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 Guhong Manufacturing

워크룸 열쇳말

2022

몬테소리

학생으로서든 선생으로서든 교육에 참여하는 일은 생활에 에너지를 준다. 워크룸 구성원 또한 시간을 쪼개 교육에 얼마간 일조해왔다. 김형진은 계원예술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서울시립대학교 등에서 그래픽 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를 가르쳤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진행한 김형진의 마지막 강의는 학생 대상 만점을 받기도 했다. 박활성은 계원예술대학교에서 글쓰기를 강의했다. 김뉘연은 2021년부터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에서 ‘작업자의 글쓰기’를 가르친다. 어린 시절 정식으로 몬테소리 교육을 받은 바 있는 민구홍은 스튜디오 파이·취미가의 지원으로 ‘현대인을 위한 교양 강좌’를 표방하는 「새로운 질서」를 진행하고(「새로운 질서」는 2016년 워크룸에서 열린 비공개 세미나에서 시작돼 해를 거듭하며 커리큘럼이 다듬어졌다.), 설립하는 데 참여한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에서 강의한다.

홑낫표와 겹낫표

도서의 본문에는 글자 외에도 정보를 구분하고 강조하기 위해 각종 약물(約物)이 사용된다. 앞 문장에서 문장의 끝을 표시하는 마침표와 ’약물’을 보조하기 위해 사용한 괄호가 좋은 보기다. 이렇듯 약물은 정보를 구성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지만, 약물 탓에 본문이 지나치게 복잡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극단적이지만 언젠가는 두어 번 맞닥뜨리게 될 상황을 상상해보자. 본문에서 인용문, 강조문, 글, 책, 미술 작품, 전시가 단어 또는 구절 또는 문장마다 한데 어우러진다면? 반드시 필요한 마침표에 쉼표, 물음표, 느낌표, 나아가 콜론까지 등장한다면? 게다가 영문, 한자, 가나까지 병기해야 한다면? 워크룸에서는 「워크룸 스타일 가이드」를 마련하면서 각종 약물 가운데 공통적인 속성을 지닌 몇 가지, 즉 글 제목에 사용하는 홑낫표(「」)와 미술 작품명 등에 사용하는 홑화살괄호(〈〉)를 홑낫표로, 도서명에 사용하는 겹낫표(『』)와 전시명 등에 사용하는 겹화살괄호(《》)를 겹낫표로 모두 통합해 독자의 혼란과 작업자의 수고를 줄였다.

아름다운 실용의 세계

2018년 7월 13일 『생활 공작』(워크룸 프레스 편집, 미국 전략사무국 지음, 홍희범 옮김)과 함께 선보인 ‘실용 총서’는 아름다운 실용의 세계를 좇는 총서로, 모토는 다음과 같다. “과거에는 실용이었으나 오늘날 실용만으로 기능하지 않는, 과거에는 실용이 아니었으나 오늘날 실용으로 기능하는 자료를 발굴합니다. 실용을 곱씹게 하는 현대인의 교양 총서를 자처합니다. 아름다운 실용의 세계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첫 책 『생활 공작』은 제2차 세계대전 시절 미국 중앙정보국(Central Intelligence Agency, CIA)의 전신인 전략사무국(Office of Strategic Services, OSS)에서 적지에 침투한 간첩들에게 배포한 『단순 방해 공작 야전교범』(Simple Sabotage Field Manual)을 원전으로 삼는다. 책에는 불필요한 회의를 자주 열거나 퇴근할 때 불을 끄지 말아야 한다는 식의 누구나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공작 방법이 소개돼 있다. 이 책을 사용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적을 괴롭힐 동조자를 모으는 것, 다른 하나는 반대로 내 곁에서 암암리에 활동하는 적을 색출해 확실히 제거하는 것. 마지막 하나는 이 책의 각 항목을 작성하는 각 분야 전문가들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며 전쟁의 비극을 교훈 삼아 미래의 안녕을 위해 앞장서는 것. 물론 적을 어떻게 규정하는지 만큼이나 사용법은 무궁무진할 테고, 선택은 전적으로 독자에게 달렸다. 『생활 공작』이 출간되고 얼마 뒤 『매일 경제』에는 느닷없이 삼성전자의 글로벌 전략 회의에서 이 책의 내용이 화제가 됐다는 기사가 소개되기도 했다. 이처럼 『생활 공작』이 비즈니스 차원에서 실용을 건드리듯, ‘실용 총서’의 다른 책인 『헤비듀티』는 패션, 『히트곡 제조법』은 음악, 『실전 격투』는 체육의 측면에서 실용에 다가간다. 한편, 총서를 기획한 민구홍은 디자인 작업 또한 실용적으로, 즉 별 고민 없이 되도록 날쌔게 이뤄지기를 바랐고, 김형진과 함께 앞표지에는 흰 바탕에 검정 글자로 제목을 되도록 크게, 뒤표지에는 내용을 재현하거나 암시하지 않는 그저 귀여운 동물의 사진을 싣는다는 디자인 원칙을 세웠다. 이렇듯 ‘실용 총서’는 내용과 형식, 나아가 생산의 측면까지 아우르며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실용이 무엇인지 되묻는다. 실용이 지닌 생명력 덕일까? ’실용 총서’는 『타이포잔치 2021: 거북이와 두루미』의 ‘생명 도서관’(기획: 이재영)에 소개되기도 했다.

