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핸드메이드 웹(Handmade Web)’이라는 어휘를 처음 접한 건 2016년 여름, 미국 뉴욕의 시적 연산 학교(School for Poetic Computation, SFPC)에서였다. 내 기억력에 문제가 없다면, 미국의 시인이자 MIT 교수인 닉 몬포트(Nick Montfort)의 두 번째 수업에서였을 테다. 그는 수업을 시작하자마자 글 한 편이 실린 웹사이트를 소개했다. 웹을 사랑한다면, 또는 웹과 사랑에 빠지고 싶다면 반드시 읽어볼 만하다는 말과 함께. 그 글은 이렇게 시작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핸드메이드(handmade)’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기계가 아닌 손이나 간단한 도구로 만든 물건을 가리킨다. 그 물건은 점토 재떨이처럼 평범하거나 질박할 수도, 고급 수제화 한 켤레처럼 완벽에 가까울 만큼 정교할 수도 있다.1
이 글을 쓴 J. R. 카펜터(J. R. Carpenter)는 캐나다 출신 영국의 넷 아티스트이자 윈체스터 스쿨 오브 아트(Winchester School of Art)의 교수로, 웹이 일반에 공개된 무렵인 1993년부터 전자 텍스트를 작성해왔다. 1995년에는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Netscape Navigator)에서 작동하는 첫 번째 넷 아트 작품인 「물고기들과 날아다니는 것들(Fishes and Flying Things)」을 발표했다.
지금까지 밤에 윙윙거리며 날아다니는 물고기와 날아다니는 것들을 묘사적인 내러티브를 통해 욕망의 정신으로 표현한 미니 웹 패러사이트(mini web para-site)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야기와 하이퍼링크로 이뤄진 이 작품을 시작으로 카펜터는 올리아 리알리나(Olia Lialina)와 함께 넷 아트의 선구자로 꼽히며 그의 작품은 여러 비엔날레는 물론이고, 미술관, 갤러리, 박물관 등에서 소개됐다.

