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자는 느닷없이 세 이름과 마주한다. 첫 번째 이름은 두 이름을 단순히 조합하고 가운뎃점(·)으로 구분한 결과다. 나머지 두 이름은 첫 번째 이름에서 가운뎃점을 떼어 내 분절한 결과다. 세 이름은 위치, 그리고 주위에 부여된 공간으로 미루어 무엇의 제목으로 읽힐 가능성이 크다. 이만으로 충분할 수 있지만, 방문자는 각 이름에 마우스 커서나 검지 끝을 가져다 댈 수밖에 없다. 이는 그다지 느닷없는 일은 아니다. 여기에 구구절절한 안내문은 공연하다.
방문자의 행위에 따라 글줄이 드러난다. 글줄 사이의 빈 공간이 글줄로 채워질 무렵, 방문자는 비로소 이것이 단순한 글줄이 아닌 어떤 항목임을, 항목은 연도순에 따라 어떤 목록을 이룸을 감지한다. 하지만 앞선 세 이름이 무엇의 제목에서 목록을 여과하는 일종의 필터로 거듭났다는 사실에까지는 쉽게 도달하지 못한다. 방문자의 인식은 그 직전에 멈춘다. 방문자에게는 동시에 해야 할, 또는 하고픈 일이 지나치게 많다. 이를 아쉬워하는 인물을 두어 명 안다.
항목은 또다시 목록의 형태를 띠며, 항목으로서의 목록은 자신이 품은 항목을 중요도에 따라 수평으로 나열하고, 각 항목은 쉼표(,)로 구분된다. 이때 쉼표는 구분자뿐 아니라 뒤따르는 항목에 위계를 부여하는 역할을 맡는다. 성격이 다른 두 가지 목록과 항목이 만들어 낸 모습이 방문자에게 얼핏 인쇄물의 참고 문헌을 정리한 장(章)처럼 보이는 순간, 그것은 실체와 무관하게 참고 문헌이 된다.
어떤 저작물에 관한 여러 정보를 중요도에 따라 수평으로 나열하는 참고 문헌의 지배 논리에서 저자의 자리는 늘 가장 앞에 마련된다. 누군가는 자신의 이름이 이 자리를 차지하는 순간을 삶의 근사한 목표로 삼는다. 자신 앞에 쉼표뿐 아니라 어떤 것도 두지 않겠다는 욕망은 방문자가 마주한 목록에서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부여한 새로운 질서를 통해 발현한다. 인쇄물에서 각주, 방주, 미주에 불과했던 정보가 웹에서 태그를 통해 새로운 지위를 부여받았듯, 방문자가 마주한 목록에서 세 이름은 주도한 저작물뿐 아니라 참여한 저작물에서도 저자의 자리를 어색함 없이 차지한다. 이 경우 저자로 추앙받던 이름은 사라지거나 뒤로 물러난다. 즉,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한 번도 원한 적이 없는, 지위를 부여받는다. 웹상에서는 도시 전설 같은 일이 왕왕 일어난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여러 방식으로 회사, 즉 민구홍 매뉴팩처링 자체를 소개하는 데 주력하는 회사로, 이 과정에서 생산되는 부산물을 이따금 제품으로 출시하는 한편, 드물게 고객들에게 기술을 지원한다. ‘제품’이나 ‘기술 지원’을 둘러싼 회사의 업무는 결국 회사, 즉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소개하는 일로 수렴한다. 오늘날 모든 창작과 지원 행위의 기저에는 행위 자체보다 행위자 자신을 소개하고픈 욕망이라도 있는 듯. 이는 세 이름을 저자의 자리에 두고 잠들기 전에 바라보고픈, 저자의 자리뿐 아니라 도메인과 전자우편 주소에서까지 반복하고픈 또 다른 욕망과 얼마간 겹친다.