말과 말들

2016년 9월부터 함께한 민구홍이 운영하는 1인 기생 회사 민구홍 매뉴팩처링과 협업한 이래 워크룸에서는 웹 기술을 활용해 온라인에서 콘텐츠를 다루는 시도를 감행해왔다. 2019년 12월 4일 트위터를 통해 선보인 「말과 말들」은 그 가운데 하나다. 웹 브라우저 구글 크롬(Google Chrome)에서 동작하는 이 프로그램은 사용자가 새 탭(tab)을 열 때마다 워크룸 프레스와 작업실유령에서 출간된 도서의 인용문을 무작위로 드러내고, 인용문을 클릭하면 해당 책을 소개하는 워크룸 프레스의 페이지로 이동한다. 이처럼 사용자를 도서 구매로 유도하듯 「말과 말들」은 소극적인 도서 마케팅 도구이기도 하다. 한 사용자는 트위터에서 “회사를 벗어나 독서하는 일탈을 선물받는 기분”이라는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한편, 프로그램은 사용자의 컴퓨터 시간과 연동해 오후 6시를 기준으로 ‘낮 모드’와 ‘밤 모드’가 전환된다. 현재 버전은 0.9.6이다. 한편, 워크룸이 하나의 소프트웨어라면, 워크룸에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플러그인(plugin)과 비슷하다. 소프트웨어를 확장하거나 뜻밖의 기능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때로는 플러그인이 정식 소프트웨어로 거듭날 수 있다는 점에서.

말 그대로 ‘작업실’

2021년 설립 15주년을 맞은 워크룸은 기본적으로 영리를 추구하는 회사지만, 이름처럼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는 생산자가 모인 ‘작업실’이기도 하다. 소정 근로 시간에 맡은 업무만 무리 없이 수행하면 워크룸에서는 전시, 출강, 강연, 기고 등 구성원의 외부 활동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편이다. 워크룸에는 겸업을 하는 구성원이 적지 않다. 김뉘연은 워크룸의 전 디자이너 전용완과 (미술) 작가로 활동하는 한편, 출판사 ‘외밀’을 운영하며 『모눈 지우개』와 『부분』을 저술하고 출간했다. 민구홍은 1인 기생 회사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운영하며, 달리 말해 워크룸에 기생하며 미술 및 디자인계 안팎에서 여러 방식으로 어떤 대상을 소개하는 데 주력해왔다. 유현선은 사진 기반 프로젝트 그룹 ‘파일드(Filed)’의 일원이다. 경우에 따라 구성원의 외부 활동은 자연스럽게 워크룸과 함께 이뤄지기도 한다. 단순히 편집자와 디자이너가 아닌, 다방면의 생산자가 모여 ‘작업하는’ 공간. 민구홍은 이 환경에 관해 2021년 네이버 디자인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구성원이 회사에 멍에를 지지 않고, 후회나 미련 없이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아슬아슬한 환경이 역설적으로 워크룸의 에너지가 됩니다. 출판, 기획, 편집, 디자인, 웹사이트 구축, 소프트웨어 제작, 교육 등을 모두 수행하는 스튜디오가 드문 만큼 제게 적지 않은 자극이 되고요. 워크룸이 지금까지 뒤처지지 않고 생존할 수 있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게다가 숙주가 건강한 건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더없이 좋은 일이고요.”