‘핸드메이드 웹’은 2015년 3월 26일 영국 배스 스파 대학교(Bath Spa University)에서 열린 『슬로 미디어 컨퍼런스(Slow Media Conference)』에서 발표한 동명의 글에서 그가 주창한 어휘이자 웹을 다시 바라보고 실천하는 운동이다. 요컨대 ‘핸드메이드 웹’은 특정 소프트웨어나 서비스에 기대지 않고 손으로 한 줄 한 줄 코딩한 웹사이트, 기업이 아닌 개인이 만들어 유지하고 관리하는 웹사이트, 읽기와 쓰기를 비롯해 편집, 디자인, 소유권, 개인 정보 보호, 보안, 정체성 등을 둘러싼 기존의 관습에 도전하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웹사이트를 둘러싼 웹의 한 국면이다. 작고, 느긋하고, 느닷없다는 점이 ‘핸드메이드 웹’의 매력이다. 소셜 미디어를 위시한 웹 2.0이 도래하기 전까지 웹은 그 자체로 ‘핸드메이드 웹’이었다. 요컨대 ‘핸드메이드 웹’은 과거를 사랑하지만, 단순한 노스탤지어가 아닌 오늘날 지나치게 빠르고 기업의 자본에 잠식된 웹을 향한 불만 섞인 경쾌한 질문에 가깝다.
카펜터는 ‘핸드메이드 웹’을 통해 오늘날 웹 개발의 복잡성과 자동화 도구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비판하는 동시에 수작업으로 직접 HTML, CSS 등을 작성해 웹사이트를 구축하는 일이 개인의 창의성과 표현력을 높이고 웹의 본질적 가치를 되살리는 방법이라 주장한다. 그는 자신의 웹사이트를 통해 이런 철학을 실천하며 HTML 태그를 의미론적으로 사용해 콘텐츠 중심의 웹사이트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는 ‘핸드메이드 웹’이 기술적 한계에도 개인의 개성과 창의력을 드러내는 수단이 될 수 있으며, 나아가 웹의 다양성과 표현의 자유를 증진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믿음에 기반한다.
‘핸드메이드 웹’은 기술과 언어, 그리고 의미의 관계에 대한 흥미로운 통찰을 제공한다. ‘핸드메이드 웹’을 실천하는 일은 단순히 웹사이트를 만드는 기술적 과정을 넘어 자신의 생각과 태도를 드러내는 창조적 행위다. 이는 언어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구성하고 전달하는 글쓰기 과정과 비슷하다. 특히, 그가 강조하는 HTML 태그의 의미론적 사용은 언어의 의미 작용과 연결된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은 언어의 의미가 그 사용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했다. 이는 HTML 태그를 단순한 기술적 도구가 아니라 웹 콘텐츠의 의미를 구성하는 언어적 요소로 바라보는 관점과 상통한다. 즉, 자신이 HTML 태그를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 웹사이트의 내용과 구조, 나아가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핸드메이드 웹’은 기술 발전과 자동화로 획일화되는 웹 환경에서 개인의 언어적 표현과 다양성을 보존하려는 시도다. 이는 허버트 마르쿠제(Herbert Marcuse)가 현대 사회를 ‘일차원적 사회’로 진단하며 제기한 문제의식과 연결된다. 그는 기술 발전이 오히려 인간을 규격화하고 사고를 제한한다고 비판했다.2 이런 맥락에서 ‘핸드메이드 웹’은 기술 언어를 주체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이런 일차원성에 저항하고 자신만의 표현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이다. 즉, 기술을 인간 해방의 도구로 전유하려는 시도로, ‘핸드메이드 웹’은 디지털 시대 인간 주체성 확보의 한 방안이 될 수 있다.
이처럼 ‘핸드메이드 웹’은 단순히 웹사이트를 만드는 태도나 방식을 넘어 기술과 언어와 인간의 관계를 향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카펜터의 실천은 웹을 표현의 장으로 바라보고, 기술 언어를 통해 개인의 목소리를 드러내려는 노력이다. 이는 언어와 의미, 주체성 등 언어철학의 주요 테마와 산뜻하게 연결되는 동시에 디지털 시대의 인문학적 성찰을 촉구한다.
새로운 질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언급했듯 시적 연산 학교의 마지막 과제는 ‘나만의 학교 만들기’였다. 이때 내가 제안한 건 리코타 인스티튜트(Ricotta Institute, RI)였다. 4주에 걸쳐 리코타를 만들고(요리), 리코타에 관한 글을 쓰고(글쓰기, 편집), 그 글을 웹사이트로 출판해(코딩, 디자인) 결국 자신의 리코타를 판매하는(마케팅) 과정을 경험하는 학교였다. 물론 그때는 그저 농담이었다.

시적 연산 학교에서의 경험과 ‘핸드메이드 웹’의 정신은 (어쩌면 리코타 인스티튜트의 프로토타입일지 모를) ‘새로운 질서’로 이어졌다. 늘 그렇듯 시작은 사소하고 자연스럽다. “어떤 대상을 좋아하고, 급기야 사랑하게 되면, 그 아름다운 마음을 주위와 나누고 싶게 마련이다.”3 한국에 돌아온 2016년 크리스마스 이튿날 당시 내가 일하던 워크룸 사무실에서 임직원과 외부 동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자신만의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이 비공개 워크숍에서 움튼 ‘새로운 질서’는 2019년 젊은 미술가들이 운영하는 스튜디오 파이, 취미가(趣味家)의 아낌없는 지원으로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WRM 등과 어깨동무하며 조금씩 자라났다. 그리고 씨앗은 자신이 무엇으로 얼마나 자라날지 감지할 수 없었다.