“도메인에서 ‘kimnuiyeon’ 없이 ‘jeonyongwan.kr’은 결코 작동하지 않습니다. ‘kimnuiyeon.jeonyongwan.kr’은 사실 ‘kimnuiyeon’ 덕에 성립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jeonyongwan.kr’ 없이 ‘kimnuiyeon’은 결코 기능하지 않지요. ‘jeonyongwan.kr’이 ‘kimnuiyeon’의 버팀목이 되는 까닭입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기술적으로 그렇다는 의미입니다. 유별난 점은 없습니다. 하지만 유별나지 않기에 다시 생각해 볼 만한, 깃발을 꽂을 만한 여지가 있습니다. 어쨌든 부모나 조부모, 또는 유명한 작명가가 부여한 이름을 걸고 활동하는 듀오에게 기술적으로, 나아가 개념적으로 완벽한 도메인 형식임은 분명합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욕망은 방문자가 마주한 글자의 목록과 그 지배 논리, 거칠게 가로되 매크로·마이크로 타이포그래피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는 방문자를 위협할 만큼 요란한 효과를 덧입히기보다 기본적이고 심지어 기초적인 웹 기술만으로도 넉넉하게 효과적이고, 그래서 아름다울 수 있다는 교조적인 믿음, 그리고 그 믿음을 지지할 고객이 어딘가에 있으리라는 얼마간 순진한 믿음에서 비롯한다. 이는 시대착오적이기도 하지만, 많은 것이 자동화하고 템플릿화한 오늘날 느닷없이 도전해 볼 과제다. 아나키즘이나 노스탤지어, 또는 브루탈리즘보다는 오히려 평범한 어떤 것에 관한 이야기다. 요란한 효과를 덧입히기 위해 사용한 서버 용량은 평범함을 위시한, 간결하고, 지루하고, 으스스하고, 유용하고, 무용하고, 아름다운 콘텐츠(그것도 검색 엔진 결과물에 드러나는) 자체에 할당되어야 한다. 적어도 민구홍 매뉴팩처링 사옥에서만큼은 그렇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추억 속에 놓여 결국 사라질, 매끈한 그러데이션이나 애니메이션을 구현하기 위해 CSS 코드 몇 줄을 추가할 시간에 국면을 고안하고 글쓰기와 맞춤법부터 익히세요. 그전에 회사 소개를 묵독하세요. 이해할 수 없다면 더는 사옥에 머물 까닭이 없습니다.
한편, 앞선 믿음과 이율배반적인 믿음 또한 존재한다. 방문자가 마주한 목록 뒤에서는 세 이름의 저작물과 그와 관련한 온갖 정보, 즉 데이터베이스를 그 어떤 방식보다 합리적이고 효율적이고, 무엇보다 즐겁게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즉 한편으로는 최첨단을 지향해야 한다는 믿음이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제품 매니지먼트(Management)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기술의 주된 고갱이는 방문자가 방문자로 머무는 이상 안타깝게도 영원히 경험할 수 없다. 이는 온전히 고객, 즉 세 이름만 누릴 수 있는 사치다. 범죄자만 아니라면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고객은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
방문자가 마주한 목록과 그를 둘러싼 경험을 무엇으로 부르면 좋을까? 이를 단순히 ‘웹사이트’로 부르는 것은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지원한 기술을 ‘디자인’이나 ‘프로그래밍’, 또는 ‘데이터베이스 구축’이나 ‘백엔드 프로그래밍’, ‘프런트엔드 마크업·디자인’ 등으로 치부하고 규정해 버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모든 것을 온전히 적확하게 포괄할 수 없다면 차라리 단순하고, 그래서 엉뚱해 보이기까지 한 방식을 택하는 편이 낫다. 컴퓨터 언어를 도구 삼아 다루는 일, 즉 코딩이 또 다른 차원의 글쓰기라면, 그 결과물을 시 한 편으로 부르는 편이 나은 경우가 있듯.
방문자가 이미 감지하듯 자신이 마주한 목록은 앞으로 다듬어지고 추가된다. 쉼표로 구분된 항목의 앞, 즉 저자의 자리에는 늘 세 이름 가운데 하나가 있다. 세 이름은 언어를 저작물의 주된 자료로 삼는다. 이유는 알 수 없다. 관심사일 수도, 호기심일 수도, 또는 세 이름으로서 점유하고픈 좌푯값과 관련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관심사, 호기심, 좌푯값을 떠나 세 이름은 이따금 그저 목록을 추가하고픈 욕망을 차마 이기지 못해 미래의 저작과 저작의 미래를 생각한다. 이 또한 방문자가 이미 감지한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