‘웹사이트’라는 출판물

우리에게 친숙한 종이 책의 형식은 1,000여 년 전 코덱스(Codex)의 발명과 함께 완성됐다. 콘텐츠가 두루마리를 벗어나 코덱스 안에 놓이면서 독자는 더욱 쉽고 빠르게 정보를 열람할 수 있게 됐다. 그 뒤 재료와 제작 방식이 다양해졌을 뿐 재단된 낱장의 종이가 묶인 형식에는 변함이 없다. 오늘날 ‘출판(publishing)’은 반드시 종이 위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 온라인상에서 콘텐츠를 공개하고 소개하는 일 또한 ‘출판’이라 부르는 만큼 (특히 2021년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콘텐츠 매니지먼트 시스템[Content Management System, CMS]인 워드프레스[Wordpress]의 게시물 공개 버튼에 ‘publish’가 자리한 점은 의미심장하다.) 이제는 종이 책을 ‘오프라인 출판물’로, 웹사이트를 ‘온라인 출판물’로 불러도 별로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본디 웹사이트는 과학자들끼리 논문을 효율적으로 공유하기 위해 발명됐다. 즉, 인쇄물에서 비롯했다. 인쇄물에서 각주, 방주, 미주에 불과했던 콘텐츠는 HTML(HyperText Markup Language)의 <a> 태그 덕에 새로운 지위를 획득했다. 웹사이트는 종이 책에서 비롯해 종이 책의 부족한 점을 보완한 결과물이다. 즉, 진화한 종이 책인 셈이다. 종이 책과 웹사이트를 한데 출판물로 묶는다면, 즉 콘텐츠가 놓인 자리만 바뀌었을 뿐이라 믿는다면, 두 매체를 둘러싼 고민은 교정되거나 몇몇은 자연스럽게 해결될지 모른다. 웹사이트에서 콘텐츠는 코덱스를 벗어나 다시 두루마리(scroll) 안에 놓이며 화면을 상하좌우로 가로지른다. 워크룸에서는 비아인 키노와 플랏엠을 위한 웹사이트를 시작으로 2016년부터 출판의 범위를 온라인으로 확장하기 시작했고, 덩달아 콘텐츠를 편집하는 일의 범위 또한 확장됐다. 워크룸과 워크룸 프레스의 웹사이트를 포함해 워크룸에서 작업한 (거의) 모든 웹사이트는 민구홍 매뉴팩처링과 협업한 결과물이다. 물론 웹사이트를 대하는 태도는 종이 책과 다르지 않다. “최신 기술을 재빨리 익혀 도입하는 쪽과 드릴이나 호미로 밑바닥을 확장하며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기술을 탐구하는 쪽이 있다면,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후자에 속합니다. 아무래도 워크룸에 있다 보니 그래픽 디자인에서 타이포그래피나 개념에 집중하는 방법론에 익숙하기도 하고,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구글이나 네이버가 아닌 만큼 기술적인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기도 하죠. 이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선의 방법을 고안하려 노력합니다. 여러 프로젝트를 경험해본 바로는 대부분의 문제가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기술만으로 무리 없이 해결되는 편이었어요. 물론 여기에는 콘텐츠를 제대로 다뤄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죠.”

사번을 겸하는 이메일 주소

오늘날 이메일 주소의 사용자명을 결정하는 일은 소셜 미디어의 사용자명을 결정하는 일보다 별로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회사에서 이메일 주소는 이야기가 시작되는 공식적인 창구다. (즉, 소셜 미디어 메시지로 작업을 의뢰하는 것은 삼가는 것이 좋다.) 비즈니스 측면에서 이메일 주소의 사용자명은 일반적으로 minguhong 같이 사용자의 영문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관례다. 하지만 워크룸 구성원은 입사순으로 번호를 부여받고, 이 번호는 자동적으로 사번과 이메일 주소의 사용자명이 된다. 퇴사한 구성원의 번호는 영구적으로, 적어도 워크룸이 폐업 신고서를 작성하기 전까지는 영구결번이 된다. 2021년 현재 워크룸의 구성원은 계약직 구성원을 포함해 총 일곱 명이고, 1번은 워크룸 초창기에 함께한 사진가 박정훈, 가장 최근에 번호를 부여받은 인물은 (최근에 퇴사한) 17번 황희연이다. 초기 구성원인 김형진, 박정훈, 박활성, 이경수의 번호는 ‘가위바위보’라는 역사성과 전통성, 그리고 합리성을 띤 방식을 따른 결과다.