어느덧 ‘새로운 질서’를 운영한 지 4년 가까이 흘렀고, 함께한 ‘친구들’은 학생은 물론이고, 편집자, 디자이너, 시인, 미술가, 음악가, 영화감독, 종교인까지 400여 명을 넘어섰다. ‘새로운 질서’에서 그들은 소셜 미디어에서 벗어나 처음 자신만의 웹사이트를 만들며 웹에 대한 자신만의 시각을 얻었고, 웹사이트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매체로 자리매김했다. 그렇게 ‘새로운 질서’는 웹이 개인의 창의성과 자유를 실현하는 공간이 돼야 한다는 믿음을 공유하는 시공간이 됐다. 이제 ‘친구들’은 웹사이트를 통해 자신의 작업뿐 아니라 생활에, 나아가 인간관계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한다. 그뿐 아니라 ‘새로운 질서’에 대한 또 다른 새로운 질서인 ‘새로운 질서 그 후’나 ‘어떤 질서’ 같은 컬렉티브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새로운 질서’ 이전에 ‘핸드메이드 웹’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매주 금요일이면 ‘새로운 질서’가 열리는 스튜디오 파이와 취미가는 ‘친구들’로 북적인다. 그들의 흐뭇한 실천에서 나는 또 다른 에너지를 얻는다. 동시에 ‘새로운 질서’는 무언가를 배우는 일과 가르치는 일에 관해 곱씹게 했다. 선생의 역할은 맹목적인 학생을 만드는 게 아니라 더 많은 선생을, 나아가 동료를 만드는 것이다. ‘새로운 질서’에서 첫 시간부터 호칭 없이 이름만으로 서로를 부르는 까닭이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웹에서 사람의 손길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웹사이트는 자동화되거나 템플릿을 기반으로 구축되며, 웹사이트 제작에 관한 지식은 소수의 전문가에게만 국한된다. 누군가에게는 시대착오적일지 모르지만, ‘핸드메이드 웹’의 정신을 따르는 ‘새로운 질서’는 웹의 역사와 가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웹사이트의 수작업적 가치를 강조한다. 기성의 플랫폼에 안주하지 않는 것, 웹이라는 공간 자체를 탐색하며 기술과 어깨동무하는 자신의 언어로 웹사이트를 써내려가는 것. 결과물은 사소하고 작을지 몰라도 그 안에 담긴 고민과 열정은 결코 가볍지 않다.

내 핸드메이드 웹, 우리 핸드메이드 웹
열한 살 무렵이던 1995년, 사랑하는 친구를 위해 처음 웹사이트를 만든 이래 이제껏 나는 웹사이트를 만드는 일, 나아가 코딩을 ‘실용적인 동시에 개념적인 글쓰기’로 간주해왔다. 동시에 되도록 내가 완전하게 제어할 수 있는 기본적인 (심지어 누군가에게는 낡아 보일 게 뻔한) 기술을 활용해 웹사이트를 만들어왔다. 동시에 첨단 기술을 마주할 때마다 조금씩 의문이 피어오르며 자신감을 잃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사랑하는 시인이자 스승인 이수명의 문장은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현대시라는 말은 현대에 쓰여진 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과거에 쓰여졌어도 결코 나이를 먹지 않으면 현대시다. 어떤 시가 나이를 먹지 않는 것일까? 기법이나 형식에서, 시적 인식의 방향에서 가장 멀리 나아간 경우가 그렇다. 때로 당대에는 너무나 멀리 나아간 것처럼 보이는 시, 그래서 불길하고, 당대의 가치를 훼손시키는 것처럼 보이는 시, 하지만 그들로 인해 극지가 있음을 알게 해준, 스스로 극지가 되어 버린 시가 현대시다. —이수명, 「시의 토대」4
그리고 그의 문장에서 ‘시’를 ‘웹사이트’로 치환해도 그리 이상하지 않았다.
이후 그를 따르는 후대의 웹사이트가 그를 발판 삼아 나아가려 해도 더 이상 거기서 나아갈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의 세계를 개화시킨 웹사이트가 시대를 막론하고 현대적 웹사이트라 할 수 있다. 현대적 웹사이트는 발전이 아니라 모방을 낳는 웹사이트다. —민구홍, 「웹사이트의 토대」
시적 연산 학교에서 처음 접한, 단호한 동시에 시적인 카펜터의 문장은 내게 또 다른 버팀목이 됐다. 게다가 로럴 슐스트(Laurel Schwulst)를 비롯해 크리스 하마모토(Chris Hamamoto), 엘리엇 코스트(Elliott Cost), 로사 맥엘헤니(Rosa McElheny), 민디 서(Mindy Seu) 등 이제껏 직간접적으로 교유해온 친구들 모두 저마다 나와 비슷한 이유로 ‘핸드메이드 웹’을 언급하곤 했다. 자연스럽게 미술 및 디자인계 안팎에서 10여 년 동안 편집자, 디자이너, 프로그래머를 오가며 내가 ‘이제껏 웹을 대한 방식'이 또 다른 ‘핸드메이드 웹’이었음을 알게 됐다.

