 워크룸으로 자리를 옮긴 2016년 무렵이었는데, 그 책에 이런 말이 나오죠. “흥미로운 말에는 시시한 그래픽이 필요하다.” 반대로 “흥미로운 그래픽에는 시시한 말이 필요하다.”라는 말도 있었죠.
무엇보다 말과 그래픽, 콘텐츠와 디자인, 내용과 형식, 두 가지의 균형이 중요하다는 뜻일 텐데, 이는 제가 늘 고민하던 바, 나아가 이제껏 제 마음을 움직이던 작품의 정체를 명쾌하게 정리해주는 말이었어요. 그 뒤로는 같은 말이라도 국면에 따라 뜻이 달라진다는 화용론(話用論, Pragmatics)에 심취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말이 흥미로워지는 국면을 찾아보거나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우연일지 모르지만, 안상수 선생님이든 최성민 선생님이든 저를 디자인하신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런 점에서 직접 사사한 적은 없지만 안상수 선생님이나 최성민 선생님은 제게 엄연히 선생님이죠. 이따금 자주 뵙고 싶기도 하지만, 그런 대상과는 아무래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쉬움이 있어야 계속 생각이 나니까요.
미술대학에서 작가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는 강사입니다. 무엇부터 시작하면 좋을까요?
아무래도 약력 쓰기겠죠. 작가라면 앞으로 두고두고 사용할 자신의 약력만큼은 제대로 쓰고 편집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가장 좋아하는 웹사이트가 있다면?

팀 버너스리가 만들었을 게 분명한 세계 최초의 웹사이트다. 이 웹사이트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추구하는 바를 여실히 드러낸다. 콘텐츠는 우아하고 실용적이면서 사용된 기술은 오래됐지만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무리 없이 동작한다. 2020년 현재 웹상에는 17억 개 정도의 웹사이트가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웹사이트를 만드는 방식은 17억 개 이상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것을 알지 못하고, 배울 필요도 없다. 우리에게는 살아가는 것처럼 해야 할 일이 많다.
별자리가 물고기 자리인 사람은 감정에 쉽게 휩쓸린다. 당신은 내가 아는 사람 가운데 가장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최근에 관심이 가거나 눈에 띄는 창작자가 있는가?
잘 모르겠다.
민구홍 매뉴팩처링 공식 웹사이트 속도가 제법 빨라진 듯합니다.
정확합니다. 2015년부터 호스팅 업체로 미국의 드림호스트(Dreamhost)를 사용하고 있는데, 미국 서부의 오레곤에 있던 데이터 센터를 한국과 더 가까운 싱가포르로 옮기고, 여기에 클라우드플레어(Cloudflare)의 네임서버까지 사용했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 결과 200밀리초에 가까웠던 핑 속도가 100밀리초 미만으로 감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