(편집자 겸 디자이너 겸 프로그래머에게) 추천하는 음악

독일의 밴드 쿠스코(Cusco)가 1985년에 발표한 『아푸리막』(Apurimac). “신시사이저만으로 고대 잉카 문명을 여행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다. 앨범에 수록된 음악에는 가사가 없으므로 사무실에서 일하는 동안 배경 음악으로 삼기 좋다. 특히 「플루트 배틀」(Flute Battle)과 「잉카 댄스」(Inca Dance)는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 독자에게 익숙할지 모르겠다. 이와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곡은 미국의 음악가 안젤로 바달라멘티(Angelo Badalamenti)가 작곡하고 연주한 「트윈 픽스 테마」(Twin Peaks Theme). 1990년대를 풍미한 미국 드라마 「트윈 픽스」(Twin Peaks)의 오프닝 곡으로, 왓챠에서 전 시즌을 서비스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시청할 때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새기며 듣는다. 다시 피아노를 익혀 연주하고픈 곡이기도 하다. 참고로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가 감독하고, 두웨인 던햄(Duwayne Dunham)이 편집한 오프닝 영상과 함께 감상하면 감동은 배가된다.

소음

워크룸 사무실의 소음 데시벨은 구성원들이 출근하는 오전 10~11시 무렵 잠시 높아진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그 뒤에는 한동안 0에 수렴하고, 이따금 전화를 받거나 회의를 할 때 다시 높아진다. 음악을 듣더라도 각 구성원이 이어폰을 사용하는 만큼 그 뒤에는 한동안 0에 수렴하고, 구성원들이 퇴근하는 오후 7~8시 무렵 잠시 높아진다. “안녕히 계세요.” “안녕히 가세요.” 적막함을 견디지 못하는 김형진이 조금이나마 데시벨을 높이기 위해 농담을 시도하곤 하지만, 대꾸하는 것은 박활성이나 민구홍 정도. 업무에 몰두한 구성원들을 조금이라도 반응시키려면 도저한 유머 감각이 필요한 것이다.

노동 시간

“노동이 그대를 자유케 하리라.(Arbeit macht frei.)”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정문의 격언처럼 비극적이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먹고 살기 위해, 나아가 자유를 위해 노동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스튜디오명 자체에 ‘노동(work)’이 포함된 워크룸에 구성원이 누리는 일과 생활의 균형은 태생적으로 마주해야 할 숙명과 같다.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일해야 하는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많은 기업이 ‘기업은 사무실을 두고, 구성원은 그곳에서 일한다’는 자연스럽고 전통적인 시스템을 향해 다시 질문하기 시작했다.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일본의 한 대기업은 물리적인 사무실을 완전히 없애고, 사무실을 운영하고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을 구성원들의 재택 근무를 위해 지원한다고 밝혔다. 한국은 OECD(Organis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에 속한 국가 가운데 직장인과 자영업자의 근로 시간이 멕시코 다음으로 가장 길기로 유명하다지만, 김뉘연과 민구홍은 일찍이 각각 2020년, 2021년부터 주4일제로 근무해왔다. 특히 2021년은 워크룸 설립 이래 최대 매출을 기록했으니 구성원이 사무실에서 보내는 시간과 일의 능률은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어느 정도 증명된 만큼 이 제도의 적용 대상은 2022년부터 다른 구성원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1미터

워크룸 구성원들의 전용 업무 공간과 환경은 임직원과 무관하게 동일하다. 같은 크기의 책상, 같은 모델의 의자와 서랍장, 그 뒤에 놓인 철제 책장, 그리고 각 공간 사이의 거리 1미터.

실용적인 웹사이트

웹사이트는 단순히 콘텐츠 열람을 위한 온라인 출판물을 넘어 일종의 도구로도 기능한다. 따라서 그 아름다움은 소비자뿐 아니라 생산자에게 실용적으로 작동할수록 배가된다. 즉, 글자 하나가 정보를 표시하는 동시에 내비게이션 등 날렵하게 여러 기능을 포함하는 수준이 아닌 실제 작업 자체에 영향을 미치는 단계. 여기서 콘텐츠 매니지먼트 시스템(Content Mangement System, CMS)의 힘이 발휘된다. 패션 브랜드 thisisneverthat의 10년을 정리한 『thisisenverthisisneverthat』. 책의 많은 부분은 3,000여 가지에 달하는 제품의 목록으로 이뤄져 있는데, 다양한 항목으로 이뤄진 목록을 정리하는 도구로서 웹사이트를 요긴하게 활용했다. 『타이포잔치 2021: 거북이와 두루미』의 다종다양한 콘텐츠도 일차적으로는 웹사이트상에서 정리됐다. 웹사이트가 맨 앞에서 프로젝트를 이끌고 종이 책과 어깨동무한 좋은 보기다.