2023년 여름, 나는 시적 연산 학교 시절을 떠올리며 카펜터의 「핸드메이드 웹」을 한국어로 번역했다. 이는 내가 ‘새로운 질서’를 시작한 이유와 다르지 않다. “어떤 대상을 좋아하고, 급기야 사랑하게 되면, 그 아름다운 마음을 주위와 나누고 싶게 마련이다.”5
무엇보다 기술 발전의 흐름 속에서도 ‘핸드메이드 웹’의 가치와 정신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느꼈다. 개인의 표현과 다양성이 위협받는 오늘날의 웹 환경에서 ‘핸드메이드 웹’의 메시지는 오히려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이 실천은 한편으로는 나 자신을 향한 응원의 메시지이기도 했다. 기술적 한계에 부딪히고 표준을 따라가기 벅찰 때도 있지만, 그럴수록 자신에게 집중하며 웹사이트를 써 내려가는 일의 소중한 즐거움을 되새기고 싶었다.





카펜터의 ‘핸드메이드 웹’ 정신과 실천은 단순히 웹사이트를 만드는 방식을 넘어 삶과 창작의 태도로서 가치가 있다. 그의 웹사이트가 보여주는 것처럼 기술 발전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온라인 표현 공간을 꾸준히 가꾸는 일, 거기서 자신만의 언어를 발견하는 일은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기회다. 참고로, 한국어판 전문은 오직 카펜터의 웹사이트에서 읽을 수 있다. 뜬금없이 자신의 글을 번역하고 싶다는 어느 한국인의 메일에 그가 이런 답장을 보내온 까닭이다.
“정말 좋은 생각이에요. 단, 조건이 있어요. 한국어판 전문은 오직 제 웹사이트에만 싣고 싶어요. 전문을 읽고픈 사람은 반드시 제 웹사이트에 접속하도록이요.”
‘핸드메이드 웹’에서 그가 언급한 여러 웹사이트처럼 그의 웹사이트에 접속하는 순간 우리는 시간의 역설과 마주한다. 심지어 몇몇 하이퍼링크는 깨져 있다. 그의 웹사이트가 레이아웃에 구식 테이블 태그로 이뤄져 있거나 모바일 환경을 지원하지 않는다고 놀랄 필요는 없다. 가장 놀라운 점은 이 글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즉 인터넷에 연결돼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내게 그의 웹사이트가 지나치게 아름다운 것처럼 웹을 사랑하는 이라면 기꺼이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다.
오래된 웹사이트는 죽은 웹의 유물이 아니다. 여전히 살아 있는 웹의 지도에 꽂힌 표지판으로서 어제의 웹, 오늘의 웹, 내일의 웹을 안내한다. (…) 나 또한 내 웹사이트의 구닥다리 디자인이 더는 근사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업데이트를 미뤄야겠다.

허술한 원고를 깔끔하게 다듬어주신 권정현, 손예주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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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가 없는 인용구는 J. R. 카펜터 글을 민구홍이 번역한 것으로 「핸드메이드 웹(Handmade Web)」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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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bert Marcuse, One Dimensional Man: Studies in the Ideology of Advanced Industrial Society, (Boston: Beacon Press, 19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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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구홍, 「새로운 질서: 어제와 오늘과 내일과」, 『글짜씨 23: 스크린 타이포그래피』, (파주: 안그라픽스, 2023), 1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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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명, 「시의 토대」, 『횡단』 (서울: 민음사, 2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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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구홍, 「새로운 질서: 어제와 오늘과 내일과」, 109. ↩