워크룸 3.0

안그라픽스, 홍디자인 등 한국 디자인계의 전통적인 대형 에이전시의 시간은 시기마다 대표 또는 아트 디렉터가 교체되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규모 덕에 그렇게나마 업력(業歷)을 쌓아 시간을 초월할 수 있는 가능성을 획득한다. 그렇다면 의도적으로 전통과 이별을 고하고, 다른 차원에서 작고 단단함으로 또 다른 전통을 만들어가는 소규모 스튜디오의, 가깝게는 그 1세대인 워크룸의 시간은 어떻게 이어질까? 다시 말해 당장 10년 뒤 워크룸의 모습은? 부동산 투자로 대박을 터뜨리거나 대형 에이전시처럼 규모를 확장하지 않는 이상 선택지는 많지 않을지 모른다. “힘 닿는 데까지 지금처럼 디자인과 출판에 매진할 생각입니다.” 아니면 “아, 맞다. 예전에 ‘워크룸’이라는 스튜디오가 있었지… 그런데 오늘 점심엔 뭐 먹을까?” 아니면 14@wkrm.kr을 2022년 1월 31일까지 사용하겠다는 편지에서 민구홍이 천명했듯 “워크룸에서 듣고 익힌 바를 요긴하게 인용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생산자의 인큐베이터로 기능하는 것?

좋아하는 브랜드가 있나요?

애플에서는 채용 인터뷰 자리에서 지원자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고 한다. “당신은 달걀 두 알이 있습니다. 달걀을 깨뜨리지 않고 가장 높은 곳에서 떨어뜨릴 수 있는 층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당장 내 앞에 앉아 있는 인물과 앞으로 함께할 수 있을지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다. 아무리 감식안이 뛰어난 인물일지라도 마찬가지다. 웬만하면 피하고픈 일이지만 워크룸 또한 이따금 이 문제를 헤쳐나갈 수밖에 없다. 오랜 고민 끝에 워크룸에서는 이를 위해 인터뷰 자리에서 지원자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분야를 떠나 좋아하는 브랜드가 있나요?” 다소 느닷없지만 이 질문이라면 추가 질문 없이 단순히 지원자의 취향뿐 아니라 관심 분야, 소비 규모, 순발력, 문제 해결 능력, 나아가 가치관, 종교관까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답변이 제대로 기능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분홍색 연구

‘분홍이’로 알려진 「푹신」(Fuchsine)은 지금은 문을 닫은 전설적인 갤러리 아카이브 봄에서 전시된 작품이다. 서울시립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와 작업한 여러 웹사이트에 등장한다. UX 디자인 분야에서 전통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생략 버튼’(ellipsis button)을 약 1,000배로 확대해 현실로 옮겨놓은 모습이다. 민구홍과의 의리를 발휘한 김형진이 구입해(20만 원) 사무실에 들였지만, 제법 크고 무겁기에 어딘가에 기대어놓을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김형진의 책상, 나중에는 박활성의 책상 앞에 있다가 지금은 회의 탁자 근처 책장 옆에 자리한다. “음… 이건 뭐예요?” 이따금 사무실에 찾아온 손님들은 「푹신」을 보고 묻곤 한다. “이건 말이죠…” 누구도, 심지어 민구홍마저도 대답하기 곤란하다. 앞으로 「푹신」이 길바닥에 버려지지 않는다면, 2019년 아카이브 봄과 작업실유령에서 공동 출간한 『레인보 셔벗』에 실린 김뉘연의 작품 제목(「분홍색 연구」)처럼 계속 연구해봐야 할 문제다.

화장실 열쇠

워크룸에서 화장실을 사용하려면 노란색 철문 밖으로 나가 반층 올라가야 한다. 이때 화장실 문을 열기 위해, 그리고 그 안에 사람이 있음을 알리기 위해 반드시 열쇠를 챙겨야 한다. 화장실 열쇠고리는 구성원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공용 물건일 것이다. (이 글을 작성하면서 생각해보니 반드시 소독이 필요하겠다.) 열쇠고리에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영문 표기법이 영문으로 적혀 있다.

(2022년 1월을 기준으로) 워크룸에 없는 것

편지 봉투(오래 전에 다 떨어진 뒤 더는 제작하지 않아서), 함께하는 점심 식사(대개 구성원 각자 먹으므로), 회식(사실 없어도 별 상관 없거나 없는 게 더 좋은), 구성원별 내선 번호(‘당겨받기’ 버튼마저 고장난 전화기도), 바닥 난방(특히 겨울에 월요일이면 주말 동안 얼어붙은 사무실 온도를 올려야 하는)…

새 주소

워크룸의 고객뿐 아니라 잠재 고객이라면 미리 기억해둘 만한 사실 하나. 2022년 5월 이후 워크룸에서 사용할 주소는 다음과 같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자하문로17길 12-17” 이렇게 2006년부터 사용한 ‘서울특별시 종로구 자하문로10길 13, 1층’과 2015년(?)부터 사용한 ‘서울특별시 종로구 자하문로16길 4, 2층’이 깔끔하게 하나로 통합된다. 워크룸의 공식적인 작업 의뢰 이메일 주소 ‘workroom@wkrm.kr’처럼 앞으로 어지간하면 변함없을 이 주소는 슬기와 민, 더 북 소사이어티, 양장점 또한 함께 사용할 예정이다.

도메인

워크룸에서는 두 가지 웹사이트(워크룸과 워크룸 프레스)를 운영하고, 여기에 연동하는 세 가지 도메인을 사용한다. 하나는 공식 도메인인 workroom.kr(2007년 4월 16일 등록), 다른 하나는 이메일 주소용 wkrm.kr(2007년 4월 13일 등록, 이 도메인으로 접속하면 공식 도메인으로 이동한다.), 마지막으로 워크룸 프레스용 workroompress.kr(2012년 7월 11일 등록)이다. 언젠가 민구홍은 이 도메인 체계가 워크룸답지 않게 일관되지 않고 다소 어수선하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도메인을 결정하는 데 참여할 수 있었다면 몇 가지 선택지가 더 있었으리라며. 이는 바우하우스(Bauhaus)에서 수학한 미국의 그래픽 디자이너 헤르베르트 바이어(Herbert Bayer)는 「우리는 왜 모든 것을 소문자로 쓰는가」(Why We Write Everything in Small Letters)에서 밝힌 대문자에 관한 생각과 겹친다. “나는 교장이었던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에게 바우하우스에서만큼은 소문자만 쓰자고 설득했다. 그로피우스는 동의했다. (…) 우리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모든 것을 소문자로 쓴다. 같은 콘텐츠를 위해 왜 알파벳이 두 종류나 필요할까?” 게다가 한 웹사이트를 위해 굳이 두 가지 도메인을 사용하는 것은, 많지는 않지만, 고정적인 유지 비용과도 연결된다. 도메인은 웹사이트의 제목으로도 기능하는 만큼 workroompress.kr은 입력하기 조금 길다. 그는 다음과 같은 방식을 제안했다. (1) workroom.kr 대신 이메일 주소용 wkrm.kr을 공식 도메인으로 삼고, 워크룸 프레스용으로는 workroompress.kr 대신 ‘wkrm’처럼 ‘press’를 축약한 서브 도메인 prss.wkrm.kr을 사용한다. 그 결과 도메인 체계가 일관되고 단순하면서 분명해지고, 체계만으로 워크룸과 워크룸 프레스의 관계(스튜디오에서 운영하는 출판사) 또한 드러난다. (2) 이메일용으로 wkrm.kr 대신 공식 도메인인 workroom.kr을 사용하고, 워크룸 프레스용으로는 적절한 최상위 도메인(Top-Level Domain, TLD)을 활용해 workroom.press를 사용한다. 하지만 민구홍의 제안을 곧이 곧대로 따른다 해도 15년여 동안 사용한 도메인을 바꾸는 것은 에너지 낭비다. 판권면에 인쇄된 도메인에는 대관절 누가 교정용 스티커를 붙여야 할까? 따라서 위 제안을 실현하는 것은 사실 평행우주나 메타버스에서나 가능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